일본의 유일한 소수민족 문제, 아이누족과 훗카이도(北海島), 사할린, 쿠릴열도까지 포함된 역사 문제
일본이 지워온 이름, 다시 살아나는 아이누의 역사
일본의 유일한 소수민족 문제, 아이누족과 훗카이도(北海島), 사할린, 쿠릴열도까지 포함된 역사 문제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 도쿠가와 막부 시대를 거치면서 에조, 에미시로 불렸던 아이누족은 전국으로 흩어졌고 1935년 일본 대만 총독부는 숙번(熟蕃)을 평포족(平埔族), 생번(生蕃)을 고사족(高砂族)으로 개칭하였는데, 대만까지 내려온 아이누족 또한 여기에 포함시켰다. 물론 그에 따라 일본 내에서 아이누족의 문제는 약 1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메이지 정부는 1871년(메이지 4년) 호적법을 공표해 아이누를 평민으로 편입하는 조치를 통하여, 그들의 전통 관습을 금지하고, 그들의 영토에서 추방했다. 따라서 아이누족들은 다시 일본 뿐 아니라 일본 외 지역인 대만까지 흩어져야 했다. 1878년에는 마침 북쪽 홋카이도에 설치한 개척사가 당시까지 사용되던 에조인과 이인, 아이노인, 아이누인 등과 같은 다양한 호칭을 구토인(舊土人)으로 통일했다. 이는 아이누라는 자체적으로 긍지 높은 명칭을 호칭 하나로 삭탈해 버린 것이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면서 대만 섬과 그 주민들은 중화민국으로 귀속되었다. 대만을 차지한 국민당 정권은 일제(日帝)의 보류지 정책을 지속하면서 산간 오지의 촌락을 저지대로 강제 이주시켰으며 한어 교육을 통하여 한족으로의 동화를 추진하였다. 그래서 현재 대만의 아이누족은 모두 한족에 동화된 상태이다.
우선 아이누족의 역사로 보면 아이누란 ‘인간’을 뜻하고 있다. 아이누족은 약간 검갈색 피부색과 짙은 눈썹, 그리고 동그란 눈과 많은 체모를 가진 종족이다. 이들이 일본에 들어와 거주한 것은 B.C 500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열도와 주변 지역 섬들에 정착하고 있던 아이누족의 불행은 비(非) 아이누 족인 와징(和人)과의 대립에서 시작된다. 1400년대 중엽부터 와징의 세력이 홋카이도에서 강력해지면서 아이누족에 대한 억압이 심해진다. 와징, 특히 일본 사무라이들과의 여러 차례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아이누족은 와징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1869년부터 본격적인 북방 개발을 시작한 메이지 정부는 아이누의 생활습관을 전면 금지했다. 메이지 정부는 아이누족에게 ‘일본인’의 생활 습관을 강요했다. 특히 1899년에 제정된 ‘북해도구토인보호법’은 아이누족에게 일본인으로서의 위치를 부여하고 와징과의 ‘구별’을 명확히 했다. 메이지 후반에는 와징의 이주가 증대하면서 아이누족에 대한 억압과 착취 대신 ‘차별’이 생겼고 그것은 현재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아이누족의 생활 모습을 보려면 삿포로에서 남쪽으로 150㎞ 떨어진 시라오이(白老)의 아이누 민속촌을 찾아가면 된다. 정문에 들어서면 높이 16m의 거대한 아이누족 추장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이누족 전통 가옥과 나무로 만들어진 식량 보관 창고, 아이누족 민속 박물관 등이 존재하고 있다. 옛 아이누족 민속 복장을 한 사람들이 안내를 맡고 있으며 광장에서는 고유의 민속춤이 공연되고 있다. 최근 홋카이도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홋카이도에 사는 아이누의 인구는 28,000여 명이며 참고로 홋카이도 전체 인구는 700여 만 명이다. 일본 전체적으로는 3만여 명이 존재하고 있다. 아이누족의 의식주를 본다면 아이누 족의 의복에는 원래 바다가마우지, 바다 참새과의 해조인 에토피리카 등의 깃털이 달린 가죽으로 만들어진 새 털옷과 곰, 사슴, 여우, 개, 바다표범 등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짐승 가죽 옷, 연어, 숭어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물고기 가죽옷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대표적인 의복은 나무껍질 옷으로 알려진 수피의이다. 그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아프시 직(織)인데, 이것은 나무의 내피에서 얻은 섬유로 짜여진 의복이다. 또한 풀로 만든 옷으로 쐐기풀의 섬유로 짠 것은 색이 하얗게 변색되어 레타라페(Letarafe)라고 불린다. 이것은 사할린의 아이누족이 많이 이용한 의복이다. 아이누족의 식생활은 매우 독특하다. 보통 아침과 저녁 두 끼를 먹으며 주로 고기를 삶아 국으로 먹는다.
곰이나 사슴의 내장을 가늘게 썰어 날 것을 즐겨 먹는다. 연어는 얼린 그대로 먹거나 훈제를 한 후 먹는다. 일본인이 농경민족인 데 비해 아이누족은 수렵민족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식사들이 가능한 것이다. 전형적인 아이누족 가옥은 한 칸으로 서쪽에 헛간을 겸한 입구를 가지고 있다. 창은 3개가 있는데 그 중 들어가서 정면인 동쪽에 있는 창은 로룸프얄(Rorumpyal)이라고 불리는 신들이 출입하는 창, 또는 의례 시에 이용하는 여러 용구를 내고 들이는 창으로 신성시되고 결코 몰래 숨어서 보면 안 된다. 더불어 가옥 북쪽에는 창문이 없으며 서쪽에 2개의 작은 창문을 연다. 옥내의 입구 가까이에는 실내 바닥을 파서 만든 일종의 난방장치인 이로리(囲炉裏)가 설치되어 있다. 아이누족은 메이지 시대 이래로 100여 년간의 강력한 동화정책에 의해 오랜 전통을 가지고 배양해 온 문화 풍토인 아이누어를 강탈당하고 말았다. 오늘날 아이누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소수의 노인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이다. 모어로 말할 수 없는 아이누가 있어도 그 특징적인 용모에 의해 식별이 쉽기 때문에 오늘날도 역시 취직과 결혼 등 사회적인 차별이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차별에 의해 아이누의 대다수는 사회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한 가정이 많다. 생활 보호의 수급률은 전국 평균의 6배에 달하고 있다.
1946년에는 전도아이누대회가 개최되고 ‘교육의 고도화’와 ‘복리후생시설의 협동화’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 북해도아이누협회’가 설립되었으며 1961년 이 단체가 ‘북해도우타리협회’로 개칭되면서 아이누족에 관한 제반문제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이누어의 부흥 및 전통무용, 각종 의례 등의 독자적 문화의 전승과 보호 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또 전도 각지에서 아이누어 교실이 열림과 동시에 고식 무용 보존회가 조직되어 이요만테(イオマンテ), 칩산케(チップサンケ)라고 하는 의례가 부활 및 실시되고 있다. 이요만테는 아이누인의 불곰에 관한 풍습이다. 겨울 말엽에 아직 월동 중인 곰굴에 들어간다. 새끼곰이 있으면 어미곰을 죽이고 새끼곰을 마을로 데리고 와 실내에서 자식처럼 키운다. 심지어 곰에게 모유를 먹였다는 말도 있다. 곰이 어느 정도 자라면 밖으로 데리고 가 통나무로 만든 작은 우리에 넣어 기른다. 이후 좋은 음식을 먹이며 성심껏 모신다. 이 새끼곰은 부락민들에게 신적 존재로 취급받는다. 곰이 두 살이 되면 우리에서 꺼내 마을 한가운데 세워진 기둥에 묶는다. 그러면 마을의 남자들이 궁시를 들어 곰을 쏘아 죽인다. 불곰은 불과 두 살에도 상당히 크기 때문에 죽이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화살을 쏘아야 한다. 고슴도치가 된 곰이 죽기 직전이 되면 마을사람 한 명이 다가가 목에 영거리 사격으로 확인사살을 한다.
그 뒤 곰의 멱을 따 피를 받아서 마신다. 곰의 가죽은 벗기고, 고기는 나누어 먹는다. 곰의 해골바가지를 창대 끝에 꽂아 곰의 모피로 덮어 숭배하는 우상으로 삼는다. 이제 곰은 신들의 나라로 "보내졌다"고 선언된다. 아이누 민속촌에 존재하고 있는 아이누족들은 과거에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보존하고 전승할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며 그러나 이제는 젊은 아이누들을 비롯해 와징들 사이에서도 아이누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칩산케는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전통 기법으로 만들어진 배에 영혼을 담는 의식이다. 17세기에 들어 홋카이도의 대부분 지역을 지칭하는 명칭인 에미시는 바쿠한 체제에 편입되었고 벼농사를 짓지 못하는 홋카이도 와징을 바쿠후에게 수여한 마쓰마에 한(松前藩)은 대신 아이누족과의 교역 독점권을 허가 받았고 거기서 얻은 이익을 재정의 기반으로 삼았다. 마쓰마에 한은 검문소를 설치하여 아이누족의 주거지인 에미시를 왕래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였다. 그래서 아이누족은 원래 자신들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그 토지에서의 산물과 노동력 등을 와징에 탈취당하게 된다. 훗카이도 지역의 치시마 열도에 거주하고 있던 아이누는 1875년에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맺어진 가라후토-치시마 교환 조약(樺太-千島交換条約)에 의하여 당시 일본 영토였던 시코탄(色丹) 섬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가라후토의 아이누족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에 의해 거의 대부분 훗카이도로 강제 추방되었으나 극소수가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홋카이도가 2006년 실시한 아이누족의 생활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이누족의 대학진학률은 일본 전체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7.4%에 머물고 있다. 또한 생활 보호 수급률은 38.3%로 여전히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홋카이도에 살고 있는 아이누 인구는 대략 24,000여 명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이누 족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수의 아이누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러시아의 아이누족은 2022년 기준 200여 명, 대부분의 인구가 캄차트카에 살고 있다. 러시아 지역 아이누들은 일본 패망 이후 대부분이 일본인으로 간주되어 이들 중 90% 이상이 일본인들과 함께 추방당했다. 소련에 남아있었던 이들 또한 강제 수용소로 끌려갈 위험 때문에 일본식 성씨를 러시아의 성씨로 바꾸고 러시아인들과 통혼해서 후손 스스로가 자신이 아이누인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 이후 최근까지도 아이누 족들은 오랜 기간 차별과 빈곤에 시달리게 되었다. 1970년대에 세계 선주민들의 권리 회복 운동 단체들과 연결하면서 아이누족의 민족적 권리를 획득해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졌다.
이러한 일본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시조인 오이나카무이(オイナカムイ)의 아내가 한때 중병에 걸렸을 때 ‘태양 신’이 나타나 “여성은 남성보다 나쁜 피가 많아 병에 잘 걸리니 그 나쁜 피를 뽑아주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오이나카무이는 아내의 입술 주변을 바늘로 찔러 피를 뽑았다. 그리고 그 상처 자리엔 ‘불의 신’이 만들어준 가마솥 밑의 검댕이와 재를 발라주었다. 이후 병도 상처도 씻은 듯이 나았다. 대신 입술주변이 검게 변했다. 이와 같은 전설로 인해 아이 족 여인들은 대대로 입술 둘레와 손등에 문신을 하게 되었다. 반면 남성들은 문신을 하지 않고 수염을 길렀다. 추운 지방이기 때문에 남성들은 털이 많아 수염이 입술 주변에 더부룩하게 자랐다. 이 모양이 입 주위에 문신한 여성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아이누족의 옛 설화는 구비서사시 형태가 거의 대다수이다.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발달시키긴 했으나 문자를 받아들인 경우가 드물었고, 군소 국가들은 존재했지만 통일된 국가가 형성되어 있지는 않아 기록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누와 관련한 기록물들은 적지 않게 남아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일본의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1900년대 인류학 및 고고학 연구자들이 나서기 전까지는 문자화된 기록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적다.
그나마 아이누족 출신인 지리 유키에(知里幸惠)가 아이누 신화를 많이 발굴해냈다. 사실 이것을 정리한 사람은 킨나리 마츠(아이누명 이메카누)였으나, 반신불수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여 양녀로 삼은 조카딸 지리 유키에가 대신 도쿄로 가서, 킨다이치 쿄스케의 집에서 아이누 신화를 일본어로 옮겼다. 심장병이 있던 지리 유키에는 이 작업이 끝나자마자 19세로 죽어버렸다. 그녀의 남동생 지리 마시호도 아이누어 연구를 많이 남겼다. 또한 아이누족 출신 학자였던 가야노 시게루(萱野茂, 1926~2006)가 아이누족으로써 최초로 참의원이 되어 1997년 아이누 문화 진흥법의 제정을 이루어내기 전까지는 문화 활동에 필요한 법적 지위 보장도 어려웠던 것이 아이누 족이다. 지역적으로 일본의 최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우리에게 북해도(北海島)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북쪽 지방 특유의 기후와 풍토를 통해 원시 그대로의 자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에는 원주민이면서도 일본의 동화정책에 의해 민족이 멸절의 위기에 놓여 있는 소수 민족인 아이누족이 소규모로 존재한다. 언어는 본래 아이누어를 사용했으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일본어와 러시아어가 대세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 : 일본 훗카이도의 아이누족, 출처 : Тамото Кэндзо / Музей изобразительных искусст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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