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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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Алмазбек Атамбаев)와 소론바이 젠베코프(Сооронбай Жээнбеков), 사디르 자파로프 3자 간의 권력투쟁기 

- 키르기스스탄의 대표적인 올리가르히,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

- 젠베코프와의 연정 및 불화로 인한 키르기스스탄 내부의 혼란, 그리고 또 다른 튤립 폭동의 기폭제

- 대한민국 문재인으로부터 한국산 전자개표기를 도입한 인물 아탐바예프 


키르기스스탄의 전 대통령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Алмазбек Атамбаев)는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올리가르흐였다. 그는 유년 시절 엔지니어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이었고, 소련 붕괴 후, 키르기스스탄이 독립하자 리서치 및 프로덕션 회사인 포럼을 경영하는 회장이 되었다. 그의 기업은 키르기스스탄의 상류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아탐바예프는 2000년대에 키르기스스탄 상위 100대 부자에 포함되었다. 1995년부터 아탐바예프는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당시 총선에서 최고회의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2000년에는 낙선했지만 곧바로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 비록 6.2% 밖에 득표하지 못했지만 초보 정치인 치고 사회민주당 내에서 나름 선전했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2005년 아카예프 정부에 대항하여 발생한 튤립 폭동 때 그는 반 정부 운동권 지도자 중 하나였으며 이후 세워진 바키예프 정부에서 산업통상관광부 장관과 총리까지 역임했다. 그리고 2009년 대선 때 아탐바예프는 사회민주당 후보로 다시 출마헸지만 8.5%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이에 아탐바예프는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부정 문제 등을 문제 삼으며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집회를 열게 되었고, 이것이 바키예프의 눈밖에 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6 키르기스스탄 권력투쟁의 상징적 장면 (2).png

2010년 4월, 2차 튤립 폭동으로 바키예프가 축출되자 오툰바예바에 중용을 받아 그녀의 임시 정부 산하에서 경제부 장관을 맡게 된다. 그가 키르기스스탄 대기업 총수였던 것에 경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오툰바예바가 중용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아탐바예프는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다시 최고회의 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2월 연정이 구성되면서 총리직에 선출되어 오툰바예바와 협력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같은 올리가르히인 오무르벡 바바노프(Омурбек Бабанов)와는 경쟁관계였다. 오툰바예바는 10월에 바바노프를 총리로 올렸지만 그는 공무집행방해 및 경찰관에게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두 달만에 낙마했다. 12월에 총리가 된 아탐바예프는 결국 2011년 유력한 대선 주자로 떠올랐고, 오툰바예바가 사퇴한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63.8%를 득표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북부 지방에서 유효표의 87.1%에 달하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남부 지방에서 받은 득표율은 32.2%로 다소 낮았는데 친러 성향이자 이슬람 원리주의로 뭉친 집단들이 거주한 남부 지역에서 그는 서방의 앞잡이인 오툰바예바에게 협력한 또 다른 서방 앞잡이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 32.2% 득표의 대부분 남부 키르기스인과 대립하고 있는 현지 우즈벡계 주민들이 투표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탐바예프는 2011년 대선 당시 남부 지방에 표를 차지하기 위해 마나스 국제공항에 위치한 미군 기지들을 폐쇄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마나스 기지는 러시아의 폐쇄 압력과 기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전임 바키예프 정권의 부정부패로 인하여 이미지가 매우 악화된 논란의 대상이었던 곳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탐바예프의 당선 초기에는 미군과 더 나은 협상 조건을 위해 폐쇄를 압박한 것이 카드일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2014년 최종적으로 미군이 철수하면서 결국 마나스 공군기지는 폐쇄되었다. 당시 키르기스스탄은 역대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로 인해 끊임없는 논란들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래서 아탐바예프 정부는 투명하고 부정선거 논란을 지우기 으위해 대한민국을 방문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남을 갖는다. 그래서 아탐바예프가 문재인과 계약해서 가져온게 광학 판독 개표 장비들과 선거 관리 시스템이다. 이 때부터 키르기스스탄은 한국식 전자 개표와 수개표를 병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치러진 2017년과 2020년 선거 당시 부정선거를 고발한 클룹(Kloop) 지는 이 한국식 전자개표 시스템 도입으로 인해 당시 돈을 주고 투표자를 매수하는 등의 부정 행위가 옂전히 근절되진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클룹지는 병행 개표 실시에 따라 선거 결과를 직접 조작하는 행위는 방지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아탐바예프가 대통령으로 집권했을 때 오무르벡 바바노프(Омурбек Бабанов)와 화해하고 그의 정당인 레스푸블리카당과 연정에 합의했다. 이후 바바노프를 총리로 재기용했는데, 문제는 2012년에 중앙아시아에 불어닥친 경제 위기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를 계기로 레스푸블리카당과 연정이 붕괴되었고, 알리 카라셰프(Аалы Карашев)를 대행으로 내세웠으며 이후 잔퇴뢰 사트발드예프(Жантөрө Сатыбалдиев)를 새로운 총리로 임명했다. 그러나 사트발드예프 총리 또한 쿰퇴르 금광 국유화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면서 오히려 키르기스스탄 남부 지역에 대한 민심이반이 가속화 되자 2014년에 이 연정 또한 다시 무너지면서 조마르트 오토르바예프(Жоомарт Оторбаев) 대행 체제가 수립되었다. 그리고 

2015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이 전체 의석 120석 중 38석을 차지하면서 제1당이 되었고, 키르기스스탄당과 외뉘귀-진보당, 아타메켄(Ata-Meken)과 함께 진보당의 테미르 사리예프(Темир Сариев)를 총리로 하는 연정이 구성되었다 2016년 사리예프 총리가 사임한 이후, 같은 사회민주당의 소론바이 젠베코프가 총리로 선출된다.


키르기스스탄 같은 국가가, 같은 정당의 대통령과 총리가 함께 한다는 것 자체에서 같은 정당이 권력을 나눠먹기 한다는 의혹은 여기저기서 쏟아지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총리 권한 강화 개헌안 투표"다. 2016년 12월 키르기스스탄 "총리 권한 강화 개헌안 투표"가 80%의 득표율로 가결되었다. 당시 야권에서는 2017년 12월 1일에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대통령이 총리가 되기 위해서 헌법을 고치는 것으로 인식하고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 때 나타난 아탐바예프의 때 아닌 영어 발언이 화제가 되었는데 "I'm not Putin"이다. 이는 2008년 러시아에서 임기가 다한 푸틴 대통령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을 밀어주고 본인이 총리가 된 사건을 두고 본인 스스로 그럴 의도가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아탐바예프는 이와 같은 헌법개정안이 의회의 권한과 정부 부처 간 견제와 균형을 강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아탐바예프는 자신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를 감행한 언론들을 법적으로 고소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아탐바예프는 평소 언론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2017년 여당인 사회민주당 및 검찰이 아탐바예프를 비판한 24.kg 통신사와 라디오 아자특(Radio Azattyk), 프로미디어 등의 언론사들을 직접 고소했다. 


고려인 출신 알렉산드르 김(Александр Ким)이 운영하던 키르기스스탄 주요 매체인 베체르니 비슈케크(Вечерний Бишкек)도 2015년 아탐바예프의 소송 대상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소유주가 바뀌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7년 12월 1일에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의회 의장이나 국무총리도 맡지 않고 정계에서 은퇴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2017년 11월 24일에 예정되었던 퇴임일에 한 주 앞 당겨 6년 동안 재임하였던 대통령직을 퇴임하게 된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아탐바예프는 같은 사회민주당의 젠베코프를 지원했다. 따라서 젠베코프가 54.7%,의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사회민주당은 정권 연장에 성공한다. 그러나 아탐바예프와 젠베코프는 정부 연정 구성 문제를 두고 다툼이 잦아지게 된다. 우선 젠베코프는 오쉬에 기반을 둔 남부 지방 출신으로 사디르 자파로프와 관계가 좋았다. 반면 아탐바예프는 북부 출신으로 남부와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남부를 키워주기 위해 젠베코프를 중용했다. 젠베코프는 같은 남부인사인 자파로프를 연정의 대상으로 생각했지만 아탐바예프는 쿰퇴르 금광 사건으로 인해 투옥되어 있는 자파로프를 그다지 탐탁치 않아했다. 


그는 바바로프나 오토르바예프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를 두고 둘의 다툼은 곧 젠베코프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아탐바예프에 대한 숙청을 계획한다. 우선 사회민주당에서 당장 아탐바예프를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젠베코프는 아탐바예프와 아탐바예프의 인사이자 북부 출신의 사파르 이사코프(Сафар Исаков)를 총리로 세우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젠베코프는 보안 부처 및 검찰 등에서 아탐바예프 측 인사들을 연이어 경질하기 시작하면서 아탐바예프와 관계를 정리했다. 2018년 2월 젠베코프는 법 집행 기관이 부패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아탐바예프와 가까웠던 정치인들이 체포되어 부패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어 사파르 이사코프 총리도 해임시킨 뒤, 비슈케크 화력 발전소를 둘러싼 부패 혐의로 체포했다. 이에 아탐바예프는 젠베코프가 동생 아슬벡 젠베코프(Асылбек Жээнбеков)를 비롯한 일가 친족들을 요직에 임명하는 행위 등을 거론하며 바키예프가 잘못한 전철을 밟고 있다며 비판했지만 이것이 본인이 체포되는 도화선이 된다. 2019년 8월 8일 아탐바예프는 부패 혐의로 보안 당국에 체포되면서 키르기스스탄 독립 이후, 처음으로 전직 대통령이 현장에서 체포되는사건이 발생한다. 


러시아의 타스통신은 당시 아탐바예프가 수도 비슈케크에서 약 20km 떨어진 코이-타시 마을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이 때 키르기스스탄의 보안당국이 전날 특수부대원들을 투입해서 아탐바예프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 작전을 시도했다. 그런데 젠베코프의 이러한 행동을 감지한 아탐바예프의 지지자들과 북부 지역 의원들의 지지자들이 격렬하게 저항했다. 우선 특수부대들은 이러한 저항에 밀려 퇴각했지만 전열을 정비한 이후, 다시 체포작전을 펼쳐 결국 아탐바예프를 연행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타스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전 대통령이 보안당국 요원들에 굴복했으며 그가 자택에서 끌려나갔다(Бывший президент сдался агентам службы безопасности и был вытащен из своего дома)."고 전했다. 이 때부터 아탐바예프 대통령의 지지자들과 특수부대원들 간의 약간의 충돌들이 있었으며 추가로 몰려든 양측의 충돌로 인해 양측의 많은 인원들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갔다. 다행히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보안 당국과 경찰이 아탐바예프를 강제로 연행한 것은 그가 범죄 조직의 수괴였던 아지즈 바투카예프(Азиз Батукаев)를 불법으로 석방한 사건과 관련하여 수사당국이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를 세 차례 거부했기 때문이라 했다. 


아지즈 바투카예프(Азиз Батукаев)는 아프간계 키르기스인으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게 다량의 마리화나를 사들여 키르기스스탄에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는 범죄자였다. 아탐바예프는 바투카예프에게 많은 불법 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었지만 정황 증거일 뿐, 명확한 증거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았다. 그리고 아탐바예프는 수도인 비슈케크 열병합발전소를 보수하는 사업과 관련하여 각종 뇌물을 받아 챙겼다는 혐의를 받았고, 발전소에 대한 불법적인 석탄 공급과 불법적으로 자행된 택지 수령 등의 혐의까지 추가되었다. 말 그대로 부정부패로 얼룩진 중앙아시아에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것이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다. 아탐바예프는 바투카예프와 자신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오래전부터 고수해 왔었다. 이어 아탐바예프 측 변호사도 검찰이 아탐바예프의 유죄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젠베코프의 명백한 정치 보복이라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르기스스탄 최고회의와 대법원은 아탐바예프 전(前)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의 면책특권과 전직 대통령 권한을 박탈하겠다고 선언하였으며 이에 2020년 6월 아탐바예프는 재판에서 징역 11년 2개월 형을 선고받으면서 투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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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탐바예프 체포 작전(생성형 AI)

 

그러나 아탐바예프를 투옥시켰던 젠베코프조차도 불명예 퇴진을 면치 못했다. 2020년 키르기스스탄 총선거 당시 부정선거 시비가 발생하며 대규모 폭력 집회가 발생하였고, 이는 제3차 튤립 폭동으로 이어진다. 결국 젠베코프 대통령 역시 불명예 퇴진하게 되었다.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들은 자파로프를 비롯해 여러 수감된 정치인들을 석방하였는데, 아탐바예프 역시 시위대들에 의해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어 몇 일 뒤, 국가보안국에 의해 다시 체포되었는데 젠베코프에 이어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사디르 자파로프 현 대통령이 이를 적극 관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3년 아탐바예프에 대한 선고를 취소하고 그의 사건을 재심에 붙였으며 아탐바예프는 당시 지병으로 인해 보석을 신청했으며 보석이 허가되어 석방되었다. 2025년 키르기스스탄 대법원은 다시 바투카예프 사건에 대해 아탐바예프에 유죄 판결을 선고했지만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였고 따라서 형을 선고할 수 없었다. 아탐바예프는 현재 자택에 머물며 두문불출 중이다. 지병이 악화되어 자택에 머물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만 간간히 들려올 뿐이다. 키르기스스탄 현대사를 얼룩지게 만든 아탐바예프와 젠베코프의 최악의 권력 투쟁은 완전히 종식된 셈이지만 이는 키르기스스탄 정치사에 있어 큰 흑역사로 남고 있다. 


6 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jpg
사진 : 키르기스스탄 최고의회,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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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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