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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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험천하제일산(寄險天下第一山)이라 불리는 화산을 관광하기 위해 아침 730분 호텔을 출발하여 화산에 10시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에 본 중국 변두리 지역의 농촌은 우리네 80, 90년대의 농촌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허물어져 가는 가옥들과 공사 중인 도로들! 어느 곳이나 빛과 어둠이 있었다. 오늘 우리의 계획은 서봉(연화봉 2086m)에 올랐다가 북봉(운대봉 1614m)을 거쳐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화산은 남봉(낙안봉 2154m)이 가장 높다. 화산은 동서남북 버스 정류장이 따로 있었을 정도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우리는 관광버스에서 내려 서쪽 버스 정류장까지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한 시간가량 더 달렸다. 가는 길가로 보이는 시골 마을은 한국의 시골과 다름이 없었다. 마을을 지나 산길을 달렸을 때는 깊고 높은 산 중턱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8자로 만들어진 길을 달렸다. 버스 뒷 창문을 통해 보니 저 멀리 셔틀버스가 꼬리를 물고 따라오고 있었다. 그만큼 화산 관광객 수가 많았다. 일반 관광버스로는 달릴 수 없는 험한 길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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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버스가 도착한 곳에서부터 케이블카를 타는 곳까지 가는 길에 태화승경(太華勝景)’이라고 쓰인 돌문이 있었다. 그곳에서 케이블카 승차장까지는 10분 정도 오르막 계단을 올라야 했다. 케이블카는 8인승이었고, 15분가량 케이블카를 타고 서봉 정상을 향해 올랐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서 본 화산의 풍경에 모두가 !”라는 감탄사가 남발했다. 케이블카가 위로 올라갈수록 아득히 멀어지는 출발지를 보면서 화산의 아찔한 높이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와이어 줄 하나에 매달려 운행하는 수많은 케이블카를 보면서 스릴도 느꼈다. 땅과는 까마득히 먼 허공중에 줄 하나에 의지한 케이블카! 마지막 잎새보다 더 위험해 보였지만, 나는 그 잎새와 같은 처지이면서도 위험을 망각하고 있었다. 천 길 낭떠러지 위 허공에 매달려 있는 케이블카 바닥이 나의 발을 지지해 주기 때문이었다. 아찔했지만 내 밖에서 잠시 나를 상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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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가까워져 올수록 깎아지른 화강암 바위산의 위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절경을 감상하던 중 커다란 절벽처럼 생긴 바위산에 인간이 뚫어 놓은 동굴 하나가 보였다. 저곳이 케이블카의 하차장이었다. 케이블카에 내려 잠시 걷다 보니 붉은 기둥의 도교 사원이 있었다. 사원 현판에는 진공묘도라고 쓰여있었다. 불교의 진공묘유와는 한 글자의 차이지만, 도교와 불교의 차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묘한 있음(妙有)이 아니라 묘한 도(妙道)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묘한 도가 있는 그곳 도교 사원에서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고 1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을 이용해서 서봉 정상에 올랐다. 서봉 정상까지 가는 길은 바위산 능선에 만들어졌다.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인간 띠를 형성하고 있었다. 뒤돌아보니 한 줄로 늘어선 그 광경이 개미 떼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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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 정상에는 화산서봉 연화봉(해발 2086.6)’라는 작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나는 그곳을 발견하지 못하고 대신 양공탑을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었다. 서 봉 정상에서 둘러본 주변의 산들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뒤로 돌아 올라온 길을 보니 돌산 능선을 따라 양쪽에 박아놓은 쇠 파이프와 쇠줄, 그리고 쇠줄에 묶어 놓은 붉은색의 띠가 보였다. 화산의 붉은 단풍과 붉은 띠는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서봉 정상을 뒤로하고 이제는 북봉을 거쳐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해야 했다. 가이드 말로는 1시간 30분 정도 돌계단을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서봉에서 북봉으로 가는 길의 경치도 놀라웠다. 산 능선 곳곳에 세워진 도교 사원들, 저 멀리까지 겹겹이 펼쳐져 있는 산 정상들의 모습과 기암괴석들, 그 중 화산논검이라고 쓰여진 비석 앞에서 한 장의 인증사진도 찍었다. 북봉에서 케이블카로 하산할 때의 광경들은 이미 서봉 케이블카로 올라올 때 화산의 웅장함을 본 후라서 그다지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산 중턱을 휘감아 오르는 등산길들을 보면서 거대한 자연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한 마리 개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1시간 30분 정도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하산길의 아픔은 이틀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다리의 근육이 뭉쳐서 계단을 이용해서 내려갈 때는 허벅지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즐거움 뒤에 오는 고통은 하행 길에 맛본 화산의 절경을 감상한 것에 비하면 참을 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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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서안의 중심가로 향했다. 서안의 인구는 1,300여만 명이고 넓이는 서울의 2배 정도의 규모였다. 가이드 말로는 서안의 도시 규모는 중국에서 10번째 정도라고 한다. 버스를 이용하여 서안의 중심가를 향해 가면서 중국의 발전에 놀라움을 느꼈다. 서안 중심가의 교통체증은 서울과 유사했다. 다른 점은 서안에는 오토바이처럼 생긴 전동차가 많아 보였다. 도로 한 차선은 전동차들로 가득 찼다. 전동차 전용도로를 방불케 했다. 중국에 전동차 보급이 4억 대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실감 났다. 중심가의 모습은 서울의 빽빽한 거리 풍경과 달리 고층 빌딩들 사이의 폭이 넓었고, 또한 광장의 크기도 서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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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 중심가에 있는 종루(鍾樓)는 명나라 초기, 1384년에 세워졌다. 중국에 있는 종루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종루의 높이는 약 40여 미터이고, 주변에 조성된 넓은 공간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또한 사방에서 종루를 비추는 조명으로 인하여 5층 높이의 종루는 웅장함과 화려함이 돋보였다. 종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회족 거리가 있었다. 회족 거리는 당나라 시대에 실크로드를 통해 페르시아 상인들이 서안에 정착하면서 생긴 곳이다. 거리 양쪽 옆에는 음식점들만 즐비하게 줄지어 있었다. 첫날 밤에 관광한 대안탑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대안탑의 불야성 거리 중앙에는 각종 조각들을 전시해 놓음으로써 문화적인 세련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이곳 거리는 그러한 문화는 느낄 수 없었다. 거리의 폭도 좁았다. 거리에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가득 찼다.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50여 미터가 되는 거리를 왕복하는 것으로 오늘 관광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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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새로운 만남이다. 함께 여행한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문화와의 만남이기도 했다. 중국의 잠재력은 무한한 것으로 보였다. 역사의 깊이와 자연의 웅장함, 그리고 자본주의의 도입으로 인한 급속한 문명의 발달이 자본주의의 빛이라면, 한편으로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도 보였다. 4억 대나 보급된 전동차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분명 서민층이었을 것이다. 물론 자동차는 부의 상징이고 전동차는 가난의 상징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중국 도심의 일상에서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었다. 함께 한 이명권 선생이 언급한 두보의 시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회당능절정(會當凌絶頂) 일람중산도(一覽衆山小)! 높은 산에 오르면 뭇 산들도 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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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을 가다(3) 천하제일산의 장관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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