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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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카이치 총리가 훗날 문제 삼을 가능성 높은 러시아 지배하의 쿠릴열도 


러시아, 일본 두 나라가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이다. 양국은 식민지 개척 정책의 일환으로 사할린을 자국 영토라 주장하기 시작하며 마찰을 빚게 된다. 그러자 두 나라는 1855년 2월 7일 러일 화친 조약(露日和親條約)을 맺어 사할린을 공동으로 관할하는 구역으로 만들게 된다. 이어 1875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러시아가 사할린을, 일본이 쿠릴 열도를 차지함으로 합의를 보았다. 일본이 쿠릴열도가 자국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 근거하는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은 1875년에 일본과 러시아 제국과의 사이에 국경을 변경·확정하기 위해서 체결된 조약이었다. 일본에서는 가라후토-지시마 교환조약(사할린-쿠릴 열도 교환조약)이라고 부른다. 일본과 러시아의 국경은 1855년의 러일 화친 조약에 의해 쿠릴 열도의 이투루프 섬과 우루프 섬의 사이로 정해졌지만, 일본 정부는 영토를 더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와 계속 교섭했다.


구로다 기요타카 등은 가라후토(사할린)보다 홋카이도 개척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러시아와 이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일본은 사할린 섬 전체를 러시아령으로 인정함.

② 러시아는 우루프 섬을 포함한 쿠릴 열도 북쪽의 18개 섬을 일본에 넘겨줌.

③ 러시아는 사할린 섬에 있던 일본인의 재산을 배상하고 일본의 어업권을 승인함.


이후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사할린 섬의 남부(북위 50도선 이남)을 할양 받아 이 지역을 "남가라후토"로 통치하였으며, 러시아 내전 중에는 북부까지 점령(1918년~1925년)하기도 하였다. 소비에트 연방은 제2차 세계 대전 말인 1945년 8월에 사할린 남부와 쿠릴 열도 전역을 점령하였고,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이 지역에 대한 영토권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 중 쿠릴열도의 4개섬에 대해서 영유권을 주장하며 러시아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1980년 일본 국회 중의원과 참의원들이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 지정을 비롯하여 <북방 영토 문제의 해결 촉진에 관한 결의(北方領土問題の解決促進に関する決議)>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에 일본의 모든 도도부현 의회와 시정촌 의회, 전국지사회, 전국시의회의장회, 전국시장회, 전국정촌회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결의가 채택되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결의가 모아지는 것을 계기로 총무청에서는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 지정을 검토하기로 하고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듣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1980년 12월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에 대한 간담회가 학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게 된다. 간담회의의 결과에 대해 답신을 받은 일본 내각은 1981년 1월 6일에 열린 내각 회의에서 매년 2월 7일을 북방 영토의 날로 정하는 안을 채택했다. 왜 2월 7일로 설정을 했냐면 가증스럽게도 1855년 2월 7일 에도 막부와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 사이에 맺은 조약인 러일 화친 조약(露日和親條約)이 체결된 날이 그 날이기 때문이다. 화친(和親)이란, 국어사전적 의미로 볼 때 '서로 의좋게 지내는 정분', 혹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 다툼 없이 가까이 지냄' 이라도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친조약을 체결한 2월 7일을 영토 분쟁과 관련하여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로 지정한 것이다. 사실 이 가증스러운 행위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을 기념한 날인데 일본은 오랫동안 잃어왔던 자국의 영토를 되찾기 위한 의미로 지정한 것에서 그 의미가 맞지 않다고 보여진다. 친하게 지내자는 것은 평화와 우의를 동반하는 것인데 1981년부터 현재까지 41년 동안 2월 7일을 북방 영토의 날로 지정하고 다양한 축제를 비롯해 행사를 거듭하여 일본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평화와 우의의 상징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후 시간이 흘러 독일과 소련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는 것을 보고 이에 충격을 받은 일본은 1941년 소일 불가침조약을 맺게 된다. 그러면서 안심하고 때린 것이 진주만이다. 이와 같이 양국 간에 불가침 조약이 있었지만 1945년, 소련은 얄타 회담의 결과에 따라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공격을 결정한다. 이로써 소일 불가침조약은 결국 파기되었고 만주 기습 작전으로 일본은 만주, 몽골, 조선 등의 식민지를 상실하게 된다. 소련은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이후에도 평화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고 양국은 계속 휴전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소련이 붕괴된 후, 2000년대에는 일본이 북방영토 회복 문제를 제기했고, 러시아는 도쿄 근해에 폭격기를 근접 비행시키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한다. 이와 같은 북방 영토를 두고 일본과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우리 한국의 반일감정을 이용해 일본과 대응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센카쿠 열도, 남중국해 등의 분쟁에 대해서 중국 편을 들었으며 이러한 러시아의 태도에 일본은 러시아에 적극적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러시아 태평양 함대 소속군함들이 쿠릴열도 지역을 방문했다.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사망한 전몰 수병 추모 항해차원으로 쿠릴 열도와 하바로프스크 지역 등을 24일 동안 항해한다고 하는데, 이를 5년 동안 계속해왔다고 한다. 2017년 8월에는 러시아가 일본과의 영토 분쟁 지역인 쿠릴열도 남부지역의 쿠릴 4개 섬을 경제특구로 지정함을 발표했다. 쿠릴열도 지역에서 러시아와 일본의 공동 경제활동을 구상해온 일본은 이와 같은 조치에 당황해하면서도 적극 반발했다. 러시아 타스 통신과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당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쿠릴 4개섬 가운데 하나인 시코탄에 경제 특구 성격의 '선도개발구역'(TOR)을 설치하는 총리령에 서명했다고 한다. 메드베데프 총리는 쿠릴열도가 속한 극동 사할린 주(州)의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를 방문해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의 현지 열성당원들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총리령에 서명했다고 밝히게 된다. 이와 같은 북방 4개 도서 선도 개발구역은 극동 지역에 분야별로 특화된, 경제자유구역과 유사한 산업 기지들을 조성함으로써 정부가 인프라를 구축해 주고 각종 행정과 세제 상의 특혜를 부여함으로 인해 국내외 입주의 업체들을 끌어 들여 완전히 영토화 하려는 러시아 정부의 방침으로 보여 진다. 


쿠릴 열도가 속한 사할린 주 주지사 올렉 코줴먀코의 발표에 의하면 선도개발구역 지정으로 쿠릴 열도에 새로운 일자리들이 창출될 것이고 청년들의 실업난이 해결될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환영하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할린 주 주정부는 수산물 가공업체 '오스트로브니(Островни)'가 투자 의향을 밝혔다면서 이 업체가 약 74억 루블(약 1,400억 원)을 투자하여 시코탄 선도 개발구역에 수산물 가공 단지를 건설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오스트로브니(Островни)는 부두 시설 개보수, 수심 확장 사업 등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3단계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을 세웠고 약 7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설명했으며 현재도 계속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오스트로브니(Островни)는 이곳에서 생산된 수산물 가공품을 러시아 국내에 공급하는 것은 물론 일본, 중국, 한국 등으로 수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2010년 이후 1조원대 지역개발 및 관광지 개발을 할 예정이라 발표하고 이에 따라 현지 거주민들이 매우 기대하고 있으나 10년이 넘도록 아무것도 된 것은 없다. 아무래도 이곳으로 관광하러 올 사람들은 일본인들일 가능성이 높고 그들이 자주 출입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영토 반환을 요구하는 남부 쿠릴 열도 인근 해상은 북극항로 활성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길목이며 또한 태평양에 진출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요충지이다. 


4개 섬 인근에는 천연가스와 석유, 비철금속, 수은 등 각종 자원이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러시아에게 아주 중요한 지역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4개 섬을 일본에 넘겨줬을 경우 미군이나 일본 자위대의 군사시설이 이곳에 들어설 가능성을 러시아는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을 두고 최근 푸틴 대통령은 일본의 영토 분쟁 및 도발을 상쇄하기 위하여 북방 4개 도서 경제특구에 외자유치를 승인했다. 20년동안 법인세와 고정자산세를 면제해 주는 획기적인 조건까지 승인한 것이다. 이후 러시아 정부는 내년인 2026년까지 쿠릴열도 남단의 섬 두 곳, 이투루프와 쿠나시르에 150개 이상의 군사 시설을 신축하거나 재정비해 '완전한 군사 도시'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라 발표했다.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4개의 주요 섬들 중 가장 큰 두 섬인데 이곳에 강력한 군사거점을 구축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으로 볼 때, 센카쿠 문제로 중국을 견제해 전력 재배치를 계획하는 일본 입장에서도 상당한 압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어 러시아 태평양 함대는 북부 쿠릴 열도 마투아 섬에 배치된 해안 방어용 지대함 미사일 시스템 바스티온 가동에 들어갔다. 


일본 입장에서는 쿠릴열도가 문제가 아니라 훗카이도 지역에 대한 방위도 신경써야 할 상황에 놓였다. 그래서 토마호크를 발사할 수 있는 타이푼 미사일 발사대를 설치한 것이었고, 러시아는 이투루프 섬과 쿠나시르에 훗카이도 최대 도시인 삿포로와 오가사와라를 향해 중거리 미사일 기지를 설치할 가능성 또한 높아지게 되었다. 이럴 경우, 일본은 핀치에 몰리게 된다. 미국 또한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따라서 그와 같은 위험도를 잘 알기에 다카이치 총리는 자신의 내정과 내부 권력을 강화할 속셈으로 이를 그저 정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다카이치가 문제 삼을.jpg
사진 : 쿠릴열도 19세기 지도,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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