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은 권한인가 내란인가”…윤석열 무기징역 판결이 남긴 3대 충돌
실패한 내란이 감경 사유? 1심 판결이 던진 위험한 질문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무기징역 선고는 개별 정치인의 운명을 넘어서, 한국 헌정 체계에서 계엄권과 내란죄의 경계를 어디에 그을 것인지 묻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2월 19일 12·3 비상계엄과 관련한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계엄 선포 자체는 원칙적으로 내란이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군을 국회에 출동시켜 의사당 봉쇄를 시도한 행위를 국회 기능을 장기간 저지·마비하려는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으로 보아 내란 성립을 인정했다. 선고 직후 도심에는 사형 선고를 요구하는 시위대와 “계엄은 구국의 결단”이라 주장하는 맞불 집회가 동시에 열리며, 판단을 둘러싼 사회적 균열이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 전반에 충격을 던졌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계엄이 곧 내란은 아니다”라며 법원의 판단을 비판하면서도, 지방선거와 차기 정계 개편을 앞두고 ‘윤 어게인’ 세력과 거리를 둘지, 다시 연대를 모색할지 셈법이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진보 진영에서는 헌정 질서 수호를 내세운 강경 대응이 강조되며, 항소심에서 형량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여론도 감지된다. 계엄을 둘러싼 법적 판결이 곧바로 보수 재편과 차기 대선 구도를 가르는 정치적 변수로 비화하고 있는 셈이다.
쟁점의 중심에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권한과 형법상 내란죄 구성 요건이 충돌하는 구조가 있다. 헌법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서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권을 부여하지만, 형법 제87조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의 폭동’을 내란으로 규정한다. 이번 재판부는 단순한 요건 미비나 절차 위반이 아니라, 국회와 중앙선관위에 군을 투입하고 국회 활동을 포고령으로 금지한 일련의 조치가 입법부 기능을 실질적으로 배제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법리 쟁점은 크게 세 갈래로 요약된다. 첫째, 계엄 요건 미비가 정치적·헌법적 책임에 그칠 것인지, 형사 책임으로까지 비화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학계 일각은 “계엄 요건의 흠결은 위헌·위법의 문제이지만, 곧바로 내란 목적과 폭동 요건 충족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해 왔다. 둘째, ‘국헌 문란 목적’에 대한 인식 범위를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가라는 논쟁이다. 재판부는 국회 봉쇄 시도와 포고령 문구, 군 투입 계획 등을 종합해 윤 전 대통령이 입법부 기능을 장기간 마비시키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인정했다. 셋째, 실행이 실패로 돌아간 경우에도 내란이 기수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는지의 문제다. 이번 판결은 군 투입 시도가 국민 저항과 기관의 거부로 상당 부분 좌절됐음에도, “위력 행사의 위험이 현실화된 이상 실패 여부와 무관하게 내란은 이미 성립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다만 재판부는 물리력 행사 자제, 계획 일부의 실패 등을 참작해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택했다. 또 다른 관련 재판부가 “내란이 단기간에 멈춘 것은 국민 저항과 제도적 견제 덕분이지, 계획의 책임자에게 감경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 것과는 온도 차가 있어, 항소심에서는 내란죄의 ‘위험범’ 성격과 감경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국 현대사는 계엄과 긴급조치가 민주주의를 제약했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1979년 10·26 직후 선포된 비상계엄은 1980년 5·17 조치로 전국 확대되면서 1981년 1월까지 456일간 유지됐고, 이 과정에서 5·18 민주화운동과 대규모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이후 1987년 개헌으로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이 삭제되고, 비상권력 통제 장치가 강화된 것도 이런 역사적 경험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계엄을 통해 국회 권한을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는 점이 이번 사건에서 다시 확인됐다.
여론 조사에서도 비상계엄이 남긴 상흔은 뚜렷하다. 12·3 계엄 선포 1년을 앞두고 실시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7%는 “정치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고 답했고, 계엄 이후 정치·사회적 분열이 심각해졌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 수사에 대한 신뢰도 역시 진보·보수, 세대·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여, 계엄과 내란 논쟁이 한국 사회의 기존 갈등 구도를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판결은 내란죄를 ‘결과범’이 아니라 위험성 자체를 중시하는 ‘위험범’에 가깝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향후 권력자의 국가긴급권 행사에 상당한 제약을 가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실패한 시도를 감경 사유로 폭넓게 인정할 경우, 사후 책임 회피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역사적 경험과 현재의 판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계엄 권한의 범위와 사법 통제의 강도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법리 다툼을 넘어, 민주주의 공고화의 방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계엄 제도와 국가긴급권 전반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첫째, 계엄 발동 요건과 절차를 더욱 구체화하고, 국회 통제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계엄 선포 시 국회 자동 소집, 군·경의 정치 중립 의무를 명문화한 포괄적 ‘비상권력 통제법’ 제정, 계엄 포고령의 내용과 군 배치 계획을 사후 공개하는 제도 등이 거론된다. 둘째, 군과 경찰 지휘부를 대상으로 한 ‘헌법·민주주의 교육’ 강화도 요구된다. 5·18과 12·3 계엄의 사례를 필수 교과로 포함해, 상명하복 문화 속에서도 위헌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역할도 중요하다. 보수 정당에게는 특정 인물에 대한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계엄과 내란을 둘러싼 분명한 원칙과 레드라인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 진보 진영 역시 ‘징벌 감정’에 기대기보다, 헌정 질서 수호를 위한 제도 설계 경쟁으로 논의를 끌어올려야 한다. 시민사회와 언론은 사건을 이념 대결의 소재로만 소비하기보다, 비상권력과 사법 통제,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둘러싼 구조적 논점을 꾸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항소심은 단순한 형량 재심리가 아니라, 대통령 긴급권의 헌법적 한계를 다시 정의하는 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내란죄 해석은 향후 어느 권력이든 위기 상황을 명분으로 계엄 카드를 꺼내 들 때 적용될 기준이 된다. 이번 판결이 개인의 정치적 책임을 넘어, 권력과 헌법, 정치와 형벌의 경계를 더욱 선명하게 그어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