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일, 벨라루스 "사회적 기생충 방지법"의 "실업세" 청구에 대한 시위

입력 : 2024.05.06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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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일, 벨라루스는 연일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시위 구호는 ‘실업세 반대’이다. 실업세라는 것은 더 일할 수 있는데도 반년 이상, 183일을 기준으로 일하지 않고 국가 고용센터에도 등록하지 않은 사람에게 460벨라루스 루블(약 28만원)을 물게 하는 일종의 벌금으로 비롯된다. 평균 월급의 절반이 좀 넘는 금액이기 때문에 벨라루스 시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대상자 가운데 돈을 낸 사람 또한 10%도 안 될 정도이다. 

 

같은 날, 벨라루스의 두마 의회에서는 고령자나 장애인, 학생 등을 제외하고 무직으로 소득세를 내지 않은 사람에게 매년 벌금을 내게 하는 정책인 '사회적 기생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명분은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복지 혜택에 무임승차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는데, 소득이 없거나 기준치 이하라서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은 복지 혜택이 필요한 사람이기에 이를 무시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와 같은 실업세는 옛 동독에서도 존재했던 종류의 세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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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15년 4월 2일, 벨라루스 실업세 반대 시위,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본래 실업세는 2015년 ‘건강한 국민이 노동에 종사하면서 정부 지출의 일부를 감당하는 헌법상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돕자’는 취지로 시행되었다. 예외는 학생과 장애인, 55세 이상 여성, 60세 이상 남성, 3자녀 부모 등으로 국한했었다. 경제 활동 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선출된 것이다. 루카센코 대통령은 이 법안을 두고 놀고 먹는 사람을 없애자는 뜻에서 ‘사회적 기생충 방지법(Дэкрэта аб дармаедах)’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국가 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노동력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벨라루스는 옛 소련과 같이 중앙집권적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국영 기업에 퇴직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노동력이 모잘라 한계에 부딪치는 상황이다.

 

2012년에는 임업에 관련된 기업, 2014년에는 국영 농장 근무자들에게도 퇴직 금지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2015년 이후 러시아 경제가 흑해 병합과 돈바스 전쟁의 유도 등으로 경제 제재를 당하게 되자 벨라루스는 경기 침체라는 직격탄을 맞아 ‘준비 안 된 실업자’가 갑자기 늘어나게 되었다.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실업세 대상자도 늘어났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실업세법은 과거 소련에도 존재했었다. 일자리를 잃은 것도 슬픈 일인데 세금까지 짊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뜨 정책 이후로 완전히 없어졌다. 물론 어느 나라나 실업 문제는 국내 문제 중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이슈다. 이는 생산과 복지 문제까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핀란드가 ‘기본소득제’를 도입한 것도 이러한 실업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기존 실업수당과 달리 실업자에게 아르바이트 등의 저임금 일자리가 생겨도 월 70만원을 보장하는 대신 각종 복지 제도를 없애는 것이 기본 정책이다. 


이에 따른 복지 투자에 대한 행정 비용도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벨라루스가 겪고 있는 실업 문제 현상이나 핀란드에서 포퓰리즘을 줄이는 실험은 모두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생긴 일이다. 도덕적인 헤이를 방지하고 근로에 대한 의욕을 높이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지혜는 없는 것일지 고민해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루카센코 대통령이 이 세금 제도에 대해 많은 고심을 해왔다. 물론 시민들의 집단 반발도 예상했고 집단으로 납부를 거부하여 벌금에 대한 납부율이 떨어질 것도 예상했다. 특히 벨라루스 국민들과 야권은 정부를 대상으로 이 법에 대한 폐지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고 이에 루카센코 정부 퇴진과 친유럽 성향 정권으로 바꾸자는 반(反) 정부 시위로도 확산되었다.


벨라루스 민영 뉴스업체인 벨라판(Bela PAN) 뉴스 컴퍼니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마이크를 든 야당 연합자유당(UCP) 대표 아나톨리 랴베즈카(Анатолий Рябезкa)는 시위에 모인 시민들에게 ‘법령 3호’에 맞서 행동에 나서자고 촉구했다. 4월 17일, 수도 민스크에 2,000명의 시민들이 모여 시작된 시위가 지방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같은 날 벨라루시의 북동쪽 비쩹스끄 승리 광장에도 200명이 시위를 벌였으며 남서쪽 브레스트에도 100명이 모여 ‘법령 3호’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시위자들은 “나는 기생충이 아니다(Я не паразит)”라는 손피켓을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달인 5월 15일에는 수도 민스크에서 더 큰 시위를 벌일 것을 예고하고 나섰다. ‘사회적 기생충 방지법’인 "법령 3호"는 소련 시절의 법령을 발표할 때 상세한 법 조항이 아닌 숫자로 입법 절차의 순서를 매겨 OO 1호, OO 2호, 순으로 불리고 있다. 국민들의 사회적인 의존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루카셴코 정부가 이미 2010년 1월부터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법은 실업률이 올라가고 연금은 삭감되고 정년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불황으로 인한 민생고를 국민에게 전가시켜 국민의 소득을 더 감소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온 벨라루스 시민들 입장에서 대표적인 "악법(Закон)"이다. 벨라루스의 경제는 2015년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면서 많은 벨라루스인들은 러시아에서 일하면서 집으로 돈을 부친다. 민스크에 모인 시민 행동 ‘분노한 벨라루스인의 행진(Люты беларускі марш)’은 당국에 법령 3호를 철회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한달 안에 정부가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새로운 집단행동에 나서겠다며 경고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는 2020년 6선에 성공해 1994년부터 현재까지 28년째 장기집권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서방 언론들은 루카셴코 정부를 유럽의 마지막 독재정권이라 부르고 있다.


정길선 기자 lukybaby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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