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의 새로운 생명

입력 : 2024.05.0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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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그래픽이다.(그래픽=저널인뉴스)

 

문래동에는 방림방적으로부터 기부 채납받은 4,000여평의 빈 땅이 있다. 지난해까지는 그곳의 절반은 도시 텃밭으로 사용하고, 절반은 구청 창고로 사용하였다. 그 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수년 동안 수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직 중에 서남권 균형개발의 목적으로 제2세종문화회관을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2021년 11월에 중앙심사투자까지 완료하였다. 

 

그런데 서울시장이 오세훈으로 바뀌자 서울시 의회를 통과했던 그 계획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여의도에 대형 선착장을 건설하고자 하였으며, 그러한 계획과 연계하여 제2세종문화회관을 여의도에 건설하겠다고 지난해 초에 발표했다. 그것도 여의도 공원의 절반쯤을 허물고 그곳에 제2세종문화회관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시장이 바뀌면 예전 시장 시절 서울시의회를 통과한 계획도 손바닥 뒤집듯이 그렇게 바꿔버려도 되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2세종문화회관을 여의도에 건설하겠다고 한 후에 영등포 구청장은 구청 창고로 사용하던 곳을 도시 정원으로 만들겠다고 발표를 하고, 곧 공사를 진행했다. 이제 내일모레면 공식 Open식을 개최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그곳 바로 옆에 있다. 아파트에서 나와 2차선에 불과한 도로만 건너면 정원이다. 

 

나는 매일 그곳을 내려다보고 있었기에 정원 만드는 과정을 모두 다 알고 있다. 공사비는 20억 이상 소요되었을 것이다. 공사비는 서울시의 지원받았다. 같은 당 소속의 구청장이 제2세종문화회관을 여의도로 이전할 것을 허락해 준 대가로 그 공사비를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아무튼 그렇게 하여 문래동 중심에 인공 자연이 형성되었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정원은 작지만 아름다웠다. 2,000평의 규모는 정원으로 꾸미기에는 작지만, 그래도 구청 창고로만 활용했던 공간을 주민들에게 개방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생각했다. 2,000평의 둘레에는 황톳길이 만들어졌고, 그 안쪽으로는 우레탄으로 만든 길도 조성되었다. 일부 공간에는 각종 운동기구도 설치되어 있고, 어린이 놀이터와 이름 모를 작은 나무들과 함께 꽃밭도 조성되었다. 

 

황톳길 둘레에는 수많은 나무가 심어졌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제외하면 모두 잔디가 심어졌다. 황톳길 둘레에는 가로등도 설치되었다. 또한 시민들의 휴식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흰색 지붕을 가진 조그마한 건물도 지었고, 그 옆에는 공중화장실도 만들어 놓았다. 곳곳에 설치된 등받이 의자와 지붕을 가진 쉼터도 만들어졌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면 모두 푸른빛이 나는 인공 자연이었다.


나는 매일 그곳을 내려다보면서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손자들을 데리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아내와 함께 그곳에서 간단한 운동과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 그림을 그려보곤 했다. 이틀 전에는 햇빛이 매우 따가웠다. 아내와 함께 우연히 그곳을 지나쳤는데, 나무를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뭇잎에 축 처져 있었다. 나무를 심는 과정도 모두 지켜봤기 때문에, 나무 둘레에 그름도 주고 물도 많이 뿌렸던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뜨거운 햇빛에 나무는 힘겨워 보였다. 아내가 이야기했다. “나무도 제집이 아니면 처음에는 몸살을 앓는데요.” 그럴 것이다. 그곳의 나무들도 자기가 살던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리기가 무척 힘들어 보였다. 비라도 내려서 나무가 뿌리를 잘 내리고, 나뭇잎도 생기를 찾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어제는 온종일 비가 내렸다. 정원에 조성된 꽃들과 나무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후에 아내가 부른다. “여보! 어쩌나? 저것 봐요. 나무가 쓰러졌어요!” 나는 창가로 가서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그렇게 심하게 불지는 않았지만. 나무 두 그루가 꽁꽁 묶인 뿌리를 드러내 놓고 쓰러져 있었다. 다른 나무들을 삼각형 모양으로 나무막대로 지지해놓은 상태였기에 쓰러지지 않았다. 쓰러진 나무는 지지대가 없었다. 왜 저 나무들만 지지대가 없었을까? 나무의 고통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살아있는 모든 것,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고통을 느낄 것이다. 

 

동물의 권리를 주장한 피터 싱어나 톰 레건의 책을 아직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동물에게만 고통을 느끼고 그 나름의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식물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은 고통을 느끼며 그 나름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식물들의 생태계도 전쟁과 공생을 함께 한다고 한다. 자연의 모든 생태계가 그럴지도 모른다. 문제는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다.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자연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들의 시각에서는 인간만이 이 지구의 주인이다. 기독교는 잘 모르지만, 기독교적 세계관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낳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렇다면 데카르트가 그 중심에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불교적 세계관은 인간 중심적이지 않다. 불교의 근본이 연기설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연기라는 관계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노자와 장자도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무위자연과 제물론의 논리가 그렇다. 

 

이런 이야기는 더 많은 논의를 해야 하기에 여기서는 그만두기로 한다.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픔을 느낀다는 생명 중심적인 세계관만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새롭게 조성된 인공 자연에서 새로운 생명들이 하루빨리 안정된 뿌리를 내리기를 소망해 본다. 생명 그 자체는 쉬움 없이 흐르는 물과 같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불꽃일까?

이태곤 기자 ltg10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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