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 사학의 문제와 그 한계

입력 : 2024.05.0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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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학이라고 하면 우리는 실증사학을 떠올리기 마련이고, 실증사학을 맨 먼저 주장했던 근대사학의 대부격인 독일의 사학자인 레오폴드 폰 랑케(1795-1886)를 거론하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랑케는 역사가의 서술 원칙을 제시했는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가가 바로 원전 사료에 충실해서 사실을 주관적 관점의 개입 없이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이때 역사가는 원전 사료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과거의 역사가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음을 전제해야만 하고, 비판적 작업을 통해 순수한 역사적 사실을 철저하게 밝혀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랑케에게 역사가의 임무는 원전 사료에 기초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랑케의 방법론으로 과연 있는 그대로의 과거가 재현될 수 있는가? 사실 불가능하다. 


물론 원전 사료를 통해 역사가가 신화 혹은 구전이 아닌 역사적 사실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거의 사실을 그 자체로 재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또 원전 사료에 대한 역사가의 비판적 작업이란 근본적으로 역사가 각자의 역사관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으며 오류의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역사가는 이 두 가지 관점을 언제나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는 매우 오래전에 역사 문제로 논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은 실증사학에 몰두하면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려는 관점을 견지했고, 다른 한 사람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 그 자체보다는 해석을 중시했다. 그러나 둘 다 이론적 기초가 너무도 미흡해서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대체로 전자의 경우에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일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가 문제고, 후자의 경우에는 역사적 사실이 자의적 해석에만 의존할 경우 역사의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지가 문제다. 실증사학의 문제는 역사가가 역사를 과거사로만 돌리면서 현재의 역사를 망각해 버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살아 있는 역사가 아니라, 박제화가 된 죽은 역사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와 반대로, 역사적 사실을 해석에만 치중할 경우는 어떤가? 보통 이러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역사가라기보다는 문헌학자인 경우가 많다. 그는 문헌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니까 역사적 원전 사료도 마찬가지인데, 역사적 사실 여부에 대한 정확한 확인보다 해석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서,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그는 원전 사료에 대한 의미나 해설 정도로만 원전 사료를 이해하는 수준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또 역사학이 다른 분야, 예를 들어 인류학, 고고학 등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간과된다. 필자는 두 사람 각각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사실 필자의 관점에서는 둘 다 모두 서로 보충할 수도 있는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주장만이 제시되어 있을 뿐, 각자의 논거는 불충분했다.


이때 문뜩 필자는 학부 시절 사학을 배우면서 느꼈던 일들이 떠올랐다. 사실 필자는 당시에 학과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 까닭은 현실과 아무런 관계도 의미도 없는 박물관의 유물과 같은 역사가 왜 필요한가에 관해 아무도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필자는 역사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역사에 대한 관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역사철학의 문제라고 하겠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역사철학이라고 할 때, 역사가들은 강한 거부감을 갖는다. 그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곤 사상사 정도나 가능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거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실증사학을 지지한다.


물론 그들은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직접 답사하면서 고고학적 발굴이나 인류사적 문명의 흔적을 찾아서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한 행로를 이어간다. 그들이 찾아낸 문서들과 기록들, 유적들·유물들 덕분에, 우리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에 묻혀 있는 역사적 사실에 그나마 조금씩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추정할 뿐 그대로 재현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기록과 기억이다. 기록은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필수적이다. 기록이 없다면, 우리는 사실 확인조차 어렵고 단지 추정에 머물러 있게 된다. 기억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각국은 각종 기념비든, 박물관이든 건립하고, 유적지도 보존하고자 노력한다. 독일의 경우에 나치 시절의 만행도 감추거나 은폐하기보다 적어도 역사적 사실인 한에서 공개를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피해국의 입장에서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나치에 의한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사과도 하고 배상을 하기도 했지만, 동아프리카 독일 식민지에서 저지른 민족학살에 관해서는 공식적인 사과나 배상을 여전히 하지 않고 있다. 엄밀히 말해, 현실은 선택적 사과 혹은 배상만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국가적 이익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증사학의 한계는 현재의 사실과 거리를 두고 과거에만 매몰되어 버리고 만다는 데 있다. 현실을 떠난 역사란 죽은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 같은 역사는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과거의 어두운 역사보다는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역사만이 강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때론 과장되거나 왜곡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원전 사료조차도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사실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특정한 역사적 사실이 현재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정치사, 사회경제사, 문화사, 종교사 등등이 서로 얽혀있고 상호 작용을 통해 일방적인 한 국가의 역사가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국제적 관점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랑케가 근대사학의 기초를 실증주의와 경험론에 근거해서 마련한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과거를 재현하고자 하는 랑케의 역사관은 때론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증될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사장을 시켜버릴 우려도 분명히 있다. 고대 문명의 유적지를 둘러 보면, 지금으로서는 입증될 수 없는 것이 수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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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그래픽이다.(그래픽=저널인뉴스)

 

현재 입증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역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역사의 무대에서 존재했지만, 현재 사라져버린 많은 민족의 역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와 반대로 입증될 수 있는 것만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할 경우에, 그 역사적 사실은 매우 제한적이다. 단적으로 근대사학 이후의 역사의 경우 문헌들이나 기록들이 남아 있어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데 고대사보다 더 용이하다.


실증사학은 실증주의(Positvismus)에 토대를 두는데, 실증주의는 사회학의 창시자인 이지도르 마리 오귀스트 프랑수아 크사비에 콩트(1798-1857)에서 기원한다. 콩트는 역사의 발전단계를 신학적 단계에서 출발해서 형이상학적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증적 단계로 구별했다. 


마지막 실증적 단계에 의하면 현상을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으로 가설을 입증하는 경험론의 방식이야말로 모든 현상을 신에 근거해서 설명하는 신학적 단계와 모든 현상을 추상적 개념으로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단계를 벗어난다. 실증적 단계에 의한 방법론은 비교와 실험, 그리고 역사적 분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실증주의가 역사에 적용되면 실증사학이 된다.


실증사학은 역사철학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역사철학은 역사에서 일정한 패턴과 법칙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역사의 의미와 그 가치를 연구한다. 그러나 역사에서 그와 같은 법칙이나 패턴이 어느 시대나 동일하게 적용되어 필연적 방식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의 현실에서는 우연한 발견과 착상이 인류에게 준 선물을 갖다 주는 경우라든가, 혹은 조그만 사건이 뜻밖에 혁명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역사적 사실로서 입증을 우리가 하려고 하면 단시간에 이루어지기 어렵다. 어쩌면 그것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여전히 해석이나 추정으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권기환 기자 fiow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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