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시대를 앞서간 철학자의 현대적 의미

자기 극복과 생의 긍정, 그리고 대중의 함정

입력 : 2024.07.0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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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LL·E 2024-07-08 10.41.51 - A detailed illustration capturing the essence of Friedrich Nietzsche's philosophy and its relevance to modern times. The image features a contemporary.jpg
이미지 그래픽이다.(그래픽=저널인뉴스)

 

“니체는 스스로 2백 년이나 시대를 앞서 태어난 선구자의 운명을 한탄한 바 있다.” 한신대 철학과 교수인 윤평중 선생의 글에서 발췌한 대목이다. 나는 이 대목의 출처가 궁금했다. 그래서 쳇GPT에게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이 사람을 보라>라는 책 속에 그와 유사한 대목이 있다고 알려 준다. 


그래서 내가 소장하고 있는 정동호 선생과 김태현 선생이 번역한 책에서 그와 유사한 대목이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사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윤평중 선생이 인용한 대목처럼 1884년 태어난 니체가 오늘날 태어났다면, 그가 무슨 말을 했을까 궁금했었다.


‘시장의 파리떼’에서처럼 대중의 명성만을 추구하는 배우들이나 위대한 창조 행위에 관심이 없고, 자기반성을 하지 않는 대중을 여전히 시장의 파리떼로 비유하면서 비난했을까? 어쩌면 19세기의 유럽의 현실과 지금의 현실이 그렇게 많이 변한 것 같지는 않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가 저들을 너그럽게 대하면 저들은 너에게 멸시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저들은 너의 선행을 은밀한 해코지로 되갚는다.” 이 대목은 타란툴라라는 독거미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도 반복된다. 


“평등을 설교하는 자들이여! 너희야말로 타란툴라요, 숨어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는 자들이렸다.” 이 말은 대중들은 정의를 앞세우지만, 그 뒤에는 복수심이 숨어 있다고 본 것이다. 니체는 복수심의 광기는 무기력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들의 복수심을 백승영 선생은 분노에 찬 오만과 억눌린 질투로도 번역한다. 아무튼 니체는 대중들의 복수심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하고자 했다.


니체가 강조하는 것은 자기 극복이다. 니체는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생은 항상 자기 자신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은 오르고자 하며 오르면서 자신을 극복하고자 한다.“ ”아름다움 속에서조차 전투와 불평등이, 힘과 그 이상의 힘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존재한다.” 이러한 표현 모두가 생의 긍정을 통한 자신의 극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니체의 삶에 대한 긍정과 극복의 길에 있어서 하향평준화는 삶에 대한 긍정의 힘을 좌절시키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벗들이여. 충고하건대 남을 벌하려는 강한 충동을 갖고 있는 그 누구도 믿지 말라.” 그들은 강자의 힘을 약화하고 하향 평준화시켜 자신의 무리 일원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력의 광기이다.


이러한 대목은 오늘날의 우리의 현실과도 유사하다. 우리나라만큼 고소 고발이 난무한 사회가 없다고 한다. 정치판의 고소 고발은 난장판과 다름이 없다. 정치판이 그러하니 일상생활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발생한다. 나 역시 최근에 공익제보라는 명목으로 사소한 도로교통 위반을 고발당해 벌금 9만 원을 납부한 경험이 있다. 그 상황은 다음과 같다. 중앙선이 있는 2차선의 도로에서 앞차인 택시가 승객을 내리기 위해 정차한 상황에서 택시를 추월하기 위해 차선을 변경했다. 


그 장면이 내 차량을 뒤따르던 오토바이 블랙박스에 찍힌 것이다. 2차선 도로의 옆 차선에선 어떠한 차량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앙선 침범을 위반했다고 고발당했다. 나는 고발 당할 만한가? 나를 고발한 사람은 정의감보다는 자기 이익에 눈이 멀었다고 보여진다. 이것이 어쩌면 니체가 말한 복수심에 불타는 무기력의 광기일지도 모른다.


니체는 또한 ‘잡것에 대하여’에서 권력을 추구하는 잡것, 글이나 갈겨 쓰는 잡것, 그리고 쾌락이나 쫓는 잡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생에 등을 돌린 자라고 한다. 권력을 추구하는 잡것은 다수라는 대중의 힘에 호소하면서 그들과 흥정하는 자들을 일컫는다. 오늘날의 우리 정치인들을 연상케 한다. 또한 글 쓰는 잡것들은 피와 삶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는 그의 글을 통해 그 윤곽을 잡을 수 있다. 


글 쓰는 잡것들은 정신을 퇴락시켜 기쁨의 샘인 깨끗한 삶을 더러운 문젯거리로 만들 뿐이라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잡것은 고통이 갖고 있는 힘에 대한 니체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는 니체의 말은 고통이 인간을 성숙시키는 힘으로 보고 있다. 이는 결국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대목으로도 읽힌다.


니체는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는 생성의 강물이라고 비유하고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생성의 강에는 절대 불변의 진리라는 것은 없고, 지칠 줄 모르고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명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생명은 명령과 복종의 힘의 대결장이고, 그러한 힘의 대결장에서는 순종보다 명령이 더 어렵다고 한다. 명령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모험과 위험, 목숨을 건 주사위 놀이, 이런 것들이 더없이 큰 자가 하는 헌신이다. 


희생과 봉사, 그리고 사랑의 눈길이 있는 곳, 거기에는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도 있다.” 더 없이 큰 자는 자신의 주인이 되어 끊임없이 자신을 극복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자신을 극복한 존재가 참된 사랑을 배풀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신이 자신에게 주인이 되자고 하는 니체의 사상은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적합한 말로 여겨진다.


오늘날 니체처럼 다양하게 해석되는 철학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니체로부터 현대 철학의 문이 열린 것은 분명하다. 그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철학자가 등장했다, 하이데거, 푸코, 들뢰즈, 데리다 등이다. 라캉도 그중 한 명이다. 니체는 ‘이웃 사랑에 대하여’에서 시장의 파리떼에 등장하는 배우들을 언급한다. 배우들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인간들이 아니고, 이웃에게로 도피하여 그들의 인정을 받고자 한다. 


그래서 니체는 이웃에서 멀리 도망가서 진정한 벗을 찾으라고 가르친다. “이웃에 대한 사랑보다 더 숭고한 것은 더없이 먼 곳에 있는 사람과 앞으로 태어날 미래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다.” 이 대목은 라깡의 ‘환상 가로지르기’를 연상케 한다. 라깡은 나의 욕망 타인의 욕망이란 것을 알아차리고 타자의 욕망에 의해 소외되어 나타나는 자신의 고유한 욕망을 되찾는 자유로 길을 추구하라고 가르킨다. 


이 길은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로 나아가는 길이다. “이드가 있는 곳에 내가 도달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이 문장이 바로 나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환상을 가로지르라고 가르치는 라깡의 명언이다. 이것은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고, 그 극복을 위해서 지금의 삶에 대한 긍정을 의미하는 아모르 파티와 유사하다. 니체가 지금 이 시점에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아모르 파티는 강조했을 것 같다.

이태곤 기자 ltg10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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