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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 출간한 박준영 박사
    박준영 박사(사진=본인제공)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문화인류학자 박준영입니다. 저는 10년 정도 삼성전자에서 연구개발직과 인사과장으로 일했습니다. 학부 때는 화학공학을 석사는 경제학을, 세계 일주를 다녀오고 박사는 문화인류학을 했습니다. 밥벌이로 반도체 관련된 산업과 기술 강의, 반도체 기업의 컨설팅을 합니다. 공학, 경제학, 인문학 조금 어려워 보이실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고, 결국 말과 글로 먹고살려는 노동자입니다. 그런 것들을 엮어서 연세대학교, 삼성전자, 동부구치소 등 정부, 기업, 학교에서 자본주의 인류학, 경제 인류학, 인문학 강의도 합니다. -저서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를 소개하면? 그간 기업 특히 삼성 같은 대기업은 언제나 주인공이 회사를 대표하는 그룹 총수, 임원과 CEO의 이야기, 성공스토리가 주를 이룹니다. 이 책에서는 전문학사로 삼성에서 35년 간 일한 부장이 주인공입니다. 부장의 시선에서 그려보는 책입니다. 인류학 연구자들은 주로 통계보다는 이야기, 자료보다 현장을 찾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 글을 씁니다. 인터뷰 대상자는 저와 삼성에서 함께 일을 했던 실제 인물인데요, 이분과 50여 시간 대화를 나누고 A4 용지로 500쪽이 넘는 녹취록을 정리해서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그 안에서 한 인간의 특별한 평범성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누구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까요. -책을 내게 된 동기 회사, 공동체, 국가 그 무엇이든지 사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간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강한 자의 몫이었습니다. 삼성전자의 회장은 딱 1명, 임원은 전체 임직원의 0.8%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직원 혹은 노동자로서 99.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삶은 잘 기록된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놀라운 압축적 성장에는 전시 동원 체제 속 수많은 피땀 눈물과 고된 희생이 있었죠. 그 궤적을 찾아 남기는 일이 한 개인에게도 조직에도 사회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무대와 장치가 지금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요. 결국에 저는 10년 단위로 커다란 변화를 겪으며 이뤄낸 기업과 국가의 발전에 필요조건이었던 ‘불가피한 정신 승리’에서 벗어나 서로를 존중하며 도달할 수 있는 미래를 열기를 바라며 책을 썼습니다. -책이 나오기까지 에피소드가 있다면? 책의 초고를 쓰고 나서 수정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한 인간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그 한계를 제시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자화상 또한 어떨 때의 나일뿐이니까요. 그것은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했던 분에게는 원고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 원칙이기도 한데요. 한국에서 한 인물을 다루다 보니 그와 관계를 생각해서 원고도 확인하고, 불편해할 내용은 삭제해서 우회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래도 글은 어색하지 않으니, 기대해 주세요! -책을 읽으실 분들께 팁이 있다면? 제목을 보고 반도체를 다뤄서 어려운가 싶으실 텐데, 반도체 기술적인 내용은 아주 조금만 나오고 반도체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삼성이라는 기업의 역사 흐름과도 만나는 점이 있으니 흥미 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이 요즘에 주목받고 있습니다. 문화인류학적 개념들을 각 꼭지 글마다 수록했고, 참고문헌도 적어놨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인류학자가 돼보시는 경험도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반도체를 사랑한 남자>가 갖는 의미 우리나라 기업들이 내부 최적화가 많다 보니 외부에서는 잘 알 수가 없죠. 그렇다 보니 인류학자들이 근대 초기에 원시 부족들을 연구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게 한국 사회의 기업들이 접할 수 없는 지역이 된 경향도 없지 않습니다. 부장의 시선, 부족하나마 인류학자의 이야기로 들어보시는 기업의 이야기는 새롭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만든 첫 책입니다. -앞으로의 계획 네, 저는 계속 기업, 산업 현장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할 것입니다. 기술과 조직, 인간이 함께 융합하고 갈등하면서 만드는 생생한 말들을 엮어서 콘텐츠를 만듭니다. 어떤 면에서 ‘숙련’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사람과 사회를 엮는 것을 ‘문화’라고 한다면 마음으로 존중하고 몸으로 성실하게 남겨서 기업의 문화인류학자로 걸어가려고 합니다. -독자들께 한 마디 언제나 하루를 아름답게 여시는 독자님들께 제 책과 삶을 나눌 수 있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아름다운 삶은 지, 덕, 체가 자기화 되어 분연히 움직일 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자기를 숙련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하여지시길 기원하고, 계시는 삶에서 읽으시는 분들 덕분에 진짜 아름다움이 피어나시리라 믿습니다. 프로필 -연세대학교 화학공학과, 경제학석사, 문화인류학 박사 졸업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연구원, 본사 인사과장 -박사학위 논문 [첨단IT기술의 출현과 금융노동: 딥러닝 및 블록체인 핀테크스타트업에 관한 에스노그라피] -법무부 교정위원: 인문학 강의 분야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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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4
  • 권지영 시인
    권지영 시인(사진=본인제공)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시를 쓰는 권지영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시와 동화, 그림책, 동시, 에세이 등을 써서 책으로 나왔어요.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 <누군가 두고 간 슬픔>, <붉은 재즈가 퍼지는 시간>, <푸른 잎 그늘>, <너에게 하고픈 말>, <달보드레한 맛이 입 안 가득>, <재주 많은 내 친구>, <방귀차가 달려간다>, <팔랑팔랑 코끼리>, <행복>,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너에게>, <전설의 달떡>, <노란 나비를 따라>, <하루15분 초등문해력> 등이 있습니다. -<팔랑팔랑 코끼리>를 소개하면? 청룡의 해의 첫 번째 책이자 이번 봄에 새로 나온 저의 네 번째 동시집입니다. -책을 내개 된 동기나 의미 이번 동시집은 투고를 통한 출간이 아닌 청탁받아 출간된 책이라 제겐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이전의 동시집은 순우리말로 기획해 쓴 동시집이었습니다. 벌써 3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책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참 오래 걸렸습니다. 다 써놓고도 투고하거나 출간 준비를 빨리 하지 못한 이유에서였어요. 5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다행히 품은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아서 기뻤습니다. 그 이후 일반 동시집으로 나온 책이니 정말 반갑고 뜻 깊은 동시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이 나오기까지 에피소드 저는 시를 쓰는 시인이어서 아동문학 출판사에서 책을 내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러 권의 어린이책들이 출간이 되었는데요. 그 발판이 바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린 <노란나비를 따라>라는 시 그림책 원고였어요.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 시집에 실리기도 했었던 시를 그림책 원고로 고치고 출판사에 투고를 했었지요. 출판사에서는 원고가 누락되어 열람 자체를 하지 못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 대표님을 뵙게 되어 시간이 지난 후 여쭤보게 되었어요. 다행히 지난 메일들에서 발견을 하셔서 계약을 하고 그 이후로 동화책과 그림책 등의 어린이책들을 내게 되었어요. 운이 좋아서이기도 하고 출판사랑 제 성향이랑 잘 맞았던 것 같기도 해요. 출판사에서 동시집 시리즈를 출간할 계획이라며 원고를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 동시집이 시리즈의 1번이 될 예정이라 하셨고 몇 권의 책과 함께 같이 출간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다른 책들이 먼저 나오게 되어 시리즈의 세 번째로 출간이 되었어요. 동시집 시장은 특히나 어린이 도서 분야에서 판매가 쉽지 않은 편이라 제 역할도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시와 동시에 대한 생각 저는 시를 오랫동안 쓰다가 아이들을 만난 이야기를 동시로 쓰게 되었습니다. 시와 동시의 간극은 크지만 본질은 삶에서 비롯되기에 맞닿는 부분도 많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대상에 따른 시선과 인식이 시와 동시에서 다를 때가 많기도 하지요. 어린이의 마음으로 더 다가가서 사유하고 바라보는 것이 동시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소개하고 싶은 동시 한 편 이번 동시에는 특히 아이들의 실제 입말을 많이 담았습니다. 그 중 한 편을 소개해드릴게요. 왠지 저는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다른 분들도 그리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바람 먹는 날 킥보드를 타고 차 없는 시골길을 쌩쌩 달리니 나무 냄새 햇빛 냄새 한꺼번에 달려온다. 배에서 가슴까지 시원한 바람이 빵빵하게 차오른다. 오늘은 바람 먹기 좋은 날! -앞으로의 계획 저는 글과 책으로 숨 쉬며 살아가고 있어요. 힘이 들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지금처럼 뚜벅뚜벅 문장 위에서 조심조심 견고히 걸어가고자 해요.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나부끼더라도 금방 끝나진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쓰는 시와 글들을 더 기본적으로 공부하며 다시 찬찬히 써나가고 싶어요. -독자들께 한 마디 독자님들께서도 오랜 기간 동안 현업에 종사하시며 역사를 쌓아오셨겠지요. 앞으로도 묵묵히 걸어 나가실 길에 저도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어떤 일을 하시든 다 잘 되시기를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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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4
  • 대구 북구지회 원동호 지회장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1983년에 미용을 시작하여 41년째 헤어 디자이너로서 현 대구시 북구에서 ‘헤어포레’를 운영하며 23년 간 학교강의를 통해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대구 북구 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원동호입니다. ‘항상 배움에는 끝이 없다.’라는 마인드로 자기개발에 게을리 하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와 새로운 제품들을 받아들여 많은 노하우를 공유하고 전달하는데 행복함을 느끼며 미용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대구 북구지회의 자랑 저희 대구 북구지회는 단결과 화합이 잘돼는 지회입니다. 회원님들이 모든 행사에 적극적입니다. 기술교류 세미나 때도 지회 사무실이 꽉 차도록 열정적이며, 해마다 진행하는 가을야유회 또한 80명 이상이 참석하여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화합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회장으로서 회원님들의 열정에 항상 감사를 느끼며 회원님들에게 좀 더 많은 공유와 혜택을 주고자 상임위원님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구 북구지회를 어떻게 이끌어 오고 있는지... 항상 열정적이시고 긍정적이신 임순남 사무국장님은 대구 최초 여성 사무국장으로서 모든 회원님들을 가족처럼 잘 살피시고 알뜰살뜰 살림을 잘 사셔서 다른 지회보다 부럽지 않는 살림을 이루었고, 다른 지회에서 항상 부러워 할 정도로 상임위원님들끼리 화합이 잘 되어 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지회라는 자부심은 화합된 상임위원님과 사무국장님께 감사함을 돌리고 싶습니다. 매달 요양원 봉사를 진행하고 있고, 병원과 연계하여 예방접종, 건강검진 등 할인혜택을 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아트교실도 열어 헤어 악세사리 만들기도 하고 있으며, 월 8회 줌바, 나인댄스 교실을 열어 건강과 화합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평소의 미용철학은? ‘항상 처음처럼’, ‘항상 깨어있는 미용인’, ‘고객님의 머리를 내 머리라고 생각하고 작업에 임해라’ 등입니다. 풀어 얘기하자면, 처음 디자이너가 되어 첫 고객을 맞아 설렜던 그 마음을 항상 생각하면서 초심으로 하자. 고객은 0.5mm에도 민감하다. 항상 내 머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소중하게 아껴야 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미용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초심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항상 처음처럼, 인연을 소중히 여겼으면 합니다. 미용을 시작하면서 혼자서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지금 우리 미용 산업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나고 있습니다. 훌륭한 선배님들의 많은 노고 덕분에 우리 미용인은 사회적인 위치나 기술면에서 세계에서 뒤지지 않는 기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나의 성장과정에서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나에게는 누가 있었는가를 되새김하는 생각을 한번 씩 해보았음 합니다. 많은 인연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미용 산업발전을 위하고 후배들에게 아름다운 미용문화를 물려 주기위해서는 개인의 욕심은 버리고 한마음 한뜻으로 미용인 전체가 하나 되어 아름다운 미용 산업발전에 함께 할 수 있는 미용인이 되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미용을 하시면서 즐거웠던 일, 흐뭇했던 일이 있었다면? 여러 봉사를 많이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200명의 어르신 장수사진 봉사와 각 구에 요청하여 다문화부부나 어려워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를 모집하여 19쌍의 무료 합동결혼식 봉사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지회장으로서는 코로나가 시작되어 모두가 두려워 할 때 각 회원업소의 신청을 받아서 소독을 해드렸을 때 협회에 감사함을 표현하는 회원님들에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23년째 학교 강의를 하면서 후배들이 훌륭하게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학생들에게 연락을 취하며 조언과 격려를 줄 수 있다는 게 제가 정말 미용하기를 잘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장, 단기 계획은? 지금 한 지회의 지회장으로서 남은 임기를 생각하면서 회원들에게 많은 도움과 어떤 혜택을 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술공유를 위해 매 기수를 모집, 아카데미를 신설하여 많은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계획 중입니다. 유명강사를 초청하여 빠른 트렌드 세미나를 계획 중이며 남은 임기 동안 비회원들에게 많은 홍보와 교류를 통해 정회원 70% 목표로 최선을 다 할 예정입니다. 격려해주시고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미용학석사 -헤어포레 운영 -대구보건대학교 겸임교원 역임 -대경대학교 겸임교원 역임 -K.B.F 한국미용 페스티벌 심사위원 역임 -대전광역시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역임 -사)대한미용사회 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감사 역임 -사)대한미용사회 중앙회 미용기술위원회 감사 역임 -사)서울특별시장배 미용경기대회 심사위원장 역임 -사)대한미용사회 대구광역시 북구지회장 -사)대한미용사회 중앙회 대구광역시 협의회장 역임 -경일대학교 특임교수 역임 -계명문화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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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4-04-24
  • 김경란 CMC-CAT 회장
    한 집안의 대통령상 두 개 -김경란 회장 어머니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세 분이 모두 미용을 하셨지요 하지만, 미용은 힘든 직업 어머니와는 다른 미용을 위해 불철주야 공부했지요 세상은 노력하는 자를 버리지 않네 울산 1호 미용예술학 박사 울산 1호 명장 선정 울산 1호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 여기에 더하여 대한미용사회 울산협의회장 및 동구지회장 CMC-CAT 세계미용예술연합회 한국회장 찬란하여라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네 피는 속이지 못하는 법 두 딸도 어머니의 뒤를 이어 미용을 하고 대통령 훈장까지 받았네 3대가 함께하는 미용인의 삶 한 집안에 대통령상이 두 개 부러울 것이 없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네 미용인의 권익향상 이미지 부각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달려간다네 3대 미용인 미용인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고 직업적으로도 평균 이상의 수익을 올리면서 미용인은 우리 사회에서 꽤 괜찮은 직업군으로 분류된 지 오래됐습니다. 여러 가지 지표가 이를 방증하지만 우리 미용계에 2세 미용인이 많다는 것은 이것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표식이 될 것입니다. 성공한 미용인 치고 한 두 자녀가 대를 이어 미용을 하지 않는 미용인 집안은 드뭅니다. 앞의 시(詩)에서도 언급했듯이 김경란 회장은 미용인 집안 출신입니다. 어머니, 큰어머니, 작은어머니께서 미용을 하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힘든 삶을 몸소 느끼면서 자랐습니다. 따라서 미용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피는 속일 수가 없었나 봅니다. 결국은 미용을 택했고, 대신 어머니와 다른 미용 길을 걷고자 노력에 노력을 경주했습니다.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습니다. 김경란 회장의 노력은 결실을 맺기 시작해 2014년에 울산1호 미용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고, 2015년엔 전국 최연소 지역 명장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21년에는 울산1호 미용 산업현장교수로 선정되는 등 산업도시이자 공업도시인 울산에서 미용을 알리고 뿌리내리는 일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김경란 회장은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2022년엔 대통령 표창까지 받는 경사를 맞습니다. 뒤에서도 다시 언급하겠지만 둘째 따님까지 대통령상을 받았으니 한 집안에 대통령상을 2개나 보유한 미용 집안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지만 미용계로서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경란 회장을 생각하면 유명 텔레비전 MC 못지않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미용계에는 3대 유명 사회자가 있습니다. 신한대학교 김민정 교수, 청암대학교 이수희 교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김경란 회장 이렇게 세 분입니다. 이 세 분은 각자의 개성을 바탕으로 우리 미용계 행사에서 탁월한 실력을 자랑합니다. 세 분은 우리 미용계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소중한 자산이라고 기자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몸이 모자랄 만큼의 역할 김경란 회장은 한 자리에서 미용실을 23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용실 운영과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올해는 14년간 강의했던 영산대학교 강의를 접고 집 근처의 울산과학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미용실 원장님을 대상으로 기술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에 대한 열망이 대단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대한미용사회 울산협의회장 및 울산 동구지회장을 맡고 있으며, 울산광역시에서 선정한 울산광역시 명장님들의 모임인 울산광역시 명장회 회장을 2대 째 연임 중입니다. 울산에서 두 단체의 회장을 맡아 숙련기술인들의 지위향상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기술교육이 필요한 후배들을 만나 특강을 하는 등 후학양성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CMC-CAT(세계미용예술연합회)의 회장 직까지 맡고 있으니 몸이 서너 개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CMC-CAT(세계미용예술연합회)는 87년의 역사를 가진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미용단체입니다. 한국회장을 맡아 이어가며 언어의 벽이나 거리의 어려움들이 있어 힘이 들긴 하지만 미용계의 산 증인들과 함께하는 단체라는 뿌듯함과 의미를 기억하며 단합된 모습으로 서로에게 시너지를 불어 넣을 수 있는 단체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열정에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따님과 함께하는 행복 김경란 회장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따님을 두고 있습니다. 두 따님은 엄마의 뒤를 이어 자랑스런 미용인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2학년 때 미용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한 두 딸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두 자녀는 대학생활 동안 전체 장학생을 유지하며, 큰 자녀는 미용고등학교 교사로 현재 재직 중에 있고 둘째 자녀는 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헤어디자인직종 국가대표로 세계대회 출전해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오는 감사하고 대견스러운 일을 해냈어요. 자식자랑은 밤을 새며 이야기해도 다 못할 것 같습니다. 자녀까지 3대째 미용을 천직으로 알고 살다 보니 가족 간에 대화가 많아지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일들이 생기다 보니 더 행복한 날을 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정다운 국가대표는 한국산업인력공단 홍보대사로 선정되어 각종 방송 프로그램 출연과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해 미용인들의 이미지 쇄신 등 삶의 가치를 올리는 일에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녀가 같이 미용을 하며 25살의 나이에 국가대표, 미용기능장, 이용기능장, 살롱실무 능력까지 겸비한 자녀로 성장하고 있다 보니 아바타라고 해야 할까요? 힘든 일도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하고 이래서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행복한 미용가족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미용인으로서 미용계 전체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으니 미용계의 보석이라고 여길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용인의 권익향상을 위해 최선 이처럼 행복한 미용 생활을 영위 중인 김경란 회장은 미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미용을 시작하며 명예로운 미용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에 열심히 공부하며 후학양성을 위한 노력에 더 많은 열정을 쏟았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미용인의 이미지 쇄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미용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더 올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미용인들이 하기 힘든 많은 다양한 활동을 해 왔습니다. 예를 들면 정치출마, 대출심사, 자격시험 심사, 학교 운영위원장, 민주평통자문위원회 울산여성위원장, 체육회 이사, 기능경기대회 지도교사, 회계멘토, 컨설턴트, 미용대회 MC 등이 다 이런 것과 관계가 깊습니다.” 한 사람의 생각의 깊이에 따라 그 조직의 앞날이 좌우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조직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미용계가 김경란 회장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김경란 회장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기자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현재의 삶에 너무 만족하며 감사합니다. 앞으로 계획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제자들, 후배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들과 미용인들의 권익향상을 위한 노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제나 미래는 현재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현재에 만족하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미래의 삶 또한 미소가 가득한 일만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계발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고, 미용계의 한 사람으로서 미용인의 사회적 권익 신장 및 이미지 쇄신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김경란 회장이 있기에 우리 미용인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하며 기자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김경란 회장은 우리 잡지에도 지난 2018년부터 매달 빠짐없이 연재를 하고 계시니 우리 뷰티라이프 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우리 모든 뷰티라이프 식구들 사랑합니다. 프로필 -2022년 대통령 표창 「직업능력의 달」 -2021년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 선정 (울산1호) -2021년 백년가게 선정 -2017년 대한민국 우수숙련기술자 선정 -2015년 울산광역시 명장 선정 (울산1호) -2014년 미용예술학박사 (울산1호) -울산광역시 명장회 회장 -사)한국미용장협회 중앙회 이사 역임 -사)대한미용사회 울산협의회장 및 동구지회장 -CMC- CAT 세계미용예술연합회 한국회장 -한국표준협회 회계멘토 -방어진중학교 운영위원장 역임 -국제기능올림픽 은메달 부지도위원 -기능경기대회 지도교사 -영산대학교, 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울산과학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의 중 -아모담 by 김경란 박사 대표 -미용기능장, 이용기능장 -지방기능경기대회 2년 연속 금메달 -전국기능경기대회 우수상
    • 문화
    • 인터뷰
    2024-04-24
  • 4인 4색 나눔 강연을 통해 시각장애인에게 사랑의 후원금 전달
    복지의 사각 지대의 있는 1인가구 시각장애인에게 따뜻한 마음이 전달 될 수 있도록 4인의 강사들이 강사비와 후원금을 모아 남양주시사회복지관 북부희망케어센터에 기부 하였다.
    • 문화
    • 인터뷰
    2024-04-19
  • 아낌없이 주는 김정숙 박사
    평생의 업, 미용교수 -김정숙 교수 환하게만 웃는 게 인생인 줄 알았어요 미용인 줄 알았어요 미용인생 머리에서 발끝까지 아름다운 것 모두 다 주었지요 준다는 것, 행복의 다른 말이라는 것 깊이깊이 느끼며 살고 있어요 제자들의 성장이 미용인들과의 관계가 삶의 보람이며 생의 기쁨이 된 지금 미용 교수의 추억이 예술학 박사의 혼이 마음을 젊게 해요 봄날의 햇볕 같이 보드라워요 미용교수가 평생의 업이었음을 오늘도 반추하며 살아요 미용계의 전통은 정과 의리, 동지의식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뷰티산업학에서 이번 8월 말 정년퇴임을 하는 1기 졸업생 김정숙 교수(유원대)의 특별한 정년퇴임 기념식이 지난 8월 24일에 열렸다. 지난 8월 24일에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뷰티산업학에서 특별한 정년퇴임 기념식을 진행하였다. 이번 8월 말 정년퇴임을 맞이하는 김정숙 교수(유원대)의 정년퇴임 기념식이었다. 이날 정년퇴임 기념식은 김정숙 교수의 동기 및 후배들의 자발적 따뜻한 마음으로 “행복을 주는 사람들” 주제로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김정숙 교수의 지도교수 윤천성 교수(서울벤처대학원대)와 대학원 동기, 후배, 유원대학교 제자 외 김정숙 교수의 가족들도 함께 참석하여 감동을 함께 나누었다. 또한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동기 및 후배와 유원대학교 제자들의 감사 기념 글을 담아 정년퇴임 영상과 기념집을 제작하여 전달하며 특별한 정년퇴임 기념식을 마무리했다. 기자가 장황하게 지난 잡지를 뒤적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은 우리 미용인의 상징이랄 수 있는 정과 의리, 동지의식을 잘 나타내주는 기사가 떠올랐고, 그 기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미용계는 아직도 정과 의리, 동지의식이 살아있는 사회입니다. 갈수록 그런 의식이 약해지고 있음이 안타깝지만 그건 세월의 흐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다른 사회에 비해 우리 미용계가 훨씬 천천히 변하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앞서 말한 미용인(계)의 특징을 지금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에서도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는 으뜸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년회 및 신입생 환영회, 졸업식 및 송년파티, 각종 학술 세미나 등등에서 보여주는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의 모습은 기자에게 좋은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미소가 잘 어울리는 김정숙 교수 김정숙 교수를 기자가 처음 만나 것도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의 행사 때였습니다. 윤천성 교수의 소개로 만났는데, 소녀적인 모습과 사람을 밝게 하는 미소가 참 잘 어울리는 교수였다. 아름다운 미소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정숙 교수는 그런 미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그 후로 우리는 자주 행사에서 만났고 여전한 미소로 기자의 마음을 환하게 했다. 김정숙 교수는 현재 앞서 게시한 기사처럼 정년퇴직을 했다. 그야말로 자신의 능력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지금은 평온한 삶을 바쁘게(?) 살고 있다. 김정숙 교수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두어 가지 있습니다. 미용계의 첫 직장인 (주)아모레 퍼시픽 시절의 이야기이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신제품 교육을 하게 되었는데, 대강당에 모인 직원들이 모두 비스듬히 누워 발을 의자에 올려놓은 상태였습니다. 얼굴은 아니 보이고 발만 보이더랍니다. “김정숙입니다. 안녕하셨습니까, 발바닥 선생님들!” 당황하지 않고 위트 있게 상황을 잘 정리한 덕에 첫 강의는 우레와 같은 웃음으로 시작되었고, 그 덕에 인력개발부, 마케팅부, 미용책 교안의 편집을 주관하는 교육자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하나의 에피소드입니다 . 두 번째 에피소드는 대학에서의 첫 수업 시, “나, 교수는 지도해야 할 (을)입니다. 여러분은 학생으로서 수업을 받아야 할 (갑)입니다. 나는 온전히 지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온전히 수업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네~”하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우렁찬 열정의 강의 소리가 복도를 울립니다.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 계단에 발이 걸려 넘어지려는 순간, “그래 계단에 오를 기운도 없이 다줬군. 잘했어.” 이럴 때, 김정숙 교수는 가슴을 토닥거리며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교육자만이 느낄 수 있는 보람이며 기쁨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한 사람의 참된 교육자는 많은 사람의 인생길을 개척하고 바꾸어줍니다. 가르치며 느끼는 보람 김정숙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교수로서의 보람을 진정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놓칠 수 없는 것이 봉사 정신 함양입니다. 학생들은 매월 1회 양노원이나 장애인 복지센터 등 정기적인 봉사를 시행하여 마음과 정성으로 보살펴주며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봉사 정신을 일깨워주고 자신의 희생이 기쁨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체험케 합니다. 어눌하게 접하는 학생들의 행동이 어느 새 할머님 할아버님에게 스스로 준비해온 사탕을 입어 넣어주고, 간지럽게 해주며 깔깔 웃는 모습으로 행복 나누는 모습을 볼 때면 ‘참으로 인간의 심성은 한없이 곱고 깊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봉사에 충실할 것을 스스로 다짐합니다. 평생교육 과정과 뷰티 건강 프로그램을 실시할 때면 3시간 내내 가장 밝고 맑은 웃음가득 시간을 보냅니다. 스스로 밝은 표정이 아름다움이란 사실을 찾게 되는 수업이지요. 중요한 것은 표정만 웃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웃고 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수업하는 교육자로서 받아오는 행복이 더 크다는 생각에 참으로 감사함을 느낍니다.” 이런 교육자에게 누가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고운 심성과 교육자의 마인드를 가졌기에 우리는 김정숙 교수를 성공한 교육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치에 맞게 행동하는 미용인 강조 김정숙 교수는 또 말합니다. “미용이란 단어의 개념부터 살펴보면 ‘얼굴과 머리를 아름답게 꾸미다.’입니다. 아름다움이 외모만 꾸민다고 진정 아름다워 질 수 있을까요? 표정과 건강 수업을 하면서 배운 교훈은 웃으니 행복하고 행복하니 아름다워 진다는 사실을 교육생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아름다운 생각으로 아름다운 표정을 지으니 아름다운 단어가 나오고 어느 새 아름다워진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며 신기한 듯 행복해 합니다.” 미용인으로서의 당부도 잊지 않습니다. “미용인으로서 소망입니다. 노자는 ‘사람은 개나 닭을 잊어버리면 찾아 나서면서도 잃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찾지 않는다.’고 한탄을 했는데, 잃어버린 자기 자신조차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미용인의 정신을 알 수 있겠습니까? ‘너 자신을 알라.’ 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미용인들이 나 자신을 알고 있냐고 스스로 한번 반문 해 봅시다. 핵심은 철학이 있는 Philosophy & Doctor 정신입니다. 미용인은 스스로 Philo(사랑) sophy(지혜) & Doctor(도움)임을 아셔야합니다. 미용을 하는 사람은 아름다움이란 사랑이 있고 지혜가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 의무를 부여 받은 미용인임을 아셔한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곧 자신의 발견이고 가치에 행동하는 미용인의 시작입니다. ‘가치에 맞게 행동하는 미용인’으로서 우리는 뷰티산업과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며 살아야 한다는 사명을 부여 받은 것을 아셔야 합니다.” 미용교수로서 미용과 미용인에 대한 오랜 성찰이 이런 애정 어린 조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자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조언은 기자를 포함한 모든 미용인에게 살아 있는 지침이 될 것입니다. 우리 미용계에는 많은 교수들이 계십니다. 미용계 교수들은 나름대로의 학문적 업적을 바탕으로 미용계 발전의 시금석이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교수 중 김정숙 교수는 아름다운 마음씨와 미용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미용계 제자들의 양성에 힘썼습니다. 사람들을 밝게 만드는 미소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런 힘이 지금 우리 미용계 곳곳에 뿌려져 우리 미용계가 더욱 밝아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프로필 -아모레퍼시픽 인력개발원 마케팅부 미용시책 담당 -유원대학교 뷰티케어학과 부교수 정년 퇴임 -서울벤처뷰티산업박사클럽(SBDC) 1기 회장 -현 유원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현 한국뷰티산업학회 부회장
    • 문화
    • 인터뷰
    2024-03-26

실시간 인터뷰 기사

  • 요란하지 않게 내실을 다진다
    미용인보(美容人譜)46 이숙희 전 지회장 조용하게 조용하게 -이숙희 前 회장 단체장으로서 미용인은 표시나지 않게 일해야 하지 미용인은 내면적 미와 외적 아름다움을 가꾸는 직업 단체장은 이런 미용사를 위하는 사람 티 나지 않게 조용하게 일해야 하지 경기북부에서 이런 일을 실천한 미용인 겸손하게 소리 나지 않게 많은 일을 하고 이제 후배들의 뒤에서 모범이 되는 언행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참 미용인 한 사람 자랑스럽게 서 있네 묵묵하게 자기 삶을 개척하는 미용인 우리 곁을 조용히 반추해보면 참으로 많은,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자기영역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다양하기도 하고 자기만의 특색을 지니고 있기에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삶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기도 합니다. 더구나 미용계는 생활의 진폭이 크기 때문에 화려함이 특히 부각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기자는 내실 있는 삶을 살고 있는 분을 존경합니다. 말로만 화려하기보다는 묵묵하게 자기 삶을 개척해나가는 그런 분이 특히 미용계의 크고 작은 단체의 장을 맡아서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미용인으로 시작해 파주시지부장과 경기북부지회장을 3번 역임했던 이숙희 전 지회장(이하 지회장으로 통칭)은 기자가 존경하는 미용인 중 한 분이라고 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숙희 지회장은 어떤 모임이나 행사장에서 결코 나서는 법이 없습니다. 보일 듯 보이지 않게 자기 일만 하는 성격입니다. 온화한 얼굴로 가끔씩 미소만 띌 뿐입니다. 기자와 행사장에서 만나도 호들갑스럽게 아는 체를 하지 않습니다. 목례를 하고 신뢰가 가는 눈빛만 보낼 뿐입니다. 그럴 때마다 기자는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파주시지부장, 경기북부지회장 역임 이숙희 지회장은 파주시지부장을 연임하며 임기 6년을 채웠습니다. 파주시지부장으로 역임할 당시 수익사업을 통하여 지부 사무실을 이전하였으며, 결국에는 교육장까지 갖춘 넓은 사무실로 이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재정적으로 열악했던 파주시지부가 탄탄한 지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파주시지부를 성공적으로 이끈 공을 바탕 삼아 경기북부지회장에 내리 3선을 하였습니다. 경기북부지회장 시절에도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지회 사무실을 확장 이전하였음을 물론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경기도청을 수시로 방문, 보건복지위원들과의 미팅을 통하여 경기도지사배를 격년제로 경기도와 치르도록 했으며, 뷰티아카데미 예산을 배정받아 경기북부 미용인들이 수준 높은 미용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크거나 작거나 어떤 단체의 장은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기자는 생각합니다. 단체의 장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회원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니 만큼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이숙희 지회장이 지부장과 지회장을 역임하면서 보인 행보는 미용계에서 귀감이 될 일이었습니다. 40년 가까이 파주에서 미용실 운영 이처럼 미용계에서 귀감을 보이고 있는 이숙희 지회장은 어떻게 미용인이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천에서 외사촌 언니가 미용실을 운영했는데, 놀러갈 때마다 부러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나도 언니처럼 사람을 예쁘게 만들어주는 미용을 해야지.’ 결심을 하고 미용학원에 등록했어요. 그 미용학원을 다니며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1982년도에 미용실을 오픈하게 되었어요. 미용실을 오픈하여 운영하다가 1984년도에 남편 직장으로 인해 고향인 파주 광탄으로 이전하여 현재까지 에덴헤어이즈를 운영하고 있지요.” 40년 가까이 파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으니 그 뚝심도 알아볼 만합니다. 앞의 시(詩)에서도 말했지만 이숙희 지회장은 지회장 직을 그만두고 지금은 조용하게 미용실을 운영하며 뒤에서 묵묵하게 후배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지부, 지회장 일에 매진하느라 소홀했던 가정에 충실하며 친구들과 종종 여행을 하며 삶을 즐기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틈틈이 헤어아트 작품으로 매화, 해바라기 등을 창작하며 배움의 열정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근면함의 표본 이숙희 지회장은 부지런하기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삶 자체가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고, 그런 생각이 지회 일을 하면서도 약고추장, 약된장을 손수 만들어 식구들을 챙겼습니다. 지금은 지회 일을 그만두었지만 미용을 생각하는 마음만은 여전합니다. “현재 미용사회가 너무 시끄러운 것에 많은 미용인들이 실망하고 있어요. 후배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아야 협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위생교육 개정안 발의로 너무나 혼란을 일으키는데 참으로 안타까워요. 최영희 의원님께서 미용인을 위한 법을 추진하는데 우리가 서로 힘을 합쳐서 미용법 현안도 잘 처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부, 지회 회장을 3선 역임한 회장답게 미용계 앞날과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미용계를 위해 모든 미용인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영희 의원이 공동발의한 미용사법의 제정을 위해 전국의 미용인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한다고 몇 번을 강조합니다. 지부, 지회에서 미용인들을 위해 일한 열정이 지금까지 새록새록 솟아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소녀 같던 얼굴에 미용인들의 단합을 말할 때는 어떤 결기까지 느껴집니다. 이런 미용을 향한 애정과 자긍심이 오늘의 이숙희 지회장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미용인들이 똘똘 뭉쳐야 한다 “저의 남은 인생은 최고의 미용인으로 저를 만들어준 지역 손님들께 베풀며 살고 싶어요. 고객들은 오늘날의 저를 만들어준 제일 고마운 분들이지요. 더불어 전국의 미용인들이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을 꼭 전하고 싶어요. 그런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전국의 미용인들이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더욱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안위보다는 미용인들의 삶의 질을 우선하는 이숙희 지회장의 말씀에서 역시 미용인을 위하는 지도자다운 풍모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부, 지회장을 역임하면서는 지부, 지회의 살림을 윤택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묵묵하게 미용인의 권익신장을 위해 응원을 아끼지 않는 이숙희 지회장, 이런 미용인이 지금 우리 시대의 진정한 미용인이 아닐까 하고 기자는 생각해봅니다. 이숙희 지회장 프로필 *2010년 고등학교 졸업 *숙대 미용산업경영최고지도자과정 8기 졸업 *피봇포인트 전 과정 졸업 *2006년 ~ 2012년까지 파주시지부장 역임. *2013년 ~ 2022년 2월까지 경기북부지회장 역임 *2014년 ~ 2020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역임 *현재 에덴헤어이즈 대표
    • 문화
    • 인터뷰
    2023-01-25
  • "진정한 아름다움은 두피 건강에서 시작한다"
    미용인보(美容人譜)45 정수옥 대표 예얼을 알리는 건강 전도사 -정수옥 대표 아름다움 이전에 건강이 중요하다며 ‘예얼’을 만든 사람 모든 질병은 얼굴에서 시작한다며 예쁜 얼굴을 강조하는 사람 예얼은 헤어스타일과 두피의 건강에서 비롯되어진다네 그리하여 두피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고 예얼 3.3.3 운동법을 만들어 최고의 행복을 선사하는 사람 아름다움, 건강, 몸의 매력, 다 갖춰주네 진정한 행복을 주네 미래 미용의 시작점을 알리네 미용인과 건강은 불가분의 관계 우리 미용인과 건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오랜 동안 어깨를 써서 일하는 탓에 오십견에 걸리기도 하고, 염색약, 퍼머약의 부작용으로 손에 물집이 생겨 미용을 그만두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트레스로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미용인도 많다. 일종의 직업병이라 할 만한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용인은 건강에 관한한 여타 직업군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일반인이라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현대인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공해로 건강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정수옥헤어 & 예얼두피>를 이끌어가고 있는 정수옥 대표는 특별한 미용인 중 한 명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후에도 손재주가 워낙 좋고, 어린 시절부터 미용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1983년부터 미용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 대 초 미용실 사업이 잘돼 규모가 커지면서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조여 왔고, 깨질 것 같은 통증과 지속적인 두피 가려움증, 우측 후두부 및 좌측 어깨 마비로 고통 받았습니다. 이때 스스로 건강관리를 해야겠다고 깨닫게 되어 대체의학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두피 건강관리 ‘예얼’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예얼로 저의 건강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머리를 예쁘고 시원하게 만들어주어 스트레스 해소를 통한 행복감을 주고, 활기차고 자신감 가득한 인생 본연의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예얼을 만든 주인공 ‘예얼’은 ‘예쁜얼굴’의 준말이기도 하고 ‘밝은(叡) 얼’을 뜻하기도 한다. 머리 스타일로 아름다움을 선사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도 동시에 빛나게 해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수옥 대표를 찾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머리하러 오셨다가 두피관리까지 하신 신장투석 환자 분의 얼굴 혈색이 환해지고, 피부관리실만을 다니시던 분이 우리 미용실을 방문하셔서는 부족한 부분이 채워진 것 같다고 좋아하십니다. 또한 어깨가 항상 아프다가 예얼을 만나고 미용을 더 즐겁게 하시는 미용인들도 많으십니다. 본인이 경험해 보고 너무 좋아서 주위 분들께 예얼홈케어 하셨냐고 전화하면서 알려주시는 고객까지 계십니다. 이렇게 예얼을 통해서 더 행복해진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힘들었다가도 번쩍번쩍 힘이 납니다.” 이만하면 미용인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미용인이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정수옥 대표의 피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일. 심도 높은 연구와 공부를 통해 실력 키워 기자가 상도동에 있는 정수옥 대표의 숍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병원 못지않은 사전 상담과 신체 리듬을 체크하는 등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개개인의 차트를 작성하고 시술하는 모습은 우선 고객에게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심도 높은 연구와 공부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실력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때 기자는 두피 시술을 받고 이렇게 좋은 정보를 우리 모든 미용인들에게 전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정수옥 대표에게 말했다. 정수옥 대표는 선뜻 수락했지만 오늘날까지 기자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사회적인 영향 때문이었다고 핑계대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과학적인 접근으로 미용인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정수옥 대표의 일상은 어떠할까? “요즘엔 예얼을 통한 미용과 관리 그리고 미용인들을 위주로 아름다움 및 건강 관리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꼭 미용실에 가서 관리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직접 홈케어를 통해서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예얼 홈케어 관리 교육’도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덕분에 더 바빠지긴 했지만, 많은 분들이 손쉬운 방법으로 아름다움과 건강을 선물 받을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습니다. 고객님들 요청으로 홈케어 제품을 더 좋은 구성으로 드릴 수 있도록 라이브 커머스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맞춤 서비스에 다름 아니다. 미용인은 전문가라는 인식을 고객들께 실력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 내, 외적으로 왕성한 활동 정수옥 대표는 이와 함께 얼마 전에는 ‘제 4회 세계장애여성대회’에서 부회장을 맡아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는데 일조했다. 또한 국내 및 세계 76개국에서 글로벌 리더쉽 경영 마인드 성장을 목표로 하는 BNI라는 단체에, 미용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 들어가, BNI의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예얼을 알리고 있다. 대 내, 외적으로 왕성한 활동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수옥 대표는 미용의 앞날에 대한 제언도 잊지 않고 조언한다. “미용인은 헤어스타일 기술의 연구 및 습득도 중요하지만, 헤어스타일의 아름다움과 건강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얼굴의 노화는 두피에서부터 시작하고, 중력으로 인해 얼굴 노화의 70%가 두피에서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예얼의 두피균형 관리를 이용하면 리프팅, 주름 개선, 얼굴 붓기, 두피열 감소 등의 효과로 얼굴이 더 아름다워집니다. 헤어스타일에 예얼 관리 방법을 미용에 접목해서, 헤어스타일의 아름다움과 건강한 얼굴의 미, 건강한 몸의 매력을 더해준다면 그게 바로 미래 지향적인 미용이 아닐까요?” 그렇다. 미용은 변해야 하고 공부해야 살아남는다. 미용은 미래 지향적인 직업이기에 더욱 그렇다. “예전에 미용 사업이 잘 나가던 때에 제 몸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아팠던 경험을 토대로 지금은 본인의 몸을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습니다. 또 그걸 효과적으로 손쉽게 이루기 위한 저만의 방법을 찾았고, 그 방법을 많은 분들께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어떠한 성공도 건강 위에 설 수는 없습니다. 두상균형 기술을 통해 본인 건강관리를 스스로, 맞춤형으로 해 면역력까지 높여주는 예얼 3.3.3 운동법의 노하우를 모든 분들께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예얼 기술 특허를 받는 것, 2023년 스페인에서 열리는 BNI 글로벌 켄벤션 행사에 참여해 예얼을 세계시장에 알리는 것, 해외 관광객들의 한국 필수 방문 코스로 예얼을 다녀가도록 하는 것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정수옥 대표. 회원제로 진행 중인 홈케어 교육을 확장시켜 많은 사람들에게 두피 관리의 중요성과 손쉬운 두피 건강 관리인 예얼을 알리고 있는 정수옥 대표. 3분, 하루 3번, 3개월 동안 120번 빗질하는 자극 운동, 예얼 3,3,3 운동으로 스트레스 해소, 두통 완화, 눈 피로 완화, 아름다운 얼굴, 탈모 예방 및 개선의 효과를 경험해 보기를 바라는 정수옥 대표. 정수옥 대표의 이런 모든 바람이 이루어져 우리나라 미용인들은 물론 모든 국민들까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정수옥 대표 프로필 現: 예얼뷰티아카데미 원장 現: 정수옥헤어(1984~) & 예얼두피(1994~) 원장 現: 예얼뷰티 코리아 대표 現: 경기대 대체의학 대학원 대체의학과 박사수료 (논문 진행 중) 경기대 대체의학 대학원 식품치료 졸업 원광대 건강관리사 수료 세계사이버대 피부미용 졸업 초당대 사회복지학 졸업 숙대 헤어스케치 교사과정 수료 1급 트리콜로지스트 기술강사 TV 헤어 두피강사 한국경제 TV 세발자전거 출연 일본 야마노 미용대학, 미국 폴미첼 커트, 미국 피봇포인트 커트, 토니앤가이 커트 수료
    • 문화
    • 인터뷰
    2022-12-27
  • 미래에도 메이크업은 인간이 해야 할 분야
    미용인보(美容人譜)44 한국메이크업미용사회 금지선 회장 환하게 오는 사람 -금지선 회장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인물과 능력이 자리를 만들기도 하네 오직 그림그리기가 좋아서 잡지와 패션화보를 보면서 그 흥에 취했네 색(色)은 인생의 완성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카타르시스 얼굴은 마음의 도화지 나를 채우듯 도화지를 가득 채우네 오라, 세상의 파고가 쉬임 없이 변할지라도 내 손끝의 예술은 영원할지어니 산업현장에서 학교에서 영혼을 불태우고 있을지니 환한 모습으로 그대 맞을 우리 여기 있네 짧은 세월이지만 깊은 신뢰감 금지선 회장과 기자와의 만남의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만남의 세월이 길지 않다고 해서 인간적인 신뢰나 정이 두텁지 않은 것이 아니다. 신뢰나 믿음은 세월과 정비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긴 세월을 두고 교류를 하는 것만큼 더 이상 좋은 일은 없겠지만, 세월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값싼 우정이 얼마나 많던가. 어떻든 금지선 회장을 기자가 처음 만난 것은 금지선 회장이 한국메이크업미용사회 회장에 당선되고 기자회견을 통해서였다. 금지선 회장은 지난 2021년 10월 20일 개최된 한국메이크업미용사회 임시총회에서 회장으로 당선됐다. 당시의 보궐선거는 2021년 2월 25일 한국메이크업미용사회 정기총회에서 제 3대 회장으로 재 선임된 오세희 회장이 8월 31일자로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에 당선됨에 따라 겸직이 불가능하여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게 된 것이다. 회장 당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을지로에 있는 한 호텔에서 당선 기자회견을 할 때 금지선 회장을 처음 만날 수 있었다. 금지선 회장을 처음 만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미용인들 중에는 보통 미인들이 많지만 금지선 회장은 앳된 얼굴에 보통의 미인이 아니었다. 기자가 더 놀란 것은 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대한 자부심 기자 회견장에서 보이는 금지선 회장의 면면에서 전문가의 포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메이크업과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다. 신선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당시 협회장으로서 장, 단기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금지선 회장은 “저희 업종은 특히 시니어세대의 일자리 부분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메이크업 1세대에 해당하는 선배님들과전공자 학생들 또는 신규 뷰티샵 창업자들과의 멘토링을 통해 교류하고 노하우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후배 아티스트로부터 새로운 트렌드를 배울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메이크업아티스트라면 K-뷰티의 붐에 모두 일조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개인이 아니라 협회가 글로벌한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하여 일시적 붐이 아닌 K-뷰티의 새로운 도약을 하려고 합니다.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당시의 모습이 생생해서 기자가 가지고 있던 그때의 취재 노트를 다시 꺼내본 것이다. 여러 모로 기억에 남는 기자회견이었으며, 새로운 회장이 한국메이크업미용사회를 잘 이끌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기자회견 후 기자는 금지선 회장을 따로 만나서 몇 가지 제안을 하기도 했다. 취임식 후 우리는 또다시 만났다.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이 되신 오세희 전 회장이 자리를 마련했다. 새롭게 당선된 금지선 회장을 도와달라는 의미의 만남으로, 오세희 회장이 금지선 회장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미용인들의 사랑과 배려를 잘 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몇 번의 즐거운 만남을 이어갔고, 그때마다 겸손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금지선 회장의 품성을 더 깊이 알아갔다. 어릴 때부터 그림그리기 좋아해 금지선 회장은 어떻게 미용계에 입문하게 되었을까? “저는 어릴 때부터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미용이라고 하면 헤어를 먼저 떠올리는 정도였는데, 메이크업 분야가 상당히 다양하고 잡지나 패션화보 등의 메이크업 작업들을 보면서 얼굴에 색을 표현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메이크업 쪽으로 전향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 다양한 메이크업 분야를 경험하며 샵 운영과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특히 메이크업 분야는 타고난 재능과 노력만이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자기의 재능을 알고 재능 계발을 위해 노력한 결과가 오늘의 금지선 회장을 만든 것이다. 전문가로서의 남다른 발상 메이크업은 고객과의 소통과 친밀감이 무척 중요한 직업이다. 그만큼 고객 충성도도 높다. “기억에 남는 일 중 웨딩메이크업을 받으셨던 분이 생각납니다. 립글로스가 유행을 했던 시기였는데 립제품 알러지로 립메이크업을 전혀 하실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게다가 유독 흰 피부라서 립메이크업을 생략하기엔 창백해 보이며, 흰 웨딩드레스에는 병색이 있는 분으로 보일 듯 했습니다. 고민 끝에 유레카! 아름다운 웨딩메이크업을 해드렸는데요, 놀이터에서 막대사탕을 먹고 온통 빨간 입을 하고 노는 아이들을 보고 과일 맛으로 색을 고 를 수 있게까지 가능하게 되고, 립글로스는 마지막에 꿀로 표현해 미션을 완수했던 재미난 기억이 납니다.” 전문가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전문가는 상식을 뛰어넘을 수 있는 남다른 발상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금지선 회장은 메이크업 전문가로서 협회장으로서 메이크업이란 분야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해를 거듭할수록 미용, 특히 메이크업은 대단하고 특별한 분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메이크업은 인류와 함께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인문학에 포커스가 집중되어 있었을 때도, 더욱 발전할 AI에 한참 집중하고 있을 미래에도 메이크업은 함께할 분야입니다. 메이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렇다. 미용, 메이크업은 AI가 세상 거개의 직업을 대신한다고 해도 인간을 대신할 수 없는 미래 유망 직종임을 미래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미용은, 메이크업은 그만큼 중요한 미래직업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미래 유망 직종 “여러 분야에서 경기침체와 사회 트렌드 등으로 1인 기업이 많아지고 특히 메이크업 업종은 프리랜서가 가능한 일이라 다양한 형태의 업태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용인 모두가 제도권 안에서 함께할 때 권익보호와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함께하는 협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한국메이크업미용사회 회장으로서 금지선 회장의 역할이자 하고자 하는 방향이다. 오랜 고민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런 고민이 앞으로 우리나라 메이크업의 발전과 위상 강화를 할 수 있으리라. 협회장으로서 금지선 회장은 매일 매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코로나로 주춤했던 행사들을 전국 지회와 손발을 맞춰 진행하고 있고, 매년하고 있는 경진대회를 실무자들에게 꼭 필요한 종목, 예를 들면 혼주메이크업 등을 신설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한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조직을 위하는 큰 뜻과 그 뜻을 뒷받침하는 기술이 필요한 법이다. 금지선 회장 같은, 메이크업을 위하는 회장이 있기에 우리의 메이크업계도 커다란 발전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다. *금지선 회장 프로필 -학력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원 뷰티디자인 석사 과정 중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미용학사 수원여자대학교 전문학사 -경력 현, 라주아뷰티블랜딩 대표 현, PJ호텔 웨딩뷰티 대표 현, 라주아메이크업 대표 현, 더한 대표강사 현, Global Beauty Industry Union 수석강사 현, 수원여자대학교 겸임교수 현, 한국메이크업미용사회 회장 인천재능대학교 특임교수 역임 정화예술대학교 강사 역임 소상공인경진대회 보건복지부장관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 등 다수 수상
    • 문화
    • 인터뷰
    2022-11-30
  • 뷰티라이프 11월호 표지
    <뷰티라이프 11월호 표지:국가대표팀> 국제분과위원장: 권기형 트레이너: 김신아 시니어 크리에이티브: 박형대, 정명호, 김은지, 황수민 시니어 데이 이브닝: 김정연, 이다현, 태원주, 박련서, 장희서
    • 문화
    • 인터뷰
    2022-11-09
  • 소리 나지 않게 꼭 필요한 사람
    미용인보(美容人譜)43 오형자 대표 소리 나지 않는 삶 -오형자 원장 소리 나지 않게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묵묵히 자기 일에 열중하며 안으로 실력을 키우고 남을 위해 봉사할 뿐이다 교육을 하면서도 공부를 하면서도 사람 좋은 미소만 띄울 뿐 소리 나지 않게 길을 갈 뿐이다 그래서 그의 주위엔 즐거운 일만 생기고 시기와 질투가 적다 나를 이기는 것은 오직 나뿐 주변을 살펴보며 나를 갈고 닦을 뿐이다 이제 그 품성으로 미용계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지니 많은 미용인들이 어이 기뻐하지 않으리 소리 나지 않지만 꼭 필요한 사람 우리 주위엔 소리 나지 않지만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필요할 때 그 존재의 몫을 다하는 사람. 오형자 대표는 기자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기자가 오형자 대표를 만난 지는 오래됐지만 그냥 사람 좋은 미용인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형자 대표와는 행사장에서 가끔씩 만날 때마다 목례 정도나 하고 지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만나 지 꽤 오래됐는데도 인상 좋은 전북의 미용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소리 나지 않게 하는 행동을 보며 인성 좋은 미용인이구나 하는 정도로 인식만 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미용장협회의 행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깔끔한 인상을 받았다. 그런 오형자 대표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지난 2020년 1월 21일 대전 선샤인호텔에서 진행한 한국미용장협회 12대 회장 선거날이었다. 오형자 대표는 이날 임시의장을 맡아 한국미용장협회의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기자는 이날 오형자 임시의장을 유심히 관찰했다. 예의바르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공식석상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웬걸, 오형자 대표는 처음해보는 임시의장 역할을 똑 부러지게 행하는 것이었다. 기자는 속으로 ‘우리 미용계에 이런 숨은 인물이 있었군.’이라고 생각하며 흐뭇한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임시의장 역할 제대로 수행 회장 선거가 무사히 끝나고 기자는 가장 먼저 오형자 임시의장을 찾았다. 그러곤 면전에서 상대방을 잘 칭찬하지 않는 기자였지만 악수를 청하며 아는 체를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상당한 대화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행사 후 서울로 올라온 기자는 전주의 오형자 대표에게 전화해서 다음 달 3월호 표지 연출할 것을 제안했다. 표지 촬영 시간과 뒤풀이에서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었던 기자의 속내가 담겨있었다. 오형자 대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표지 연출 제의에 응했고 3월호 표지를 멋지게 장식했다. 표지를 촬영한 날, 기자의 SNS에는 오형자 대표를 “3월의 표지 연출은 전주에서 ‘수앤미헤어클럽’을 운영하는 오형자 원장이 맡았다. 오형자 원장은 중앙회 기술강사, 대학교수, 대한미용사회 전북도 상임위원, 한국미용장협회 수석부회장 등등 출중한 역량으로 미용계를 위해 일하고 있다. 향학열이 누구보다 높아 박사과정 중에 있기도 하다. 오형자 원장의 미용에 대한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라고 적어 놓고 있었다. 촬영 후 뒤풀이를 어떻게 했을까는 상상에 맡기기로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오형자 대표는 매사에 겸손하고 친절하다.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의 전형을 생각하면 오형자 대표가 생각날 정도이다. 미용계에 입문한 과정도 재미있다. “전라북도 부안에서 4남 3녀의 막내로 성장하며 어려서부터 미용사 놀이를 좋아했습니다. 재단가위로 친구들 머리도 잘라주고, 아카시아 잎줄기나 아궁이에 쇠 젓가락을 달구었다 식혀 뻣뻣한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꼬불거리는 웨이브를 만들며 놀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 저를 보고 어머니께서는 미용사가 되면 고생한다고 걱정하셨지만 동네 어르신들은 ‘나중에 훌륭한 미용사가 되겠구나.’ 하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미용사의 “꿈”을 안고 미용 기술을 배우기 위해 1979년 서울로 상경하였습니다. 주경야독으로 열심히 연습하여 1983년 자격증을 취득하고, 당시 광화문 국제미용학원 강사로 미용 일을 시작하면서 36년 동안 미용 산업 발전과 미용전문 기술 교육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려서부터 미용사의 자질을 안고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여기에 노력까지 더해졌으니 두 말하면 무엇하랴. 천상 미용인 오형자 대표는 천상 미용인이다. 다음과 같은 말이 이를 증명한다. “미용은 용모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용 일을 하면서 한 번도 힘들다고 후회하거나 원망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머리꾸미는 일을 좋아하고 즐거워했습니다. 특히 예식장을 가는 고객님의 업스타일을 할 때 더욱 힘이 납니다. 소중한 날인만큼 저의 실력을 최대한 끌어내고 정성을 다하여 업스타일을 완성하면 고객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동시에 저의 만족도도 높아집니다. 이때 미용을 하는 보람을 느끼며 예쁜 고객의 뒷모습을 보며 배웅할 때 제 마음속엔 흐뭇한 미소가 가득차고 그 미소가 저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또, 훗날에 고객이 찾아와서 그때의 머리를 회상하며 예쁘게 해주셔서 예식사진을 볼 때마다 행복하다며, 원장님 생각을 한다고 감사인사를 전할 때 정말 보람되고 흐뭇하며 행복합니다.” 이런 일이 오형자 대표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겠지만 그런 마음을 알고 행복함을 느끼는 것은 진정한 미용인이 아니면 느낄 수 없을 터. 매사에 감사함을 아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행복이 아니겠는가. 미용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오형자 대표는 평소 미용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미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미용이 남의 흉내나 내고 밥이나 벌어먹는 하찮은 직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가 공부를 못하면 하는 소리가 ‘너 공부 안하려면 미용이나 배워라’ 라는 아주 무지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용은 결코 게으르거나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분야입니다. 미용은 처음 배우는 순간부터 배움이 끝나는 순간까지 연속성을 가지며 꾸준히, 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기능적인 속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미용은 누구나 배울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직업군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용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오늘도 열심히 생각하고 또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용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음미해보아야 할 대목이라고 기자는 가슴속 깊이 동의한다. 어떤 사물이나 속성에 대해 본질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 인식의 깊이에는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오형자 대표는 미용계의 리더답게 미용의 본질에 대해 폭넓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형자 대표는 미용을 배우고자 하는 예비미용인들에게 “첫째, 미용을 놀이로 즐겨라. 둘째, 인내와 끈기를 가져라. 셋째,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결코 이기지 못한다는 점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 세 가지만 명심한다면 미용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제 어느덧 36년이라는 세월을 미용을 위해 살아온 오형자 대표. 일과 학습을 병행해 석,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제 우리나라 산업 현장교수로서 후학들의 직업 진로교육과 현장 중심의 기술 지도를 통하여 산업현장의 안성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고 있는 오형자 대표. 후배 미용인들의 작품지도와 전라북도 선수들의 작품 지도, 비전대학교 미용건강과 학생들의 지도에도 여념이 없는 오형자 대표. 미용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오늘도 노력하고 있는 오형자 대표. 미용계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를 위해 투자하고 있는 오형자 대표. 이런 미용인이 있기에 기자가 힘을 얻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이다. *오형자 대표 프로필 -학력 원광대학교 뷰티디자인과 석사졸업 원광대학교 뷰티디자인과 박사 학위취득 -자격증 미용사 2급자격취득 이용장,미용장 자격추득 직업능력훈련교사 2급 자격취득 기타자격증 직업진로 채험강사 자격 한국 고전머리지도사 자격 두피모발1급인증강사 자격 가발전문가 인증강사 자격 퍼스널컬러리스트 1급인증강사 자격 뷰티매니저 전문 자격 -경력사항 비전대학교 미용건강과 겸임교수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 지방, 전국, 세계기능올림픽 경기대회 지도교수 사)대한미용사회 기술강사 사)미용장 중앙회 수석부회장, 이사 사)한국 헤어디자인협회 부회장, 이사 사)대한미용사회 전북지회 상임위원 사)대한미용사회 덕진지부 부회장, 상무윈원 사)대한미용사회 덕진지부 기술위원장 현재, 수앤미헤어클럽 대표
    • 문화
    • 인터뷰
    2022-10-27
  • 미용장 경기지회 회원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한국미용장협회 경기도지회장으로서 회원전을 성공리에 개최한 이기은 지회장(사진=본인 제공) -본인 소개 안녕하세요. (사)한국미용장협회 경기지회장을 맡고 있는 이기은입니다. 뷰티라이프 애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미용계 입문은 언제 하셨나요? 생각해보니 벌써 미용을 시작한지 36년이 됐네요. 그 시간 동안 미용의 열정 하나로 미용기능장, 이용기능장, 컬러리스트기사 취득까지 나름의 즐거운 미용생활을 하며 성과를 이루어 왔습니다. 현재는 후배양성과 <주다 헤어샵>을 타 숍과 차별화된 곱슬머리, 손상모발 케어 전문 헤어숍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미용장 아트 작품전을 개최하셨는데 개최 이유와 성과는? 미용장 아트전을 기획한 이유는 이제는 미용 문화가 시민 속에 함께하는 대중문화로 시민들이 공감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에 시민과 소통하는 문화공간을 만들고자 미용장 경기지회 회원전으로 전시회를 기획하였습니다. 전시회를 감상하며 "60평생에 이런 전시회는 처음이라며 자주보고 싶다", "미용은 예술이다" 는 등 많은 관람객 분들이 호응하셨고 헤어가 예술이라며 k팝이라 극찬해 주셨습니다. -미용을 예술로 승화하고 계신데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안은? 이제는 미용이 위생이나 생계의 개념이 아닌 생활 문화예술이고 아트라고 생각합니다. 미용실은 머리만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전시관 갤러리 등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미용인은 시민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자리를 많이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길거리 버스킹도 좋구요. -평소 미용인으로서 바라는 것은? 미용인으로서 저의 철학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함께할 때 힘이 생기고 우리의 힘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치셨는데 또 다른 계획은? 미용장 경기지회장으로 전시회를 열어 소통의 장을 열었으니 이제 해마다 전시회를 개최하여 미용문화를 더 많은 분들과 소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도 기대해주세요. 유럽에서는 라이센스를 취득하면 그 위치에 맞는 재교육과 활동을 하여 자기개발을 해야 하고 일정기간 정체되어 있는 자격증은 국가가 자격박탈을 시킨다고 합니다. 우리도 사회제도로 자질을 향상시키는는 제도가 지향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그런 날이 빨리 와서 함께 연구하고 작품을 교류할 수 있는 때가 오길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 문화
    • 인터뷰
    2022-10-26
  • "건강한 아름다움으로 세계화를 실현한다"
    건강한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세계화를 이끌고 있는 존 박 회장. -반갑습니다. 우선 ㈜PNL BIO의 소개 및 자랑을 해주세요.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PNL BIO의 회장인 저는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 품질의 제품을 제조, 유통하는 회사가 ㈜PNL BIO입니다. 저희는 식약청에서 승인된 주요 성분들과 자연에서 얻은 안전한 기본 성분들로 구성된 발명특허 제품들을 정직함을 기본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몸 스스로가 잘 운행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안전한 제품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편한 모든 곳들을 혼자서도 편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인체에 무해한 제품이 빠르고 깊고, 그리고 안전하게 흡수되어 즉각적 효과를 발휘 할 수 있는 것이 저희 제품의 특징이자 자랑입니다. 편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며, 효과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제품 사용 후 효과에 대한 높은 평가로 제품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습니다. 유명 탤런트이기도 한 최일화 마케팀 이사와 함께 -많은 수상을 하신 걸로 아는데요, 수상내용은? 수상 내용을 적시하면, 2021년 대한민국 우수상품 대상(국회 과학기술정보위원회), 2021년 대한민국 모범 기업인 대상(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제10회 아시아 로하스 산업대전 친환경 부문 은상, 2021년 대한민국 베스트 브랜드 어워드 면역증진부문 대상, 대한민국 문화예술 세계 대상/ 글로벌 소비자 대상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귀사의 주요 제품 소개와 특징 그리고 유통경로는? 우리 회사의 주요제품은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피부건강과 전 국민의 건강을 위한 무 화학, 무 오일, 무 화학계면활성제, 무 향신료, 무 방부제 제품을 개발하게 되었으며, 고 기능의 제품으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만든 제품입니다. 제품개발, 마케팅 생산 공급 체계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또한 장점입니다. 우리 회사의 대표적인 제품과 면역관리솔루션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이오톡스, 엘포인트젤1, 바디셀2 등으로 기본적인 전신 관리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두피관리, 등관리, 복부관리, 다리관리, 발관리, 관절관리 등 전신을 관리할 수 있도록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피부관련, 통증 관련하여 불편한 부분을 빠르고 편안하게 도움을 드립니다. 최근에 런칭한 바이오톡스 앰플 시리즈는 수십 배 농축된 제품으로 그 효능이 매우 높아, 불편이 심한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얼굴관리 솔루션은 넥졸I, 넥졸V 등 넥졸시리즈로 탁월한 효과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고함량의 주성분들은 즉시효과는 물론 깊게 흡수되기 때문에 만족감이 매우 높습니다. ㈜PNL BIO의 유통경로는 올해 1월부터 시작된 자회사인 ㈜PMC 전신면역관리센터프랜차이즈를 통해 전국으로 유통되고 있으며, 현재 40여개 매장이 오픈되어 연말까지 200개 매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귀사의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많은 분들이 스스로 겪는 고통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제품을 좋아하시는 이유는 즉시 나타나는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빠른 흡수를 통해 전달되는 물질은 고객의 불편한 곳들을 즉시 좋은 효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저희 제품의 최대 장점입니다. 또한, 안전하게 만든 제품에 대한 신뢰입니다. 누구나 사용이 가능하며, 지속적인 사용에도 안전하고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에 많은 고객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장님의 회사 경영 철학 건강한 아름다움으로 세계화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PNL 바이오 기업은 최고의 품질로 세계화를 실현하여 인류 건강을 생각하며, 사람을 살리는 기업을 만들고자 합니다. PNL바이오 연구소에서 개발된 인체 무해한 안정성과 효능성이 입증된 제품으로, 고객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기업 이념을 실천하여 안전하면서 최고의 품질로 모든 고객의 아름다움과 건강에 대한 꿈을 만족시키는 것이 PNL BIO의 사명입니다. -미용계와 협업하는 방안은? 우리 사회 전반의 펜데믹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용업계에 새로운 대안으로 전국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PMC센터 프렌차이즈에 동참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얼굴, 피부미용은 물론 전신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탁월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PMC센터 프랜차이즈는 우리 동네의 건강과 아름다움의 지킴이가 될 것입니다. 모발건강을 위한 두피케어 솔루션, 피부 미용 케어 솔루션, 네일 아트 케어 솔루션 그밖에 미용 분과에 필요한 솔루션 제공이 가능하며 또한 미용학을 전공했거나, 타 전공자이더라도 건강과 힐링에 관심이 있다면, 제품의 빠른 효과로 테크닉의 결과를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어 청년세대들에게도 새로운 일자리 및 창업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장, 단기 계획은? ㈜PNL BIO는 2023년까지 500여개, 2024년까지 1000개의 PMC 센터를 목표로 전 국민이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저희 제품을 체험할 수 있고, T구매가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소외된 분들의 건강을 위해서 피어1004클럽 봉사단을 통해서 지속적인 관심과 봉사와 기부를 진행할 것입니다. 해외에도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특히, 아프리카인들의 건강상태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PNL BIO는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는 건강한 바이오기업으로 도약할 것입니다. 앞으로 관심 있게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문화
    • 인터뷰
    2022-09-28
  • 봉사하며 사는 삶
    미용은 나의 삶 -고민화 원장 -제주에서 왔지예 -아무 것도 몰라예 하던 마음씨 예쁜 아가씨 미용이 좋아 동두천 미용실에서 열심히 일했네 누구보다도 열심히 미용을 공부했네 기술도 마음도 깊고 넓어서 지부장 기술강사 고전머리강사 박수를 받았네 미용은 나의 길 봉사는 나의 삶 초심을 잊지 않고 오늘도 달리네 한 곳을 보고 꿋꿋하게 달리네 동두천에서 미용인의 바른 삶 한결같이 지키고 있네 원호진 대표의 소개로 만나 2000년 초반 때의 일이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신 최영희 의원의 아드님인 원호진 대표는 기자와 막역한 사이였다. 우리 둘은 술 마시는 스타일이 비슷해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유쾌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기자는 잡지를 창간하고 ‘어떻게 하면 많은 미용인들을 잡지에 소개하고 실력 있는 미용인들을 발굴하여 작품을 게재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원호진 대표와 미용계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원호진 대표가 “형님, 우리 미용계에서 의리와 인성이 최고인 분을 소개하겠습니다.”라며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그렇게 고민화 원장과 기자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신뢰가 있는 사람이 소개한 이는 그 믿음이 그대로 전이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소개를 받고 며칠 후, 고민화 원장이 양로원 봉사를 간다는 연락이 왔고 기자는 봉사 현장을 취재할 수 있었다. 봉사 현장을 보며 기자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미용인들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고 미용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뒤풀이를 하며 미용인들의 따뜻한 정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소리 나지 않게 봉사하며 진정으로 봉사를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인연의 소중함 기자는 미용인과 인연을 맺고 나면 그 인연을 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뷰티라이프에 표지 연출할 것을 권한다. 표지 연출만큼 효과가 큰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봉사 활동 취재 후, 기자는 고민화 원장께 표지연출을 제안했고 고민화 원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이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됐지만 그간 많은 대화나 시간을 갖지는 못 했다. 고민화 원장이 동두천 지부장을 하거나 경기북부 부지회장, 심지어 중앙회 기술강사를 할 때에도 행사장에서만 만났을 뿐이었다. 그만큼 고민화 원장은 소리 나지 않게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행사장에서 만나면 기자는 반갑게 ‘막걸리 한잔 해야지요’ 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고, 고민화 원장은 예의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아무 때나 말만 하세요’라고 싫지 않은 듯 말했다. 제주도 태생, 친구의 추천으로 ‘최영희미용실’ 근무 고민화 원장은 제주도 태생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한복을 공부할까 미용을 배울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이 20세 때 과감하게 미용을 선택하게 되었고 상경했다. 동두천의 한 미용실에 친구가 근무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미용실의 원장님과 디자이너들이 최고라며 적극 추천했다. 그 미용실이 ‘최영희미용실’이었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신 그 최영희 의원이 당시에는 동두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최영희미용실에 들어간 고민화 원장은 그곳에서 최영희 원장의 각별한 애정 아래 10년 이상을 근무하였다. 고객 중 한 명이었던 지금의 남편도 만나게 되었다. 최영희 원장의 미용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보고 배우면서 지부, 지회장의 꿈도 키웠다. 미용인으로서 봉사 활동의 소중함도 배우고 깨우쳤다.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소중하고 숭고하다. 독립해 미용실을 운영하면서도 고민화 원장은 스승으로서의 최영희 의원을 믿고 따르고 있다. 동두천 지부장을 3번 하면서도 봉사활동을 항상 해오고 있었다. 봉사가 몸에 배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사는 나의 삶 “미용을 하면서 한 번은 여성단체 봉사를 나갔습니다. 결혼식 형편이 안 되어서 결혼식을 못 올리고 사는 부부의 결혼식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해주었는데, 행복해하던 부부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 미용인으로서 정말 흐뭇함을 느꼈습니다.” 미용인의 삶은 이렇게 남들에게 행복함을 선사할 수 있는 훌륭한 직업이 아닐 수 없다. 고민화 원장은 또 말한다. “여성 장애인 자존감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 중 헤어나 메이크업을 해서 드레스를 입혀주고, 매달 장애인 복지관을 찾아 커트를 해주고 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장수효(孝) 사진 촬영 때의 봉사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평소 봉사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고민화 원장은 우리 미용인들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고민화 원장은 요즘 꾸준한 운동과 함께 지인들과 여행을 다니면서 몸과 정신을 살찌우고 있다. 봉사하는 삶을 오래 오래 이어가려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을 때의 기쁨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다고... 누군가 미용인의 삶은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실상 이것은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미용인들에 국한된 말일 것이다. 고객들을 아름답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앞선 기술과 마인드가 없어서는 안 될 일. 고민화 원장이 평소 실천하고 있는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과 기술강사의 실력으로 고객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한 일이다. 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고민화 원장은 항상 입가에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이는 타인을 무장해제하는 매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우리의 태도를 변하게 한다. 에너지를 활성화시켜 주위를 변하게 하는 힘이 된다. 우리 생활에서 웃음이 중요한 이유다. 한 텔레비전의 유명 강사는 주위에 웃음을 주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라고 권한다. 웃음의 여파가 성공을 끌어들인다고도 말한다. 여기에 기자는 덧붙이고 싶다. 성공하고 싶은 미용인이여,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고민화 같은 미용인을 곁에 두라고. 우리는 살면서 늘 한결같은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특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더 그러기를 바란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보라.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늘 그렇게 한결같아 왔는가? 고민화 원장의 주변 평은 늘 한결같은 사람이 고민화 원장이라고 말한다. 이제 사실은 명확해졌다. 우리가 고민화 원장을 친구같이 곁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 문화
    • 인터뷰
    2022-09-28
  • 미용교수의 삶을 오롯이 살다
    미용인보(美容人譜)40 미용교수의 삶을 오롯이 살다 조미영 동원대학교 헤어뷰티과 교수 고은 시인은 주위 사람들 만 명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만인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이는 시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예이다. 기자는 이를 차용하여 주변 미용인에 대한 시와 스토리를 매달 한 편씩 쓸 예정이다. 그 중에는 성공한 미용인도 있을 것이고 동네에서 나 홀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기자에겐 모두 소중하고 고귀한 미용인 자산이다. 그 분들과 함께 한 생활이 기자에겐 기쁨이고 행복이다. 우리는 미용으로 엮어진 떼려야 뗄 수 없는 미용가족이니까. 웃음과 함께 하는 일신우일신 -조미영 교수 웃음이 많은 사람은 많지 그러나 그 웃음이 얼굴과 마음과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은 많지 않지 웃음은 그 사람의 인격 그 이의 성품 환한 얼굴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 웃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웃음으로 제자들을 포용하는 미용교수 30년을 미용을 위해 일했고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네 웃음과 함께, 일신우일신 그녀의 삶은 매일 새로워지네 우리의 삶도 덩달아 새벽 공기처럼 신선해지네 10년 동안 ‘조미영 교수의 업스타일 레벨 업’ 연재 조미영 교수를 처음 만난 때는 기자가 잡지를 창간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공부하는 미용인을 위해 새로운 미용잡지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영국이나 미국, 일본 유학을 다녀온 유학파 미용인들을 대상으로 토론하며, 미용계 잡지 최초로 ‘연재’란 개념을 만들어 잡지에 시도하던 때로 기억한다. 처음 만나 미용계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업스타일 작품을 잡지에 연재하자고 제안했다.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업스타일로 유명했던 강사분이 몇 분 있었지만, 기자의 생각은 유명세보다는 젊은 감각으로 독창성 있는 작품을 미용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여기에 조미영 교수가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기자나 조미영 교수에게는 모험이나 다름없었지만 기자는 조미영 교수의 실력과 인품을 믿었다. 고심 끝에 조미영 교수는 작품 연재를 수락했고 그렇게 2000년 10월호부터 2010년 9월호까지 10년 동안 ‘조미영 교수의 업스타일 레벨 업’이라는 타이틀로 업스타일 연재가 이어졌다. 10년이라니,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었다. “매달 다가오는 촬영날짜, 창작에 대한 고통, 모델에 대한 걱정, 의상과 메이크업에 대한 걱정과 모델에게 시술하다가 드라이가 터져서 놀란 일, 모텔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즐거운 추억이었어요. 뷰티라이프에 ‘조미영 교수의 업스타일 레벨 업’을 진행하는 동안 미용에 대한 새로운 직업관이 형성되었고 “나는 아주 잘 할 수 있다”는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만들어졌지요.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달 새로운 업스타일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지만 일반 미용인에서 전문 미용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창작의 한계성을 뛰어 넘어 새롭게 변화되는 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어요.” 모두를 즐겁게 하는 매력 소유 당시를 생각하며 조미영 교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매월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던 3시간 여 동안의 촬영은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이기도 했다. 모두가 진지했었고 특히 조미영 교수는 촬영 일정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촬영의 처음부터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얼굴 가득 미소를 항상 잃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촬영장 모두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게 하는 매력이 조미영 교수에게는 있었다. “미용을 처음 선택한 계기는 ‘전문직이고 연령 제한이 없고 나이 들어도 멋지고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직업이 미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미용실 인턴에서부터 미용대학 출신 1호 대학교 교수가 되기까지 힘들었던 일, 기쁜 일들이 하나의 추억이 되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네요. 참 오랜 시간 동안 노력도 많이 하였고 현재도 미래의 꿈을 꾸며 노력하고 있어요. 친인척 및 지인 중에 미용을 하는 분들이 없어서 미용입문이 쉽지는 않았지만 미용이라는 직업을 알게 된 것은 저에게 너무 큰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미용실에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생긴 미용 대학을 다니면서 현장을 이해하는 대학 교수가 되고 싶다는 큰 꿈이 생겼고 이를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어요. 이 큰 꿈이 오늘날 저를 이 자리에 서게 하였고, 이 자리에서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고 있어요. 1996년 8월 충청대학에서 첫 시간강의를 시작으로 1997년 대동대학, 대전보건대학 겸임교수로 재직, 1999년 대전보건대학 전임교수로 임용, 2000년 경기도 광주에 있는 동원대학교 피부미용과 교수로 임용된 후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어요. 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용 기능장과 이용 기능장을 모두 취득하였고 헤어뷰티과 학과장, 입학관리센터장을 거쳐 현재 동원대학교 교수학습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지요. 학생들의 미용 현장 적응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수학습 방법을 개발하여 지도하고 있으며 제3회, 7회 전국전문대학 교수 학습 연구대회에 참가하여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상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을 수상하였고, 제31회 스승의 날 교과지도부문에서 교육부 장관상을 수상하였어요.” “교수님 덕분에 저의 인생이 달라졌어요” 당당하게 미용계에 입문한 얘기를 하는 조미영 교수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우리의 속담을 새삼 일깨워준다. 하기야 스텝부터 시작하여 학생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대학교수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가 뒤따랐겠는가! ““교수님 덕분에 저의 인생이 많이 달라졌어요.” 몇 년 전에 졸업한 학생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교수님께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학창 시절 학교를 너무 가기 싫어서 그만 두려고 했는데 교수님이 끝까지 말려서 자퇴는 못하고 겨우 학점만 이수해서 졸업했다고, 그 후 네일숍에 취업을 했고 현재는 네일숍을 2개 운영하는 원장이 되었다고, 그 당시 학교를 그만 두었으면 자기 인생이 많이 달라졌고 후회했을 거라고, 그래서 학교를 그만 두지 못하도록 끝까지 잡아준 교수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는 제자의 말에 저 역시 그렇게 말해주는 제자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잊지 않고 감사의 전화를 해주는 제자가 있다는 것, 교수가 되지 않았으면 이런 행복감을 느꼈을까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이런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런 제자와 스승이 있다는 것, 우리 사회가 아직은 훈훈한 정이 살아있다는 방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제자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인갑답게 인도한 스승이 없으면 안 될 일.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성공을 보장 받는다 조미영 교수는 미용계에 입문한 지 벌써 30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의 세월 동안 깨달은 것은 “포기하지 않고 그 분야에서 묵묵히 일을 하면 나중에는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교를 다닐 때 공부를 잘했던 학생들이든 공부를 못했던 학생들이든 미용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 남아있으면 멋진 헤어디자이너나 원장이 될 수 있는 것을 많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성공한 교수의 삶을 사는 이유가 뭐였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성공적인 교수의 삶을 살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서 매일 반성하고 있어요. ‘매일 새로워지고 새로워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결국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저 역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어요.” 성공하는 사람은 변화를 주저하지 않는 법. 조미영 교수는 오늘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꿈꾸고 있다. “헤어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서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제자들을 양성하고 그들이 멋지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는 꿈, 이것이 앞으로 저의 계획이에요.” 자기 자신보다는 제자들을 더 위하고 그들의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조미영 교수, 그와 같은 미용교수가 있기에 우리 미용계의 앞날이 환하고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고 기자는 확신한다. *조미영 교수 프로필 세종대학교 일반대학원 이학박사 현) 동원대학교 교수학습센터 센터장 및 헤어뷰티과 교수 - 동원대학교 입학관리센터장 및 직업교육개발센터장 - 한국미용학회 상임이사 - 2012년 교육부 장관상 수상(교과지도부문 우수자) - 전국전문대학교 교수학습 연구대회 3회 직업능력개발 원장상 수상/ - 전국전문대학교 교수학습 연구대회 7회 한국전문대학협의회장상 수상 - 노동부 국가기술자격정책심의위원회에서 세부직무분야전문위원회 위원 - NCS WG(워킹그룹) 심위위원회 위원장/NCS 및 신직업자격 보완 집중화작업 검토위원 - 21년 NCS 개발·개선 사업 점검위원 - 한국산업인력공단 직종별전문위원회 전문위원 - 2018년도 국가기술자격 다국어시험 시행 전문가 위촉 - 이용사 종목 평가방법 개선 자문위원 - 저서: 더 베스트 펌, 헤어컬러리스트, 두피모발관리 외 다수
    • 문화
    • 인터뷰
    2022-07-26
  • 미용 실력과 몸매, 다 같이 뽐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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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 인터뷰
    197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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