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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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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새의 언어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8) 참새의 언어 박향숙(1966~ ) 밝은 햇살 아래 산수유 붉은 나뭇가지에 짹짹 짹짹 신나게 지껄이는 참새 가족의 전원田園 오늘은 한 마리가 날아와 짹 짹 짹 한 마디씩 툭 툭 뱉는다 외로운 걸까 그리운 걸까 아니면 가슴이 아픈 걸까 대화가 안 되는 화창한 아침이 슬프다 박향숙 시인 충남 천안 출생. 월간 『시사문단』으로 등단. <한국시사문단작가협회> 회원, <반여백> 동인, <오투인헤어디자인연구소> 운영. 천안시 1호 미용명인, 김해 비엔날레 국제미술제 초대작가, 한양예술대전 초대작가. 시집 『참새의 언어』가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8번째 시는 박향숙 시인의 “참새의 언어”입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에는 조그마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하루 중 가장 기분이 좋은 때는 새벽을 알리는 온갖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들릴 때입니다. 녀석들은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아니하고 새벽마다 찾아와 잘도 재잘거립니다. 나른한 기분으로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녀석들의 지저귐을 듣고 있노라면, 여기가 마치 천상의 세계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직박구리, 딱새, 곤줄박이, 박새, 동고비 등이 목청을 가다듬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면 그들은 대화를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만의 리듬과 흐름이 보입니다. 대화에 참여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은 참새들의 대화입니다. 유독 청아하게 집단을 이루며 재잘거립니다. 발레를 보는 듯한, 오페라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아침 일찍 듣는 참새들의 재잘거림은 환상입니다. 여름철에 듣는 매미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무엇인가가 그들의 대화에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한 마리가 날아와/ 짹 짹 짹/ 한 마디씩 툭 툭 뱉”고 맙니다. “참새 가족의 전원”이 아닙니다. 그들과 동화되어 같이 합창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보려 했던 마음이 어느새 사라집니다. 그것은 단발마처럼 들리는 참새 한 마리의 “외로운” “그리운” “가슴이 아픈” 소리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참새에게 다가가 연유를 물어보고 싶지만 “대화가 안 되”는 현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여기서 참새는 자연 동화를 표현하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실상일 수도 있습니다. 대화는 단절되고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이웃에 대한 안타까움일 수도 있습니다. “신나게 지껄이는” 참새처럼 일상이 회복되어 “화창한 아침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참새의 언어”가 기다려지는 아침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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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론
    2023-04-27
  • 소금의 행로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6) 소금의 행로 이향지(1942~ )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빗방울은 소금이 되지 못한다 고기의 내장을 들락거리지 않는 물은 거름이 되지 못한다 어제도 나는 산을 노래했다 산은 나를 노래하지 않았다 먼 것이 먼 것을 가리는 날 혓바닥에 얹히는 소금 이향지 시인 1942년 경상남도 통영 출생. 1989년 《월간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시집 『괄호 속의 귀뚜라미』 『구절리 바람 소리』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내 눈앞의 전선』 『햇살 통조림』 『야생』 에세이집 『산아, 산아』 『북한 쪽 백두대간, 지도 위에서 걷는다』 현대시작품상을 수상.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6번째 시는 이향지 시인의 “소금의 행로”입니다. ‘삶을 어떻게 사느냐’하는 문제는 난제 중의 난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애에 빠지다보면 이기주의, 개인주의라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이일 저 일에 참견하다보면 ‘오지랖 넓다’고 힐난을 받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타인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행태를 타고났습니다. 이런 성격은 위로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기질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남의 일을 해결하는데 늘 앞장서 오셨습니다. 아버지 논을 저당 잡아 빚보증을 서주기도 하셨습니다. 어릴 때 이런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핏줄은 속일 수 없나 봅니다. 가장 큰 원인은 아버지의 인간적인 면모를 존경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는 면도 이런 성향을 공고하게 했겠지요. “빗방울”이 “소금”이 되지 못하고 “고기의 내장을 들락거리지 않은 물”이 “거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껴안지 않고 그들과 교감하고 소통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통렬한 자아성찰입니다. “산을 노래했”음은 자기반성입니다. 반성 없이 “소금”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소금은 자기를 희생하면서 생물이 부패하는 걸 막아줍니다. 혼탁한 세상을 깨끗하게 해줍니다.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먼 것이 먼 것을 가리는 날”일지라도 “혓바닥에 얹히는 소금”처럼 날 희생하며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름답습니다. “소금의 행로”라는 제목을 다시 한 번 음미하며 시를 또 읽게 됩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 문화
    • 평론
    2023-03-02
  • 오죽을 노래함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5) 오죽을 노래함 박문재(1942~ ) 단단한 쇠도 녹인다는 중복 무렵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청명한 바람 소리 같기도 남녘 보길도 갯돌 구르는 소리 같기도 연방 솨아 솨아 솨아 솨아 고샅 어디쯤 조선 장맛 익어가는 정갈한 소리 그것도 곱 삭힌 소리꾼의 구성진 음성 고려 여인네 상열지사 열두 폭 구구절절 사연 같기도 하여 가만히 문 열고 마당귀에 나가다 보니 오죽 몇 그루와 산죽 서너 그루가 넌지시 정 주며 서로가 합궁하는 솨아 솨아 솨아 솨아 차르르 솨아 차르르르... 저렇듯 절묘한 사랑의 소리.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5번째 시는 박문재 시인의 “오죽을 노래함”입니다. 백과사전에서 “오죽”을 찾으면 ‘볏과에 속하는 검은 대나무. 원산지는 일본·중국·한국이다. 키 약 2~20m, 지름 5~8cm 정도이며, 줄기는 검다. 잎은 길이가 약 10cm 정도이며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잔 톱니가 있다. 꽃은 6~7월에 피고, 열매는 11월에 익는다. 줄기의 색은 처음에는 초록색이나 차츰 검정으로 변한다. 관상용으로 재배하며, 다 자란 것은 죽세공의 재료로 쓰인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오죽이 어떡하면 “절묘한 사랑의 소리”를 내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사전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전에서는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시인의 육감을 통해서만이 오죽과 산죽이 내는 사랑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시인의 육감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은 분명 산 밑에 조그마한 초가를 짓고 산내음과 산바람을 맞으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초가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보길도 갯돌 구르는 소리”와 “조선 장맛 익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오죽에 달빛 스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으신지요? 산죽에 깝죽대는 나비의 날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지요? 놀래라, 오죽과 산죽이 만나 “솨아 솨아 솨아 솨아 차르르/ 솨아 차르르르...” “절묘한 사랑의 소리”를 잉태하고 있네요.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 육감을 통해서만이 들을 수 있는 자연의 교집합, 시인이 인도해준 해설서를 따라 정신의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몫...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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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론
    2023-02-01
  • 바느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4) 바느질 김정조(1954~ ) 상처를 꿰맨다 아파서 해지고 구멍 난 것들 모두 가져다 상처를 메꾼다 늦은 밤 불면을 바느질하던 어머니도 숱한 상처를 다독이고 기웠으리라 가난과 상처를 달래던 바늘과 실 어머니의 한 땀 한 땀으로 치유되던 날들 딸아, 한 땀이라도 정성을 기울이렴 김정조: 대전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3년 『안성문학』으로 작품 활동, 2011년 『문학나무』 신인상, 2015년 시집 『따스한 혹한』 출간, 문학나무숲 시인상, 한국미소문학대상, 한국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안성문협 부지부장 역임, 한국미소문학 부주간 역임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4번째 시는 김정조 시인의 “바느질”입니다. 아침에 늦은 출근을 하고 있는데, 중년의 여인 두 분이 반갑게 얼싸안으며 만남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금 문화센터 가는 길이에요?” “요즘 안 보이셔서 궁금했어요.” “지금도 에어로빅하세요?” “살이 잘 안 빠지네요. 그래서 약 먹고 있어요.” 두 분의 해후와 안부는 끝을 모를 정도입니다. 두 분의 반가움을 뒤로 하고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골 어머니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가 안 좋으셔서 먹을 것을 제대로 드시기 못 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며칠 전에 들었습니다. 어머니뿐만이 아닙니다. 장모님은 무릎이 성치 않으셔서 잘 걷지를 못하고 계시다는 전갈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다 그런 분들이십니다. “가난과 상처”를 이겨내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입니다. 가난을 “바느질”로 이겨내신 분들입니다. 우리의 가난은 “어머니의 한 땀 한 땀으로 치유되”었던 것입니다. “불면”의 “바느질”이 우리의 “상처를 메”꾸어 주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건강을 위해 오늘날 문화센터에서 우아하게(?) 운동을 하는 것도, 난을 치는 것도, 어머니의 “숱한 상처를 다독이고 기웠”을 “바느질”이 없었다면 가당치나 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앞으로의 삶은 “정성을 기울”여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이 시를 읽으며 하게 됩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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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7
  • 말의 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3) 말의 뼈 이영옥(1960~ ) 발을 버린 말 물 밑에서 조용조용 흘러가는 말 한 번씩 수면 위로 허우적거리는 루머의 팔과 다리 떠도는 말에서 귀를 건져낸다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입술 위에 위태롭게 올린 말들 먼저 등을 돌린 말이 가장 따뜻했다 친절한 입 모양은 도끼날을 감추기에 좋다 귓속에 사는 주인 없는 말이 벌 떼처럼 잉잉댄다 집중호우가 지나가면 범람하는 말들이 괴성을 지른다 천천히 귀가 멀어 버린 강 탁한 강물이 맑아지면 발을 찾으러 온 말들이 뼈를 중심으로 몰려든다 입술이 촉촉해진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3번째 시는 이영옥 시인의 “말의 뼈”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온갖 말의 홍수 속에 빠져 삽니다. 말 중에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위안을 주는 말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상처를 주고 내상을 주는 말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한 사람의 생을 좌우하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말의 소중함을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거나 ‘남아일언중천금’이란 속담으로 표현했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며칠 전 일입니다. 허리 통증으로 주말 이틀을 누워 있는데, 한 미용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가을 여행 삼아 설악산을 갔는데, 그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감흥을 함께 하고자 전화했다고 합니다. 그러곤 몇 년 전, 필자가 관여하고 있는 ‘뷰티라이프사랑모임’에서 주최한 베트남 여행 때의 추억을 소상하고도 아름답게 들려줍니다. 그런 추억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고도 말합니다. 원장님의 잔잔한 목소리와 추억에 잠긴 통화에 필자는 아픔을 금방 잊을 수가 있었습니다. 통증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습니다. 카카오톡으로 보내온 당시의 사진을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말 한 마디의 힘은 이렇게 큽니다. 반대의 경우도 많습니다. “귓속에 사는 주인 없는 말”이나 “범람하는 말들이 괴성을 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말이 말 같지 않은 경우입니다.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말의 힘! 예쁘고 의욕을 주고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 말이 절실한 어려운 세상입니다. 시인이 기다리는 “말의 뼈”를 챙기고 싶은 때이기도 합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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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2
  • 교감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2) 교감 유종인(1968~ ) 오일장에서 산 찐 옥수수입니다 그대와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그늘진 벤치에 앉습니다 옥수수 허리를 뚝 분질러 나누고 입에 뭅니다 내가 그대보다 큰 옥수수를 불어 봅니다 이런 나의 욕심도 가히 좋습니다 이럴 때 꼭 하모니카를 떠올리는 상투성을 아직은 초여름 농담처럼 써먹을 만합니다 옥수수가 내 안으로 야금야금 넘겨 심어집니다 그럴 때 말입니다 길 건너 철길에 기차가 씨익 잇몸이 보일 듯 말 듯 거듭거듭 지나갑니다 빈 철길은 기차를 순식간에 물었다 놓습니다 철길도 뭔가 시장한 음악을 틀었다 껐다는 생각입니다 옥수수의 말단에 내 식탐이 달려 있고 철길의 현(絃) 위를 기차가 눌렀다 갑니다 서로 모르는 가운데 스쳐 가는 앎입니다 옥수수를 흘려보냈습니다 노란 기차의 음(音)을 잠시 뜯었습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2번째 시는 유종인 시인의 “교감”입니다. “교감”을 하며 생을 공유하면서 사는 지인들이 몇이나 되나요? 어젯밤 일입니다. 평소 술을 자주 같이 마시는 미용인 한 분이 저녁 늦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 전날, 정말 즐겁게 저녁 모임을 가졌었는데, 그날 밤을 상기하며 마냥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즐거웠던 추억을 다시 공유하고자 전화했다며, 그런 모임을 빨리 한 번 더 추진하자고 부추깁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얼마나 그 모임이 재미있었길래, 아직도 못 잊으시고 이 밤에 전화하셨대. 그 맘 이해하겠네.” “교감”은 정서의 합일에서 시작됩니다. 봄날 달빛 아래 흐드러지게 핀 배꽃, 여름날 비 오는 개울에서의 수영, 가을날의 이삭줍기, 겨울날 한밤중에 듣는 눈 쌓인 소나무가지 부러지는 소리 등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을 지을 수 있는 교감은 시골뜨기들이 아니면 나눌 수 없는 것들이지요. 언젠가 여행 중 지는 석양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도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것을 보고는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어느 소설가의 기사를 읽고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옥수수”와 “하모니카”, “기차”는 “상투”적이지만 우리에게 어떤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킵니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표현력도 맛깔나게 많이 등장합니다. “철길에 기차가 씨익 잇몸이 보일 듯 말 듯”, “철길은 기차를 순식간에 물었다 놓습니다”, “철길의 현 위를 기차가 눌렀다 갑니다” 등의 표현은 “서로 모르는 가운데 스쳐 가는 앎”처럼 정신적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읽고 싶어지는 유종인 시인의 “교감”이었습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 문화
    • 평론
    2022-10-28

실시간 평론 기사

  • 김도연 시인의 시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30) 엄마를 베꼈다 김도연(1968~ ) -언젠간 알게 해줄 것이여 씻지도 않은 씀바귀 뿌리를 잘근잘근 씹으며 엄니는 알 듯 모를 듯 혀를 찼다 그때마다 내 목구멍에도 씀바귀가 뿌리를 내렸지만 파란 대문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나는 씀바귀의 쓴맛을 알지 못했다 그 후 밤마다 꿈속까지 뻗어 내려온 씀바귀 뿌리가 나를 파란 대문으로 인도했지만 세월의 속살은 아직 부드러웠고 파란 대문은 이미 닿을 수 없는 고향집이 되어 있었다 별을 따고 싶었지만 도시의 별은 너무 높이 떠 있었다 파랑새는 차츰 말을 잃어 갔으며 눈은 점점 깊어만 갔다 결국 나는 내 슬픈 눈망울에 별을 그려 준다는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세월은 저희들끼리만 행복했다 남자의 언약은 언제나 공수표였다 별을 보기 위해선 눈을 감아야 했다 별보다 더 높은 하늘에 파란 대문이 걸려 있었다 세월이 알게 해준다던 엄니는 그 세월에 먹혀 끝내 파란 대문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도깨비바늘만 무더기로 피어 함부로 고향집을 넘보고 있었다 충남 연기 출생. 2012년 <시사사>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엄마를 베꼈다>가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30번째 시는 김도연 시인의 “엄마를 베꼈다”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적 이야기입니다. 담임선생님께서 학생들의 여러 가지 행동 양태에 대해 조사하면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냐?”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거개의 또래들의 대답은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심지어는 “유관순 누나” 등등이었습니다. 필자는 손을 들고 힘차게 “우리 부모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실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필자는 그들이 왜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필자는 이웃들에게 다정다감하며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풍류생활을 즐기는 아버지의 모습과 똑 부러진 행동양식과 고운 모습으로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한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린 시절, 시골에서 태어나게 해서 시골의 정서를 알게 해준 부모님께 무엇보다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첩첩산중 고향의 맛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젠간 알게 해줄” “씀바귀의 쓴맛”과 “파란 대문”의 추억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고 삽니다. “별”을 따고 싶어 “도시”로 나왔지만 “도시의 별은 너무 높이 떠 있”습니다. “말을 잃어” 가며 “눈”이 “점점 깊어만” 가는 이유입니다. 상처투성이의 생활,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고향집”의 “파란 대문”과 “엄니”입니다. “도깨비바늘”처럼 으깨진 마음으로 “고향집을 넘보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엄마를 베”낄 수 있는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은 한 시골내기들은 행복한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엄마”와 “고향집”이 그리운 화사한 봄날입니다.
    • 문화
    • 평론
    2024-04-24
  • 영화 '파묘' 미스터리 공포의 심장을 울리다.
    2024년 2월 22일에 개봉한 대한민국의 최신 미스터리, 공포 장르 영화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5세 이상 관람가로 등급이 매겨진 이 영화는 총 134분의 러닝타임 동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쇼박스에 의해 배급된 이 작품은 그들의 명성에 걸맞은 품질을 보여준다. 영화는 초반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탁월하며, 관객들을 자리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미스터리 요소가 스릴러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극적인 흡입력을 선사한다. 이야기는 점차적으로 펼쳐지며, 각 캐릭터의 심리와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 각본과 연출은 이 장르의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연출자는 적절한 시점에서 적절한 긴장감을 조성함으로써 관객의 감정을 완벽하게 조종한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는 이야기의 몰입감을 더욱 깊게 해, 특히 주연 배우의 섬세하고 강렬한 연기는 극의 긴장감을 한층 더한다. 시각적으로도 이 영화는 관객에게 큰 충격을 선사한다. 어두운 톤과 음산한 배경 음악은 영화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완벽하게 살린다. 특히, 섬세하게 구현된 특수 효과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그로 인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영화의 결말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모든 실마리가 하나로 모이며, 충격적이면서도 만족스러운 해결을 제공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생각하게 만들며, 영화의 재관람 욕구를 자극한다. 총체적으로 볼 때, 이 영화는 미스터리와 공포 장르의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다. 감독과 배우들의 뛰어난 역량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2024년 한 해 동안 큰 화제가 될 것으로 보이며, 한국 영화의 진화하는 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 문화
    • 평론
    2024-04-22
  • 백명숙 시인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28) 감꽃생각 백명숙(1962~ ) 쓸어서 윤이 나던 앞마당 감나무 밑 유년의 아침 여는 흰 속살 꽃목걸이 보석을 꿰는 마음도 내 맘처럼 빛났을까 도평리 떠나온 지 스무 해의 세월 뒤켠 지금도 소녀들은 해말간 웃음으로 흰 감꽃 줍고 있을까 그 꽃마음 닮았을까 1989년 <여원문단> 시부문 장원, 국문학 학사, 피부미용 학사,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한국여성시조문학회 회원, 약손명가 역삼점 원장, 약손명가 해외담당 이사, 한국뷰티산업능력개발협회 교육위원장, 1991년 <현대시조> 신인문학상 수상, 시조집 <감꽃생각> 출간.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28번째 시는 백명숙 시인의 “감꽃생각”입니다. 어릴 적 시골 “앞마당”에는 으레 감나무 한 그루씩이 있었습니다. 감나무는 뒷마당의 앵두나무와 더불어 유년의 추억을 유난히도 많이 공유하고 있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감꽃은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기에 훌륭한 간식거리였습니다. “쓸어서 윤이 나던 앞마당”에 떨어진 감꽃을 실이나 지푸라기에 꿰어 잘 말렸다가 먹는 맛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소녀들은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막 떨어진 감꽃이 주는 탱탱함과 부드러움은 어떤 목걸이보다 소녀들을 화사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감꽃목걸이를 목에 두르고 활짝 웃던 소녀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며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합니다. 감나무 잎은 기차놀이할 때 차표로 이용하였습니다. 두 줄 새끼(전라도에서는 ‘산내끼’라고 불렀다.)로 엮어 만든 기차를 타고 골목길을 한 번 다녀오면 감나무 잎 한 장, 두 바퀴를 돌면 2장, 하는 식이었습니다. 차비로 받아 쌓아놓은 감나무 잎을 어느 날 문득 꺼내보니 바스라저서 놀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같이 감꽃은 유년의 시절을 떠올리며 아스라한 추억을 상기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중 하나입니다. “앞마당”, “감나무”, “꽃목걸이”, “감꽃”, “유년”, “꽃마음” 등은 아름다운 추억을 잊지 못하는 시인의 분신들입니다. 이처럼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는 시인은 마음 부자임이 틀림없습니다.
    • 문화
    • 평론
    2024-02-26
  • 그리운 어머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27) 그리운 어머니 강혜지(1974~ ) 봄볕 가득한 마당엔 먼 산에서 뜯어온 나물들 멍석에 가득 널려있고 개구리 종달새 울어대는 논두렁에 핀 어린 쑥을 캐어 쑥개떡을 빚어주시던 어머니 울타리 넘어 실바람 타고 쑥개떡 향이 가득할 때면 한 바구니 가득 담아 이집 저집 나눠주시며 웃음꽃 피어나고 우물가 수줍게 고개 내민 탐스런 앵두, 어여쁜 내 어머니 입술같이 더욱 빠알갛게 익어 가던 봄 초록으로 물든 내 고향 들판 석양 무렵 장관을 이룰 때면 청보리 바람에 일렁이는 사잇길 황금빛 곱게 익어가는 신록의 오월 휘어진 허리 펴고 호미자루 뒷짐 지시며 발걸음을 재촉하신다 굴뚝에 저녁 짓는 연기 피어오르면 멀리 지내는 자식들의 무사를 바라는 늙으신 어머니의 걱정조차 아름다운 내 고향 오월 장밋빛 붉은 사랑 어머니 당신이 그리워 오늘도 난, 고향길 풀섶을 걷고 있습니다 강혜지 시인 소개 시인, 서각가, 작사가. 한양문화예술협회 이사, 한국문예창작진흥원 기획홍보실장, 황금찬노벨문학상 추대위원, 한양문화예술협회 사무팀장, 문학광장 사무총장, 방송통신대문학회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민문학협회 회원, 시와 늪 문인협회 회원, 한겨레문인협회 회원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27번째 시는 강혜지 시인의 “그리운 어머니”입니다. 시골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아들의 낌새로는 감기에 걸리신 것 같은데, 어디 불편하신 데 있으시냐? 는 물음에 아주 건강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들, 며느리, 손녀 안부가 제일의 관심사입니다. 일정 체크를 꼼꼼히 하시곤 밤길 다니지 마라, 술 많이 마시지 마라, 가정 화목이 제일이다, 하소연이 깁니다. 그러시면서 동네 가가호호 안부를 전해주십니다. 아랫집 아들이 손자를 낳았다며 좋아하시고, 윗마을 할아버지의 부음을 안타깝게 말씀하십니다. 건강이 제일이라는 말씀은 오늘도 빼놓지 않으십니다. 남는 농작물 조금 보냈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조금 보냈다는 박스 속에는 호박이며 고추, 양파, 당근, 깨, 상추 등속이 빼곡히 채워져 있을 것입니다. 이제 정말 생전 마지막이라는 김장김치도 몇 년째 계속 보내고 계십니다. 풍족한 도시 생활이지만 어릴 적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셨던 음식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쑥개떡”의 맛은 어찌 잊겠습니까. 그런 쑥개떡을 빚을라치면 “이집 저집/ 나눠주시며 웃음꽃”으로 동네를 환하게 했던 게 시골 인심이었습니다. “휘어진 허리”로 밭일하시다가도 “발걸음을 재촉하신” 이유는 가족들을 위해 “저녁 짓”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정성으로 자식들은 도시로 나가 가정을 이루며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삶에 쪼들릴수록 도시의 자식들은 “내 고향”에 계신 “어머니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어머니께서 계신 “고향길 풀섶을 걷”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합니다. 어머니의 “붉은 사랑”이 그리운, 추운 겨울날입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 문화
    • 평론
    2024-01-23
  •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25) 숨 진란(1959~ ) 미운 사람 없기, 지나치게 그리운 것도 없기, 너무 오래 서운해 하지 말기, 내 잣대로 타인을 재지 말기, 흑백논리로 선을 그어놓지 말기, 게으름 피지 말고 걷기, 사람에 대하여 넘치지 말기, 내 것이 아닌 걸 바라지 말기, 얼굴에 검정 색깔 올려놓지 말기, 미움의 가시랭이 뽑아서 부숴버리기, 그냥 예뻐하고 좋아해주고 사랑하기, 한없이 착하고 순해지기 바람과 햇볕이 좋은 날 자주 걸을 것 마른 꽃에 슬어 논 햇살의 냄새를 맡을 것 그립다고 혼자 돌아서 울지는 말 것 삽상한 바람 일렁일 때 누군가에게 풍경 하나 보내줄 것 잘 있다고 카톡 몇 줄 보낼 것 늦은 비에 홀로 젖지 말 것 적막의 깃을 세우고 오래 걸을 것 진란 시인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2002년 계간 <주변인과 詩> 편집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 16회 미네르바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혼자 노는 숲>,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가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25번째 시는 진란 시인의 “숨”입니다. 우리가 삶을 산다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 설정에 다름 아닙니다. 삶이 온전하다거나 행복하다거나 성공했다고 느끼는 감정은 타인과의 관계가 어떻게 조화롭게 유지됐느냐의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주위를 뒤돌아보면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사기를 당했다거나, 꾼 돈을 못 받아 고통을 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 글을 도용당해 억울해하는 이들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숨”을 잘 못 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숨은 삶일진대 그런 사람들은 삶에서 고통이 느껴집니다. 많은 사람들은 삶에서 행복이나 기쁨을 느끼며 살고 싶을 것입니다. 모두가 그러기를 바라며 삽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으로 살고 있는지 반성도 해야 합니다. 내가 바라는 만큼 나도 이웃에게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폐를 끼치지는 않고 살아가는지 반추해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이 시 1연은 이웃과 잘 지내기 위한 내적 마음의 다짐이라면, 2연은 이웃에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주문합니다. 아무렴, 제대로 된 “숨”을 쉬며 살기 위해선,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선, 이러한 강령들을 실천하며 살아야겠지요. 오늘, 그대 “숨”은 평안한가요?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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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론
    2023-11-22
  • 국경1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24) 국경 1 신현주(1960~ )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슬그머니 넘어가고 있었다 다만 시간이 한 시간 뒤로 물러났다 경비도 검문도 없었다 삼엄함도 배타도 없었다 아, 나라들이여, 이런 경계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신현주 시인 30여 년 간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가 얼마 전에 퇴직했음. <녹색평론> 5, 6월호에 ‘내 아들의 아들 때에는’ 외 4편을 발표했음. 2021년 시집 <경의선 숲길에서 쓰는 편지>를 발간했음. 현재 시를 쓰며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음. 우리가 언제쯤 아름다운 경계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인류는 과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잇을 것인가 등등의 생각들로 마음이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음.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24번째 시는 신현주 시인의 “국경 1”입니다. 2000년대 초 딸과 함께 11일 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경이(驚異)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독일광장에서 경험했던 맥주축제는 황홀함에 다름 아니었으며, 세느강 주변 젊은이들의 자유스러운 사교의 풍경은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거리거리는 옛 유물의 산 흔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딸과 저를 놀라게 한 것은 국경을 지나는 데도 “경비도 검문도 없”고 “삼엄함도 배타도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여행 전에 유럽여행 가이드북을 통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눈앞에서 목격하고 나니 유럽의 민주주의가 지상 최고의 가치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기차 안에서 딸과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 논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국가 간의 경계선은 ‘철의 장막’, ‘철조망’을 연상케 합니다. 그런 인식이 뿌리박혀 있는 우리가 유럽의 자유로운 국경을 보고 놀라워했던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경계선”은 우리가 사는 모든 주위에 존재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이웃과 이웃 사이, 남과 북, 동과 서를 막론하고 존재합니다. 남과 여, 젊은이와 노년층, 지역별로 뿌리 깊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거창하게 평화를, 공존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것에 대한 울림은 성능 좋은 마이크 소리보다 몇 백 배, 몇 천 배는 크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 댓글0추천해요1 스크랩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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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6
  • 내 동생 태어난 날-선영이에게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22) 내 동생 태어난 날 -선영이에게 이승하(1960~ ) 엄마 배 뻥뻥 차더니 엄마 배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가셨다 어떤 아기가 내 동생일까 나를 졸졸 따라다닐까 오빠라고 부를까 밤늦게 병원에서 오신 엄마와 아빠 보자기에 둘둘 싸여 같이 온 내 동생 새빨간 얼굴인데 두 눈이 깜빡깜빡 업어주어야지 손 잡고 다녀야지 떼쓰면 양보하고 잘못하면 고쳐주어야지 내 동생이랑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내야지 오빠야 응 선영아 *이선영(1962~ )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등단. 시집 『사랑의 탐구』 『폭력과 광기의 나날』 『생애를 낭송하다』 등 다수. 그 밖에 시 선집과 평전을 다수 냈다.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 한국가톨릭문인협회 부회장, 한국문예창작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22번째 시는 이승하 시인의 “내 동생 태어난 날”입니다. 세상의 많고 많은 경이(驚異) 중에 탄생만큼 신비로운 경이도 없을 것입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혈족의 탄생은 신기함과 호기심에 있어 비견할만한 것이 없을 지경입니다. 더구나 세상에 대한 놀라움이 가득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순수를 넘어 동심(童心) 그 자체일 테지요. 제목부터가 “내 동생이 태어난 날”입니다. 얼마나 많은 호기심, 희망, 기대, 설렘이 내포되어 있는지 보이지요. “새빨간 얼굴인데 두 눈이 깜박깜박” 이 부분에서 자지러집니다. 오빠의 사랑이 온 집안을 채우고도 남겠습니다. 사랑만 있는 오빠가 아닙니다. “업어주어야지 손 잡고 다녀야지” 오빠 노릇 제대로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동생에 대한 사랑이 주렁주렁합니다. “떼쓰면 양보하고/ 잘못하면 고쳐주어야지” 하지만 오빠는 무조건 주지만은 않을 요량입니다. 잘못을 고쳐주겠다니 의젓하기까지 합니다. ‘가화만사성’을 데려오지 않더라도 이런 집안을 화목하지 않으려야 화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웃음꽃이 만발할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내 동생이랑 오래오래/ 사이좋게 지내야지” 또 한 번 자지러집니다. “오빠야 응 선영아” 자지러짐에 방점을 찍습니다. 좋은 시는 우리 모두를 행복한 세계로 안내하는 행복열차에 다름 아닙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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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8
  • 외로움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20) 외로움 나태주(1945~ ) 맑은 날은 먼 곳이 잘 보이고 흐린 날은 기적소리가 잘 들렸다 하지만 나는 어떤 날에도 너 하나만 보고 싶었다 나태주 시인 1945년 충남 서천군 출생.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대숲 아래서’ 등단. 2020~2021 제43대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2020년 제31회 김달진문학상 시부문 수상 등 다수의 수상. 시집 <대숲 아래서> 등 다수.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20번째 시는 나태주 시인의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을 사전에서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둘이 있다면 외로움이 없어지나요? 아니겠지요. 외로움을 어떻게 사전적으로만 정의할 수 있겠어요. 알다가도 모르는 게 인간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십 몇 년 전, 미국 북동부와 캐나다의 국경 사이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큰 규모와 위용에 놀랐고 이어 폭포의 물소리에 무척 놀랐습니다. 폭포의 물소리는 세상을 뒤집어 놓고도 남을 만했습니다.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문뜩 ‘곁에 누군가 있어서 같이 이 풍광을 온몸으로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찾아왔습니다. 지구 한쪽 끝에 나만 있다는 생각! 같이 간 일행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외로움은 어떤 것일까요? “먼 곳이 잘 보이고” “기적소리가 잘 들렸”지만 “어떤 날에고/ 너 하나만 보고 싶”은 게 외로움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외로움의 저쪽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지 않을까요? 외로움과 사랑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사랑을 하면 외롭지 않을까요? 사랑과 외로움은 대척점이 아니라 자아 분열을 통한 일란성 쌍둥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외로움이 외로움을 만나면 사랑이 되고, 지독한 사랑은 외로움으로 발현하는... 짤막한 시 한 편이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 문화
    • 평론
    2023-06-26
  • 느티나무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9) 느티나무 윤효(1956~ ) 잠시 앉아 허리를 펴거나 둘러앉아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던 아름드리나무를 베어낸 그 자리에 새마을회관이 들어섰다. 준공식 날, 면장이 오고 군수가 오고 국회의원이 왔다. 오색 테이프를 끊고 사진을 찍었다. 동네가 훤해졌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읍내 장을 보고 돌아올 때마다 길을 잃었다. 들녘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소들도 음매 음매 목을 놓았다. 윤효 시인 충남 논산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현대문학』으로 등단. 보성여고, 오산중학교 교사, 교장 역임. 시집 『물결』 『얼음새꽃』 『햇살방석』 『참말』 『배꼽』 시선집 『언어경제학서설』 등이 있음. 편운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풀꽃문학상, 동국문학상 등 수상. 현재 <작은詩앗 채송화> 동인. <문학의집 서울> 상임이사.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9번째 시는 윤효 시인의 “느티나무”입니다. 고향 마을 입구나 한 가운데에는 오랜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어 동네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시골 출신들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 느티나무는 마을 꼬마들의 놀이터에 다름 아니었으며 “마을 대소사를 의논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단오 등 때가 되면 느티나무 아래서 고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느티나무는 마을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 느티나무가 어느 시절부터인가 ‘새마을운동 잘살아보자’는 미명 하에 베어지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도로를 확장 포장한다는 명분에 밀리기도 했습니다.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라며 마음속의 안식처를 빼앗아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위한다며 느티나무 자리에 “새마을회관”을 짓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기도 했습니다. 하물며 그런 날은 “면장이 오고 군수가 오고 국회의원이” 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 운동회 날 등 고향 잔칫날이나 했던 “오색 테이프를 끊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고선 “동네가 훤해졌다고” 그날 참석했던 윗분들(?)은 공치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느티나무가 없어짐으로 해서 시골의 정서와 마을의 평화가 마음속으로부터 사라지고 있었음을... “마을 사람들”이 “읍내 장을 보고 돌아올 때마다 길을 잃”었고 “소들도 음매 음매 목을 놓”고 울었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속절없는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우리 시대에 윤효 시인의 시 “느티나무”는 큰 울림으로 우리 가슴속에 머뭅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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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4
  • 참새의 언어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8) 참새의 언어 박향숙(1966~ ) 밝은 햇살 아래 산수유 붉은 나뭇가지에 짹짹 짹짹 신나게 지껄이는 참새 가족의 전원田園 오늘은 한 마리가 날아와 짹 짹 짹 한 마디씩 툭 툭 뱉는다 외로운 걸까 그리운 걸까 아니면 가슴이 아픈 걸까 대화가 안 되는 화창한 아침이 슬프다 박향숙 시인 충남 천안 출생. 월간 『시사문단』으로 등단. <한국시사문단작가협회> 회원, <반여백> 동인, <오투인헤어디자인연구소> 운영. 천안시 1호 미용명인, 김해 비엔날레 국제미술제 초대작가, 한양예술대전 초대작가. 시집 『참새의 언어』가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8번째 시는 박향숙 시인의 “참새의 언어”입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에는 조그마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하루 중 가장 기분이 좋은 때는 새벽을 알리는 온갖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들릴 때입니다. 녀석들은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아니하고 새벽마다 찾아와 잘도 재잘거립니다. 나른한 기분으로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녀석들의 지저귐을 듣고 있노라면, 여기가 마치 천상의 세계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직박구리, 딱새, 곤줄박이, 박새, 동고비 등이 목청을 가다듬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면 그들은 대화를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만의 리듬과 흐름이 보입니다. 대화에 참여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은 참새들의 대화입니다. 유독 청아하게 집단을 이루며 재잘거립니다. 발레를 보는 듯한, 오페라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아침 일찍 듣는 참새들의 재잘거림은 환상입니다. 여름철에 듣는 매미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무엇인가가 그들의 대화에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한 마리가 날아와/ 짹 짹 짹/ 한 마디씩 툭 툭 뱉”고 맙니다. “참새 가족의 전원”이 아닙니다. 그들과 동화되어 같이 합창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보려 했던 마음이 어느새 사라집니다. 그것은 단발마처럼 들리는 참새 한 마리의 “외로운” “그리운” “가슴이 아픈” 소리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참새에게 다가가 연유를 물어보고 싶지만 “대화가 안 되”는 현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여기서 참새는 자연 동화를 표현하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실상일 수도 있습니다. 대화는 단절되고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이웃에 대한 안타까움일 수도 있습니다. “신나게 지껄이는” 참새처럼 일상이 회복되어 “화창한 아침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참새의 언어”가 기다려지는 아침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 문화
    • 평론
    2023-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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