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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한 편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쓴 시집

디카시집 『도나 노비스 파쳄』 출간한 리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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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호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시 쓰는 리호라고 합니다. 시집에 실린 프로필로 대신하자면, 2023년 전 2100광년 떨어져 있는 M2-9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파인애플을 먹다가 지구에 불시착했습니다. M2-9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도 그 행성을 가본 이가 없어서 믿을지 모르겠습니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시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2014년 실천문학 제3회 <오장환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고 제3회 <이해조문학상>과 제4회 <디카시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시집으로는 『기타와 바게트』가 있습니다. 절친한 친구로는 곰과 지구, 양 세 마리와 토끼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이번 시집 『도나 노비스 파쳄』은 어떤 시집일까요.

'Dona Nobis Pacem'은 라틴어로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집은 아픈 사람들을 위한 마음의 위안서이자 '토닥이 책'으로서 개인의 아픔, 사회의 아픔, 그리고 지구의 고통까지 한 편 한 편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쓴 시집입니다.

추천사를 쓴 김종회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리호 시인의 디카시는 ‘신박’하고 창의적이다. 이번 시집 『도나 노비스 파쳄』에서도 그의 새롭고 튀는,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디카시의 형식 속에서 기묘한 안정감을 구축하고 있는 그 시의 성향은 변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그렇게 매번 다른 시인이 가지 않은 ‘미개척의 서부’로 떠날 것 같다.”라고 평했습니다. 시는 텍스트로서의 상상만 하면 되었지만 디카시는 거기에 하나 더 영상까지 합쳐져서 두 배, 아니 네 배로 뇌 속의 회로가 복잡합니다. 디카시 쓰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해봤습니다. 곁가지를 모두 쳐냈을 때의 그 뼈대가 얼마나 단단하고 역설적이고 창의적일 수 있을까 리호의 ‘서부’는 앞으로도 계속될 듯합니다.


-디카시와 디카시집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세요.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digital camera)와 시(詩)의 합성어로 사진과 5행 이내의 시적인 언어가 결합하여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을 말합니다. 사진과 시가 별개의 작품성을 지니는 포토 포엠(photo poem)과는 달리, 디카시는 두 가지 요소가 하나로 융합된 형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포토 포엠은 자연스러운 풍경과 같은 물리적인 요소를 담아내는 반면, 디카시는 화학적인 혼합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마치 계란 노른자와 식용유를 섞어 만든 마요네즈처럼 새롭고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죠.(웃음)


-디카시집을 내게 된 동기가 있을까요.

2017년 계간 ≪디카시≫에 「투영」이란 작품을 발표했는데 뜻밖에도 2018년 제4회 디카시작품상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얼떨결에 디카시 잘 쓰는 시인이 되었고(하하하) 그 후 꾸준히 작품을 쓰고 발표했습니다. 이번 시집은 5년간의 발표 시와 신작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발표 지면이 많지 않아 신작 시가 더 많이 수록되었습니다. 1회 수상자인 공광규, 2회 김왕노, 3회 송찬호, 5회 이운진 시인들 모두 디카시집이 나온 터라 등 떠미는 이가 없어도 괜히 시집을 출간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습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어느 날 아침 문득 시집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 일사천리로 시집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도서출판 실천의 이어산 발행인과 멋지고 세세하게 살펴주신 편집부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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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집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진을 찍다 보면 아주 작은 것들에도 흥미가 생깁니다. 오래 전 제게 시는 가장 힘든 시기에 다가왔습니다. 시를 쓰면서 다시 삶의 기운을 얻었습니다. 시가 제게는 약방문이 된 셈입니다. 하루하루 너무 빠르게 살다 보니 마음의 여유를 잃을 수도 있고, 이유 없이 불안하거나 심장이 먹먹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디카시를 쓰면서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겼습니다. 디카시 쓰는 과정은 자신을 낮추고 더 깊게 들여다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게 이번 시집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스스로 단단해지는 과정에서 주위의 아픔도 보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쉽지만 결코 쉽지 않고, 어렵지만 결코 어렵지 않은 새로운 문학 장르, 디카시입니다.


-해설 부분이 독특하던데요, 혹시 이번 디카시집을 엮으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시집 뒤편에는 'Agnus Dei'라는 제목의 해설 모음이 총 8편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리호의 디카시를 나이와 직업군이 다양한 시각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궁금해졌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앉은 곳과 포즈는 모두 다르지만 바라보는 눈은 한 방향으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재학생부터 시인, 평론가,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 계신 분들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원래는 아홉 분이었습니다. 그 마지막 분이 사실은 저의 ‘야스 오마니 순달씨’였습니다. 31년생 올해로 93세이신데 큰 글씨로 파일을 전송해도 읽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싣지 못했습니다. 만약 두 번째 디카시집을 출간하게 된다면, 빔 프로젝터 등을 활용하여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웃음)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면 살짝 알려주세요.

이번 디카시집이 나오고 보니 큰 숙제 하나를 마친 듯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 생각 없이 삽니다. 계획이 있을 수 없고요, 하루가 일생이라 생각하고 산 지 꽤 되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아 살아있구나, 태어났구나, 오늘은 무엇으로 살아볼까, 꽈배기는 어떨까, 아니지 핫핑크나 청록으로 살까, 아니지 그냥 우비를 사랑하는 빗방울로 하자’ 그래서 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이제 마음 편하게 두 번째 시집 준비하는 척해도 될 듯합니다. 이르면 내후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며 살다 보니 제가 시곗바늘인지 사람인지 착각에 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시간과 화해하며 살까 고민해 볼 생각입니다.

앞으로 25년간 꿋꿋하게 근사한 글쟁이로 남을 수 있을까요?(하하하)


-이번 디카시집에서 딱 한 편 소개해 주신다면요.

「입추」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독자가 가장 많이 질문하는 디카시라서 뽑아봤습니다. 디카시가 일반 시와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순간성에 있습니다. 순간 포착한 형상, 즉 이 모습은 세상에 딱 한 장밖에 없다는 겁니다. 「입추」라는 작품의 사진은 출근하면서 문득 눈에 보인 현관 차양막을 찍은 것인데, 가만 보니 오랫동안 비, 바람, 눈 등 즉 자연이 툭 내려놓은 ‘위로의 말’ 같았습니다. 그 풍경이 제게 “먹구름이 흘린 눈물로” 만든 “가을 종유석”으로 다가왔고. 그것을 “먹구름”이 “그린” 가을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극사실적인 순간 포착은 디카시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한 마디 해주세요.

드라마<동백꽃 필 무렵>의 배우 오정세의 남자조연상 수상소감을 듣던 중 맘을 단단하게 하는 문장이 있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그냥 계속하다 보면 평소와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여러분들에게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367일을 디디는 힘이 ‘신의 잔소리’라면 368일을 견디는 힘은 여러분을 사랑하는 혹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그것’이라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카메라에 찍힌 찰나의 지구든 사람이든 하늘 우물 속 바람이든 간에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평화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도나 노비스 파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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