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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디, 일본 웹툰 시장 돌풍… ‘품격을 배반한다’ 연재 2주. 거래액 10억 원 돌파
    콘텐츠 플랫폼 기업 리디(대표 배기식)가 자사의 웹툰 ‘품격을 배반한다’가 일본 최대급 웹툰 플랫폼 ‘메챠코믹’에서 연재 2주 만에 거래액 10억 원을 돌파했다고 16일 밝혔다. 일본 골든위크 기간에 맞춰 처음 공개된 이 작품은 연재와 동시에 주간 종합 랭킹 1위에 오르며 단숨에 인기작으로 떠올랐다. 웹툰 ‘품격을 배반한다’는 재정난에 빠진 가문의 헌신적인 장녀와 오만한 국왕의 외조카 간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리디의 글로벌 웹툰 구독 서비스 ‘만타(Manta)’에서 지난해 연간 인기 순위 2위를 차지하며 이미 글로벌 로맨스 판타지 팬들의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인기는 일본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지난달 26일 연재를 시작한 이후 2주 만에 거래액 10억 원을 돌파하며 놀라운 흥행세를 과시했다. 일본 시장을 사로잡은 현지화 전략 리디는 ‘품격을 배반한다’의 일본 현지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일본 독자의 특성을 고려해 많은 정보를 담은 프롤로그를 과감히 삭제하고, 작품의 몰입도를 높이는 섬세한 번역을 통해 일본 독자를 사로잡았다. 이러한 현지화 전략은 작품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리디의 또 다른 흥행작 ‘상수리나무 아래’ 역시 일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상수리나무 아래’는 지난 2월 ‘메챠코믹’에서 연재 30일 만에 거래액 25억 원을 돌파했으며, 3개월 연속 월간 종합 랭킹 1위에 오르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리디는 ‘상수리나무 아래’와 ‘품격을 배반한다’ 등 흥행작을 중심으로 일본 웹툰 시장 내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리디 관계자는 “리디의 경쟁력 있는 웹툰이 연이어 흥행하면서 일본 웹툰 시장 내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리디의 고품질 IP를 중심으로 참신한 작품을 선보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리디의 성공 비결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독자의 취향을 고려한 작품 선정에 있다. 일본 웹툰 시장은 타국 작품이 자리잡기 어려운 시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리디는 이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리디는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와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을 통해 일본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또한,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현지화 전략을 강화하고, 지역별 독자의 취향을 반영한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할 방침이다. 리디의 웹툰 ‘품격을 배반한다’가 일본에서 거둔 성공은 한국 웹툰의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하는 사례가 됐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독자의 취향을 반영한 작품 선정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앞으로 리디가 어떤 새로운 작품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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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2024-05-16
  • 웹툰 작가 권리 침해 문제, 공정위 시정 조치에도 업계 불공정 계약 여전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웹툰 플랫폼 사업자들의 불공정 약관을 적발하고 시정 조치를 취했지만, 웹툰 작가들의 2차 저작물 작성권을 침해하는 문제는 여전히 업계 전반에 걸쳐 자주 발생하고 있다. 특히 소설과 웹툰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원작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올리는 상황에서, 출판사나 플랫폼이 자신들의 권리를 극대화하려는 불공정한 계약 조항을 추가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지난해 웹소설 공모전을 주최한 A사는 공모전 상금에 '원 소스 멀티 유즈(OSMU) 원고료'를 포함한다고 공지했다. 이는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가 A사에 우선적으로 귀속되며, 2차 저작물이 만들어지더라도 작가의 수입은 순수익의 일정 비율로 제한된다는 의미다. 이 같은 계약 형태는 과거 큰 논란이 됐던 '구름빵' 사례와 유사하며, 공정위의 기존 판단과도 배치된다. 공정위는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나 수익 배분은 원작자와 별도로 합의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근 유명 작가 B씨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출판 계약서에 새롭게 등장한 2차 저작물 관련 조항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B씨는 별도 에이전시와 전속 계약을 맺고 2차 저작물 제작·중개 실무를 위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사가 여전히 2차 저작물 관련 수익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해 '검정고무신'의 고 이우영 작가 사망을 계기로 콘텐츠 업계의 불공정 계약 관행을 조사하고 있다. 네이버웹툰과 레진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웹툰 플랫폼들의 약관을 점검하고, 불공정 사항을 시정했다. 공정위는 이어서 오는 3분기에 출판사와 제작사 등이 사용한 콘텐츠 계약 약관 심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추가보상청구권 도입을 통해 원작자가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법적 보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유럽연합(EU), 독일, 미국 등은 이미 작가와 플랫폼 사이의 불균형이나 불공정 계약으로 인해 양자 간 이익이 현격히 벌어질 경우, 작가 측이 적절한 보수를 청구할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저작권법 개정안 4건이 발의됐으나 아직 국회 소관 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는 21대 국회의 임기 종료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해결해야 할 긴급한 문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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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0
  • 문재인 전 대통령, 가지산 정상 등정과 신간 발표
    지난 8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71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해발 1241미터 가지산 정상에 오른 것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인증하며 건강함을 과시했다. 이와 동시에 퇴임 후 첫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의 발간 소식을 공유하며, 지적 활동 능력 또한 여전함을 드러냈다. 문 전 대통령은 8일 오후 3시 42분경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울산 울주군 상북면 소재 가지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게시했다. 이 사진에는 어버이날을 맞아 아들 문준용, 딸 문다혜 씨 가족으로부터 받은 꽃다발을 지참한 모습이 담겼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의 등반을 '어버이날 선물'로 묘사하며 "어버이날효도는 뭐니뭐니해도 건강"이라는 해시태그를 추가해 강조했다. 같은 날, 출판사 김영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첫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오는 20일 출간한다고 발표했다. 이 책은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의 질문에 문 전 대통령이 답변하는 대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고록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와 안보 정책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의 물밑 협상과 이들에 대한 평가를 포함한다. 회고록에서는 ▷김정은 위원장과의 도보다리 회동,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남·북·미 판문점 회동,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일본 수출규제 대응, ▷COVID-19 방역 등 문재인 정부 당시의 주요 외교적 및 국내외 안보 이슈들이 상세히 다루어진다. 이번 가지산 등정과 새 책 발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여전히 활발한 건강과 지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보로 평가된다. 공개된 사진과 책을 통해 문 전 대통령은 문무 겸비의 모습을 국민에게 다시 한번 인식시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가지산 등정과 신간 발간은 그의 건강과 지속적인 사회적, 지적 기여를 동시에 강조하는 이벤트로, 한국의 정치적 리더십과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활동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며, 문 전 대통령의 지속적인 공적 기여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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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9
  • 잘못된 음주 상식,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
    술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특정 주종을 적정량 섭취하면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음주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건강 관련 조언 목록에서 '금·절주'가 빠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술자리 전후의 민간요법, 효과는? 술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술자리를 전후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다양한 민간요법이 전해진다. 이는 과음의 건강상 부작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잘못된 음주 상식은 오히려 건강을 더 해칠 수 있다. 아래에서는 음주와 관련된 대표적인 오해 세 가지에 대해 알아보겠다. 1. "안주는 안 먹을수록 좋다?" 술 때문에 살이 찔까봐 안주를 거의 먹지 않고 술만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술에 취하는 속도가 빨라져, 결과적으로 과음이나 폭음을 하게 될 위험이 높아진다. 실제로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 중 상당수가 안주 없이 술만 마시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알코올은 1g당 7㎉의 열량을 가지고 있지만, 영양분은 거의 없다. 그래서 안주 없이 술만 마시는 날이 계속되면 영양분 결핍이 생기기 쉽다. 적절한 안주 섭취가 음주 중 과음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2. "미리 해장하고 잔다?" 음주 후 귀가해 습관적으로 야식을 먹고 자는 사람들이 있다. 미리 해장 음식을 먹어 다음 날의 숙취를 줄인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잠들기 직전의 야식 섭취는 소화기관을 밤새 혹사시켜, 오히려 다음 날 아침의 숙취를 악화시킬 위험이 크다. 따라서 술을 마신 날에는 잠들기 전까지 물이나 이온음료 등을 제외한 다른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3. "숙취는 운동으로 잡는다?" 술을 빨리 깨기 위해 음주 다음날 아침에 헬스장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다. 맥주 1~2잔 정도의 소량만 마신 다음날이라면 유효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과음이나 폭음을 한 다음날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과음으로 인한 만성적 탈수 상태를 가중시키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술이 덜 깬 상태에서는 심신의 집중력이 떨어져, 운동 중 부상을 당할 위험도 높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과음한 다음날에는 충분한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우선이다. 음주와 건강 관리, 적절한 균형 필요 이처럼 음주와 관련된 잘못된 상식들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술을 적절히 섭취하는 것은 물론이고, 음주 전후의 습관 역시 건강을 유지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과음이나 폭음을 자주 한다면, 술을 끊거나 줄이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위 기사를 제목을 달고 재구성해서 5000자 정도로 체계적으로 다시 신문기사체로 작성해 줘
    • 문화
    2024-05-08
  • 세종대왕 탄신 627주년 기념, 다채로운 공연 및 한글문화 체험행사 개최
    오는 5월 15일, 세종대왕 탄신 627주년을 기념하여 다양한 공연과 한글문화 체험행사, 특별행사가 개최된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일환)은 세종대왕의 탄신을 축하하고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를 마련했다. ‘세종대왕 나신 날’은 스승의 날이기도 하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겨레의 큰 스승으로 여겨 이날을 기념일로 정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한글의 창제와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며, 한글의 우수성과 소중함을 일깨우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한글박물관에서 열리는 공연은 용산구립소년소녀합창단의 축하노래로 시작된다. 이어 '무형유산 도감'팀의 길놀이, 줄타기, 사자춤, 버나놀음 등으로 구성된 <조선서커스 솟대쟁이패: 백희(百戲)> 공연과 마술사 지혜준의 <한글 마술공연>이 진행된다. 사전 예약한 관람객이 도포를 입고 과거시험을 치르는 참여형 역사체험극 <세종, 인재를 뽑다>도 공연된다. 이날 행사에서는 세종대왕과 함께 한글박물관을 걷는 <세종대왕 행차재현>도 준비되어 있다. 관람객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세종대왕과 함께 걸으며, 한글창제에 반대했던 최만리를 설득하는 세종대왕의 일화를 볼 수 있다. 또한, <한글 OX 문제풀이>, <세종대왕 생신상 사진찍기>, <한글 네컷 사진 상자>, <세종대왕 대형블록 맞추기> 등의 행사가 열린다. <한글 OX 문제풀이> 생존자와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한글 관련 기념품이 제공될 예정이다. 한글박물관 야외마당에서는 한글을 주제로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체험부스에서는 한글 달고나 뽑기, 한글 탁본체험, 모래상자 한글체험(샌드박스), 한글 도장찍기, 한글 책갈피 만들기 등 다채로운 한글문화 체험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성공하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도 마련되어 있다. 한글박물관의 안승섭 기획운영과장은 “가족들과 함께 즐기면서 세종대왕의 나신 날을 기리고, 한글의 소중함과 우수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참가비가 없으며, 자세한 내용은 국립한글박물관 누리집 또는 기획운영과(02-2124-6291)로 문의하면 된다.
    • 문화
    2024-05-07
  • 마동석의 주먹이 다시 한번 빛나는 순간
    2024년 4월 24일에 개봉한 한국 영화 '범죄도시4'는 기존 시리즈의 인기 요소를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관객들에게 친숙한 액션과 코미디의 진수를 선보였다는 평이. 마동석 주연의 이 영화는 상영 시간 109분 동안 범죄와의 전투를 그려내며,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영화는 특유의 강력한 액션과 유머를 바탕으로 마석도 형사(마동석 분)와 그의 팀이 다시금 범죄와 맞서 싸우는 모습을 그린다. 이번 편에서는 특히, 백창기(김무열 분)와 장이수(박지환 분) 등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이야기에 신선함을 더했다. 백창기는 조직의 행동대장으로 잔인함을 띄며 강력한 빌런으로 등장, 마석도와의 대결 구도를 형성한다. 전편들에서 호불호가 갈렸던 점을 고려해 영화는 다소 안전한 수순을 밟으면서도 관객에게 익숙한 맛을 제공한다. 액션 장면들은 중독성 강한 숏폼 영상처럼 연속적이고 강렬하게 펼쳐지면서, 심심할 틈 없이 진행된다. 장동철(이동휘 분)과 같은 캐릭터가 범죄자가 아닌 조력자로서 참여하면서 발생하는 해프닝은 영화에 유쾌한 웃음을 더한다. 그러나 영화는 여전히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관객들 사이에서는 이미 익숙한 패턴과 스토리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지적도 존재한다. '범죄도시4'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흥미롭고 관람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마동석의 카리스마와 강력한 액션은 여전히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며, 쿠키 영상이 없음에도 영화의 마지막까지 관객을 자리에 묶어둔다. 이 영화의 성공 여부는 관객의 반응과 손익 분기점인 350만 명의 관객 동원에 달려있다. 현재까지 '범죄도시4'는 극장가에서 꾸준한 관심을 받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입니다. 만약 '범죄도시5'가 제작된다면, 제작진은 새로운 변화와 신선한 요소를 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문화
    • 영화
    2024-04-27

실시간 문화 기사

  • 이근자 지부장 회원 '자질 향상' 고객만족 실현
    대한미용사회 광양시 이근자 지부장을 만났다. 이 지부장은 34년 동안 미용인으로 외길 인생을 살며 현재 리헤어 피카소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미용사회 광양시 지부장과 도지회 수석 부지회장을 역임했다. 특히 지역사회의 장애인과 독거노인을 비롯해 취약계층에 재능기부와 봉사활동을 통해 회원들과 기술 공유 및 화합을 다지고 있다. 이근자 지부장은 “열악한 환경 속에 회원 숫자는 인근 타 시의 반에 불과하다. 하지만 열정과 화합, 그리고 단결과 봉사는 어느 시·군 못지않게 우수하다. 그리고 회원 상호 간에 끈끈한 결속력은 서로 힘든 부분을 다독이며 풀어가는 멋진 지부이다.”라며 자랑했다. 이 지부장의 지부 운영에는 철학이 있다. 첫째, “회원이 있어 지부가 존재하는 것”이라며 회원들과 소통을 최우선으로 한다. 둘째, “개인의 실력 인정과 기술 보급 우선”이라며 각 세미나를 통해 교육에 힘쓴다. 셋째, “타 단체와 협약 봉사활동을 같이 이끈다.”라는 기준으로 미용 단체를 알리고 있다. 광양지부 이 지부장은 소외 계층이나 복지센터, 장애인 시설과 노인을 대상으로 미용 서비스를 재능기부하고 있다. 또한 대화를 통한 심리 안정 유도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이 지부장은 “전남 동부지회 하옥현 지부장님은 기술교육 보급의 중요성에 대해 매우 강조하는 분이며 소규모 세미나를 이끌고 계신다”라며 자신의 멘토라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지부장은 “저도 적극적인 미용 기술 보급에 힘써 질 좋은 미용 기술을 널리 알리겠다.”라고 밝혔다. 또 “회원의 자질향상과 회원 모두를 어우를 수 있는 넉넉한 포용력 및 진취적인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며 미용계 지도자가 가져야 할 품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용 기술은 끝없이 배우고 도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름다움은 끝이 없다.”라는 지론이다. 그렇기에 “고객의 외적 아름다움과 내적 치유도 미용을 통해 제공돼 수혜자에겐 행복을 전달하는 뜻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미용업을 하며 행복한 기억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코로나 시국 이전 광양시 미용인들의 단합을 위해 주관한 체육대회가 행복한 기억”이라 답했다. 그러면서 “서로 단결과 합심으로 응원을 외치고 함께 땀 흘려가며 결속력을 보였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래서 “올해 제2의 한마음체육대회를 광양시지부 원장님들과 함께 개최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억으로 “권기형 교수님의 GHS(Global Hair Study)를 통해 여러 원장님과 기술교육을 함께 배우며 여러 작품을 만들어 순천 ‘미인전’이란 작품전시회를 열었다. 그동안 만들었던 작품들을 출품하고 전시했을 때 그동안 노력의 결실이 매우 행복했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봉사활동을 이야기하며 “여러 단체와 활동하며 제가 건강해서 재능기부를 할 수 있고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이 오히려 참 감사했다.”라고 회고했다. 이런 점들을 기억하며 “앞으로 모두를 이롭게”라는 모토로 아름다움에 대한 교육으로 미용인 직업에 긍지와 자부심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리고 지속적 기술교육과 회원 간의 화합과 단결을 통해 결속력 있는 지부로 고객 만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
    • 인터뷰
    2024-01-25
  • "회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나아가고 있습니다"
    “회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 나아가고 있습니다” 구리미용협회 박정임 지부장 박정임 지부장(사진=본인제공)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뷰티라이프 애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구리미용협회에서 3선으로 연임 중인 박정임 지부장입니다. 중앙회 기술 강사 4기이며, 현재 구리시에서 ‘박정임헤어’를 32년 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용을 시작한 지는 벌써 46년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구리지부의 자랑은? 저희 지부는 구리지역 회원 여러분과 임원 분들이 동지애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동지애로 똘똘 뭉쳐 있다는 예가 많이 있지만 실제 예를 들자면, 2년 전 지부의 자금 사정으로 회비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단 한 분의 탈퇴도 없이 회비 인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저희 지부의 임원들은(13명) 지부의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임원회의 후 협회 자금을 사용할 수도 있었으나 따로 회비를 거두어 그 돈으로 식사와 회식비 등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애써주시는 모습을 볼 때 지부장으로서 뿌듯함을 넘어 감사한 마음이 넘쳐나고도 남습니다. 이런 우리 구리지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끈끈한 동지애를 만든 비결이 궁금합니다. 정말 어렵게 코로나라는 터널을 지나왔지만 펜더믹이 끝난 지금의 상황이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고들 합니다. 저희 미용업이 더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 구리 미용 원장님, 회원들을 위해 올해는 무료 미용아카데미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그리하여 현재 구리시청에 지원을 요청해 놓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용아카데미를 통하여 구리 미용인들의 재교육으로 보다 질 좋은 미용서비스로 미용실 매출을 향상시키고자합니다. 그리고 미용봉사를 활성화시켜 미용협회의 지역사회 공헌도를 높이고자합니다. 미용인을 위해 사심 없이 일했던 것이 우리 구리 미용인들을 똘똘 뭉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지부장님은 우리 미용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오신 걸로 유명합니다. 지금까지 미용사로서 46년을 살아오며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중앙회 기술강사로 제주에서 서울까지 전국을 누비며 강의를 해왔고 미용학원을 운영하며 후배양성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46년을 지나오며 후배 양성하는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만 앞으로 기회가 온다면 저의 기술이나 노하우를 미용계를 위해 바치겠다는 각오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미용인으로서, 강사로서 인기의 비결이 무엇일까요? 제가 인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러나 지금까지 제 할일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평소 미용 철학은? 저의 미용철학은 항상 노력하는 자세입니다. 저는 지금도 동영상이나 기타 방법을 다하여 선진 미용기술이나 선, 후배들의 기법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배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번 익힌 기술은 누가 훔쳐갈 수도 없습니다.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앞서가는 미용인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간 즐거운 일도 많으셨지요? 20년 전 지부장을 퇴임하고 미용 일에만 몰두하며 지내는데, 지난 2018년 경 이숙희 전 도지회장님께서 다시 한 번 지부장에 도전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조언과 이끌어 주심에 다시 협회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또 지부장을 2번 연임하며 저희 임원들과 울고 웃으며 지부의 현안들을 헤쳐 나갔던 일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김진숙 명장님 후보시절 후보님을 도우며 후보님의 열정적인 모습은 지켜보며 함께했던 그때가 행복했고 기억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그때 김진숙 명장님 선거 운동하던 부산의 정두심 회장님이 계셨는데 너무나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서 눈시울을 적시곤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단기적으론 올해 계획하고 있는 구리미용아카데미 개최에 주력하여 이 아카데미가 일회성이 되지 않고 매년 개최되어 구리지역 미용인들의 재교육을 통해 구리지역 미용인들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미용인의 생업이 더 나아지는데 이바지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그리고 지부장을 그만두고 미용실을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가위 하나들고 남편과 전국 오지를 다니며 힘없고 소외된 이들에게 봉사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라 할 수 있겠네요.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정임 지부장 프로필 -세종대 경영대학원 수료 -1991년 IBS 미국 미용선발대회 금상 -미국 비달사순 수료 -영국 알랑 인터내셔날 수료 -우즈벡공화국 초청 미용페스티발 개최 -러시아 위생성 장관상 -1995년 기능올림픽 심사위원 -미용 국가고시 심사위원 -2000년 복지부장관상 -2000년 경기도 신지식인상 -1991년 IBS 뉴욕 세계미용대회 한국대표 -현재 구리미용협회 3선 지부장
    • 문화
    • 인터뷰
    2024-01-25
  • 미용은 너무나 행복한 직업입니다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 -최명주 지부장 미용이 좋아 미용을 시작했네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미용인을 위해 노력하네 하나 되는 미용인을 꿈꾸네 미용은 존재감을 깨우쳐주는 일등 공신 지부장으로서 회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려 고민하네 소중한 아내, 네 딸의 어머니 가정의 행복이 제일임을 아네 남편은 진정한 동반자 30년이 한결같네 복 많은 사람임을 매일매일 알려주네 한 식구 같은 광주 미용인, 동료 미용인 변하지 않는 남편과 딸들 행복한 마음을 감출 수 없네 이 행복 오래오래 간직하며 살고 싶네 모두에게 고루고루 나눠주고 싶네 좋은 인연은 맺을수록 좋다 좋은 사람과 인연은 맺을수록 좋다. 더해 생각하는 바가 같고 성격이 비슷하다면 금상첨화라 한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은 가까워지는데 많은 요소가 작용한다. 그중 물리적 시간 관계도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간혹 물리적 시간 관계를 뛰어넘는 관계도 종종 존재한다. 기자와 최명주 지부장과 관계는 이 경우다. 기자는 특성상 인터뷰 대상이나 작품을 의뢰할 때 지인의 소개를 받곤 한다. 그 첫째 이유는 지인에 의한 소개는 신뢰감이 상승이다. 믿음을 사회생활의 중요한 담보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 지부장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기자가 가장 신뢰하는 한 사람 중 오해석 前 경기도 지회장의 추천이었다. 오 전 지회장은 "인품과 성격, 그리고 기술력 중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다."라며 최 지부장을 소개한 터였다. 먼저 전화 통화를 했다. 얼굴은 마주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미용계를 이끌 수 있는 재원(才媛)이란 확신이 들었다. 첫 만남 그리고 인터뷰 강원도 속초의 미용 행사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제대로 인사를 나누기에는 바빴다. 이후 표지모델을 제안했고 표지촬영 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표지촬영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눈 기자는 당일 미용 일기장과 SNS에 다음과 같이 썼다. 표지 연출을 맡은 최 지부장은 중앙회 기술 강사 출신이며 실력과 인성, 미모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앞으로 미용계를 이끌 재목임이 분명하다. 좋은 미용 친구 한 분을 또 만났다. 앞으로 기대가 크다. 촬영을 마친 후 뒤풀이 때 우리는 분위기를 핑계 삼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특히 부군과 사이가 좋고 매우 좋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어 기뻤다. 최 지부장은 “남편과는 남편이 고등학교 다닐 때 미용실 고객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결혼 30년이 되었다. 그 과정에 네 딸을 둔 딸 부자로 만들었다.”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항상 처음부터 지금까지 감사한 마음은 여전하다. 그리고 남편의 한결같은 마음에 저도 항상 놀라고 감탄한다.”라며 남편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했다. 또 “남편은 제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제가 복이 많은 사람이다.”라며 “혼자서는 이 모든 일을 할 수 없었다. 남편이 늘 수족처럼 함께 해 주어서 가능했다.”라며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최 지부장은 슬하에 딸 넷(봄, 여름, 가을, 겨울)을 두고 ‘최명주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 현재 광주시지부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활동에 많은 애로가 있었을 것이라며 남편에게 감사하는 최 지부장의 금슬에 기자는 부러웠다. 모범적인 지부 운영 최 지부장은 광주시에서 교육비를 지원받아 회원들에게 전액 무료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치과, 내과, 정형외과 등과 협약해 회원들 병원비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또 광주시 여성 보육, 노인 장애인, 자원봉사 단체와 협약을 맺고 봉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최 지부장은 미용협회 위상과 미용인 자긍심 고취에 일조하고 있다. 최 지부장은 “미용은 저에게 기적이고 선물이며 성장이다. 제가 미용인이 되지 않았다면 내성적 성격에 단조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라며 “미용인으로 살며 다양한 삶의 고객과 만나고 많은 점을 배울 수 있었다. 또 지부장직을 수행하며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며 “무엇보다 미용은 제게 다양한 면에서 풍요로운 삶을 선물했다. 미용인의 나의 삶 속에 가족 다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저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다.”라며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 함께할 저의 모든 것이다.”라고 밝혔다. 최 지부장의 가족과 미용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진 최 지부장의 이런 마음은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최 지부장에게 거는 기대가 더 크다. 하나 되는 미용인을 위해... 최 지부장은 협회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최 지부장은 “저는 협회와 같이 성장하고 있는 미용인이며 그래서 더욱 협회에 애정이 크다. 회원이 아니더라도 회원이 되고 싶어 하는 협회, 그런 협회를 함께 만들었으면 한다.”라며 “경쟁과 개인의 이익보다 미용인 전체에 이익이 되는 마음이면 좋겠다. 전체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마음이 되는 미용인이 되기를 부탁한다.”라고 당부했다. 기자는 미용계 생리를 잘 알고 있다. 오랜 세월 이 방면 일해 온 탓이다. 최 지부장의 말은 깊은 공감을 줬다. 그래서 최 지부장의 말처럼 미용인이 하나의 마음으로 움직이길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최 지부장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가화만사성'이란 한자 성어가 있듯 제가 먼저 추구하는 것은 가정의 행복이다. 그래야, 일이 잘되는 것이 맞더라.”라며 “첫째 가정의 행복, 둘째 지부의 행복, 셋째 강사 활동을 통해 더 많은 미용인을 만나 제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대부분 사람은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 말한다. 하지만 행복은 추상적 목표에 함몰되는 있는 경우가 많다. 최 지부장은 가족과 자기 일을 기반으로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구체적 목표를 가는 것이 삶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실천하는 최 지부장에게 앞으로 기대가 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직 “삶을 성공 했다.”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최 지부장.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최 지부장. 선택에 있어 양심에 따라 옳은 선택에 고민한다는 최 지부장.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 노력하는 최 지부장이 있기에 기자는 미용계 앞날의 희망을 본다. 한 사람의 좋은 친구를 얻는 것이 한세상을 만나는 것과 같다는 구절이 귓가를 맴도는 마음 훈훈해지는 하루다. 최명주 지부장 프로필 산업예술전문학사. 경기도지사배 미용예술경연대회 심사위원 역임. 소상공인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역임. 국제한국미용페스티벌대회 심사위원 역임. 한국미용경기대회 심사위원 역임. 대한미용사회 경기도지회 상임의원 역임. 현, 제 18기 대한미용사회회중앙회 기술강사. 현, 대한미용사회 광주시지부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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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4-01-24
  • 송광사(松廣寺)로 향한 발길을 따라
    송광사는 전남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曹溪山)에 자리 잡고 있다.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로 사방을 병풍처럼 산에 둘러싸여 아늑한 명당자리에 위치한다. 삼보(三寶)는 불교의 신행 귀의 대상인 불(佛)·법(法)·승(僧)을 가리키는 말로 통도사가 불(佛), 해인사가 법(法), 송광사가 승(僧)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곳 송광사에는 유심히 보면 어느 절에나 있는 석등과 석탑이 없다. 우화각에 하나 달린 풍경을 제외하면 풍경도 없어 송광사 삼무(三無)라 말한다. 석등과 석탑이 송광사 풍수지리상 터가 연꽃이 물에 떠 있는 연화부수(蓮花浮水)형이라 무거움을 상징하는 석탑과 석등을 세우면 가라앉을 수 있다. 또 풍경 소리는 스님의 수행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 한다. 송광사는 창건에 대한 자료는 정확히 없다. 그러나 송광사사적비(松廣寺事蹟碑)와 승평속지(昇平續誌)에 보면 신라 말에 혜린 대사(慧璘大師)가 창건하여 당시 길상사(吉祥寺)라 불렸다. 승려 수는 3·40명을 넘지 못하는 규모의 절이었다. 이에 대한 창건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이를 설명하면 신라 말의 고승 혜린 대사가 제자들과 함께 산천을 돌며 수행했다. 그런데 제자들과 더불어 역병에 걸리고 말았다. 제자들은 꼼짝없이 산속에서 병으로 죽는 것에 두려워 떨고 있었다. 이때 혜린 대사가 제자들을 다독이며 이 고통을 참아야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 독려했다. 이후 기도를 위해 정결한 장소를 찾으니 마침 눈앞에 큰 연못이 나타났다. 그리고 못가에는 문수보살의 돌부처가 있었다. 혜린 대사는 문수보살이 우리를 구하러 왔다면서 돌부처 앞에서 7일 동안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마지막 기도일 꿈에 석가여래가 나타나 “너는 더 배울 불도가 없다. 그러니 새로운 절을 세워 중생구제를 하도록 하라”라고 했다. 이때 혜린 대사가 역병으로 죽어가는 제자들을 살려달라고 했다. 이에 석가여래는 “모든 시련이 끝났으니 안심하라”라고 했다. 이에 감사한 마음으로 혜린 대사가 합장 배례하고 눈을 뜨니 석가여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 제자들의 역병이 다 나았다는 함성이 들리며 돌부처가 늙은 스님으로 변했다. 늙은 스님은 자신이 석가여래의 분부를 받고 왔다면서 불보(佛寶) 세 가지[붉은 가사 한 벌, 향나무 불발(佛鉢), 불두골(佛頭骨) 한 조각]를 건네주었다. 라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이후 1200년(신종 3)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이곳으로 옮기며 정혜결사(定慧結社:불교계 정화 운동. 종래의 불교가 세속화된 신앙적 반성에서 출발,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통합을 추구)를 추구하였다. 몇 년 뒤에 조계산(曹溪山) 수선사(修禪社)로 개명했다. '寺'가 아닌 '社'를 붙인 것에 대해 불교에서 해탈·열반을 목표로 뜻을 같이하며 수행·정진하는 모임을 가리키는 '결사'라는 의미로 보인다. 그 뒤 그의 제자였던 혜심(慧諶)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까지 16명의 국사가 연이어 이곳 송광사에서 배출되며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삼보사찰(三寶寺刹)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 1774~1842)가 1828년에 지은 “연천옹유산록”이다. 여기에서 홍석주는 “불가에서 말하기를, 동국의 사찰에 삼보가 있으니, 통도사에는 부처님 두골(頭骨)이 있으므로 불보라 하고, 해인사에는 대장경이 있으므로 법보라 하고, 송광사는 승보라 하는데 보조국사 이후 16 국사가 배출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19세기 이전에 송광사는 ‘승보사찰’이라는 관념이 형성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불일암(佛日庵) 무소유를 주장하신 법정 스님의 숨결을 느끼며 송광사에 오르다 보면 처음 갈림길 왼쪽은 불일암(佛日庵)으로 오른다. 불일암은 법정(法頂) 스님(1932~2010)이 17년간 머무셨다는 작은 암자다. 1992년에 이곳을 떠나 강원도 작은 오두막에서 홀로 수행하셨다. 이후 2010년 서울 길상사에서 입적한 후 이곳 송광사 불일암 후박나무 아래 산골 했다. 불일암은 8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본디 이곳은 16 국사 중 7대 자정 국사가 창건한 자정암이 있던 터다. 불일암을 오르는 길은 꽤 가파르다. 법정 스님이 걸었다던 무소유의 길이 펼쳐진다. 불일암을 오르는 길은 소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지며 작은 개울이 흐르며 맑은 물소리가 난다. 20여 분의 산길을 따라 오르면 뿌리를 드러낸 나무 사잇길이 있다. 그리고 돌계단이 시작되는 대나무 숲길을 지나면 불일암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법정 스님은 1970년대 초반 불교계 인사 중에는 가장 적극적인 사회운동을 했다. 1974년 인혁당 사건 이후 민주화운동으로 박해받을 때마다 증오심이 생기며 수행에 방해된다고 생각하며 불일암에서 많은 저서를 남겼다. 스님은 폐허이던 이곳에 작은 암자를 짓고 불일암이란 편액을 걸었다. 스님은 불일암에서 한 달에 한 편의 글로 세상과 소통했다. 그리고 송광사 수련원장을 맡아 사찰 수련회의 시금석을 놓았다. 작은 암자 댓돌에 스님이 신었다던 삭은 고무신이 놓여있다. 작은 암자 왼쪽으로 나무 테이블과 나무를 잘라놓은 의자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암자 우편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정 국사 부도 묘광탑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암자를 한단 내려가면 스님의 청빈한 삶을 보여주듯 텃밭이 꾸며져 있다. 불일암을 뒤로하고 송광사라 향하는 산등성이를 넘다 보면 감로암(甘露庵)이 있다. 감로암은 송광사의 제6대 원감 국사 충지(冲止)가 창건한 사찰이다. 일찍이 충지가 김해 감로사(甘露寺)에서 수행하였던 것을 기념해 이름을 ‘감로암’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감로암은 총림의 4개 기관(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 중 염불원이 있다. 감로암을 지나 구불구불 길을 내려오면 부도전을 앞에 보조국사 비가 있다. 이 비는 보조국사 지눌의 출가 이후 행적과 업적을 적은 비석이다. 1210년 당시 보조국사가 입적하자 행장을 모아 제자 혜심 중심으로 왕에게 탑비를 세울 것을 주청해 세웠다. 그러나 이후 어떤 연유에서 파괴되었고 현재 탑비를 1678년(숙종 4년)에 다시 세웠다. 부도전 옆으로 율사들을 양성하는 기관인 율원이 있다. 송광사(松廣寺)로 향해... 조계산(曹溪山) 이란 이름은 신라 문무왕 원년(661) 중국의 대감 선사가 당나라 불교의 제6대 조종이 되었다. 대감 선사는 황제에게 매화나무 인장을 받아 허리에 차고 황금 지팡이를 앞세우며 영남지방의 소조 부의 조 씨 마을에 이르렀다. 그 마을의 촌장인 조서량과 마을 사람들이 평상시 대사님의 덕을 흠모하였던 터여서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가까운 쌍봉산 큰 골짜기에 수나라 말에 전쟁으로 불타 폐허가 되어 있는 보림의 옛 절터(계림)에 절을 세우고 스님을 모셨다. 이후 대감 선사(혜능 스님) 조계산에서 40년간 설법했다. 대감 스님이 일으킨 선풍을 조계선(曹溪禪)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인 조계종의 명칭이 여기서 유래했다. 그러나 조계산 송광사는 불교계 새로운 전통을 확립해 선종 사찰의 근본 도량 역할로 보조국사를 조계종의 실질적 시조로 보기도 한다. 공식적으로는 도의 선사가 조계종의 시조로 돼 있다. 대사가 계신지 아홉 달 정도 된 이후 떠나면서 조 씨의 은혜 보답을 위해 산의 이름을 조서량의 ‘조’와 쌍계의 ‘계’를 한자씩 따서 ‘조계’라 지었다. 이처럼 중국의 ‘조계’가 태어난 유래라고 전해오고 있다. 위치는 지금의 곡강현의 동남쪽 약 12km 지점인 광동성과 호남성의 경계에 있는 커다란 산줄기 남쪽 쌍봉(산) 밑 골짜기에 있다. 순천의 조계산은 선암사 쪽과 송광사 쪽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두 사찰과 산의 이름의 변천을 살펴보면 송광사는 효령봉을 주산으로 송광산·길상사(신라), 송광산·수선사(고려), 조계산·송광사(조선)라 변천했다. 선암사는 장군봉을 주산으로 청량산·해천사, 청량산·선암사, 조계산·선암사로 변천한 기록이 있다. 송광사는 절 이름에 대해 세 가지 설화 첫째. 18명의 큰스님이 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송광사의 '송(松)'을 풀어 보면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며 18명의 큰스님이 불법을 만천하에 펼 절이라는 뜻이다. 둘째로 보조국사 지눌 스님과 연관된 전설로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렸다. 그랬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 (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했다. 육당 최남선이 이 전설을 토대로 송광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로 해석하고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셋째는 예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다. 그래서 송광산이라 불렀고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산이 솔갱이(‘소나무’ 사투리)가 많아 ‘솔메’로 부르고 광(廣)은 언덕을 의미하는 강(岡)으로 추정하고 있다. 송광사 입구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1902년에 고종의 요청으로 성수전(현 관음전)을 건립한 이후에 설치했다. 성수전은 과거 황실 기도처였으며 성수전이 있는 사찰이라 예우를 한 것이다. 일주문에 달린 조계산 대승선종 송광사(曹溪山 大僧禪宗 松廣寺)란 현판을 지나면 곧바로 고향수(枯香樹)가 발길을 끈다. 고향수는 지눌 스님이 처음 송광사에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다. 스님은 지팡이를 땅에 꽂으며 “爾我同生死 이아동생사 我謝爾亦然 아사이역연 會看爾靑葉 회간이청엽 方知我亦然 방지아역연 너와 나는 같이 살고 같이 죽으니 내가 떠날 때 너도 떠나고 너의 푸른 잎을 다시 보게 되면 나도 그런 줄 알리라” 라는 시를 읊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님이 살아있는 동안 잎이 무성하게 자라다 스님이 입적하자 말라 죽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제자들이 마른 향나무에 다시 잎이 피어나길 기다리고 있다. 고향수 뒤쪽 척주당과 세월각 이란 작은 사체가 있다. 이곳은 죽은 자의 영혼을 정화하는 곳이다. 이곳에 먼저 죽은 자의 위폐를 두고 법당으로 가기 전에 세속의 때를 벗는 곳 즉, 남녀 위폐를 각각 척주당과 세월각으로 나뉘어 정화하는 곳이다. 삼청교에서 우화등선(羽化登仙) 해볼까. 이제 삼청교(三靑橋)를 통해 송광사 경내로 들어간다. 삼청교는 1976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삼청교는 능허교(凌虛橋)라고도 불린다. 「송광사성공중창록(松廣寺成功重刱錄)」에 의하면, 이 홍교(虹橋:네모난 돌 19개로 무지개 모양)는 1707년(숙종 33)에 다리를 만들고 그 뒤 70여 년이 지난 1774년(영조 50)에 보수했다. 삼청교 밑으로 흐르는 계곡을 이용하여 19개의 4각 장대석을 각지게 맞춰 홍예(虹蜺)를 이루고 양쪽 측면으로는 막돌이 아닌 4각 판석을 쌓아 올렸다. 또 홍예 천장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 돌이 나와 있다. 이 홍교(虹橋)는 다리와 위에 우화각(羽化閣)이라는 건물을 세워 사람의 통행과 건물이라는 이중효과를 내며 독특한 구조이다. 삼청교를 건너다보면 입구의 모양은 여덟 팔(八)자의 모양을 하고 있고 출구의 모양은 사람인(人)의 모양을 하고 있다. 특히 우화각에 걸린 송광사(松廣寺) 편액은 근대 서화가·사진가로 유명한 해강(海崗) 김규진(金奎鎭:1868-1933) 선생이 글을 쓰고 과 고종의 대령숙수 명월관 창립자로 유명한 죽농(竹濃) 안순환(安淳煥:1871-1942) 난과 대나무를 쳤다는 작품이다. 그리고 삼청교와 우화각은 도교적 색채가 강한 이름이다. 우화각 안으로 천왕문이 붙어 있다. 삼청이란 신선이 살고 있다고 하는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의 세 궁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 다른 능허교(凌虛橋)는 ‘모든 것을 비우고 허공으로 건너 오르는 다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우화는 “모든 것을 비우고 허공으로 건너 오르는 다리”라는 의미로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온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의 구절이다. 이는 “신선이 되어 승천한다.”라는 뜻이다. 삼청교와 연결된 왼쪽이 임경당(臨鏡堂)이다. 이는 ‘거울 같은 물가에 임한 집’으로 물가로 튀어나와 물에 살포시 들어앉은 정자는 육감정(六鑑亭)이다. 몸은 물질인 눈(眼)·귀(耳)·코(鼻)·혀(舌)·피부(身)와 정신작용의 마음(意)을 더하여 여섯 가지 감각기관인 육근(六根)에서 비롯된다. 육감정(六鑑亭)이란 정자가 이 모두를 느끼는 바로 그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송광사 최고의 경관으로 꼽히고 있다. 우화각 우측으로 하천가(신평천)에 축대를 쌓아 2층으로 기둥을 세워 누각 형태의 건물이 침계루(枕溪樓)이다. 침계루는 ‘계곡을 베고 누워있는 것’을 의미한다. 삼청교나 밖에서 보면 중층으로 보이지만 안쪽에서 보면 누각이 아닌 대형 단층 건물로 보인다. 안쪽의 건물 현판은 사자루(獅子樓)라고 걸려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전방에 ‘종고루’가 보인다. 원래 천왕문과 대웅보전 사이에 해탈문, 대장전, 종고루, 법왕문이 있었다. 1951년에 전쟁으로 공비에 의해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 ‘종고루’만 복원돼 아쉬움이 많다. 이때 대웅보전도 함께 소실되어 1961년 복원해 1988년 중창하며 규모를 더 키웠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을 바라보며... 대웅보전은 정면 일곱 칸과 측면 다섯 칸의 아(亞) 자형 전각이다. 특히 대웅전 기둥이 주련에 걸쳐 있지 않다. 이는 대웅전뿐 아니라 전각 대부분이 주련이 없다, 이는 복원 시 완벽하지 않은 지식을 경계해 주련을 걸지 않았다. 대웅보전 외벽 벽화는 보살의 여섯 가지 수행덕목인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 등 육바라밀(六波羅密)을 상징하는 내용이 그려져 있다. 이 여섯 가지 수행으로 사바세계에서 열반의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수단을 말한다. 첫째 보시바라밀(布施波羅密)은 일체 탐욕을 떠나 남을 대할 때는 희생과 봉사와 헌신의 정신으로 주고 베푸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둘째 지계바라밀(持戒波羅密)은 계율을 지켜 타인에게 즐거움을 주되 피해는 주지 말며 사물에 있어서 후회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인욕바라밀(忍辱波羅密)은 몸과 뜻과 입에서 일어나는 모든 악한 행동을 참고 이기며 오로지 자비로운 마음이면 모든 일을 이루리라. 넷째 정진바라밀(精進波羅密)은 일체 부정과 불법에 관여하지 말 것이며 바른 일을 위해서는 끈기 있게 노력하라. 다섯째 선정바라밀(禪定波羅密)은 잡된 번뇌와 망상을 버리고 깨끗하고 맑고 티 없는 마음으로 삼매에 들도록 노력하라. 여섯째 지혜바라밀(智慧波羅密)은 부처님의 법과 자비에 입각 오로지 선정으로 미련하고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하는 지혜를 갖도록 노력하라. 이다, 대웅보전 외벽 벽화에는 다섯 번째 선정에 달마대사의 9년 면벽 장면과 여섯 번째 지혜에는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에 담진 물을 먹은 뒤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을 얻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현재 대웅전에는 과거 부처님인 연등불과 현재 부처인 석가모니불, 그리고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과 문수·보현·지장·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승보전의 비사리구시 승보전은 송광사를 상징하는 법당이다. 1988년 대웅보전 중창 시 예전 전각을 옮겨 승보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승보전 옆에는 ‘비사리구시’라 불리는 나무 밥통이 3개가 있다. 이는 송광사의 3대 보물 중 하나다. 기록에 의하면 1724년 남원 송동면 세전골에 있던 싸리나무가 태풍으로 쓰러진 것을 가공해 만들었다. 나라의 제사를 모실 때 손님을 위해 밥을 저장했던 통으로 약 4천 명이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쌀 일곱 가마 분량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송광사의 ‘비사리구시’에 대한 유명한 설화가 있다. 그 설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옛적에 순천 땅 어느 고을에 할머니가 살았다. 일찍 남편을 여읜 할머니는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과 함께 살았다. 큰소리 한 번 내지 않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살았다. 할머니는 송광사를 오가는 데만 족히 반나절이 걸리는 데도 불공드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 70이 되었어도 할머니는 무척 정정해 다들 처녀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점심을 먹다가 아무 이유도 없이 숨졌다. 너무도 조용히 숨져서 자식들은 처음엔 할머니가 돌아가진 지도 몰랐다. 죽은 할머니는 저승사자를 따라 염라대왕 앞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많은 망자가 줄을 서 있었다. 할머니는 궁금해서 앞 사람에게 물으니 ”염라대왕이 재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염라대왕이 순천 송광사를 무척 좋아하여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염라대왕의 물음에 너도나도 가보았다며 염라대왕 앞에 나섰다. 염라대왕은 "송광사의 비사리구시 길이가 얼마며, 높이나 폭이 얼마나 되느냐?" 물었다. 그러자 가본 적이 없는자들이 우물쭈물 엉터리로 대답했다. 염라대왕이 크게 노하며 지옥으로 보냈다. 앞으로 나선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할머니 차례가 되었다. 역시 염라대왕이 비사리구시의 길이, 높이, 너비를 물으니 할머니가 대답했다. 할머니는 "살아 있을 때 해마다 초파일에도 가보고 보조국사님 제삿날에도 가보고 여러 번 가보았습니다. 하지만 바사리구시를 보고도 재보지 않아 알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정직한 사람이라며 크게 칭찬하며 좀 더 살다 오라 하였다. 할머니가 눈을 떠보니 아들이 울고불고 난리였다. 죽었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자 아들이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아들에게 저승에게 겪은 이야기를 하던 할머니는 즉시 송광사에 있는 비사리구시를 재러 가자고 했다. 할머니는 그길로 아들과 함께 자를 들고 송광사에 가서 비사리구시를 재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렸다. 방법을 찾던 아들은 명주실로 길이, 높이, 너비만큼 각각 끊어 할머니의 빨간 주머니에 넣어 드렸다. 그러면서 "어머니, 나중에 돌아가셔서 염라대왕이 물으면 주머니에서 실을 꺼내어 길이는 요만큼, 높이는 요만큼, 너비는 요만큼입니다라고 답하세요"하였다. 할머니는 100살 넘게 살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인근에 비사리구시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 후로 한때 이곳에서는 나이 많은 노인들이 송광사 비사리구시를 자로 잰 후 실을 끊어 빨간 주머니에 차고 다니는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송광사에 노인들이 많이 찾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송광사는 전각이 아주 많다. 과거 80여 동의 전각이 있었다. 그러나 외침과 화재 등에 의해 소실된 전각이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그래도 현재 50여 동이 복원되었다. 송광사는 수행을 우선 하는 승보사찰이다, 그래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 많다는 점은 아쉬움이 있다. 성수전이 관음전이 된 사연 관음전은 1902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聖壽 : 임금의 나이, 望六 : 51세)을 맞아 사액(賜額, 임금이 내린 편액)된 황실 기도처였다. 3단의 축대 위에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로 팔각지붕으로 건조되었다, 건물 외관은 빗살로 단장된 4분 합의 창호와 중앙 석축 앞 계단 소맷돌이 거북 모양으로 특이하다. 그리고 건물 외벽 3면에 십장생(十長生)을 도안하고 화려한 단청을 입혔다. 그리고 전각을 ‘성수전’이란 이름을 붙이고 편액을 내렸다. 황실 기도처였던 까닭에 국내 어는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벽화가 있다. 가운데 불단 좌·우측 벽에 정1품과 정2품 신하들이 허리를 굽히고 있는 모습이 있다. 어간 좌우 기둥 위에는 바깥으로는 용두(龍頭:용 머리)와 내부에는 용미(龍尾:용 꼬리)를 조각해 놓았다. 그리고 관세음보살 좌우에 태양과 달은 고종과 명성왕후를 상징한다. 성수전은 이후 1957년 부근 관음전이 크게 낡아 이를 해체하면서 관음보살을 이곳으로 옮겨 안치하며 관음전으로 바뀌게 됐다. 또 관음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662년 비운의 왕자인 경안군(慶安君) 내외의 수명장원(壽命長遠)을 위해 발원 조성한 불상이다. 경안군은 소현세자의 셋째 아들로 아버지는 할아버지 인조에 의한 독살과 어머니 강빈 또한 인조에게 사약을 받았다. 또 소현세자의 첫째와 둘째가 제주 유배 생활 중 사망하고 경안군만 살아남아 효종 때 복권됐다. 복장 유물이 경안군의 것으로 추정되며 쪽빛 저고리와 발원문 등이 나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웅보전 뒤편 하사당(下舍堂)은 1963년 지정된 보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의 단층 건물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이며 주로 선실(禪室)로 사용되었다. 조선 말기 수선사(修禪社)에서 정진하는 선객(禪客)이 공양하던 곳이나 응진전(應眞殿)의 일을 맡은 임원들이 묵는 노전(爐殿)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남향으로 자리한 건물의 왼쪽 2칸은 온돌방으로 오른쪽 1칸은 부엌이다. 온돌방에는 앞쪽에 툇마루가 놓여있고 천장은 종이 천장이다. 부엌은 서까래가 드러나 있는 연등 천장으로 지붕 밑의 가구(架構)가 모두 보인다. 곧 대들보는 툇마루와 방 사이에 세운 고주(高柱)부터 뒷면의 평주(平柱)까지 통보[通樑]로 걸렸다. 건물 안의 살미첨차는 위아래의 것이 합쳐져 보를 보강하는 짧은 부재인 보아지[樑奉]로 되었다. 옆면에는 덩굴무늬[唐草文]가 조각되었다. 부엌 칸의 지붕 위에는 작은 맞배지붕을 올린 네모난 환기 구멍이 나 있다. 이는 다른 건물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특별한 시설이자 요사(寮舍)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국사전에서 느끼는 16 국사의 기운 국사전은 송광사 전각 중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건물이다. 대웅전 뒤편 오른쪽에 있는데 담장 등에 가려 건물 일부만 볼 수 있다. 국사전은 송광사에서 배출한 16 국사의 진영을 모신 곳이다. 1369년 고려 공민왕 때 처음 지어진 건물로 별로 남아있지 않다. 1971년 국사전을 해체 보수할 때 발견한 ‘상량문’을 통해 1501년 ‘조사영자전(祖師影子殿)’을 개창(改創)한 것을 알 수 있다. 또 1558년 중수했다. ‘송광사지’에는 ‘자음당(慈蔭堂)’으로도 불렸다고 기록되었다. 1722년(경종 2), 1807년(순조 7), 1918년에 각각 중수와 석축을 1926년 고쳐 쌓았다. 이후 1962년, 1972년, 1990년에도 전각을 수리하고 현재 2018년에 새로 조성한 16 국사 진영을 봉안했다. 하지만 1995년 송광사 배출 16 국사의 진영을 도둑이 들어 13점을 도난당한 아쉬운 일도 있었다. 세월각과 척주각에서 관욕을 마친 후 우화각을 건너 사찰안으로 들어선 영가는 지장전(地藏殿)으로 다시 모셔지게 된다. 지장전에서 영가천도의 재가 이뤄진다. 승보전과 함께 대웅보전의 좌·우 법당으로 사용되는 지장전은 1988년 8차 중창기에 중창된 건물이다. 중건 이전 명부전으로 사용되었다. 3단의 높은 축대 위에 세워진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원형 주초 위에 배흘림기둥을 얹었다. 건물 전면은 2, 4분 합의 빗살문을 창호로 가설해 전면을 제외한 3면은 판벽으로 처리한 특이한 모습이다. 3면에는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를 비롯해 인로왕보살도(引路王菩薩圖)ㆍ동자도(童子圖) 등 수많은 불교 벽화가 단청 되어 있다. 내부는 고주 없이 5량의 가구로 처리하여 넓은 장방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ㄷ’자형 불단 위에는 목조 지장보살좌상 좌우에 도명존자, 무독귀왕, 저승의 시왕 등 명부 권속들이 협시해 있다. 후불탱으로는 1987년 금어 조연우(曺延宇)가 그린 지장탱(地藏幀)을 비롯하여 1963년 일섭 스님이 그린 시왕탱(十王幀) 등이 봉안되어 있다. 가장 작은 불전을 바라보며 약사불(藥師佛)을 봉안한 불전(佛殿)을 약사전이라 한다. 송광사의 약사전은 경내 가장 규모이다. 1974년 중수 시 발견된 상량문에 1631년(인조 9)과 1751년(영조 27)에 각각 중건됐다. 정면 1칸과 측면 1칸 규모로 단층 팔작지붕으로 4면이 모두 1칸씩으로 되어 있는 정사각형 건물이다. 후불탱화로는 1904년에 조성된 석가모니 후불탱을 모셨다. 건물 규모에 비해 기둥이나 부재들은 굵직한 목재를 사용했다. 처마 밑을 받친 공포(栱包)가 이출목(二出目)으로 앙서(仰舌:끝이 위로 삐죽하게 휘어 오른 쇠서)의 수는 3개로 전체적으로 장중한 느낌을 준다. 내부 구조는 대들보가 없고 공포는 삼출목(二出目)으로 네 모퉁이의 귀살미부터 부재(部材)가 중앙에서 서로 교차해 천장을 이룬다. 문은 정면에 사분합(四分閤)의 띠살문을 달고 측면에 출입문을 내고 바닥에 마루를 깔았다. 조각 수법을 보아 조선 중기인 17세기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약사전은 건축학적 매우 중요한 특성이 있어 현재 보물 제3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전(靈山殿)의 다른 이름은 팔상전(八相殿)이다. 약사전과 나란히 서 있고 조선 후기의 건물로 보물 제303호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전체적으로 약사전과 비슷한 모습이다. 내부에 목조 석가여래상을 모셨다.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의 영산회상도를 후불탱으로 배치했다. 또한 삼면 벽에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묘사한 팔상탱이 묘사돼 있다. 영산전에 봉안된 석가여래좌상은 1780년(정조 4)에 조성되었다. 상호와 신체 비례가 원만한 조선 후기 목불 좌상이다. 얼굴이 네모 넓적한 형태로 턱선은 둥글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반월형 눈썹 그리고 큰 눈과 코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도톰한 입술에 먼지 미소는 매우 온화한 느낌을 준다, 본존 후불탱인 영산회상도는 1725년(영조 1)에 조성됐다. 가로 186.5㎝, 세로 214㎝의 비단에 채색했다.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여래와 그 청중들을 여실히 표현했다. 또 석가의 생애를 8단계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가 있다. 송광사 기록에 이 건물은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우고 영조 12년(1736)에 수리했다. 현재 건물은 1973년에 보수했다. 천자암을 지은 담당국사는 정말 천자의 아들이었을까. 천자암(天子庵)은 송광사의 제9대 국사인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창건했다. 담당(湛堂)이 중국 금나라 천자(天子)의 셋째 아들이었다. 보조국사가 금나라 장종(章宗) 왕비의 불치병을 치료해준 것이 인연이 되어 왕자 담당을 제자로 삼아 데리고 귀국한 뒤 담당이 천자암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천자암은 무엇보다 쌍향수(곱향나무)로 두 그루가 나란한 쌍처럼 서 있고 주요 줄기가 몹시 꼬여 가지를 밑으로 내려뜨리고 나란히 서 있다. 혹자는 이 모습을 흡사 스승과 제자가 서로 공경하며 절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보기도 한다. 특히 곱향나무는 중국과 백두산에 한정해 자생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천자암의 곱향나무는 남한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곱향나무이다. 쌍향수는 비사리구시, 능견난사와 더불어 송광사의 3대 명물이다.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210)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오며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았다. 이때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서 가지가 하늘이 아닌 땅을 향해 자라는 듯한 오늘날의 쌍향수가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천자암은 그 뒤 1633년(인조 11) 설묵대사(雪默大師)가 중창하고 1730년(영조 6) 자원대사(自願大師)가 중건했다. 1740년 지수(指修)·자징(慈澄) 등이 만세루(萬歲樓)를 중건하고 1797년(정조 21) 제운(霽雲)·두월(斗月)이 중건하며 1893년(고종 30) 구연대사(九淵大師)가 성산각(星山閣)을 신축했다. 1924년 기산(綺山)·해은(海隱)이 중수, 1939년 금당화상(錦堂和尙)이 칠성각을 건립했고 1992년에 법당을 지었다. 현재 법당을 비롯해 나한전·산신각·법왕루·요사 등이 갖춰져 있다. 암자의 뒤쪽 쌍향수는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이 나무는 수령 800년에 높이 12.5m에 이른다. 그러나 보조국사와 담당국사의 연대적 차이가 100여 년이나 차이나 이 전설을 믿기는 어렵다. 담당은 송광사 16 국사 중 9대 국사로 행적과 출생, 생몰연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없다. 천년 사찰을 돌아보며 찰나를 살아가는 인간이 무엇을 그리 집착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일생을 무소유로 일관하신 법정 스님도 당신의 가르침과 행적만을 남겼다. 다음 이에게 무엇인가 남기는 것,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와 방법이 아닐까? 굽이굽이 굽어진 언덕길을 오르고 내리며 이리 굽은 길들이 모두 이유가 있어 굽어진 길로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굽어진 길은 편히 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산을 직선으로 오르면 오르다 지친다. 굽이굽이 돌아가면 조금 더디지만 끝까지 갈 수 있다. 우리 인생도 굽어 가는 것을 낙담할 것이 아니라 내가 견딜 수 있게... 또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내어주고 있다는 것을... 굽은 것을 시련이라 말하면 아마도 선인들이 말한 삶은 견딜만큼 시험이 온다는 말이 이 뜻일까?
    • 문화
    • 여행
    2024-01-24
  • 그리운 어머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27) 그리운 어머니 강혜지(1974~ ) 봄볕 가득한 마당엔 먼 산에서 뜯어온 나물들 멍석에 가득 널려있고 개구리 종달새 울어대는 논두렁에 핀 어린 쑥을 캐어 쑥개떡을 빚어주시던 어머니 울타리 넘어 실바람 타고 쑥개떡 향이 가득할 때면 한 바구니 가득 담아 이집 저집 나눠주시며 웃음꽃 피어나고 우물가 수줍게 고개 내민 탐스런 앵두, 어여쁜 내 어머니 입술같이 더욱 빠알갛게 익어 가던 봄 초록으로 물든 내 고향 들판 석양 무렵 장관을 이룰 때면 청보리 바람에 일렁이는 사잇길 황금빛 곱게 익어가는 신록의 오월 휘어진 허리 펴고 호미자루 뒷짐 지시며 발걸음을 재촉하신다 굴뚝에 저녁 짓는 연기 피어오르면 멀리 지내는 자식들의 무사를 바라는 늙으신 어머니의 걱정조차 아름다운 내 고향 오월 장밋빛 붉은 사랑 어머니 당신이 그리워 오늘도 난, 고향길 풀섶을 걷고 있습니다 강혜지 시인 소개 시인, 서각가, 작사가. 한양문화예술협회 이사, 한국문예창작진흥원 기획홍보실장, 황금찬노벨문학상 추대위원, 한양문화예술협회 사무팀장, 문학광장 사무총장, 방송통신대문학회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민문학협회 회원, 시와 늪 문인협회 회원, 한겨레문인협회 회원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27번째 시는 강혜지 시인의 “그리운 어머니”입니다. 시골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아들의 낌새로는 감기에 걸리신 것 같은데, 어디 불편하신 데 있으시냐? 는 물음에 아주 건강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들, 며느리, 손녀 안부가 제일의 관심사입니다. 일정 체크를 꼼꼼히 하시곤 밤길 다니지 마라, 술 많이 마시지 마라, 가정 화목이 제일이다, 하소연이 깁니다. 그러시면서 동네 가가호호 안부를 전해주십니다. 아랫집 아들이 손자를 낳았다며 좋아하시고, 윗마을 할아버지의 부음을 안타깝게 말씀하십니다. 건강이 제일이라는 말씀은 오늘도 빼놓지 않으십니다. 남는 농작물 조금 보냈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조금 보냈다는 박스 속에는 호박이며 고추, 양파, 당근, 깨, 상추 등속이 빼곡히 채워져 있을 것입니다. 이제 정말 생전 마지막이라는 김장김치도 몇 년째 계속 보내고 계십니다. 풍족한 도시 생활이지만 어릴 적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셨던 음식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쑥개떡”의 맛은 어찌 잊겠습니까. 그런 쑥개떡을 빚을라치면 “이집 저집/ 나눠주시며 웃음꽃”으로 동네를 환하게 했던 게 시골 인심이었습니다. “휘어진 허리”로 밭일하시다가도 “발걸음을 재촉하신” 이유는 가족들을 위해 “저녁 짓”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정성으로 자식들은 도시로 나가 가정을 이루며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삶에 쪼들릴수록 도시의 자식들은 “내 고향”에 계신 “어머니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어머니께서 계신 “고향길 풀섶을 걷”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합니다. 어머니의 “붉은 사랑”이 그리운, 추운 겨울날입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 문화
    • 평론
    2024-01-23
  • 제주 탐방
    돌하루방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큰 눈에 자루병 코를 가졌다. 입술 다문 얼굴로 감투 썼으며 두 손을 배에 모으고 있다. 수호신적, 주술적 기능은 육지의 장승과 다르지 않다. 장승은 신앙적 대상이기에 신성시되어 함부로 손대거나 건드릴 수 없었다. 치켜 올라 부릅뜬 눈, 주먹 코, 귀밑까지 찢어진 입모양은 위협적이고 두려우면서도 인자함과 어수룩한 익살의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 장승은 짝을 이루어 세우거나 경기 이남 지역은 4개의 장승을 깎아 마을 사방에 세우고 고사를 지낸다. 반면, 제주 돌하르방은 현무암을 깎아 만들었으며 싱긋 웃는 입, 동공없이 튀어나온 눈, 크고 넓적한 코, 알듯말듯한 미소, 손을 배에 얹은 모습이다. 남아선호 사상이 심하던 시절 돌하르방 코를 만지면 남자 아기를 낳는다는 미신으로 돌하르방 코 부분을 가루내어 물에 타먹었다고 전한다. 실제로 일부 돌하루방 코가 닳거나 없어진 서글픈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성문 앞에 세워진 탓에 경계 표시, 또는 성안의 안전을 지키는 종교적 기능도 담당했다. 그러나 일제 시대 제주항 개발및 매립 위해 성벽 이루던 돌이 모조리 바다로 수장되면서 돌하르방은 큰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도 1971년 지방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면서 돌하르방 명칭을 얻게 되었다. 하르방(할아버지), 할망(할머니)은 현무암 특징인 투박하면서 정감가는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켜주고 있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문인을 상징하고, 왼손 위에 놓인 것은 무인을 상징한다. 양손 평등한 돌하르방은 평민을 상징하는 것으로 근래 만들어진 것이다. 제주 대학교 돌하르방은 높이가 높고 얼굴에 주름 많아 전형적인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대정현 돌하르방은 다른 돌하르방보다 순한 모습이다. 특히 동그란 눈은 소처럼 선하기 그지없다. 정의현 돌하르방은 필요한 부분만 강조해서 조각한 느낌이다. 이렇듯 돌하르방도 가지각색이다. 현대의 돌하르방은 카카오 본사에 있는 노트북 든 모습, 칼춤 추는 난타호텔 돌하르방까지 개성 넘친다. 예전에는 경계표시 기능과 마을 수호신이었던 돌하르방이었다. 지금은 제주 어딜 가든 쉽게 볼수 있는 돌하르방이다. 가까이 가면 "하영봅서~" 친절하게 인사말 나눌 듯 친근한 이미지다. 제주를 찾아오는 수많은 관광객을 공항 입구에서 먼저 반기는 돌하르방은 제주의 얼굴이다. 돌하르방이 미래에도 잘 보존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 문화
    2024-01-14
  • 죽음에 대한 승화와 새해를 맞이한 우리의 본성을 시로 쓰다
    소천 그래, 짧은 운명을 지닌 연약한 생의 소멸이 아닌 천사의 귀환이라 하겠다 마지막 날 네가 울던 고통의 신음을 내 기억 저편 아픔이 아닌 천국으로의 응답이라고 하겠다 천사가 나에게 기쁨을 또 행복과 웃음을 주러 내려왔다가 천국의 부름을 받고 다시 올라갔음을 이건 끝이 아니라 그곳에서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아픔 없는 영원한 안식처에서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만을 되새기고 있음을 -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이 부모든 형제든 자식이든 인간의 짧은 생애가 끝난 것을 목격한 그 아픔은 굉장히 충격적이고 찢어질 듯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가 죽었을 때 그 죽음을 천사의 귀환이라 여기고 하늘로 소천하였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싶다. 시의 마지막 말처럼 사랑하는 이를 잃은 모든이가 하늘로 간 그들이 아픔 없는 영원한 안식처에 도달하여 나를 지키고 바라보고 있다고 믿는 정신적 승화에 이르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 우리의 본성은 -새해를 맞이하여- 도돌임표 같지만 한 끗 차이의 숫자가 다르다 한 끗 차이의 숫자일 뿐인데도 정결한 마음가짐 다시 시작하는 순백의 자세 우리는 얼마나 섬세하고 예민한 본성을 가졌는가 변화에 대하여 비워내고 한 숨 크게 들이쉬고 맞이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정신 이번 새해에는 이러한 본성을 말미암아 타인에게 열린 마음으로 음지를 향한 예민함이 아닌 양지를 향한 촉각을 세우고 더 좋은 관계를 위해 노력하기를 민감하고 섬세한 배려로 타인과의 유기적인 관계에 또한 그들과의 영양가 있는 소통에 잘 활용하는 한해가 되기를 - 달력을 보면 1년 내내 지난해와 같은 숫자가 반복된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숫자가 반복될 것이고 내후년에는 내년과 같은 숫자가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점은 무엇인가? 바로 한 끗 차이의 숫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한 끗 차이의 숫자를 굉장히 크게 받아들인다. 마지막 밤에는 타종을 하기도 하고 다음날 새해에는 일출을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명소에 모이기도 한다. 그리고 새해 아침 식사 시간이 되면 집집마다 떡국을 끓여먹는 관습을 치르기도 한다. 심지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시간이라는 개념이라 따지고 보면 어제와 똑같은 하루인데도 말이다. 나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건강하고 섬세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변화에 대하여 묵은 마음을 깨끗이 비워내고 정갈하게 다듬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고 건강한 것인지를 말하고 싶다. 더 나아가 이러한 민감하고 건강한 정신을 잘 활용하여 좋은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그들과 더 발전된 소통을 하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 이민영 기자 진도군 바닷길 소망 포토에세이 대상 문학고을 신인문학상 한국서정문학 신인문학상 등
    • 문화
    • 문학
    2024-01-09
  • 미용은 나에게 마음의 스승이다
    미용인보(美容人譜)57 미용은 나에게 마음의 스승이다 (사)한국미용장협회 서울시지회 노인선 회장 노인선 회장 참된 미용인의 표상 -노인선 회장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했던 미용! 성실함으로 오늘의 나를 만들었네 미용인은 고객의 겉면만을 꾸미는 사람이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가슴속으로 다가가 내면까지 이름답게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란 걸 비로소 깨닫네 오늘도 공부하네 그리하여 기술을 전수하고 마음을 전하고 봉사를 실천하여 미용인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네 참된 미용인으로 미용인의 표본으로 길이 남네 우뚝 솟네 미용을 하게 된 이유 미용을 오래하셨던 미용인들을 만나면 기자는 ‘어떻게 미용을 시작하셨느냐’는 질문을 꼭 하게 됩니다. 이는 기자의 호기심의 발로이지만 엉뚱한 대답이 나오길 기대하는 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미용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눈치들 채셨겠지만 가난에서의 탈출이 주된 이유입니다. 지금이야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사는 사람들이 없지만 몇 십 년 전의 우리나라를 상기하면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미용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노인선 회장의 대답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면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가난이라는 현실 속에서 꿈을 꾸기가 어려웠고, 이를 위해 자본을 스스로 구축하자고 계획했습니다. 이에 선택한 것이 미용이었습니다. 그 시절 미용 기술은 산업사회에서 새로운 서비스 산업으로 대두되었고, 미래지향적인 직업이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야무진 대답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인선 회장의 대답은 이어집니다. “젊은 날에는 단순히 현실적인 이유로 미용을 선택하였지만,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고, 그에 맞게 노력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좋은 고객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가게 오픈과 동시에 결혼, 출산 등의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한 곳에서 계속 가게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한 강의에서 ‘가슴 뛰는 꿈은 없다, 작은 꿈을 만나 내 가슴이 뛸 때까지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는 곧 이제까지 미용이라는 꿈과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나의 이야기에 다름 아닙니다.” 주경야독으로 박사 학위까지 그렇습니다. 노력만이 인간을 완성시켜나가고 발전시켜나간다는 것을 노인선 회장은 일찌감치 간파한 것입니다. 노인선 회장은 어릴 적부터 공부를 좋아했으나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사회생활을 먼저 하면서 주경야독하며 기본 교육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늦게 시작한 공부였지만 면학에 힘써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몇 권의 책으로 써도 모자랄 지경이었을 터. 노인선 회장은 이러한 노력 뒤에서도 미용인의 참된 삶을 실천하고자 봉사하는 데에도 전력을 다했습니다. 평소 해왔던 봉사 외에도 미용 기술을 주도적으로 프로그래밍하여 취약한 계층을 위한 사회기관에 접목, 코로로 인해 미용기술이 효과를 발휘하는 흐뭇한 경험을 갖기도 했습니다. 노인선 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운영해왔던 미용실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계명문화대학교에 겸임으로 재직하고 그 외 대학생과 같은 교육이 필요한 곳에서 강의와 실무자로서의 노하우를 전수하며 후학 양성에도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장을 맡아 서울 지회의 발전과 나아가 미용장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미용산업 발전에 기여케 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이 정도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노인선 회장의 매력이자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인선 회장은 앞서가는 미용인답게 미용에 대한 생각도 남다릅니다. 미용은 마음의 스승 “나에게 미용은 마음의 스승입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남을 위해 희생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본인들의 아름다움, 개인에 대한 존중들이 중시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표면적으로만 보았을 때에는 많은 고객들이 겉으로만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대의 변화 속에서 개개인의 겉면에 대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현상이 내면적으로는 본인에 대한 깊은 존중감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깊은 통찰력과 이해 없이는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기자는 느낍니다. 노인선 회장의 미용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성실함입니다. 항상 매일매일 자기 전 내일의 계획, 더 나아가 한 달의 계획, 일 년의 계획으로 확장해나갈 뿐만 아니라 오늘 하루 계획을 실천하여 습관을 들여갔습니다. 이 하루하루의 계획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목표를 이루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노인선 회장은 앞으로의 미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앞으로의 미용? 현재와 미래는 너무 빨리 변화하고 있습니다. 미용 산업에 대해서도 겉면을 중시하는 시대에서 이것이 내면적으로의 아름다움으로 발전하기까지 많은 변화가 뒤따를 것입니다. 향후의 미용도 이와 관계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곧 미용 산업에서는 단순히 기술적인 면모보다는 정신적인 힐링으로써 외면과 내면이 동일시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미용도 하나의 문화로 거듭나면서 개인 한사람 한사람이 힐링하는 여가 시간으로도 볼 수 있고 미용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외면적으로는 사회생활에 피곤했던 자신의 모습을 서비스 받는 동안 잠시 휴식하며 정신을 쉬게 하기도 하고, 서비스 후에는 그것이 곧 본인의 이미지가 되면서 본인의 모습이 되고, 그것이 곧 내면으로 이어지며 본인 그대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용은 곧 외면적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개인 성향에 맞춰 개성 있게 만들면서 내면적으로도 자신에게 힐링할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용인은 기술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며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그것이 곧 선진 미용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용이라는 직업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애정이 합쳐져서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이리라. 미용계 리더의 생각은 역시 다르다는 확신이 들게 하는 대답입니다. 미래의 주인공은 미용인 미용인들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도 역시 노인선 회장답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연구하고, 창출해내는 우리 미용인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작은 것 하나라도 서로 돕고, 자유로운 연구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배우는 시간을 많이 나누게 된다면 더욱 활발한 미용 산업속의 아름다운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미용 생활 40년이 된 노인선 회장, 남은 시간은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사회 손길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함께 할 것이라는 노인선 회장, 언제나 있던 그곳에서 끊임없이 찾아주시는 고객님들과 힐링하며 지내고 싶다는 노인선 회장! 노인선 회장의 이런 바람이 이루어질 때 우리 미용사회도 더 밝고 진취적으로 거듭나리라 확신하게 됩니다. 노인선 회장 프로필 -고추잠자리 미용실 대표 -사)한국미용장협회 서울지회장 -미용장 -이학박사 -서울시 중부, 남부 기술교육원 외래교수 -계명문화대학교 겸임교수 -국제교류협회 부회장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명장현장평가 심사위원 -산업현장교수 심사위원 -과정형평가 검토위원
    • 문화
    • 인터뷰
    2023-12-26
  • 2024 제25회 국제 펭귄 수영대회
    [Visit Jeju-서귀포겨울바다 국제펭귄수영대회] 다가올 2024년 1월 1일 푸른 용의 해 갑진년 새해 첫날 서귀포 겨울 바다에서 국제 펭귄 수영대회가 열립니다. 행사 장소는 고운 모래 사장과 바다 거북 번식지로 유명한 중문 색달 해수욕장입니다. 서귀포 겨울 바다에서 펼쳐지는 "국제 펭귄 수영대회"는 극강의 극기 체험을 통해 묵은 해를 정리하고, 다가오는 밝은 새해를 계획하며 강한 정신력을 키우자는 겨울 이벤트입니다. 세계적인 희귀 보호종 왕바다 거북이 산란을 위해 찾는 북방 한계선 중문 색달 해수욕장에서 1년을 시작하는 첫날 새해 소망을 바라며 겨울 바닷속으로 풍덩풍덩!!! 사계절이 아름다운 색달 해수욕장은 여름에는 가족들이 함께 해수욕을 즐기기에 최적의 공간이며,겨울에는 낭만과 여유가 느껴지는 곳으로 이번 행사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신나는 추억 만들기 도전을 할 것입니다. 도민, 관광객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선착순 300명 모집 접수 이틀만에 마감되어 행사의 유명세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12월 18일부터 추가로 150명 사전 접수가 시작될 예정이니, 희망자는 늦지 않게 신청하여 흥겨운 새해 맞이 바랍니다. DJ와 함께 첼린지 댄스 파티를 시작으로 "국제 펭귄 수영대회" 막이 오릅니다. 펭귄 핀 이어 달리기(가족 3인), 씨름왕(남자 어른), 닭 싸움짱 선발대회(여자 어른), 행운 거북알 찾기(유아와 초등학생), 줌마 댄스 몸풀기를 끝낸 후 드디어 바다로 첨벙~ 사전 등록한 입수자 전원 기념 메달과 푸짐한 경품까지. 2024년 용이 바다에서 승천할듯 활기찬 국제 펭귄 수영대회는 새해 첫날 설레임 넘치는 축제가 될 것입니다.
    • 문화
    2023-12-25
  • [오늘의 책] ‘태도의 언어’ 김지은 작가…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마음의 말
    3500만 뷰를 기록한 화제의 인터뷰 <삶도> 시리즈를 쓴, 글 잘 쓰는 김지은 기자의 첫 에세이가 출간됐다. 김 기자는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인터뷰-엄마> 그리고 현재 신문 연재 중인 <실패연대기>까지 화제의 인터뷰 시리즈를 쓰고 있다. ‘태도의 언어’는 ‘태도가 곧 사람’이며, ‘태도가 전부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와 기자 생활을 하며 만난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태도라는 언어를 통해, 어떻게 다른 이와 교유하고 공감을 주고받으며 공명을 이루는지를 전한다. 그것은 곧 힘든 시기를 통과할 때도 나를 잃지 않는 힘, 내 삶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마음의 말들이다. 김지은 기자는 특종상을 여러 번 받은 22년 차 베테랑 기자지만, ‘글 잘 쓰는 기자’로도 정평이 나 있다. 배우 김혜수는 “사람을 귀히 여기는 그의 성정은 글뿐만 아니라 행간에서조차 고스란히 온 마음으로 그 온기를 전한다. 책장을 여닫는 사이 따스하게 사람을 보듬는 저자의 태도가 마음에 닿고, 어느새 저자가 만난 이들이 마치 내 지인이 된 듯한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라고 전한다. 김지은 기자는 ‘태도’를 중시한다. ‘모든 건 태도’라고 말할 정도다. 또한 ‘글’을 경외한다. 글이 지닌 힘을 믿는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책의 제목은 ‘태도의 언어’다. 손석희 전 JTBC 사장은 “왜 손쉽게 ‘언어의 태도’라 하지 않고, 굳이 ‘태도의 언어’라 했을까?”라고 자문을 한 뒤, “앞엣것이 얼핏 ‘언어의 기술’로 들린다면, 뒤엣것은 ‘진심의 언어’를 말하고 있으므로…”라고 자답한다. 그렇다. 태도는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그 마음가짐은 몸짓 하나, 눈빛 하나만으로도 겉으로 드러나 보이고, 이미 상대에게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다. 김 기자가 이 책에서 자전적 이야기와 기자 생활을 하며 만난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태도가 곧 그 사람’이고, 마음가짐이 ‘태도’라는 언어를 통해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유다. ‘빨간 벤츠와 반지하 방’ 경제적인 잣대로 김지은 기자가 자신의 삶을 압축해본 것이다. 고등학교 때 벤츠 자동차로 등교하는 유일한 학생이었고, 대학교 때는 집안이 망해 반지하 방에서 살았다. 마음이 흔들거릴 만도 한데, 그는 ‘어느 순간에도 나를 잃지 않았다’라고 한다. 그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묻는 말로 이 책은 시작한다. 김 기자는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가족과 집안의 어른들을 보며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인 사랑, 믿음, 감사 같은 가치들의 힘을 배웠다고 한다. 힘들었던 시기를 통과하며 고비를 대하는 가족의 ‘태도’가 그의 마음속에 긍정의 샘물을 깊게 파주었다고 한다. 기자 생활을 하며 만난 수많은 사람도 모두 태도의 스승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살아오면서 가꿔온 태도의 언어들이 인터뷰라는 과정을 통해 교차하면서 공명의 종이 수없이 울렸다고 한다. 일터에서 만난 동료들의 태도 역시 그가 ‘기자의 길’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주었다고 한다. 이 책을 쓰는 동안 김지은 기자는 ‘내가 나를 만든 게 아닌, 나의 인연들이 나를 성장시켰음을 깨달았다’라고 털어놓는다. 그래서 참 행복했다고 말한다.
    • 문화
    • 문학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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