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 로그인
  • 회원가입
  • 지면보기
  • 전체기사보기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0)

 

팔순

이정록(1964~ )

 

기사 양반, 잘 지내셨남?

무릎 수술한 사이에

버스가 많이 컸네.

북망산보다 높구먼.

 

한참 만이유.

올해 연세가 어찌 되셨대유?

여드름이 거뭇거뭇 잘 익은 걸 보니께

서른은 넘었쥬?

 

운전대 놓고 점집 차려야겄네.

민증은 집에 두고 왔는디

골다공증이라도 보여줄까?

 

안 봐도 다 알유.

눈감아드릴 테니께

오늘은 그냥 경로석에 앉어유.

성장판 수술했다맨서유.

 

등 뒤에 바짝

젊은 여자 앉히려는 수작이

꾼 중에서도 웃질이구먼.

오빠 후딱 달려.

 

인생 뭐 있슈?

다 짝 찾는 일이쥬.

달리다보면 금방 종점이유.

 

근디 내 나이 서른에

그짝이 지나치게 연상 아녀?

사타구니에 숨긴 민증 좀 까봐.

거시기 골다공증인가 보게.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0번째 시는 이정록 시인의 “팔순”입니다.

 

우리 민족은 분명 해학과 풍자, 골계미가 넘치는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지친 노동,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았으며, 삶의 곳곳에는 풍자와 낭만이 스며있습니다. 멋을 실천하며 살았던 우리 조상이었습니다.

 

“팔순” 드신 할머니께서 무릎 수술을 하셨나봅니다. 장터라도 다녀오시려는지 시골버스에 타십니다. 거개의 시골버스 기사는 정다운 이웃과 같습니다. 시골길을 하도 달리다보니 승객들의 사정사정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이들은 대처로 다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뿐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농담을 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버스기사를 오랜만에 대하는 할머니의 농담이 정겹습니다. 맞받아치는 기사의 대답은 정겨움을 넘어 흥까지 유발합니다.

 

이어지는 할머니와 기사의 주고받는 대화가 텔레비전의 어느 코미디 프로보다 재미있습니다. ‘사는 재미란 마치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버스에 탄 다른 승객들은 두 분의 대화를 엿들으며 박장대소하고 있을 것입니다. 웃음소리에 놀라 보자기에 싸인 수탉은 냅다 두어 바퀴 굴렀을 듯도 합니다.

 

한바탕 웃음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는 버스. 그런 시골버스를 타고 싶습니다. 길은 덜컹거릴지 모르지만 마음만은 평안 그 자체일 것은 시골 완행버스 길. 시골 버스길을 달리면서 먼저 가셨거나, 그리운 고향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님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 같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은 우리 마음속 풍경을 그리는 화가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BEST 뉴스

전체댓글 0

  • 98576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팔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