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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2)

 

교감

유종인(1968~ )

 

오일장에서 산 찐 옥수수입니다

그대와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그늘진 벤치에 앉습니다

옥수수 허리를 뚝 분질러 나누고 입에 뭅니다

내가 그대보다 큰 옥수수를 불어 봅니다

이런 나의 욕심도 가히 좋습니다

이럴 때 꼭 하모니카를 떠올리는 상투성을 아직은

초여름 농담처럼 써먹을 만합니다

옥수수가 내 안으로 야금야금 넘겨 심어집니다

그럴 때 말입니다

길 건너 철길에 기차가 씨익 잇몸이 보일 듯 말 듯

거듭거듭 지나갑니다

빈 철길은 기차를 순식간에 물었다 놓습니다

철길도 뭔가 시장한 음악을 틀었다 껐다는 생각입니다

옥수수의 말단에 내 식탐이 달려 있고

철길의 현() 위를 기차가 눌렀다 갑니다

서로 모르는 가운데 스쳐 가는 앎입니다

옥수수를 흘려보냈습니다 노란 기차의 음()을 잠시 뜯었습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2번째 시는 유종인 시인의 교감입니다.

 

교감을 하며 생을 공유하면서 사는 지인들이 몇이나 되나요? 어젯밤 일입니다. 평소 술을 자주 같이 마시는 미용인 한 분이 저녁 늦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 전날, 정말 즐겁게 저녁 모임을 가졌었는데, 그날 밤을 상기하며 마냥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즐거웠던 추억을 다시 공유하고자 전화했다며, 그런 모임을 빨리 한 번 더 추진하자고 부추깁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얼마나 그 모임이 재미있었길래, 아직도 못 잊으시고 이 밤에 전화하셨대. 그 맘 이해하겠네.”

 

교감은 정서의 합일에서 시작됩니다. 봄날 달빛 아래 흐드러지게 핀 배꽃, 여름날 비 오는 개울에서의 수영, 가을날의 이삭줍기, 겨울날 한밤중에 듣는 눈 쌓인 소나무가지 부러지는 소리 등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을 지을 수 있는 교감은 시골뜨기들이 아니면 나눌 수 없는 것들이지요.

 

언젠가 여행 중 지는 석양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도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것을 보고는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어느 소설가의 기사를 읽고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옥수수하모니카”, “기차상투적이지만 우리에게 어떤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킵니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표현력도 맛깔나게 많이 등장합니다.

 

철길에 기차가 씨익 잇몸이 보일 듯 말 듯”, “철길은 기차를 순식간에 물었다 놓습니다”, “철길의 현 위를 기차가 눌렀다 갑니다등의 표현은 서로 모르는 가운데 스쳐 가는 앎처럼 정신적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읽고 싶어지는 유종인 시인의 교감이었습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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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 33737
프로박

이완근 기자님 수고하셧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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