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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벌레라는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에세이집을 낸 이상권 작가

 

-본인 소개

저는 전라도 함평에서 태어나 경기도 임진강 유역에서 지냈고,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어린 시절 본 수많은 풀꽃과 동물들의 삶과 생명의 힘을 문학에 담고 있습니다. 1994년 계간 창작과 비평에 소설을 발표하면서 이야기꾼이 되었고, 이후 일반문학과 아동. 청소년 문학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단편소설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는 현재 고1 국어 교과서 수록된 유일한 생태소설입니다. 이 밖에도 중학교 교과서에 세 편의 글이 수록되었습니다.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를 비롯하여 10여 권의 책이 일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특히 그림책 산에 가자는 중국에서 화재의 책이 되기도 했습니다.

 

-애벌레를 소재로 에세이를 쓰다니, 참 독특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저는 아직도 애벌레를 두려워하는 사람이고요. 그런데도 애벌레를 소재로 글을 썼으니, 제가 생각하기에도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집은 전원주택이라서 늘 애벌레와 살아요. 2층에는 작은 카페가 있어요. 거기에서 애벌들이 살아요. 뭐 그렇다고 애벌레를 키우는 특별한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니, 와서 보는 사람들은 다들 실망하지요. 저는 애벌레는 좁은 곳에 가둬서 키우지는 않아요. 애벌레가 사는 나뭇가지를 잘라다가 물항아리에다 넣어줍니다. 보통 한두 마리 이상의 애벌레를 모셔오지도 않아요. 애벌레는 자연에서 사는 것처럼 살지요. 저는 커다란 나뭇가지의 물알 갈아줄 뿐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거기 앉아서 침묵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역동이고,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원형을 다 갖고 있습니다. 태초에 신이 생명을 만들어낸 그런 순수를 그들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늘 새로움을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지요. 저는 늘 놀라면서 그들의 삶을 받아들입니다. 한 번씩 애벌레들이 번데기가 되고, 나방이 되어 떠나갈 때마다 인간의 한계를 느낍니다. 그렇게 애벌레들의 이야기를 하나 둘씩 쓰게 된 것입니다. 이 책 한 권에는 지난 20년간 애벌레와 살아온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번 책의 출간 소회가 클 것 같습니다.

딸이 그림을 그리고 제가 글을 썼습니다. 책은 하얀 눈이 펑펑 내려 마당에 가득한 날 태어났습니다. 그걸 보는데 기분이 묘했습니다. 딸이 태어난 그날이 떠오르더라고요. 딸은 2월 초에 태어났는데, 아침에 태어나서 우리랑 만났다고 하여 단후라고 지었어요. 이 단()자는 해가 동산 위에 떠오르는 모양을 그대로 표현한 상형문자 같아요. ‘아침단입니다. ‘()’우연히 만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우리랑 딸이 우연히 만난 날도 추운 겨울이었거든요. 그리고 우리랑 같이 살았던 참나무산누에나방이 숲으로 돌아가던 날이 떠올랐어요. 그 나방을 들고 숲으로 갔는데, 갑자기 나뭇잎이 팔랑거리면서 날아다니는 겁니다. 바람이 심하네, 하고 돌아다보다가 그것이 나방들이라는 사실을 안 겁니다. 그중 한 마리가, 우리랑 살았던 나방을 끌어안더라고요. 사람처럼 끌어안아요. 우리랑 살았던 놈이 암컷이었던 거지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어요. 먼 훗날 딸이 결혼하면 그런 느낌일까?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어요. 그러면서 이 책속으로 들어와 숱한 이야기가 되어준 숱한 애벌레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인연에 감사하고, 나 역시 더 이상 욕심없이 살아가자 하고 생각했지요. 사실 이 책은 수많은 애벌레들이 저한테 준 선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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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살다 보니, 이상하게도 생이 힘들 때마다 애벌레가 찾아왔습니다. 20년 전인데, 가까운 지인하고 사사로운 문제로 의견차이를 보였어요. 근데 그분이 단절하는 겁니다. , 그때 엄청 힘들었어요. 제가 워낙 좋아했던 분이라고 그랬는지 모릅니다. 하도 힘들어서 우울증까지 오고, 혼자 숲으로 숨어들기만 했죠. 그러다가 애벌레를 만난 겁니다. 누에 같은 녀석인데, 날마다 가서 녀석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저는 밤에도 가고, 비올 때도 가고, 그랬지요. 근데 녀석이 차가운 가을이 와서 고치를 짓지 않는 거예요. 이제 더 이상 먹을 것도 없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의 몸에서 깨알만한 수백 마리 애벌레가 나오는 겁니다. 순간 놀라고, 분노했어요. 아니, 내 친구의 몸에서 저런 놈들이 나오다니! 저는 기생벌의 애벌레로 추정되는 그것들을 다 없애버리려고 하다가, 내 친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마침 말벌이 다가오자, 내 친구가 온 몸을 흔들어서 말벌을 쫓아내는 거예요. 계속 그래요. 순간, 내 친구 애벌레한테는 저 기생벌의 애벌레가 자식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거예요. 내 친구 애벌레는 기생벌 애벌레들이 다 고치를 짓자, 그제야 쭈글쭈글해지면서 나무 아래로 툭 떨어지더라고요. 순간 어머니가 떠올랐어요. , 이런 거구나! 그때부터 애벌레들 보면서 살았는데, 제가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이 글에 나오는 12마리 애벌레들 이야기는 다 그런 내용입니다. 저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더 깊게 보는 법을 알려주었고, 진짜 생이란 버티는 것이라는 흔한 진리를 확인시켜준 존재들이지요.

 

-따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겠는데요.

이 책의 애벌레 그림을 그린 딸은 미술대학을 나왔고 지금은 타투리스트로 살고 있는데, 다른 청년들처럼 자신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무척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이 세상의 선배로서, 기성세대로서 그저 미안할 따름입니다. 저는 재학시절에 제 후배들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세상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딸에게 부모로서, 작가로서 힘을 주기 위해서, 이 책을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딸은 화가로서는 무명작가이거든요. 그러니 출판사에서 그런 사람을 쓰려고 하겠습니까? 자기 자신도 그림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선뜻 하겠다고 못 해요. 설령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워낙 양이 많다 보니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른 화가들이라면 출판사로부터 선인세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딸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사비로 용돈을 주면서 같이 책 만드는 일을 하였어요. 그렇다고 제가 딸이 그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돈을 줄 수도 없어요. 그야말로 용돈수준을 지원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딸은 그렇게 이 책에 들어간 약 70점의 애벌레 그림을 그린 겁니다. 너무 대견하고 고맙지요. 제가 쓴 글을 보고 스스로 많은 위로를 받고, 자신의 살아가는 힘을 믿고 살아가는 애벌레처럼 조금은 마음이 단단해진 것 같아요. 애벌레는 아주 약한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 중에서 가장 약해요. 그런데 그들은 인간보다 훌륭하게 살아남았습니다. 그 비결은 절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겁니다. 인간처럼 결과중심의 삶이 아니라 과정을 중시는 삶이라는 거죠. 딸이, 아니 청년들이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과정에 충실하는 그런 삶요. 이 책이 딸에게, 자그마한 힘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어떤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습니까? 

위로하는 애벌레는 요즘 시대의 트렌드인 짧고 빠르게 읽는 글은 아닙니다. 어쩌면 두고두고 느릿느릿, 천천히 읽는 책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루한 책은 아닙니다. 소재가 애벌레에 대한 이야기다 보니, 책을 읽다보면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요즘 힘들어하는 청년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분들, 그리고 앞만 보고 달려간 분들. 삶의 과정보다는 결과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그런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당신이 여행자라면, 이 책 한 권 가방 속에다 넣어두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어느 날 조용히 이 책을 들여다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 책이 당신을 위로해줄 것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청년들 이야기를 주로 쓰는 작가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제 숙명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굉장히 힘든 청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어제 아내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50억을 준다고 해도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는다고요. 고등학교시절요. 어떤 광신도들처럼 공부에 매달리고, 그 결과에 따라서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그 시간요. 저도 몇 번 생을 정리하려고 했지요. 그 시절을 버텨준 제 몸이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청년들 이야기를 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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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 세상을 깊게 보는 법을 알려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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