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 이외수>
영혼마저 허기진 시인의 일기장 갈피로 제일 먼저 가을이 온다.
고난의 세월 끝에 열매들이 익고 근심의 세월 끝에 곡식들이 익는다.
바람이 시리고 하늘이 청명해진다.
사랑은 가도 설레임은 남아 코스모스 무더기로 사태지는 언덕길.
낙엽이 진다.
세월도 진다.
더러는 소리죽여 비도 내린다.
수은주가 떨어지고 외로움이 깊어진다.
제비들이 집을 비우고 국화꽃이 시든다.
국화꽃이 시들면 가을이 문을 닫는다.
허기진 시인의 일기장 갈피로 무서리가 내린다.
가을이 끝난다.
가을이 끝나도 외로움은 남는다.
<낙엽 - 이외수>
수확의 가을이 끝나면 나무들은 잎을 떨구어 자신들의 시린 발목을 덮는다.
바람이 불면 세월의 편린처럼 흩날리는 갈색 엽신들.
모든 사연들은 망각의 땅에 묻히고 모든 기억들은 허무의 공간 속에 흩어져 버린다.
나무들은 인고의 겨울 속에 나신으로 버려진다.
낙엽은 퇴락한 꿈의 조각들로 썩어가지만 봄이 되면 다시금 푸르른 숲이 된다.
숲의 영혼을 덜어주는 이불이 된다.
지금은 고인이 된 故이외수 작가의 사색이 엿보이는 문장입니다.
품격있고 고독한 언어로 가을과 낙엽을 묘사하였습니다.
제법 선선해지고 푸른 잎이 노랗게 변해가는 가을 길목에서 故이외수 작가의 계절에 대한 관찰을 읽으며 가을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