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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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긍구포한 흑삼(사진=권중휘 기자)

 

인삼은 언제부터 재배되었나?

인삼은 그 효과만큼이나 기원에 대한 설이 다양하다. 삼(蔘)을 약용으로 이용한 시기는 문헌에 기록된 것으로만 따지면 약 2,000년 정도로 추정 하지만, 대체로 우리 민족의 시작과(약5000년) 함께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에서 약용의 연대는 상세히 찾아볼 수 없으나 유구한 역사라는 것은 확실하다. 삼국시대에도 삼의 약효 가 널리 알려져 513년에 백제에서, 435~546년에 고구려에서 삼을 중국에 보낸 것이 '명의별 록'에 기재되어 있으며, 또 627년에 신라에서 중국으로 보낸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이같이 당시의 야생삼은 민간의사들에 의한 경험으로 개발되어 약용으로 이용되면서 점진적 으로 고갈되어 인공재배가 자연스럽게 발달되었으리라 여겨진다. 재배가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자연산 산삼이다.

인삼은 산삼의 씨앗을 밭에 뿌려 인공으로 재배한 것이다. 인공재배를 시작한 연대는 정 확지 않으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유천리 일대 모후산에서 최씨라는 여자가 산신(山神)의 계시로 종자를 얻어 재배하여 이를 전파하였다는 설이 중경지(中京誌:김창강찬(金滄江撰)) 토 산물항에 기록되어 있어서 본격적인 재배 인삼의 발상지로 여겨지며, 전북 진안지역에서는 일 찍부터 재배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동복삼(同福蔘)이 개성(開城) 상인들에 의하여 개 성에 도입되어 이후로 인삼재배의 중심지가 개성이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에는 고려 고종 시대(1214∼1260)에 인공적으로 산양삼(山養蔘)을 재배하였고, 경상북도 경주지방에서는 이미 1,200여 년 전인 신라 소성왕 때에 재배기록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우리 조상들은 이 땅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삼을 이용하기 시작하 였다고 여겨지며, 우리 역사와 궤를 함께한 영약임이 분명하다.

인삼과 산양삼(장뇌삼)은 뭐가 다른가?

산삼은 자연적으로 자생한 삼을 말하는 것이고, 한반도에 널리 분포되어 그 수량이 만만치 않았으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남획되어 점차 고갈되었고, 부족한 양을 보충하기 위해 산삼 의 씨앗을 받아서 산에서 인공재배가 이루어진 것을 산양삼 또는 장뇌삼이라고 한다. 더 나 아가 재배법을 더욱 개량하여 밭으로 인공재배를 확대한 것을 인삼이라고 한다. 이같이 산에서 자생한 것을 산삼, 산에 파종하여 재배한 것을 산양삼 또는 장뇌삼, 밭에서 인공재배한 것을 인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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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의 모습(사진=권중휘 기자)

 

인삼과 홍삼(구증구포 홍삼 = 흑삼) 뭐가 다른가?

인삼의 보관을 쉽게 하는 방법이 증포를 통한 가공이다. 고대 의서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이 증포를 9회까지 반복한 것을 구증구포 홍삼이라고 한다. 인삼은 영양성분이 매우 많아서 쉽게 상하기 때문에 보관이 매우 어렵다. 오랜 기간 보 관하기 위해 인삼을 찌고 말리는 과정을 증포라고 한다. 이렇게 증포 함으로써 인삼의 보관 을 쉽게 하고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홍삼은 이를 1~3회 반복한 것을 말하고, 흑삼은 9번 반복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요즘에 와서 구분하기 위한 것이고 원래 최고의 약성을 자랑하는 고려홍삼은 구증구 포한 홍삼이었다. 이것이 실크로드 무역로를 거쳐 전 세계의 유명세를 탔던 고려홍삼이다. 인삼을 증포하면 붉은색으로 변하는 갈변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홍삼이라고 했다.


따라서 일반적인 흑삼 중에는 일증일포한 흑삼도 있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구증구포 했는지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인삼을 구증구포를 완벽히하면 인삼 고유의 향이 거의 사라진다고 하며 인삼 향이 많은 것은 증포 과정이 부족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인삼이 들어간 건강식품을 고름에 있어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전체댓글 1

  • 55238
지니1004

향이 진하면 구증구포 아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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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삼이야기 2]인삼 그리고 구증구포 흑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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