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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부터 시작되는 북마케도니아 대통령 선거
    그리스와 북마케도니아는 국명문제와 영토문제로 분쟁을 겪다가 2019년에 관계를 개선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마케도니아라는 국호는 마케도니아 고대사의 종주권 문제, 역사적 문제까지 함께 동반되고 있다. 특히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한 이래 그리스와 20년 넘게 이를 두고 갈등을 빚어온데다 2019년 국명을 마케도니아에서 북마케도니아로 변경하여 국명 갈등의 종지부를 찍은 현재에도 북마케도니아에서 발행하는 여러 서적들과 일반 북마케도니아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들의 명칭을 제우스, 헤라, 아테나, 아르테미스 등의 그리스식 명칭이 아닌 유피테르, 유노, 미네르바, 디아나 등 로마식 명칭으로 표기하거나 부를 정도로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한 이후에 국호 문제로 충돌하고 있는 그리스에 대한 반감이 아직도 남아있어 이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게다가 이 문제에 대해 보수우파인 마케도니아 국민통합민주당에서 보수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다시 선거의 쟁점으로 띄웠다. 사실 고대 시대부터 리스와 북마케도니아는 슬라브족들이 북마케도니아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거의 비슷한 언어를 사용했다. 게다가 현 북마케도니아 지역은 그리스인들과 혈통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는 트라키아인들이 지배했었다. 더불어 도리아인을 융합한 마케도니아가 세력이 점차 강력해짐에 따라 트라키아 주민은 이에 굴복하였고, 알렉산더 대왕 군대 내에서 대다수 기마병을 담당하면서 군의 주축을 이루었다. 1980년 이전까지 그리스나 불가리아 학계에서는 트라키아의 계보에 관해서 상세하게 알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트라키아 인이 완전히 정착한 시기부터 고고학적인 발굴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었다. 전체적으로 고고학에 치중되었던 트라키아 연구는 1980년 이후부터 그리스나 로마의 문헌을 통해 본격적인 서지학적 연구가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언어적인 부분을 유추한 결과 인도유럽어 종류를 사용했으며 중앙아시아의 스키타이, 사카 종족과 매우 가까운 관계라는 것까지 근접할 수 있었다. 그러한 언어적 연구를 통해 인도유럽어족의 주민이라는 것까지 나타났고 과학적인 유전자 분석을 통해 트라키아 인들이 스키타이와 동일 선상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그리고 헤로도토스의『역사』에서 언급된 스키타이에 관한 기록, 후일 로마의 타키투스, 요르다네스 등의 기록에서 나타난 스키타이, 사르마트, 훈족에 관한 그들의 유목 생활 기록 등을 볼 때 트라키아는 스키타이를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초원 유목 세력과 친연 성을 지니고 있음을 밝혔다.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마케도니아인들은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벌어지는 올림픽에 참여하지 못했으며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 시기 때도 그리스에게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리스의 신화 중 캔타우루스의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전설은 사실상 마케도니아의 트라키아인들에게서 시작된 것이고 발칸 지역의 켈트족 중 기마 부족들은 스키타이와 매우 유사하였기에 그들을 캔타우루스의 후예로 여겼을 정도다.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은 북마케도니아의 위대한 위인으로 받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인이냐, 현재 슬라브인과 혈통이 섞인 북마케도니아 측 위인이냐의 역사 논쟁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이후 불가르족이 현 불가리아에 정착하여 슬라브인들을 통치했고 그 슬라브인들이 현 북마케도니아에 밀려 들어오면서 북마케도니아는 슬라브인의 국가가 된다. 게다가 그리스와 혼혈한 비잔틴 제국의 시민들이 북마케도니아에 들어와 슬라브인과 혼혈해 버리니 이들은 불가리아 제국, 비잔틴 제국에 교대로 지배를 받다가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게 되고 19세기에 그리스가 오스만투르크 제국에게서 독립하자 북마케도니아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늦게 벗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세르비아 및 불가리아와 관계 갖게 된다. 1944년 8월 2일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 비밀리에 민주연방 마케도니아(Демократска Федерална Македонија)를 선포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원이 되었고 1990년 정치 체제가 의원내각제로 이행된 뒤, 1991년 나라 이름이 공식적으로 마케도니아 공화국(Република Македонија)으로 바뀌면서 나라가 독립하게 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여타 다른 유고슬라비아 연방 국가들에 비해 가장 낙후한 상태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세르비아나 몬테네그로와 같이 온전한 남슬라브도 아니었고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처럼 이탈리아계 슬라브인도 아닌 사실상 그리스계 슬라브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이 전쟁을 겪은 반면 마케도니아는 평화적으로 독립했으며 집단서방 또한 마케도니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는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에도 상대적으로 마케도니아는 매우 안전했고 내전과 더불어 나토의 공습을 받아 피폐해진 세르비아나 보스니아에 비해 마케도니아는 내전의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인이 불가리아인의 일종이라고 주장하면서 독립 이후 수차례 마케도니아 병합을시도했다. 그러나 이를 방해한 것은 터키와 그리스였다. 그리스는 누구보다도 마케도니아의 독립을 원하지 않았지만 불가리아에 병합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리스와 대립하고 있던 터키 또한 이 부분에서 그리스와 입장이 같았다. 그 이유는 불가리아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가리아가 잘 나가면 전통의 원수지간인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이 위협 받을 위기에 놓일 수 있고 그리스 또한 불가리아가 테살로니키를 비롯한 동트라키아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테살로니키를 비롯한 그리스 동북부, 동트라키아 지역은 불가리아와 마케도니아, 그리스와 삼각으로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영토 분쟁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특히 마케도니아인과 불가리아인이 주도한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Македонска револуционерна организација)는 테살로니키와 동트라키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국제사법재판소에 해당 영토에 대한 귀속을 요구하여 재판을 걸었던 이력도 있다. 더불어 동부 지역에 거주하던 남슬라브 계열의 마케도니아인들이 정치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서부의 알바니아계들을 홀대하고 배척했다. 그러면서 민족 및 지역 간 갈등이 증폭되었고 이로 인해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의 내전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 내전은 그리스가 비록 종교도 다르고 이민족이나 다름없지만 아알바니아계 무장세력들을 부추기고 지원해 일으킨 내전이라 불가리아의 총리였던 시메온 2세가 마케도니아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나토군이 들어오면서 알바니아계의 반란은 짧은 기간에 막을 내렸다. 현재도 상당수의 알바니아인들 북마케도니아 서쪽 변경에 거주하고 코소보 남쪽까지 걸쳐 거주하는 측으로 합의를 보면서 오늘날까지 함께 살고 있다.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독립 선언을 할 당시 그리스는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이 오랜 시간 동안 그리스 북동부의 지방명이자 과거 '마케도니아 왕국'에서 차용한 명칭이라 주장하며 정식 국가로서의 승인을 거부했다. 실제로 그리스 북동부의 해안 지방은 마케도니아 주(州)로서 오랫동안 그리스가 차지해왔다. 알렉산더 역시 그리스계라 믿고 있는 그리스인들은 마케도니아라는 단어의 국제 지명도마저 그리스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리스는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독립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아 마케도니아 공화국 측에서 국명 사용을 포기하지 않자 내륙국인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사용하고 있던 테살로니카 항을 봉쇄하는 등 강경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여기에 나토와 EU가 개입하니 그리스는 테살로니키 항구 봉쇄 조치를 해제했다.결국 2018년 6월 12일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조란 자에프 마케도니아 공화국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국명을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입장에서는 국민투표도 아닌 여당 총리가 단독으로 결정하여 벌인 일이었기에 야당은 여기에 집중 반발했다. 결국 프레스파 협정(Prespa Agreement)에 서명하면서 이 문제는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북마케도니아 총선에서도 이 문제는 재언급되었고 이번 대선에서도 사민당이 장악하고 있는 정국을 타파하기 위해 제1 야당인 마케도니아 혁신당은 우선 대통령부터 바꾸고 5월 8일에 있을 총선에서 정국을 완전히 장악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특히 마케도니아 혁신당은 세르비아와도 관계를 개선하고 그리스를 비판하여 북마케도니아라는 국호를 무효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테살로니키가 속해 있는 동트라키아에 대한 영유권도 함께 주장하고 있다. 마케도니아 혁신당이 대세를 잡게 된다면 그리스-터키-불가리아를 둘러싼 4개국 간의 영토 분쟁, 그리스와는 역사 논쟁과 국호 문제가 다시 불거져 평지풍파를 일으킨 대단히 높다고 본다. 대선 과정은 2024년 4월 24일에 1차 투표가 실시되며, 과반 투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5월 8일에 결선투표가 실시된다.
    • 칼럼
    • Nova Topos
    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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