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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2부)
키르기스스탄은 아탐바예프, 젠베코프, 자파로프의 권력투쟁 속에서 반복된 혼란을 겪어 왔다. 올리가르히 출신 아탐바예프는 대통령 재임기 동안 개혁과 연정을 추진했지만 남·북부 갈등, 부패 의혹, 전자개표기 도입 논란 등으로 정치적 균열을 키웠다. 이후 젠베코프와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체포되었고, 2020년 총선 부정 의혹으로 발생한 제3차 튤립 폭동 속에서 석방과 재구금이 이어졌다. 결국 자파로프가 집권하며 정국이 재편되었고, 이 과정은 키르기스스탄 정치사의 대표적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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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바타클랑 소극장 테러 10주년,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단체들을 근절시키는 방법
파리 바타클랑 테러 10주년을 계기로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의 근절 방향을 재검토한 글이다. 외부의 군사적 토벌은 오히려 테러 단체에게 순교 명분을 주고 내부 결속을 강화해 왔다고 지적한다. 근본주의가 유지되는 구조와 역사적 사례를 분석하며, 향후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무슬림 내부의 개혁과 내부 세력이 극단주의를 스스로 제거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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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검찰, 에크렘 이마모을루 전 이스탄불 시장에게 징역 2,430년, 사실상 종신형
터키 최대 도시인 인구 1,600만의 이스탄불의 시장은 에크렘 이마모을루(Ekrem Imamoğlu)였으며 2024년의 시장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정의개발당의 무라트 쿠룸(Murat Kurum) 전 환경장관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스탄불 시장의 임기가 5년이니 최고 2029년까지는 시장으로써 재임할 수 있다. 이스탄불은 터키 최대의 도시로 이스탄불의 시장이 된다는 것은 장래 대통령 후보로 직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터키의 현 대통령인 에르도안도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되면서 대권 도전의 기회를 잡았다. 당시 터키는 대통령은 행정상의 수반이지만 실권은 없었고 총리가 모든 갖고 있었던 때였다. 그는 2003년에 총리가 되었고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모든 권력을 대통령에 집중시키면서 대통령 중심제로 바뀌었다. 따라서 총리 시절 포함, 그가 권좌에 22년 동안 앉아 있는 셈이다. 2024년 이스탄불 시장 선거 때, 에르도안은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인 이스탄불을 확보해야 했던 아주 중요한 선거였다. 무라트 쿠룸이 당선이 되어야 터키 최대 도시에서도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2019년 선거에 이어 2024년에도 이스탄불을 잃는다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 축소된 상태에서 정치력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이마모울루의 입장에서는 2024년 선거에서도 연승을 하게 된다면 차기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어 지는 것은 당연하다. 즉, 1,600만 이스탄불 시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2028년 앙카라 대권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에르도안은 2024년 선거에 사활을 거는 이유 중에 지방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헌법 개헌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에서 매우 중요했다. 터키의 입법부는 지방 의회 대표자 성격이 강하다는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지방 각지를 정의개발당이 장악하고 특히, 1,600만의 대도시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 개헌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여기에서 에르도안의 종신 집권이 가능한지의 여부가 판단된다. 종례 터키 헌법에는 중임 대통령이 임기 중 조기 대선을 실시해 당선될 때는 5년 추가 재임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지만 현재 조기 대선을 치르는 방법을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2033년까지 임기를 한 번 더 연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의 과반은 무조건 필요했다. 이스탄불에서 승리한다면 거의 50%의 확률을 종신집권으로 간 것이나 다름없다. 에르도안의 나이는 1954년 생으로 올해 71세이다. 2024년 이스탄불 선거가 에르도안이 80세까지 집권하느냐 마느냐의 사활이 걸려있었다. 이게 사실상 종신 집권이나 마찬가지인데 개헌을 하게 되면 에르도안의 종신 안이 화두가 될 것이다. 에르도안이 종신 집권을 하느냐, 아니면 현 이스탄불 시장 이마모을루가 2028년 에르도안의 강력한 정적이 되느냐는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 달렸다. 결국 51.14%의 득표율로 39%의 특표율을 획득한 무라트 쿠룸(Murat Kurum)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결국 에르도안은 종신 집권을 위한 개헌이 무산되었고, 이마모을루는 2028년 차기 대권 주자로 직행하게 되었으며 에르도안의 최대 정적으로 성장했다. 이마모을루가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기에 이같은 예측이 가능했던 것이다. 공화인민당의 거물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는 지난 2023년 대선에서 에르도안에게 참패했다. 대선에서 참패를 하고도 클르츠다르을루의 당내 영향력은 막강했다. 일례로 어떤 정치 활동도 하지 않고 이스탄불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던 툰젤리 출신 주민의 장례식에 외즈귀르 외젤(Özgür Özel) 당 대표가 자신의 명의로 조화를 보냈고, 공화인민당 이스탄불 지부의 외즈귀르 첼릭(Özgür Çelik) 대표가 직접 조문을 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는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동향 출신 측근이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 예우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터키에서도, 한국에서도 일반적인 행위는 분명 아니다. 그만큼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영향력이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내 영향력에 대한 예우와는 별개로 외젤 대표와 이마모을루 시장을 위시한 계파가 당권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당내 권력 구도에 변화가 점차 감지되고 있다. 이마모을루는 "당내에 변화가 필요하다(Parti içinde değişime ihtiyaç var)"고 주장하며 '변화(Değişim)' 라는 신흥 계파를 결성하고 외즈귀르 외젤 대표와 교류하기 시작했으며 만수르 야바시 앙카라 시장도 여기에 합류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지지해온 대의원 출신 예비 후보들을 모두 밀어내 버렸다. 13년간 당권을 유지한 클르츠다로을루는 당 대표를 내놓고 사실상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마모을루와 외젤, 야바시의 신(新) 체제가 구(舊) 체제를 마침내 밀어내 버린 것이다. 이후 2024년 하반기에 2028년 대통령 선거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마침내 이마모을루는 에르도안과 오차범위 밖 우세를 기록하게 된다. 에르도안은 아마 여기에서 위기를 느꼈던듯 싶다. 물론 이같은 상황이 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파죽지세로 이마모을루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2028년 대선에 에르도안이 다시 당선된다는 것을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외즈귀르 외젤과 앙카라 시장인 만수르 야바시, 이즈미르 시장인 체밀 투가이(Cemil Tugay) 등이 이마모을루에게 세를 결집시켜 준다면 터키 대선에서 대통령이 교체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게다가 현재 터키의 5대 도시(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부르사, 안탈리아)에서는 에르도안이 ISIS인 HTS를 움직여 시리아 내전에 깊이 개입하고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전복시킨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 5대 도시 내에서 에르도안에 대하 지지율 급락이다. 이처럼 지지율이 급락하게 되면 터키 의회에서 조기 대선이 요구될 수 있다. 특히 현재 터키의 의회는 여소야대의 형태이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이 야당인 공화인민당에 수적으로 열세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화인민당이 조기 대선을 주장한다면 에르도안 입장에서는 큰 정치적 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흔히 나타나는 것은 "정적 제거"다. 정적을 제거하면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집권 시기를 더 늘리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물론 어떻게 제거를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가장 보편적인 제거 방식은 "부패 혐의"를 내세워 숙청하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있어 "부패 혐의" 라는 것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셈으로 그런 식으로 털어내면 방법이 없다. 그래서 문제가 더 복잡해지기 전, 에르도안이 이에 관여하지 않았다 해도 가장 보편적인 제거 방식을 선택했고 지난 19일, 이마모을루를 부패 혐의 조사를 명분으로 체포 및 구금했다. 이마모을루 시장 외에도 100여 명의 기자도 함께 구금되었는데 이는 이같은 사건을 속전속결로 마무리 짓기 위해서다. 기자들이 기사를 쓰면 이를 일게 된 이마모을루의 지지자들이 몰려와 체포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요인을 일찌감치 제거하기 위해 기자들도 함께 체포해버린 것이다. 체포 및 구금, 교도소로의 이송은 빠르게 이루어졌고, 결국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순식간에 성공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이마모을루의 이스탄불 대학 경제학 학사 학위도 함께 취소되었다. 터키에서는 학부 학위가 있어야 대선에 출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적 제거라는 비판이 잇다르고 여기에 에르도안은 성명을 통해 밝히기를 "주요 야당인 공화인민당과 그들의 언론은 부패 등의 문제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 대신 국민들을 속이고 지지층들을 동원해 정치적인 구호를 만드는 쉬운 길을 선택한다. (Ana muhalefetteki Cumhuriyet Halk Partisi ve onun medyası, yolsuzluk gibi sorunlara yanıt vermekten acizdir. Bunun yerine kolay yolu seçiyorlar: Kendi taraftar kitlelerini harekete geçirip, halkı kandırmak için siyasi sloganlar üretiyorlar.)" 며 정적 제거 논란을 일축했다. 정말로 부패가 있었는지에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이러한 행위는 "정적 제거"라는 논란과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다. 터키 검찰이 11월 11일 에크렘 이마모을루 전 이스탄불 시장에게 징역 2,430년을 구형했다. 이스탄불 검찰청은 이날 이스탄불 시청 비리 사건과 관련해 이마모을루 전 시장을 비롯한 402명을 총 142개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그가 테러 조직을 만들어 뇌물 수수, 사기, 입찰 조작, 범죄수익 세탁, 개인정보 누설 등을 저질렀으며 이로 인해 1,600억 리라(약 5조 5,300억 원)의 공공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간첩 혐의도 추가됐다. 검찰은 이마모을루 전 시장이 속한 공화인민당이 불법 자금으로 운영됐다며 정당 해산 검토도 법원에 요청했다. 이에 공화인민당의 외즈귀르 외젤 대표는 이번 기소가 정치적인 야당 탄압의 목적이라며 공화인민당을 저지하고 당 대선 후보를 모함과 음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터키 검찰이 이마모을루에게 징역 2,430년을 구형했다는 것은 에르도안이 이마모을루에게 얼마나 큰 정치적 위협을 느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에르도안의 종신독재는 이제 막을 수 없게 생겼다. 내가 어제 말하지 않았던가. "나쁜 놈이 가장 정치를 잘한다" 사진 : 에크렘 이마모을루(Ekrem Imamoğlu) 전 이스탄불 시장, 징역 2,430년 구형, 출처 : TNT, 줌후리예트 터키, 튀르키예,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 에르도안, 에르도안 종신독재, 정의개발당, 공화인민당, 외즈귀르 외젤, 에르도안의 야당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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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1부)
키르기스스탄의 총선은 앞으로 보름 (15일) 정도 남았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법률과 내각 법령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법령에 따라 오후 10시까지 축하 행사와 오락 행사, 카페, 레스토랑, 식당, 나이트클럽의 영업을 마쳐야 한다고 밝히며 이 조치에 따르지 않으면 전원을 차단할 것이라는 독재국가도 하지 않을 조치를 발표해 깜짝 놀랐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케크 시는 카페, 레스토랑, 바, 클럽, 연회장 및 기타 시설을 포함한 음식 서비스 시설,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장소의 관리자는 의식,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금지한다고 밝혔으며 전기를 소모하는 모든 기기, 에너지 집약적인 기기(전기 스토브, 히터, 오븐 등)는 오후 10시 이후에는 전원을 꺼야 하며 정해진 시간 이후에는 시끄러운 음악, 조명 등 시민의 공공 안녕을 방해하는 행위를 수반하는 행사를 조직하고 개최하는 것도 금지된다고 하였다. 주거용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시설에서 전기 발전기를 사용하는 것만 허용된다고 했다. 비슈케크의 스베르들로프스크 지역에서 법을 준수하기 위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업소를 급습하는 조치들이 실시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후 10시 이후 전력 절약 결정에 따라 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출처 : 한인일보) 이런 공지는 키르기스스탄이 전력이 부족해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전기를 사오는 문제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사실 키르기스스탄은 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매우 역동적인 시민성을 갖고 있다. 중앙아시아 유일의 색깔혁명이 일어난 곳이며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재 대통령이 나오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사드르 자파로프(Садыр Жапаров)가 제3차 색깔혁명으로 인해 2021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서서히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자파로프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2005년에 발생한 키르기스스탄 첫번째 색깔혁명인 튤립폭동 때였다. 이 색깔혁명으로 인해 아스카르 아카예프(Аскар Акаев) 대통령의 반대편에 선 자파로프는 그 해 총선에서 이식쿨 주(州)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키르기스스탄 최고회의에 진출헤 쿠르만베그 바키예프(Курманбек Бакиев)를 지지했다. 그러나 제2대 키르기스스탄의 대통령에 취임한 바키예프는 키르기스스탄 최고회의를 해산했고 2007년 총선에서는 강제로 야당을 원외정당으로 밀어내 버리는 최악의 헌정유린을 저지른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자신의 동생인 자니시베그 바키예프(Жанисибек Бакиев)를 국가안보국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키르기스스탄 헌법을 위반한 족벌 정치였다. 바키예프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지만 그의 족벌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껴 비서실장 직위를 던져 버리고 야권으로 전향한 메데트 사디르쿨로프(Медет Садыркулов)의 암살을 지시했다. 이 또한 야권 의원의 암살을 사주한, 불법행위이다. 또한 그의 아들 막심 바키예프(Максим Бакиев)는 2009년 10월에 신설된 중앙개발투자혁신청장을 지내며 공유 재산 불법 사유화를 비롯해 여러 비리를 저질렀다. 특히 이중에서 대표적인 사건은 마나스에 있는 중앙아시아 유일의 미군 기지인 미 공군 기지에 연료를 판매하는 계약과 관련된 비리를 저질렀는데 당시 러시아는 마나스의 미군 기지에 대한 폐쇄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에 바키예프는 미군 기지에 이와 같은 러시아의 압박을 이유로 매우 높은 수수료를 받는 대가로 미군에게 기지를 사용하는 협상을 체결했다. 여기에 나온 차액의 상당수를 가족이 운영하는 국영 기관을 통해 빼돌렸는데 이같은 부패행위는 러시아와 미국의 분노를 사게 된다. 러시아로써는 중앙아시아의 미군 기지 폐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였고, 미국은 자국 군대가 주둔하는 수수료의 너무 비싸 분노했다. 이후 2009년 7월 치러진 대선에서 바키예프는 77.4%를 득표해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는데 이 또한 부정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음 해 4월에는 수도와 전기 요금을 인상함으로써 비슈케크 시민들의 분노를 유발해 싱 위가 발생했다. 바키예프는 군경으로 하여금 비슈케크의 정부청사 앞 시위대를 향해 실탄 발포를 허가했고, 이로 인해 85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매우 폭력적으로 변해 정부와 국회, 검찰청 건물을 점거했다. 이에 야당 아타주르트(Ата-Журт)의 대표 로자 오툰바예바(Роза Отунбаева)는 새로운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바키예프의 탄핵을 통과시켰는데 바키예프의 충견이었던 자파로프가 맹렬히 반대했지만 결국 오툰바예바에 의해 축출되고 키르기스스탄 남부 오쉬로 쫓겨나고 말았다. 자파로프는 이후 키르기스스탄의 민족주의 성향의 정치인이자 잘랄아바트 출신인 캄츠베크 타시예프(Камцбек Ташиев)와 함께 남부지방인 오쉬와 잘랄아바트에서 주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게다가 오쉬와 잘랄아바트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친(親) 바키예프 세력이 장악한 지역이었고, 이 지역은 바키예프의 주 거점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오쉬와 잘랄아바트에서는 바키예프와 현 대통령인 자파로프의 지지율이 매우 높다. 한편 비슈케크에서는 로자 오툰바예바가 새로운 대통령이 된다. 중앙아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유일한 여성 대통령인 오툰바예바는 보수적인 전통 유목민 체계의 키르기스스탄의 여성 대통령으로 등극하게 된 것은 미국의 입김 때문이었다. 그녀는 본래 모스크바 대학 철학과 출신이지만 키르기스스탄 초대 대통령인 아스카르 아카예프가 그녀를 외무부 장관으로 세웠다. 그녀는 거의 숙청당해 별로 없던 개국 대통령인 아카예프파의 남은 정치인 중 하나였고 바키예프에게 숙청당하지 않은 아카예프파의 고위 정치인 중 하나였다. 그녀가 바키예프에게 숙청당하지 않은 이유 또한 그녀의 뒷배경에는 미국이 있기 때문이었다. 초대 대통령인 아카예프는 오툰바예바를 미국 대사로 보낸 바 있었고, 그녀는 미국 정가와 자주 만남을 갖고 친교를 쌓다가 영국으로 가서 주영대사까지 지냈다. 그리고 조지아 주재 UN 특사로 활동하면서 미국, 영국의 관료들과 친하게 지냈다. 아카예프가 축출된 이후, 아카예프 산하에 있던 각료둘은 바키예프 대통령에 의해 축출을 당했는데 그녀는 이 숙청에서 살아남았다. 막심 바키예프가 마나스의 미군 기지에 부당한 수수료를 챙긴 것을 폭로하여 비난한 인물이기도 했고, 2차 튤립폭동 당시 바키예프를 축출하고 임시정부를 세우게 도운 것도 미국이었다. 이 정도면 이 2차 튤립폭동이라 불리는 색깔혁명의 뒷배경은 미국이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키르기스스탄 제4대 대통령인 로자 오툰바예바는 미국이 중앙아시아에 꽂아 놓은 "트로이 목마"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슈케크에서 멀리 떨어진 남부 오시와 잘랄아바트 지역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툰바예바 정부의 영향력이 매우 약했다. 특히 2010년 5월 13일에는 바키예프 지지자들의 오시와 잘랄아바트 지역 정부청사와 공항을 점거하는 사태도 일어났는데 바키예프와 그 지지자들의 배후에는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있었다. 바키예프가 축출되었을 때, 러시아와 친한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몸을 의탁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루카셴코는 바키예프 세력에 대해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루카셴코는 민스크의 대통령 궁에 쿠르만베그 바키예프 대통령을 식사에 초대하고 그를 친구처럼 아꼈다. 둘의 나이가 겨우 두 살 밖에 차이나지 않았기 때문에 둘은 현재까지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이처럼 미국 및 서방세력의 지역 패권 장악 의도는 시민 혁명의 선거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혹은 선거활동을 하는 NGO 단체들을 재정적, 도덕적, 이념적 차원에서 직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제2차 튤립폭동은 그러한 차원의 미국이 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보여주는 일례로 자리 잡고 있는데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 시위, 2005년 키르기스스탄 제1차 튤립폭동, 2008년 조지아 장미 시위, 2010년 키르기스스탄 제2차 튤립폭동 등으로 주기적으로 나타난 색깔혁명의 시도가 이를 방증한다. 색깔혁명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과 러시아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직접적으로 발생했다기보다는 색깔혁명을 통해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이 가시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으로 본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가 강화되어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에서 러시아의 국가 이익이 침해받거나, 과거 러시아의 앞마당인 구소련 국가들 지역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약화될 경우, 지역 패권을 둘러싼 미국 및 서방 세력과 러시아 간의 갈등은 지속된다. 특히 키르기스스탄 남부와 비슈케크의 지역 갈등은 이러한 패권경쟁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키르기스스탄 남부는 친러시아 세력이 기득권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은 남부 지방의 혼란은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 사이의 민족 분규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지역들은 우즈벡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이 면해 있기 때문인데 바키예프 지지세가 강한 키르기스인과 오툰바예바 정권에 비교적 호의적인 우즈베크인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문제는 이 같은 혼란에 대해 오툰바예바 정권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내의 비판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툰바예바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는 제3차 튤립폭동의 도화선이 된다. 2010년 10월 총선이 실시되었고 바키예프의 지지자들이 창당한 아타주르트가 오툰바예바의 사회민주당을 근소하게 앞서 제1당이 되면서 여소야대가 된다. 오툰바예바는 아타주르트 및 사업가 출신 오무르벡 바바노프(Омурбек Бабанов)가 이끄는 레스푸블리카당(Республика партия)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였고, 바바노프가 새 총리가 되었지만 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오툰바예바는 2011년 같은 사민당인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Алмазбек Атамбаев)에게 대권을 넘기고 퇴임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키르기스스탄은 역대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시비로 한 번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대한민국의 광학 판독 개표 장비 및 선거관리 시스템, 즉 전자개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주고 투표자를 매수하는 등의 부정 행위는 여전히 횡행했다. 여기에서 터진 가장 큰 문제는 쿰퇴르(Кумтөр) 광산 문제다. 이식쿨 주 남쪽 천산 산맥에 있는 쿰퇴르 금광은 캐나다 기업이 소유한 금광으로 키르기스스탄 GDP의 12%를 창출하고 있었다. 시르다리야 강의 수원지에 해당하는 빙하 밑에 위치한 쿰퇴르 광산은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이전부터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자파로프는 노동자들과 함께 비슈케크에 집결하면서 금광의 국유화를 요구했다. 자파로프가 이끈 시위대는 2012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궁으로 진입을 시도했고, 그는 무력으로 정권 교체를 시도한 혐의를 받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 석방되었다. 이후 카라콜에서 일어난 시위에서 시위대가 주지사 납치를 시도하자 그는 키르기스스탄 당국에 의해 수배 명단에 걸리게 되었고, 자파로프는 키르기스스탄을 떠나 키프로스로 망명했다. 2017년 키르기스스탄으로 입국을 시도했으나 입국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어 납치 혐의로 징역 1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 긴 투옥 생활을 하게 된다. 2016년 소론바이 젠베코프(Сооронбай Жээнбеков)가 총리가 되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탐바예프는 같은 당의 젠베코프를 지원했고, 젠베코프가 54.7%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정권 연장에 성공했다. 이후 아탐바예프와 젠베코프와 사이가 틀어진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에 차후로 설명하고자 한다. 2020년 키르기스스탄 총선거 이후 다시 부정 선거 시비로 대규모 집회가 발생하였고, 결국 젠베코프 대통령 역시 사임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들은 자파로프를 비롯해 여러 수감된 정치인들을 석방했다. 이와 같은 모진 키르기스스탄 현대사의 풍파를 겪은 자파로프의 입장에서는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매우 짙은 상태다. 그래서 언론에 대한 통제와 탄압, 그리고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는 어쩌면 필연적이다. - 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2부) -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Алмазбек Атамбаев)와 소론바이 젠베코프(Сооронбай Жээнбеков), 사디르 자파로프 3자 간의 권력투쟁기 - 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3부) - 사디르 자파로프의 사회 안정화 & 언론 및 사회 탄압의 양면성 사진 : 키르기스스탄 제3차 튤립폭동, 출처 : KATEHON 키르기스스탄, 튤립혁명, 튤립폭동, 중앙아시아 색깔혁명, 키르기스스탄 현대사, 사디르 자파로프, 오툰바예바, 미국, 러시아, 아카예프, 바키예프, 벨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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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일한 소수민족 문제, 아이누족과 훗카이도(北海島), 사할린, 쿠릴열도까지 포함된 역사 문제
아이누족은 홋카이도·사할린·쿠릴열도에 살던 원주민으로, 메이지 정부의 강력한 동화정책으로 전통 문화·언어·영토를 상실하고 사회적 차별에 시달려 왔다. 일본은 19세기 후반부터 아이누를 ‘구토인’으로 규정하고 관습과 생활을 금지하며 강제 이주를 시행했다. 현재 아이누족은 약 3만 명으로 파악되지만 실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빈곤과 낮은 교육률 문제는 여전히 지속되지만, 최근에는 언어 교육, 전통 의례 복원, 문화 보존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며 정체성 회복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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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젤렌스키의 부패스캔들, 불법적인 그의 권력에 고비가 오는가?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의 최측근 티무르 민디치가 연루된 대형 부패 사건이 나부(NABU)의 대규모 수사로 드러나며 정치적 위기가 커지고 있다. 민디치는 젤렌스키와 가까운 인물로, 에너지 인프라 발주 과정에서 거액을 챙기고 해외로 도피했다. 러시아 공습으로 전력난이 심해지고 전황도 악화되는 가운데, 서방의 젤렌스키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용도 폐기’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미국·EU의 의중과 맞물린 이번 사건은 젤렌스키 권력의 중대한 시험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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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2부)
- 키르기스스탄은 아탐바예프, 젠베코프, 자파로프의 권력투쟁 속에서 반복된 혼란을 겪어 왔다. 올리가르히 출신 아탐바예프는 대통령 재임기 동안 개혁과 연정을 추진했지만 남·북부 갈등, 부패 의혹, 전자개표기 도입 논란 등으로 정치적 균열을 키웠다. 이후 젠베코프와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체포되었고, 2020년 총선 부정 의혹으로 발생한 제3차 튤립 폭동 속에서 석방과 재구금이 이어졌다. 결국 자파로프가 집권하며 정국이 재편되었고, 이 과정은 키르기스스탄 정치사의 대표적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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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Nova Top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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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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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바타클랑 소극장 테러 10주년,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단체들을 근절시키는 방법
- 파리 바타클랑 테러 10주년을 계기로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의 근절 방향을 재검토한 글이다. 외부의 군사적 토벌은 오히려 테러 단체에게 순교 명분을 주고 내부 결속을 강화해 왔다고 지적한다. 근본주의가 유지되는 구조와 역사적 사례를 분석하며, 향후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무슬림 내부의 개혁과 내부 세력이 극단주의를 스스로 제거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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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Nova Top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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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바타클랑 소극장 테러 10주년,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단체들을 근절시키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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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검찰, 에크렘 이마모을루 전 이스탄불 시장에게 징역 2,430년, 사실상 종신형
- 터키 최대 도시인 인구 1,600만의 이스탄불의 시장은 에크렘 이마모을루(Ekrem Imamoğlu)였으며 2024년의 시장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정의개발당의 무라트 쿠룸(Murat Kurum) 전 환경장관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스탄불 시장의 임기가 5년이니 최고 2029년까지는 시장으로써 재임할 수 있다. 이스탄불은 터키 최대의 도시로 이스탄불의 시장이 된다는 것은 장래 대통령 후보로 직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터키의 현 대통령인 에르도안도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되면서 대권 도전의 기회를 잡았다. 당시 터키는 대통령은 행정상의 수반이지만 실권은 없었고 총리가 모든 갖고 있었던 때였다. 그는 2003년에 총리가 되었고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모든 권력을 대통령에 집중시키면서 대통령 중심제로 바뀌었다. 따라서 총리 시절 포함, 그가 권좌에 22년 동안 앉아 있는 셈이다. 2024년 이스탄불 시장 선거 때, 에르도안은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인 이스탄불을 확보해야 했던 아주 중요한 선거였다. 무라트 쿠룸이 당선이 되어야 터키 최대 도시에서도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2019년 선거에 이어 2024년에도 이스탄불을 잃는다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 축소된 상태에서 정치력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이마모울루의 입장에서는 2024년 선거에서도 연승을 하게 된다면 차기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어 지는 것은 당연하다. 즉, 1,600만 이스탄불 시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2028년 앙카라 대권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에르도안은 2024년 선거에 사활을 거는 이유 중에 지방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헌법 개헌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에서 매우 중요했다. 터키의 입법부는 지방 의회 대표자 성격이 강하다는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지방 각지를 정의개발당이 장악하고 특히, 1,600만의 대도시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 개헌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여기에서 에르도안의 종신 집권이 가능한지의 여부가 판단된다. 종례 터키 헌법에는 중임 대통령이 임기 중 조기 대선을 실시해 당선될 때는 5년 추가 재임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지만 현재 조기 대선을 치르는 방법을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2033년까지 임기를 한 번 더 연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의 과반은 무조건 필요했다. 이스탄불에서 승리한다면 거의 50%의 확률을 종신집권으로 간 것이나 다름없다. 에르도안의 나이는 1954년 생으로 올해 71세이다. 2024년 이스탄불 선거가 에르도안이 80세까지 집권하느냐 마느냐의 사활이 걸려있었다. 이게 사실상 종신 집권이나 마찬가지인데 개헌을 하게 되면 에르도안의 종신 안이 화두가 될 것이다. 에르도안이 종신 집권을 하느냐, 아니면 현 이스탄불 시장 이마모을루가 2028년 에르도안의 강력한 정적이 되느냐는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 달렸다. 결국 51.14%의 득표율로 39%의 특표율을 획득한 무라트 쿠룸(Murat Kurum)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결국 에르도안은 종신 집권을 위한 개헌이 무산되었고, 이마모을루는 2028년 차기 대권 주자로 직행하게 되었으며 에르도안의 최대 정적으로 성장했다. 이마모을루가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기에 이같은 예측이 가능했던 것이다. 공화인민당의 거물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는 지난 2023년 대선에서 에르도안에게 참패했다. 대선에서 참패를 하고도 클르츠다르을루의 당내 영향력은 막강했다. 일례로 어떤 정치 활동도 하지 않고 이스탄불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던 툰젤리 출신 주민의 장례식에 외즈귀르 외젤(Özgür Özel) 당 대표가 자신의 명의로 조화를 보냈고, 공화인민당 이스탄불 지부의 외즈귀르 첼릭(Özgür Çelik) 대표가 직접 조문을 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는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동향 출신 측근이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 예우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터키에서도, 한국에서도 일반적인 행위는 분명 아니다. 그만큼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영향력이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내 영향력에 대한 예우와는 별개로 외젤 대표와 이마모을루 시장을 위시한 계파가 당권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당내 권력 구도에 변화가 점차 감지되고 있다. 이마모을루는 "당내에 변화가 필요하다(Parti içinde değişime ihtiyaç var)"고 주장하며 '변화(Değişim)' 라는 신흥 계파를 결성하고 외즈귀르 외젤 대표와 교류하기 시작했으며 만수르 야바시 앙카라 시장도 여기에 합류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지지해온 대의원 출신 예비 후보들을 모두 밀어내 버렸다. 13년간 당권을 유지한 클르츠다로을루는 당 대표를 내놓고 사실상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마모을루와 외젤, 야바시의 신(新) 체제가 구(舊) 체제를 마침내 밀어내 버린 것이다. 이후 2024년 하반기에 2028년 대통령 선거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마침내 이마모을루는 에르도안과 오차범위 밖 우세를 기록하게 된다. 에르도안은 아마 여기에서 위기를 느꼈던듯 싶다. 물론 이같은 상황이 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파죽지세로 이마모을루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2028년 대선에 에르도안이 다시 당선된다는 것을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외즈귀르 외젤과 앙카라 시장인 만수르 야바시, 이즈미르 시장인 체밀 투가이(Cemil Tugay) 등이 이마모을루에게 세를 결집시켜 준다면 터키 대선에서 대통령이 교체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게다가 현재 터키의 5대 도시(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부르사, 안탈리아)에서는 에르도안이 ISIS인 HTS를 움직여 시리아 내전에 깊이 개입하고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전복시킨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 5대 도시 내에서 에르도안에 대하 지지율 급락이다. 이처럼 지지율이 급락하게 되면 터키 의회에서 조기 대선이 요구될 수 있다. 특히 현재 터키의 의회는 여소야대의 형태이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이 야당인 공화인민당에 수적으로 열세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화인민당이 조기 대선을 주장한다면 에르도안 입장에서는 큰 정치적 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흔히 나타나는 것은 "정적 제거"다. 정적을 제거하면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집권 시기를 더 늘리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물론 어떻게 제거를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가장 보편적인 제거 방식은 "부패 혐의"를 내세워 숙청하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있어 "부패 혐의" 라는 것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셈으로 그런 식으로 털어내면 방법이 없다. 그래서 문제가 더 복잡해지기 전, 에르도안이 이에 관여하지 않았다 해도 가장 보편적인 제거 방식을 선택했고 지난 19일, 이마모을루를 부패 혐의 조사를 명분으로 체포 및 구금했다. 이마모을루 시장 외에도 100여 명의 기자도 함께 구금되었는데 이는 이같은 사건을 속전속결로 마무리 짓기 위해서다. 기자들이 기사를 쓰면 이를 일게 된 이마모을루의 지지자들이 몰려와 체포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요인을 일찌감치 제거하기 위해 기자들도 함께 체포해버린 것이다. 체포 및 구금, 교도소로의 이송은 빠르게 이루어졌고, 결국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순식간에 성공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이마모을루의 이스탄불 대학 경제학 학사 학위도 함께 취소되었다. 터키에서는 학부 학위가 있어야 대선에 출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적 제거라는 비판이 잇다르고 여기에 에르도안은 성명을 통해 밝히기를 "주요 야당인 공화인민당과 그들의 언론은 부패 등의 문제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 대신 국민들을 속이고 지지층들을 동원해 정치적인 구호를 만드는 쉬운 길을 선택한다. (Ana muhalefetteki Cumhuriyet Halk Partisi ve onun medyası, yolsuzluk gibi sorunlara yanıt vermekten acizdir. Bunun yerine kolay yolu seçiyorlar: Kendi taraftar kitlelerini harekete geçirip, halkı kandırmak için siyasi sloganlar üretiyorlar.)" 며 정적 제거 논란을 일축했다. 정말로 부패가 있었는지에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이러한 행위는 "정적 제거"라는 논란과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다. 터키 검찰이 11월 11일 에크렘 이마모을루 전 이스탄불 시장에게 징역 2,430년을 구형했다. 이스탄불 검찰청은 이날 이스탄불 시청 비리 사건과 관련해 이마모을루 전 시장을 비롯한 402명을 총 142개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그가 테러 조직을 만들어 뇌물 수수, 사기, 입찰 조작, 범죄수익 세탁, 개인정보 누설 등을 저질렀으며 이로 인해 1,600억 리라(약 5조 5,300억 원)의 공공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간첩 혐의도 추가됐다. 검찰은 이마모을루 전 시장이 속한 공화인민당이 불법 자금으로 운영됐다며 정당 해산 검토도 법원에 요청했다. 이에 공화인민당의 외즈귀르 외젤 대표는 이번 기소가 정치적인 야당 탄압의 목적이라며 공화인민당을 저지하고 당 대선 후보를 모함과 음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터키 검찰이 이마모을루에게 징역 2,430년을 구형했다는 것은 에르도안이 이마모을루에게 얼마나 큰 정치적 위협을 느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에르도안의 종신독재는 이제 막을 수 없게 생겼다. 내가 어제 말하지 않았던가. "나쁜 놈이 가장 정치를 잘한다" 사진 : 에크렘 이마모을루(Ekrem Imamoğlu) 전 이스탄불 시장, 징역 2,430년 구형, 출처 : TNT, 줌후리예트 터키, 튀르키예,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 에르도안, 에르도안 종신독재, 정의개발당, 공화인민당, 외즈귀르 외젤, 에르도안의 야당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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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검찰, 에크렘 이마모을루 전 이스탄불 시장에게 징역 2,430년, 사실상 종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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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1부)
- 키르기스스탄의 총선은 앞으로 보름 (15일) 정도 남았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법률과 내각 법령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법령에 따라 오후 10시까지 축하 행사와 오락 행사, 카페, 레스토랑, 식당, 나이트클럽의 영업을 마쳐야 한다고 밝히며 이 조치에 따르지 않으면 전원을 차단할 것이라는 독재국가도 하지 않을 조치를 발표해 깜짝 놀랐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케크 시는 카페, 레스토랑, 바, 클럽, 연회장 및 기타 시설을 포함한 음식 서비스 시설,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장소의 관리자는 의식,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금지한다고 밝혔으며 전기를 소모하는 모든 기기, 에너지 집약적인 기기(전기 스토브, 히터, 오븐 등)는 오후 10시 이후에는 전원을 꺼야 하며 정해진 시간 이후에는 시끄러운 음악, 조명 등 시민의 공공 안녕을 방해하는 행위를 수반하는 행사를 조직하고 개최하는 것도 금지된다고 하였다. 주거용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시설에서 전기 발전기를 사용하는 것만 허용된다고 했다. 비슈케크의 스베르들로프스크 지역에서 법을 준수하기 위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업소를 급습하는 조치들이 실시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후 10시 이후 전력 절약 결정에 따라 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출처 : 한인일보) 이런 공지는 키르기스스탄이 전력이 부족해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전기를 사오는 문제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사실 키르기스스탄은 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매우 역동적인 시민성을 갖고 있다. 중앙아시아 유일의 색깔혁명이 일어난 곳이며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재 대통령이 나오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사드르 자파로프(Садыр Жапаров)가 제3차 색깔혁명으로 인해 2021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서서히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자파로프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2005년에 발생한 키르기스스탄 첫번째 색깔혁명인 튤립폭동 때였다. 이 색깔혁명으로 인해 아스카르 아카예프(Аскар Акаев) 대통령의 반대편에 선 자파로프는 그 해 총선에서 이식쿨 주(州)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키르기스스탄 최고회의에 진출헤 쿠르만베그 바키예프(Курманбек Бакиев)를 지지했다. 그러나 제2대 키르기스스탄의 대통령에 취임한 바키예프는 키르기스스탄 최고회의를 해산했고 2007년 총선에서는 강제로 야당을 원외정당으로 밀어내 버리는 최악의 헌정유린을 저지른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자신의 동생인 자니시베그 바키예프(Жанисибек Бакиев)를 국가안보국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키르기스스탄 헌법을 위반한 족벌 정치였다. 바키예프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지만 그의 족벌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껴 비서실장 직위를 던져 버리고 야권으로 전향한 메데트 사디르쿨로프(Медет Садыркулов)의 암살을 지시했다. 이 또한 야권 의원의 암살을 사주한, 불법행위이다. 또한 그의 아들 막심 바키예프(Максим Бакиев)는 2009년 10월에 신설된 중앙개발투자혁신청장을 지내며 공유 재산 불법 사유화를 비롯해 여러 비리를 저질렀다. 특히 이중에서 대표적인 사건은 마나스에 있는 중앙아시아 유일의 미군 기지인 미 공군 기지에 연료를 판매하는 계약과 관련된 비리를 저질렀는데 당시 러시아는 마나스의 미군 기지에 대한 폐쇄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에 바키예프는 미군 기지에 이와 같은 러시아의 압박을 이유로 매우 높은 수수료를 받는 대가로 미군에게 기지를 사용하는 협상을 체결했다. 여기에 나온 차액의 상당수를 가족이 운영하는 국영 기관을 통해 빼돌렸는데 이같은 부패행위는 러시아와 미국의 분노를 사게 된다. 러시아로써는 중앙아시아의 미군 기지 폐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였고, 미국은 자국 군대가 주둔하는 수수료의 너무 비싸 분노했다. 이후 2009년 7월 치러진 대선에서 바키예프는 77.4%를 득표해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는데 이 또한 부정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음 해 4월에는 수도와 전기 요금을 인상함으로써 비슈케크 시민들의 분노를 유발해 싱 위가 발생했다. 바키예프는 군경으로 하여금 비슈케크의 정부청사 앞 시위대를 향해 실탄 발포를 허가했고, 이로 인해 85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매우 폭력적으로 변해 정부와 국회, 검찰청 건물을 점거했다. 이에 야당 아타주르트(Ата-Журт)의 대표 로자 오툰바예바(Роза Отунбаева)는 새로운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바키예프의 탄핵을 통과시켰는데 바키예프의 충견이었던 자파로프가 맹렬히 반대했지만 결국 오툰바예바에 의해 축출되고 키르기스스탄 남부 오쉬로 쫓겨나고 말았다. 자파로프는 이후 키르기스스탄의 민족주의 성향의 정치인이자 잘랄아바트 출신인 캄츠베크 타시예프(Камцбек Ташиев)와 함께 남부지방인 오쉬와 잘랄아바트에서 주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게다가 오쉬와 잘랄아바트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친(親) 바키예프 세력이 장악한 지역이었고, 이 지역은 바키예프의 주 거점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오쉬와 잘랄아바트에서는 바키예프와 현 대통령인 자파로프의 지지율이 매우 높다. 한편 비슈케크에서는 로자 오툰바예바가 새로운 대통령이 된다. 중앙아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유일한 여성 대통령인 오툰바예바는 보수적인 전통 유목민 체계의 키르기스스탄의 여성 대통령으로 등극하게 된 것은 미국의 입김 때문이었다. 그녀는 본래 모스크바 대학 철학과 출신이지만 키르기스스탄 초대 대통령인 아스카르 아카예프가 그녀를 외무부 장관으로 세웠다. 그녀는 거의 숙청당해 별로 없던 개국 대통령인 아카예프파의 남은 정치인 중 하나였고 바키예프에게 숙청당하지 않은 아카예프파의 고위 정치인 중 하나였다. 그녀가 바키예프에게 숙청당하지 않은 이유 또한 그녀의 뒷배경에는 미국이 있기 때문이었다. 초대 대통령인 아카예프는 오툰바예바를 미국 대사로 보낸 바 있었고, 그녀는 미국 정가와 자주 만남을 갖고 친교를 쌓다가 영국으로 가서 주영대사까지 지냈다. 그리고 조지아 주재 UN 특사로 활동하면서 미국, 영국의 관료들과 친하게 지냈다. 아카예프가 축출된 이후, 아카예프 산하에 있던 각료둘은 바키예프 대통령에 의해 축출을 당했는데 그녀는 이 숙청에서 살아남았다. 막심 바키예프가 마나스의 미군 기지에 부당한 수수료를 챙긴 것을 폭로하여 비난한 인물이기도 했고, 2차 튤립폭동 당시 바키예프를 축출하고 임시정부를 세우게 도운 것도 미국이었다. 이 정도면 이 2차 튤립폭동이라 불리는 색깔혁명의 뒷배경은 미국이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키르기스스탄 제4대 대통령인 로자 오툰바예바는 미국이 중앙아시아에 꽂아 놓은 "트로이 목마"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슈케크에서 멀리 떨어진 남부 오시와 잘랄아바트 지역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툰바예바 정부의 영향력이 매우 약했다. 특히 2010년 5월 13일에는 바키예프 지지자들의 오시와 잘랄아바트 지역 정부청사와 공항을 점거하는 사태도 일어났는데 바키예프와 그 지지자들의 배후에는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있었다. 바키예프가 축출되었을 때, 러시아와 친한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몸을 의탁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루카셴코는 바키예프 세력에 대해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루카셴코는 민스크의 대통령 궁에 쿠르만베그 바키예프 대통령을 식사에 초대하고 그를 친구처럼 아꼈다. 둘의 나이가 겨우 두 살 밖에 차이나지 않았기 때문에 둘은 현재까지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이처럼 미국 및 서방세력의 지역 패권 장악 의도는 시민 혁명의 선거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혹은 선거활동을 하는 NGO 단체들을 재정적, 도덕적, 이념적 차원에서 직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제2차 튤립폭동은 그러한 차원의 미국이 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보여주는 일례로 자리 잡고 있는데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 시위, 2005년 키르기스스탄 제1차 튤립폭동, 2008년 조지아 장미 시위, 2010년 키르기스스탄 제2차 튤립폭동 등으로 주기적으로 나타난 색깔혁명의 시도가 이를 방증한다. 색깔혁명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과 러시아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직접적으로 발생했다기보다는 색깔혁명을 통해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이 가시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으로 본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가 강화되어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에서 러시아의 국가 이익이 침해받거나, 과거 러시아의 앞마당인 구소련 국가들 지역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약화될 경우, 지역 패권을 둘러싼 미국 및 서방 세력과 러시아 간의 갈등은 지속된다. 특히 키르기스스탄 남부와 비슈케크의 지역 갈등은 이러한 패권경쟁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키르기스스탄 남부는 친러시아 세력이 기득권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은 남부 지방의 혼란은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 사이의 민족 분규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지역들은 우즈벡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이 면해 있기 때문인데 바키예프 지지세가 강한 키르기스인과 오툰바예바 정권에 비교적 호의적인 우즈베크인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문제는 이 같은 혼란에 대해 오툰바예바 정권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내의 비판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툰바예바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는 제3차 튤립폭동의 도화선이 된다. 2010년 10월 총선이 실시되었고 바키예프의 지지자들이 창당한 아타주르트가 오툰바예바의 사회민주당을 근소하게 앞서 제1당이 되면서 여소야대가 된다. 오툰바예바는 아타주르트 및 사업가 출신 오무르벡 바바노프(Омурбек Бабанов)가 이끄는 레스푸블리카당(Республика партия)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였고, 바바노프가 새 총리가 되었지만 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오툰바예바는 2011년 같은 사민당인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Алмазбек Атамбаев)에게 대권을 넘기고 퇴임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키르기스스탄은 역대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시비로 한 번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대한민국의 광학 판독 개표 장비 및 선거관리 시스템, 즉 전자개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주고 투표자를 매수하는 등의 부정 행위는 여전히 횡행했다. 여기에서 터진 가장 큰 문제는 쿰퇴르(Кумтөр) 광산 문제다. 이식쿨 주 남쪽 천산 산맥에 있는 쿰퇴르 금광은 캐나다 기업이 소유한 금광으로 키르기스스탄 GDP의 12%를 창출하고 있었다. 시르다리야 강의 수원지에 해당하는 빙하 밑에 위치한 쿰퇴르 광산은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이전부터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자파로프는 노동자들과 함께 비슈케크에 집결하면서 금광의 국유화를 요구했다. 자파로프가 이끈 시위대는 2012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궁으로 진입을 시도했고, 그는 무력으로 정권 교체를 시도한 혐의를 받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 석방되었다. 이후 카라콜에서 일어난 시위에서 시위대가 주지사 납치를 시도하자 그는 키르기스스탄 당국에 의해 수배 명단에 걸리게 되었고, 자파로프는 키르기스스탄을 떠나 키프로스로 망명했다. 2017년 키르기스스탄으로 입국을 시도했으나 입국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어 납치 혐의로 징역 1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 긴 투옥 생활을 하게 된다. 2016년 소론바이 젠베코프(Сооронбай Жээнбеков)가 총리가 되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탐바예프는 같은 당의 젠베코프를 지원했고, 젠베코프가 54.7%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정권 연장에 성공했다. 이후 아탐바예프와 젠베코프와 사이가 틀어진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에 차후로 설명하고자 한다. 2020년 키르기스스탄 총선거 이후 다시 부정 선거 시비로 대규모 집회가 발생하였고, 결국 젠베코프 대통령 역시 사임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들은 자파로프를 비롯해 여러 수감된 정치인들을 석방했다. 이와 같은 모진 키르기스스탄 현대사의 풍파를 겪은 자파로프의 입장에서는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매우 짙은 상태다. 그래서 언론에 대한 통제와 탄압, 그리고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는 어쩌면 필연적이다. - 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2부) -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Алмазбек Атамбаев)와 소론바이 젠베코프(Сооронбай Жээнбеков), 사디르 자파로프 3자 간의 권력투쟁기 - 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3부) - 사디르 자파로프의 사회 안정화 & 언론 및 사회 탄압의 양면성 사진 : 키르기스스탄 제3차 튤립폭동, 출처 : KATEHON 키르기스스탄, 튤립혁명, 튤립폭동, 중앙아시아 색깔혁명, 키르기스스탄 현대사, 사디르 자파로프, 오툰바예바, 미국, 러시아, 아카예프, 바키예프, 벨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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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검찰, 에크렘 이마모을루 전 이스탄불 시장에게 징역 2,430년, 사실상 종신형
- 터키 최대 도시인 인구 1,600만의 이스탄불의 시장은 에크렘 이마모을루(Ekrem Imamoğlu)였으며 2024년의 시장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정의개발당의 무라트 쿠룸(Murat Kurum) 전 환경장관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이스탄불 시장의 임기가 5년이니 최고 2029년까지는 시장으로써 재임할 수 있다. 이스탄불은 터키 최대의 도시로 이스탄불의 시장이 된다는 것은 장래 대통령 후보로 직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터키의 현 대통령인 에르도안도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되면서 대권 도전의 기회를 잡았다. 당시 터키는 대통령은 행정상의 수반이지만 실권은 없었고 총리가 모든 갖고 있었던 때였다. 그는 2003년에 총리가 되었고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모든 권력을 대통령에 집중시키면서 대통령 중심제로 바뀌었다. 따라서 총리 시절 포함, 그가 권좌에 22년 동안 앉아 있는 셈이다. 2024년 이스탄불 시장 선거 때, 에르도안은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인 이스탄불을 확보해야 했던 아주 중요한 선거였다. 무라트 쿠룸이 당선이 되어야 터키 최대 도시에서도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2019년 선거에 이어 2024년에도 이스탄불을 잃는다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 축소된 상태에서 정치력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이마모울루의 입장에서는 2024년 선거에서도 연승을 하게 된다면 차기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어 지는 것은 당연하다. 즉, 1,600만 이스탄불 시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2028년 앙카라 대권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에르도안은 2024년 선거에 사활을 거는 이유 중에 지방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헌법 개헌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에서 매우 중요했다. 터키의 입법부는 지방 의회 대표자 성격이 강하다는 특색이 있기 때문이다. 지방 각지를 정의개발당이 장악하고 특히, 1,600만의 대도시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 개헌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여기에서 에르도안의 종신 집권이 가능한지의 여부가 판단된다. 종례 터키 헌법에는 중임 대통령이 임기 중 조기 대선을 실시해 당선될 때는 5년 추가 재임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지만 현재 조기 대선을 치르는 방법을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은 2033년까지 임기를 한 번 더 연장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의 과반은 무조건 필요했다. 이스탄불에서 승리한다면 거의 50%의 확률을 종신집권으로 간 것이나 다름없다. 에르도안의 나이는 1954년 생으로 올해 71세이다. 2024년 이스탄불 선거가 에르도안이 80세까지 집권하느냐 마느냐의 사활이 걸려있었다. 이게 사실상 종신 집권이나 마찬가지인데 개헌을 하게 되면 에르도안의 종신 안이 화두가 될 것이다. 에르도안이 종신 집권을 하느냐, 아니면 현 이스탄불 시장 이마모을루가 2028년 에르도안의 강력한 정적이 되느냐는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 달렸다. 결국 51.14%의 득표율로 39%의 특표율을 획득한 무라트 쿠룸(Murat Kurum)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결국 에르도안은 종신 집권을 위한 개헌이 무산되었고, 이마모을루는 2028년 차기 대권 주자로 직행하게 되었으며 에르도안의 최대 정적으로 성장했다. 이마모을루가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기에 이같은 예측이 가능했던 것이다. 공화인민당의 거물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는 지난 2023년 대선에서 에르도안에게 참패했다. 대선에서 참패를 하고도 클르츠다르을루의 당내 영향력은 막강했다. 일례로 어떤 정치 활동도 하지 않고 이스탄불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던 툰젤리 출신 주민의 장례식에 외즈귀르 외젤(Özgür Özel) 당 대표가 자신의 명의로 조화를 보냈고, 공화인민당 이스탄불 지부의 외즈귀르 첼릭(Özgür Çelik) 대표가 직접 조문을 하기도 했을 정도이다. 그는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동향 출신 측근이기 때문에 당 차원에서 예우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터키에서도, 한국에서도 일반적인 행위는 분명 아니다. 그만큼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영향력이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내 영향력에 대한 예우와는 별개로 외젤 대표와 이마모을루 시장을 위시한 계파가 당권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당내 권력 구도에 변화가 점차 감지되고 있다. 이마모을루는 "당내에 변화가 필요하다(Parti içinde değişime ihtiyaç var)"고 주장하며 '변화(Değişim)' 라는 신흥 계파를 결성하고 외즈귀르 외젤 대표와 교류하기 시작했으며 만수르 야바시 앙카라 시장도 여기에 합류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를 지지해온 대의원 출신 예비 후보들을 모두 밀어내 버렸다. 13년간 당권을 유지한 클르츠다로을루는 당 대표를 내놓고 사실상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마모을루와 외젤, 야바시의 신(新) 체제가 구(舊) 체제를 마침내 밀어내 버린 것이다. 이후 2024년 하반기에 2028년 대통령 선거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마침내 이마모을루는 에르도안과 오차범위 밖 우세를 기록하게 된다. 에르도안은 아마 여기에서 위기를 느꼈던듯 싶다. 물론 이같은 상황이 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파죽지세로 이마모을루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2028년 대선에 에르도안이 다시 당선된다는 것을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외즈귀르 외젤과 앙카라 시장인 만수르 야바시, 이즈미르 시장인 체밀 투가이(Cemil Tugay) 등이 이마모을루에게 세를 결집시켜 준다면 터키 대선에서 대통령이 교체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게다가 현재 터키의 5대 도시(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부르사, 안탈리아)에서는 에르도안이 ISIS인 HTS를 움직여 시리아 내전에 깊이 개입하고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전복시킨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 5대 도시 내에서 에르도안에 대하 지지율 급락이다. 이처럼 지지율이 급락하게 되면 터키 의회에서 조기 대선이 요구될 수 있다. 특히 현재 터키의 의회는 여소야대의 형태이다.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이 야당인 공화인민당에 수적으로 열세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화인민당이 조기 대선을 주장한다면 에르도안 입장에서는 큰 정치적 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흔히 나타나는 것은 "정적 제거"다. 정적을 제거하면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집권 시기를 더 늘리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물론 어떻게 제거를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가장 보편적인 제거 방식은 "부패 혐의"를 내세워 숙청하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있어 "부패 혐의" 라는 것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셈으로 그런 식으로 털어내면 방법이 없다. 그래서 문제가 더 복잡해지기 전, 에르도안이 이에 관여하지 않았다 해도 가장 보편적인 제거 방식을 선택했고 지난 19일, 이마모을루를 부패 혐의 조사를 명분으로 체포 및 구금했다. 이마모을루 시장 외에도 100여 명의 기자도 함께 구금되었는데 이는 이같은 사건을 속전속결로 마무리 짓기 위해서다. 기자들이 기사를 쓰면 이를 일게 된 이마모을루의 지지자들이 몰려와 체포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요인을 일찌감치 제거하기 위해 기자들도 함께 체포해버린 것이다. 체포 및 구금, 교도소로의 이송은 빠르게 이루어졌고, 결국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순식간에 성공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이마모을루의 이스탄불 대학 경제학 학사 학위도 함께 취소되었다. 터키에서는 학부 학위가 있어야 대선에 출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적 제거라는 비판이 잇다르고 여기에 에르도안은 성명을 통해 밝히기를 "주요 야당인 공화인민당과 그들의 언론은 부패 등의 문제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 대신 국민들을 속이고 지지층들을 동원해 정치적인 구호를 만드는 쉬운 길을 선택한다. (Ana muhalefetteki Cumhuriyet Halk Partisi ve onun medyası, yolsuzluk gibi sorunlara yanıt vermekten acizdir. Bunun yerine kolay yolu seçiyorlar: Kendi taraftar kitlelerini harekete geçirip, halkı kandırmak için siyasi sloganlar üretiyorlar.)" 며 정적 제거 논란을 일축했다. 정말로 부패가 있었는지에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이러한 행위는 "정적 제거"라는 논란과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다. 터키 검찰이 11월 11일 에크렘 이마모을루 전 이스탄불 시장에게 징역 2,430년을 구형했다. 이스탄불 검찰청은 이날 이스탄불 시청 비리 사건과 관련해 이마모을루 전 시장을 비롯한 402명을 총 142개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그가 테러 조직을 만들어 뇌물 수수, 사기, 입찰 조작, 범죄수익 세탁, 개인정보 누설 등을 저질렀으며 이로 인해 1,600억 리라(약 5조 5,300억 원)의 공공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간첩 혐의도 추가됐다. 검찰은 이마모을루 전 시장이 속한 공화인민당이 불법 자금으로 운영됐다며 정당 해산 검토도 법원에 요청했다. 이에 공화인민당의 외즈귀르 외젤 대표는 이번 기소가 정치적인 야당 탄압의 목적이라며 공화인민당을 저지하고 당 대선 후보를 모함과 음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터키 검찰이 이마모을루에게 징역 2,430년을 구형했다는 것은 에르도안이 이마모을루에게 얼마나 큰 정치적 위협을 느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에르도안의 종신독재는 이제 막을 수 없게 생겼다. 내가 어제 말하지 않았던가. "나쁜 놈이 가장 정치를 잘한다" 사진 : 에크렘 이마모을루(Ekrem Imamoğlu) 전 이스탄불 시장, 징역 2,430년 구형, 출처 : TNT, 줌후리예트 터키, 튀르키예,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 에르도안, 에르도안 종신독재, 정의개발당, 공화인민당, 외즈귀르 외젤, 에르도안의 야당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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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1부)
- 키르기스스탄의 총선은 앞으로 보름 (15일) 정도 남았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법률과 내각 법령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법령에 따라 오후 10시까지 축하 행사와 오락 행사, 카페, 레스토랑, 식당, 나이트클럽의 영업을 마쳐야 한다고 밝히며 이 조치에 따르지 않으면 전원을 차단할 것이라는 독재국가도 하지 않을 조치를 발표해 깜짝 놀랐다.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쉬케크 시는 카페, 레스토랑, 바, 클럽, 연회장 및 기타 시설을 포함한 음식 서비스 시설,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장소의 관리자는 의식,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금지한다고 밝혔으며 전기를 소모하는 모든 기기, 에너지 집약적인 기기(전기 스토브, 히터, 오븐 등)는 오후 10시 이후에는 전원을 꺼야 하며 정해진 시간 이후에는 시끄러운 음악, 조명 등 시민의 공공 안녕을 방해하는 행위를 수반하는 행사를 조직하고 개최하는 것도 금지된다고 하였다. 주거용 건물에서 멀리 떨어진 시설에서 전기 발전기를 사용하는 것만 허용된다고 했다. 비슈케크의 스베르들로프스크 지역에서 법을 준수하기 위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업소를 급습하는 조치들이 실시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후 10시 이후 전력 절약 결정에 따라 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출처 : 한인일보) 이런 공지는 키르기스스탄이 전력이 부족해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전기를 사오는 문제 때문인 것도 있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사실 키르기스스탄은 타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매우 역동적인 시민성을 갖고 있다. 중앙아시아 유일의 색깔혁명이 일어난 곳이며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독재 대통령이 나오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사드르 자파로프(Садыр Жапаров)가 제3차 색깔혁명으로 인해 2021년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서서히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자파로프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2005년에 발생한 키르기스스탄 첫번째 색깔혁명인 튤립폭동 때였다. 이 색깔혁명으로 인해 아스카르 아카예프(Аскар Акаев) 대통령의 반대편에 선 자파로프는 그 해 총선에서 이식쿨 주(州)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키르기스스탄 최고회의에 진출헤 쿠르만베그 바키예프(Курманбек Бакиев)를 지지했다. 그러나 제2대 키르기스스탄의 대통령에 취임한 바키예프는 키르기스스탄 최고회의를 해산했고 2007년 총선에서는 강제로 야당을 원외정당으로 밀어내 버리는 최악의 헌정유린을 저지른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자신의 동생인 자니시베그 바키예프(Жанисибек Бакиев)를 국가안보국장으로 임명했다. 이는 키르기스스탄 헌법을 위반한 족벌 정치였다. 바키예프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지만 그의 족벌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껴 비서실장 직위를 던져 버리고 야권으로 전향한 메데트 사디르쿨로프(Медет Садыркулов)의 암살을 지시했다. 이 또한 야권 의원의 암살을 사주한, 불법행위이다. 또한 그의 아들 막심 바키예프(Максим Бакиев)는 2009년 10월에 신설된 중앙개발투자혁신청장을 지내며 공유 재산 불법 사유화를 비롯해 여러 비리를 저질렀다. 특히 이중에서 대표적인 사건은 마나스에 있는 중앙아시아 유일의 미군 기지인 미 공군 기지에 연료를 판매하는 계약과 관련된 비리를 저질렀는데 당시 러시아는 마나스의 미군 기지에 대한 폐쇄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에 바키예프는 미군 기지에 이와 같은 러시아의 압박을 이유로 매우 높은 수수료를 받는 대가로 미군에게 기지를 사용하는 협상을 체결했다. 여기에 나온 차액의 상당수를 가족이 운영하는 국영 기관을 통해 빼돌렸는데 이같은 부패행위는 러시아와 미국의 분노를 사게 된다. 러시아로써는 중앙아시아의 미군 기지 폐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였고, 미국은 자국 군대가 주둔하는 수수료의 너무 비싸 분노했다. 이후 2009년 7월 치러진 대선에서 바키예프는 77.4%를 득표해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는데 이 또한 부정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음 해 4월에는 수도와 전기 요금을 인상함으로써 비슈케크 시민들의 분노를 유발해 싱 위가 발생했다. 바키예프는 군경으로 하여금 비슈케크의 정부청사 앞 시위대를 향해 실탄 발포를 허가했고, 이로 인해 85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러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매우 폭력적으로 변해 정부와 국회, 검찰청 건물을 점거했다. 이에 야당 아타주르트(Ата-Журт)의 대표 로자 오툰바예바(Роза Отунбаева)는 새로운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바키예프의 탄핵을 통과시켰는데 바키예프의 충견이었던 자파로프가 맹렬히 반대했지만 결국 오툰바예바에 의해 축출되고 키르기스스탄 남부 오쉬로 쫓겨나고 말았다. 자파로프는 이후 키르기스스탄의 민족주의 성향의 정치인이자 잘랄아바트 출신인 캄츠베크 타시예프(Камцбек Ташиев)와 함께 남부지방인 오쉬와 잘랄아바트에서 주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게다가 오쉬와 잘랄아바트를 비롯한 남부 지역은 친(親) 바키예프 세력이 장악한 지역이었고, 이 지역은 바키예프의 주 거점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오쉬와 잘랄아바트에서는 바키예프와 현 대통령인 자파로프의 지지율이 매우 높다. 한편 비슈케크에서는 로자 오툰바예바가 새로운 대통령이 된다. 중앙아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유일한 여성 대통령인 오툰바예바는 보수적인 전통 유목민 체계의 키르기스스탄의 여성 대통령으로 등극하게 된 것은 미국의 입김 때문이었다. 그녀는 본래 모스크바 대학 철학과 출신이지만 키르기스스탄 초대 대통령인 아스카르 아카예프가 그녀를 외무부 장관으로 세웠다. 그녀는 거의 숙청당해 별로 없던 개국 대통령인 아카예프파의 남은 정치인 중 하나였고 바키예프에게 숙청당하지 않은 아카예프파의 고위 정치인 중 하나였다. 그녀가 바키예프에게 숙청당하지 않은 이유 또한 그녀의 뒷배경에는 미국이 있기 때문이었다. 초대 대통령인 아카예프는 오툰바예바를 미국 대사로 보낸 바 있었고, 그녀는 미국 정가와 자주 만남을 갖고 친교를 쌓다가 영국으로 가서 주영대사까지 지냈다. 그리고 조지아 주재 UN 특사로 활동하면서 미국, 영국의 관료들과 친하게 지냈다. 아카예프가 축출된 이후, 아카예프 산하에 있던 각료둘은 바키예프 대통령에 의해 축출을 당했는데 그녀는 이 숙청에서 살아남았다. 막심 바키예프가 마나스의 미군 기지에 부당한 수수료를 챙긴 것을 폭로하여 비난한 인물이기도 했고, 2차 튤립폭동 당시 바키예프를 축출하고 임시정부를 세우게 도운 것도 미국이었다. 이 정도면 이 2차 튤립폭동이라 불리는 색깔혁명의 뒷배경은 미국이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키르기스스탄 제4대 대통령인 로자 오툰바예바는 미국이 중앙아시아에 꽂아 놓은 "트로이 목마"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슈케크에서 멀리 떨어진 남부 오시와 잘랄아바트 지역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툰바예바 정부의 영향력이 매우 약했다. 특히 2010년 5월 13일에는 바키예프 지지자들의 오시와 잘랄아바트 지역 정부청사와 공항을 점거하는 사태도 일어났는데 바키예프와 그 지지자들의 배후에는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있었다. 바키예프가 축출되었을 때, 러시아와 친한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몸을 의탁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루카셴코는 바키예프 세력에 대해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루카셴코는 민스크의 대통령 궁에 쿠르만베그 바키예프 대통령을 식사에 초대하고 그를 친구처럼 아꼈다. 둘의 나이가 겨우 두 살 밖에 차이나지 않았기 때문에 둘은 현재까지 절친으로 지내고 있다. 이처럼 미국 및 서방세력의 지역 패권 장악 의도는 시민 혁명의 선거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혹은 선거활동을 하는 NGO 단체들을 재정적, 도덕적, 이념적 차원에서 직간접적으로 지원한다. 제2차 튤립폭동은 그러한 차원의 미국이 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보여주는 일례로 자리 잡고 있는데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 시위, 2005년 키르기스스탄 제1차 튤립폭동, 2008년 조지아 장미 시위, 2010년 키르기스스탄 제2차 튤립폭동 등으로 주기적으로 나타난 색깔혁명의 시도가 이를 방증한다. 색깔혁명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과 러시아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직접적으로 발생했다기보다는 색깔혁명을 통해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이 가시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으로 본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가 강화되어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에서 러시아의 국가 이익이 침해받거나, 과거 러시아의 앞마당인 구소련 국가들 지역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약화될 경우, 지역 패권을 둘러싼 미국 및 서방 세력과 러시아 간의 갈등은 지속된다. 특히 키르기스스탄 남부와 비슈케크의 지역 갈등은 이러한 패권경쟁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키르기스스탄 남부는 친러시아 세력이 기득권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은 남부 지방의 혼란은 키르기스인과 우즈베크인 사이의 민족 분규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지역들은 우즈벡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이 면해 있기 때문인데 바키예프 지지세가 강한 키르기스인과 오툰바예바 정권에 비교적 호의적인 우즈베크인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문제는 이 같은 혼란에 대해 오툰바예바 정권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내의 비판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툰바예바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는 제3차 튤립폭동의 도화선이 된다. 2010년 10월 총선이 실시되었고 바키예프의 지지자들이 창당한 아타주르트가 오툰바예바의 사회민주당을 근소하게 앞서 제1당이 되면서 여소야대가 된다. 오툰바예바는 아타주르트 및 사업가 출신 오무르벡 바바노프(Омурбек Бабанов)가 이끄는 레스푸블리카당(Республика партия)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였고, 바바노프가 새 총리가 되었지만 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오툰바예바는 2011년 같은 사민당인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Алмазбек Атамбаев)에게 대권을 넘기고 퇴임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키르기스스탄은 역대 선거 때마다 부정선거 시비로 한 번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대한민국의 광학 판독 개표 장비 및 선거관리 시스템, 즉 전자개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주고 투표자를 매수하는 등의 부정 행위는 여전히 횡행했다. 여기에서 터진 가장 큰 문제는 쿰퇴르(Кумтөр) 광산 문제다. 이식쿨 주 남쪽 천산 산맥에 있는 쿰퇴르 금광은 캐나다 기업이 소유한 금광으로 키르기스스탄 GDP의 12%를 창출하고 있었다. 시르다리야 강의 수원지에 해당하는 빙하 밑에 위치한 쿰퇴르 광산은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이전부터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자파로프는 노동자들과 함께 비슈케크에 집결하면서 금광의 국유화를 요구했다. 자파로프가 이끈 시위대는 2012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궁으로 진입을 시도했고, 그는 무력으로 정권 교체를 시도한 혐의를 받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 석방되었다. 이후 카라콜에서 일어난 시위에서 시위대가 주지사 납치를 시도하자 그는 키르기스스탄 당국에 의해 수배 명단에 걸리게 되었고, 자파로프는 키르기스스탄을 떠나 키프로스로 망명했다. 2017년 키르기스스탄으로 입국을 시도했으나 입국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어 납치 혐의로 징역 1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 긴 투옥 생활을 하게 된다. 2016년 소론바이 젠베코프(Сооронбай Жээнбеков)가 총리가 되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탐바예프는 같은 당의 젠베코프를 지원했고, 젠베코프가 54.7%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정권 연장에 성공했다. 이후 아탐바예프와 젠베코프와 사이가 틀어진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에 차후로 설명하고자 한다. 2020년 키르기스스탄 총선거 이후 다시 부정 선거 시비로 대규모 집회가 발생하였고, 결국 젠베코프 대통령 역시 사임하였다.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들은 자파로프를 비롯해 여러 수감된 정치인들을 석방했다. 이와 같은 모진 키르기스스탄 현대사의 풍파를 겪은 자파로프의 입장에서는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매우 짙은 상태다. 그래서 언론에 대한 통제와 탄압, 그리고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는 어쩌면 필연적이다. - 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2부) -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Алмазбек Атамбаев)와 소론바이 젠베코프(Сооронбай Жээнбеков), 사디르 자파로프 3자 간의 권력투쟁기 - 총선 앞둔 키르기스스탄의 예민한 정국 : '법률 위반에 관한 법(О правонарушениях)'의 강화 (3부) - 사디르 자파로프의 사회 안정화 & 언론 및 사회 탄압의 양면성 사진 : 키르기스스탄 제3차 튤립폭동, 출처 : KATEHON 키르기스스탄, 튤립혁명, 튤립폭동, 중앙아시아 색깔혁명, 키르기스스탄 현대사, 사디르 자파로프, 오툰바예바, 미국, 러시아, 아카예프, 바키예프, 벨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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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일한 소수민족 문제, 아이누족과 훗카이도(北海島), 사할린, 쿠릴열도까지 포함된 역사 문제
- 아이누족은 홋카이도·사할린·쿠릴열도에 살던 원주민으로, 메이지 정부의 강력한 동화정책으로 전통 문화·언어·영토를 상실하고 사회적 차별에 시달려 왔다. 일본은 19세기 후반부터 아이누를 ‘구토인’으로 규정하고 관습과 생활을 금지하며 강제 이주를 시행했다. 현재 아이누족은 약 3만 명으로 파악되지만 실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빈곤과 낮은 교육률 문제는 여전히 지속되지만, 최근에는 언어 교육, 전통 의례 복원, 문화 보존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며 정체성 회복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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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일한 소수민족 문제, 아이누족과 훗카이도(北海島), 사할린, 쿠릴열도까지 포함된 역사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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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젤렌스키의 부패스캔들, 불법적인 그의 권력에 고비가 오는가?
-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의 최측근 티무르 민디치가 연루된 대형 부패 사건이 나부(NABU)의 대규모 수사로 드러나며 정치적 위기가 커지고 있다. 민디치는 젤렌스키와 가까운 인물로, 에너지 인프라 발주 과정에서 거액을 챙기고 해외로 도피했다. 러시아 공습으로 전력난이 심해지고 전황도 악화되는 가운데, 서방의 젤렌스키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용도 폐기’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미국·EU의 의중과 맞물린 이번 사건은 젤렌스키 권력의 중대한 시험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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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젤렌스키의 부패스캔들, 불법적인 그의 권력에 고비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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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정상회담 이후 중일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 중일 정상회담 이후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이 중국의 ‘레드라인’을 건드리면서 양국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었다. 중국은 한일령, 일본산 수산물 수입 중단, 상임이사국 저지 등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일본은 강경 기조를 유지하지만 내각 내 친중 인사 부재와 보수층 결집 전략이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관계 회복은 당분간 어려우며 한국은 중립적·실용적 균형 외교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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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정상회담 이후 중일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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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치의 속성과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대한민국
- 국제 정치의 속성과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대한민국 한국인들 상당수를 보면 전쟁에 대해 많은 감성과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가 총에 맞아 머리 터져 죽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날 밤에 그 죽은 사람이 얼굴이 떠오르고 계속 그것이 파노라마처럼 되뇌어서 돌아다닌다. 그것을 벗어나면 평소와 같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밤마다 꿈속에서 나오고 결국 불면증 때문에 폐인이 된다. 이 사람들은 그 트라우마가 오랜 세월이 지나며 사라질 수는 있겠지만 천둥만 치면 총이나 포를 쏘는 소리인 줄 알고 깜짝 깜짝 놀란다. 천둥이 바로 트리거가 되어 아직 심리적으로 잔상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는 죽을 때까지 갖고 갈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고 한다. 전쟁이 터지면 많은 인명이 죽는 것은 당연한거고 인권유린, 전쟁범죄, 그 외에도 할 수 있는 것, 끝도 없이 악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전쟁인거다. 거기에서 국제법 등을 다 지켜가며 인간적 다 따져가며 하는 전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가 했든, 그런거 하나 하나 다 지켜가며 하는 전쟁이 있던가? 전쟁 자체가 비도덕적이고 인권 유린인데 젊은 군인의 목숨과 약자 및 민간인들의 목숨,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사람의 목숨은 공평하게 1개 밖에 없고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목숨이 없다. 그 안에 고결한 도덕을 따지는 이상론들은 그저 상대방을 더 나쁘게 비난하는 선전도구이자 국제 정치적, 외교적으로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장치일 뿐, 아무 의미없다. 전쟁이란, 터지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다하기 때문에 성역도 없고 도덕도 없고 서로 죽고 죽이는 처절한 살육만 있다. 그래서 전쟁은 늘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안에서 인권 유린이니 전쟁 범죄니, 도덕성, 불쌍하다는 감성 따위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 어제 내가 러시아에서 일본에 제기한 사할린 학살, 중국이 오키나와에 원주민 언급한 것 등은 각 국가들끼리의 정치적 기싸움이다. 그러더가 선도 넘는 것이고, 관계도 악화되고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전쟁에 돌입하지 않는다. 하는 척, 긴장감만 올려 놓고, 각자 자국의 국내, 외적인 정치적 수사를 통해 입지를 강화하거나 상대를 견제하는 것이다. 그것이 국내가 됐든, 국제가 됐든, 관계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발언들을 자주 하여 국제적으로 상대를 자극한다는 것은 국내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외부로 환기시키며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도 마찬가지다. 그의 정치적 권력 기반은 그렇게 튼튼하지 못하다. 게다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핸디캡이 있다. 일본 사회는 다들 잘 알다시피, 여성에게 그리 좋은 사회는 아니다. 무엇보다 정치권은 매우 보수적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총리가 되었으며 총리로써 권력을 안정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의 단합된 질서가 필요하다. 일본 국내의 권력 구도와 질서 확립은 그녀가 뭔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튼튼한 기반이 된다. 다카이치 사나에의 약점은 그런 기반이 불안정하다는 것에 있다. 그러려면 그녀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 있는 "단합된 질서"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확고한 도구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안보 문제"다. 물론 미국이 원한 것일수도 있을 것이다. 다카이치 사나에는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을 계속 자극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러시아에서 어제 강경발언을 했어도 이전 총리들에 비해 그 강도는 약했다. 그 이유는 사할린에 가스를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게는 적당히 그 발언을 하고 넘어갈 수는 있다. 러시아 또한 지금까지 하는 것으로 봐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듯 하다. 그러면 만만한 나라가 어디일까? 바로 중국이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역린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다카이치 총리가 모를리 없다. 그러나 그녀의 국내에서의 취약한 입지 등을 생각한다면 그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 가장 큰 한 방이라 볼 수 있다. 그 역린을 건드리면서 중국이 발끈하면 그녀는 일본 내 국민들과 정치권, 군권 등의 단결을 요구하게 되고, 이렇게 단결된 힘은 그녀의 정치권력 구축에 큰 원동력이 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중국에 대놓고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도전하는 미친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도 중국에 희토류에 약점이 잡혀 있다. 적당히 수위조절하면서 긴장감을 불어 넣어주고, 그로 인해 일본 내 그녀의 정치 권력의 입지가 단단해지면 그 때부터 관계 개선하는 측면으로 손을 내밀 가능성이 크다. 중국도 당장에 발끈하겠지만 이같은 다카이치 총리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 상대의 발끈을 유도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입지를 안정적으로 만들면 그때부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손을 잡는다. 그렇게 되면 상대는 못 이기는 척 받아준다. 때로는 정치적으로 적당한 기만(Deceiver)과 위선(Hypocrisy)이 서로 윈윈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정치는 절대로 순수하게 보거나 접근하면 안 된다. 한국에게 부족한 것은 어줍잖은 순수함으로 접근한다는 것인데 국제 정치에서 그렇게 접근했다가는 조선처럼 되고 말 것이다. 세계 역사와 국제 정치, 외교를 평생 공부하면서 깨달은 것은 "나쁜놈이 가장 정치를 잘한다"는 것이다. 세계 각 국의 지도자들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 사진 :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국제정치, 일본, 대한민국, 중국,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정치, 국제정치의 속성, 하나의 중국, 러시아,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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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치의 속성과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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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중국 간의 외교 신경전을 두고, 필요한 것은 한국의 중립성
- 한국의 보수 세력들은 외교적 중립성이라는 것 자체를 아예 모르는 것 같다.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대만 유사시 자위대를 활용할 수 있다고 발언하자, 중국 오사카 총영사 쉬첸이 "다카이치의 목을 베겠다"고 했다. 이는 일본이 사실상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는 역린을 범한 것이고, 최악의 외교적 결례를 일본이 먼저했다. 이는 내가 러시아를 편들고 있기 때문에 중국 편을 드는게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에서 양쪽을 판단한 것이다. 일본이 무엇이건데 대만의 유사시에 자위대를 활용할 것이라는지, 국제적인 인식 및 대만에 관한 국제법으로도 대만은 엄연히 중국과 한 몸이다. 대만과 중화민국으로 수교한 국가도 몇 없으니 대만을 국가로 인정한 나라도 몇 없다. 공식석상에서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는 올라가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고, 대만 국가인 중화민국국가(中華民國國歌) 또한 공식적으로 부를 수 없다. 또한 대만은 해외에 대사관, 영사관을 둘 수 없고, 대신 대표부를 두는 것 정도만 허용되고 있다. 이는 일본이 중국에게 한 내정간섭이고 권리침해다. 미국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고 있는데, 일본이 무엇이건데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스르고, 자위대를 파견하겠다는 발언을 하는 것인가? 외교관이 타국 총리를 참수하겠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뱉은 것은 도가 지나친 것은 맞지만 이는 일본이 넘어서 안 되는 레드라인을 넘어 먼저 도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다카이치를 편들어 애써 중국의 발언을 같이 비판할 필요는 없다.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미국도 넘지 않는 선을 일본이 넘었다. 다카이치는 중국의 대만 해상봉쇄 시, 일본이 존립사태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명확히 밝혔는데 이는 대만을 잃으면 오키나와가 사정권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대만을 지키기 위해 중국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러려면 일본은 이중적인 입장을 버려야 한다. 한편으로는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존립사태위기에 직면했다며 대만 유사시 자위대를 동원한다는 것이다. 정말 중국과 겨루고 싶다면 다카이치는 "하나의 중국"은 위법이니 이를 깨고, 대만을 지키겠다고 정식으로 나서며 해상 자위대를 펑후 일대까지 파견하여 포를 진먼으로 돌려야 한다. 그런데 다카이치는 지금까지 그 어떤 액션도 하지 않았다. 이는 일종의 블러핑 수준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 진영에서는 이를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청나라를 깨부순 청일전쟁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과거의 청나라가 아니다. 청나라 수준의 무력을 지닌 국가였다면 서구 세력이 이미 20세기 초처럼 중국을 잠식했어야 맞다. 그런데 지금 서구 세력이 중국 어딘가를 잠식하고 있는가? 중국에 남아 있는 서구의 식민지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니 한국 보수 진영들의 수준은 1894년, 즉 130년 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총영사의 참수 발언은 그가 히스테리를 부린 것이 아니라 "하나의 중국" 원칙을 침해한 역린을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미국 타이폰 미사일 시스템이 일본에 배치되었다. 이에 러시아는 이를 극동 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며 "가혹한 보복"을 천명했다. 미국 타이폰 미사일 시스템은 9월 11일부터 25일까지 열린 미국-일본 합동 군사 훈련의 틀 내에서 미국 이와쿠니 군사 기지에 배치되었는데 이는 아직 철수하지 않았다. 타이폰 시스템은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을 포함한 중거리 및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도록 설계된 지상 이동식 발사 시스템이다. 토마호크는 러시아와 미국 모두 2019년에 철수한 역사적인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에 따라 금지되었던 무기다. 이를 발사할 수 있는 발사대인 타이푼 시스템이 이와쿠니에 설치되었다면 사할린 지역에 러시아의 핵무기를 배치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동북아시아 전쟁의 긴장을 불어넣는 국가는 미국과 일본이다. 그리고 중국은 희토류를 쥐고 있다는 것을 다들 엄청나게 간과하고 있다. 사실 미국과의 관세전쟁에서 중국이 쥐고 있는 희토류 목줄을 풀어준 것은 미국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대두 한 번 사주고, 희토류 수출은 유예했을 뿐이고, 미국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펜타닐 관세만 낮춰줬을 뿐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중국이 기술패권 경쟁에서 패배했다고 주장하는데 그에 대한 근거가 하나도 없다. 여전히 중국제가 수출되고 있고, 공장이 풀 가동되어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데 무슨 기술 패권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하는가? AI 기술 또한 중국이 미국을 앞서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미 AI 기술은 중국이 미국을 넘어선지 꽤 됐다. 그런데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도 최악인 시기를 겪었던 90년대에는 미국처럼 셧다운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국의 셧다운에 대해 보수 진영은 놀랍도록 조용했다. 이는 자신들이 우상처럼 여겨왔던 미국의 위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기시 되어 있고, 그것을 언급하면 자신들이 불리하기에 감추는 것이다. 셧다운이 종료되면 그때서야 언급할 것이다. 미국은 셧다운을 극복한 역시 초강대국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진정한 초강대국은 셧다운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셧다운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극복하는 것 자체가 자랑이 아니다. 정부 시스템이 올 스톱 된 것을 극복한게 무슨 자랑으로 여기는 것인가? 이는 그만큼 미국 내정이 혼란스럽다는 증거다. 그리고 일본이 강경노선으로 돌아서니 중국이 공포에 질렀다고 주장들 하던데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외교관을 시켜 협박 발언을 내뱉게했다고 하는데 한국의 보수 진영은 남의 나라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대로 시나리오를 쓰는 자들이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중국은 홍콩의 주권을 빼앗았다>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홍콩은 단 한 번도 주권 국가인적이 없는데 무슨 주권을 뺏나? 1997년 반환 이전에는 영국령 홍콩이었고, 반환된 이후,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다소 기형적 조건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조건부 공존하는 체제다. 즉, 중공령인데 그 안에 어느 정도 자치권을 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일국양제(一國兩制)는 홍콩과 마카오, 현재 두 곳을 갖고 있다. 이어 중국은 대만을 속국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만 정부를 중국이 인정하지 않는데 무슨 속국으로 인식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나의 중국"으로 여기고 있는데 무슨 "속국"으로 인식하는지, 대만이 주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럼 전 세계에 대만을 인정하는 국가가 왜 없는지, 그리고 왜 중화민국 대사관이라는 이름이 없고 타이베이 대표부라 이름이 붙여져 있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UN에 정식국가로 왜 등록이 안 되어 있는지 설명해 볼 것이며 왜 미국이 "하나의 중국"으로 인정하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아마 한 명도 설명하지 못할 것이라 장담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만 유사시에 한국은 중립이 최선이다. 지금 중국은 청나라 말기와 다르며 제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다 해도 물량공세는 이기지 못한다. 원자재로 재가공하여 물건 팔아먹는 국가들이 무슨 수로 무한정 원자재를 캐내는나라를 이길 수 있는가? 그것은 이미 이란-이스라엘 전쟁에서 입증되지 않았는가? 이란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폭격할 때,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에로우시스템, 페트리어트 모두 방어에 실패했다. 예를 들어 10개 중에서 7개가 명중했지만 3개는 놓쳤다. 그런데 그 3개가 텔아비브에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했다. 당시 텔아비브 공습 영상과 도시의 초토화 된 사진을 보면 그 피해의 참상을 볼 수 있다. 혹자는 어떻게 그 물량을 다 막을 수 있느냐, 70% 요격률도 대단하다 하면서 정신승리를 하는데 이스라엘에 설치해 놓은 시스템이면 다 막아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아이언돔도 안심하지 못해 에로우시스템과 페트리어트까지 구비해놨다는 것은 100%의 요격을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30%가 뚫렸다는 것은 나중에 1,000개 이상의 드론 포함 미사일 보내면 적어도 300개는 낙하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폭발성이 준핵폭탄 급으로 고농축 우라늄이 탑재된 포탄을 탑재할 수 있다면 다 막지 못해서 요격에 실패한 1~2개만으로도 엄청난 파괴력을 양산해낼 수 있다. 왜 이것을 생각하지 못할까? 시기적으로 현재 구한말과 비슷한 형태라는 것은 동의한다. 그러나 중국은 그때의 청나라가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중국, 북한과 최전선에 있다. 대만과의 분쟁에 참여할 경우, 북한군이 휴전선에 공격 대형을 펼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의 군대가 대만으로 간 틈에 북한군이 공격해 내려오면 감당할 수 있나? 그러니 외교적으로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게 좋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은 대만 유사시 중립이 최선이다. 사진 : 중국-대만-일본의 외교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출처 : Yahoo! JAPAN 중국, 대만, 타이완, 일본, 중국-일본 외교전, 다카이치 사나에, 하나의 중국, 대만 유사시, 일본 자위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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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중국 간의 외교 신경전을 두고, 필요한 것은 한국의 중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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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을 가다(2)
- 양귀비는 중국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을까? 양귀비의 미모에 빠져 나라를 망친 당 현종! ‘경국지색’의 주인공이 양귀비라면 양귀비는 무죄일지도 모른다. 예쁜 것만으로는 죄가 될 수 없지 않은가? 오늘은 그런 양귀비를 만나러 간다. 입구에 가까이 갈수록 거리 양옆에서 화청궁이라고 쓰인 한자를 읽을 수 있었다. 화청궁은 당나라 황실의 온천 별장이다.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여름 별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지만, 그곳에서 양귀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죽은 양귀비를 볼 수 없음은 당연하지만, 그곳에 가면 양귀비의 초상화 정도는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다만 화청궁 입구에 만들어진 양귀비의 춤에 넋이 나간 모습으로 누워 바라보고만 있는 당 현종을 형상화한 거대한 조각상과 화청궁 내에 목욕을 마치고 나온 양귀비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만 있었다. 궁 내부에는 화청지라 불리는 연못이 있었고, 그 주변에서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하늘에 로프를 설치하여 그 로프에 몸을 매달고 춤을 추는 무희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양옥환(양귀비)은 당 현종의 아들 수와 결혼한 며느리였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에 반해 당 현종은 그녀를 후궁으로 삼았다. 그래서 양옥환은 양귀비가 되었다. 요즘 말로 하면 당 현종은 며느리와 결혼한 시아버지였다. 경국지색의 미모란 어떤 모습이길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화청궁 내부에는 다양한 종류의 온천탕이 있었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함께 온천욕을 즐겼다는 연화탕, 목욕 후 머리와 몸을 말렸다는 공간, 당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목욕탕 등 일부 건물에는 목욕탕만 있었다. 그곳이 왜 관광지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화청궁의 또 다른 볼거리는 1936에 발생한 시안 사변 현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즉 장개석이 납치되어 머물렀다는 ‘오간청’이란 곳이 그곳이다. 그곳도 나에게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화청궁에서는 양귀비 모습에 대한 궁금증만 키우고 발길을 돌렸다. 양귀비를 만나고 나서 진시황릉 병마용으로 향했다. 진시황은 죽음을 극복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자신의 무덤을 준비했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 진나라 황제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그곳 갱에는 8,000여 개의 병사와 전차 조각상들, 각종 도자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어제 본 한경제의 무덤이 작은 동산이라면, 진시황의 무덤은 큰 산이었다. 진시황릉에 도착하기 전 버스에서 가이드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기 보이는 저 산이 진시황의 무덤입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그냥 산이었다. 피라미드가 벽돌로 지어졌다면, 진시황릉은 산속에 황제의 관을 묻었다, 가이드가 가리킨 야산을 지나면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진시황이 묻힌 곳의 규모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고 생각해보았다. 진시황릉 병마용 관광지에는 하루에 최대 8만 명의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그곳 출입구 문만 해도 10개는 넘어 보였다. 입장권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전시관 3곳과 최근에 개장한 박물관이 있었다. 1호 갱(제1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갱에 진열된 2,000여 개의 병마용을 보고 놀란 것이 아니라 직사각형의 넓은 전시관 전체를 둘러싼 인파에 놀랐다. 제1 전시관은 길이 230m, 폭 62m, 지하 5~6m의 면적으로 축구장 2개 정도에 해당한다. 그 둘레를 관광객들이 모두 둘러싸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2 전시관, 제3 전시관도 마찬가지였다. 진입 금지를 위해 쳐놓은 펜스 앞에서 병마용을 관람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3곳의 전시관을 둘러보고 난 후에 우리는 병마용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그곳 역시 관광객이 붐비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3곳의 전시관에 있던 토용들을 유리 상자에 보관하여 분산시켜 놓았기에 토용들의 표정과 자세, 그리고 옷매무새, 말과 마차, 그리고 말과 마차를 움직이는 장군들의 모습을 보다 세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토용들의 옷에 새겨진 색상을 볼 수 있어서 그 당시 염색 기술도 발달하였음을 엿볼 수 있었다. 진시황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8,000여 개의 토용들을 만들어 함께 매장했으니, 그는 분명 사후에도 하늘나라를 지배하려는 꿈을 꾸면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 같았다. 진시황릉과 병마용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실크로드 쇼를 관람하기 위해 움직였다. 쇼를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그 공연장은 겉보기에 커다란 원통형 건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극장의 관중석은 무대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무대는 큰 원통의 한 부분이었다. 연극의 한 막이 끝나면 좌석 전체가 시계 방향으로 움직인다. 좌석이 360 회전하면 연극은 끝이 난다. 연극의 제목은 ‘타령전기’였다. 낙타 방울 소리가 들려주는 실크로드의 애환과 사랑을 담은 쇼였다. 재미있었던 것은 무대 위에 등장한 늑대와 낙타가 관중석 앞으로도 지나갔고, 무대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방울이 관람석에도 떨어졌다. 나도 약간의 물방울을 맞았다. 관람석의 좌석이 3,000석이라고 하니 그 극장의 규모가 상상이 갈 것이다. 연극 중에는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바미안 계곡에 있는 부처의 거대한 상도 등장한다. 그 당시 바미안 불상은 실크로드를 왕래했던 무역상인들의 안녕을 비는 곳이기도 했었다. 연극이 끝나고 나오는 출구도 매우 붐볐지만, 공연장 외부에는 출입구마다 번호가 있어서 약속 장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오늘의 관광 중 진시황릉과 병마용 갱과 실크로드 쇼는 무엇보다도 규모적인 측면에서 놀라움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무대가 3,000명의 관람석이 360도 회전하는 극장에 대한 경험은 처음이라 신선했다. 역시 여행은 새로운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컸다. 중국 서안에서의 새로운 만남은 중국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이어졌다. 어제 대당불야성 거리에서 느낀 넓고 화려함과는 달리 오늘은 양귀비의 미모에 빠져 나라를 망친 당 현종의 모습을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다만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진시황릉 병마용 갱에서는 중국 황제의 위엄과 함께 황제의 허황한 꿈을 엿볼 수 있었다. 죽은 황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이 동원되었을까? 대륙이 넓은 만큼 황제의 꿈 역시 규모가 놀랍기는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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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을 가다(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