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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로바키아 로베르토 피초 총리의 저격 사건, 그 배후는?
    슬로바키아의 로베트르 피초 총리가 어제 15일 총 여러 발을 맞아 매우 위중한 상태로 병원에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각 소식통에 의하면 세 발 가운데 한 발이 명중되었다고 하고, 어떤 소식통에 의하면 다섯 발 중에 한 발, 혹은 여러 발 등으로 전해져 확실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초반에는 매우 위독하다 하였지만 수술이 잘 되면서 다행히 지금은 생명을 위협받는 상태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로베르트 피초 총리는 수도인 브라티슬라바 동북쪽으로 150㎞ 떨어진 핸들로바 지역에서 발생했다. 슬로바키아 정부는 이 지역에 있는 ‘문화의 집’에서 각료 회의를 열었으며 회의 후 피초 총리가 지지자들을 만나던 중 피격을 당했다. 각종 SNS를 통해 퍼진 현장 영상을 확인해 보면 경호 요원이 총에 맞은 피초 총리를 차량에 급히 태워 이동하고,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건 용의자가 경찰에 제압되었다고 한다. 피초 총리는 차량 이송 중 위중하다는 구급대원의 판단에 따라 헬기로 옮겨졌다. 구급대는 피초 총리를 인근 도시인 반스카 비스트리카 병원으로 옮겼고, 수 시간에 걸친 응급수술이 진행됐다. 당초 피초 총리의 상태가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마침 토마스 타라바 슬로바키아 부총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피초 총리의 수술이 다행히 잘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는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를 두고 슬로바키아 정부는 이번 사건을 정치적 동기에 의한 암살 기도로 규정하고 친서방, 친유럽파로 구성된 야당의 행위를 의심했지만 뚜렷한 증거도 없는데다 총리에 반대하며 반(反) 정부 시위를 열어오던 야권은 피격 소식을 접한 뒤 이날 밤 예정됐던 브라타슬라바에서의 시위 일정을 취소했다. 야당이 시위 일정을 취소한 이유는 여당으로부터 총리 저격의 배후라는 의심과 더불어 정치적 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인 측면이고 만약 시위를 계속했더라면 오히려 정치적으로 여당의 지지세가 강화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에서 다소 현명한 처세를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범인은 사설 보안업체에서 쇼핑몰 보안업무를 하던 사람으로 시집 3권을 출간한 슬로바키아 작가 협회 회원인 유라이 친툴라(Juraj Cintula)로 밝혀졌다. 우선 그는 제1 야당인 친서방 성향의 진보 슬로바키아 소속은 아닌것으로 밝혀졌다. 서방언론에는 8년 전 친러 단체에서 활동한 적이 있던 친러시아 파라 했지만 이는 석연치 않다. 현재 극도의 친러 행보를 보이고 있는 피초 총리에게 친러주의자가 그를 피격했을리는 없기 때문이다. 서방이 그의 피초 총리 저격에 대한 이유에 대해 "Nesúhlasím s politikou vlády. (나는 현 정부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BBC의 인터뷰 발언을 보고 피초의 친러 행위보다는 개인적 감정에 의해 벌인 일이 아닌가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8년 전에 친러 활동을 한 것과 현재 그의 행위는 별개라고 보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젤렌스키도 2019년 대통령 선거 공약에서 러시아와 화해해 우크라이나를 안정시키겠다고 내세웠을 정도로 친러 인사로 구분되었었고 우크라이나의 꽤나 많은 정치인들이 친러 정당 1세대, 2세대를 구성하고 있었다. 물론 전쟁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그렇기에 피초 총리를 저격한 친툴라의 8년 전 친러 행각과 현 행위는 상관이 없다고 본다. 다만 그는 작년 10월 세 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했을 때, EU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500억 유로 규모 장기 지원 패키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하면서 EU와 엇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고질적인 부패 등을 이유로 추가 지원에 반대하면서 자국은 더 이상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인도적 지원에 집중할 것이라 했다. 게다가 중국에서 열린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상 포럼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과 회동하기도 했다. EU의 재정, 군사적 지원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긴 했지만 전황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금을 포함하는 EU의 2024~2027년 예산안이 통과되려면 27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하는데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슬로바키아의 피초 총리가 계속 반대를 고수해 만장일치가 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피초는 우크라이나가 종전을 위해 러시아에 영토를 양도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점에 대해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피초는 올해 초, 우크라이나 서부 우즈호로드에서 데니스 슈미칼 우크라이나 총리와 회동을 가지면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과 지원 안을 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총격을 당하기 전까지 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다. 게다가 하리코프 전선까지 밀린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EU의 지원이 절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안 통과를 약속해놓고 아직까지 지키지 않은 피초 총리에 대한 원한 또한 대단하다. 그래서 여러 정황상 이번 피초 총리 피격의 배후에는 EU나 나토, 미국보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러시아 모스크바 크로쿠스 홀 테러에도 우크라이나가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현재도 수사 중에 있다.) 여러 정황상, 친러 성향의 피초 총리에 대해, EU의 지원안 끌어내겠다는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은 괘씸죄, 그리고 그동안 피초 총리가 해온 친러 발언도 있기 때문에 과거에 친러주의자였다가 변심한 시인 친툴라의 손에 어느 정도 돈을 주고 총을 쥐어 주며 이 같은 사건을 벌일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 칼럼
    • Nova Topos
    2024-05-17
  • 2023년 5월 러시아 크레믈린 전승절에서 한 푸틴 대통령의 연설
    "조국을 수호함으로써 그들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불멸화시킨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등을 기리기 위해, 헤아릴 수 없는 용기로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나치즘으로부터 인류를 구했다. 현재 문명은 다시 한 번 결정적인 전환점에 서 있는 상태다. 우리 조국에 대한 실제 전쟁이 다시 한 번 발발했지만 우리는 국제 테러를 격퇴했으며 돈바스 주민들도 보호하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라는 초반 내용을 연설했다. 러시아어는 발언한 내용과 번역이 맞지 않으면 오해할 수 있는 소지들이 분명한 단어들이 있다. 게다가 해당 발언의 전체적인 맥락을 봐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일부분만 잘라 정말 그런 양 왜곡해서 발표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특히 그런 행태는 한국 뉴스에서 곧잘 확인되는데 이것은 러시아어를 이해 못해서 방송에 내보낸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즉, 자극적인 단어 한 두개를 통해 정말 그런 양 헤드라인을 내보내면 조회수가 높아지고 영상 시청률 또한 높아지기에 얼마든지 낚시성 보도들을 할 수 있다. 이같은 보도를 하는 자들을 우리는 "기레기"라고 부르고 천박한 저널리즘이라는 뜻의 "처널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뉴스에서는 "러시아에서 특수군사작전(Специальная военная операция)이라는 용어를 쓰고 전쟁(Война)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음과 동시에 금기시되었다." 면서 푸틴이 전쟁(Война)이라는 말을 언급했다해서 이것을 전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특수군사작전이지만 그것도 엄연히 전시활동이나 다름없다. 전 세계가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고 러시아의 주요 언론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심심치 않게 언급하고 있다. Русско-украинская война 라고 구글에 검색해도 이를 언급한 언론들이 수없이 잡힌다. 그런데도 푸틴의 연설 내용 전문을 보면 "전쟁"을 선언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단 위에 내용에서 "우리 조국에 대한 실제 전쟁이 다시 한 번 발발했지만 우리는 국제 테러를 격퇴했으며 돈바스 주민들도 보호하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여기에서 전쟁을 언급했다고 전쟁 선언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푸틴은 전쟁을 선포한적은 어느 글 맥락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아래 내용은 푸틴 대통령의 전승절 군사 퍼레이드 당시 러시아어 연설 원문으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기는 바이다. 러시아어를 모르는 분들은 구글번역기로 돌려서 보시면 된다. 여기에서 어디에 전쟁을 선포했다는 얘기가 있는지 확인하실 수 있다. 끝으로 한국의 언론은 정직성도 잃어버렸고 기자 정신도 잃어버렸다. 그저 조회수 늘리고 영상 시청률을 늘리는데만 관심있고 거기에만 몰두하는 천박한 프레스와 리포터들일 뿐이다.
    • 칼럼
    • Nova Topos
    2024-05-11
  •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임기 시작과 그와 비교되는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의 운명
    이틀 전 7일부터 푸틴 대통령의 5번째 임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5월 9일 오늘 79년째 전승기념일이다. 전승절은 1941-1945 대조국 전쟁, 혹은 대독전쟁(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에서 승리한 것을 기리는 날이다. 실제로 독일군 작전참모장 알프레드 요들은 5월 8일 오전에 군사행동을 종료한다는 항복문서를 서명했지만, 당시 소련의 지도자인 스탈린은 소련군이 참가하지 않은 서명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다시 5월 8일 밤인 러시아 시간으로는 5월 9일 새벽 00:43에 재서명을 받았기 때문에 이 날 전승기념일로 간주한다. 소련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 날은,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의 말에 따르면, '소련 인민의 삶에서 '영광의 순간'이 되었다. 이는 소련 역사상 사람들이 조국의 승리와 자유를 위해 감당한 상실의 의미가 명약관화했던 유일한 시기다." 라고 할 만큼 러시아 최대의 공휴일이다.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현대 러시아 인들의 국가적 자긍심, 긍지의 원천인 날이기도 하다. 오늘은 많은 러시아 인에게 특별한 날이다. 2,700만의 어마어마한 희생을 치른 국가적 총력전이었기 때문에 전쟁의 상실을 겪지 않은 가족은 러시아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며,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도 아직까지 일부 살아 있다. 5월 9일이 조국 러시아에 자긍심을 느끼는 계기가 된다고 인정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군사 퍼레이드가 화려하게 치뤄진다. 오전 10시 Спасская башня (스빠스스까야 바쉬냐) 타워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시작이 된다. 왜 오전 10시냐면 소련군이 5월 9일 베를린에 입성해 오전 10시에 베를린 국회의사당에 소비에트의 깃발 꽂은 시각이기 때문이다. 이 군사퍼레이드의 하이라이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ypa! (우라!, 만세라는 뜻의 러시아어)하면 전 장병들이 ypa 삼창을 외치고 러시아 국가가 연주되는 것이다. 그 때 그 장엄함은 그 압도적인 장관에 온 몸에 소름 돋을 정도다. 군사 퍼레이드가 끝나고 틴 대통령은 각계, 각 인사들에게 악수하며 인사하고 붉은 광장을 걸어 크레믈린 성곽 주변을 통과해 "꺼지지 않는 영혼의 불꽃"으로 간다. "꺼지지 않는 영혼의 불꽃"은 러시아의 현충원과 같은 곳으로 제2차 세계대전부터 최근 전쟁에 이르기까지 러시아를 위해, 충성스럽게 싸우다 전사한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한 곳이다.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의 각료들은 그곳에서 헌화를 하고 묵념을 하면서 나라를 위한 충(忠)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한다. 그러면서 각오를 다잡는다. 이후, 불멸의 연대(Бессмертный полк)라는 행사를 진행한다. 독일군이 방심하고 있던 소련을 선전포고 없이 공격해 들어온 1941년 6월 22일부터 소련군이 프루트강을 건너 루마니아로 진격해 나간 1944년 4월 8일까지 소련군과 시민들은 소련 땅에서 독일군 주력부대에 맞서 싸워야 했다. 독일군을 소련 땅에서 몰아내는 데 걸린 시간은 거의 3년에 달했던 것이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쟁이었던 것은 사망자 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총 사망자 수는 5,000만~7,000만명 사이로 추정되는데, 이 중 소련인 사망자 수가 2,500만~2,700만명으로 추산된다. 대략적으로 말해, 전체 사망자 수의 절반이 소련인이었던 것이다. 독일군의 포위하에 2년 반 동안 봉쇄되었던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만 해도 적게는 64만명, 많게는 15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식량, 연료, 의료품의 공급이 끊긴 상태로 버텨야만 했으니 아사와 동사자가 속출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또 얼마나 격렬했던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된 소련군 사병의 평균 생존 시간은 24시간에 불과했다. 이 와중에 스탈린그라드 시민들은 소개되지 않은 채 그 처참한 전쟁터 속에서 살았으니, 아이들은 얼어붙어 있는 시체들을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희생을 감수하고 획득한 승리인 것이다. 소련군 지휘관과 사병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극심한 기아를 겪으면서도 버텨 준 레닌그라드 시민들, 독일군의 점령하에서 목숨 걸고 저항운동을 벌였던 게릴라 대원들, 여성임에도 전쟁터에 자원해서 간호병, 통신병, 심지어 전투원이 된 그녀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소련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러시아인들이 오늘날 ‘대조국전쟁’에서의 승리를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자국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의 승리를 꼽는다. 그래서 매년 5월 9일이 되면 전 세계의 러시아인들은 광장에 집결하여 대조국 전쟁 (소독전쟁)에서 희생한 자신의 가족, 친지, 그 외의 인물들의 사진을 들고 나와 거리를 행진한다. 서서히 돌아가신 분들의 희생과 대조국 전쟁이 잊혀갈 때쯤 파시즘에 대항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 선열의 넋을 기리는 것이 그들의 몫임을 깨닫고 역사적 기억을 보전하는 것이다. 이틀 전, 푸틴 대통령은 5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행사를 치뤘다. 2018년에도, 2024년에도 마찬가지로 푸틴 대통령은 2,000여 명이나 되는 초청 인사들의 환영과 박수를 받으며 행사장에 입장한 뒤 헌법 사본에 오른손을 올리고 취임을 선서했다. 이 헌법 사본에 오른손을 올리는 이유는 과거 노보고르드 공국 시절의 전통을 이어 받은 것이다. 중세 노보고르드 공국은 베체(Вече)라는 의회에서 대공을 선출한다. 이렇게 뽑힌 대공은 오른 손으로 공국의 법전 위에 손을 올리고 시민들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는 맹세를 큰 소리로 포고하여 취임식을 치르는 것에서 유래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통을 수호하고 이를 계승하는 나라다. 푸틴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선서하며 포고하게 되어 있다. "나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고 보호하고, 러시아 헌법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국가의 주권과 독립, 안보, 정체성을 보호하고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할 것을 맹세합니다.(Я обязуюсь уважать и защищать права и свободы народа, уважать и защищать Конституцию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осуществлять полномочия Президента для защиты суверенитета, независимости, безопасности и самобытности страны и служить народу.)" 이 포고가 끝나면 헌법재판소장이 연단 위로 올라와 푸틴 대통령의 공식 취임을 선포하게 된다. 과거 노보고르드 공국의 베체 의장이 올라와 대공 취임을 공식 선포한 것처럼 러시아도 그 전통을 계승하여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날은 발레리 조르킨(Валерий Зорькин) 소장이 푸틴 대통령의 공식 취임을 선포했다. 푸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연설에서 “서방 국가들과의 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그는 "안보와 전략적 안정에 대해 서방 측과 대화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그러나 오직 서로의 이익을 존중하는 대등한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그와 같은 대등한 조건을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라고 했다. 또 특수 군사작전 참가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러시아는 하나로 단결한 위대한 국민이고 모든 장애와 방해들을 극복하며 함께 승리하자고 격려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야외 광장으로 나와 비가 내리는 추운 날씨 속에 대통령 근위대의 사열을 받은 이후, 성모 수태고지 성당(Благовещенский собор)으로 가서 키릴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가 집전하는 감사 기도에 참석했다. 이 날 대통령 취임식과 동시에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가 이끄는 기존 정부는 자동 해산되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이들은 대행 자격을 받으며 업무를 이어간다. 총리 후보는 전승절이 끝나고 난 10일, 장관 후보들은 13일 의회 인준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며 크게 변수가 없는 한, 현 각료 대부분이 그대로 인준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처럼 분위기가 좋은 러시아와는 달리 우크라이나는 초상집이나 다름없다. 러시아 내무부는 이달 4일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1978년 1월 25일 크리프이 리에서 태어난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젤렌스키는 러시아 연방 형법 조항에 따라 수배 중(Владими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Зеленский, родившийся 25 января 1978 года в селе Крыпили, разыскивается по статьям Уголовного кодекса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이라고 올렸다. 이는 우선 형사 사건으로 입건하고 수배 영장을 때리면 우크라이나 헌법 상 임기가 마무리 되는 5월 20일 이후, 체포영장을 발부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뒤이어 포로셴코 전 대통령도 수배자 명단에 올렸지만 아직 체포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 러시아 내무부 측은 우크라이나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형사 입건 혐의나 이유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는 그 이유야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포로셴코 대통령을 꺾고 당선된 젤렌스키의 대통령 공식 임기는 오는 20일에 종료된다. 이는 현 우크라이나의 계엄령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계염령은 대통령 선거를 연기한다는 것이지 대통령 임기를 연기한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를 겨냥해 '젤렌스키 흔들기'의 일환으로 그를 수배자 명단에 올린 것으로 보고 있지만 나는 러시아가 그를 협상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압박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그를 추포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러시아 인터폴에서 젤렌스키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되면 러시아 정보부는 그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체포할 수 있다. 러시아 내무부는 대통령 두 사람 외에도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우크라이나 국방안보회의 서기(사무총장, 장관급)와 알렉산드르 쉴라파크 전 재무장관, 스테판 쿠비바 전 중앙은행 총재를 3일 수배자 명단에 올리면서 젤렌스키 임기 종료와 더불어 공식 체포 영장을 발부할 계획이다. 이제 젤렌스키는 서방을 방문할 때도 본인이 언제, 어디서든 체포될 수 있다는 심리적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됐다.
    • 칼럼
    • Nova Topos
    2024-05-10
  •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25년 전 코소보 전쟁 당시 미국과 나토가 폭격한 중국 대사관 터를 다녀오다.
    나는 오늘 1999년 5월 7일 코소보 전쟁 당시 미국과 나토가 폭격했던 베오그라드 중국 대사관 현지를 다녀왔다. 폭격 이후, 25년이 지났지만 그 때의 잔상은 사라지고 대사관 터에는 비석 두 개만이 다수의 꽃다발들과 함께 남아 있다. 주변의 있는 건물둘은 이곳 노비 베오그라드(Novi Beograd) 부지들을 재단장할 때 갈아 엎어져 새 건물들로 도색되어 있다. 신도심지라 불리는 이곳 노비 베오그라드는 사바 강 건너 구 베오그라드 시가지를 마주 보고 있는 신도시형 계획 부지다. 노비 베오그라드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구 베오그라드에 대한 개발보다 새로운 형태의 신도시 개발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후, 요시프 티토는 1945년 11월 11일 총선거를 통해 왕정 폐지를 선언하고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이루었으며 '유고슬라비아 연방 인민공화국'을 선언하였다. 그러면서 이곳에 대한 개발을 강화했으며 이곳에서 공산당 대회당을 짓고 티토 자신도 이곳 공관에서 근무했다. 티토가 미, 소 양대 강국 사이에서 중립 노선을 지키며 나름 독자적인 제3 세계 국가의 초석을 이루려 했던 곳 또한 이곳 노비 베오그라드였으며 유고의 모든 관공서, 공무원들에게 할당된 주거지, 공산진영이든, 자유진영이든 할 것 없이 각 국 대사관 또한 이곳 노비 베오그라드에 지어졌다. 즉, 세르비아어로 Novi는 "새로운"을 뜻한다. 말 그대로 신(新) 베오그라드였다. 중국은 1949년 공산화 된 이후, 유고슬라비아와 수교하면서 이곳 노비 베오그라드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노비 베오그라드에 개설된 중국 대사관은 두 번째로 지어졌으며 첫 대사관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었다. 유고슬라비아는 서방과 수교 및 교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과도 수교한 뒤에는 교류, 협력을 자주 했다. 티토의 사후, 1980년대부터 유고슬라비아는 분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에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유고 내 공화국들이 독립국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유고슬라비아와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등 사상 유래 없는 의리를 지켰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는 몰라도 세르비아만큼은 중국을 매우 각별하게 생각한다. 그려면서 코소보 전쟁 와중, 나토군이 군사 작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베오그라드를 폭격했는데 그만 중국 대사관마저 폭격해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 대사관 직원 3명이 죽고 세르비아 현지인도 14명이 부상을 입었다. 어떤 기사나 기록에서는 이날 죽은 중국인이 대사관 직원인지, 언론인인지 상이하게 나타나 정확한 신분은 햇갈린다. 다만 중국 측에서는 이들을 언론인, 기자라고 했다. 이날 폭격으로 인해 대사관 건물 또한 파괴되었다. 그리고 주변 건물들도 상당수 초토화 되었다. 중국 내에서 극렬한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이를 '비극적인 실수'라며 유감을 표시했고, 당시 미국 정부는 중국 대사관 바로 옆에 위치한 유고슬라비아 연방 소속의 조달 이사회를 목표로 진행한 폭격 임무였다고 했다. CIA 국장 조지 테넷은 폭격 위치 입력을 잘못했다고 청문회에서 시인했다. 이후, 1999년 8월, 미국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하기로 합의를 했고 대사관 복구에 대한 보상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2000년 미중관계법 제정으로 인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승인하면서 미중관계를 증진시키려고 했다. 그러면서 상황은 중국이 일방적인 피해자로 비춰지면서 많은 동정표를 받았다. 홍콩 시사잡지 '첸사오(前哨)' 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미발간 회고록을 입수하여 폭로했다. 이 회고록에 의하면 당시 중국 대사관 폭격과 관련한 비화가 소개되어 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이 나토 공습으로 인해 국방, 정보, 경찰본부 등이 모두 파괴되자 중국에 세르비아 정보요원들을 위한 은신처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도 매우 혼란한 상황에 옐친 대통령에서 푸틴 대통령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코소보 전쟁에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장쩌민 주석은 당시 세르비아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대사관 지하에 당시 유고슬라비아 정보요원들의 은신처를 제공했다. 이러한 행위는 중국이 대사관으로 넘어 들어오는 사람들을 자국의 주권을 걸고 보호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난민이라면 모르겠지만 사전에 이미 밀로세비치와 협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세르비아 측과 공조하고 있었던 부분이라, 대사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요격했다면 중국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대사관이라고 하는 곳은 이미 그 나라의 영역이다. 미국이 이를 대사관을 공격했다면 상대가 누구든 대사관에 발을 들여 놓은 이상, 그 나라의 주권에 해당되기 때문에 명백히 국제법 위반이다. 당시 중국은 티베트-신장위구르의 분리 문제로 인해 미국과 갈등이 첨예했던 상황이었고 이런 미국에 대응하기 위한 외교적 일환으로 미국과 나토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정보 요원들을 숨겨 주었던 것이다. 당초 나토군의 공습이 확대되자 중국 외교부는 장 쩌민에게 베오그라드에서 직원들을 철수시킬 것을 건의했다. 이미 러시아 대사관도 철수한 상태였고 중국이 남아 있을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쩌민은 유고슬라비아와의 외교 관계, 개인적으로 밀로셰비치와의 걱별한 우정과 의리 등을 생각했었던듯 싶다. 장쩌민은 대사관 직원들에게 남아 있으라 지시했다. 나토가 설마 국제법을 어기고 대사관을 폭격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상 외로 중국 대사관이 폭격을 당한 것이다. 폭격 직후 당시 주 세르비아 중국 대사는 부서진 대사관 건물 앞에 서서 "중화인민공화국이 공격당했다"며 이는 국제법상 위법이라 부르짖었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중국 언론의 전파를 탔다. 북경대학에서는 세르비아 주재 중국 대사관의 폭격 사실이 알려진 이후 시민과 대학생 1만여 명이 미국 대사관 앞에서 밤늦도록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들은 하늘이 클린턴을 저주할 것이며 미국은 살인자라고 외치며 반미 시위를 계속했다. 중국 정부가 이 사건으로 인해 크게 분노하자 앞서 언급한대로 미국은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중국 대사관 내부에 숨어 있던 세르비아 요원들이 원격 통신 등의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증거를 비공식적으로 제시했다. 여기에서 이미 미국은 유고슬라비아 정보요원들이 중국 대사관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와 같은 정보를 캐치하고 오폭을 가장한 조준이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당시에는 지금 같은 인터넷이라던지, 개인 영상이라던지 이런 것들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일단 질러 놓고 오폭이라 주장하면서 조사 위원들을 나토 위원들로 구성해 꾸리고 현장을 조작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이는 명백한 조준이다. 당시 조달 이사회는 모든 인원들이 철수한 상황이었고 나토 공습 당시에 이사회 건물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후일, 기밀문서에 의하면 미국은 당시 조달 이사회 건물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어느 누가 조달 이사회 건물을 표적으로 했다는 얘기를 믿을 수 있을까? 중국 대사관 내부에 숨어 있던 세르비아 요원들이 원격 통신 등의 스파이 활동을 했다고 증거를 내놓은 것을 보면 이는 이미 조준했음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중국 대사관에 대한 폭격은 올바른 결정이었을까? 절차상 미국은 중국에게 이같은 유고슬라비아 요원들의 스파이 행위의 증거를 들이밀고 이들을 내놓으라 협상을 할 수도 있었고 중국 정부에게 강한 경고를 하며 이들은 전범이니 넘겨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미국답게 중국 대사관을 표적으로 삼고 대놓고 폭격하는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이날 포격한 이들에 대한 국제 사법 처리는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아무도 이같은 전쟁 범죄에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무마되었다. 국제적인 부분, 국제법적인 것으로 따져 보자면 이는 엄연한 국제법 위반에 국제형사재판소에 마땅히 재소되어야 하는 전쟁범죄다. 그런데 당시 중국 대사관 폭격으로 지하실에 있던 세르비아 정보요원 10여명이 죽었는데도 중국은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이 때 보도로는 세르비아인 14명이 부상이라 했지만 그 중 10명이 정보요원이고 나머지 4명은 대사관 직원인 세르비아 인일 것이다. 아마 중국도 이를 암묵적으로 무마하기 위해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제 관계, 국제 사회는 이처럼 냉혹한 것이다. 국익을 위해, 더 큰 이득을 얻기 위해 인간적 양심과 선악, 그리고 도덕성은 깔끔히 무시되고 때에 따라서 묻어둬야 할 진실이라는 것 또한 존재한다. 한국인들은 이런 냉혹한 현실을 잘 모른다. 물론 이 사건은 미국이 오폭을 사과함으로써 중국의 체면을 살려주고 중국은 반미 시위가 번지는 것을 막는 식으로 마무리됐다. 미국 또한 이 사건이 더욱 번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한 수 접은 이유는 뻔하다. 코소보 전쟁에 이어 중동 상황도 슬슬 좋지 않아지고 그러면서 중국과의 마찰은 미국 입장에서도 부담되는 일이었다. 중국 입장에서도 당시만 해도 미국과 직접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던 때였다. 결국 미국과 중국이 막후에서 외교적으로 타협했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내가 내일 세르비아에서 나간 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세르비아를 방문한다. 아마 5월 7~8일 미국과 나토가 중국 대사관을 폭격했던 그 날짜에 맞출 것이다. 내가 왔던 이곳을 일주일 뒤, 시진핑이 와서 참배하고 부치치 대통령과 대담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 주 주제는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핫한 주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에 난 시진핑보다 일주일 앞서 이곳을 먼저 방문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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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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