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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안을 가다(3) 천하제일산의 장관을 마주하다
    서안 화산은 ‘기험천하제일산’이라는 명성처럼 압도적인 절경을 품고 있었다. 서봉까지 케이블카로 올라가며 본 아찔한 높이와 화강암 바위 능선은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했다. 정상의 도교 사원과 붉은 띠, 산 능선을 가득 메운 인파가 화산의 독특한 분위기를 더했다. 하산 후 찾은 서안 도심은 전동차가 빼곡한 거리, 웅장한 종루, 북적이는 회족 거리로 이어졌다. 자연의 웅장함과 도시의 생동감이 공존한 하루였다.
    • 칼럼
    2025-12-03
  • 서안을 가다(2)
    양귀비는 중국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을까? 양귀비의 미모에 빠져 나라를 망친 당 현종! ‘경국지색’의 주인공이 양귀비라면 양귀비는 무죄일지도 모른다. 예쁜 것만으로는 죄가 될 수 없지 않은가? 오늘은 그런 양귀비를 만나러 간다. 입구에 가까이 갈수록 거리 양옆에서 화청궁이라고 쓰인 한자를 읽을 수 있었다. 화청궁은 당나라 황실의 온천 별장이다.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여름 별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지만, 그곳에서 양귀비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죽은 양귀비를 볼 수 없음은 당연하지만, 그곳에 가면 양귀비의 초상화 정도는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다만 화청궁 입구에 만들어진 양귀비의 춤에 넋이 나간 모습으로 누워 바라보고만 있는 당 현종을 형상화한 거대한 조각상과 화청궁 내에 목욕을 마치고 나온 양귀비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만 있었다. 궁 내부에는 화청지라 불리는 연못이 있었고, 그 주변에서 관광객을 위한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하늘에 로프를 설치하여 그 로프에 몸을 매달고 춤을 추는 무희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양옥환(양귀비)은 당 현종의 아들 수와 결혼한 며느리였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에 반해 당 현종은 그녀를 후궁으로 삼았다. 그래서 양옥환은 양귀비가 되었다. 요즘 말로 하면 당 현종은 며느리와 결혼한 시아버지였다. 경국지색의 미모란 어떤 모습이길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화청궁 내부에는 다양한 종류의 온천탕이 있었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함께 온천욕을 즐겼다는 연화탕, 목욕 후 머리와 몸을 말렸다는 공간, 당 현종이 양귀비를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목욕탕 등 일부 건물에는 목욕탕만 있었다. 그곳이 왜 관광지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화청궁의 또 다른 볼거리는 1936에 발생한 시안 사변 현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즉 장개석이 납치되어 머물렀다는 ‘오간청’이란 곳이 그곳이다. 그곳도 나에게는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화청궁에서는 양귀비 모습에 대한 궁금증만 키우고 발길을 돌렸다. 양귀비를 만나고 나서 진시황릉 병마용으로 향했다. 진시황은 죽음을 극복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자신의 무덤을 준비했다고 한다. 기원전 3세기 진나라 황제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그곳 갱에는 8,000여 개의 병사와 전차 조각상들, 각종 도자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어제 본 한경제의 무덤이 작은 동산이라면, 진시황의 무덤은 큰 산이었다. 진시황릉에 도착하기 전 버스에서 가이드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기 보이는 저 산이 진시황의 무덤입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그냥 산이었다. 피라미드가 벽돌로 지어졌다면, 진시황릉은 산속에 황제의 관을 묻었다, 가이드가 가리킨 야산을 지나면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진시황이 묻힌 곳의 규모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고 생각해보았다. 진시황릉 병마용 관광지에는 하루에 최대 8만 명의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그곳 출입구 문만 해도 10개는 넘어 보였다. 입장권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니 전시관 3곳과 최근에 개장한 박물관이 있었다. 1호 갱(제1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갱에 진열된 2,000여 개의 병마용을 보고 놀란 것이 아니라 직사각형의 넓은 전시관 전체를 둘러싼 인파에 놀랐다. 제1 전시관은 길이 230m, 폭 62m, 지하 5~6m의 면적으로 축구장 2개 정도에 해당한다. 그 둘레를 관광객들이 모두 둘러싸고 있다고 상상해보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2 전시관, 제3 전시관도 마찬가지였다. 진입 금지를 위해 쳐놓은 펜스 앞에서 병마용을 관람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3곳의 전시관을 둘러보고 난 후에 우리는 병마용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그곳 역시 관광객이 붐비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3곳의 전시관에 있던 토용들을 유리 상자에 보관하여 분산시켜 놓았기에 토용들의 표정과 자세, 그리고 옷매무새, 말과 마차, 그리고 말과 마차를 움직이는 장군들의 모습을 보다 세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또한 토용들의 옷에 새겨진 색상을 볼 수 있어서 그 당시 염색 기술도 발달하였음을 엿볼 수 있었다. 진시황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8,000여 개의 토용들을 만들어 함께 매장했으니, 그는 분명 사후에도 하늘나라를 지배하려는 꿈을 꾸면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 같았다. 진시황릉과 병마용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실크로드 쇼를 관람하기 위해 움직였다. 쇼를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그 공연장은 겉보기에 커다란 원통형 건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극장의 관중석은 무대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무대는 큰 원통의 한 부분이었다. 연극의 한 막이 끝나면 좌석 전체가 시계 방향으로 움직인다. 좌석이 360 회전하면 연극은 끝이 난다. 연극의 제목은 ‘타령전기’였다. 낙타 방울 소리가 들려주는 실크로드의 애환과 사랑을 담은 쇼였다. 재미있었던 것은 무대 위에 등장한 늑대와 낙타가 관중석 앞으로도 지나갔고, 무대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물방울이 관람석에도 떨어졌다. 나도 약간의 물방울을 맞았다. 관람석의 좌석이 3,000석이라고 하니 그 극장의 규모가 상상이 갈 것이다. 연극 중에는 탈레반에 의해 파괴된 바미안 계곡에 있는 부처의 거대한 상도 등장한다. 그 당시 바미안 불상은 실크로드를 왕래했던 무역상인들의 안녕을 비는 곳이기도 했었다. 연극이 끝나고 나오는 출구도 매우 붐볐지만, 공연장 외부에는 출입구마다 번호가 있어서 약속 장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오늘의 관광 중 진시황릉과 병마용 갱과 실크로드 쇼는 무엇보다도 규모적인 측면에서 놀라움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무대가 3,000명의 관람석이 360도 회전하는 극장에 대한 경험은 처음이라 신선했다. 역시 여행은 새로운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컸다. 중국 서안에서의 새로운 만남은 중국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이어졌다. 어제 대당불야성 거리에서 느낀 넓고 화려함과는 달리 오늘은 양귀비의 미모에 빠져 나라를 망친 당 현종의 모습을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다만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진시황릉 병마용 갱에서는 중국 황제의 위엄과 함께 황제의 허황한 꿈을 엿볼 수 있었다. 죽은 황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이 동원되었을까? 대륙이 넓은 만큼 황제의 꿈 역시 규모가 놀랍기는 했었다.
    • 칼럼
    • Nova Topos
    2025-11-26
  • 서안을 가다(1)
    여행은 미지의 세계를 방문한다는 설레임을 갖게 만든다. 서안의 옛 이름은 장안이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장안의 화제다”란 말에 등장하는 장안이 바로 그곳이다. 고대 중국의 수도인 그곳! 당 왕조 때에는 세계 최대 도시였다는 장안의 모습은 어떨까? 또 진시황의 병마용과 중국 무협지에 등장하는 화산의 경치도 궁금했다. 이번 여행을 기획한 사람은 이명권 선생이었다. 그는 나의 책 『왜 다시 자유인가』의 출판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인도 철학과 불교, 그리고 노자 철학에 전문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런 그와 함께 장안을 여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기에 그렇다. 이번 여행을 함께 할 여행 동반자는 나를 포함한 15명이었다. 공항에서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서안을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3시간 30분 정도의 그리 길지 않은 비행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나에게는 짧게 느껴졌다. 비행기가 서안 공항에 착륙할 때의 서안의 모습은 다른 공항과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하늘에서 본 서안 공항 주변은 넓은 들판과 드문드문 보이는 아파트가 전부였다. 그래서 그런지 평화로워 보였고, 착륙해서 본 서안 공항은 나의 예상과 달리 매우 넓었다. 입국 수속을 끝내고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첫 관광지인 한경제의 무덤인 한양릉을 관람했다. 규모는 매우 작았지만, 그곳에서 중국 황제들의 무덤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우리나라 임금의 무덤과는 너무 달라서 기이하게 여겨졌다. 우리나라 임금의 무덤이 작은 봉으로 잘 정돈되어 있다면, 중국 황제의 무덤은 겉으로 보기에는 풀과 나무들로 무성한 작은 동산이었다. 한양릉도 그랬다. 중국 황제의 무덤이 관광지로 유명한 것은 황제의 무덤 주변으로 동서남북 사방에서 갱을 파서 그곳에 토기로 만든 수많은 토용과 각종 도자기가 함께 묻어 있어서이다. 한경제와 함께 묻힌 수장품들은 사람, 동물, 토기 그릇 등 다양했다. 한양릉은 진시황의 병마용을 관람하기 전의 맛보기용으로 적당했다. 한양릉을 관람한 후 서안 시내에 있는 실크로드 시발점인 곳으로 향했다. 나는 그곳이 관광지로 잘 정비가 된 곳으로 상상했다. 하지만 그곳은 나의 예상을 무참히 짓밟고 말았다. 도심 외곽 허름한 건물들과 함께 그곳은 가로 5m, 세로 약 30m 정도 공간에 낙타를 탄 상인들의 모습을 한 석고 조형물을 세워 놓은 것이 전부였다. 석고 조형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역사적인 고증을 통하여 그곳을 실크로드의 시발점이라고 지정했겠지만, 관광지로서의 모습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사기당한 느낌이 들었다. 주변의 정비가 되지 않아 그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분명히 나와 같이 실망했을 것이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관광객들도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저녁 식사를 위하여 서안 중심지에 위치한 대안탑 근처에서 있는 식사 장소로 이동하였다. 대안탑은 여행 마지막 날 관광하기로 하였기에 멀리서만 바라보았는데, 현장법사의 동상과 주변에 조성된 넓은 공원과 조화를 이루면서 고색창연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대안탑은 무언가 많은 비밀을 간직한 곳처럼 보였다. 아직은 해가 떨어지기 전이어서 현장법사의 동상과 대안탑을 뒤로하고 그곳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가이드 말로는 저녁 식사 후 현장 법사가 바라보는 쪽의 거리가 매우 아름다울 것이라고 하였다. 그곳이 바로 대당 불야성 거리였다. 조명이 없는 그곳은 중앙에 조형물이 있는 넓은 광장에 불과했다. 그 광장 양옆에 있는 건물들은 중국 특유의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의 옛 건축과 달리 중국의 건축물은 지붕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가이드가 안내하는 ‘천하제일면’이라는 간판을 단 식당에서 저녁 만찬을 하였다. 그곳에서 뺭뺭면이라는 것도 맛보았다. 면의 넓이는 2cm는 되어 보여 면의 두께도 독특했지만, 맛은 더욱 독특했다. 매운맛이기도 하고 짬뽕 맛이기도 한 이상야릇한 맛이었다. 이름이 더욱 독특했다. ‘뺭’자의 한자 획수가 무려 57획이나 된다고 하니 말이다. 저녁 식사 후 현장법사의 동상 주변 거리의 모습은 말 그대로 불야성이었다. 특히 붉은색 조명이 많았다. 거리에는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자신만의 모습을 담기 위해 사진을 찍는 모습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중국만의 문화였다. 경복궁에는 한국 전통 복장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지만, 이곳은 중국 현지인들이 중국 전통 복장과 중국 전통의 화장으로 자신을 뽐내며 역사적인 유적지에서 자신들만의 추억을 사진에 담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처음에는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쇼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중국의 문화였다. 불야성 거리는 좌우의 폭도 매우 넓었다. 거리 중앙에는 각종 조각품들이 길게 조성되어 있었다. 어두운 밤거리이면서 중국 한자를 모르기에 무엇을 상징한 조각물인지는 모르지만, 그 조각물을 배경으로 나도 한 장의 추억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전통 복장을 한 젊은 아가씨들과도 사진을 함께 찍었다. 대당 불야성의 거리에서 중국의 옛 수도인 장안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대당 불야성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중국의 화려했던 전통을 느낄 수 있었다. 공간적인 넓이에서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깊이에서도 고대 중국의 옛 수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오늘 관광한 한양릉과 실크로드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장안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체험할 수 있었다. 중국은 거대했다. 시간과 공간에서 모두 그렇다. 대당 불야성 거리의 화려함을 담으면서 중국 서안의 첫날 여행을 마무리했다. 중국 서안에서 느낀 첫인상은 넓고 화려함이었다.
    • 칼럼
    • Nova Topos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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