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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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5)

 

오죽을 노래함

박문재(1942~ )

 

단단한 쇠도 녹인다는

중복 무렵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청명한 바람 소리 같기도

남녘 보길도 갯돌 구르는 소리 같기도

연방 솨아 솨아 솨아 솨아

고샅 어디쯤 조선 장맛 익어가는 정갈한 소리

 

그것도 곱 삭힌 소리꾼의 구성진 음성

고려 여인네 상열지사

열두 폭 구구절절 사연 같기도 하여

가만히 문 열고 마당귀에 나가다 보니

 

오죽 몇 그루와

산죽 서너 그루가

넌지시 정 주며 서로가 합궁하는

솨아 솨아 솨아 솨아 차르르

솨아 차르르르...

저렇듯 절묘한 사랑의 소리.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5번째 시는 박문재 시인의 “오죽을 노래함”입니다.

 

백과사전에서 “오죽”을 찾으면 ‘볏과에 속하는 검은 대나무. 원산지는 일본·중국·한국이다. 키 약 2~20m, 지름 5~8cm 정도이며, 줄기는 검다. 잎은 길이가 약 10cm 정도이며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잔 톱니가 있다. 꽃은 6~7월에 피고, 열매는 11월에 익는다. 줄기의 색은 처음에는 초록색이나 차츰 검정으로 변한다. 관상용으로 재배하며, 다 자란 것은 죽세공의 재료로 쓰인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오죽이 어떡하면 “절묘한 사랑의 소리”를 내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사전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전에서는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시인의 육감을 통해서만이 오죽과 산죽이 내는 사랑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시인의 육감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은 분명 산 밑에 조그마한 초가를 짓고 산내음과 산바람을 맞으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초가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보길도 갯돌 구르는 소리”와 “조선 장맛 익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오죽에 달빛 스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으신지요? 산죽에 깝죽대는 나비의 날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지요?

 

놀래라, 오죽과 산죽이 만나 “솨아 솨아 솨아 솨아 차르르/ 솨아 차르르르...” “절묘한 사랑의 소리”를 잉태하고 있네요.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 육감을 통해서만이 들을 수 있는 자연의 교집합, 시인이 인도해준 해설서를 따라 정신의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몫...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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