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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사설 만화 "'The White Man's Burden'(Apologies to Rudyard Kipling)"에서는 John Bull(영국)과 Uncle Sam(미국)이 세계 유색인종을 문명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엉클 샘이 들고 있는 바구니에 담긴 사람들은 쿠바, 하와이, 사모아, '포르토리코', 필리핀으로 표시되어 있고, 존 불이 들고 있는 바구니에 담긴 사람들은 줄루족, 중국, 인도, '소우단', 이집트로 표시되어 있다. 사진출처 : Victor Gillam, Judge magazine, 1 April 1899, Wikipedia

 

백인의 의무(The White Man's Burden)라는 용어를 들어본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는 영국의 작가이자 백인우월주의자인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 1865∼1936)이 1899년에 발표한 시 <백인의 짐 - 미국과 필리핀 제도>라는 제목으로 처음 사용되었다. 

 

러디어드 키플링은 정글북(The Jungle Book)으로 190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유명 작가였다. 1899년 2월,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미국에게 참패하여 필리핀에서 물러나고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게 되자 키플링은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백인의 짐-미국과 필리핀 제도>라는 시를 발표했다. 

 

여기서 키플링은 반은 악마, 반은 어린아이와 같은 필리핀 원주민들을 미국인이 지배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키플링의 시는 모두 7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연은 “백인의 짐을 져라(Take up the White Man's burden)”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이 시에서 키플링은 "야만적인 흑인과 황인종을 개화시키는 것이 매우 힘들고 고되지만, 그들에게서 보답을 원하는 것이 아닌 후세에 원망과 비난을 받을지라도 고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강대국 시민들의 희생이 있더라도 약하고 소위 열등한 인종과 민족들을 돕자는 좋은 주장과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그런 내용을 생각해보면 가장 능력이 뛰어난 백인종이 못나고 무지한 유색인종을 도와야 한다는 인종차별성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백인이 유색인종보다 월등하며 유색인종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이며, 이 시를 통해 키플링은 백인이자 대영제국의 국민인 자신의 인종차별적인 편견과 우월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여 진다. 이러한 주장을 내세운 배경에는 키플링 자신이 대단히 제국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징병 신체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아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컴플렉스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사실이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키플링은 그러한 신체적인 한을 자신의 아들을 통해 풀었다. 원래 아들은 해군에 입대하려 했으나 시력검사에서 떨어졌고, 이후 육군 장교에 지원했지만 역시 시력검사에서 떨어진다. 키플링은 군대의 인맥을 이용해 아들을 영국 근위 보병 제4연대에 입대시켰지만, 결국 아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5년 9월 18세의 나이로 전사하고 말았다. 

 

그와 같이 아들이 전사하자 전쟁에 대해 회의감을 갖게 되었다. 키플링은 높으신 분들의 욕심과 무능으로 인해 희생당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젊은이들이 같다는 내용의 반전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인 <백인의 짐-미국과 필리핀 제도>라는 시의 비판을 완전히 피하기 어려웠다.

 

인종차별과 자신의 아들을 전쟁터에서 전사하게 만든 뒤에 참회하고 반성하는 글을 썼다. 그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아들을 죽이게 만든 것이 라고 하였다. 키플링의 경우, 일단 키플링의 아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키플링이 마구잡이로 밀어넣은 것이 아니라 키플링의 아들도 이를 원했다고 한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 때였는데 유럽의 분위기로 볼 때 각 전장의 전황들이 급박하여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 경우엔 엄청난 불이익이 따라오기도 했다. 즉 키플링의 욕심만이 비극의 원인이 아니라 시대적인 분위기도 한 몫을 했다. 게다가 키플링만 이런 비극을 겪은게 아니고 당시에는 전쟁하면 참혹함보다는 공을 세우고 영웅이 되는 것을 더 먼저 떠올리던 시대였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참혹함은 생각하지 않고 모두 전쟁터에 갔다가 죽거나 고생을 하고 돌아온 후, 반전주의에 나서게 된 사람이 많았다. 

 

이러한 백인의 의무는 당시 제국주의 사상 및 식민지 확장을 정당화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게다가 식민지 경영으로 인한 이익 자체가 크지 않았던데다 크더라도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소수의 자본가 등에게만 그 이익이 돌아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대중들과 정치인들은 그 이익으로 인한 욕심에 현혹되고 여기에 이 백인의 의무와 같은 인종차별성 이론이 식민지 지배를 합리화하면서 제국주의가 그 정당성을 얻은 것이다. 


다만, 이는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여론 조작이라고 받아들이면 안 되고 더욱 노골적이거나 온건하였을 때 당대 유럽 지식인 사회에 만연한 분위기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보여 진다. 그러나 그러한 논조에 동의하라는 말은 분명히 아니다. 심지어 당시 아프리카와 아시아, 아메리카에서 순수하게 선의로 봉사한 의사와 선교사들 역시 그렇게 다르지 않다. 

 

그와 같은 이유로 볼 때 그들의 활동은 식민지 행정이 없이는 보장될 수 없었기 때문이며, 그들의 활동을 이어간 동기에 의하면 순수하게 평등한 인류애보다는 종교관에 기인한 바가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정말로 선의의 목적인 사람을 앞에 내세워 식민지배에 대한 명분을 만들어주거나 심지어 선교사가 제국주의자들의 스파이가 되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한편 마크 트웨인은 미국과 스페인 전쟁을 처음에는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반대하고 미국을 지지했지만 미군이 벌인 학살을 보고 경악하고나서 필리핀 전쟁을 '미국이 저지른 죄악의 상징'이라며 비난했다.


마크 트웨인은 미국에서 1923년까지도 출판이 보류된 <전쟁을 위한 기도>라는 책자에서 야만적인 백인들을 위한 기도, 백인들의 인종차별 행태가 드러나고 있다는 글로 미국과 키플링을 동시에 비판했다. 그로 인해 키플링은 마크 트웨인을 매우 싫어했으며 <전쟁을 위한 기도>는 지금 나타나도 상당히 급진적이다. 

 

반전, 반(反) 제국주의 성향의 사람들이라면 감명 깊게 볼 수 있지만, 이 때가 20세기 초반이고 현재 행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비판인 것을 고려하면 매우 용기있는 사회적 비판서라 볼 수 있다. <전쟁을 위한 기도>는 삽화와 함께 보는 것이 좋고 심지어 유튜브 등에서 볼 수도 있다고 한다. 

 

비슷한 책으로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의 <전쟁 교본(Kriegsfibel)>도 존재하고 있다. 이는 마크 트웨인의 <전쟁을 위한 기도> 보다는 참혹함 대신 비평하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조지프 콘래드(Joseph Conrad, 1857~1924)의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도 백인의 의무라는 사상이 결국 탐욕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합리성을 비판하는 소설이다.


이와 같이 마크 트웨인과 갈등을 빚었던 키플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하자 상류층의 보수주의자들의 탐욕에 희생되는건 무고한 젊은이들이라는 반전 사상을 설파하는 시를 쓰며 여생을 보낸다. 결국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에 당대 최연소 노벨문학상 수상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기 때문인지 키플링의 작품은 오늘날 <정글북>이 가장 유명하고 그나마 <왕이 된 사나이(The Man Who Would Be King)>가 조금 알려졌을 뿐, 무려 400여편에 이르는 그의 소설과 시집 등 서적들은 서구에서도 묻혀진 채 방치되었으며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대놓고 이와 같은 "백인의 의무"라는 주장을 하지 못하지만 메튜 휘게이(Matthew Hughey)의 <백인 구세주> 와 같이 여전히 이데올로성 이론과 더불어 않고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게다가 유색인종은 백인의 도움 없이는 혼자 일어서지 못한다는 잠재적인 우월의식이 팽배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따라서 본 칼럼에서 서술한 백인의 의무(The White Man's Burden)는 인종차별의 정당성을 함유하고 있어 많은 비판과 논란을 자아냈던 제국주의 문학의 단편적인 모습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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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이 세상을 주도한다는 의식과 인종차별에 대한 정당성, 백인의 의무(The White Man's Burden)에 대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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