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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6일에 있을 차드 대선, 부자 세습이 될 독재의 흑역사
    아프리카 차드가 내일 6일, 임기 5년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른다. 이 선거는 말리를 비롯해 2020년 이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아프리카의 여러 군부 통치 국가 중 처음으로 실시되는 민정 이양 선거로 알려졌다. 현 군부의 군정 수반인 마하마트 이드리스 데비(Mahamat ibn Idriss Déby) 과도군사위원회 의장과 쉭세 마스라(Succes Masra) 총리 등 10명이 출마했으나 데비 의장의 승리가 거의 확실시 되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합법적인 부자 세습으로 간다는 것이 문제다. 차드를 30년 동안 장기 집권한 이드리스 데비 전 대통령이 2021년 4월 반군의 공격으로 사망한 이후 마하마트 의장이 과도 군정을 이끌고 있다. 마하마트 의장은 집권 당시 18개월 간의 군정 이후 민주 선거를 치르겠다고 약속했으나 2022년 10월 이를 번복하고 군정을 2년 더 연장했고, 지난 3월 초 221개 정당이 연합한 통합차드(For a United Chad) 집회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부자 세습 독재의 길을 열었다. 차드 야당 트랜스포머 당의 대표였던 쉭세 마스라는 2022년 10월 군정 2년 연장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한 이후 군부와의 충돌로 인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미국 정부의 주도로 군정과 화해하고 지난해 11월 귀국, 올해 초 총리직을 수락하며 군정에 합류했다. 차드의 군정은 친서방 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현재까지 중앙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프랑스군과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차드 반군이다. 차드 반군은 여전히 차드 서부와 북부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들의 배후에는 바그너 그룹이 있다. 게다가 대다수의 주민들은 프랑스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다. 차드는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 공식적으로 수교했다. 현대에서도 프랑스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 점을 이용하여 여러 지원에 나서면서 친프랑스 국가로 만들고자 노력하였지만 이 와중에 벌어진 여러 가지 문제, 그리고 석유와 우라늄과 같은 자원을 도움에 대한 보상 명목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말리, 니제르와 같이 중앙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빈국으로 꼽히고 있다. 석유 자원 및 우라늄을 비롯한 광물 자원이 많아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많은 요인을 갖고 있지만 중앙아프리카의 최빈국이 되었던 이유는 미국이나 유럽의 강대국들이 이웃 리비아의 내전을 배후 지원하면서 차드의 자원을 강탈해갔다. 게다가 리비아 군의 폭격도 받으면서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려 오기도 했다. 석유가 북부 티베스티 지역에서 나고, 그 외에 우라늄이나 니켈, 인광석 등 막대한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수익을 극소수와 강대국들이 나눠먹기 하고 있기 때문에 가난한 것도 있지만 사하라 사막이 점점 넓어지면서 농업생활도 어려움에 빠지고 있다. 더불어 이웃인 수단과의 관계도 그리 좋지 않다. 이는 수단의 다르푸르 대학살로 인한 난민 문제가 원인으로, 수단 측에서 아랍계 민병대인 잔자위드가 차드를 월경하고 있다며 국가적인 항의를 한게 국가 간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수단과 차드 주민 모두 아랍계 흑인이지만 수단 아랍인의 주류는 아랍화된 누비아인이고, 차드의 아랍인들은 주로 바카라 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남수단과 수단 남부 다르푸르 주 내 난민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더더욱 가난에 시달리게 되면서 수단과 단교했고 남수단 또한 기독교계 딩카족, 누비아인들은 차드의 실세인 바까라족과 역사적으로 앙금이 남아있어 사이가 좋지 않다. 차드 인구의 80%가 극빈층이며 식량 문제가 심각해 UN으로부터 식량을 지원 받는 실정이다. 이처럼 어려운 나라에 이전 대통령인 이드리스 데비는 31년 동안 철권통치를 했다. 일반 국민들이 프랑스에 대한 감정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지도자인 데비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높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후임이 될 마하마트 데비가 프랑스를 몰아내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전임 독재자인 이드리스 데비는 1952년 차드 북부의 자가와(Zaghawa)족 유목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데비는 수단으로 망명했을 당시 리비아의 지원을 받으면서 반정부 세력인 애국구제운동을 결성했으며 1982년 자신의 정치적 동지인 이센 아브레(Isen Avre)와 함께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구쿠니 우에데이(Gukuni Uedei) 당시 차드 대통령을 축출했고 이 쿠데타를 통해 자신의 동료인 이센 아브레가 차드의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후 이드리스 데비는 리비아와의 도요타 전쟁으로 알려진 전쟁에서 차량화 보병을 주축으로 한 기동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면서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 때 데비는 프랑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프랑스 대통령인 프랑수와 미테랑과 친분을 맺었다. 하지만 아브레가 집권한 이후 데비는 리비아와의 영토 문제를 두고 아브레와 여러 갈등을 겪게 된다. 결국 이 문제로 인해 데비는 리비아로 돌아가 카다피와 협상을 벌인 끝에 그의 지원을 이끌어 낸다. 그는 리비아 남부에 전쟁으로 인해 피난 와 있던 난민들을 설득해 다시 애국구원운동당을 만들었고 게릴라 전을 통해 차드의 주요 군사력을 분쇄시키며 영토를 장악해 나갔다. 이후 데비는 다시 수도인 은자메나를 점령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렇게 이드리스 데비 한 때 자신의 편이였던 이센 아브레 몰아내고 1990년 12월 4일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한 뒤 국가평의회를 구성다. 이후, 차드의 대통령으로 30년 가까이 장기집권을 했으며, 차드의 집권당인 애국구원운동의 당수로도 활동하게 된다. 이처럼 권력을 장악했지만 문제는 현재까지도 차드는 수많은 내전과 쿠데타가 일어나며 차드가 완전히 국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1998년 남부 반군과의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 인해 내전이 종결되는 듯 했으나 1999년 다시 반군이 발생한다. 특히 2008년 2월 3일에는 굉장히 큰 위기에 몰리기도 했는데 이는 차드 수도인 은자메나에서 수도로 진입한 반군이 이드리스 데비를 축출하기 위한 공격을 개시하면서 차드 정부군과 본격적인 전투를 벌였으며, 차드 정부 군은 이날 헬리콥터와 장갑차를 동원해 대통령 사무실과 관저를 방어했다. 이후 수도에서 정부군은 반군을 격퇴했다고 한다. 결국에는 반군 공세가 강화되면서 은자메나는 반군에게 장악되어 데비는 대통령궁에 고립되기도 했다. 그래도 이드리스 데비가 프랑스에 도움을 요청하여 이를 막아내서 반군이 밀려나긴 했지만 2009년에도 차드 동부 지역에서 교전은 계속되었다. 이들 반군은 상당수가 수단에서 지원하거나 수단에 근거지를 두었기 때문에 차드가 수단 영토의 몇몇 지역 반군 거점을 폭격하여 수단과의 외교 마찰도 자주 발생했다. 이와 같은 내전으로 인해 2008년 약 28만 5천 명의 난민과 18만명의 차드 내 난민들이 발생했다. 이와 같은 내전이 지속되자 많은 시민들이 내전을 피해 카메룬으로 건너갔다. 카메룬을 향한 주민들의 피난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차드의 내전은 2015년 데비가 통제권을 확대해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국제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반군들의 활동과 차드의 만성적인 가난으로 인해 데비 대통령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재기했다. 데비는 아프리카 독재자로서 2005년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의 3선 연임을 가능하게 하는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애는 개헌에 성공한 뒤 2006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2006년 5월 3일 차드에서 대통령 선거 투표가 이루어졌는데 데비는 주로 친정부 인사들인 4명의 다른 후보들과 경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겨봤자 같은 여당이고 상왕처럼 데비가 국정에 대해 지시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야당 지도자들은 지지자들에게 투표를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당시 차드 정부는 선거를 방해하겠다는 반군의 위협에 대비하여 차드 수도의 보안을 강화했는데, 실제로 반군들은 선거 3주 전에 데비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은자메나를 공격하기도 했을 정도로 내전이 격화된 상태였다. 2011년 5월에 실시된 대선에서는 무려 89%의 지지율로 다시 당선되어 5년의 임기를 다시 시작했다. 한편 차드 내 야권은 여당 애국구원운동당(MPS)이 2011년 2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선거 결과를 조작한 데다 이번 대선도 부정선거였기에 아예 투표를 거부한다고까지 했다. 2015년 들어서 데비는 나이지리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반군 보코하람 소탕 작전에 참여했으며 보코하람 지도자 아부바카르 셰카우(Abubakar Shekau)가 은거하고 있는 곳을 알고 있다며 경고했다. 강력하게 보코하람과의 전쟁으로 인해 여기에 상당한 인력과 돈이 들어갔다. 이후 2021년 4월 20일, 6연임 확정 직후 전방 군부대 시찰, 정확히는 충성서약을 받으러 갔다가 반군과 전투로 전사했다. 더불어 4월 11일의 대선승리 발표 후 수시간 만이었기 때문에 차드의 행정부는 혼란에 빠졌다. 이드리스 데비의 차남인 마하마트 "카카" 데비 이트노 육군 대장이 이끄는 군사위원회가 군정을 선언했다. 정식 대통령이 아닐 뿐이지 사실상 부자 세습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독재자였지만 극렬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과의 전쟁에서 데비는 서방측의 동맹이었다. 그로 인해 데비의 장례식에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참석하기도 했다. 마하마트 데비는 두 가지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차드 국민들의 염원대로 프랑스 군의 철수를 요구하며 압박할 것인가. 혹시 반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다. 경제적인 부분은 차드의 입장에서는 부차적인 문제다. 프랑스가 물러가고 내전이 종식되어야 다음 문제인 경제적인 부분에 손을 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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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va Topos
    202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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