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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 혁신당 대표 조국의 독도 방문, 일본 기자 질문에 대처법
    2024년 5월 13일, 조국 혁신당 대표 조국이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일 양국 간의 긴장이 다시금 고조되었다. 이날 일본 후지TV의 기자가 조국 대표에게 "왜 다케시마에 갑니까?"라고 질문하며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조 대표는 이에 대해 "누구시죠? 누구신지.. 일단 처음 뵙는 분이라서"라며 신분 확인을 요청했다. 그리고 독도를 '다케시마'라 부르자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 장면은 일본 FNN 방송을 통해 보도되었으며, FNN은 조 대표를 '양파 남자(玉ねぎ男)'에 비유하며 "왜 다케시마에 갑니까?. 한국 제3당 조국 대표 다케시마 향해 출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양파 남자'라는 별명은 조 대표가 딸 조민 씨와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가 입시 비리에 연루되고, 본인도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등 여러 의혹이 계속 드러나는 것을 빗대어 일본 언론에서 사용해온 것이다. 독도 방문의 의의와 조국 대표의 발언 조국 대표는 독도에 도착한 후 성명을 통해 "우리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독도는 바로 그 부속 도서 중 하나"라며 독도의 한국 영토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불과 2년 만에 다시 일본 식민지가 된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국익과 국토 수호 의지를 분명히 하라"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또한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 1531년 팔도총도, 1737년 조선왕국전도 등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증명하는 사료들을 언급하면서 "일본은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그리워하는 것이냐. 대한민국의 해방을 부인하고,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이냐"며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일본에 경고한다. 이제 그만 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일본 정부의 반응 일본 정부는 조국 대표의 독도 방문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일본 외무성은 "사전 중지 요청에도 불구하고 조 대표의 독도 방문이 강행됐다"며 "역사적 사실과 국제법상으로 독도는 명백히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점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극히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한일 양국 간의 영토 분쟁과 역사 인식 차이를 다시금 부각시키며 양국 관계에 긴장감을 더했다. 일본 언론은 조국 대표의 독도 방문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며 한국 정치인들의 행동에 대해 경계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한편, 한국 내에서는 조 대표의 독도 방문이 국토 수호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되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조국 혁신당 대표의 독도 방문은 한일 관계에 새로운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양국 간의 역사와 영토 문제에 대한 논의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독도를 둘러싼 갈등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양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과 해결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뉴스
    • 정치
    2024-05-15
  • 저출생 그늘 드리운 대한민국, 2044년까지 생산 가능 인구 1000만명 감소 예상
    우리나라에 저출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6일 발간한 '2024년 인구보고서'에 따르면, 2044년까지 경제 성장의 핵심 기반인 생산 가능 인구 1000만명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이후 2060년에는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5배가량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급속한 인구 노령화, 중위연령 50세 돌파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인구를 연령순으로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위치한 사람의 나이를 뜻하는 중위연령은 2023년 기준 45.5세에서 2031년에는 50.3세로 상승할 전망이다. 이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50세 이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 가능 인구 감소와 경제적 영향 저출생으로 인해 15∼64세에 속하는 생산 가능 인구는 2023년 3657만명에서 2044년 2717만명으로 940만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연은 "생산 가능 인구 감소는 소비 활력을 떨어뜨려 내수 시장 붕괴를 야기하고, 노인 부양 부담이 커져 경제 성장 속도가 둔화하면서 장기 저성장이 고착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동 수 급감, 병력 자원도 줄어 초등학교 입학 나이인 7세 아동 수는 2023년 약 43만명에서 10년 후인 2033년에는 약 22만명으로 반토막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인구 절벽 현상으로 인해 병력 자원도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신규 현역 입영 대상자인 20세 남성 수는 2023년 약 26만명에서 2038년에는 약 19만명으로 줄어들어 20만명 선이 붕괴될 것으로 예상된다. 홀몸 노인 가구 증가와 초고령사회 진입 노인 인구가 늘면서 혼자 생활하는 홀몸 노인 가구도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기준 전체 가구의 9.1%(199만 가구)였던 65세 이상 1인 가구의 비율은 2049년에는 20.2%(465만 가구)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50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자가 1891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망자 증가와 출생아 감소, 자연 인구 감소 예견 2060년 사망자 수는 74만6000명으로 출생아 수(15만6000명)의 4.8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인구는 자연 감소하게 되며, 한국의 총인구는 2023년 기준 5171만명에서 2065년에는 3969만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감소의 심각성 인지와 대책 마련 한미연은 우리 사회가 인구 구조 변화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인실 한미연 원장은 "인구 감소에 따른 재앙은 대한민국의 존립이 달린 사안"이라며 "인구 회복의 골든 타임을 놓치면 우리 사회가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육아 휴가·휴직 환경 조성과 인구 정책 방향 전문가들은 직장 및 사회 분위기가 육아 휴가·휴직 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조성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나영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남성들이 육아 관련 휴가·휴직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직장 및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며 "일정 시점까지는 남성들이 이 제도를 강제로 활용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계봉오 국민대 교수는 "혼인율과 유배우 출산율의 상승을 위한 인센티브 제공이 기본적인 인구정책 방향이겠지만, 전통적인 가족 가치관 복원을 통해 출산율 반등을 시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저출생 현상과 인구 고령화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사회적 인식 개선과 함께 적극적인 정책 개입을 통해 문제 해결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뉴스
    • 사회
    2024-05-06

칼럼 검색결과

  • 소련과 중공의 분열 및 결렬은 6.25 전쟁부터 시작, 이후 더 이상 스탈린을 신뢰하지 않았던 모택동
    중국이 소련에 실망하게 된 첫 번째 계기는 6.25 전쟁으로 나타난다. 스탈린은 원래부터 북한의 남침을 지원하는 것에 소극적이었으며, 북한군이 유엔군의 반격으로 패망 직전에 이르자 중국 측에 참전을 종용하면서도 자신들은 결국 움직이지 않았다. 소련의 지원은 겨우 공군 뿐이었고 그것도 평양 이북의 한반도 북부지역에만 공습하는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한정적으로 출격했으며, 그 이남에서 제공권 없이 전투를 벌이는 중국군은 오히려 큰 피해를 입었다. 이와 같이 소련이 6.25 전쟁에 대해 소극적인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알아보려면 대조국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1940년 12월 제2차 하바로프스크 조선 볼셰비키 회의로 돌아가 보아야 한다. 1937년부터 일본군이 ‘만주국치안숙청계획’을 통해 만주 지역의 병력을 늘리고 토벌작전을 실시하였기에 동북항일전선은 사실상 일본군에게 패배해 궤멸 상태에 놓였고 상당수의 독립군들이 소련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후 1941년 1월, 한 인물이 소련 볼셰비키에 입당원서를 쓰고 이력서와 함께 제출하며 볼셰비키 주요 간부들과 면담을 했다. 그리고 그 인물은 약 1년 6개월 후인 1942년 7월 소련 볼셰비키 부대에 입대가 받아들여진 뒤, 대위로 전시(戰時) 특별 임관되었다. 그리고 이 인물은 1940년 12월 제2차 하바로프스크 조선 볼셰비키 회의에 등장하면서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이 인물이 바로 김일성(金日星)이다. 이 회의에서 만주를 통일 집중적으로 영도하는 기관은 각 성의 대표에 의하여 선거된 전 만주 임시위원회이며 전 만주 임시위원회는 잠시 3명으로 한정하고 대회는 서기 1명을 직접 선가한다고 가결했으며 전 만주 당위 임시영도기관을 잠시 하바로프스크에 설치한다는 것, 그리고 통일적 최고 군사 영도 기관인 총사령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결정했으며 이 같은 사실을 소련 스탈린에게도 통보했다. 소련은 항일부대들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고 관리하는데 편리하도록 하기 위해 소련 영내에 남쪽과 북쪽 2개의 임시주둔지를 마련하고 소련 경내로 들어간 부대들을 각기 그 2개 주둔지에 집중시켰다. 이 2개 주둔지를 습관적으로 북야영, 남야영이라고 불렀으며, 하바로프스크 회의 정신에 근거하여 각 항일부대는 1940년 10월 말에서 11월초 사이로 만주에서 패배하고 있는 항일부대들을 소련으로 끌어들인 것으로 확인된다. 1941년 소련은 일본과 중립조약을 맺었고, 이에 따라 소련으로 피신한 항일부대들은 만주로 돌아가기 어려웠다. 그러나 1941년 6월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했고, 소련은 대조국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그리고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소련 또한 일본이 연해주를 침공할 것을 우려해 혹시나 모를 일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여러 전략들을 고려하게 되었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 이후 소련은 항일무장투쟁 세력들을 자신들의 군대로 편입했는데, 이것이 바로 88국제여단으로 불리는 군대이다. 여기서 김일성은 소련군의 단기 군사 교육을 받고 주로 한국인으로 구성된 여단 1대대의 대대장에 오르게 된다. 이 때 소련군 지도부는 김일성의 부대원들과의 관계, 혁명 운동에 대한 성실성, 뛰어난 러시아어 실력 등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당시 소련군의 평가에 따르면 김일성은 지나치게 과음하는 버릇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규율을 잘 세웠으며 엄격한 군율을 적용하였다고 한다. 소련군에 김일성이 복무하던 시절 중국인 정치위원이 그가 항일운동 간판만 걸어놓고 약탈, 납치, 살인, 방화를 자행했다고 폭로하기에 이른다. 그러한 사실에 대해 소련 군 당국이 김일성을 질책하자 "우리가 죽인 것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트로츠키주의자" 라는 궤변을 하여 살아 남았다고 전한다. 당시 제88 특별여단의 군사훈련은 소련 극동군의 ‘보병훈련대강’을 기초로 하여 소련 장교의 지도에 따라 행해졌으며, 총검술과 실탄 사격, 전술 진공, 방수 훈련, 행군 연습, 동계 야외 노영 훈련, 낙하산 강하 훈련 등이 이루어졌다. 겨울에는 스키, 여름에는 수영 연습도 이루어졌다. 전세가 막바지로 달하던 1944년에는 소련군 장교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었으며, 항일연군 내부의 지휘관이 훈련을 지휘하게 되었고 김일성은 그 중에 한 사람이었다.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자 소련은 대일선전포고를 하여 남하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이 소련군에게 멸망하고 파죽지세로 한반도로 남하하게 되었는데 소련 밑에서 군복무를 한 김일성이 제88 국제여단 조선공작단의 일원으로 원산을 통해 귀국하게 된다. 이 때부터 소련 지도부와 스탈린은 김일성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게 된다. 소련군은 민정사령관 로마넨코를 배석하게 하여 김일성에게 힘을 실어 주었고 박헌영은 여기에서 밀려나게 된다. 김일성은 '반 제국주의 반 봉건주의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명목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북한 주민을 기만하면서 갑부들을 숙청하는 사법 살인을 마구 남발했고 그 재산을 갈취했다. 그리고 김일성은 1946년 7월 박헌영을 제치고 스탈린과의 면접을 통해 북한의 지도자로 결정된다. 스탈린이 김일성을 재신임한 것은 그가 소련군에 소속한 경력이 있다는 점, 소련의 명령을 잘 이행했다는 점, 항일영웅으로서 38선 이북에서 지명도가 높다는 점, 학식과 이론은 약하지만 소질과 신념이 강하다는 점 등 때문이었다고 한다. 1948년 대한민국과 북한 양측의 분단 정부가 수립되면서,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이 그어놓은 38선을 중심으로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때마침 중국에서는 1949년 국공 내전에서 모택동의 공산당이 승리하면서 대륙에서의 내전은 종결되었다. 소련도 대조국 전쟁에서의 충격에서 안정화되어 팔로군 등 남침을 위한 지원을 받기 쉬워지게 되었고 스탈린은 탱크와 야포, 전투기 등을 지원하여 북한 군대를 무장시켰다. 군 병력도 강력해지니 자신감이 생긴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남침 허가를 71차례나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스탈린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미국의 원폭을 두려워했으며 모스크바 핵이 투하될 것을 염려해 미국과 직접적인 대결은 꺼려했다. 그래서 소련은 1949년 핵실험을 했고 1953년 수소폭탄 개발을 통한 핵무장까지 완료하게 된다. 스탈린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자 김일성은 이번엔 모택동에게 스탈린을 설득해 달라며 부탁하게 되었고 모택동의 설득과 미국의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가 제외되는 것을 판단하게 되자 미군이 합류하기 전, 적화통일 시키면 된다 인식하고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락하게 된다. 그러면서 발생한 것이 6.25 전쟁이다. 중국 지도부는 전쟁이 지속되는 와중에 한국전쟁 지원에 소극적인 소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중국은 미군에 맞서기 위해 소련의 MiG-15와 같은 고가 무기나 장비들을 대량으로 구입해서 참전했지만, 소련은 우방국에게 우대 가격이라고 속이며 제3 세계 국가에 제공하는 원조 가격보다도 훨씬 비싸게 팔아넘겼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중국 지도부는 격노했지만 이 때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물론 소련도 6.25 당시 적극적이지 못한 것에 나름의 입장이 있었다. 소련 측은 대조국 전쟁에서 나치 독일에게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나라였고, 전후복구가 한창이라 재원이 부족했으며 사실 그와 같은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중공 정부 창립 초기에 중국에 해준 원조(2억달러 유무상 원조)도 적지 않았고 한다. 소련도 안정되었기는 하나 매우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었고, 더욱이 자국의 최신형 무기들의 자격증까지도 허가해주는 등, 사회주의 혈맹국인 중공에 대해서도 할 만큼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소련은 무기만큼은 제 값 받고 팔아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입장이었다. 특히 중국 측이 볼 때 소련이 배신했다고 본 제3 세계에 대한 무기거래는 미국과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는 제3 세계(특히 인도)에 정치적 고려가 들어가 가성비 대비 파격적인 할인을 해줘야 했지만, 무기와 기술 도입원이 소련 밖에 없는 중국에는 정치 논리 대신 경제 논리가 들어갔기 때문에 딱히 배신한 것도 아니라는 입장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양측의 6.25에서의 지원 문제를 두고 대립한 것은 지극히 경제적인 이유가 발단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소련에 비해 중공군은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었다. 이 때부터 모택동은 스탈린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게 되었지만 그나마 코민테른을 지휘했던 스탈린주의 사상이 공산주의 시작이자 리더격으로 보았기 때문에 스탈린이 생존해 있는 동안 모택동은 별다른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참아야 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 때 마침내 폭발하게 된다.
    • 칼럼
    • Nova Topos
    2024-04-27
  • 솔로몬 제도 총선, 친중파인 마네시 소가바레(Manasseh Sogavare) 현 총리의 승리와 여당의 절대적인 유리한 형세
    우선 인도-태평양 지역 내 중국의 압도적인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주요 대응 전략은 첫째, 아태 재균형전략에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과 둘째, 가장 갈등이 심한 지역인 동남아 지역 내 미국의 영향력 유지 확대, 셋째, 중국의 시진핑 체제 하에 진행된 ‘일대일로’ 구상에 대한 적극적인 맞대응 및 팽창 저지 넷째,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를 완화하기 위한 미중 무역 전쟁의 개시 등으로 이루어진다. 중국 역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자국의 경제, 안보의 위기라는 우려 속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중국의 기본 인식은 첫째, 2010년대 초반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재균형 전략과 이후 트럼프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큰 차이가 없으며, 둘째, 대중국 봉쇄가 그 목적이다.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G2 국가로 부상하면서 독자적으로 특히 시진핑 집권기 때 ‘중국의 꿈’으로 불리우는 공세적인 대국화 전략을 추진해왔다. 중국의 이와 같은 국화 전략을 중국식 인도-태평양 전략이라 지칭하고 있다. 미국에 맞서기 위한 중국의 이와 같은 일련의 대응전략은 여러 가지로 추진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경제 활로를 열어 무역전선의 확장을 노리는 일대일로, 이어 동북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 러시아의 안보협력, 그리고 상하이 협력기구(SCO)의 확대 및 강화, 미국 · 일본 · 인도 · 호주 4개국이 중심이 된 QUAD 파열구 전략,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가장 갈등적인 지역인 동남아시아 국가들, 대만, 한반도를 포용하는 전략 등이 여기에 해당되고 있다. 우선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추구하면서 주변 국가들에게 경제력을 통한 영향력을 강화함으로써 미국의 군사적인 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미, 중 전략 경쟁의 주 무대가 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주변국들 중 미국과 군사협력을 이어나가고 있는 동맹 및 안보 우호국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계 강화를 통해 중국의 팽창적인 움직임을 견제하고자 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 은 직접적인 갈등에 더해 주변국들의 우호적인 지지를 획득하는 것에 있어서도 경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인 경쟁 속에서 동남아시아의 태국과 필리핀은 경제적으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미국과는 동맹국으로서의 관계를 고려한 군사 협력을 잘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심이나 다름없는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 제도의 경우, 오히려 미국을 밀어내고 중국을 끌어들여 국가 경제와 인프라의 개선을 노리고 중국의 영향력 하에 존속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이 미국과 호주 등이 진행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깨뜨리고 인도양과 태평양의 바다를 장악함으로써 호주와 미국의 활동을 축소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게다가 파투아뉴기니와 솔로몬 제도에 매우 낙후되어 있는 자국에 투자와 더불어 어느 정도 안보에 도움을 주겠다고 미국과 호주가 약속을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소가바레 총리는 중국으로부터 투자를 이끌어내 국가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경제발전을 도모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이는 매우 성공적이다. 이전에는 미국과의 연대를 통해 해양 영유권 확보 등 안보를 위한 군사 협력 관계를 지속하려고 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하면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거액을 쏟아 붓고 지원하고 있으며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이스라엘에 지원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해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편 호주는 오세아니아 일대에서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이미 갖춘 상황에서 미국과의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명확하게 최우선시하고 중국과의 마찰을 되도록 줄이는 방향으로 경제, 외교, 군사 문제를 다루고 있는 실정이다. 호주가 단독으로 중국과 맞서기에는 무리인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편 친중 정권이 유지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 속에 17일에 치러진 솔로몬 제도 총선에서 연임을 노리는 마네시 소가바레 총리가 지역구에서 승리했다. 소가바레 총리는 동브 슈아죌 선거구에서 49%를 득표해 42%를 얻은 야당 후보를 누르고 승리하면서 친중파로 구성된 여당의 승리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솔로몬 제도 민주당의 전 대표 매슈 웨일 등 주요 야당 후보들도 의원에 당선되면서 여당에 저항할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상당수의 여당 의원들이 당선이 확정되면서 친서방, 미국, 호주를 배경으로 한 야당 의원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게 되었다. 특히 재스퍼 하이우드 선거 관리 국장에 의하면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경찰의 삼엄한 보안 하에 개표 작업을 신중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현지 언론은 내주 초 정확한 총선 결과가 나올 예정이지만 워낙 무소속 후보가 많아 어느 당이 연정을 구성해 정권을 잡을 것인지 확정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50명의 국회의원을 뽑으며 새로 뽑힌 의원들이 현역 의원들 가운데 총리를 선출하게 되는데 현재 80% 정도의 개표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현 집권 여당이 60%의 이상 득표율을 보여 승리가 거의 확정되어 가고 있는 분위기다. 소가바레 총리는 남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에 매우 우호적인 정치인 가운데 1명으로 지난 포스팅에서 솔로몬과 중국의 관계 및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 일대일로의 충돌지가 솔로몬과 파푸아뉴기니임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소가바레 총리는 권좌에 복귀하면 중국과의 관계를 더 강화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중국과의 관계가 더 밀착되어 미국이나 호주 입장에서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전면 재검토 및 수정을 하거나 각종 버티기 전략을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토목공정집단(CCECC)이 솔로몬 제도 수도 호니아라에 있는 호니아라 항구 재건축 사업을 수주하면서 해군기지 건설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제는 이전과 같이 안일하게 인도-태평양 지역을 대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지만 중동의 위기가 계속되고 어제 20일에 우크라이나 지원 패키지 법안이 통과되면서 미국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호주는 자국의 북쪽 해안과 변경 지역 안보에 언제든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놓이게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호주는 단독으로 중국과 맞서기는 중과부족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미국과 연계를 해야 하지만 미국이 현재 신경쓰고 있는 지역이 매우 포괄적이라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칼럼
    • Nova Topos
    202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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