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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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전차 스캔들 당시, 폐기된 전차를 쌓아 놓은 장면, 사진출처 : Bloomberg, 에릭 자페(Eric Jaffe) 기자

 

필자는 유럽이나 러시아에 올 때마다 노면전차인 트램(Tram)을 타는데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노면전차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트렘을 타고 출근할 때마다 각종 풍경을 보며 사색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원래 나는 트램덕후로 어떤 도시를 가든 트램이 있다면 반드시 꼭 그 도시의 트램을 타 본다. 

 

유럽과 러시아 각지에 있는 트램, 대륙 건너 미국은 어떨까? 나는 2013년 이후, 현재까지 10년 동안 미국을 가보지 못했다. 2010년에는 에너하임 오렌지카운티에 있었고 시간강사로 뛰었을 때 우리 동네에서 LA 유니온 스테이션으로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출근해야 했다. 

 

이렇게 대중교통이 불편한 미국에서 개인 자동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에너하임과 LA를 왔다갔다 한다는 것은 그냥 지옥과 같았다. 13년 전이 그러했는데 지금은 어떨까? 달라졌을까? 

 

현대 대중교통의 불모지이자 자동차의 나라로 불리는 미국은 원래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대중교통과 트램의 천국이었다. 각 도시들의 교통망을 거미줄처럼 이어주는 트램들들 덕택에 미국 시민들은 현대처럼 대기오염에 찌들며 고통 받는 일도 드물게 도시를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20년에 설립된 내셔널 시티 라인즈(National City Lines), 퍼시픽 시티 라인즈(Pacific City Lines), 그리고 아메리칸 시티 라인즈(American City Lines) 라는 3개의 회사는 1937년부터 각 도시들의 트램 회사들을 마구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는 공교롭게도 일본의 사철과 같이 노선 확장보다는 부동산을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올리던 서부의 트램 회사들은 LA의 퍼시픽 일렉트릭을 시작으로 수익성이 낮은 트램 노선들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이 약 10년 동안 진행되자 이들은 트램 노선들을 폐선하고 버스 노선으로 대체하기 시작한다.


20세기 중반부터 미국의 수많은 도시들 트램 노선들이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일부 도시들은 1970년대 초반까지도 살아 남았지만, 곧 대부분의 트램 노선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때 대기업들이 몰래 생산을 방해하여 미국의 대중 교통을 자신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온갖 사보타주(Sabotage)를 감행하게 하면서 전차 스캔들(Great American Streetcar Scandal)을 일으키게 된다. 

 

이 당시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 일명 GM), 스탠다드 오일(Standard Oil) 등의 자동차 관련 회사들은 자동차와 타이어, 정유 등을 독점하고 있었는데 자신들 회사의 자동차와 버스를 팔아 먹어 이윤을 남기기를 원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미국의 대도시부터 소도시에 이르기까지 850여 개 도시들에 깔려있던 편리한 대중 교통 수단들은 매우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이들은 가장 먼저 트램을 점차 폐기하는 것으로 서로 합의했고 트램 노선을 폐선한 뒤 새로운 시대의 우수한 교통 수단이라면 버스를 등장시켜 트램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 기업들이 트램을 폐쇄한 것은 트램의 단점 때문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이윤과 도시들의 기초 인프라를 파괴하여 얻는 이윤을 위해서 행했던 시민들에 대한 만행이었다. 게다가 별다른 대책도 없이 밀어 붙였기 때문에 도시 간의 이동이 매우 불편하게 되었고 울며 겨자먹기로 시민들은 개인 자동차를 살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폐선된 트램 노선 중 수요가 워낙 많은 노선의 경우 지하철 건설 같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미국은 그런 계획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트램을 폐선해버렸기 때문에 미국 소도시들의 대중교통은 그야말로 없는 거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만행으로 인해 여러 대중교통 인프라들이 아직까지도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한다. 

 

심지어는 LA 같은 대도시마저도 그러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당시 사실 이들 입장에서 대중교통을 없에는 것에 대한 대책이나 대안은 상관이 없었다. 대중교통이 버스로 대체되면 단순히 버스가 잘 팔릴 뿐이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개인 차를 구입하거나 버스를 이용한 대중 교통들이 뒤엉켜 마비가 되면 어찌될지 답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거대한 만행을 저지르고 차를 팔아 부유해진 제너럴 모터스는 후일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크고 아름다운 차만 만들다가 일본과 독일 등 연비가 좋은 외국계 자동차 제조사들의 공세에 급격히 쇠락하게 되었다. 결국 하락세를 걷다가 2008년 금융위기에 제대로 당해 21세기에는 파산 보호 신청을 하여 정부에서 관리를 해줘야 할 정도로 몰락하게 된다. 

 

GM의 엄청난 만행으로 인해 대부분의 미국 소도시들의 대중교통은 트램의 폐선과 때마침 진행된 교외지역(Suburb) 확장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미국 도시들의 인구밀도가 낮아지는 현상까지 합쳐져 사라져 갔고, 도로는 캘리포니아에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보행자보다는 차량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트램 회사들이 직접 진두 지휘한 스프롤 현상이 서부에서 동부로 뻗어나가며 전차 스캔들에 영향 받지 않았던 타 트램 회사들도 붕괴되어 갔고, 그 자리는 연방 정부의 엄중한 감시 하에 다수의 버스 회사들이 차량을 공급하는 대중교통 회사들을 대체해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미국의 도시 구조는 도로 교통과 자동차 중심으로 짜여져 있고, 대부분의 도시에서 대중교통 수익률이 심각하게 저하 되었다. 트램이 떠난 자리를 일부 버스 노선이 대체한 것 말고는 대부분의 도시에서 별다른 교통 대책이 세워지지 않았다.

 

그와 같이 미국의 대중교통은 아이젠하워의 고속도로 프로젝트와 제트 에이지의 여파로 인해 점차 효능을 잃어가는 여객철도와 함께 사라져 갔다. 이어 펼쳐지게 된 제트 에이지의 시작과 더불어 도시 간 거리가 멀고 인구 밀도가 낮은 미국에서는 시내와 시외 할 것 없이 대중교통은 거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시민들의 의식도 자동차의 유무에 따라 신분계층을 파악하는 수단이 되었고 오히려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았다. 즉, 자동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돈 없는 서민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리고 대중교통 내부에는 범죄에 취약했다. 

 

LA나 뉴욕에서 밤늦게 혼자 지하철 타는 행위는 자살 행위라는 것이 바로 그 얘기다. 당시보다 발전되었을 세계 최강국이자 부자나라 미국, 지금은 자유로이 안전하게 대중교통 이용하여 돌아다닐 수 있는 나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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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러시아에서 나의 발이 되어 줬던 트렘, 미국에서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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