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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 대통령,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참석 "부처님의 마음으로 올바른 국정 펼칠 것"
    윤석열 대통령은 부처님오신날인 15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늘 부처님의 마음을 새기면서 올바른 국정을 펼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축사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분들의 손을 더 따뜻하게 잡아드리고 민생의 작은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겨서 국민의 행복을 더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마음의 평화와 사회의 행복 강조" 윤 대통령은 "나와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할 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평화로울 때 우리 사회도 더욱 행복해질 것"이라며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 이 나라에 큰 빛이 되어 평화롭고 행복한 새로운 세상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서원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한민국이 위기를 이겨내고 더 크게 도약할 수 있도록 저와 정부의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가르침, 국민과 함께하는 불교" 윤 대통령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의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언급하며 "한국 불교는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불로 삼아 언제나 국민과 함께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교는 우리 정신문화의 근간이었으며 지금도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국민의 마음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섰다"고 덧붙였다. 불교계의 선 명상 프로그램 강조 윤 대통령은 "특히 불교계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선 명상 프로그램은 우리 국민의 정신 건강 증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며 "저와 정부도 국민의 마음을 보살피는 불교계의 노력에 더욱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봉축법요식 참석 인사들 이날 행사에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정 성파대종사, 총무원장 진우스님, 대덕스님 등 불교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또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오세훈 서울시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비롯해 싱하이밍 중국대사 등 각국 외교 대사들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대통령실에서는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전광삼 시민사회수석,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 인성환 안보2차장 등이 함께했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정부의 다짐 윤 대통령의 이번 부처님오신날 축사는 국민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앞으로도 정부는 불교계와 협력해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이를 위해 국민들의 협조와 참여를 당부하며,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따뜻한 사회를 꿈꾸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고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복지 정책을 강화하고, 불교계와의 협력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앞으로도 윤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들과 함께 힘을 모아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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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5
  • 다양한 학생들 참여... 스탠퍼드대 '반 이스라엘' 시위
    "반 이스라엘 시위가 아랍계나 무슬림이 주도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다양한 인종의 스탠퍼드대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보시다시피 유대계부터 중국계, 한국계 학생들까지 다양합니다."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미국 서부의 명문 대학 중 하나인 스탠퍼드대. 지난 3일(현지시간) 스탠퍼드대 중심부의 화이트 메모리얼 분수대 앞 잔디밭을 반 이스라엘 시위대의 텐트 수십 개가 점거했다. 이곳은 대학 내에서 가장 많은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곳으로, 관광객들도 가장 많이 찾는 '스탠포드대 서점' 바로 앞이다. 평소에는 학생들이 한가롭게 누워 햇빛을 쬐던 이곳이 현재는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시위대의 현수막으로 가득 차 있다. 현장에서 만난 스탠퍼드대 컴퓨터 공학과 여학생 A씨는 이번 시위에 대학 내 다양한 인종과 종교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아랍계나 무슬림뿐만 아니라 백인, 흑인, 아시아계까지 참여하고 있다"며, 이번 시위는 무슬림과 기독교 간의 충돌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시위 현장에서는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한국어로 쓰인 구호도 발견할 수 있었다. A씨는 싱가포르에서 온 중국계 미국인이다. A씨는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박해하는 것은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며 핍박했던 것과 비슷하다. 결국 일본 때문에 한국이 둘로 나눠진 것처럼 팔레스타인도 나눠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탠퍼드대는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나자 가장 먼저 반 이스라엘 캠프를 설치한 곳"이라며 "120일 만에 물러났지만 동부의 컬럼비아대나 UC버클리도 우리로부터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A씨는 캠프에서 계속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학교가 우리를 징계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름을 밝힐 수는 없다"면서, 시위에 참여하는 다른 학생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기도 했다. 시위대는 대학이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 측은 전쟁과 관련된 기업에 직접투자는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대학 측은 또한 교내 야영이 금지되어 있다는 이유로 시위 참여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준비하고 있다. 스탠퍼드대는 화이트 플라자에서 하마스 조직원이 착용하는 녹색 머리띠를 쓴 개인의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유포되면서 긴장하고 있다. 스탠퍼드대는 공식 성명을 통해서 이 사진을 FBI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불안하기는 시위대도 마찬가지다.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에서는 아직 컬럼비아대나 UCLA처럼 무력충돌이 일어나거나 경찰의 강제연행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시위대에 대한 위협이 늘어나고 있다. 현지 매체 KTVU2에 따르면, 지난 3일 저녁 한 남성이 시위대에 고함을 지르고 밀치는 행위를 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의과대학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다는 B씨는 "사실 시위는 그동안 학부생들이 참여하는 것이었고 대학원생들에게는 무관한 일이었다"면서 "하지만 미국 전역에서 학생들이 연행되고 화이트 메모리얼 분수대 앞에 캠프가 설치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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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5
  • 일론 머스크, 중국 방문으로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 사업
    전기차 산업의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의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중국을 전격 방문하여 새로운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테슬라는 중국에서의 완전자율주행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 양국 간의 기술 협력이 강화될 전망이다. 일론 머스크는 당초 인도 방문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전략적 변화를 통해 중국 베이징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번 방문은 중국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미래 전기차 시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창 총리와의 면담에서 머스크는 "중국에서 전기차 제조가 발달하는 것을 보니 좋습니다. 미래엔 모든 차가 전기차일 테니까요."라고 전하며 양국 간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국 정부는 이에 화답하여, 테슬라에 중국 내에서 완전자율주행 사업을 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중국 내에서 외자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인 조치로, 테슬라가 중국에서 수집한 교통 데이터를 미국으로 전송하여 보다 발전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을 가능하게 하며, 이를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된 차종에 적용해 출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테슬라는 최근 전기차 판매 부진으로 인한 주가 하락과 직원 감축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올여름 출시 예정인 자율주행차 '로보택시'를 통한 시장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 중국 시장은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으로, 테슬라의 성공적인 시장 확장은 중국 내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필요로 한다. 대림대 자동차학과 김필수 교수는 "중국 시장이 전체 전기차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이 시장의 중요성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중국 시장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미중 간의 협력 강화는 전기차 최강국을 노리는 중국이 테슬라 투자를 늘려 미국을 넘어서려는 전략과 맞물려 있으며, 향후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의 경쟁 구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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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2024-05-01
  • 홍준표 대구시장, 이철규 의원 원내대표 도전에 제동, "양식과 도의를 잃지 말아야"
    홍준표 대구시장이 30일 중국 청두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국민의힘 소속 이철규 의원의 원내대표 도전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홍 시장은 이 의원을 겨냥해 "불난 집에 콩 줍기 하듯이 패장이 나서서 원내대표를 하려 한다"고 지적하며, 이는 정치 도의에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정치적 배경과 비판의 맥락 홍준표 시장의 이번 비판은 최근 국민의힘 내부의 혼란과 지도부의 무력함을 비롯해, 22대 총선에서의 참패가 이어지는 문제에 대한 불만의 표출로 보인다. 이철규 의원은 과거 공천관리위원과 인재영입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홍 시장은 "우파가 좌파보다 나은 점은 뻔뻔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이철규 의원의 행동이 보수 우파의 재기를 어렵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 의원에게 최소한의 양식을 갖추고 자중할 것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당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것임을 시사했다. 홍준표의 한동훈 비판과 연계성 홍 시장의 이번 발언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비판과도 연결된다. 그는 한동훈을 정치 초보자로 규정하며 총선 실패의 주된 원인을 그의 리더십 부재에 두었다. 홍 시장은 한 전 위원장이 정치적 판단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당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이철규 의원에 대한 비판도 이러한 한동훈 책임론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홍 시장은 이철규 의원 뿐만 아니라, 한동훈 전 위원장과 같이 당의 중대한 위기 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인물들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시장의 지속적인 정치적 발언과 그 영향 홍준표 시장의 이러한 발언은 그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는 한편, 국민의힘 내부에서 더욱 철저한 자기 반성과 혁신을 촉구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당 내부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며, 실질적인 변화와 재정비를 주문하고 있다. 홍 시장의 이러한 비판은 국민의힘이 총선 참패 이후 겪고 있는 리더십 위기와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의 발언은 당 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국민의힘의 미래 방향성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촉발시킬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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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2024-04-30
  • 일론 머스크, 중국 방문하여 리창 총리와 협력 강화 논의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중국을 공식 방문하여 리창 국무원 총리와 만나 중미 경제 협력 강화 및 상호 호혜적인 관계 발전에 대해 논의했다. 이번 방문은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의 초청으로 이루어졌으며, 베이징에서의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었다. 리창 총리는 테슬라의 중국 내 활동을 중미 경제와 무역 협력의 성공 모델로 평가하면서 평등하고 호혜적인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머스크 CEO는 상하이에 위치한 테슬라의 기가팩토리가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음을 언급하며, 이는 중국 팀의 노력과 지혜 덕분이라고 화답했습니다. 또한, 테슬라가 중국과의 협력을 더욱 심화하고, 양국이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지를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머스크는 중국 고위 당국자들과 완전자율주행 소프트웨어의 중국 내 출시 및 데이터 수집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이번 회담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테슬라 자율주행 기술의 알고리즘 훈련에 필수적이며, 머스크는 이 데이터의 해외 이전에 대한 중국 정부의 승인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는 중국 규정을 엄격히 준수하여, 2021년부터 중국 내에서 수집된 모든 데이터를 현지에 저장하고 있으며, 이를 미국으로 전송하지 않는 정책을 유지해왔다. 현재까지 테슬라는 중국에서 170만대 이상의 차량을 판매했으며, 상하이의 공장은 이 회사의 글로벌 생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기지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 머스크 CEO의 중국 방문은 양국 간의 기술 협력과 경제 교류를 더욱 증진시킬 것으로 기대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테슬라의 입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뉴스
    • 지구촌
    2024-04-29
  • GS건설, 고급 아파트에 중국산 위조 유리 사용으로 논란
    GS건설이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수십억원이 투입된 공사 도중 중국산 위조 유리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큰 논란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는 준공된 지 수년이 지났으며, 이 유리는 한국표준(KS) 마크를 위조하여 세대 난간, 연회장, 스카이라운지, 옥상 등 주요 공간에 설치되었다. 이 문제는 경쟁 업체를 추적하던 한 업체가 낙찰 과정에서 발견한 저가의 중국산 유리에 대한 의혹을 조사하면서 밝혀졌다. 경찰에 고발된 결과, 유리를 납품한 하청업체와 이를 수입한 업체가 최근에 당국에 의해 처벌받았다고 전해졌다. GS건설 측은 이 문제에 대해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 대변인은 "유리공사를 맡긴 하청업체가 중국산 위조 유리를 대량으로 반입했으며, 이를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가짜 KS 마크는 눈으로도 쉽게 구분할 수 있어, GS건설의 관리 소홀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하청업체인 T 유리는 제품 납기를 맞추기 위해 중국산 유리 2500장을 수입한 뒤 국내에서 KS 마크를 위조하여 부착했다고 한다. 이 위조 유리는 정품 유리 1500장과 섞여 아파트에 설치되었다. GS건설은 이번 사태로 인해 시공 관리의 부실을 인정하며, 문제가 된 모든 유리를 정품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한 예산도 별도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또한, 부실 공사를 한 하청업체에 대해서는 고발과 함께 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는 현재 문제의 유리가 설치된 장소에 대해 주민 출입을 제한하고 있으며, 유리 파손으로 인한 추락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긴급 안전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건설 업계의 관리 감독 부실과 품질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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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9
  • 금값 급등 속 한국은행의 보수적 금 매입 전략
    최근 금값이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금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초 대비 13% 이상 상승한 금값은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이는 주로 미국의 통화정책 완화 전망과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증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씨티그룹은 올해 금 가격이 각각 온스당 2400달러와 3000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외 중앙은행들도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여 금 매입을 늘리고 있다. 2022년 한 해 동안 중앙은행들이 매입한 금량은 1037톤에 달하며, 이는 1950년 이후 가장 큰 규모이다. 특히 중국은 215.9톤의 금을 사들이며 금 사재기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인 트렌드와는 달리, 한국은행은 2013년 이후 금을 추가로 매입하지 않고 있으며, 금 보유량 순위도 세계 36위로 하락했다. 한국은행의 보수적인 금 매입 전략은 외환보유액의 유동성 확보를 우선시하는 현 정책과 관련이 있다. 금은 유동화가 어렵고, 금리 하락 시 기회비용이 낮아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당장의 경제 상황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 한편, 금의 가격 변동성은 매우 크며, 특히 1980년대 이후 급격한 하락과 상승을 반복해왔다. 금값은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에 매우 민감하며, 이로 인해 안정적인 투자 수단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 1973년 이후 금의 위험조정 연평균 수익률은 0.26%에 불과해 다른 자산과 비교할 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금 매입을 보류하는 것은 지정학적 안정성과 달러의 강세라는 점에서 미국의 우방국으로서의 위치를 고려할 때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위험 분산과 자산 다각화의 관점에서 금 보유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결국, 금 매입 여부는 단순한 투자 수익을 넘어서 국가의 경제적·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한국은행의 현재 금 매입 전략이 미래에도 계속 유효할지, 아니면 국제적인 트렌드에 발맞춰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는지 지속적인 관찰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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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2024-04-27
  • 삼성, 베이징 모터쇼에서 차량용 솔루션 선보여… 중국 시장 공략 본격화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을 겨냥한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가 베이징 모터쇼(오토차이나)에서 차량용 기술 솔루션을 공개하며 중국 시장 공략에 본격적인 발판을 마련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전장 분야로의 사업 확장을 가속화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차량용 반도체, 메모리, 이미지센서, 차량용 디스플레이 등을 포함한 전 제품군을 선보였다. 베이징 모터쇼가 개최되는 차오양관에서 삼성전자의 부스는 큰 주목을 받으며, 첫날부터 대규모 인파가 몰렸다. 특히 삼성디스플레이는 차량용 OLED 제품군을 전시하며 현장에서 큰 관심을 끌었는데, 이 제품들은 기존 LCD에 비해 더 얇은 두께와 다양한 기후 환경에의 적응력을 갖춘 점이 특징이l다. 또한, 폴더블 및 슬라이더블 기술이 적용된 '플렉스 노트 익스텐더블'과 프라이버시 기능을 갖춘 '플렉스 매직 픽셀' 등 혁신적인 제품들도 함께 공개되어 방문객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이미지센서인 ‘이소셀 오토 라인업’과 함께 엑시노스로 제작된 차량용 시스템 온칩(SoC) 솔루션도 선보였다. 이 제품들은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의 완성도를 높이고, 주행 중 다양한 밝기 환경에서도 운전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특히 엑시노스 오토 V920과 V9 프로세서는 강력한 디지털신호처리(DSP) 기능과 듀얼코어 NPU 엔진을 탑재하여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분야에서 더욱 빠르고 효율적인 작업 처리가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또한 고성능 저전력 D램인 LPDDR5X를 이용한 차량용 저장 솔루션을 공개하며 소비 전력을 줄이고 성능을 개선한 제품을 소개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신제품들은 삼성이 차량용 솔루션 분야에서 세대 교체를 이끌며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OLED 기술이 특히 전기차 시대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 기술을 앞세워 중국 완성차 시장에서의 리더십을 계속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베이징 모터쇼는 상하이 모터쇼와 함께 중국 완성차 시장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중요한 전시회로, 삼성은 이번 행사를 통해 전장 부품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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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2024-04-26
  • BMW그룹코리아,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최신 R&D센터 개관
    BMW그룹코리아가 22일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BMW그룹 R&D센터 코리아'를 새롭게 개관했다고 발표했다. 이 센터는 2015년 처음 인천 BMW 드라이빙센터 내에 설립된 이후 9년 만에 확장 이전하였으며, 2019년 한국 방문 당시 BMW그룹 본사 임원들이 발표한 확장 계획의 일환으로 완공되었다. 이날 개관식에는 요헨 골러 고객·브랜드·세일즈 부회장과 장 필립 파랑 아시아태평양·중동·동유럽·아프리카 지역 총괄 시니어 부사장, 다니엘 보트거 완성차 연구개발 총괄 시니어 부사장 등 BMW 본사 임원들과 BMW코리아 한상윤 대표, 부산·울산·경남 딜러 동성모터스 석상우 대표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새롭게 문을 연 R&D센터는 대지 5296㎡, 연면적 2813㎡ 규모의 단층 건물로, 사무 공간뿐만 아니라 정비·시험실, 인증 시험실, 전기차 충전기 시험동 등 다양한 테스트랩을 갖추고 있다. 센터에는 약 50명의 직원이 상주하며 국내에 수입되는 BMW 차량의 인증과 제품 개발을 담당한다. 또한, 국내 기업, 연구시설,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내비게이션, 음성인식, 사용자환경(UI) 프로토타입 등의 개발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니엘 보트거 부사장은 “이곳에서 진행되는 테스트, 상품개발, 인증 작업을 통해 한국 협력업체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BMW 테크놀리지 오피스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국내 출시 전 차량의 유지·관리 체계와 시험 절차를 구축하고, 집중 테스트를 통해 성능과 품질을 강화할 계획임을 언급했다. 이외에도 한국 자동차 관련 기술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BMW 스타트업 개러지’도 새롭게 문을 열었다. 이는 독일, 미국, 중국, 이스라엘, 일본, 한국 등 전 세계 6개 국에서 운영 중인 프로그램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거나 판로를 만들고자 하는 테크 관련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요헨 골러 부회장은 신규 R&D센터 설립 이유에 대해 “한국은 BMW그룹 내에서 5번째로 큰 시장이며, 최신 기술에 능한 한국 고객들과 최첨단 기술을 테스트하기에 적합한 환경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BMW코리아는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수입차 판매 1위를 기록했으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높은 판매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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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4-04-23
  • 중국 중앙은행, 연속 금리 동결로 통화정책 조율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지속적인 경제 회복세와 안정적인 물가 수준을 고려하여 연속적으로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이번 조치는 중국 경제가 기대 이상의 성장세를 보인 가운데 시행됐으며, 이는 통화정책의 적절한 조율을 통해 내수 및 수출 회복 추세를 지속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인민은행은 대출우대금리(LPR)를 1년물 3.45%, 5년물 3.9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22일 발표했다. LPR은 중국의 18개 지정 은행이 최우량 고객에게 적용하는 대출금리를 기준으로 산출되며, 중국 내 대부분의 대출 금리 산정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특히, 1년물 LPR은 일반 대출에, 5년물 LPR은 주택담보대출에 주로 영향을 미친다. 이번 금리 동결 결정은 인민은행이 지난 15일 중기유동성지원창구(MLF) 금리를 2.50%로 유지하면서 사실상 예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시중에 충분한 자금이 유통되고 있다고 보고, MLF 대출 감소가 은행 시스템 내에서 현금 흐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중국 경제는 최근 몇 년간 저조한 물가와 내수 경기 침체에 시달렸으나, 저우란 인민은행 통화정책 국장의 최근 발언에 따르면, 금리 조정을 통한 경제 활성화가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저우 국장은 금리가 너무 낮아지면 경쟁력 약화와 자본 유출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을 경계하면서, 통화 정책에서 물가와 실질 금리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지난 1분기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3%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이는 중국 경제가 견고한 회복 궤도에 올랐음을 시사하며, 이에 따라 통화 당국이 금리 인상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음을 나타낸다. 경제의 강력한 성장세는 중국 정부가 내수 및 수출 부문에서 자신감을 갖고 점진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한다. 중국 중앙은행의 이번 결정은 글로벌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며, 금리 동결이 중장기적으로 중국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앙은행은 앞으로도 경제 동향을 면밀히 관찰하며 필요한 정책 조정을 계속해 나갈 계획임을 밝혔다.
    • 뉴스
    • 경제
    2024-04-22

과학 검색결과

  • 카카오, 1분기 영업이익 급증에도 SM 인수와 AI 부진으로 주가는 정체
    카카오가 2023년 1분기에 플랫폼과 콘텐츠 부문에서 강력한 성과를 기록하며 예년 수준의 영업이익을 회복했다. 하지만 SM엔터테인먼트 인수로 인한 사법리스크와 인공지능(AI) 서비스 개발 부진이 투자자들의 우려를 사며 주가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카카오는 이번 분기에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92.2% 증가한 1,203억 원을 기록했다고 9일 밝혔다. 매출 역시 22.5% 늘어난 1조9,884억 원을 달성했지만, 이는 증권가의 예상치인 매출 1조9,994억 원, 영업이익 1,271억 원에는 다소 못 미쳤다. 국내에서 중국계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업계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카카오의 주요 성장 동력은 플랫폼과 콘텐츠 부문이다. 플랫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한 9,548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카카오톡을 통한 광고와 커머스 사업인 톡비즈 매출이 8% 증가한 5,221억 원, 포털 비즈니스 매출은 1% 상승한 847억 원을 나타냈다. 모빌리티와 페이를 포함한 기타 플랫폼 매출도 24% 증가한 3,480억 원을 달성했다. 콘텐츠 부문에서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3% 증가한 1조336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뮤직 부문은 SM엔터테인먼트 인수 효과로 102% 증가한 4,682억 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웹툰과 웹소설을 포함한 스토리 매출은 1% 감소한 2,270억 원을 나타냈다. 미디어 매출은 41% 증가한 952억 원으로 나타났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최근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카카오톡의 국내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전분기 대비 24만 명 증가한 4,870만 명으로 늘었지만, 유튜브 같은 경쟁 플랫폼의 도전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카카오는 사용자 경험 개선을 위해 소셜그래프 개선과 멀티 프로필, 멀티 계정 등을 도입할 계획이다. AI 분야에서는 한국어 기반의 거대언어모델 코GPT2.0 출시를 계획했으나 연기되는 등 AI 서비스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카카오는 자회사인 카카오브레인의 AI 사업 부문을 영업 양수하며 새로운 전략을 모색 중이다. 정 대표는 "AI 서비스 가시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소식에도 불구하고 카카오의 주가는 4만8,600원으로 전날 대비 2.41% 하락한 상태로 마감했다. 이는 SM 인수에 따른 법적 리스크와 AI 개발 지연이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 과학
    • 정보통신
    2024-05-10
  • 애플 주가 상승, 챗GPT 탑재 기대와 번스타인 투자 상향 조정에 힘입어
    2023년 4월 29일,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애플의 주가가 강세를 보이며 전 거래일 대비 2.48% 상승한 173.50달러(약 23만8700원)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주가 상승은 글로벌 투자은행 번스타인이 애플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매수'로 상향 조정하면서 개선된 투자 심리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번스타인의 투자의견 상향은 중국 정부의 규제 강화로 인한 시장 점유율 하락 우려가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었으며, 중국에서의 애플 기기 교체 주기가 도래했다는 점이 주된 이유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분석은 중국 시장에서의 애플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애플이 올해 6월에 개최 예정인 연례 세계 개발자 콘퍼런스(WWDC)에서 새로운 AI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발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애플 기기에 오픈AI의 생성형 인공지능 AI, 챗GPT를 탑재할 수 있다는 소식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이는 애플이 지속적으로 혁신을 추구하며 기술 트렌드에 발맞춰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로 평가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애플은 올해 말 아이폰에 새로운 기능을 탑재하기 위해 오픈AI와의 논의를 재개했다고 보도되었으며, 이는 주가 상승에 큰 동력을 제공했다. 또한 애플은 구글과도 생성형 AI '제미나이'의 아이폰 운영체제 'iOS 18'에의 통합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투자의견 상향과 AI 통합 기대는 애플의 주가가 단기적으로는 물론 장기적으로도 긍정적인 흐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며, 특히 AI 기술의 상업적 활용이 본격화될 경우, 애플의 시장 지위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의 이러한 움직임은 글로벌 기술 산업에서의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소비자들에게 더욱 향상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투자자 및 시장 분석가들은 애플의 혁신적인 접근이 향후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하며, 애플의 성장 전략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 과학
    • 정보통신
    2024-04-30

칼럼 검색결과

  • 바이칼 호수에 대한 이야기
    부리야트 공화국을 둘러싸고 있는 ‘바이칼’은 부리야트 어로 ‘풍부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반면 부리야트가 존재하는 ‘시베리아’는 알타이어로 ‘잠자는 땅’이라 한다. 그러나 부리아트어로 시베리아는 ‘신(神)들의 마을’이 된다. 중국의 고서(古書)들은 모두 북방 민족들을 천손(天孫)이라 하는데 부모(父母)인 하늘(天)과 자손(孫)들은 샤먼(巫)들을 통하여 서로의 의사를 소통할 수 있었다. 특히 부리야트의 무(巫, 샤머니즘)의 의식은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북방민족의 전통 의식과 거의 같다. 부리야트의 샤먼과 무당들은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모시고 그 세계를 9단계로 나누고 있다. 아래는 지옥세계로 7단계로 나누어져 ‘7’은 좋지 않은 숫자이고, ‘9’는 최상의 길수로 나타난다. 역시 북방 민족들도 9를 최상의 숫자로 삼는데,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 같은 문화권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부리야트 인을 설명하며 바이칼 호수를 파악할 수밖에 없는데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바이칼은 부리야트 어로 ‘풍요로운 호수’, ‘부유한 호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바이칼 지역은 부리야트 이 외에도 퉁구스계 에벤키 족, 에벤 족, 타타르 족, 코사크 족 등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종족 중 타타르 족은 몽골계통의 민족으로 몽골 제국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정복한 이후 바이칼 지역에 널리 흩어져 거주하고 있다. 코사크 인들은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에 거주하며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민족이다. 러시아 인들이 시베리아를 정복하기 시작하면서 코사크 인들이 바이칼 지역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부리야트와 이전 퉁구스계 민족들과 함께 바이칼 호 인근에서 혼혈하여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한민족과 유사한 혈통, 언어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양민종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바이’가 샤먼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지배적인 것으로 언급하면서 ‘샤먼의 호수’라는 뜻도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풍요로운 호수’나 ‘무속의 호수’로 지칭한 것을 볼 때 바이칼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크고, 가장 깊고 차가운 담수호로 1996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칼 호수와 그 주변에는 약 2,600여 종의 동, 식물이 있다. 이 중 80%가 다른 지역에는 없는 세계에서 희귀한 동, 식물들이고, 그 토종의 비율 또한 세계 생태계 중에서 가장 높아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류의 경우 52종 중 27종이 바이칼 호수에서만 서식하는 연어과의 어류인 오물(Omul)과 같은 고유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바이칼 호수에는 22개의 섬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섬이 ‘바이칼의 심장’이라 불리는 알혼 섬이다. 알혼 섬은 전체의 윤곽이 바이칼 호수와 같으며 그 상징도 흰 독수리로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는 알혼 섬의 상징이 바이칼에 서식한 흰 독수리로 연해주와 극동 지역에 서식하는 흰 독수리와 같다. 게다가 알혼 섬의 ‘샤먼 바위’는 아시아의 9대 성소(聖所)들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바위는 돌 사원, 부르칸 봉, 동굴 봉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이 바위에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신비한 동굴이 있어서 동굴 안에서 샤머니즘 의식을 거행하였는데, 불교가 유래된 이후에는 부처의 상이 놓여 있다. 바이칼 호수에서 앙가라 강이 흘러나가는 지점에 있는 ‘샤먼바위’를 둘러싸고 바이칼 호수와 앙가라 강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러한 전설에 의하면 아버지 바이칼은 335개의 아들 강과 외동딸 앙가라를 두었는데 그들은 모두 아버지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그래서 아버지 바이칼은 물이 매우 풍부하다. 그런데 외동딸 앙가라가 예니세이 강을 사랑하여 아버지의 물을 연인에게 퍼주기 시작했다. 이에 화가 난 아버지 바이칼은 외동딸 앙가라에게 큰 바위를 던져 저주했다. 그것이 ‘샤먼바위’라 불리는 두 개의 큰 바위로 나타난다. 앙가라의 수원(水原)에 위치하여 그 시작으로 간주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전설에는 또 다른 전설도 존재하고 있다. 바이칼에게는 외동딸 앙가라가 있었는데 앙가라는 예니세이와 사랑에 빠져 그와 도망치기로 결심하였다. 바이칼이 그 사실을 알고 앙가라의 수원에 돌을 던져 그 길을 막으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앙가라는 고집을 부렸고, 아버지 바이칼은 딸을 추격하라고 조카 이르쿠트(Irkut)를 보냈지만 그는 앙가라를 불쌍하게 생각하여 바이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앙가라는 예니세이와 만나서 계속 흘러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335개의 강이 바이칼 호로 물길을 대주고 있다. 하지만 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오직 앙가라 강 뿐으로 나타난다. 앙가라 강은 시베리아의 예니세이 강과 만나 북극해로 흘러간다. 그러한 강의 유속으로 인하여 이러한 전설이 생겨난 것 같다.
    • 칼럼
    • Nova Topos
    2024-05-16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내부 갈등이 잦은 이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유럽 내 종교와 문화의 대표적인 모자이크 지역으로 분류되어 복잡한 구조를 지니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보스니아를 중심으로 지난 2,000년 동안 이어진 종교, 문화적 분할의 역사와 더불어 보스니아가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 발칸의 중심지로 지정학적 가치가 높다. 특히 터키와 서유럽을 왕래하는 통로에 있어 그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기에 디나르알프스라는 거대한 산악 지대에 있음에도 많은 외침을 받은 배경으로부터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발칸 유럽 자체가 종교적으로는 카톨릭과 정교, 이슬람 등의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고 이에 따른 문화들이 유입되어 현존하고 있기 때문에 통상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Mosaic of Religion and Culture)’ 지역이라 불리고 있다. 실제로, 종교와 문화적인 분할에 따른 역사적인 격변으로 볼 때 보스니아는 이탈리아로부터 넘어온 카톨릭과 다수의 세르비아인들이 불가리아 제국으로부터 이어 받은 정교, 그리고 오스만투르크로 인해 개종된 세르비아계 무슬림의 종교 이슬람이라는 세계 3대 종교들이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 이처럼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에 속하면서도 가장 복잡하고 혼재된 모자이크 중의 모자이크 지역(Mosaic area within a mosaic)이 된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수많은 외침을 당했고 다양한 국가들의 지배를 받았으며 동, 서로마를 연결하는 연결 고리의 역할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지정학적 배경은 그 수도인 사라예보에도 이슬람을 믿는 보슈냐크인들 외에도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인, 카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 그리고 그 외로 비록 소수이지만 유태인들이 남아 있어 서로 복잡하게 혼재되었고 이들 함께 거주하면서 ‘유럽의 예루살렘’이라는 별칭까지도 얻었다. 사실 세계적인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 지역이라는 특성에서 볼 때 보스니아의 국제 지정학적 중요성은 냉전 시대 이후 펼쳐질 세계 질서의 특징이라는 내용을 주제로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s)>을 집필한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 1927~2008)의 저서 속 주장에도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 붕괴로 인해 상징되는 냉전의 종결 이후 새롭게 변화해가는 국제 질서와 그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세계 현대사적 충돌과 갈등들을 지켜 본 헌팅턴은 전 세계를 약 8개의 문명권, 서구, 라틴 아메리카, 이슬람, 중국, 인도, 정교, 일본과 아프리카로 분류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명권들 간의 충돌로 볼 때 여러 국제적 분쟁을 일으키고 있으며, 냉전 시대 이후, 국제적인 무력 충돌의 주요 요인 또한 바로 이와 같은 문화와 종교적인 차이에서 기인된다고 언급했다. 또한 헌팅턴은 자신의 저서에서 주요 문명 간 충돌의 대표적 사례로 ‘팔레스타인-가자와 이스라엘’ 지역과 더불어 ‘보스니아를 둘러싼 구 유고’ 지역을 들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라는 별칭과는 다르게, 다른 모자이크 지역에서 나타나지 않은 대립과 반목은 보스니아와 주 거주민들인 남슬라브계 민족들에게 고통과 어려움을 안겨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인 상황이다. 보스니아의 내전 이후, 보스니아 내 민족들은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 국가인 그들의 현실을 서로 인정하고 민족들 간의 화해와 통합이라는 과제를 이룩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해왔다. 하지만 지금도 이와 같은 갈등 양상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갈등의 근원은 종교를 정신적 지주로 두고 그에 기인한 민족주의적인 불씨가 아직 남아 있어서 그렇다. 그에 대표적인 부분은 보스니아 내전이 종결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 한 국가 안에 3개의 큰 민족이 각각의 민족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고 있다는 것에 있다. 실질적으로 보스니아는 세르비아계가 중심인 스르브스카에서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와 헤르체고비나의 크로아티아계가 중심인 곳에서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 보스니아가 가르치는 사라예보의 각 학교들의 역사 교과서는 그 민족적 출발선에서부터 판이하게 다르다. 참고로 보스니아는 중세 시대 때 세르비아 네마니치 왕조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있지만 스르브스카에는 이를 사실로 가르친다. 이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최근 보스니아의 교육 현실을 집중 조명한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CSM)라는 단체가 그 원인을 보스니아의 분할된 교육 체계에서 찾고 있다. 내전이 종식된 이후 보스니아의 교육 정책은 각 체제별 지역 정부에 맡겨졌다. 이는 현재 보스니아에 지역별로 10개가 넘는 교육부가 존재하고 있으며 통합되지 않고 있기에 저마다 가르치는 교과서들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3개 민족의 정치 지도자들은 각자의 민족적 특성과 향후 생성될 정치적인 분할에 맞추어 커리큘럼을 구성해 왔다. 따라서 각 민족이 자율적으로 펴낸 교과서를 통해 젊은이들을 교육하라고 지침을 내리는 실정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사 수업 또한 이러한 민족 정부의 커리큘럼에 들어가 있다. 따라서 역사적인 기록을 중시하는 역사학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정치가들은 역사서를 통해 때로는 사실과 다르게 자신들을 전쟁의 희생을 당한 피해자로 묘사하고 또 다른 민족을 침략자인 것으로 기술해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대화가 불통이고 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을 당연시하게 여기고 있다. 또한 자 민족에게 불리하거나, 국제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역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단순히 개요만 가르치며 근원적인 물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편파적인 역사 의식들이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에 있다. 이에 따른 한 국가 내의 서로 다른 역사 인식을 갖게 되는 혼란들은 서로 다른 상이한 역사를 배우고 있는 젊은 세대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비뚤어진 역사인식은 오히려 남슬라브 청년들의 극우 민족주의적 색체를 강화시킨다. 다른 역사적 가치관에 따른 민족 간 화해와 조화로운 관계로의 진출은 더욱 더 어려운 과제로 남겨지고 있으며 체트니치와 우스타샤와 같은 극단적인 네오나치들을 꾸준히 양산해낸다. 용서와 화해라는 과제보다 끝없는 적대와 공격 만을 안겨주고 있는 이처럼 잘못된 역사 교육은 보스니아가 앞으로도 문화, 종교 간을 초월, 국가 내 모든 민족을 통솔하는 통합된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러니 스르브스카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독립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같은 민족적 분열을 이용해 선전선동하는 정치인들 또한 문제다. 이는 비단 보스니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상호 간의 용서와 화해 없이 국가와 민족 통합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철지난 이념 논쟁을 앞세워 좌우 대립, 정치 정당 대립, 지역 대립, 남녀노소 갈등 등은 상호 간의 이해가 부족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거의 없다시피하기 때문에 작은 국가 안에서도 통합이 어렵다. 상호 간의 이해가 있어야 화해와 용서가 가능한데 이러한 이해조차 하지 않으려 하고 서로 간의 주장만을 내세우며 귀를 막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국민들의 이해 인식의 부족은 통합과 안정, 화해라는 대목의 평범한 진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깨닫게 한다. 이러한 보스니아의 현실을 보며 우리 대한민국도 보스니아와 다를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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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5
  • 베트남의 추석은 어린이날?
    베트남에서의 추석은 명절이나 쉬는 날이 아니다.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는 어린이 날 격이나 마찬가지인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추석 맞이 음식과 제사는 그대로 똑같이 행하고 있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다음, 악기를 두드리며 흥을 돋구고 바닥에 앉아 음복 음식을 먹기도 한다. 이와 같이 베트남의 추석은 쉬는 날이 아니지만 이렇게 자체적으로 파티를 열고 즐기고 있는 문화이다. 남녀노소 내, 외국인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필자 말고도 많은 서양, 유럽사람들이 이 이색적인 장면을 두고 열심히 사진찍고 있었다. 한국의 어린이날은 5월 5일이지만 본래 베트남의 어린이날은 6월 1일이다. 베트남의 어린이날은 아이들을 위한 명절로 어린이들은 이날 마음껏 놀고, 부모부터 친척까지 의미 있는 선물을 받는다. 베트남은 아시아에서는 최초, 세계에서는 두 번째로 어린이 권리 협약을 비준한 나라로 1950년부터 6월 1일이 어린이날로 지정됐다. 한국과는 달리 베트남에서는 어린이날이 공식 휴일이 아니지만 학교,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는 어린이날을 위해 공연과 파티도 열린다. 또 베트남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린이날은 두 번으로 6월 1일과 쭝투라고 부르는 음력 8월 15일 (추석) 이다. 베트남의 추석 음력 8월 15일은 주로 어린이가 즐기는 명절로 추수 때문에 바빠서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보내지 못한 미안한 마음으로 인해 추석에는 어린이들을 위해 함께 댄롱을 만들어 주고 선물도 준다. 댄롱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데 어린이와 학생은 주로 댄옹사오 즉, 별 모양으로 만들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베트남의 추석은 한국과는 달리 휴일이 아니지만 사진들과 같이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도 많고 축제 분위기다. 이런 베트남에 추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나 중국하고 기후적으로 달라 매년 2모작 이상의 추수를 하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당일 저녁 밖에서 여러 가지 모양의 댄롱을 들고 행진하며 노래를 부른다. 각 나라마다 정해진 어린이날은 다르지만 어느 나라나 어린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날로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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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 최근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 후예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Za Dom, spremni!(조국을 위해 준비하라!)" 크로아티아의 안드레이 플렌코비치(Andrej Plenković) 총리는 지난 크로아티아 총선에서 승리했고 여당인 크로아티아 민주연합(Hrvatska Demokratska Zajednica)이 이기긴 했지만 여전히 조란 밀라노비치 대통령이 이끄는 크로아티아 사회민주당(Socijaldemokratska partija Hrvatske)의 세가 강하다. 게다가 밀라노비치 대통령은 정치적인 실권은 없지만 친러시아 성격을 갖고 있어 러시아와의 외교를 강화하고 중국 기업을 끌어들여 일대일로 아드리아 해 사업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리고 세르비아와 화해 구도를 열어가기 위해 접촉 중인데 곧 세르비아를 방문할 시진핑 주석이 오는 시기에 맞춰 무언가를 진행중인듯 싶다. 아직 그게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는 바는 없다. 이에 크로아티아 극우세력들은 적극적으로 반발하여 자그레브 내에서 연일 시위를 열고 있다. 이에 세르비아의 부치치 대통령은 크로아티아 민주연합을 우스타샤의 후예라고 비난 했고 플렌코비치 총리를 "파벨리치의 아들(Потомци Павелића)"이라며 맹비난했다. 이에 자그레브에서는 "Za Dom, spremni! (조국을 위해 준비하라!)"는 우스타샤의 표어를 앞세워 반러, 반중, 반세르비아 정서를 강화하고 있는 입장이다. 우스타샤는 크로아티아의 반 유고슬라비아 분리주의 운동 조직이면서 철저히 극우주의 성향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이탈리아 파시즘의 영향을 받았고 여기에 크로아티아의 국교나 마찬가지인 카톨릭이 섞인, 종교 전체주의(Religious Totalitarianism)의 성격을 띄고 있다. 이들은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의 영향이 강했다. 베니토 무솔리니도 "고대 로마제국의 영향을 살리겠다(Faremo rivivere la gloria dell'antico Impero Romano)"는 극우주의적 표어로 선전, 선동하여 당선되었고 이는 "Za Dom, spremni! (조국을 위해 준비하라!)" 표어 제작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사실상 우스타샤는 무솔리니의 자금지원까지 받아서 활동했었다. 특히 우스타샤의 창설자인 안테 파벨리치(Ante Pavelić, 1889~1959)는 무솔리니를 매우 존경했다. 그는 크로아티아의 독립과 보스니아 및 달마티아의 병합을 주장하는 민족주의 정당 프랑코프치(Frankopci)에 입당했는데 당은 요시프 프랑크(Josip Frank)가 지도하고 있었다. 요시프 프랑크(Josip Frank)는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사상가 주세페 보타이(Giuseppe Bottai)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인물이다. 주세페 보타이(Giuseppe Bottai)는 "이탈리아 식민 제국에서의 이탈리아인의 역할에 대한 이해(Comprendere il ruolo degli italiani nell'impero coloniale italiano)"라는 제목에서 “Illuminano il mondo con la loro arte, insegnano con la loro conoscenza e forniscono una forte organizzazione nazionale nel nuovo territorio attraverso le loro capacità e abilità di governo (그들의 예술로 세상을 밝히고, 그들의 지식으로 가르치며, 그들의 통치 기술과 능력을 통해 새 영토에 튼튼한 국가 조직을 마련할 것)”이라 주장했었다. 이것을 스파치오 비탈레(Spazio Vitale)라고 한다. 요시프 프랑크(Josip Frank)는 여기에 박수치고 있었던 인물이고 안테 파벨리치(Ante Pavelić)는 이를 크로아티아의 실정에 맞게 시도하고자 했던 인물인 것이다. 프랑크가 정부에 의해 체포되자 파벨리치는 프랑크 밑에서 개인 비서 역할을 했고 1927년 자그레브 시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 국왕의 독재가 강화되면서 그는 무장단테 조직인 우스타샤(Ustaša)를 탄생시킨다. 우스타샤(Ustaša)라는 이름은 '서다', '오르다'라는 뜻의 단어인 'Ustati', Bставать (일어서다)의 슬라브어인 Usta, 중세 이탈리아어인 Scalatia (오르다의 중세어)를 합성해 만든 단어다. 이는 이후 크로아티아에서 "반란(Pobuna)"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당연히 이들은 나치식 경례를 채용했는데 경례구호는 "Za Dom, spremni! (조국을 위해 준비하라!)", 우스타샤의 표어였다. 이같은 구호는 나치 독일의 'Sieg Heil'에 상응하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크로아티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붕괴되면서 독립한 세력에 가깝다. 본래 남슬라브 민족의 통합을 원하고 있던 세르비아와 협력해 크로아티아인의 독립을 공고히 하기를 원했었다. 그러나 세르비아인은 크로아티아인들로 인해 자신들의 정치적 위치가 위협당할까봐 두려워했고 크로아티아인들은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남슬라브의 체제가 돌아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파벨리치는 유고슬라비아 왕국 내부에서 크로아티아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반란을 주도했으며 결국 크로아티아에서 추방되어 이탈리아 왕국으로 조직을 옮겼다. 역시 이들은 이탈리아와 관계가 깊을 수밖에 없다. 나치 독일의 영향을 받은 것은 그 이후의 얘기다. 한편 같은 시기, 크로아티아에서는 알렉산데르 1세가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선포하고 1931년 9월 3일 신헌법을 반포했다. 그러나 세계 대공황으로 인해 유고슬라비아 내의 경제마저 파탄에 이르자 1932년 들어 민주주의로 복귀하라는 시위가 빗발치게 되고 파벨리치는 이를 이용해 알렉산데르 1세에 대한 암살을 계획한다. 이 때 알렉산데르 1세는 프랑스와 회담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1934년 프랑스 마르세유를 방문한다. 프랑스 외무장관이자 총리를 역임했던 장 루이 바르투(Jean Louis Barthou)과 회담을 진행했다. 한편 파벨리치는 불가리아의 IMRO (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와 손을 잡고 알렉산데르 1세의 암살을 의뢰하게 된다. 이 때 의뢰를 받은 인물이 블라도 체르노젬스키(Владо Черноземски, 1897~1934)이다. 체르노젬스키는 회담장에 뛰어들어 알렉산데르 1세에게 한 발, 장 루이 바르투에게도 한 발의 권총을 발사했고 알렉산데르 1세는 그 자리에 심장이 관통되어 절명했다. 한편 장 루이 바르투는 국왕을 지키려다 팔에 총알이 관통했고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바르투의 경우, 빨리 지혈했으면 살 수 있었지만 동맥에 총을 맞은데다 그걸 버티기 힘들 정도의 고령의 나이였기에 병원에 옮겨진 지 1시간 뒤에 사망했던 것이다. IMRO (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의 해제된 기밀문서에 의하면 당시 체르노젬스키가 의뢰를 받은 것은 알렉산데르 1세 한 명이었다고 한다. 즉, 바르투가 죽은 것은 계획에도 없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이 파장은 엄청났다. 유고슬라비아는 우스타샤의 소행임으로 밝혀내고 파벨리치의 소환을 이탈리아 정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이를 거부하고 그를 잠시 형무소에 가두는 걸로만 마무리했으며 그 마저도 3개월만에 풀려났다. 사실상 무솔리니가 풀어준거나 다름없는데 이후 그와 우스타샤는 독일로 넘어가 히틀러를 만나게 된다. 그는 히틀러에게 크로아티아를 위해 유태인, 집시, 세르비아인, 공산주의자들을 대상으로 숙청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나치 독일의 지원을 받는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면서 유고슬라비아가 점령되자 파벨리치는 자신의 조직 우스타샤를 이끌고 크로아티아로 돌아와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 헝가리 왕국의 지원으로 괴뢰 정부 크로아티아 독립국(Nezavisna Država Hrvatska, 약칭 NDH)을 세우게 된다. 이 나라는 이탈리아 왕국의 보호령이기도 하였지만 사실상 나치와 파시즘이 교합된 괴뢰국이었고 이탈리아 왕국 사보이 왕조 방계인 사보이아오스타(Duca d'Aosta) 가문의 아이모네를 국왕 토미슬라브 2세(Tomislav II, 1900~1948)로 즉위시켰다. 그러나 실권은 우스타샤와 그 지도자 파벨리치가 쥐고 있었다. 그러나 토미슬라브 2세는 명목상 크로아티아의 왕이었지만 정작 크로아티아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크로아티아 왕위 자체는 일단 수락하였으나, 본인이 크로아티아의 왕으로 즉위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고 이탈리아의 달마티아 병합의 현실성에 관한 개인적인 의문과 안전 보장의 어려움을 이유로 크로아티아로 가는 것은 거부하였다고 한다. 어차피 이름 뿐인 왕인데 굳이 파벨리치가 자행한 숙청의 피바람을 지켜봐야 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파벨리치는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실질적인 수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파벨리치는 우스타샤들과 함께 세르비아가 주도하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민족적 독립을 이루기 위하여 나치 독일과 협력하여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우스타샤는 '1/3론'이라는 정책을 세웠는데 크로아티아에 있는 세르비아계의 1/3은 살해하고 1/3은 카톨릭으로 개종시키고 1/3은 추방한다는 뜻이었다. 그 결과 세르비아인 25만 명을 국외로 추방하고 40만여 명의 세르비아인과 10만 이상의 유태인을 학살했다. 그리고 20만 명이 강제로 가톨릭으로 개종당하면서 종교의 자유가 박탈당했다. 이들은 같은 슬라브계인 세르비아를 학살하면서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절대적으로 협력했다. 이러한 나치 추종 세력 중 가장 악질적인 집단이 우크라이나의 스테판 반데라 집단과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 집단으로 꼽히고 있는 이유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대다수 크로아티아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학살과 탄압을 피해 크로아티아의 고향을 버리고 세르비아로 피난을 가기도 했지만 살던 터전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크로아티아인이나 가톨릭교도인 척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우스타샤는 세르비아인들을 총살은 물론이고 산 채로 태워 죽이기도 했다. 심지어 우스타샤 신병에게 팔 다리를 묶은 세르비아인 또는 유태인들의 배를 갈라 죽이게 하는 시험을 보게 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사진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심지어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는 잔혹 행위를 하기도 했다. 이같은 만행은 당시 발칸반도에 주둔하던 나치 독일군들조차도 그 잔혹함에 놀랐을 정도였다. 자그레브에 위치한 독일 점령군 사령부는 그들의 잔혹함을 차마 보지 못하고 오히려 히틀러에게 우스타샤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들의 행위에 독일군과 이탈리아 군이 우스타샤의 무장을 해제한 다음에야 학살의 만행이 끝났다고 전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세르비아인들은 인종청소를 당하다가 나치 독일이나 파시즘의 이탈리아가 인종 절멸에서 구해준 셈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파벨리치는 1941년 4월 30일 국적법을 개정하여 아예 비 크로아티아 시민을 무국적자로 만들어버렸다. 이 날 민족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률도 만들면서 철저하게 세르비아인들을 솎아냈다. 6월 4일에는 크로아티아의 사회, 청년, 스포츠, 문화조직, 문학 및 언론, 예술에 비 아리아인의 참가가 금지되었고 자발적 아리아인이 된 크로아티아인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1941년 6월 15일 크로아티아 독립국은 삼국 동맹 조약에 가입하였으며 6월 26일에는 방공 협정에 가입하였다. 12월 14일에 파벨리치는 미국과 영국에 선전포고를 한다. 1942년 9월에 파벨리치는 독일을 방문하여 히틀러의 허가를 얻은 후 크로아티아의 제2인자이며 원수인 슬라브코 크바텔니크(Slavko Kvatelnik)를 공식 해임한 이후 정부 재편을 실시했다. 더불어 1943년에 형식상의 국왕이었던 토미슬라브 2세가 퇴위했기 때문에 그는 명실상부한 1인 독재자가 되었다. 이후 그와 우스타샤는 아인자츠그루펜이나 SS를 상대로 어떻게 하면 총 한 번 쏘지 않고 편리하고 쉽게 살상할 수 있는지에 대해 수업을 열었고 나치 친위대원들이 이를 배워가기까지 했으며 여기에서 배운 아인자츠그루펜은 우크라이나로 건너가 스테판 반데라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Організація Украінських Націоналістів)인 일명 OUN에게 전수하기도 했다. 우스타샤는 민병대들을 이용하여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22만~50만 명의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했는데 심지어 당시 카톨릭계는 이들을 변호하기까지 했다. 반면 크로아티아인은 나치 독일이 이들을 고트족의 후예라 하며 선동했기 때문에 학살을 면할 수 있었고 도리어 대다수의 크로아티아인들이 나치에 협력하였다. 사실 역사적으로 따지면 남슬라브인들 중, 세르비아인이면 모를까 크로아티아인은 고트족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한편 홀로코스트 수용소 중에도 야세노바츠 강제수용소를 필두로 한 노동수용소까지 포함하면 크로아티아 독립국 영내에 세워져 있던 것이 30곳이나 되었다. 물론 세르비아인들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민병대 체트니치가 조직되었고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 게릴라 전을 벌이며 나치 독일군과 이탈리아군, 우스타샤 민병대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결국 민병대들은 1945년 1월, 크로아티아 독립국 군대에 흡수되었지만 이미 전세는 연합군 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의 세력은 더욱 강해졌다. 결국 무솔리니가 실각됨으로서 이탈리아군이 모든 점령지에서 철수했고 1944년 헝가리가 자국 보호를 위해 철군했다. 결국 독일군까지 물러나자 우스타샤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에게 궤멸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파벨리치는 해외로 도피하여 스페인 및 아르헨티나, 칠레 등 여러 나라로 몸을 숨겼고 해방된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린 인민재판에서 궐석으로 사형 판결이 내려졌으며 망명 중이던 1957년 아르헨티나에서 티토 정부에서 보낸 암살자의 총탄에 맞았는데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1959년 스페인에서 총상 후유증으로 병원에 누워 있다가 죽었다. 현재 크로아티아의 네오나치들이나 민족주의자들은 서로 우스타샤의 후신임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이들이 유고슬라비아에서부터의 민족적 독립을 위해 일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일 우스타샤는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 때 프라뇨 투지만 크로아티아 초대 대통령에 의해 복원된다. 학살 대상은 세르비아 인뿐만 아니라 보슈냐크 무슬림까지 대상으로 삼았다. 1995년 데이턴 협정에 따라 투지만이 서구권으로부터의 비난 여론을 감수한 끝에 우스타샤를 해산했지만 그 뿌리는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의 민족주의적 이념으로 인한 세르비아인 학살은 반 크로아티아 감정을 세르비아 인들에게 남기기 충분했고 현재도 세르비아의 체트니치와 더불어 서로를 증오하는 양대산맥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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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7
  • 한국의 어린이 날인 오늘은 러시아에서는 "정교회 부활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던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는 부활절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 이후 첫 번째 보름달이 뜨고 나서 돌아오는 일요일이다. 이 같은 규정은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가 325년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됐다. 춘분이 양력으로 3월 21일 전후이므로 이르면 3월 22일, 늦을 때는 4월 26일이 부활절이 된다. 실제로 2008년에는 부활절이 3월 23일, 2011년에는 4월 24일이었다. 불과 3년 사이에 한 달이나 차이가 난 것이다. 하지만 부활절이 5월인 경우도 있다. 정교회에서는 가톨릭, 개신교 등과 달리 4월 4일부터 5월 9일 사이에 부활절이 온다. 이처럼 카톨릭과 정교회의 부활절 날짜가 다른 것은 사용하는 역법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카톨릭과 개신교는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그레고리력을 채택했지만, 정교회는 전통과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초기 교회가 쓰던 율리우스력을 고수하고 있다. 본래 러시아의 어린이 날은 6월 1일인데 1949년 국제민주여성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제정한 '국제 어린이 날(International Children's Day)'이 근원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소련 시절에는 상당히 큰 기념일이었지만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이후 그 의미가 축소되어 거의 눈에 띄지 않다가 최근에 다시금 본격적으로 행사를 치르기 시작한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중국, 북한, 중앙아시아 등의 국가들은 모두 6월 1일을 아동절로 지정하고 있는데 아동절은 북한에서 지정한 단어로 러시아에서는 "젠 젯쩨이(День детей)"라고 불린다. 러시아에서 어린이 날이 큰 기념일로 다시 탄생한데는 원래 취지인 어린이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가혹 행위를 반대한다는 것 외에 한 가지 의미가 더 포함되어 있다. 이는 러시아의 인구 정책과 관련이 되어 있다. 러시아는 지구 육지의 1/6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국가이다. 하지만 인구수를 보면 그 영토 크기에 비해 적다고 할 수 있는데 2010년에 실시된 러시아 인구 총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의 총 인구수는 1억 4천 3백만 명이다. 인구 수로만 따지면 간신히 세계 10위권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그나마도 이 인구수는 2002년에 조사한 것에 비해 200만 여명이 줄어든 결과로 나타난다. 그 원인은 한국의 인구가 하락한 이유와 별 차이가 없다. 노년층이 죽는 것에 비해 젊은 층의 출산율이 상당히 낮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전통적으로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배려의 저변이 넓고 무상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러시아인데도 나타나는 이와 같은 출산율 저하는 러시아 국가 발전의 저해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부족한 인구수를 충당하기 위해 정책적 실시하고 있는 노동 이민은 결과적으로 여러 사회 문제를 양산하고 있어 러시아 정부의 뜻대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러시아 정부는 국민들의 의료 보조를 강화해 인구수가 줄어드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러시아의 기본 정책 목표는 인구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인구수를 유지하는 것에 있다. 러시아 정부가 감안하고 있는 국가 인구수의 마지노선은 1억 4천만 명 수준으로 그 이하로 떨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기본 정책이라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 어린이 날이 다시금 큰 행사로 재조명되고 도심에서 큰 기념행사가 열리는 것은 이와 같은 국가 상황 및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도시마다 행사 규모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6월 1일 러시아의 공식적인 여름의 첫 날이자 어린이날을 맞이해 각 도시에서 어린이날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 내부 시민 수 1위를 점유하고 있는 모스크바 도심 고리키 공원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인근 교통상황이 마비되었을 정도인데 시민들 대부분이 어린이를 대동한 가족 단위의 인파들이었다. 고리키 공원은 모스크바 시에서 지정한 공식 행사 장소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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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 5월 7일에 세르비아에 방문 예정인 시진핑 주석과 세르비아-중국 간의 경제 협력
    세르비아와 중국의 경제 협력 동기는 더욱 분명하다. 첫 번째 세르비아와 같이 소규모 개방경제에는 경제발전 속도를 높이고 미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투자 확 영향을 미치는 고속도로, 철도, 교량 등 인프라 프로젝트가 필수적이다. 두 번째 세르비아의 스메데레보(Smederevo) 같은 대형 국영기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영기업들은 수천 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지만 막대한 적자를 국가 예산으로 메워야 하는 실질적인 ‘폭탄’이나 다름 없었다. 수 년간 자국 국영기업에 투자하려는 전략적 파트너를 찾게 된 세르비아 정부는 중국 기업들의 관심을 좋아하면서 우선 세르비아 내에 자리 잡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기대했다. 그 동안 세르비아 경제는 최대 투자국이자 세르비아 상품의 최대 수입국인 EU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았었다. EU는 세르비아 수출품의 3분의 2를 수입했다. 따라서 중국 기업들과의 협력은 세르비아의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고, EU와 발칸지역에 대한 과도한 노출 위험을 다소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중국 기업을 끌어들이려 했던 것이다. 이는 EU 가입에 대한 절차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고, EU 내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사실상 가입이 중단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특히 중요한 입장이다. 그리고 세르비아가 고부가가치 투자 유치에 주력할 필요가 있어서 그렇다. 그러한 현상이 지식과 수출 기반 경제를 구축하고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세르비아가 지난 20년간 유치한 투자는 대부분 섬유나 케이블과 같은 저부가가치 산업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투자 당시 자국의 노동력과 공급자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관행으로 인해 세르비아 국내 건설사들은 중국 투자의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누리지 못함에 따라, 세르비아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고 있다. 최근 중국은 세르비아의 국영기업인 스메데레보 철강공장과 보르(Bor)에 있는 구리 생산업체를 인수했다. 양사 인수 금액은 총 3억 6,000만 달러(약 4,300억 원) 정도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다만, 양사 모두 심각한 재정난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세르비아 정부에게 있어서 민영화만이 유일한 탈출 전략이었기에 이는 중국이 원하는 조건과 맞아 떨어진 상황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세르비아의 부치치 대통령은 세르비아가 유럽에서 중국의 유일한 파트너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헸다. 중국은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에도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데 중국이 동유럽 시장을 확대함에 따라 세르비아에 대한 투자는 조금씩 줄어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치치 대통령은 다변화의 전략의 형제 국가인 러시아의 기업들을 유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편 중국은 몬테네그로(Montenegro)에서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인 바르-볼랴레(Bar-Boljare) 간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이곳 크로아티아에서도 몇몇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으며 크로아티아 남부에 있는 펠예사츠(Peljesac) 대교를 건설했다. 펠예사츠 대교는 길이 2.4㎞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일부 지역을 지나 크로아티아 본토와 최남단 두브로브니크 네레트바주 펠예사츠 반도를 연결한다. 이전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네움 지역을 지나가야 해서 두보르브니크는 크로아티아의 역외 영토로 분류됐었는데 펠예사츠 대교가 건설되면서 스플리트에서 두보르브니크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영토를 거치지 않고 바로 연결하여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어 EU 국가 중에서 지난 몇 년 동안 헝가리와 이탈리아 같은 다른 EU 회원국들도 중국 기업과의 협력에 큰 관심을 보여왔고 중국은 유럽에서 크게 투자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국 기업과의 협력 및 확대 시 몇 가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선, 중국 기업들은 EU 시장 진출을 위해 서구 금융기관들보다 종종 더 융통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장점이 될 수 있지만 원칙없는 융통성은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몬테네그로의 바르-볼랴레 고속도로 프로젝트의 경우도 국제 개발 은행들로부터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중국 수출입 은행(CHEXIM)은 이를 수용하여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 있다. 중국 파트너들은 투자에 유연할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추진과 관련된 다른 위험에 대해서도 더 유연한데 중국 파트너들은프로젝트가 공공부채 증가나 지속적으로 가능한 개발 목표 달성에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세르비아에서 스메데레보와 보르 투자는 반대로 해당 지역에 심각한 환경 파괴 문제를 낳았다. 세르비아 정부가 환경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무시한 채 중국 파트너들과 어느 정도 타협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 어떠한 뒷거래가 성사되었는지에 여전히 의문에 있다. 세르비아는 중국과 관계를 조율할 수 있는 방법이 EU 가입이라는 견해를 버리지 않고 있다. 따라서 세르비아가 EU 가입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가능한 개발 목표를 존중하고 EU의 기준을 충족하는 게 더욱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세르비아가 EU 가입을 계속 희망하는 이상 중국과 계속 긴밀한 경제 협력을 유지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일 수 있지만 중국과 관계가 불안해질 때를 고려하여 이는 하나의 보험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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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5
  • 중남미의 파나마, 내일 대선과 총선을 조망해본다.
    그 동안 파나마는 글로벌 물류를 담당하고 있는 운하가 거대한 시련을 겪고 있었다. 파나마 운하는 2023년 여름부터 일일 통과 선박을 35→31→21척 등으로 각각 줄여 왔다. 그리고 현 2024년 2월에는 다시 18척으로 축소했다. 이는 엘니뇨로 인한 가뭄으로 인해 수량이 부족해지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파나마 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 역할을 맡고 있다. 현대의 함선들은 크기가 워낙 거대해져 통과 선박 크기에 제한이 있다. 파나마 운하의 높이는 해수면보다 최대 26m로 높은 편이다. 선박들은 도크에 들어온 뒤 물을 채워 더 높은 위치의 도크로 올라가게 되고 운하 중간에 위치한 가툰 호수를 거쳐 다시 도크로 들어가 물을 빼 내려가며 계단식으로 운하를 통과하여 바다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갑문 엘리베이터에 사용되는 물은 가툰 호수에서 끌어다 쓰고 있는데 현 파나마 최악의 가뭄은 가툰 호수의 물을 말려 바닥을 드러낼 위험에 처해지고 있는 것이다. 가툰 호수의 위기는 곧 파나마 운하의 효용성의 위기와도 직결된다. 파나마 운하는 갑문식으로 만들어져서 비록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무려 20,000km 이상을 돌아가야 하는 것에서 단 하루 정도로 건너갈 수 있게 되자,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건너가는 선박들과 반대로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건너가는 선박들이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게 되었다. 결국 파나마 운하는 건설비에 들어간 비용 이상을 통행수수료로 쉽게 뽑아낼 수 있을 정도인데 파나마 국가 경제의 80% 이상을 이 운하의 통행수수료로 충당하고 있다. 파나마는 1인당 GDP가 중남미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드는 나라로 2010년대 중남미에서 도미니카 공화국, 볼리비아와 함께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인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사실상 이 운하 하나로 중남미에서 일약 잘 사는 나라로 손꼽히게 됐는데 1인당 GDP가 14,618달러로 개발도상국 수준을 넘어 중진국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파나마 운하에 문제가 생긴다면 하루아침에 최빈국으로 나락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글로벌 물동량 5%, 화물선의 약 40%가 통과하는 파나마 운하의 통과 선박 감소는 글로벌 물류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데 파나마 운하에 문제가 생긴다면 파나마 다음으로 경제에 큰 타격을 받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 통과 선박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남해와 북해가 없는 미국 입장에서 해운으로의 동, 서 무역 연결은 파나마 운하 밖에 방법이 없다. 미국 입장에서도 파나마 운하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1999년 12월 31일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 정부에 반환하면서 이를 관리할 관리비를 비롯, 상당 양의 달러를 파나마에 퍼줬다. 그렇기 때문에 파나마 운하의 위기는 미국 경제의 위기, 미국 국가 안보의 위기로도 직결된다. 자국을 방어하는 미 해군 군함들이 동서를 왕래하기 위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두 운하에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면 글로벌 해상통상로가 (무역선들이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과 남미 남단의 마젤란 해협으로 돌아가야 했던) 18세기로 퇴행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는 당사 국가인 파나마도 마찬가지고 미국도 이를 해결할 방법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다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니카라과 운하 프로젝트(Nicaragua Canal Project)이다. 사실 니카라과 운하의 건설은 20세기 초에 미국이 추진하다가 파나마 운하 건설권을 프랑스로부터 4,000만 달러에 넘겨받으면서 포기한 프로젝트였다. 이후 니카라과가 친러, 친중 국가가 되면서 2012년 9월 26일, 니카라과 정부와 중국의 홍콩 니카라과 운하 개발(HongKong Nicaragua Canal Development, 이하 HKND)은 니카라과 운하를 건설하기로 협의하고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니카라과 운하 건설업체로 선정된 HKND는 왕징(王靖) 대표가 설립한 회사로, 이 프로젝트의 총 건설비가 400억~5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를 위해 니카라과의 의회는 HKND의 개발 참여를 승인했고 이를 통해 HKND는 니카라과 운하 개통 후 100년간의 운하의 건설과 관리, 개발의 권리를 갖게 되었으며, 운하 건설과정에 필요한 보조도로, 항만, 공항, 철도 등의 건설도 허가받았다. 태평양 연안의 브리토 강에서 나카라과 호수를 거쳐 카리브 해 연안의 푼타 고르다 강까지 총 길이가 278km에 달한다. 니카라과 운하의 폭은 최소 230m에서 최대 520m이며, 수심은 27.6m로 확장 공사를 한 파나마 운하는 길이 82km, 폭은 55m, 수심은 18.3m로 니카라과 운하보다 규모가 작다. 파나마 운하는 최대 8만 t의 선박이 오갈 수 있는데 니카라과 운하는 선박의 최대 적재톤수가 최대 25만 t이나 된다. 이게 완성되기라도 하면 이미 파나마 운하와의 경쟁력에서 앞서게 되는 것이다. 이게 완공되면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니카라과 운하를 갖게 되면 향후 100년 동안 미국의 동, 서 물류와 무역의 항로까지 틀어 쥘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왕징의 금융 손실로 인해 HKND가 니카라과 프로젝트에서 손을 땠고 2018년 2월에 HKND는 홍콩 본사를 폐쇄한 채 유령 회사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곳을 중국 정부가 다시 손을 대기 위해 니카라과와 서서히 접촉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은 파나마에도 손을 뻗치고 있는데 니카라과가 안 되면 언제든지 파나마로 옮길 수 있게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일종의 보험용일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당장 내일 있을 5월 5일 파나마의 대선에 당선이 유력한 호세 라울 물리노(Jose Raul Mulino) 전 공공 안전부 장관이 친미성향을 갖고 있지만 친중성향도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이다. 파나마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도 가장 먼저 참여했던 국가 중에 하나이고 물리노도 중국과의 관계와 미국과의 관계를 두고 중립적인 입장을 받아들이되,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중단 없이 계속 실행하겠다고 했다. 전임 대통령이었던 마르티넬리는 부패 혐의로 미국 입국이 금지된 반면, 물리노는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파나마 대선이 총선과 함께 치뤄지는 이유는 전 대통령인 리카르도 마르티넬리(Ricardo Martinelli)가 최근 공공 자금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유죄 판결이면서 대통령으로써의 자격이 박탈당했다. 따라서 8명의 대통령 후보자가 나타나 5월 5일 선거를 치르게 된다. 파나마 시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피치 레이팅스(Fitch Ratings)가 최근 투자 등급에서 파나마의 신용 등급을 강등시킨 가운데 파나마의 경제적 안정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파나마 운하 문제의 해결, 그로 인한 최근 떨어진 경제를 회복하는 것이다. 마틴 토리호스(2004~2009) 전 대통령과 2019년 선거에서 2위로 머무른 로물로 루(Rómulo Roux)는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강조하면서 경제 안정을 회복하겠다는 공약을 바탕으로 유세를 벌였고 리카르도 롬바나(Ricardo Lombana)는 노동자들, 특히 구리 광산 시위 당시 그들의 지지를 받으면 철저한 좌파 성향인 인물로 우파의 부패를 척결하자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마르티넬리의 후임자로 지명된 호세 라울 물리노(José Raúl Mulino)의 공약은 다소 모호한 상태로 남아 있지만,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그는 파나마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물리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과 중국 모두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다. 미국은 반도체와 같은 산업 분야의 협력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파나마에서 외교적 입지를 강화했고 중국은 파나마 인프라 개선에 대한 투자를 강화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미국보다는 중국에 쏠려 있는 경향이 다소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인 파나마 운하의 담수를 해결하는 문제도 남아있다. 내일 그들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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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va Topos
    2024-05-05
  •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25년 전 코소보 전쟁 당시 미국과 나토가 폭격한 중국 대사관 터를 다녀오다.
    나는 오늘 1999년 5월 7일 코소보 전쟁 당시 미국과 나토가 폭격했던 베오그라드 중국 대사관 현지를 다녀왔다. 폭격 이후, 25년이 지났지만 그 때의 잔상은 사라지고 대사관 터에는 비석 두 개만이 다수의 꽃다발들과 함께 남아 있다. 주변의 있는 건물둘은 이곳 노비 베오그라드(Novi Beograd) 부지들을 재단장할 때 갈아 엎어져 새 건물들로 도색되어 있다. 신도심지라 불리는 이곳 노비 베오그라드는 사바 강 건너 구 베오그라드 시가지를 마주 보고 있는 신도시형 계획 부지다. 노비 베오그라드는 역사적으로 오래된 구 베오그라드에 대한 개발보다 새로운 형태의 신도시 개발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후, 요시프 티토는 1945년 11월 11일 총선거를 통해 왕정 폐지를 선언하고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이루었으며 '유고슬라비아 연방 인민공화국'을 선언하였다. 그러면서 이곳에 대한 개발을 강화했으며 이곳에서 공산당 대회당을 짓고 티토 자신도 이곳 공관에서 근무했다. 티토가 미, 소 양대 강국 사이에서 중립 노선을 지키며 나름 독자적인 제3 세계 국가의 초석을 이루려 했던 곳 또한 이곳 노비 베오그라드였으며 유고의 모든 관공서, 공무원들에게 할당된 주거지, 공산진영이든, 자유진영이든 할 것 없이 각 국 대사관 또한 이곳 노비 베오그라드에 지어졌다. 즉, 세르비아어로 Novi는 "새로운"을 뜻한다. 말 그대로 신(新) 베오그라드였다. 중국은 1949년 공산화 된 이후, 유고슬라비아와 수교하면서 이곳 노비 베오그라드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노비 베오그라드에 개설된 중국 대사관은 두 번째로 지어졌으며 첫 대사관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이었다. 유고슬라비아는 서방과 수교 및 교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과도 수교한 뒤에는 교류, 협력을 자주 했다. 티토의 사후, 1980년대부터 유고슬라비아는 분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에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유고 내 공화국들이 독립국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유고슬라비아와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등 사상 유래 없는 의리를 지켰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는 몰라도 세르비아만큼은 중국을 매우 각별하게 생각한다. 그려면서 코소보 전쟁 와중, 나토군이 군사 작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베오그라드를 폭격했는데 그만 중국 대사관마저 폭격해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 대사관 직원 3명이 죽고 세르비아 현지인도 14명이 부상을 입었다. 어떤 기사나 기록에서는 이날 죽은 중국인이 대사관 직원인지, 언론인인지 상이하게 나타나 정확한 신분은 햇갈린다. 다만 중국 측에서는 이들을 언론인, 기자라고 했다. 이날 폭격으로 인해 대사관 건물 또한 파괴되었다. 그리고 주변 건물들도 상당수 초토화 되었다. 중국 내에서 극렬한 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이를 '비극적인 실수'라며 유감을 표시했고, 당시 미국 정부는 중국 대사관 바로 옆에 위치한 유고슬라비아 연방 소속의 조달 이사회를 목표로 진행한 폭격 임무였다고 했다. CIA 국장 조지 테넷은 폭격 위치 입력을 잘못했다고 청문회에서 시인했다. 이후, 1999년 8월, 미국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하기로 합의를 했고 대사관 복구에 대한 보상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2000년 미중관계법 제정으로 인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승인하면서 미중관계를 증진시키려고 했다. 그러면서 상황은 중국이 일방적인 피해자로 비춰지면서 많은 동정표를 받았다. 홍콩 시사잡지 '첸사오(前哨)' 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미발간 회고록을 입수하여 폭로했다. 이 회고록에 의하면 당시 중국 대사관 폭격과 관련한 비화가 소개되어 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이 나토 공습으로 인해 국방, 정보, 경찰본부 등이 모두 파괴되자 중국에 세르비아 정보요원들을 위한 은신처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도 매우 혼란한 상황에 옐친 대통령에서 푸틴 대통령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코소보 전쟁에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장쩌민 주석은 당시 세르비아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대사관 지하에 당시 유고슬라비아 정보요원들의 은신처를 제공했다. 이러한 행위는 중국이 대사관으로 넘어 들어오는 사람들을 자국의 주권을 걸고 보호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난민이라면 모르겠지만 사전에 이미 밀로세비치와 협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세르비아 측과 공조하고 있었던 부분이라, 대사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요격했다면 중국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대사관이라고 하는 곳은 이미 그 나라의 영역이다. 미국이 이를 대사관을 공격했다면 상대가 누구든 대사관에 발을 들여 놓은 이상, 그 나라의 주권에 해당되기 때문에 명백히 국제법 위반이다. 당시 중국은 티베트-신장위구르의 분리 문제로 인해 미국과 갈등이 첨예했던 상황이었고 이런 미국에 대응하기 위한 외교적 일환으로 미국과 나토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정보 요원들을 숨겨 주었던 것이다. 당초 나토군의 공습이 확대되자 중국 외교부는 장 쩌민에게 베오그라드에서 직원들을 철수시킬 것을 건의했다. 이미 러시아 대사관도 철수한 상태였고 중국이 남아 있을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쩌민은 유고슬라비아와의 외교 관계, 개인적으로 밀로셰비치와의 걱별한 우정과 의리 등을 생각했었던듯 싶다. 장쩌민은 대사관 직원들에게 남아 있으라 지시했다. 나토가 설마 국제법을 어기고 대사관을 폭격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상 외로 중국 대사관이 폭격을 당한 것이다. 폭격 직후 당시 주 세르비아 중국 대사는 부서진 대사관 건물 앞에 서서 "중화인민공화국이 공격당했다"며 이는 국제법상 위법이라 부르짖었다. 그리고 이는 고스란히 중국 언론의 전파를 탔다. 북경대학에서는 세르비아 주재 중국 대사관의 폭격 사실이 알려진 이후 시민과 대학생 1만여 명이 미국 대사관 앞에서 밤늦도록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들은 하늘이 클린턴을 저주할 것이며 미국은 살인자라고 외치며 반미 시위를 계속했다. 중국 정부가 이 사건으로 인해 크게 분노하자 앞서 언급한대로 미국은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중국 대사관 내부에 숨어 있던 세르비아 요원들이 원격 통신 등의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증거를 비공식적으로 제시했다. 여기에서 이미 미국은 유고슬라비아 정보요원들이 중국 대사관에 들어갔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미국은 이와 같은 정보를 캐치하고 오폭을 가장한 조준이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당시에는 지금 같은 인터넷이라던지, 개인 영상이라던지 이런 것들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일단 질러 놓고 오폭이라 주장하면서 조사 위원들을 나토 위원들로 구성해 꾸리고 현장을 조작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이는 명백한 조준이다. 당시 조달 이사회는 모든 인원들이 철수한 상황이었고 나토 공습 당시에 이사회 건물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후일, 기밀문서에 의하면 미국은 당시 조달 이사회 건물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어느 누가 조달 이사회 건물을 표적으로 했다는 얘기를 믿을 수 있을까? 중국 대사관 내부에 숨어 있던 세르비아 요원들이 원격 통신 등의 스파이 활동을 했다고 증거를 내놓은 것을 보면 이는 이미 조준했음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중국 대사관에 대한 폭격은 올바른 결정이었을까? 절차상 미국은 중국에게 이같은 유고슬라비아 요원들의 스파이 행위의 증거를 들이밀고 이들을 내놓으라 협상을 할 수도 있었고 중국 정부에게 강한 경고를 하며 이들은 전범이니 넘겨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미국답게 중국 대사관을 표적으로 삼고 대놓고 폭격하는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이날 포격한 이들에 대한 국제 사법 처리는 어떻게 됐을까? 당연히 아무도 이같은 전쟁 범죄에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무마되었다. 국제적인 부분, 국제법적인 것으로 따져 보자면 이는 엄연한 국제법 위반에 국제형사재판소에 마땅히 재소되어야 하는 전쟁범죄다. 그런데 당시 중국 대사관 폭격으로 지하실에 있던 세르비아 정보요원 10여명이 죽었는데도 중국은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이 때 보도로는 세르비아인 14명이 부상이라 했지만 그 중 10명이 정보요원이고 나머지 4명은 대사관 직원인 세르비아 인일 것이다. 아마 중국도 이를 암묵적으로 무마하기 위해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제 관계, 국제 사회는 이처럼 냉혹한 것이다. 국익을 위해, 더 큰 이득을 얻기 위해 인간적 양심과 선악, 그리고 도덕성은 깔끔히 무시되고 때에 따라서 묻어둬야 할 진실이라는 것 또한 존재한다. 한국인들은 이런 냉혹한 현실을 잘 모른다. 물론 이 사건은 미국이 오폭을 사과함으로써 중국의 체면을 살려주고 중국은 반미 시위가 번지는 것을 막는 식으로 마무리됐다. 미국 또한 이 사건이 더욱 번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한 수 접은 이유는 뻔하다. 코소보 전쟁에 이어 중동 상황도 슬슬 좋지 않아지고 그러면서 중국과의 마찰은 미국 입장에서도 부담되는 일이었다. 중국 입장에서도 당시만 해도 미국과 직접적으로 충돌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던 때였다. 결국 미국과 중국이 막후에서 외교적으로 타협했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 내가 내일 세르비아에서 나간 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세르비아를 방문한다. 아마 5월 7~8일 미국과 나토가 중국 대사관을 폭격했던 그 날짜에 맞출 것이다. 내가 왔던 이곳을 일주일 뒤, 시진핑이 와서 참배하고 부치치 대통령과 대담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 주 주제는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핫한 주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에 난 시진핑보다 일주일 앞서 이곳을 먼저 방문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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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러시아 모스크바 크로쿠스 홀 테러 사건의 테러범들이 가게 될 흑돌고래 교도소
    흑돌고래 교도소는 러시아의 최고등급 교도소로 카자흐스탄 국경과 가까운 지역인 오렌부르크 주에 위치하고 있다. 정식 명칭은 '연방 정부 기관 - 오렌부르크 주 러시아 연방교정청 관할 제 6 교도소'(Исправительная колония № 6)이며, 흑돌고래 교도소라는 이름은 교도소에 있는 검은 돌고래 조형물에서 따온 별칭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도 악명 높은 교도소는 많고, 미국의 ADX 플로렌스 교도소 같은 슈퍼맥스급 교도소가 유명하지만, 흑돌고래 교도소는 그것과 비교가 불가능한 악명 높은 시설이다. 그 특성을 보면 사실상 이름만 교도소고 실제론 합법적 강제 수용소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가석방 금지 무기수'들이 수용되는 곳이고 교화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기에 사형제가 있는 나라였으면 진작 죽었을 인간 쓰레기 말종들과 국외 살인범들만 고르고 골라서 평생동안 종신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최초로 이 교도소가 세워진 것은 1745년으로 이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강제 노역소였으나 코사크의 푸가초프 농민 반란이 진압된 이후인 1773년부터 교도소로 변경되었으며, 2000년 11월부터 지금의 악명 높은 교도소가 되었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흑돌고래 교도소는 중범죄자 전문 교도소이며 다른 중범죄자 전문 교도소들과 차별되는 이 교도소만의 특징이 있다. 이는 가석방 불허 무기징역을 받은 흉악한 범죄자만 수감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교도소가 전반적으로 인권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교화 자체를 포기하는 정도는 아닌데, 여기만큼은 애초부터 교도소 운영 기조에 교화라는 개념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죽을 때까지 자유를 박탈하기 위한 곳이기 때문에 갱생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여기로 보내지지 않는다. 실제 재심으로 감형되어 더 나은 교도소로 이감된 재소자가 5명 정도 존재한다. 그러나 물론 재심 조건이 쉽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의 죄를 전부 뒤집어쓴 정말 억울한 사안이거나 실제로는 종범인데 주범의 죄까지 뒤집어 쓴 수준의 공범 정도가 아니라면 재심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재소자들의 악행은 극악함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수준이다. 단순 강간, 살인 따위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평균 5명 이상의 살인 전과, 그것도 유괴살인 혹은 아동 성폭행 정도 되어야 러시아에서도 보내는 곳이다. 즉, 김근식이나 조두순 같은 자들이 오는 곳이라는 것이다. 혹은 식인을 하거나, 테러 조직이나 마피아 등의 두목인 경우도 체포 당하면 이곳으로 끌려오기도 한다. 실제로 일가족 5명을 몰살하고 시신까지 불태운 흉악범 니콜라이 아스탄코프와 같은 극악 살인마가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러시아 체스판 연쇄살인사건의 살인마 알렉산드르 피추시킨 역시 이곳에 갇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러시아 정부가 밝히기로는 여기가 아니라 그나마 흑돌고래 교도소보다 처우가 더 나은 흰올빼미 교도소에 수감 중이라고 한다. 현재도 사형을 실시하는 미국, 중국, 일본과는 다르게 러시아가 한국과 더불어 사형 유예국으로 분류되는 이유로 꼽히기도 한다. 이 교도소에서는 교도관이 당당하게 "수감자들을 사람 취급 안 한다."고 말한다. 즉, 이 감옥은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을 증오하며, 이에 대해 어떠한 제재도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도관들도 사람인지라 재소자들을 상대로 모질게 행동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그런 거 없다. 물론 이런 반응에는 납득할 만한 근거가 있는 것이,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그냥 살인 정도로 잡혀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흑돌고래 교도소와 같은 높은 보안등급에 속하는 연방 교정청 교도소에서는 수감자를 호송하는 방식은 뒤로 수갑을 채운 후 이동시 허리를 90도로 굽혀 고개가 바닥을 보게 해서 이동하는데, 이는 교도소의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지만 수감자가 쉽게 반항하지 못하게 작은 것부터 통제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좀 심하다 싶은 수감자는 눈가리개까지 씌우게 하고, 수감자를 이동시킬 때에는 항상 수감자 1인당 6명의 교도관들이 교도견과 같이 와서 데리고 다닌다. 이렇게까지 삼엄하게 호송하는 이유는 감방이 기본적으로 2인 1실이기 때문이다. 즉, 초극악 범죄자가 둘이나 있으므로 언제든지 감방에서 사건이 터질 수 있으며 수감자 한 명을 이동시킬 때는 나머지 한 명도 잘 감시해야 한다. 또한 감시하기 위해 밤에도 불을 켜 놓는데, 죄수는 자살 방지 명목으로 이불을 머리까지 덮을 수도 없게 되어있다. 또한, 취침 시간 외의 시간에 침대에 누우면 바로 교도관들에게 구타 당한다. 추운 겨울철 한파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난방 기구는 없고 담요도 한 사람 당 한 장씩만 제공된다고 한다. 더운 여름철에도 선풍기 하나 없는 곳에서 폭염 무더위를 버텨야 한다. 다른 교도소들과 달리 이곳의 교도관들은 실탄이 장전된 총기로 무장한다. 흑돌고래 교도소에서는 2선이긴 해도 군용 화기인 AKM 자동소총과 마카로프 권총 등으로 무장하여 극악무도한 수감자들 사이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매일 하루에 15분 간 죄수들을 간이 감방에 옮기고, 그 사이에 교도관들은 그 방을 샅샅이 수색하는 작업을 한다. 만약 죄수들이 밀반입품을 감방 내에 가지고 왔을 경우 그냥 놔두면 탈옥, 자해, 폭행, 살인 등을 자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24시간 CCTV로 감시하고 있으며 목을 매거나 손목을 그으면 어떻게든 와서 살려둔다. 다만 흑돌고래 교도소 소장이 "자살하고 싶다면 교도관에게 심하게 대들면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총으로 바로 쏴서 죽이는 게 아닌, 본보기로 생명에 지장이 없는 부분을 구타하거나 총으로 쏴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거나 최악의 경우 죽지도 못하고 고통만 받는 상태로 살게 된다. 그리고 이 수색을 매일 한다. 식사 역시 물과 빵과 수프밖에 없다. 독방에 갇힌 수용자들에겐 수프밖에 안 주며, 이것마저도 식당의 음식물 쓰레기 배출용이나 똥을 퍼담을 때 쓸 것 같이 생긴 통에 담아 가져온 뒤, 개 밥그릇처럼 생긴 그릇에 퍼담아서는 쓰레받기가 달린 장대로 감방 안에 밀어 넣어서 식사를 준다. 맛도 지독하게 없어서 굶어 죽지 않고자 억지로 먹어야 할 수준이라고 한다. 죄수들의 생명 유지만이 목적이기 때문에 맛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교도소에 공동 묘지가 딸려 있고 수감자가 사망하면 장례식도 치르지 않고 시신은 교도소 내 화장장에서 화장되어 교도소 공동 묘지에 묻힌다. 그러니까 죽어서도 이 교도소를 나갈 수 없다는 영원한 무기징역을 받는 곳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초강력범들은 여기만큼은 안 들어가려고 있는 없는 돈을 죄다 퍼부어가며 특급 변호사들을 고용하다가 파산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김근식, 조두순 같은 아동 성범죄자들은 러시아 같음 흑돌고래 교도소에서 차라리 죽는게 나은 삶을 살텐데 한국은 참 좋은 나라다. 그런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감옥에서 나와 사회로 돌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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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 퉁구스어, 민족, 퉁구스족에 대한 이야기
    동호(東胡)는 동쪽의 호족(胡族)으로 유목민족이다. 당시 한(漢)나라나 진(秦)나라 등은 호(胡)와 이(夷)의 개념을 아마도 동일한 족속으로 보았을 듯 하다. 이는 후대에 적(狄), 융(戎), 이(夷), 호(胡)를 같은 오랑캐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결국, 동, 서, 남, 북 방위에 따라서 오랑캐를 뜻하는 한자 표기만이 달라졌을 뿐,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족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민족들은 서로간의 치열한 전쟁이 있었을지라도 같은 계통의 민족이 대를 이어 자리를 잡았으며 북방도 주인이 여러차례 바뀌었지만 흉노-선비-돌궐-거란처럼 이름만 바뀌었을 뿐 그 민족이 그 민족이었다. 흉노의 뒤를 이어 몽골고원이나 만주 지역에 나타난 민족들 대부분 "흉노의 별종이다." 라는 글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물론 글귀처럼 흉노와는 다른 종자지만 그럼에도 흉노가 언급되었다는 것은 이들과 흉노의 관계가 깊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북방은 달라진게 없었다. 어느 한 민족이 쇠퇴하면 또 다른 민족 중 그 한 민족에 복속되었던 세력이 성장하여 그 자리를 차고 앉았을 뿐이다. 이와 같은 상태는 청(淸)나라 때까지 계속되었다. 동호는 흉노에게 패망하였지만 동쪽으로 패주하여 두 민족으로 갈라진다. 이러한 동호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선비 6부 중 하나인 우문부(宇文部)는 시라무렌이라 부르는 서랍목륜하(西拉木倫河)에 정착했다. 모용선비의 모용황이 우문선비를 공격하자 우문선비는 패배하여 송막(松漠) 사이 땅으로 도망가서 정착하였고 이들이 통합되어 거란이 되었다. 거란은 요나라를 세웠고 요나라누 금나라 멸망하자 몽골고원에 자리 잡고 케레이트(Kereit)의 부족을 흡수했다. 케레이트(Kereyid~Geryid)라는 이름은 케레이(Kereyi~Gereyi)의 복수형으로 라시드 앗 딘의『집사(集史)』에 따르면,「케레이」의 의미는 그 선조의 얼굴 색이 검었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어, "까마귀"의 몽골어인 케리예(keriy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케레이트의 옹칸은 테무친을 맞아들여 사위로 삼았고 이후 케레이트는 몽골제국에 멸망한다. 시간이 한참 흐른뒤 동호는 몽골제국, 원(元)나라가 되어 중국을 통치했고 이후 청나라 때는 만주족에게 정복되었다. 그러나 몽골 문자를 변형하여 만주 문자를 만들었고 몽문과 만문의 형태가 같고 발음도 유사점을 보이고 있음에 따라 이를 두고 언어학자들이 동북아시아의 언어형태를 두 가지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알타이’라는 명칭은 이들 언어를 사용하던 민족이 분열하기 전의 원주지가 알타이산맥 부근이었다는 구스타프 람스테드와 포페의 가설에서 유래된 것이다. 알타이어계는 크게 투르크 · 몽골 · 퉁구스의 세 어군(語群)으로 나뉘어진다. 람스테드는 알타이 제민족의 원주지를 흥안령(興安嶺) 부근으로 추정하고 약 4, 000년 전 퉁구스인과 한국인의 선조는 동쪽, 몽고인과 투르크인은 그 서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포페는 알타이 공통 조어에서 투르크어와 몽골어 · 만주, 퉁구스어가 분열하고, 후자에서 다시 몽골어와 만주, 퉁구스어가 분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한국어는 알타이 조어에서 제일 먼저 직접 분열한 것으로 추정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퉁구스는 몽골어와 만주어로 한자인 동호(東胡)를 발음한 말이다. 동북아시아 역사에 있어 동호=퉁구스의 역사가 지대하다는 것을 서양 언어학자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알타이 범주에 집어 넣음으로써 중앙아시아, 몽골, 동북아시아까지 한번에 묶어 규정했다. 그러나 람스테드의 주장대로 알타이 민족의 원주지가 흥안령 부근이라면 서쪽으로 뻗어나간 알타이어로 명칭을 붙이면 안되는 것이다. 기원지가 동북아시아 흥안령인데 중앙아시아, 몽골, 동북아시아 언어는 왜 우랄 산맥과 중앙아시아의 알타이어인가? 이들 북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언어의 기원지가 동북아시아로 인정했던 람스테드와 포페는 그 언어의 명칭도 동북아시아 이름이자 가장 고대, 중세, 근대까지 번성했던 동호어, 혹은 퉁구스어를 제민족 언어의 중심으로 명명했어야 했다. 퉁구스어에서 알타이어, 투르크어, 몽골어 세 어군으로 나뉘고 그 외의 부족들의 언어들을 나열해야 했다. 모든 역사의 중심이 유라시아로 바뀌면 다음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 있다. 그것은 아시아와 유럽 각국이 혈연적 종족 체계, 언어 체계에 대한 재연구를 해서 편향적이지 않은 채계를 다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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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1

포토뉴스 검색결과

  • 현재 터키 경제의 최대 악재, 제재를 걸고 있는 미국과 집단서방
    이와 같은 현재 터키 경제의 최대 악재는 집단 서방과 미국으로 이들이 물러나기 전에는 경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대로 위기 사태가 지속된다면 터키에 대규모로 원조하는 중국과 러시아에도 위기가 될 확률이 높다. 현재 급격한 리라화 폭락의 영향으로인해 그 동안 안정적이었던 식료품이나 공업 제품 등 모든 영역의 물가가 흔들리고 있다. 터키가 북한과 같이 자력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나라가 아니기에 이와 같이 갑자기 환율이 흔들리게 되면 외국 소비재와 관련이 없는 물건이라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지하자원, 에너지와 부품소재, 기계류는 수입에 의존하고 저렴한 노동력으로 이를 가공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수출하는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터키의 최저 임금 노동자 비율이 전체 임금 근로자의 40%가 된다. 한국처럼 연차가 쌓이면서 경력이 쌓인다고 돈을 더 받는 것이 아니라, 30~40대가 되어도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이 많다. 2010년대 중반부터 경제력이 추락하기 시작한 이후로 기업들이 임금 인상에 대해 굉장히 인색해졌기 때문에 정부에서 최저 임금 인상을 통해 강제적으로 임금을 끌어올리는 것이고, 그만큼 최저 임금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와 같이 임금 인상에 인색한 것은 터키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공무원들 최저임금이 월 2,825리라 (한화 약 250,500원)였던 임금이 동결되었고 2021년에는 월 4,300리라 (한화 약 381,000원) 였던 초중등학교 교사 초봉이 2022년 1월에 국회에서 이미 동결되었다. 최저임금보다 높다는 이유로 인해 결국 보수적인 다자녀를 두고 있는 대가족 제도의 터키 가정에서는 집세와 각종 공과금을 제외하고 남는 돈이 1,000리라 (한화 약 88,700원)에 불과하다. 결국 한 달동안 1,000리라 (한화 약 88,700원)를 가지고 가족들을 모두 이끌어가야 하는데, 미국의 빈민층과 같이 대형마트에서 하루 종일 페스트푸드를 먹으며 연명해도 생활비가 부족하여 친척들에게 손을 벌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이 이곳 터키의 실정이다. 샌드위치 하나 사 먹는 것에 하루 일당의 대부분을 써야 하고, 1년 전에 구입했던 아이폰을 구매할 때와 똑같은 가격으로 중고로 내다팔 수 있을 정도로 물가가 완전히 폭등했다. 이제 터키인들은 최저 임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220달러나 하는 토플 시험조차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가계 소비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더 명백한데, 터키 가계의 소비에서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2%에 달한다. 이것은 한국의 저소득층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10% 내외에 불과한 정도이다. 식품의 경우 소득이 얼마든 소비하는 양은 대충 비슷하기 때문에 전체 소비에서 식품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소득이 낮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다른 재화나 서비스 부분, 특히 문화적인 즐길거리 등의 요소와 자동차 같은 교통수단을 구입할 수 없기 때문에 생활수준이 그만큼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터키 정부는 2020년 최저 임금을 15% 인상한다고 밝혔다. 당시 제흐라 줌뤼트 셀축 가족노동사회부 장관이 말하길 일반 노동자들 최저임금을 월 2,324리라 (약 20만원)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까지의 최저월급인 2,021리라 (약 17만 9천원)보다 15% 오른 금액인 것이다. 셀축 장관은 연말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약 12%로 예상된다며 물가상승률보다 임금을 3% 더 인상함으로써 근로자들이 물가 상승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본래 터키의 최저임금은 경영자와 노동자, 정부를 대표하는 15인의 위원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있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터키노동조합연맹은 지난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2021년 최저임금으로 월 2,578리라(약 22만 8천원)를 요구했다. 볼룸버그 통신에 의하면 터키의 근로자 3,300만명 가운데 약 3분의 1인 1,000만 명 가량이 최저임금을 받거나 그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터키 노동 당국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현재 터키 노동자 중 460만 명이 실업 상태이며, 청년 실업률은 26.1%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2022년 현재 터키의 최저임금은 2021년 기준으로 50% 인상된 4,250리라 (한화 약 377,000원)이다. 여기에 터키 정부에서 2022년부터 최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세와 인지세를 면제해 주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임금 상승률은 80~90%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터키에서도 급격한 임금의 상승으로 인해 대량 해고가 이루어지고,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 임금 인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동결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결국 OECD 최하위권으로 쳐져 있는 고용률은 더욱 낮아지고 최저임금 노동자 비율만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만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터키는 억만 장자라 불리는 10억 달러 이상 재산 소유자가 43명이나 존재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는 세계 7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국가 경제 규모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그만큼 부의 불평등이 심하며 빈부격차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2019년 이후로는 꾸준히 물가가 상승하여 임금 상승률보다 물가 상승률이 더 높고 현재는 사상 최악의 사태에 직면해 있다. 시장 경제는 이미 무너진지 오래이고 실물 경기는 파탄나기 일보직전이며 터키 정부가 이를 강제로 어렵게 고비를 넘기며 버티고 있는 형태이다. 터키에서 가장 많이 먹는 오이, 토마토, 양파, 감자 등 야채들은 정부가 가격을 관리하고 있으나 이 또한 가파르게 가격이 상승하고 있고 유제품과 육류, 생필품은 가격 상승이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2021년 중반까지만 해도 터키 정부가 사람들이 모이는 식당과 카페들에게 무기한 영업정지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영업이 가능한 식당들은 손님은 받지 못하고 오직 배달만 가능한 시스템으로 돌렸다. 그러나 배달로는 경제적인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아예 문을 닫거나 영업을 중지했고 가게를 내놓는 사태도 발생했었다. 다만 이에 따른 정부의 보상은 요원한 상태에 있으며 현재 영업을 다시 평소와 같이 재기하여 위드 코로나로 가고 있음에도 그 충격의 잔상은 지금도 터키의 서민경제를 괴롭히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수입이 감소했으며 수출은 무려 80%가 감소했다. 수입과 수출의 감소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터키 경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2024년 외채만기가 1,720억 달러이지만 코로나 사태와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인해 경제적으로 극심한 타격을 입었고 외환보유고도 OECD국가들 중 가장 적기 때문에 사실상 터키의 선택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거나 디폴트를 선언하는 것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다만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이 IMF에 갈일이 없을 것이라 발언하면서 사실상 디폴트를 선언할 것으로 보여지는데 만약 디폴트를 선언하게 되면 베네수엘라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터키 경제는 2024년 상반기인 현재가 최대 고비로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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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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