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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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1918년 캔자스 캠프 펀스턴(현재 포트 라일리) 근처 응급 병원의 인플루엔자 피해자들. 사진출처 : AP통신, 미국 국립 보건 박물관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을 두고 보면 스페인에서 시작하여 창궐한 독감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스페인에서 생성된 독감이 아니다. 스페인 독감이라 붙여진 이유는 당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상태에서 많은 관련 국가들이 각 정부의 보도검열로 인해 이 독감을 다루지 않았었다.

 

그러나 스페인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중립국 상태였기 때문에 검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독감에 대해 집중 보도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그로 인해 다른 나라 국민들은 스페인 언론을 통해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했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스페인 독감이라 명명된 것이다. 

 

당시에 대부분 스페인 의회와 스페인 국왕이었던 알폰소 13세(Alfonso XIII, 1886~1941)까지 감염되었을 정도로 스페인 내에서도 많이 퍼지긴 했지만,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과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1863~1945), 독일 황제였던 빌헬름 2세(Wilhelm II, 1859~1941)도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스페인에서만 크게 유행한 것이 아니고 단지 언론 통제가 낮은 스페인이기에 소식이 더 빠르게 전달되었던 것 뿐이다.


결국 스페인은 독감의 발원지가 아니고 오히려 해당 질병에 대한 정보를 세계 각국에 빠르게 전달하는데 있어 큰 공이 있는 국가이다. 그런데 오히려 질병 이름 자체가 스페인 독감이라 불리게 된 것에서 많은 오해를 낳고 있어 명칭에 대한 수정이 요구되고 있다.

 

발원지에 대해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실제 발원지는 미국이나 영국, 중국 중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스페인에서는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 대신 1918년 독감 범유행(Pandemia de gripe de 1918)이나 미국 독감, 시카고 독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미국에서 1918년 초, 최초로 확진자가 나왔으나 일부 연구에 의하면 질병의 특성이 맞지 않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1916년과 1917년 영국 군대에서  유사한 확진 사례가 보고 되었고, 1917년에는 중국에서 보다 큰 규모의 유사한 감염 사례들이 잇달아 보고되었다. 

 

이와 같이 질병의 기원에 있어서 여러 이견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으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병사들이 귀향하기 위해 모여있던 캠프에서 발병하였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3일 열병"이라 하였는데 이름처럼 짧은 증상기간 이후 단순한 감기 증상을 가지고 귀향한 병사들이 고향에 돌아가 각지에 전파함에 따라 유례없이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최초 확진 기록에 의한 보고는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가 최초로 나타났으며 3월 8일 캔자스 퍽스톤 기지와 3월 11일 미군 각 부대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래서 독감의 출처가 스페인이 아닌, 미국으로 보여지는데 이 또한 미국에서 최초로 보고되었기 때문에 그 기원을 따지자면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발원해 미국으로 건너오거나 아니면 중국에서 발원해 아메리카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에 전파되었을 가능성도 재기하고 있다. 


킬 군항에서의 반란으로 인해 독일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으로 점철되어지는 시점에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스페인 독감에 걸렸으나 빠르게 완치되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와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캘리그램(Calligram)의 작가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 미국 사업가이자 전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할아버지인 프레더릭 트럼프(Frederick Trump, 1869~1918)는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한 대표적인 유명인이 되었다.

 

스페인 독감이 매우 무서운 부분은 고대로부터 이어온 유행성 질환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과거에는 질병이 냄새로 전파된다거나 피의 균형을 맞추면 병이 완쾌된다는 등의 현대로 보면 비상식적인 생각을 했었다. 방역이나 위생에 대한 개선 의식은 아주 고전적인 단계에 불과했다. 위생에 대한 의학적이고 체계적인 인식은 19세기에 와서야 시작되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지역은 여전히 고전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병은 걷잡을 수 없이 전파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점은 20세기 초, 이미 세균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있었다. 공중보건에 대한 체제가 어느 정도 되어 있었던 근대화된 유럽과 미주를 비롯한 서구인들이다. 

 

상수도, 하수도와 같은 공중위생시설은 물론이고 비말 전파를 막으려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점이나 손을 씻어야 감염률이 떨어진다는 정보 등도 이 당시에 이미 충분히 널리 퍼진 상식이었다. 이 때도 마스크 착용은 환자나 의사만이 하는 것이라 인식했기 때문에 대다수가 쓰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공중보건의 체계가 갖추어 있었어도 피해 규모가 어마어마했던 이유다. 당시 세계 인구는 약 17억 명 정도였다. 여기에 감염자는 약 5억 명 정도였고 사망자는 최소 1,700만에서 최대 5,000만에 달했다. 이는 총 감염자의 3~9%, 전체 인구의 1~3%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자 수가 제대로 추산되지 않은 이유는 진단할 겨를도 없이 야전에서 사망한 군인들과 당뇨, 고혈압 등의 합병증으로 사망한 사망자를 포함하지 않기도 했다. 이 독감 자체보다 당뇨, 고혈압 등의 기저질환으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진 신체에 합병증이 생겨 세균성 폐렴이 발병해 폐에 물이 차 숨을 제대로 못 쉬어 침대에 누운 채 그대로 사망한 사람이 대다수였다.


게다가 행정력의 미비, 세계대전 전후에 안정되지 못한 정치적 혼란 등의 이유도 사망자 수를 제대로 집계하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또 당시 제대로 된 통계가 없어 사망자를 추정할 수도 없는 인도나 중국, 러시아와 같은 나라도 존재했다. 그래서 정확히 얼마나 사망했는지는 현재까지도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인 900만 명의 2~5배 정도의 사망자로 추정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연구자들은 스페인 독감의 유행이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앞당겼다고 말하기도 한다. 태평양 한 가운데 섬인 사모아에는 인구의 90%가 감염되어 30%가 사망했다. 또 알래스카 이누이트 마을 몇 개도 몰살당하는 운명을 겪었다. 그리고 산마리노는 이 질병 하나로 인해 국가가 멸망할 위기까지 갔었으을 정도로 심각했다. 

 

일제 시대의 한반도에서도 세계적인 대유행에서 비켜가지 못했다. 당시에는 이 독감을 "무오년 독감"이라 불렸으며 1918년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대유행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의하면 당시 조선인 1,678만 3,510명 중 절반에 가까운 742만2,113명(44%)이 감염되어 13만 9,128명이 사망했다고 보고되었다. 

 

이는 한반도의 전체 감염자 1.87%, 전체인구의 0.83%에 해당된다. 일제 시대 당시 조선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군이 조선에 재배치되며 스페인 독감이 퍼진 이유다. 당시 그들이 걸린 인플루엔자가 조선에 퍼져 대유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일본 도쿄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고 시민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이를 토대로 소설가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1883~1971)는 1919년 스페인 독감을 소재로 한 『유행감모(流行感冒)』라는 단편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시애틀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승객의 대중교통 탑승을 거부했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미착용시 경우에 따라서는 유치장에 며칠 가두기도 했으나 여전히 마스크는 기피대상이 되었다. 특히 사모아 섬의 경우, 스페인 독감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당시 미국 총독 존 마틴 포이어(John Martin Poyer, 1861~1922)가 라디오를 통해 대유행을 전해 듣고 해외 여행객을 전면적으로 입국금지 조치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 섬과 같은 일부 고립된 지역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많은 수의 사망자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치사율이 1.87%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역설적으로 매우 높은 감염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지역별 차이는 있었기 때문에 의료체계가 낙후된 지역은 이보다 치사율이 더 높았던 것은 당연하다. 

 

이와 같이 전 세계를 휩쓸며 맹위를 떨쳤던 스페인 독감은 총 3번의 대유행과 몇 차례의 소규모 유행 이후 최초 발병 다음 해인 1919년 4월 때, 대부분 종식되어 갑자기 사라지게 되었다. 왜 종식된 것인지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그 당시에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의 착용, 무증상 감염과 사전 격리 조치를 취한 사례가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른 사회적 반발과 각종 물류 마비 및 대란, 자영업의 고초 등 코로나19와 비슷한 사회적 현상으로 현재 코로나19 유행 상황과 같이 스페인 독감이 언급되는 이유다. 

 

다행히 코로나19가 스페인 독감의 악명을 뛰어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가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독감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라 말한다. 1918~20년에 비해 현대 의학 수준이 매우 발달했던데다 백신도 나오고 있으며 타미플루 같은 치료제도 나왔다. 


그러나 그에 비해 1918~20년의 스페인 독감은 백신조차 없었고 타미플루와 같은 치료제도 없었다. 만약 스페인 독감이 현재 재유행한다면 코로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사망자가 속출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정확한 원인이 없이 갑자기 사라졌고 인류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한 질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페인 독감은 페스트와 더불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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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인류 최초의 팬데믹, 스페인 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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