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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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북방 영토의 날 홍보 자료, 사진출처 : 2月7日は北方領土の日・令和3年北方領土返還要求全国大会は YouTube 配信

1980년 일본 국회 중의원과 참의원들이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 지정을 비롯하여 <북방 영토 문제의 해결 촉진에 관한 결의(北方領土問題の解決促進に関する決議)>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에 일본의 모든 도도부현 의회와 시정촌 의회, 전국지사회, 전국시의회의장회, 전국시장회, 전국정촌회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결의가 채택되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결의가 모아지는 것을 계기로 총무청에서는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 지정을 검토하기로 하고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듣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1980년 12월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에 대한 간담회가 학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게 된다. 

 

간담회의의 결과에 대해 답신을 받은 일본 내각은 1981년 1월 6일에 열린 내각 회의에서 매년 2월 7일을 북방 영토의 날로 정하는 안을 채택했다. 왜 2월 7일로 설정을 했냐면 가증스럽게도 1855년 2월 7일 에도 막부와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 사이에 맺은 조약인 러일 화친 조약(露日和親條約)이 체결된 날이 그 날이기 때문이다. 


화친(和親)이란, 국어사전적 의미로 볼 때 '서로 의좋게 지내는 정분', 혹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 다툼 없이 가까이 지냄' 이라도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친조약을 체결한 2월 7일을 영토 분쟁과 관련하여 북방 영토의 날(北方領土の日)로 지정한 것이다. 사실 이 가증스러운 행위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을 기념한 날인데 일본은 오랫동안 잃어왔던 자국의 영토를 되찾기 위한 의미로 지정한 것에서 그 의미가 맞지 않다고 보여진다. 

 

친하게 지내자는 것은 평화와 우의를 동반하는 것인데 1981년부터 현재까지 41년 동안 2월 7일을 북방 영토의 날로 지정하고 다양한 축제를 비롯해 행사를 거듭하여 일본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평화와 우의의 상징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다. 참 일본스럽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러시아, 일본 두 나라가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이다. 양국은 식민지 개척 정책의 일환으로 사할린을 자국 영토라 주장하기 시작하며 마찰을 빚게 된다. 그러자 두 나라는 1855년 2월 7일 러일 화친 조약(露日和親條約)을 맺어 사할린을 공동으로 관할하는 구역으로 만들게 된다. 이어 1875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맺어 러시아가 사할린을, 일본이 쿠릴 열도를 차지함으로 합의를 보았다. 

 

일본이 쿠릴열도가 자국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에 근거하는 것이다. 이후 시간이 흘러 독일과 소련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는 것을 보고 이에 충격을 받은 일본은 1941년 소일 불가침조약을 맺게 된다. 그러면서 안심하고 때린 것이 진주만이다. 이와 같이 양국 간에 불가침 조약이 있었지만 1945년, 소련은 얄타 회담의 결과에 따라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공격을 결정한다. 


이로써 소일 불가침조약은 결국 파기되었고 만주 기습 작전으로 일본은 만주, 몽골, 조선 등의 식민지를 상실하게 된다. 소련은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이후에도 평화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고 양국은 계속 휴전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스탈린이 사망하고 흐루시초프가 집권한 이래, 대일외교가 전면적으로 수정된다. 1956년 흐루시초프는 소일 공동선언을 함과 동시에 외교관계를 회복시켰고 일본은 소련과도 교류할 수 있게 되었다. 

 

반공을 국시로 소련을 비롯한 모든 공산권 국가들을 차단했던 우리와는 심히 대조적이다. 그러나 공동선언 제9항에서 소련은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 섬을 평화 조약 체결 후 일본에 넘기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에 서명했다는 것에서 후일 북방 영토 분쟁이 갈수록 심화되는 계기가 된다. 물론 정치적으로 일본은 소련을 사실상의 주적으로 규정해 소련군의 상륙을 대비해서 홋카이도에 전차를 집중적으로 배치했었지만 문화적, 경제적 교류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톨스토이나, 푸쉬킨, 도스토예프스끼, 막심 고리키 등의 작품들이 냉전 시대 때 일본에서 별다른 검열 없이 성행했었던 것도 문화 교류들이 있었음을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된 후, 2000년대에는 일본이 북방영토 회복 문제를 제기했고, 러시아는 도쿄 근해에 폭격기를 근접 비행시키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한다. 이와 같은 북방 영토를 두고 일본과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우리 한국의 반일감정을 이용해 일본과 대응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센카쿠 열도, 남중국해 등의 분쟁에 대해서 중국 편을 들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태도에 일본은 우크라이나 유로마이단 사태 이후 러시아에 적극적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후에도 추가 제재를 단행하거나, 친러시아파 자산을 동결하고 독자 제재까지 검토하기도 하는 등, 생각보다 두 나라의 사이는 골이 깊다. 

 

2019년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사건에는 러시아가 일본의 태도를 보고 이틀 연속 일본 공해 근처까지 가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당시 한국은 반일 불매 운동 시기였는데 일본의 동해와 독도를 두고 벌인 신경전에서 러시아가 일본의 행위에 대해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2012년부터는 러시아 태평양 함대 소속군함들이 쿠릴열도 지역을 방문했다.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때 사망한 전몰 수병 추모 항해차원으로 쿠릴 열도와 하바로프스크 지역 등을 24일 동안 항해한다고 하는데, 이를 5년 동안 계속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는 실효지배(Effective control over territory) 강화전략이라고 보고 있다. 실효지배는 굉장히 중요한 외교적 용어다. 영유권을 두고 실제로 국가가 직접적인 컨트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가 자기 땅이라고 하든, 온갖 잡소리를 해도 조용히 무시해버리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실효지배하고 있는 측에게 항상 우위를 내줄 수밖에 없어 실효지배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뭐라 떠들든 신경쓸 바가 아니다. 쿠릴 열도도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뭐라 떠들던 러시아는 신경 쓸 필요없이 일본의 도발에 대비해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고 실효 지배를 더욱 강화했다. 

 

우리도 더 이상 말 나오지 않기 위해 일본이 뭐라 떠들던 상관없이 독도와 가까운 울릉도나 독도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면 깔끔하다. 그런데 2019년 2월 7일 일본 북방 영토의 날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는 다른 해의 북방 영토의 날 행사와는 다른 모습이 있었다. 그것은 키예프 주재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쿠릴열도는 대일본의 영토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는 광경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우크라이나 방송사가 중계 방송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전략적으로 러시아의 배후인 일본을 움직여 러시아를 자극시키고 여기에 분쟁이 벌어지면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장악하기 위해 군을 움직이려는 전략을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크라이나는 2019년부터 이를 염두해두고 일본과 손잡으려 했던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일본 내에도 우크라이나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는데 러시아인 공동체의 일부를 이루는 경우도 있어 현재 일본 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반전 시위의 주동이 되어 있다. 

 

이들 네트워크들의 목소리는 일본의 넷우익 같은 극우단체와도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네트워크가 일본에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이에 일본은 쿠릴 열도를 반환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 한마디로 우크라이나도 이러한 일본에게 적극적으로 감사함을 표시하며 화답했다. 말 그대로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 이후, 적극적인 친일 국가인 것이다. 


이런 추세로 일본은 쿠릴 열도 뿐 아니라 독도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우크라이나의 동의를 구할 것은 뻔한 일이다. 러시아는 로마노프 제국 시절부터 해군성 수로국이 팔라다 함대의 탐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1857년 '조선 동해안 지도'를 발간하여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공식 인정했다. 최근에도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가 독도 영공을 두 차례 침범하여 우리 정부가 러시아에 항의하자 러시아는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다가 "영공 침범 안했다"고 입장을 바꾸긴 했지만 같은 항의를 했던 일본한테는 철저히 무시로 일관했다. 

 

이는 러시아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의외로 독도가 한국 영토로 인식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독도를 다케시마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더 많다는게 해외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정부가 공식 인정한 격이 되었다. 그런데 2년전까지만 해도 반일 불매운동 하던 한국 사람들은 이런 점에 있어 굉장히 무감각하디. 

 

반일 불매운동에 열성적이었던 한국인들이 독도가 우리 영토라고 인정했던 러시아를 배격하고 친일국가인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물론 침략은 어떠한 행위로도 정당화 할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와 일본 간의 깊숙한 관계, 북방 영토를 일본 영토로 인정하면 우리 독도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북한 미사일에 우크라이나 엔진이나 기술이 들어가 있다는 것, 등의 여러 문제를 고려해서 최소한 한국 사람들은 이 문제에서 감정적으로만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보여 진다. 

 

러시아와 관계는 푸틴과의 관계를 떠나서 매우 중요하다. 솔직히 러시아와 푸틴이 우리에게 잘못한게 뭐가 있나? 우리 기업들 기 살려주고 투자할 수 있게 해주고 한국 제품 마음껏 사줬지, 독도는 우리 땅 지지해줬지, 러시아 땅 어디든 무비자로 자유 여행할 수 있게 해줬지, 고려인들 위치도 많이 올려줬지, 도대체 러시아가 우리에게 뭘 더 잘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늘 고마움을 편중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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