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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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러시아와 조지아, 남오세티아 공화국과 압하지야 공화국이 그려진 지도 사진출처 : WikiMedia Commons, 마크 테미니츠키(MARK TEMNYCKY) 기자

 

최근 벌어진 러시아와 그루지야, 그리고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지역에 대한 오래된 영토 분쟁과 민족 분쟁, 무엇보다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이 지역의 자원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루지야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및 중앙아시아로 통칭되는 광대한 지역은 대개 이와 같은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러시아와 영국, 두 나라는 제국주의적인 팽창에 몰두하였으며, 실질적인 지도에 없는 땅인 중앙아시아 지역을 자국의 세력권에 넣기 위해 경쟁하고 충돌했다. 이로부터 100년이 더 지난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은 과연 달라졌는지 의문에 있다. 이 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는 여전히 매우 낮은 편이며, 주로 자원 확보나 개발 등 경제적인 부분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국주의와 냉전 시대에 걸쳐 발생한 그레이트 게임은 중앙아시아 지역에 오랫동안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영국과 러시아가 경쟁을 벌였던 신장과 티베트 지역은 이후 오랫동안 독립을 꿈꾸었으나 중국으로부터 갖은 압제를 겪으며 아직도 독립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전략적 요충지로 영국과 러시아가 장악하려 했던 아프가니스탄은 오늘날까지도 전쟁의 상흔이 짙게 남아 있다. 카프카스 지역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도 소비에트 연방에 포함되었다가 소련 해체 이후 독립국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러시아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자원 쟁탈 지역이 되고 있다. 이에『실크로드의 악마들(Foreign Devils on the Silk Road)』의 저자 피터 홉커크(Peter Hopkirk)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현재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이 전개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다시금 국제적 격랑에 놓여 있는 이 지역은 그 향방을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지구의 축소판과도 같다.


홉커크는 당시 발간된 국제 정세를 다룬 문헌이나 영국과 인도, 러시아의 정부 문서, 그레이트 게임에 참여했던 개인들의 여행기나 논문 등 방대한 자료를 두루 섭렵하면서도 역사적 서술의 전형에서 벗어난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거대한 제국주의적 흐름 속에서 분투했던 개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행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애국심이나 개인적 야심을 위해 험준한 산맥과 황량한 사막을 따라 이동하면서 그레이트 게임에 참여했던 이들은 자국의 제국주의적 목적에 봉사하게 된다. 탐험가이자 첩자, 군인이자 야심가였던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묘비명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에 묻혔는가 하면 일부는 고국에 돌아와 명성과 권력을 얻기도 했다.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은 중앙아시아에서의 주도권을 두고 영국과 러시아가 벌인 경쟁과 갈등 관계를 표현한 용어이다. 이 용어는 영국 동인도 회사 제6 벵골 원주민 경기병대 소속의 정보 장교인 아서 코넬리(Arthur Conolly) 중위가 처음 사용한 단어로, 루디아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소설『킴(Kim)』(1901)에 나온 이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고전적인 그레이트 게임의 시기는 1813년 러시아-페르시아 조약 체결 이후부터 시작되어 1907년 영국-러시아 협약 체결로 종료되었다. 이보다 강도가 덜한 2차 그레이트 게임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시작되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대영제국은 동방 최대의 보물이라 불리던 인도를 차지함으로써 제국주의 경쟁의 선봉에 섰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지칭되어질 만큼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이러한 영국에게 인도를 식민지로 유지하는 일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한편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 이후 국력을 키워가던 러시아도 아시아로의 영토 확장을 노리고 있었다. 따라서 두 제국은 러시아와 인도 사이에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게 이 지역은 지도상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는 땅, 서로를 견제하기 위한 방어선, 본국이나 식민지에서 생산되는 물품을 팔기 위한 시장으로 인식되었을 뿐 독자적인 전통이나 역사를 지닌 지역이 아니었다.


그레이트 게임은 애초에 양국 간의 전면전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두고 있던 대영제국이나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고 있던 제정 러시아는 쉽사리 국가 차원의 전쟁에 뛰어들 수 없었다. 그레이트 게임은 개인들의 참여로 시작되었다. 애국심과 야심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은 순례자나 현지인 말 장수로 변장하고 험난한 지형을 탐사하며 지도를 그리고, 지역의 부족들과 지도자들을 만나고 정세를 살폈다. 이후 본국에 돌아와서는 상대 국가의 위협을 강조하는 책과 논문을 작성함으로써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해 정부가 지금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고 정복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했다. 처음에 이들의 견해는 무시되고는 했으나 점차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러시아 공포증’이 만연하여 중앙아시아 점유에 소극적이었던 정부를 압박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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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벌어진 러시아와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또 다른 그레이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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