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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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레자노프(Николай Петрович Резанов, 1764~1807)는 러시아 차르인 파벨 1세로부터 앞으로 20년 동안 러시아-아메리카 회사가 북미 대륙에 진출하는 모든 거점에서 운영과 사업을 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승인을 담은 면허장을 받게 된다. 

 

이로써 러시아-아메리카 회사는 러시아 정부를 대신하여 알래스카를 포함한 북미 대륙을 모두 식민지로 삼을 수 있는 모든 자격을 얻은 셈이 되었다. 레자노프와 그의 심복인 알렉산드르 바라노프(Александр Баранов, 1746~1819) 등 러시아-아메리카 회사의 고위급 간부들은 알래스카를 식민지로 삼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북미 대륙의 더 남쪽까지 진출하려 하였다. 

 

러시아 인들은 알래스카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는 지금의 샌프란시스코 인근까지 진출했고 해안가를 따라 이동했기 때문에 오늘날 캐나다 서부 해안가와 미국 서부 해안가를 장악하여 여러 도시들의 건축을 계획했고 인디언들과 교역하면서 상당한 이윤을 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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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로스 요새, 사진출처 : SONOMA COUNTY, LIFE OPENS UP

 

러시아의 아메리카 진출은 가속화되어 1812년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에는 러시아-미국 회사의 고문인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쿠스코프가 러시아군이 주둔할 기지인 로스 요새(Fort Ross)를 건설했다. 로스 요새는 러시아(Russia)의 이름을 축소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러시아의 영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로스 요새는 주변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 얻은 식량을 북쪽의 알래스카에 설치된 러시아 식민지에 공급하면서, 스페인령 캘리포니아와의 무역을 수행할 거점으로 설립되었다. 로스 요새가 담당하는 전체 면적은 대략 29㎞ 정도였으며, 주위의 강가와 계곡에서 수달을 잡아 모피를 얻는 무역 사업이 주된 수익원이었다. 로스 요새에서 생산하는 모피들은 대부분 육로로 미국이나 해상을 통해 태평양을 건너 청나라로 수출되었다.


기후가 추운데다 황량한 알래스카에 비하면 로스 요새가 들어선 캘리포니아의 기후는 비교적 따뜻해서 농사짓기에 적합했으며, 로스 요새의 주변 토양은 상당히 비옥했다. 그래서 한동안 로스 요새에서는 농사가 잘 되어, 알래스카로 식량을 지속적으로 수송선을 통해 실어 날랐고 정착한 러시아 인들도 인디언들과 큰 마찰 없이 교류하며 비교적 편안하게 지냈다고 한다. 

 

로스 요새가 건설된 이후 러시아 인들이 정착하자, 알류트 족 같은 북태평양의 원주민들은 물론 핀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 에스토니아인, 그리고 많은 유럽의 외지인들이 몰려와 자리를 잡고 거주했으며 그들의 정착촌들이 건설되어 캘리포니아 내륙 지역으로도 확대해 나갔다. 게다가 로스 요새를 지키고 있는 수비병들 대부분 우크라이나의 조상인 코사크 집단 출신들이었다. 


이러한 로스 요새는 1812년에서부터 1841년까지 약 29년 동안 운영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5명의 총독들이 차례를 이어가며 재임했다. 처음 이반 A. 쿠스코프(Kuskov, 재임 : 1812~1821), 칼 J. 폰 스크미드트(Skmidt, 재임 : 1821~1824), 파벨 I. 셸리코프(Selikov, 재임 : 1824~1830), 페테르 S. 코스트로미티노프(Kostromitikov, 재임 : 1830~1838), 알렉산드르 G. 로트체프(Rotchev, 재임 : 1838~1841) 등 이었다.


캘리포니아는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에게서 독립하면서 멕시코 영토가 되었으나, 로스 요새는 여전히 러시아의 소유로 남아있었다. 1848년에는 비로소 캘리포니아가 미국에 편입되면서 멕시코의 영토에서 대부분의 영토가 미국으로 넘어갔지만 캘리포니아가 ‘미국’의 영토가 되기 7년이나 앞서 러시아는 이미 캘리포니아에 영토를 두고 운영하고 있었다. 

 

이후에도 러시아의 확장 정책은 계속되었다. 1815년에는 태평양의 하와이로 진출해 러시아의 식민지로 삼으려 했었고 이는 상당한 기간 동안 러시아-아메리카 회사의 노력으로 인한 산물이었다. 1810년까지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까지 점령한 러시아는 그 여세를 몰아, 태평양의 하와이까지 진출하여 군사 요새를 세웠다. 

 

그것이 하와이 제도의 카우아이 섬에 남아 있는 엘리자베스 러시아 요새가 하와이를 정복하려한 러시아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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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의 아메리카 진출에 대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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