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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13년 11월 27일 유로마이단 폭동, 키예프 독립광장, 사진출처 : Wikipedia, Pro-European Union rally in Kyiv

 

2년 전 2월 말, 우크라이나가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했기 때문에 밤 9시 이후에는 사람들이 밖을 다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유로마이단 때의 밤도 이랬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때도 2월이었다. 그리고 2월 9일인가? 아.. 찾아보니 19일이다. 야권과 정부 간의 협상도 결결되고 그날 부로 야누코비치 정부는 시위대의 도심 집결을 막기 위해 지하철 운행을 중지시켜 버렸다. 

 

시민들 움직임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17일 즈음에 하리코프로 탈출했다가 벨고로드로 넘어가는 러시아 국경이 러시아 기갑사단들에 의해 통제되어 막히는 바람에 키예프로 돌아왔는데 그 돌아온 날짜가 19일.. 우리가 하리코프에서 키예프로 들어오는 열차가 운행 중단시키기 바로 전, 마지막 열차였다. 그날부로 고속도로, 철도 등도 완전히 운행이 끊겼다. 

  

그때부터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부는 시위 진압에 대놓고 총기를 발포하기 시작했다. 2월 23일까지 80명 이상의 시위대가 경찰의 발포로 사망했고, 특히 저격에 의한 사망자는 20명 이상이 집계되었다. 마이단 광장이 불탄 것도 나는 직접 목격했다. 사진 찍던 폰, 카메라 모두 다 티투쉬키(Тітушки)라는 사복 경찰 및 군인들에게 걸려 압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나머지 갖고 있는 폰 1개의 모델이 갤럭시S2였기에 그 폰에는 몇 장의 사진이 담겨있다. 그러나 그 폰도 포렌식 복구하지 않으면 복구가 힘들 정도로 기종도 오래 되고 하여 다시 폰을 정상적으로 켤 수 없다. 어쨌든 그런 전쟁의 광기를 목도한 나는 지금 이 밤 풍경을 실시간 LIVE CCTV로 보며 참혹했던 그 순간도 떠오르고 그날 밤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광장의 CCTV들은 우크라이나 호텔에서 마이단 타워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설치된듯 싶다. 늦은 밤이 되면 마이단 타워 좌측 불빛이 반짝이던 성 소피아 성당도 불이 꺼진다. 마이단 타워 우측 끝의 성 미하일 성당은 약간의 미등이 켜져 있다. 소식을 듣기론 키예프 외곽 경계 12km 앞까지 러시아 군의 탱크가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키예프로 진입하는 입구로부터 치열한 교전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이 있는데 그 군대 가지고 오래 버텨봐야 몇 시간 안 걸릴 것이다. 

 

그 부대는 우선 길면 새벽 정도에 대부분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러시아 군은 키예프에 다음 날 오전즈음에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 같은 진격 속도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8년 전 그 때와는 달리 마이단의 비극을 또 CCTV로 생생히 목격하는거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키예프는 고대 키예프 루스 시대부터 바람 잘 날이 없었던 도시다. 많은 인명 피해와 더불어 고대 키예프 루스의 문화 유산들도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중이다.


당시만 해도 일단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토를 장악하려는 것이 목표인듯 싶다. 마리우폴, 하리코프는 이미 떨어진거나 마찬가지고 오데사로 들어온 러시아 흑해함대 소속과 헤르손에서 드네프르 강을 따라 올라와 미콜라이프와 크리프리 이를 장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것이다. 

 

특히 크리프리 이는 지정학적으로 보면 드네프르 페트로프스크와 드네프르 강, 남서부 오데사 및 발칸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남서 우크라이나 육군 본대와 드네프르 우크라이나 육군 본대의 연대를 막을 수 있다. 나는 이미 2019년 우크라이나 답사 때 크리프리 이를 다녀와 그 중요성을 확인한 바 있다. 

 

그리고 키예프의 군대 더 서쪽으로 진입한다면 오데사나 헤르손에서 출발한 군대로 흐멜니츠키에서 조우할 가능성이 있다. 흐멜니츠키에서 리보프를 적당히 위협만 해주면 굳이 리보프에 입성하지 않아도 충분히 승리를 확정했다는 발표를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군은 전체전력에서 러시아에 비해 엄청난 열세다. 그리고 러시아는 장기전을 원하지 않고 속전속결로 끝내야 미국 및 나토의 개입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큰 약점은 지형에 있다. 우크라이나 지형에 거의 산지가 없고 전 국토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게릴라전을 벌인다면 산악지대와 같은 험준한 지형이 유리할 수 있는데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헨디켑이 그런 지형이 없기 때문에 탱크나 전차가 통과하기 아주 좋은 지형적 조건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흑토는 식량 생산에서 최고의 혜택을 주는 땅이지만 전쟁 때는 진공이 쉬운 땅이라는 양날의 칼을 갖고 있다. 

 

이는 역대 역사에서도 이 지역에 자리잡은 키예프 루스가 기마유목민족인 몽골군에게 속수무책으로 제압당한 역사가 이를 반증해준다. 우크라이나 비교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빠른 시일 안에 나토의 미군의 참전, 그리고 그들이 참전하기까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시가전으로 버티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물론 시가전도 러시아군을 오래 상대할 정답은 아니다. 


러시아 지상군은 그 어느 나라 군대보다도 시가전에 특화된 군대이기 때문이다. 이는 2008년 남오세티아 전쟁 당시 츠한빌리 시(市) 진입 작전과 제2차 체첸 전쟁 당시 그로즈니 시(市) 진입 작전 및 시가전을 본다면 러시아 지상군 특유의 시가전 정석을 볼 수 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우크라이나는 그 어떤 전쟁의 국가들보다 매우 불리한 입장에 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의 저항이다. 2013~2014년 유로마이단 당시 시민들이 한데 모여 친러 세력에 저항했다. 그러나 그 저항은 어디까지나 친러 세력 민병대에 저항한 것이지 러시아 군 본대와 저항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 지상군과 저항했으면 키예프는 점령당하고 수많이 시민들이 학살되었을 것이다. 때론 어떤 분이 유로마이단 당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승리로 러시아를 상대로 저력을 보여줬다는데 유로마이단을 직접 겪고 현장에서 지켜 본 나의 경우, 현장에 있지 않아 보신 분의 탁상 TV 공론화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는 무조건 현장 경험을 중시한다. 내 연구도 무조건 현장 경험이다. 현장 경험이 없는 분들은 다른 나라의 TV와 언론, 현지 친구와 정보 등 간접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어 정확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시민들의 저항도 저항이지만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널려있는 "친러 네트워크"들이 있어 그들이 결집하면 시민들의 저항도 깨질 확률이 높다. 결국 지금 우크라이나가 할 수 있는 것은 나토군의 파병과 우크라이나 정부의 항복 외에는 답이 없다. 

 

무기와 물자 지원한다고 하지만 쓸데 없는 일이다. 우크라이나 군이 나토의 최신 무기를 사용한 경험이 적고 군 훈련 상태도 어느 정도인지도 미지수인데 무기와 물자 지원해봤자 러시아군의 노획품 밖에 되지 않는다. 

 

강력한 제재 한다고 하지만 러시아는 이미 그마저도 염두해 두었다. 이제는 드네프르 강을 수호하는 성모마리아가 어떤 역사와 기적을 주실 것인지 거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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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4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전과 8년 전, 유로마이단 폭동의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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