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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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집단서방 (미국, 유럽연합), 러시아-중국의 소리없는 전쟁에 대한 묘사 사진출처 : Shutterstock / Printextar

 영국의 산업혁명은 러시아의 원자재가 없으면 불가능했고 오늘날 서구의 발전, 제국주의도 러시아의 원자재가 없으면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러시아와 영국, 두 나라의 교역은 러시아의 1차 산물이 영국으로 수출되고 영국의 공산품이 러시아로 수입되는 구조였다. 

 

러시아는 체르노젬 일대에서 생산되는 밀을 영국으로 대량 수출하였는데 이는 러시아의 주요 외화 공급원이 되었음은 물론 영국에서 수입하는 식량 자원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영국은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해외에서 밀이 저가에 수입되면서 밀 농장들이 양을 키우는 목양지로 바뀌고 이후 잉여 노동력이 급증하면서 이른바 산업 혁명을 가속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러시아의 원자재가 없었다면 실패했을 것이고 해가 지지않는 대영 제국 또한 없었을 것이며 서구 유럽의 급속한 발전 또한 없었을 것이다. 즉, 17세기부터 서구는 러시아의 자원에 의존했기 때문에 현재처럼 강대국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슬라브와 앵글로색슨은 절친한 우호 관계였지만 이 우호 관계에서 경쟁자로, 그리고 서로에 대한 반감과 라이벌 의식 등이 동반되어 오늘날까지 서로를 적대하는 관계가 되었다. 이 절친한 우호관계에서 오늘날 적대관계가 되기까지 러시아와 영국 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두 나라가 원수 지간이 된 것은 서로의 영토 확장으로 인한 국가적 이해 관계의 충돌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러시아의 최전성기를 이루었던 인물, 예카테리나 여제가 있었다. 내기 예카테리아 여제에 일대기와 러시아 영토의 확장, 군수산업의 증대, 그리고 러시아라는 나라의 위상을 세계 열강의 위치까지 끌어 올려 놓은 활약상들을 검토하면서 그 상황에서의 당시 18세기 유럽의 국제 정세도 함께 검토하게 되었다. 

 

18세기 유럽의 중심은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인한 국가와 경영인들의 자본력 확대와 그로 인해 각 바다를 지배하면서 나타난 식민지의 확보였다. 당시 영국의 라이벌은 네덜란드였고 이들은 모두 해양 세력들로 아시아를 두고 세력을 경쟁했다.


이윽고 영국이 네덜란드를 서서히 제압하면서 해양 세력의 최대 강대국으로 급부상했다. 육상에서는 몽골 제국과 오스만투르크의 황혼이 사라지자 서구와의 교역으로 인헤 해상 루트를 개발한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가 예카테리나 여제가 즉위하면서 해상에서 육로로 정책을 변환함에 따라 유라시아 일대 육로의 최대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표트르 대제가 바다로의 진출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예카테리나 여제는 그를 발판으로 육로로 영형력 확대에 공을 들였던 것이다. 그 근거로 예카테리나 여제가 추진한 정복전쟁을 모두 육지에서 벌어졌다. 발트 3국을 합병하고 폴란드를 삼국 분할 한 것도 육지에서 자행된 것이고 오스만투르크와의 전쟁도 육지에서 벌어졌다. 

 

이후, 여제는 우랄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노리게 되었고 시베리아 횡단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의 알래스카까지 통치 하에 두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러시아 제국은 슬슬 중앙아시아로 관심을 쏟게 된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에 관심을 쏟을려는 찰나, 적극적인 팽창을 노리던 러시아는 큰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그 이유는 러시아의 팽창에 적극적이던 예카테리나 여제가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후 파벨 1세가 즉위하면서 러시아의 팽창정책이 수동정책으로 다시 바뀐다. 파벨 1세는 자신의 어머니인 예카테리나 여제 때문에 아버지인 표트르 3세가 살해되었고 따라서 표트르 3세를 계승할 권리를 예카테리나 여제가 침해했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정신적으로 불안한 생활을 했던 인물이다. 즉, 예카테리나 여제의 진취적인 통치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던 인물이었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서유럽에 대한 정치, 군사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한 인물이었지만 파벨 1세는 서유럽에 대해 적극적이었다. 프랑스의 혁명 사상과 투쟁을 거부하고 서유럽으로 군대를 파견하면서 러시아의 군대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군대와 함께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황제가 되면서 그는 동맹국들을 배신하고 나폴레옹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파벨 1세의 정책에 반감을 가진 귀족들이 그를 암살하면서 알렉산드르 1세가 차르가 되었다. 나폴레옹의 세력이 강화되어 유럽을 지배하자 알렉산드르 1세는 이전부터 많은 교역을 하던 영국과 동맹을 굳건히 하고 나폴레옹에 맞섰다. 나폴레옹이 대륙봉쇄(Continental System)를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비밀리에 거래하다가 적발되자 이어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게 되었다. 


조국 전쟁에서 끝내 영국과 함께 나폴레옹을 제압한 러시아는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하면서 다시 중앙아시아로의 팽창을 노린다. 당시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 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었는데 영국을 중심으로 해서 페르시아를 확보하고 중앙아시아를 장악하는 것까지가 목표였다. 

 

러시아도 중앙아시아를 장악하고 페르시아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까지 내려가 부동항을 확보하여 인도양으로 나가는 것이 목표였다. 양국 팽창주의는 서로 간의 정치, 외교적인 대립을 불러왔고 유라시아 육상의 패자가 되어 위협적으로 성장한 러시아와 전 세계 해상의 패자가 된 영국은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신흥 라이벌로 자리 잡게 되었다.

 

 러시아-영국, 양국이 정치, 외교, 군사적 대립이 바로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으로 나타났다. 당시 영국의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과 공포가 제프리 브룬(Geoffrey Bruun)에 의해 <19세기 유럽사(Nineteenth Century European Civilization: 1815-1914)>라는 저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표현되기도 했다. 


"19세기 내내 영국의 정치가들을 악몽에 시달리게 한 것은 러시아라는 거인에 대한 공포였다. 러시아의 남하는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와 영국의 인도 지배에 대한 위협이 가중됨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그레이트 게임은 작게는 중앙아시아와 인도에서, 크게는 흑해 연안에서 극동을 아우르는 유라시아 전역의 패권을 두고 벌어진 양국의 전략적 경쟁이자 정치, 군사, 외교 모든 부분이 총동원된 거대한 냉전이었다. 동유럽에서는 크림 전쟁이 일어났고,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는 쇠락해진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이란 숭고국, 아프가니스탄 토후국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그리고 티베트와 위구르도 인도에 자리잡은 영국과 북쪽에서 늘 남하를 노리고 있는 러시아, 양대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고, 지구 반대편인 동아시아와 캄차카 반도에서도 직·간접적으로 대결하는 등, 러시아와 영국 두 나라는 철천지 원수이자 라이벌로 변해갔다. 두 나라의 사이, 좁게는 러시아와 영국과 미국, 크게는 슬라브와 앵글로색슨이 현대에도 극단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국가 팽창에 맞물린 정치적, 민족적, 역사적인 자존심 대립이 주효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그레이트 게임을 총 3차까지 나누어 보고 있다. 1차는 모두들 알다시피 1813~1907년의 일이고 2차는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자유진영과 소련을 포함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냉전으로 1945~1991년까지이다. 그리고 3차는 푸틴의 집권 시기인 2000년부터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정확하게는 2022년 2월 24일부터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영국, 미국, 나토 및 동맹국의 체제와 러시아-중공으로 대표되는 BRICS 체제의 대립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정치, 군사, 외교까지 걸려 있는 새로운 구도의 보이지 않는 전쟁과 나토가 지원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눈에 보이는 전쟁을 통틀어 제3차 그레이트 게임으로 체제 대립의 상징성을 들어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현재의 러-중과 제3 세계와 미, 영을 비롯한 서구 세력 및 그의 동맹국의 소리 없는 전쟁을 New Cold War 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가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상징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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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그레이트 게임을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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