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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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차가타이와 그의 나라, 차가타이 칸국, 그리고 티무르 제국까지 이어지는 중앙아시아의 시대상 변천을 함께 보면서 느낀 바 있다.  칭기즈칸, 바투나 수부타이, 재배, 카이두 및 아리크부카나 쿠빌라이 칸 등의 영웅들은 충분히 알려져 있지만 칭기즈칸의 차남인 차가타이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 나는 다른 영웅들보다 차가타이를 매우 좋아한다. 그에게 있어 원리원칙과 공명정대라고 하는 두 가지의 기본 철칙이 있었고 그런 기본 철칙은 원리원칙과 공명정대라는 것이 부족한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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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Tsagaatay's statue in Mongol palace, Gachuurt Mongolia, 사진출처 : WIKIPEDIA, Chagatai Khan

 

차가타이는 성격이 불같고 타협을 모르는 성격이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엄격하고 원리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칭기즈칸은 차가타이에게 몽골의 법전인 <에케 야사>를 창안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그에 대한 일례로 차가타이의 동생인 오고타이가 대칸이 된 이후, 차가타이와 오고타이 칸이 술자리를 했는데, 차가타이가 취중에 오고타이 칸에게 실수를 했다. 다음 날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차가타이는 아우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실수를 벌해달라고 청했다. 오고타이 칸은 이를 "뭘 그런거 가지고..." 하면서 그대로 넘어갔지만 차가타이는 끝내 <에케 야사>의 법률을 스스로에게 적용하여 자신을 벌했다고 전해진다.


차가타이는 매우 엄격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오고타이 칸이 술에 취해서 마찬가지의 행동을 하면 법의 수호자이자 무서운 형님이 되어 동생을 혼냈는데 취중에도 오고타이 칸은 형이 오면 무서워하였다는 설화도 존재하고 있다. 차가타이의 동생이자, 칭기즈칸의 막내 아들, 툴루이의 장남이자 후일 몽골의 대칸이 되는 몽케가 차가타이의 성격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며 차가타이는 몽케의 즉위를 적극적으로 밀어줬다고도 전한다. 차가타이는 중앙아시아에 차가타이 칸국을 건국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카자흐스탄 남부,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북부, 파키스탄 펀자브 지역까지 지배했으며 그의 영토가 상당히 넓었음에도 원리원칙에 따라 주군은 늘 몽골 카라코룸의 대칸이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차가타이는 죽을 때까지 결코 칸을 자칭하지 않았다. 차가타이 칸국의 지배자들 중 처음으로 칸을 칭한 것은 손자인 카라 훌라구였다. 차가타이를 시조로 간주하는 차가타이 칸국은 동유럽을 정복한 킵차크 칸국이나 중국을 정복한 원나라, 그리고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와 전쟁을 벌이고 페르시아 문화에 영향을 받은 일 칸국에 비하면 세계사적인 입장에서 그다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다른 칸국들은 각각 러시아, 명나라, 맘루크 및 오스만투르크 같은 중세 후기에서 근세 시대 대제국들이 성장하면서 반드시 이겨할 적으로서, 또는 동시와 많은 문화와 기술, 제도를 서로 교환한 외교적인 국가로서 세계사의 거대 세력들 역사와 같이 존재감이 컸던 것에 비하면 차가타이 칸국이 있었던 지방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곳이라서 세계사의 중심으로 도약하기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일찌감치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주목받길 원하지 않고 오로지 <에케 야사> 법전에 나와 있는 대칸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주목 받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찍부터 명성을 떨친 킵차크 칸국이나 일 칸국과 같이 독립 국가적인 주체로써 몽골 제국을 확장시켰던 것이 아니라 몽골 울루스의 일원으로써 중앙정부와 함께 해야 한다는 차가타이의 원리원칙론이 작용했기에 일찍부터 중앙아시아 이외 지역에 세력 확장을 하지 못한 이유일 것으로 보여 진다. 그래서 그랬을까? 킵차크 칸국과 일 칸국은 오래가지 못했고 차가타이 칸국은 아미르 티무르라고 하는 칭기즈칸과 맞먹는 걸출한 대영웅을 배출해내면서 티무르 제국을 만들어냈으며 차가타이와 티무르의 후예는 인도로 들어가 아시아 3대 강국을 칭하는 무굴제국을 건국해 아시아 중근세 제국 중 가장 강력한 국가로 19세기까지 존립하게 되었다. 


내가 차가타이를 관심있게 보았고 그를 소환해 낸 것은 현 대한민국의 정세와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보면 차가타이의 원리원칙과 공명정대를 갖추고 있는 정치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군주인 오고타이 칸에게 실수해 자기 자신에게 법률 <에케 야사>를 작용해 벌을 내렸던 그런 사법계의 용자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 그런 용기가 있는 자, 자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잘못했으면 은폐하기 바쁘지 자기 자신에게 형벌을 내릴 원리원칙주의자가 누가 있을까 싶다. 차가타이는 자신의 군주에게 충성했지만 군주가 법을 어기면 엄하게 꾸짖었다. 그러나 이 나라는 대통령이 법을 어기면 엄하게 꾸짖는 원칙주의자와 공명정대한 인물을 찾기 대단히 어렵다. 원래 이 나라 공직자들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달콤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에게 들리는 쓴소리는 차단하기에 바쁘다. 윗물이 그러니 아랫물인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차가타이는 법전에 나와 있는 원리 원칙대로 정당한 비판을 하였지만 이 나라의 인물들은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니 유치한 비난과 어린 애들이나 할법한 반박이 이 시대에 난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은 차가타이와 같은 원리원칙적이고 공명정대한 인물이 필요하다. 내가 차가타이를 현 시대 대한민국에 소환한 것은 정부 정책의 미흡함, 그리고 한국 정치에서 원리원칙적이지 않고 공명정대하지 않는 모습들,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유치한 네거티브 현상들을 보며 해외에 나와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한심해 보여서다. 이 나라는 정말 차가타이 같은 인물이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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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타이(Чагатай)를 소환한 현 시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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