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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새의 언어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8) 참새의 언어 박향숙(1966~ ) 밝은 햇살 아래 산수유 붉은 나뭇가지에 짹짹 짹짹 신나게 지껄이는 참새 가족의 전원田園 오늘은 한 마리가 날아와 짹 짹 짹 한 마디씩 툭 툭 뱉는다 외로운 걸까 그리운 걸까 아니면 가슴이 아픈 걸까 대화가 안 되는 화창한 아침이 슬프다 박향숙 시인 충남 천안 출생. 월간 『시사문단』으로 등단. <한국시사문단작가협회> 회원, <반여백> 동인, <오투인헤어디자인연구소> 운영. 천안시 1호 미용명인, 김해 비엔날레 국제미술제 초대작가, 한양예술대전 초대작가. 시집 『참새의 언어』가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8번째 시는 박향숙 시인의 “참새의 언어”입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에는 조그마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하루 중 가장 기분이 좋은 때는 새벽을 알리는 온갖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들릴 때입니다. 녀석들은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아니하고 새벽마다 찾아와 잘도 재잘거립니다. 나른한 기분으로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녀석들의 지저귐을 듣고 있노라면, 여기가 마치 천상의 세계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직박구리, 딱새, 곤줄박이, 박새, 동고비 등이 목청을 가다듬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면 그들은 대화를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만의 리듬과 흐름이 보입니다. 대화에 참여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은 참새들의 대화입니다. 유독 청아하게 집단을 이루며 재잘거립니다. 발레를 보는 듯한, 오페라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아침 일찍 듣는 참새들의 재잘거림은 환상입니다. 여름철에 듣는 매미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무엇인가가 그들의 대화에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한 마리가 날아와/ 짹 짹 짹/ 한 마디씩 툭 툭 뱉”고 맙니다. “참새 가족의 전원”이 아닙니다. 그들과 동화되어 같이 합창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보려 했던 마음이 어느새 사라집니다. 그것은 단발마처럼 들리는 참새 한 마리의 “외로운” “그리운” “가슴이 아픈” 소리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참새에게 다가가 연유를 물어보고 싶지만 “대화가 안 되”는 현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여기서 참새는 자연 동화를 표현하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실상일 수도 있습니다. 대화는 단절되고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이웃에 대한 안타까움일 수도 있습니다. “신나게 지껄이는” 참새처럼 일상이 회복되어 “화창한 아침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참새의 언어”가 기다려지는 아침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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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론
    2023-04-27
  • 소금의 행로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6) 소금의 행로 이향지(1942~ )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빗방울은 소금이 되지 못한다 고기의 내장을 들락거리지 않는 물은 거름이 되지 못한다 어제도 나는 산을 노래했다 산은 나를 노래하지 않았다 먼 것이 먼 것을 가리는 날 혓바닥에 얹히는 소금 이향지 시인 1942년 경상남도 통영 출생. 1989년 《월간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시집 『괄호 속의 귀뚜라미』 『구절리 바람 소리』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내 눈앞의 전선』 『햇살 통조림』 『야생』 에세이집 『산아, 산아』 『북한 쪽 백두대간, 지도 위에서 걷는다』 현대시작품상을 수상.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6번째 시는 이향지 시인의 “소금의 행로”입니다. ‘삶을 어떻게 사느냐’하는 문제는 난제 중의 난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애에 빠지다보면 이기주의, 개인주의라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이일 저 일에 참견하다보면 ‘오지랖 넓다’고 힐난을 받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타인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행태를 타고났습니다. 이런 성격은 위로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기질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남의 일을 해결하는데 늘 앞장서 오셨습니다. 아버지 논을 저당 잡아 빚보증을 서주기도 하셨습니다. 어릴 때 이런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핏줄은 속일 수 없나 봅니다. 가장 큰 원인은 아버지의 인간적인 면모를 존경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는 면도 이런 성향을 공고하게 했겠지요. “빗방울”이 “소금”이 되지 못하고 “고기의 내장을 들락거리지 않은 물”이 “거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껴안지 않고 그들과 교감하고 소통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통렬한 자아성찰입니다. “산을 노래했”음은 자기반성입니다. 반성 없이 “소금”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소금은 자기를 희생하면서 생물이 부패하는 걸 막아줍니다. 혼탁한 세상을 깨끗하게 해줍니다.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먼 것이 먼 것을 가리는 날”일지라도 “혓바닥에 얹히는 소금”처럼 날 희생하며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름답습니다. “소금의 행로”라는 제목을 다시 한 번 음미하며 시를 또 읽게 됩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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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론
    2023-03-02
  • 오죽을 노래함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5) 오죽을 노래함 박문재(1942~ ) 단단한 쇠도 녹인다는 중복 무렵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청명한 바람 소리 같기도 남녘 보길도 갯돌 구르는 소리 같기도 연방 솨아 솨아 솨아 솨아 고샅 어디쯤 조선 장맛 익어가는 정갈한 소리 그것도 곱 삭힌 소리꾼의 구성진 음성 고려 여인네 상열지사 열두 폭 구구절절 사연 같기도 하여 가만히 문 열고 마당귀에 나가다 보니 오죽 몇 그루와 산죽 서너 그루가 넌지시 정 주며 서로가 합궁하는 솨아 솨아 솨아 솨아 차르르 솨아 차르르르... 저렇듯 절묘한 사랑의 소리.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5번째 시는 박문재 시인의 “오죽을 노래함”입니다. 백과사전에서 “오죽”을 찾으면 ‘볏과에 속하는 검은 대나무. 원산지는 일본·중국·한국이다. 키 약 2~20m, 지름 5~8cm 정도이며, 줄기는 검다. 잎은 길이가 약 10cm 정도이며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잔 톱니가 있다. 꽃은 6~7월에 피고, 열매는 11월에 익는다. 줄기의 색은 처음에는 초록색이나 차츰 검정으로 변한다. 관상용으로 재배하며, 다 자란 것은 죽세공의 재료로 쓰인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오죽이 어떡하면 “절묘한 사랑의 소리”를 내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사전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전에서는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시인의 육감을 통해서만이 오죽과 산죽이 내는 사랑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시인의 육감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은 분명 산 밑에 조그마한 초가를 짓고 산내음과 산바람을 맞으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초가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보길도 갯돌 구르는 소리”와 “조선 장맛 익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오죽에 달빛 스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으신지요? 산죽에 깝죽대는 나비의 날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지요? 놀래라, 오죽과 산죽이 만나 “솨아 솨아 솨아 솨아 차르르/ 솨아 차르르르...” “절묘한 사랑의 소리”를 잉태하고 있네요.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 육감을 통해서만이 들을 수 있는 자연의 교집합, 시인이 인도해준 해설서를 따라 정신의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몫...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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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론
    2023-02-01
  • 바느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4) 바느질 김정조(1954~ ) 상처를 꿰맨다 아파서 해지고 구멍 난 것들 모두 가져다 상처를 메꾼다 늦은 밤 불면을 바느질하던 어머니도 숱한 상처를 다독이고 기웠으리라 가난과 상처를 달래던 바늘과 실 어머니의 한 땀 한 땀으로 치유되던 날들 딸아, 한 땀이라도 정성을 기울이렴 김정조: 대전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3년 『안성문학』으로 작품 활동, 2011년 『문학나무』 신인상, 2015년 시집 『따스한 혹한』 출간, 문학나무숲 시인상, 한국미소문학대상, 한국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안성문협 부지부장 역임, 한국미소문학 부주간 역임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4번째 시는 김정조 시인의 “바느질”입니다. 아침에 늦은 출근을 하고 있는데, 중년의 여인 두 분이 반갑게 얼싸안으며 만남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금 문화센터 가는 길이에요?” “요즘 안 보이셔서 궁금했어요.” “지금도 에어로빅하세요?” “살이 잘 안 빠지네요. 그래서 약 먹고 있어요.” 두 분의 해후와 안부는 끝을 모를 정도입니다. 두 분의 반가움을 뒤로 하고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골 어머니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가 안 좋으셔서 먹을 것을 제대로 드시기 못 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며칠 전에 들었습니다. 어머니뿐만이 아닙니다. 장모님은 무릎이 성치 않으셔서 잘 걷지를 못하고 계시다는 전갈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다 그런 분들이십니다. “가난과 상처”를 이겨내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입니다. 가난을 “바느질”로 이겨내신 분들입니다. 우리의 가난은 “어머니의 한 땀 한 땀으로 치유되”었던 것입니다. “불면”의 “바느질”이 우리의 “상처를 메”꾸어 주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건강을 위해 오늘날 문화센터에서 우아하게(?) 운동을 하는 것도, 난을 치는 것도, 어머니의 “숱한 상처를 다독이고 기웠”을 “바느질”이 없었다면 가당치나 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앞으로의 삶은 “정성을 기울”여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이 시를 읽으며 하게 됩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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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7
  • 말의 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3) 말의 뼈 이영옥(1960~ ) 발을 버린 말 물 밑에서 조용조용 흘러가는 말 한 번씩 수면 위로 허우적거리는 루머의 팔과 다리 떠도는 말에서 귀를 건져낸다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입술 위에 위태롭게 올린 말들 먼저 등을 돌린 말이 가장 따뜻했다 친절한 입 모양은 도끼날을 감추기에 좋다 귓속에 사는 주인 없는 말이 벌 떼처럼 잉잉댄다 집중호우가 지나가면 범람하는 말들이 괴성을 지른다 천천히 귀가 멀어 버린 강 탁한 강물이 맑아지면 발을 찾으러 온 말들이 뼈를 중심으로 몰려든다 입술이 촉촉해진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3번째 시는 이영옥 시인의 “말의 뼈”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온갖 말의 홍수 속에 빠져 삽니다. 말 중에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위안을 주는 말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상처를 주고 내상을 주는 말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한 사람의 생을 좌우하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말의 소중함을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거나 ‘남아일언중천금’이란 속담으로 표현했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며칠 전 일입니다. 허리 통증으로 주말 이틀을 누워 있는데, 한 미용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가을 여행 삼아 설악산을 갔는데, 그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감흥을 함께 하고자 전화했다고 합니다. 그러곤 몇 년 전, 필자가 관여하고 있는 ‘뷰티라이프사랑모임’에서 주최한 베트남 여행 때의 추억을 소상하고도 아름답게 들려줍니다. 그런 추억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고도 말합니다. 원장님의 잔잔한 목소리와 추억에 잠긴 통화에 필자는 아픔을 금방 잊을 수가 있었습니다. 통증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습니다. 카카오톡으로 보내온 당시의 사진을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말 한 마디의 힘은 이렇게 큽니다. 반대의 경우도 많습니다. “귓속에 사는 주인 없는 말”이나 “범람하는 말들이 괴성을 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말이 말 같지 않은 경우입니다.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말의 힘! 예쁘고 의욕을 주고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 말이 절실한 어려운 세상입니다. 시인이 기다리는 “말의 뼈”를 챙기고 싶은 때이기도 합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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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12
  • 교감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2) 교감 유종인(1968~ ) 오일장에서 산 찐 옥수수입니다 그대와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그늘진 벤치에 앉습니다 옥수수 허리를 뚝 분질러 나누고 입에 뭅니다 내가 그대보다 큰 옥수수를 불어 봅니다 이런 나의 욕심도 가히 좋습니다 이럴 때 꼭 하모니카를 떠올리는 상투성을 아직은 초여름 농담처럼 써먹을 만합니다 옥수수가 내 안으로 야금야금 넘겨 심어집니다 그럴 때 말입니다 길 건너 철길에 기차가 씨익 잇몸이 보일 듯 말 듯 거듭거듭 지나갑니다 빈 철길은 기차를 순식간에 물었다 놓습니다 철길도 뭔가 시장한 음악을 틀었다 껐다는 생각입니다 옥수수의 말단에 내 식탐이 달려 있고 철길의 현(絃) 위를 기차가 눌렀다 갑니다 서로 모르는 가운데 스쳐 가는 앎입니다 옥수수를 흘려보냈습니다 노란 기차의 음(音)을 잠시 뜯었습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2번째 시는 유종인 시인의 “교감”입니다. “교감”을 하며 생을 공유하면서 사는 지인들이 몇이나 되나요? 어젯밤 일입니다. 평소 술을 자주 같이 마시는 미용인 한 분이 저녁 늦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 전날, 정말 즐겁게 저녁 모임을 가졌었는데, 그날 밤을 상기하며 마냥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즐거웠던 추억을 다시 공유하고자 전화했다며, 그런 모임을 빨리 한 번 더 추진하자고 부추깁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얼마나 그 모임이 재미있었길래, 아직도 못 잊으시고 이 밤에 전화하셨대. 그 맘 이해하겠네.” “교감”은 정서의 합일에서 시작됩니다. 봄날 달빛 아래 흐드러지게 핀 배꽃, 여름날 비 오는 개울에서의 수영, 가을날의 이삭줍기, 겨울날 한밤중에 듣는 눈 쌓인 소나무가지 부러지는 소리 등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을 지을 수 있는 교감은 시골뜨기들이 아니면 나눌 수 없는 것들이지요. 언젠가 여행 중 지는 석양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도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것을 보고는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어느 소설가의 기사를 읽고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옥수수”와 “하모니카”, “기차”는 “상투”적이지만 우리에게 어떤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킵니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표현력도 맛깔나게 많이 등장합니다. “철길에 기차가 씨익 잇몸이 보일 듯 말 듯”, “철길은 기차를 순식간에 물었다 놓습니다”, “철길의 현 위를 기차가 눌렀다 갑니다” 등의 표현은 “서로 모르는 가운데 스쳐 가는 앎”처럼 정신적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읽고 싶어지는 유종인 시인의 “교감”이었습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 문화
    • 평론
    20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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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드름의 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7) 고드름의 뼈 조선의(1960~ ) 빙하기를 표류한 빛살 속에서 숨소리를 죽이고 빤히 나를 바라보는 길쭉한 물방울 병정들의 연대가 깜냥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드름이 향한 곳은 아찔한 처마 끝이거나 어금니를 앙다물어야 하는 땅바닥 이렇다 할 옹이도 없이 아래로 오르는 정점 설원에 닿지 못해 사라진 입김들이 난반사되듯 구름의 역린에 달라붙는다 흔한 곁가지 하나 내지 않고 거꾸로 매달려 생을 몰두하는 무골의 종족 제 살을 훑어 뾰족한 마음의 가시마저 녹여내는 안간힘이 그 존재를 증명한다 눈꽃 한 송이 필 수 없는 사막 어디쯤 저 몸뚱이 툭 부러뜨려 뚝딱 집 한 채 지으면 생의 단면들이 입자로 부서져 내 척박한 체념까지 한꺼번에 쓸어가 버릴까 한순간도 감출 수 없는 투명한 기척 결기를 세웠던 뼈들이 물로 녹아든다 조선의 시인 수상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기독신춘문예> 당선, <미션21> 신춘문예 당선. 김만중문학상, 거제문학상, 신석정촛불문학상, 백교문학상, 등대문학상, 안정복문학대상, 신성문학대상, 송순문학상 등 수상 시집 『당신 반칙이야』 『어쩌면 쓰라린 날은 꽃피는 동안이다』 『빛을 소환하다』 『돌이라는 새』 『꽃, 향기의 밀서』 『꽃으로 오는 소리』 『반대편으로 창문 열기』 등이 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7번째 시는 조선의 시인의 “고드름의 뼈”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래를 향하여 지형에 구애 받지 않고 흐르고 흘러 마침내 큰 집단을 이룹니다. 물은 또한 액체에서 고체로, 기체로 변화무쌍하게 변신을 잘도 합니다. 그러나 낮은 데로 임하는 자세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수증기가 되어서도 하늘은 낮은 곳에 불과할 뿐입니다. “빙하기를 표류한 빛살 속”에서 “길쭉한 물방울 병정들의 연대”를 한 것이 “고드름”입니다. 시간을 켜켜이 쌓아온 고드름의 역사입니다. 동물이나 식물 등 생명이 있는 것들은 “옹이”를 만들어 상처를 치유하거나 자기 발전합니다. 대나무의 마디가 그렇고, 시골 동네 앞 늠름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의 많은 옹이가 그렇고, 그것들을 망라하는 나무들의 나이테가 그렇습니다. 고드름은 다릅니다. “고드름이 향한 곳은/ 아찔한 처마 끝이거나 어금니를 앙다물어야 하는 땅바닥”입니다. 그러나 낮은 곳을 향하는 본성은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상처는 있을망정 자기 안으로만 식힙니다. 그리하여 자신 안에 “옹이도 없이” “곁가지 하나 내지 않고/ 거꾸로 매달려 생을 몰두하는 무골의 종족”임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세상이 시끌벅적합니다. 모두 자기주장뿐입니다. 단단한 주먹과 힘찬 구호만이 세상을 살아내는 무기인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 “제 살을 훑어 뾰족한 마음의 가시마저 녹여내”며 “존재를 증명”하는 고드름을 보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기를 세웠던 뼈”마저 “물로 녹아”내는 지혜가 그리운 시대입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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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론
    2023-03-30
  • 소금의 행로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6) 소금의 행로 이향지(1942~ )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빗방울은 소금이 되지 못한다 고기의 내장을 들락거리지 않는 물은 거름이 되지 못한다 어제도 나는 산을 노래했다 산은 나를 노래하지 않았다 먼 것이 먼 것을 가리는 날 혓바닥에 얹히는 소금 이향지 시인 1942년 경상남도 통영 출생. 1989년 《월간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 시집 『괄호 속의 귀뚜라미』 『구절리 바람 소리』 『물이 가는 길과 바람이 가는 길』 『내 눈앞의 전선』 『햇살 통조림』 『야생』 에세이집 『산아, 산아』 『북한 쪽 백두대간, 지도 위에서 걷는다』 현대시작품상을 수상.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6번째 시는 이향지 시인의 “소금의 행로”입니다. ‘삶을 어떻게 사느냐’하는 문제는 난제 중의 난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애에 빠지다보면 이기주의, 개인주의라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이일 저 일에 참견하다보면 ‘오지랖 넓다’고 힐난을 받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타인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행태를 타고났습니다. 이런 성격은 위로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기질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남의 일을 해결하는데 늘 앞장서 오셨습니다. 아버지 논을 저당 잡아 빚보증을 서주기도 하셨습니다. 어릴 때 이런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핏줄은 속일 수 없나 봅니다. 가장 큰 원인은 아버지의 인간적인 면모를 존경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는 면도 이런 성향을 공고하게 했겠지요. “빗방울”이 “소금”이 되지 못하고 “고기의 내장을 들락거리지 않은 물”이 “거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껴안지 않고 그들과 교감하고 소통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통렬한 자아성찰입니다. “산을 노래했”음은 자기반성입니다. 반성 없이 “소금”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소금은 자기를 희생하면서 생물이 부패하는 걸 막아줍니다. 혼탁한 세상을 깨끗하게 해줍니다.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먼 것이 먼 것을 가리는 날”일지라도 “혓바닥에 얹히는 소금”처럼 날 희생하며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름답습니다. “소금의 행로”라는 제목을 다시 한 번 음미하며 시를 또 읽게 됩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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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론
    2023-03-02
  • 오죽을 노래함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5) 오죽을 노래함 박문재(1942~ ) 단단한 쇠도 녹인다는 중복 무렵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청명한 바람 소리 같기도 남녘 보길도 갯돌 구르는 소리 같기도 연방 솨아 솨아 솨아 솨아 고샅 어디쯤 조선 장맛 익어가는 정갈한 소리 그것도 곱 삭힌 소리꾼의 구성진 음성 고려 여인네 상열지사 열두 폭 구구절절 사연 같기도 하여 가만히 문 열고 마당귀에 나가다 보니 오죽 몇 그루와 산죽 서너 그루가 넌지시 정 주며 서로가 합궁하는 솨아 솨아 솨아 솨아 차르르 솨아 차르르르... 저렇듯 절묘한 사랑의 소리.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5번째 시는 박문재 시인의 “오죽을 노래함”입니다. 백과사전에서 “오죽”을 찾으면 ‘볏과에 속하는 검은 대나무. 원산지는 일본·중국·한국이다. 키 약 2~20m, 지름 5~8cm 정도이며, 줄기는 검다. 잎은 길이가 약 10cm 정도이며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에는 잔 톱니가 있다. 꽃은 6~7월에 피고, 열매는 11월에 익는다. 줄기의 색은 처음에는 초록색이나 차츰 검정으로 변한다. 관상용으로 재배하며, 다 자란 것은 죽세공의 재료로 쓰인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오죽이 어떡하면 “절묘한 사랑의 소리”를 내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사전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전에서는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시인의 육감을 통해서만이 오죽과 산죽이 내는 사랑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시인의 육감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은 분명 산 밑에 조그마한 초가를 짓고 산내음과 산바람을 맞으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초가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보길도 갯돌 구르는 소리”와 “조선 장맛 익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오죽에 달빛 스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으신지요? 산죽에 깝죽대는 나비의 날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지요? 놀래라, 오죽과 산죽이 만나 “솨아 솨아 솨아 솨아 차르르/ 솨아 차르르르...” “절묘한 사랑의 소리”를 잉태하고 있네요.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 육감을 통해서만이 들을 수 있는 자연의 교집합, 시인이 인도해준 해설서를 따라 정신의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몫...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 문화
    • 평론
    2023-02-01
  • 바느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4) 바느질 김정조(1954~ ) 상처를 꿰맨다 아파서 해지고 구멍 난 것들 모두 가져다 상처를 메꾼다 늦은 밤 불면을 바느질하던 어머니도 숱한 상처를 다독이고 기웠으리라 가난과 상처를 달래던 바늘과 실 어머니의 한 땀 한 땀으로 치유되던 날들 딸아, 한 땀이라도 정성을 기울이렴 김정조: 대전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3년 『안성문학』으로 작품 활동, 2011년 『문학나무』 신인상, 2015년 시집 『따스한 혹한』 출간, 문학나무숲 시인상, 한국미소문학대상, 한국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안성문협 부지부장 역임, 한국미소문학 부주간 역임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4번째 시는 김정조 시인의 “바느질”입니다. 아침에 늦은 출근을 하고 있는데, 중년의 여인 두 분이 반갑게 얼싸안으며 만남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금 문화센터 가는 길이에요?” “요즘 안 보이셔서 궁금했어요.” “지금도 에어로빅하세요?” “살이 잘 안 빠지네요. 그래서 약 먹고 있어요.” 두 분의 해후와 안부는 끝을 모를 정도입니다. 두 분의 반가움을 뒤로 하고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골 어머니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가 안 좋으셔서 먹을 것을 제대로 드시기 못 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며칠 전에 들었습니다. 어머니뿐만이 아닙니다. 장모님은 무릎이 성치 않으셔서 잘 걷지를 못하고 계시다는 전갈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다 그런 분들이십니다. “가난과 상처”를 이겨내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입니다. 가난을 “바느질”로 이겨내신 분들입니다. 우리의 가난은 “어머니의 한 땀 한 땀으로 치유되”었던 것입니다. “불면”의 “바느질”이 우리의 “상처를 메”꾸어 주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건강을 위해 오늘날 문화센터에서 우아하게(?) 운동을 하는 것도, 난을 치는 것도, 어머니의 “숱한 상처를 다독이고 기웠”을 “바느질”이 없었다면 가당치나 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앞으로의 삶은 “정성을 기울”여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이 시를 읽으며 하게 됩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 문화
    • 평론
    2023-01-17
  • 말의 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3) 말의 뼈 이영옥(1960~ ) 발을 버린 말 물 밑에서 조용조용 흘러가는 말 한 번씩 수면 위로 허우적거리는 루머의 팔과 다리 떠도는 말에서 귀를 건져낸다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입술 위에 위태롭게 올린 말들 먼저 등을 돌린 말이 가장 따뜻했다 친절한 입 모양은 도끼날을 감추기에 좋다 귓속에 사는 주인 없는 말이 벌 떼처럼 잉잉댄다 집중호우가 지나가면 범람하는 말들이 괴성을 지른다 천천히 귀가 멀어 버린 강 탁한 강물이 맑아지면 발을 찾으러 온 말들이 뼈를 중심으로 몰려든다 입술이 촉촉해진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3번째 시는 이영옥 시인의 “말의 뼈”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온갖 말의 홍수 속에 빠져 삽니다. 말 중에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위안을 주는 말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상처를 주고 내상을 주는 말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한 사람의 생을 좌우하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말의 소중함을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거나 ‘남아일언중천금’이란 속담으로 표현했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며칠 전 일입니다. 허리 통증으로 주말 이틀을 누워 있는데, 한 미용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가을 여행 삼아 설악산을 갔는데, 그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감흥을 함께 하고자 전화했다고 합니다. 그러곤 몇 년 전, 필자가 관여하고 있는 ‘뷰티라이프사랑모임’에서 주최한 베트남 여행 때의 추억을 소상하고도 아름답게 들려줍니다. 그런 추억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고도 말합니다. 원장님의 잔잔한 목소리와 추억에 잠긴 통화에 필자는 아픔을 금방 잊을 수가 있었습니다. 통증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습니다. 카카오톡으로 보내온 당시의 사진을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말 한 마디의 힘은 이렇게 큽니다. 반대의 경우도 많습니다. “귓속에 사는 주인 없는 말”이나 “범람하는 말들이 괴성을 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말이 말 같지 않은 경우입니다. 사람들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말의 힘! 예쁘고 의욕을 주고 생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 말이 절실한 어려운 세상입니다. 시인이 기다리는 “말의 뼈”를 챙기고 싶은 때이기도 합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 문화
    • 평론
    2022-12-12
  • 교감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2) 교감 유종인(1968~ ) 오일장에서 산 찐 옥수수입니다 그대와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그늘진 벤치에 앉습니다 옥수수 허리를 뚝 분질러 나누고 입에 뭅니다 내가 그대보다 큰 옥수수를 불어 봅니다 이런 나의 욕심도 가히 좋습니다 이럴 때 꼭 하모니카를 떠올리는 상투성을 아직은 초여름 농담처럼 써먹을 만합니다 옥수수가 내 안으로 야금야금 넘겨 심어집니다 그럴 때 말입니다 길 건너 철길에 기차가 씨익 잇몸이 보일 듯 말 듯 거듭거듭 지나갑니다 빈 철길은 기차를 순식간에 물었다 놓습니다 철길도 뭔가 시장한 음악을 틀었다 껐다는 생각입니다 옥수수의 말단에 내 식탐이 달려 있고 철길의 현(絃) 위를 기차가 눌렀다 갑니다 서로 모르는 가운데 스쳐 가는 앎입니다 옥수수를 흘려보냈습니다 노란 기차의 음(音)을 잠시 뜯었습니다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2번째 시는 유종인 시인의 “교감”입니다. “교감”을 하며 생을 공유하면서 사는 지인들이 몇이나 되나요? 어젯밤 일입니다. 평소 술을 자주 같이 마시는 미용인 한 분이 저녁 늦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 전날, 정말 즐겁게 저녁 모임을 가졌었는데, 그날 밤을 상기하며 마냥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즐거웠던 추억을 다시 공유하고자 전화했다며, 그런 모임을 빨리 한 번 더 추진하자고 부추깁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얼마나 그 모임이 재미있었길래, 아직도 못 잊으시고 이 밤에 전화하셨대. 그 맘 이해하겠네.” “교감”은 정서의 합일에서 시작됩니다. 봄날 달빛 아래 흐드러지게 핀 배꽃, 여름날 비 오는 개울에서의 수영, 가을날의 이삭줍기, 겨울날 한밤중에 듣는 눈 쌓인 소나무가지 부러지는 소리 등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을 지을 수 있는 교감은 시골뜨기들이 아니면 나눌 수 없는 것들이지요. 언젠가 여행 중 지는 석양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도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것을 보고는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어느 소설가의 기사를 읽고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옥수수”와 “하모니카”, “기차”는 “상투”적이지만 우리에게 어떤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킵니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표현력도 맛깔나게 많이 등장합니다. “철길에 기차가 씨익 잇몸이 보일 듯 말 듯”, “철길은 기차를 순식간에 물었다 놓습니다”, “철길의 현 위를 기차가 눌렀다 갑니다” 등의 표현은 “서로 모르는 가운데 스쳐 가는 앎”처럼 정신적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읽고 싶어지는 유종인 시인의 “교감”이었습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 문화
    • 평론
    2022-10-28
  • 나무와 새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1) 나무와 새 조병도(1962~ ) 새들의 꿈에서 나무 냄새가 난다면* 나무들의 꿈에서는 새 냄새가 날까? 네가 그리운 날 나도 네 둥지에 깃들어 네 꿈을 꾼단다 그런 날 네 꿈에서도 내 냄새가 나니? *마종기 시인 시집 제목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인용.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1번째 시는 조병도 시인의 “나무와 새”입니다. 필자가 어렸을 적, 고향 마을 입구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위용을 뽐내며 마을의 수호신 마냥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느티나무는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놀다가 느티나무에 오르며, 나무 구멍이나 가지에 깃들어 있는 새들의 둥지를 뒤지기도 했습니다. 꼬마들의 기습에 놀란 새들의 소란스러운 울음소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묻히기가 다반사였지만, 지금도 새벽녘 일찍 눈을 뜨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 고향의 느티나무가 생각나곤 합니다. 느티나무는 마치 부모가 아이들을 돌보듯 많은 수의 새들을 품에 안은 채 세월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고향의 느티나무에 깃들어 있던 새들에게서는 “나무 냄새가” 나겠지요? 아니 느티나무 가지가지에서는 “새 냄새가” 날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소중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것들은 육감을 통해서 우리의 기억 속에 소환되고,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의 형태로 각인됩니다. 살다 보면 그리움에 흠뻑 젖어들 때가 있습니다. 고향의 품처럼, 어머니의 가슴처럼 빠져들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네가 그리울 날”이라면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요. 새들이 나무의 둥지에 깃들어 나무의 냄새를 느끼듯이 “네 둥지에 깃”들고 싶지만 그대는 부재. 그대의 부재는 그리움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그리고 그리움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나의 외로움은 끝을 모르는 세계로 빠져듭니다. 방법은 “네 꿈을”꾸는 것뿐. 내 그리움이, 외로움이 그대에 전달되기를, 그리하여 “네 꿈에서도/내 냄새가”나길.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 문화
    • 평론
    2022-09-22
  • 팔순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110) 팔순 이정록(1964~ ) 기사 양반, 잘 지내셨남? 무릎 수술한 사이에 버스가 많이 컸네. 북망산보다 높구먼. 한참 만이유. 올해 연세가 어찌 되셨대유? 여드름이 거뭇거뭇 잘 익은 걸 보니께 서른은 넘었쥬? 운전대 놓고 점집 차려야겄네. 민증은 집에 두고 왔는디 골다공증이라도 보여줄까? 안 봐도 다 알유. 눈감아드릴 테니께 오늘은 그냥 경로석에 앉어유. 성장판 수술했다맨서유. 등 뒤에 바짝 젊은 여자 앉히려는 수작이 꾼 중에서도 웃질이구먼. 오빠 후딱 달려. 인생 뭐 있슈? 다 짝 찾는 일이쥬. 달리다보면 금방 종점이유. 근디 내 나이 서른에 그짝이 지나치게 연상 아녀? 사타구니에 숨긴 민증 좀 까봐. 거시기 골다공증인가 보게. ◆이완근의 詩詩樂樂/시 읽는 즐거움의 110번째 시는 이정록 시인의 “팔순”입니다. 우리 민족은 분명 해학과 풍자, 골계미가 넘치는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지친 노동,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았으며, 삶의 곳곳에는 풍자와 낭만이 스며있습니다. 멋을 실천하며 살았던 우리 조상이었습니다. “팔순” 드신 할머니께서 무릎 수술을 하셨나봅니다. 장터라도 다녀오시려는지 시골버스에 타십니다. 거개의 시골버스 기사는 정다운 이웃과 같습니다. 시골길을 하도 달리다보니 승객들의 사정사정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이들은 대처로 다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뿐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농담을 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버스기사를 오랜만에 대하는 할머니의 농담이 정겹습니다. 맞받아치는 기사의 대답은 정겨움을 넘어 흥까지 유발합니다. 이어지는 할머니와 기사의 주고받는 대화가 텔레비전의 어느 코미디 프로보다 재미있습니다. ‘사는 재미란 마치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버스에 탄 다른 승객들은 두 분의 대화를 엿들으며 박장대소하고 있을 것입니다. 웃음소리에 놀라 보자기에 싸인 수탉은 냅다 두어 바퀴 굴렀을 듯도 합니다. 한바탕 웃음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는 버스. 그런 시골버스를 타고 싶습니다. 길은 덜컹거릴지 모르지만 마음만은 평안 그 자체일 것은 시골 완행버스 길. 시골 버스길을 달리면서 먼저 가셨거나, 그리운 고향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님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 같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은 우리 마음속 풍경을 그리는 화가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이완근(시인, 뷰티라이프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 문화
    • 평론
    2022-09-02
  • 울산시, '2022년 도심 속 주제(테마)정원 조성사업’ 추진
    울산시는 3월 15일 그린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정원문화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2022년 도심 속 주제(테마)정원 조성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대상지는 중구 성남동 어린이역사체험관 일원 테마정원과 남구 신정동 신정공원 일원 테마정원 등 2곳이다. 중구 성남동 어린이역사체험관 일원 주제(테마)정원은 면적 100㎡, 어린이의 동심을 담은 아기자기한 골목정원으로 오는 5월 착수, 10월 준공될 예정이다. 남구 신정동 신정공원 일원 주제(테마)정원은 면적 450㎡, 오색 히아신스 테마정원 및 휴게공간으로 3월 착공, 12월 준공될 계획이다. ‘도심 속 주제(테마)정원 조성사업’은 동네 자투리땅, 유휴부지 등을 생활권 녹색공간의 다양한 형태로 재구성(리뉴얼)하여 생활 속 정원문화 확산 시범 본보기(모델)로 구축하는 사업이다. 국가정원이라는 공간적 벽을 넘어, 일상생활 공간을 새로운 자연치유(힐링) 및 문화공간으로 창출하여 자유와 휴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울산시는 주제(테마)정원이 조성되면 도시숲정원관리인, 시민정원사, 큰애기 정원사, 공원돌보미 등과 함께 유지 관리할 계획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정원이 시민들에게 아름답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함은 물론 휴식과 치유, 소통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언제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정원’을 지속적으로 확대 조성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울산시는 2022년 현재 민간정원 3개, 공동체정원 1개가 지정되었으며 실습정원 15개, 생활밀착형정원 4개소가 조성 완료 또는 조성 중이다.
    • 문화
    • 평론
    20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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