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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추사관과 유배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가 있다. 당시 거주했던 초가는 마을 청년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친 곳이다. 뛰어난 예술가를 접하지 못해 지식에 목말라 있던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추사 김정희는 큰 스승이었으리라. 추사관에는 작품 세계관, 세한도를 통한 예술관, 최후의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다. 대정읍 일대는 김정희가 추사체를 완성한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서화가로 뛰어난 작품을 남겼고, 불교학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청나라 유학자들에게도 널리 이름을 떨친 김정희는 당정에 휘말려 1840년부터 1848년까지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어릴때부터 천재적인 예술성을 타고난 그는 부유하게 살았던 당대 명문가였기에 척박한 미개척의 제주 생활은 얼마나 험난했을지 짐작해볼 뿐이다. 고통스런 현실속에서 예술가가 느꼈을 인간에 대한 배신과 고독을 그림과 서체로 남겼다.


특히 세한도는 제주도 유배 시절, 외롭고 힘없는 자신의 처지를 예술혼으로 불태운 대표작이다. 시리도록 새하얀 토담집 한채와 그 집을 둘러싼 네 그루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쓸쓸하다. 그림의 중심에는 백송이 보인다.썩은 몸통에 구부러진 가지 하나가 추사의 이름을 받치고 있다.

 

백송의 절개를 이상적에 비유하였고, 절망스런 유배지에서 추사가 보내는 구조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장무상망) 인장으로 마무리하는데 뜻은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로 제자 이상적에게 주었다. 이상적은 귀한 서책을 보내는 등 물질적 정신적 성심을 다하였기에 스승이었던 추사의 선물이었다.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중국 연경으로 가져가 문인들과 시사회를 열었다.

 

 

세한도를 칭송하는 찬시를 받아 그림에 붙여 긴 두루마기 형태가 되었다. 또한 추사의 편지와 보석같은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감상할 수 있는 추사관은 유배 당시의 모습을 보존해 두고 있다. 추사의 동상을 바라보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모든 세상의 권력과 이치를 초월한듯 굴곡많은 한평생 오로지 독창적인 추사체를 완성한 추사 김정희. 그림 속 절제된 기교로 고뇌하며 이룬 문화의 경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벗들의 신의와 우정은 척박한 유배지에서 점점 노쇠해가는 대가를 끊임없이 정진해 나가도록 하는 힘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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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서체로 예술혼을 불태운 추사 김정희를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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