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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겔 철학, 그 역사적 전개와 의미
    지금까지의 서양철학 중 가장 난해한 철학이 있다면, 과연 어떤 철학일까? 필자가 이에 대해 답변을 하자면, 당장 떠오르는 철학자는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년-1831)이다. 누군가 그냥 무턱대고 헤겔 철학이 다들 어렵다고 하니 도대체 어떤 철학인지 한번 읽어보자는 의도로 헤겔의 저작을 읽어보기 시작했다간 고작 몇 줄 정도만 읽고 곧장 한목소리로 무슨 말인지 몰라 너무 어렵다거나 혹은 이게 무슨 철학인지 모르겠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헤겔 철학을 그냥 포기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양상은 오늘날에만 해당하는 특이한 일이 아니고, 헤겔이 생존했던 당시에도 매번 있었던 터라 가히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독일어에 능숙한 사람이더라도 헤겔 철학 앞에서는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예외 없이 두 손을 들기 마련이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처럼 어려운 헤겔 철학이 그대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당시에도 오늘날에도 서양철학에 가장 영향력을 끼친 철학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헤겔 철학에 동조하든 반대하든 상관없이 철학자라면 헤겔 철학이 돌파해야 할 거대한 바위산임을 뜻한다. 그러나 오히려 헤겔 철학을 돌파해 보겠다는 의도로 시작했던 야심에 가득 찬 계획들이 어느 순간 그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정지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계획들은 헤겔 철학 전체가 아니라 단지 일부만을 이용해서 각자의 철학에 활용할 따름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헤겔 철학을 잘 활용한 각자의 철학이 오히려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되었으며, 헤겔 철학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음이 확인된다. 헤겔 철학은 당시에 좌파와 우파로 갈라져 치열한 논쟁을 서로 벌였으며, 그 이후로 신헤겔주의, 마르크스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포스트모더니즘, 분석철학, 실용주의, 현상학, 실존주의, 해석학 등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신헤겔주의는 헤겔 철학의 관념론과 역사주의에 치중한 결과, 헤겔 철학의 변증법은 사상(捨象)해버렸다. 마르크스주의는 헤겔의 관념론을 비판하고, 합리적 핵심(der rationale Kern)인 변증법을 취했지만, 그 이후로 독단적 교조화 및 여러 분파로 분열양상을 보였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해서, 헤겔과 마르크스의 관계를 중도로 돌리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사회비판이론으로 귀결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헤겔 철학의 이성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출발했지만, 오히려 현실의 대안으로서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분석철학은 헤겔 철학의 개념론을 언어분석철학에 활용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헤겔 철학의 사변적 성격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용주의는 헤겔 철학에 대한 역사철학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현상학은 독일 현상학보다 프랑스 현상학에서 헤겔 철학의 긍정적인 면을 되살리기에는 근본적으로 헤겔 철학 전체에 해당하지 않는다. 실존주의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는 헤겔 철학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귀결되었다. 해석학은 헤겔 철학을 독백이 아니라 대화라는 측면에서 다루기는 했지만, 헤겔 철학의 논리적 체계보다는 자의적 해석의 가능성만 열어 놓게 되었다. 그 외에도 비록 헤겔이 동양철학에 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국과 일본 등등에서 헤겔철학과 동양철학의 비교연구도 황행(橫行)하고 있다. 이처럼 헤겔 철학의 영향력이 지대했던 것은 헤겔 철학이 학문의 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철학적 사유를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전개했으며,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의 계기를 변증법적 사유의 힘으로 필연성을 도출해냈기 때문이다. 물론 헤겔 자신은 이를 완벽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현재 입장으로 보면, 곳곳에 허점도 있다. 그러나 유한한 삶을 영유하는 한 개인으로서 인간이 이 정도로 실로 엄청난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 낸 것은 분명히 철학사에 영원히 빛날 업적이라 하겠다. 헤겔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 덕분에 우리는 헤겔 철학이라는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 유산은 독일에만 한정되어, 독일 계몽주의의 산물이라는 평가를 넘어서 세계적 자산이 되었다. 헤겔 철학에는 그리스 철학, 중세 신비주의, 범신론, 계몽주의, 낭만주의, 정치경제학, 사회계약론, 칸트 철학, 피히테 철학과 셸링 철학 등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또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 법철학, 역사철학, 종교철학, 미학, 철학사 등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 모든 분야가 서로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헤겔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단순히 특정한 영역에서 몇몇 구절만을 읽고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경우, 헤겔 철학에 대한 오해가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는 없으며, 스스로 미로에 갇힌 채 착종(錯綜)된 모순이 휩싸이고 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헤겔 철학에 대한 이해는 일단 고사(枯捨)하고,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봉착하면서 마치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헤겔 자신의 서술방식이 사변적인 탓에 야누스적 이중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때론 혼란스럽기도 하고, 분명한 일관성이 다소 없거나, 혹은 헤겔 자신의 오류로 인해 진위여부(眞僞與否)에 관한 논쟁거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헤겔 사후 지금까지도 헤겔 철학은 이러한 문제로 인해 각자도생(各自圖生)에 근거해서 전개되어왔다. 그러다 보니 헤겔 철학에는 여전히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남아 있고, 다만 누구든 그럴듯하게 타당하게 보이는 근거로 단지 각자의 주장이 제시되는 선에서 헤겔 철학을 논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종종 헤겔 철학의 핵심 개념인 변증법에 관한 논의를 회피한 채 어떤 하나의 해석만이 올바르다든가, 문자적 이해에만 몰두하게 되었다. 이것은 헤겔 철학이 지니는 사유의 역동성과 역사성보다는 헤겔 철학을 개념의 논리로만 만들고 더욱 추상적으로 만드는 결과가 되었다. 더 나아가 헤겔 철학에 대한 핵심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논의하기보다 특정한 개념의 의미를 놓고 각자의 관점만을 관철하려는 틀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은 헤겔 철학에 관한 각자의 이해방식이 빈약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헤겔은 철학의 첫 번째 조건을 거론하면서 진리에 대한 용기와 인간 정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강조했다. 우주의 본질이 인간 정신 앞에서 열리고, 우주의 풍부함과 깊이가 인간 정신 앞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헤겔의 말은 다소 과장되기는 했지만,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는 한다. 어쩌면 헤겔의 이 말은 많은 사람에게 인간 정신의 위대함과 위력을 한껏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 정신을 스스로 최고의 가치라고 여길 만한 것이라 해도 괜찮다는 뜻에서 영감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반대로 부정적으로 보면, 과연 그런 것이 인간 정신에 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헤겔 철학에 대한 격렬한 비판은 바로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심지어 헤겔 철학을 붕괴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비판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문제는 헤겔 철학 내부에 한정해서 다루어져서는 안 되고, 오히려 헤겔 철학이 외연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와 같은 비판이 때론 헤겔 철학에 대한 오해의 산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헤겔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첩경은 사실상 없다. 그 첩경이 어딘지를 우리가 우선 찾기보다는 헤겔 철학의 근본문제가 무엇인지에 관한 근본적 천착(穿鑿)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섣부른 얕은 지식으로 헤겔 철학을 좀 공부했다고 떠드는 자들은 이러한 근본적 문제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외면하고 뒤로 숨기 마련이다. 또 헤겔 철학에 대한 특정한 철학자의 관점이 마치 헤겔 철학 전체에 관한 이해라도 되듯이 말하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더 나아가 특정한 철학을 위한 우회로로 헤겔 철학에 접근하려는 자들도 헤겔 철학에 대한 진지한 숙고보다는 축소된 방식으로 헤겔 철학을 이해하려는 수준에 그친다. 그들은 모두 과연 헤겔 철학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일반론 수준에서 그저 그렇게 헤겔이 얘기했다는 정도가 전부일 뿐이다. 헤겔 철학은 여전히 땅속 깊이 묻혀 있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헤겔 철학의 비밀을 우리가 완전히 풀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가능성을 알 수 있다.
    • 칼럼
    • Nova Topos
    2024-09-05
  • 철학사는 지식이 아니라 사유의 역사적 축적이다.
    철학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랜 전통을 가진 인간 사유의 역사적 결정판이다. 21세기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철학사는 기원전 7세기 혹은 기원전 6세기를 포함해서 약 2600∼2700년 철학의 장구한 역사를 기술한다. 이처럼 장구한 철학사는 수많은 철학자 자신의 사상을 역사에 뿌려 놓았으며, 우리는 역사에 남겨진 흔적을 따라 철학자들의 사상을 역추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철학자의 사상이든지 선배 철학자들의 영향을 배경적으로 지니지 않은 철학자는 결단코 없다. 우리가 철학사를 고찰할 때 이를 간과하는 것은 특정한 철학에 대한 이해를 교조화하는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철학자든 자신의 철학이 역사적 축적 과정을 걸치면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그는 철학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거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한 철학자의 사상이 시대를 거스르거나 혹은 시대를 사상으로 포착하지 못해 그대로 사장되어 버리는 것이다. 둘째, 어떤 철학자가 자신의 사상을 기록이나 저술 혹은 자료 등등으로 남기는 것이 보통인데, 그것들이 대규모 전쟁이나 종교적-정치적 탄압 등등으로 소실되어 버린 것이다. 첫 번째 경우는 비록 당대에 철학자의 사상이 꽃을 피우지 못했지만, 그 이후에 새롭게 조명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기록이나 자료 등등이 남아 있다면, 그 철학자의 사상은 철학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두 번째 경우에는 원전의 소실로 인해 간접적인 자료들에만 의지해서 매우 제한적으로 철학자의 사상이 간략하게 소개될 것이다. 이 경우에는 간접적 자료들의 신빙성은 떨어지기 때문에, 산재해 있는 자료들에 대한 비판적 분석도 필요하고, 편집자 혹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어떤 철학자가 철학사에 들어가는지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두 가지 측면에서 보면 철학사는 계속 보충되고 개정되어야 한다. 어떤 철학이든 그 철학이 상당히 영향력이 있었고, 일정한 학파를 형성했거나 치열한 철학적 논쟁 등등이 있었다면, 분명히 특정한 철학자의 사상은 선배 철학자들의 사상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천차만별(千差萬別)이므로 천편일률(千篇一律)에 의해 단순히 재단하기 어렵다. 동양철학의 경우에는 특히 중국철학처럼 난세에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그와 같은 차이는 시대의 화두와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매우 상이하다. 이른바 철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인데, 이러한 논쟁은 중국철학의 성격을 추상적이기보다 실용적이면서도 동시에 이합집산(離合集散)을 하면서 서로 종합하는 방식으로 전개하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비교적 안정적인 시기에는 그 차이가 크기보다는 서로 다른 관점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긍정적으로 보면 어떤 철학을 심화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이와 반대로 중국철학이 지나치게 범주화나 도식화로 빠질 우려도 있다. 인도철학은 중국철학과 달리 전통주의와 비전통주의로 갈라지긴 하지만, 점차 힌두교를 정당화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인도철학에서도 다양한 학파가 서로 종합되고 각각의 철학자의 관점도 사뭇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슬람 철학은 초기에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점차로 기독교 혹은 유대교에 대한 대응으로 이슬람 교리를 정당화하는 철학으로 전개되었다. 서양철학의 경우에는 동양철학과 달리 어떤 철학이든 초기에는 유사한 출발점을 갖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철학자 자신의 독자적인 관점을 강하게 표명한다. 그리스 철학, 기독교 중심의 중세철학, 근대철학(르네상스 철학, 영국철학, 프랑스 철학, 독일 철학 등등), 현대철학 등등이 구별되지만, 각각 시대별로 다양한 학파를 만들어 일정한 흐름을 갖고 왔지만, 그 학파 내부에서도 각자의 철학적 관점이 뚜렷하게 구별된다. 고대-중세에는 종교와 철학이 강하게 결합하게 되지만, 근대-현대에는 자연과학이 발전에 힘입어 과학과 철학이 밀접하게 연관된다. 서양철학사는 시대별로 뿐만 아니라, 국가별로도 사뭇 다양한 학파나 이론 등등을 형성하면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은 고대철학이나 중세철학보다 근대철학 이후에서 두드러질 뿐인데, 그 까닭은 근대 이후에 철학사에 대한 체계적 서술이 그나마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을 보면, 그리스 철학이 원류이기는 하지만, 유럽 각국에 본격적인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중세에서 기독교를 정당화하는 역할만을 수행했다. 이후에 근대에 오면서 그리스 철학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종교에 대한 합리적 비판이 전개되면서, 서양철학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서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서양철학사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서술되다 보니 자의적 취사선택(取捨選擇)에 따라 편차가 클 뿐만 아니라, 고대철학이나 중세철학의 경우에 공통된 점이 발견되기 쉬웠던 반면, 근대나 현대로 오면서 일관성이 결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철학사는 한갓 철학자들의 생애를 열거하거나, 혹은 철학자의 삶과 관련된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미는 방식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또 철학사에서 거론된 철학자들의 사상들을 지식으로 이해하는 방식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철학사는 단순히 과거의 철학사상을 습득하는 관점에 머물고 만다. 철학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사가 역사적 축적의 결과물이고, 철학사에서 개인으로 한 철학자가 어떻게 자신의 사상을 역사의 장에서 영향력을 미쳤는지를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는 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사는 철학자들의 위인전도 아니고, 한갓 철학자들의 알려지지 않은 야사(野史)와 같은 것으로 모여서 잡담하는 소일거리도 아니다. 철학사는 오히려 사유의 보물이고, 인간 정신의 위대한 발자취로서 역사의 매 순간을 특정한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자리매김한다. 어찌 보면 철학사에서 중요한 것은 철학자의 이름이나 삶의 행적이 아니라, 철학자의 사상이 중요하다. 누군지 정확한 기록이나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는 사람이지만, 철학사에서는 상당히 박식하며, 현명하고,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자신의 논변을 펼친 철학자도 많다. 또 아무리 탁월한 철학자라도 철학사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얼마든지 될 수 있다. 그가 당대에 탁월하다는 평가가 있었을지 몰라도 역사적 축적의 과정에서는 얼마든지 다른 평가도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철학사의 상당한 부분은 서양철학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동양철학도 서양철학의 방법론과 기준에 따라 논의되다 보니, 동양철학을 서양철학의 기준에 맞추어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동양철학의 상당한 부분이 철학사에서 배제되거나 혹은 동양철학을 종교철학이나 도덕철학으로 한정해서 논의되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동양철학의 역사적 발전에 관한 무지를 뜻할 뿐만 아니라 동양철학에 내재한 고유한 성격이 피상적으로 파악되는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이것도 동양철학을 역사적 지평으로 갖고 오면 중국철학이든 인도철학이든 이슬람 철학이든 서양철학 못지않게 풍부한 철학의 내재적인 발전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서양철학의 잣대가 아니라 동양철학 그 자체를 이해하고자 하는 열린 태도에 달려 있다. 세계철학사라는 좀 더 광의적 차원에서 보면 서양철학도 일부일 뿐 전체가 아니므로 서양철학에 가려진 동양철학의 성격도 역사적 지평에서 부활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세계철학사가 되려면 거기에 머물기만 해서 안 되고,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서로 비교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서로 종합과 통합의 지평에서 사유의 여정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철학사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저자가 철학사를 매우 자의적이고, 비역사적으로 서술하거나, 특정한 시대에만 치중해서 기술하거나, 핵심의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장황한 설명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완벽한 철학사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완벽한 철학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저자의 일관된 기준에 부합해서 철학사가 서술되었는지를 확인할 필요는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철학사를 비판적으로 독해할 까닭은 분명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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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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