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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초대석(유기택 시인)


시인이 만났던 일상의 사건과 서정의 충돌

<고양이 문신처럼 그리운 당신> 출간한 유기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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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기택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본인을 스스로 소개하도록 부탁받는 것만큼 쑥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보통은 그냥 “안녕하세요? 유기택입니다.”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중하게 물어 오시면 일단 주눅이 들게 마련, ‘나는 누구일까?’라는 자문에 먼저 봉착해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는 건 나만의 울렁증일까? 그래도 이제부터 그 답을 해야 한다. 일단 나는 문단의 무적자에 가깝다.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잘 모른다. 누구 탓도 아니고, 스스로 그 길을 택했다. 그러니 배양토가 척박할 수밖에 없어 스스로 ‘일용직 시 노동자’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시를 쓰는 사람이고, 시를 쓰는 일이 내게 남은 시간의 전부인 유기택이다.


-이번 시집 <고양이 문신처럼 그리운 당신>을 소개하면?

이것 또한 난감한 질문이다. 일단, 좋은 시집이다. 세상에 나쁜 시집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뜻으로 묶는 시집이 나쁠 수가 없지 않은가? 다만, 독자에게 어떻게 읽히게 될 건가 하는 고민은 다른 문제다. 그 지점이 시집의 방향을 결정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 시집은 테마 시집은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저류에 흐르는 서정으로 본다면, 서정시라는 큰 틀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저자의 개인 서사적 서정시라고 보면 좋겠다. 두 해 정도 탈고의 시간을 거친 시들이니, 두 해 전쯤 저자가 만났던 일상의 사건과 서정의 충돌로 보면 좋을 것 같다. 함께 읽고 공감하는 독자가 많은 시집으로 남으면 좋겠다.


-아홉 번째 시집인데 이번 시집을 내게 된 동기와 에피소드

시집은 매번 새롭다.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첫 시집과 지금 와서의 시집에 설렘과 기대가 다를 이유가 없다. 다만 저자가 좀 더 늙었을 거다. 잘 낡아가고 있는지의 판단은 독자들 몫이다. 굳이 동기를 들이대자면 본인이 시인으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확인이라는 말이 그나마 궁색한 변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탈고하기까지 퇴고하는 내내 고관절과 무릎 관절을 앓았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습관이 원인이 되어 인대를 조금 다친 것 같다는 소견을 주셨다. 통증 때문에, 책상에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퇴고의 시간 대부분을 서서 지냈다. 이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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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시에 대한 생각은?

그게 전부다. 시가 생활이고, 생활이 시가 되길 바란다. 대문 밖도 잘 나가지 않는다. 나가면 그나마 붙들고 지내는 허약한 의지가 산산이 흩어지고 말 거라는 강박에 걸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매일 똑같은 공간에, 똑같은 일상에, 대체 무엇으로 시를 쓰냐고? 나도 그게 신기하다. 신기하게도 내가 움직일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 밖이 어쩌다 한 번씩 나를 다녀간다. 고마운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아마 다 쓰지 못하고 시를 놓게 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늦은 오후에, 바깥바람이 발을 끌며 뜨락을 지나가는 조용한 기침 소리를 들었다. 이제 그 탁본을 뜨러 마당엘 나가 보아야 한다.


-시집을 읽으실 분들께 팁이 있다면

시는 공감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말은 시의 발화점이 됩니다. 말은 학습이며, 새로운 자기 상상의 샘을 솟구치게 하는 발원지가 됩니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이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에 따라, 삶의 기억은 개인의 다른 경험 기록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시는 그 지점을 여는 뇌관일 뿐입니다. 그러니 시인을 떠난 시는 오로지 독자의 것입니다. 마음 편하게 읽으시고 지치기 쉬운 일상에서 잠깐 쉬어 가는 여행의 간이역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가끔 살아온 뒤를 돌아본다는 건 여기서 바라보는 내일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뷰티라이프.” 그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소개


가을비 내리는 정경


가을 새벽엔, 나무들도 기침을 하얗게 쏟았다


공중을 몰려다니던 새들 입김은 늦은 안개로 떠돌았다

새들의 잔기침 소리 그대로였다

창문들이며 들판이며

가을비 내리는 숲은 창유리처럼 바깥에서부터 흐리고

들판은 저녁 쪽으로 완만하게 기울다 마을 경계쯤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서로의 인후통을 눈인사로 나누고 헤어졌다

이틀을 연하여 비가 내리는 동안

오다 말기를 거듭하는 그 잠깐씩의 틈을 비집고

어지럽게 흩어진 짐승 발자국들은 들길을 가로질러

눅눅하고 부드러운 숲의 가슴팍에다 코를 박았다

가늘어지던 빗줄기가 마침내 그쳤다

그러고도 어찌 된 영문인지

젖은 들길은 날이 저물도록 마를 생각을 안 했다

탈곡을 마치지 못한 벼 포기들이 서 있기를 포기했다

논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해 짧은 가을날은 제 몫의 갈무리를 끝내고 돌아갔다

낮 기온이 바람 골을 따라 가파르게 곤두박질하는 동안

일 없는 바깥을 괜히 들락거리던 조바심도 어둔해졌다


무어라도 거슬거슬 마르길 기다리는 동안


잘 마른 것들이 서럽게 그리운

저녁이면, 나른히 퍼지는 푸른 연기가 들판을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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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계획

시 쓸 겁니다. 물론 먹고 사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므로 본 시집을 홍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겁니다. 새벽마다 강둑길을 함께 걷는 아내의 트레이닝복이 많이 낡았습니다. 인세가 들어오면 아내가 좋아하는 해물칼국수도 한 그릇 사주고 싶습니다. 열 번째 시집의 퇴고를 보고 있습니다. 열한 번째 시집의 원고도 목표로 했던 분량을 거의 채워가고 있습니다. 이미 써 모았던 시를 버리는 일을 주로 삼겠습니다. 그냥 버리기보다는 깊이와 무게를 더해가는 공부의 디딤돌로 삼겠습니다. 다음 시집에서는 본 시집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독자와 만나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잠깐씩 서 있기도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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