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08(일)
  • 로그인
  • 회원가입
  • 지면보기
  • 전체기사보기
 

흑인들이 낮선 땅, 아메리카에 발을 딛은건 제국주의 착취에 이용되기 위해서였다.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와 프란시스코 피사로에 의해 거대한 아즈텍과 잉카가 붕괴된 뒤, 스페인 왕정은 이 지역에 수도 없이 나오는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을 채굴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현지인을 동원했지만 노동 속도와 강도를 이겨내지 못하자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데려와 채굴하고자 했다. 흑인들을 데려오는 방법은 주로 네 가지였다. 첫 번째, 흑인 노예들을 매매하여 데려오는 합법적인 방법, 두 번째는 서아프리카 현지에서의 납치, 세 번째는 서아프리카 정복 전쟁의 포로, 네 번째는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흑인들을 속이고 미지의 땅 아메리카의 전도를 명령하면서 배에 태워 노예로 만들었다. 


화면 캡처 2024-07-14 230553.png
사진 : 1863년경 버지니아의 도주 노예들, 출처 : Andrew J. Russell / Medford Historical Society Collection / CORBIS

 

그러나 첫 번째 방법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두 번째에서 네 번째 방법이 주로 이용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다섯 번째 악랄한 방법도 등장했다. 이른바 스페인 입장에서 미지의 땅 아메리카를 개척하고 그 땅을 그들에게 준다고 속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돈을 받고 아메리카로 배에 태워 보낸 다음 강제로 체포해 금광 개발업자에게 넘겨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흑인들은 가족과 생이별하는 경우가 많았고 연간 평균 50여 만 명의 흑인들이 온갖 악랄한 방식으로 낮선 아메리카에 건너갔다. 16세기 중 후반, 스페인이 세계의 역사에 길이 남는 대제국이 되었던 그 토대의 이면에는 수많은 흑인노예들의 피와 땀, 눈물이 있었고 이들에게서 채굴된 수많은 황금과 보물들이 함선에 실려 대서양을 건너 스페인에 들어갔다. 


스페인이 영국에게 패한 이후, 해상에서 실권을 잃자 아메리카와 아시아 인도 지역에 동인도 회사가 설립된다. 동인도 회사는 정상적인 통상 거래를 목적으로 한 초창기의 회사가 아닌 점점 착취와 약탈로 인한 부당한 편취, 그리고 강매 및 불법거래에 군대까지 자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세력으로 변해갔다. 영국이 아메리카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캐나다와 미주를 개발하는데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회사는 허드슨 베이다. 허드슨 베 이의 설립 당시 영국 왕 찰스 2세의 칙허 상에 기록된 정식 명칭은 "허드슨 만에 있는 무역에 종사하는 영국의 총독 및 잉글랜드 모험가"(The Governor and Company of Adventurers of England trading into Hudson’s Bay)라고 한다.


허드슨 베이는 아메리카 개발을 독점하고 있었고 프랑스와 군사적으로 충돌했으며 19세기 아메리카에 진출한 러시아와도 자주 다툼을 벌이곤 했다. 허드슨 베이는 흑인들을 이용해 아메리카 지역의 개발에 나섰고 금광과 은광, 그리고 나무까지도 마구 베어갔다. 게다가 야생동물까지 학살하여 모피장사까지 했으며 오늘날 텍사스와 애리조나.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장악하고 있던 스페인과 흑인 노예 무역도 했다. 이어 아메리카 지역의 경쟁 업체로 떠오른 북서 회사(Northwest Company)는 허드슨 베이와 맞서기 위해 24시간 중 22시간의 노동량을 흑인들에게 할당하며 학대하고 임금을 주지 않았다. 북서 회사(Northwest Company)와 허드슨 베이는 흑인 노예들의 이름을 만들어 불렸는데 죄다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동물식의 이름을 지어줬다. 그리고 이러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 현재 미국식 이름이 붙게된 것은 남북전쟁 이후의 일로 남북전쟁의 이전의 흑인들 삶은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죽는 대물림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러한 흑인 노예 착취에 대해 아메리카에 흑인 노예를 공급하는 남해 회사(The South Sea Company)가 1711년에 설립되었는데 아프리카의 노예를 스페인령 서인도 제도에 수송하고 이익을 얻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이후에 최초 아메리카 부동산업체의 회사가 되었고 금융회사로까지 성장하게 된다. 남해 무역은 스페인과의 협상을 통해 얻은 아시엔토 무역권, 즉 아프리카 - 스페인 서인도 간의 노예무역의 권리를 행사하며 이윤을 창출하자는 것으로 생각보다 잘되지 않았다고 한다. 노예무역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은 스페인이 인정한 무역량이 영국이 필요한 량만큼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1718년에는 스페인과 전쟁이 시작되어 무역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시험적으로 도입했던 복권 채권이 성공하게 되면서 노예무역을 포기하게 된다. 일설에는 이러한 복권으로 인한 시범적인 아이디어를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대니얼 디포가 제공했다는 설이 있다. 


흑인노예들이 아메리카에 정착하게 된 것은 현재까지 대대로 이어온 인종차별의 원인이 되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제국주의적 사고의 결과물이나 마찬가지다. 남북전쟁 이전에는 수많은 흑인들이 조지 플로이드보다 더 비참하게 죽어거나 그와 비슷하게 죽어나갔다. 현 시점에 들어 남북전쟁 이전의 시기와 같은 모습이 재현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분명 현 시점의 흑인들은 남북전쟁 이전에 막 끌려온 그들의 조상과 다르다. 이제는 흑인들도 제 목소리를 내고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몫을 당당히 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비극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는다.


전체댓글 0

  • 27408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미국 흑인 비극의 모든 것에 원죄는 제국주의에 있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