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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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수단은 영토도 크고 역사 또한 매우 복잡한 국가이다. 수단 공화국의 아라비아인들이 모두 수단 아라비아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19세기 아라비아 반도 히자즈 지방에서 이주해온 라샤이다 족(Rshaida)은 히자즈 방언을 사용하며 차드와 수단에 걸쳐 거주하는 바카라 족(Bakara)은 차드 아라비아어를 사용하고 있다. 

 

수단 아라비아어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아라비아어를 모어로 사용하게 된 누비아인들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아라비아어로 수단은 흑인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수단 아라비아인이라는 단어는 아라비아 흑인 전반을 지칭하는 단어로도 사용될 수 있다. 수단 공화국 영내 나일로트(Nailot) 계열 흑인들과 바카라 족은 포함될 시기도 있었으며 포함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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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아프리카 수단의 지도,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수단 공화국의 주요 소수 민족 중 쿠시어파에 속하는 베쟈(Veza) 족은 아라비아인과 일치하지 않고 있다. 수단의 아라비아 부족들의 역사와 기원은 다양한데 역사 기록상 아라비아 부족들이 수단에 단순히 방문한 경우 말고 부족 단위로 이주했다는 문헌상의 근거가 14세기 무렵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일부 베두인 부족들이 오늘날 수단 동부와 차드 일대로 진출하여 흑인들과 지속적으로 통혼하면서 언어만 아라비아어를 유지하고 문화적으로는 상당 부분 흑인들과 동화된 경우, 바카라 족과 같은 일례가 있었으며 수단 현지 누비아인 콥트 교도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아라비아화 된 경우도 있었다. 

 

결국 이들이 사용했던 언어가 수단 아라비아어다. 참고로 수단 아라비아어는 푸르 족들 사이에서도 사용되는데 다르푸르 일대의 푸르 족들 중에는 고유의 푸르어와 수단 아라비아어와 같은 이중 언어 구사자가 많다. 


에리트레아와의 접경 지역에서는 일부 베쟈 족이 아라비아화 된 경우도 있었는데 이들의 후손은 아바다 족이라 한다. 한편 19세기 히자즈 지방에서 사우드 왕조의 침공을 피해 에리트레아와 수단 해안 지방으로 집단 이주한 아라비아인들도 있는데 라샤이다 족으로 불리는 이들은 오늘날에도 고유의 아라비아어 히자즈 방언을 사용한다. 

 

사헬 지대와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의 무슬림들은 사하라 이북에 비해 극심한 빈곤과 사막화 문제를 겪고 있고 그들은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의 금전적 지원에 의존했지만 이 과정에서 이슬람주의가 유입되었고 이는 사헬 지대에 속하는 수단 공화국 아라비아인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오마르 알 바시르(Omar Al Basir)가 자행했던 폭정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수단 아라비아인 자체가 이라크 ISIS와 다를 바가 없다는 편견이 세계화되고 있다. 다르푸르(Darfur) 사태에는 수단 북부 지역의 사막화로 인한 경작지 부족, 그로 인한 유목민과 토착민의 갈등, 인종과 종교 갈등, 종족 간의 갈등을 악용한 수단 중앙 정부의 탄압과 사회적 불평등 및 차별 등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수단 서부의 해발 600~900m 고원에 위치한 다르푸르는 북부 사막지대와 남부 초원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들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크게 아라비아계와 아프리아(Atria) 계로 구분할 수 있다. 북부 아라비아계 주민들은 주로 유목 생활을 해왔으며, 푸르(Fur), 작하와(Zaghaw, Zaghawa) 및 마살라이트(Massaleit) 등으로 구성된 남부와 서부 아프리카계 주민들은 주로 농경 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1970년대에 이어 1990년대에도 극심한 가뭄이 발생함에 따라 다르푸르의 민심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다르푸르 북부 지역에서 사막화 현상이 진행되자 아라비아계 유목민들이 초지와 물을 찾아 남하해 남부 농경 지역 기독교계 흑인을 약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수단 중앙 정부는 척박한 다르푸르 지역을 개발하는 대신, 전통적 종족 사회 제도를 강제적으로 해체하고, 심지어 아라비아계 인사를 다르푸르 지방 정부 관리직에 임명하는 등 친(親) 이슬람 정책을 시행하였다. 1989년 6월 쿠데타로 집권한 알 바시르 정권이 이슬람 국가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한 이유이다. 


더불어 알 바시르 정권하에서 다르푸르 지역이 개발 대상에서 제외되는 소요 정책이 지속되면서 다르푸르 내 아프리카계의 분노가 폭발 직전까지 나아갔다. 이러한 다르푸르 분쟁은 2003년 2월부터 2010년까지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에서 발생한 인종과 종족 간, 종교 문제 및 경제 문제가 복잡하게 섞여 발생한 분쟁으로 지난 2004년에는 CNN과 AP통신 등 주요 외국 언론들이 2004년 10대 뉴스로 선정하기도 했다. 

 

2006년 5월에는 양쪽 당사자들 사이에서 평화협정을 진행하였다. 다르푸르 분쟁은 수단의 서부 지역인 다르푸르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 분쟁은 아프리카 흑인계 반군과 잔자위드, “말 등에 탄 악마(Devil on horse back)”라 불리는 북부 아라비아계 이슬람 민병대 간의 무력 분쟁이다. 이 전쟁의 한 쪽에서는 잔자위드와 이를 잠재적으로 지원하는 수단 정부가 있다. 잔자위드는 대부분 낙타로 이동하는 유목민인 리지가트(Rizigat)의 아라비아 바가라(Bagara) 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한 쪽은 다르푸르 지역의 아프리카계로 경작을 주로 하는 푸르(Fur), 자가와(Zagawa), 마살라이트(Masallait) 종족이 구성한 반군으로 알려져 있다. 수단 해방군(Sudan Liberation Army : SLA)과 정의 평등 운동(Justice and Equality Movement : JEM)이 주요 세력으로 나타난다. 

 

수단 정부는 공식적으로 잔자위드를 지원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지만 잔자위드에 자금을 제공하고 도움을 주며 반군이 자원을 조달하는 종족을 공격할 때 합동 작전을 한다. 2003년 2월부터 내전이 시작되었다. 북쪽 무슬림과 남쪽 기독교도, 애니미즘을 믿는 사람들이 전투를 벌였던 제2차 수단 내전과는 달리 다르푸르의 전투 당사자와 희생자는 거의 무슬림이다. 

 

가뭄과 사막화, 인구 폭발이라는 수십 년 동안의 세월이 다르푸르 분쟁의 원인 중 하나이다. 이는 바가라 족 유목민이 물을 찾아 그들의 가축을 더 남쪽으로 이동시켰고 이곳은 주로 비 아라비아계 농경 사회이기 때문이다. 수단 정부와 잔자위드의 비 바가라 족 주민에 대한 공격은 큰 인도주의적인 위기를 발생한다. 사상자는 수십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유엔은 폭력과 질병으로 450,000명이 죽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많은 비정부단체(NGO)들은 200,000~400,000명이란 숫자를 사용한다. 이는 국제 정의 연맹(Coalition for International Justice)에서 나온 숫자로 유엔 등이 인용해 왔다. 수단 정부는 9,000명이 죽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강제 퇴거 된 사람은 2006년 10월까지 25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다르푸르 분쟁은 2003년 2월부터 수단 공화국 서부의 다르푸르 지역에서 발생했으며 계속되던 북부의 아랍계 정부군과 서부의 아라비아 화 된 흑인 푸르 족 간의 종족 분쟁에 석유를 둘러싼 이권 정쟁으로 인해 목초지 및 농경지 확보를 위한 경제 문제들이 섞여 대량 학살이 발생했는데 2004년에는 CNN과 AP통신 등 주요 외국 언론들이 2004년 10대 뉴스로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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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내전의 원인과 다르푸르 분쟁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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