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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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계 미국인들은 대개 시대적으로 4개의 세대로 나누어진다. 1세대는 1733년부터 1867년까지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러시아령 아메리카 시절에 정착하여 개척하고 있던 러시아인들이다. 크림 전쟁 이후 러시아가 미국에게 러시아령 아메리카를 매각하면서 군인, 관료와 같은 러시아인들은 러시아로 돌아갔지만 일반 이주민의 일부는 알래스카가 미국령이 된 후에도 알래스카 등에 남아서 러시아계 미국인이 첫 세대가 되었다. 

 

물론 알레스카와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던 러시아인 인구가 워낙 소수였기 때문에 이들 러시아계의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 러시아인들이 알레스카와 캘리포니아를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알류트, 틀링깃 같은 알레스카 원주민들이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고 러시아인 남성과 알래스카 원주민 여성들 사이에 혼혈인이 출생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캘리포니아의 러시아인들은 미국인들이 들어오자 미국인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미국인과 혼혈하는 과정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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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현 뉴욕 일대의 러시아촌, 출처 : 미국 뉴욕 관광청 제공

 

당시 알레스카와 캘리포니아의 정교회 성당들은 러시아인들이 빠져나가고 나서도 유지되었는데 러시아인들이 떠나고 남은 지역에 세르비아인 정교도들이 와서 정착해 자신들의 교당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소수이긴 하지만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주해 간 러시아인들을 비롯한 슬라브계 민족들이 꾸준히 있었다. 두 번째 시대적 세대들은 19세기 말부터 러시아계 유태인들이 미국 이민 온 캐이스였다. 

 

이들 러시아계 유태인들은 대개 서민들이 많았고 1820년부터 1870년 사이에 러시아에서 이민 온 유태인들은 7,550명에 불과했지만 1891년부터 1900년 사이에 593,700명이 이민을 왔고 1901년부터 1910년까지는 160만 명, 1911년부터 1914년까지 868,000명 등 급증했다. 이 시기의 러시아계 유태인들과 러시아인들의 이민은 2차 이민(Second Wave)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자 이민은 급감했다. 당시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에서는 자국의 정교회 신도들에게는 이민용 여권을 잘 발급해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국을 위협하는 자들로 분류되었던 폴란드계나 리투아니아계 카톨릭교도, 그리고 유태인 대상으로는 이민용 여권을 잘 발급해 주었다. 러시아 제국의 러시아인들이나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 정교도들, 라트비아인 개신교도들 및 볼가 타타르 무슬림들은 러시아 제국 외부로 이민을 떠나기는 어려웠고 그 대신 표트르 스톨리핀의 이주 정착 지원 정책 등을 이용하여 시베리아 남부나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로 이주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러시아 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여타 주요 이민 집단으로는 폴란드계 러시아인, 리투아니아계 러시아인, 그리고 스웨덴 국경을 육로로 통과한 후 스웨덴에서 재이민한 러시아계 핀란드인 등이 있었지만 이들은 모어가 러시아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러시아계 미국인으로는 분류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모어는 러시아어는 아닐지라도 이들은 러시아어를 학습한 자들이었고 러시아어에 비교적 능통한 자들이었다.


이들 중, 러시아어와 각 민족 모어들에 능한 자들 중 영어마저 능숙하게 배운 자들은 러시아 제국과 러시아 제국 인근 국가들에 잠입하여 미국 정부에 러시아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스파이 역할을 해내곤 했다. 한편 러시아어 사용 이민자들의 상당수는 러시아 제국의 혼란과 반 유태주의를 피해 이주해 온 아슈케나지의 일종들이었고 이들은 앞서 아메리카에 정착한 1세대들과 묘하게 달랐다. 

 

미국에 정착한 러시아령 아메리카 시절의 1세대 러시아인들 대부분은 농민들이거나 목축민들이었지만 2세대로 분류되는 러시아계 유태인들은 대개 상인이거나 비즈니스맨으로 분류되는 사업가들이었고 특히 미국이 개발하고 있는 서부 지역의 토지 사업에 대단한 관심을 기울이던 자들이었다. 이들이 미국에 이주하게 된 경위 또한 특이하다. 러시아 제국의 예카테리나 대제는 1791년에 러시아의 유태인들로 하여금 정부가 직접적으로 관할하고 통제할 수 있는 서부의 특정 지역에서만 살도록 제한했다. 


그리고 1882년에는 이른바 '오월법(Майский закон)'이라고 해서 유태인들의 농촌 거주를 금지하면서 이들 대개 상인이 되거나 서유럽에서 했던 것처럼 고리대금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유태인들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거주도 제한했는데 이러한 와중에 농촌 거주까지 금지하면서 상인으로 밖에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니 유태인들의 불만이 폭발하게 되었고19세기 말 러시아 제국 전역에서 포그롬까지 일어나면서 상당수의 유태인들은 미국이나 캐나다 등으로 이민하게 되었다. 

 

물론 러시아계 유태인들이 이주한 미국에도 백인들 사이에서 반 유태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민족구성이 워낙 다양하였기 때문에 유럽보다는 그나마 차별이 덜했던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계 유태인들의 대량 이민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아메리카 유태인들은 대부분 네덜란드 출신의 세파르딤들이었다. 그러나 미국인들 전체에서 차지하는 인구 비중에서 세파르딤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였으나 20세기 초반 들어 러시아계 아슈케나지들이 미국 유태인 인구의 90~95%를 차지하게 되면서 이들은 아메리카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물론 러시아 제국에서 들어온 러시아계 유태인들 중 오늘날 러시아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온 경우는 약 30% 정도 차지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오늘날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러시아 제국에 의해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 지역으로 거주가 제한되었던 자들이었고 그들의 선조는 오늘날 러시아 본토인 볼가 강 일대와 모스크바 주변에 흩어져 살고 있던 자들이었다. 

 

이들 중, 유라시아를 지배했던 투르크계 유목 민족 국가인 하자르 제국 당시 유대교를 믿었던 비정통 유태인들이 많았고 이들은 키예프 루스에게 하자르 제국이 붕괴된 후, 상당수의 슬라브계 루스인들과 섞여 살았다. 즉, 미국으로 이주한 대다수의 우크라이나나 벨라루스에 해당하는 지역 태생의 유태인들이 이들이었던 것이다. 

 

특히 18세기 말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멸망 이후 폴란드, 발트 지역들이 100년 가까이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폴란드, 발트 지역의 유태인들은 이디시어와 러시아어를 모어로 사용하게 되었고 이들은 미국으로 이민 후에도 한동안 러시아어, 그리고 러시아 문화를 보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18세기 러시아 볼가 강 유역으로 이주해 온 독일계 러시아인 상당수가 19세기부터 알렉산드르 2세 차르의 종교적 차별령에 의해 종교 박해가 이루어지자 상당수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독일계 러시아인들이 미국 동북부 지역에 거주하곤 했다. 특히 20세기 초에 이주한 볼가 강 출신 독일계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건조형 농업에 맞는 미국 대평원 북부 쪽에 정착하게 되는데 가장 많이 정착한 곳이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지역이다. 

 

그로 인해 사우스다코타 주(州)의 지역 요리 시슬릭(Chislic)은 러시아의 양꼬치 샤슬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독일계 러시아인 이민자들이 개발한 요리라고 한다. 한편 러시아 제국에서 이민한 경우가 아니었음에도 스스로를 러시아계 미국인들로 인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산악지대의 가난한 소작농들인 루신인의 상당수가 러시아계 유태인들이 이주하던 같은 시기에 미국으로 이민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범슬라브주의 등의 영향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러시아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모두 러시아어와 루신어를 모국어로 사용했다. 이러한 루신인들 상당수가 러시아계 미국인 공동체에 흡수되는 등, 초창기 1~2세대 러시아계 미국인들은 그 범위도 다양했지만 러시아계 유태인들의 영향력이 매우 절대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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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계 미국인들의 아메리카 정착 과정, 초창기 1~2세대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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