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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툰 작가 수익은 얼마?
    웹툰 엔터테인먼트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도 웹툰 엔터 상위 1~100위 창작자의 연간 평균 수익은 약 1백만 달러, 한화 약 13억 8천만 원에 이른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웹툰 플랫폼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들로 볼 수 있다. 연간 수익 10만 달러 이상을 올리는 작가 수는 지난해 기준 483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이는 2021년의 372명, 2022년의 429명에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평균적으로 정기 연재하는 프로 작가의 연수익은 대략 4만 8천 달러로 나타났다. 웹툰 엔터의 수익 모델에는 작가의 개별 후원도 포함된다. 캔버스 플랫폼에 도입된 '슈퍼 라이크' 기능을 통해 독자들은 직접 작가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할 수 있다. 미국의 창작자 후원 서비스인 '패트리온'을 통해, 앨리스 오즈먼 같은 아마추어 작가도 대중의 지지를 얻어 상당한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오즈먼은 월 1만 8천 달러에서 최대 9만 달러의 수입을 얻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작품 유료 미리보기, 영상화, 게임화를 포함한 지적재산(IP)의 확장이 주요 수익원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2013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900편 이상의 웹소설과 웹툰 IP가 2차 사업화되었으며, 그중 약 100편이 영상화되고 약 70편이 게임화된 사례가 있다. 웹툰 엔터 관계자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창작자에게 지급된 총액이 28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창작자가 자신 작품으로 직접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웹툰 산업은 더 이상 단순한 인터넷 만화로 보지 않으며, 그 경제적 가치와 영향력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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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행사
    2024-07-07
  • 유엔 보고서, 아프리카 난민과 이주민의 유럽행 경로 폭력과 위험
    유엔 국제이주기구(IOM), 유엔난민기구(UNHCR), 그리고 혼합이주센터(MMC) 등 여러 기구가 공동으로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난민과 이주민들이 유럽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겪는 극심한 폭력과 위협에 대한 심각한 실태가 드러났다. 이 연구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의 기간 동안 31,000명 이상의 아프리카 이주민을 대상으로 진행된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보고서는 이주민들이 성폭행, 고문, 성매매, 장기 적출 등의 극심한 범죄 행위에 노출되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사하라 사막을 통과하는 과정에서의 사망률이 지중해를 통한 이주 시의 사망률보다 최소 두 배 이상 높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주로 극한의 탈수, 질병, 폭력에 의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보고서는 또한 이주민들이 겪는 신체적 폭력과 관련해, 특히 리비아, 알제리, 에티오피아가 가장 위험한 국가로 지목되었다고 언급했다. 이주민들은 자신들을 유럽으로 안내하는 중간업자들과 범죄 조직, 때로는 민병대에 의해 심각한 폭력을 경험했다고 증언했다. 여성 이주민들 경우 성폭력의 위험 노출이 특히 높았다. 약 90%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2020년 유엔 연구 결과에서 밝혔다. 일부 여성은 성매매를 강요당하거나 납치범과 강제로 결혼하도록 강요받는 등의 참혹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유럽 국가들이 이주민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이주민들을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의 지원을 받는 보안군은 이주민들을 무방비 상태로 사막으로 돌려보내며, 이로 인해 수많은 이주민이 생명을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연구는 국제사회에 이주민들이 겪는 고통과 위험에 대해 더 깊은 관심과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동시에, 이주민 보호와 안전한 이동을 위한 국제적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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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2024-07-07
  • 조국 의원, 김건희 여사와 한동훈 전 위원장 간의 권력투쟁 주장
    조국 조국혁신당 의원이 최근 논란이 된 '읽씹' 사건에 대해 발언했다. 조 의원은 이 사건이 김건희 여사와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 사이의 권력투쟁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의견을 공유했다. 조 의원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 또는 그의 측근이 문자 메시지를 언론에 공개한 것은 한동훈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려는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이러한 권력투쟁을 단순히 관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깊이 파헤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이를 두고, 만약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전 위원장을 포함해 다른 여당 주요 의원들과 장관들에게도 유사한 문자를 보냈다면, 이는 수사 및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당무 개입으로 기소되고 처벌받은 사례를 언급하며 이를 뒷받침했다. 조 의원은 국정 농단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정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김건희 여사는 사적 인물에 불과하므로 그의 행위가 국정농단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 는 김건희 특검법을 재발의하고 통과시켜야 하며, 김건희 여사의 휴대폰을 압수 수색하여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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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2024-07-07
  • 중국 자연재해로 인한 대규모 피해 발생
    지난 5일 오후 중국 산둥성 허저시에서 강력한 토네이도가 발생했다. 토네이도는 초속 40미터의 강풍을 동반하며 도심을 강타했다. 이 때문에 철제 건물이 흔들리며 외벽이 떨어지면서 결국 무너졌다. 건물 지붕들은 하늘로 솟구쳤다. 토네이도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로 2천800여 채의 건물이 무너지고 8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역 주민들은 두려움에 휩싸이며 일부는 마치 세계 종말인 줄 알았다고 표현했다. 남부 광둥성에서도 지난 4월 토네이도가 발생해 5명이 사망했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해 토네이도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한편, 남부 후난성에서는 올해 최대 규모의 폭우로 인해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둥팅호의 제방이 무너졌다. 처음에는 제방의 길이가 10미터였으나, 급격히 확장되어 200미터 이상으로 늘어났다. 당국은 급히 대응하여 화물트럭 여러 대를 제방에 투입, 추가 붕괴를 막았다. 이 사건으로 5천 명 이상의 주민이 긴급 대피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앙아시아 순방 중에도 긴급 대응 지시를 내렸다. 중국은 최근 남부의 홍수와 북부의 폭염 등 연이은 자연재해로 대응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의 식량 생산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가 이러한 자연재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으며, 지속 가능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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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
    2024-07-07
  • 바이든, 대선 후보 사퇴 배제하고 트럼프와의 추가 토론 약속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이 최근 대선 후보 TV 토론 후 사퇴 압력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는 미국 A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완전 배제한다."라고 말하며, 트럼프를 이길 가장 자격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확신했다. 그의 이유는 이전 선거에서도 트럼프에 승리했기 때문이다. 추가 질문에 대해서는 "당신은 모든 문제에 있어 틀렸다"라고 단호히 반박했다. 이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최소 20명의 의원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밝혔다. 또한, 마크 워너 상원의원이 다른 상원의원들과 함께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모임을 추진한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그 한 사람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첫 일대일 토론에서의 어려움을 인정했다. 그는 토론 중 말을 더듬고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그것은 나쁜 일화였다"고 설명하며, "나는 지쳤고, 내 본능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저 나쁜 밤이었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나는 아팠고 아주 끔찍한 기분이었다"라며 주치의가 코로나19 검사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코로나19가 아닌 심각한 감기 증상이었다고 덧붙였다. 건강에 관한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적합한지 신체검사를 받을 의향에 대해 "그런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거부했다. 그는 "앞으로 4년 동안 대통령직을 완수할 체력과 정신력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토론에서의 트럼프 전 대통령의 거짓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바이든은 "트럼프는 토론에서 20번도 넘게 거짓말을 했고, 나는 아니었다"라고 주장하며 트럼프의 '거짓 발언 논란'을 지적했다. 또한, 트럼프가 추가 토론을 제안한 것에 대해 "지금 약속한다. 분명히 할 것"이라고 단언하며 다가올 토론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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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2024-07-06
  • '윤 대통령 탄핵' 청문회 개최 논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과 김용민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과 관련해 청문회 개최를 검토하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최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법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조항을 활용해 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 조항은 국민 청원과 관련해 청원인, 이해관계인, 그리고 전문가의 진술을 들을 수 있는 규정을 포함한다. 윤 대통령 탄핵 청원은 이미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법사위 청원심사소위의 심사 대상이 되었다. 현재 동의 인원은 118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청원의 주된 이유로는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김건희 여사 의혹,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 등이 포함되어 있다. 김용민 의원은 유튜브 채널에서의 인터뷰에서 8월 중에 청문회 개최 가능성을 시사하며, 7월 중 법사위에 탄핵 청원을 상정할 계획임을 밝혔다. 청문회 준비를 위해 증인 통지와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청문회는 단일 이벤트가 아닌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각 탄핵 사유별로 별도 청문회를 개최하고, 이를 통합하는 종합 청문회도 계획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후 탄핵 여론이 확산할 가능성에 대한 인식도 공유되고 있다.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내부적으로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다음 단계를 계획 중이다. 탄핵 청문회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법적 절차에 따라 탄핵 사유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 과정은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어 탄핵 청원의 정당성을 평가받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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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2024-07-06
  • European Firefighters Unite for Greece's Summer Fire Season
    European Firefighters Pre-Resettlement Program Expands in 2024 This summer, Greece is bolstering its firefighting forces with 240 firefighters from Bulgaria, Malta, Moldova, and Romania as part of the European Firefighters Pre-Resettlement Programme. Now in its third year, this initiative operates under the European Civil Protection Mechanism (EUCPM) and exemplifies European solidarity in action. These European firefighters, equipped with specialized waterborne forest firefighting vehicles, will be gradually deployed across three operational bases from early July to mid-September. The first team from Bulgaria has already arrived at Thessaloniki's operational base, where they will collaborate with the 2nd Special Forestry Operations Unit. Teams from Malta will follow, stationed at Achaia on July 15, with Moldovan firefighters set to be based in Attica. “The pre-deployment program of European firefighters, first launched in Greece during the summer of 2022, has proven the value of European solidarity,” stated the Ministry of Climate Crisis and Civil Protection. “This year, the program has expanded, with more countries participating and an increased number of firefighters and forest firefighting forces.” In a dual role, Greece is not only hosting these firefighters but has also sent a team of 25 forestry officers to southern France from June 15-30. Greece initiated this year's program by dispatching the first firefighters to France and will conclude it on September 15 when the last team from Romania completes its mission. Notably, the duration of the firefighters' stay in Greece has been extended to 2.5 months, up from two months in previous years. A total of 12 countries are participating in this year's pre-deployment program: Austria, Bulgaria, Greece, Estonia, Italy, Latvia, Malta, Moldova, Romania, Slovakia, Slovenia, and Finland. Together, they will provide 556 firefighters to support operations in Greece, France, Spain, and Portugal, fostering a valuable exchange of expertise and techniques in combating forest fires. In preparation for the program, Greece hosted two training seminars at the Ministry of Climate Crisis and Civil Protection. These sessions, held on May 29-31 and June 16-18, focused on administrative coordination and team leader training to ensure seamless cooperation among the international firefighting teams. Greece Battles Devastating Summer Fires In the summer of 2024, Greece has been particularly hard-hit by wildfires, exacerbated by extreme heat and dry conditions. Fires have ravaged large areas of forest and agricultural land, displacing residents and threatening historical sites. The country's firefighters have been working tirelessly to contain the blazes, with the support of the newly arrived European teams. In addition to combating active fires, these teams are conducting preventive measures, such as creating firebreaks and managing controlled burns to reduce fuel for potential fires. The collaboration between Greek and European firefighters is crucial in mitigating the damage and protecting both lives and property. The severity of this summer's fires highlights the importance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and the need for robust firefighting strategies. With the collective effort of firefighters from across Europe, Greece aims to navigate this challenging fire season and emerge stronger in its resilience against future natural disa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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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Greece's Controversial Six-Day Workweek Sparks International and Domestic Outcry
    The New Democracy (Nea Dimokratia) government's recent implementation of a six-day working week has sparked international controversy, earning Greece the label of a European model of labor rights regression. Despite this, Prime Minister Kyriakos Mitsotakis made bold claims during his visit to the Ministry of Labour, glossing over the contentious policy while promoting benefits such as a Christmas bonus for low-paid workers and the introduction of a digital work card. Mitsotakis praised the legislation allowing 170,000 pensioners to continue working without losing their pensions, merely taxing their actual work time, which he hailed as a success. During his meeting with the Ministry of Labor and Social Security, he highlighted the government's achievements over the past five years, including significant reductions in unemployment, the creation of numerous jobs, and improvements in the working environment, all purportedly prioritizing workers' rights. He emphasized the digital work card as a significant reform, asserting its effectiveness in accurately recording overtime for workers' benefit. Additionally, he reaffirmed the government's commitment to increasing the minimum wage to 950 euros by the end of the four-year term and stressed the importance of improving labor market participation for women, young people,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and pensioners. The Prime Minister also spoke about advancements in social security, particularly in pension awards, and announced an extraordinary Christmas aid for pensioners who did not receive an increase due to personal differences. This aid is funded by taxing the extraordinary profits of Greek refineries in 2023, a measure he described as a demonstration of social justice and support for the most vulnerable citizens. Labor Minister Niki Kerameos echoed the Prime Minister's sentiments, announcing upcoming consultations with labor unions and partners to establish a new social pact for work. Internationally, the reaction has been critical. The Washington Post highlighted the irony of Greece extending its workweek while other countries adopt four-day workweeks, citing studies showing the benefits of reduced working hours on productivity and employee well-being. Experts have criticized Greece's move as short-sighted and detrimental to workers' health. The Guardian also noted the paradox, pointing out that Greece, after surpassing Europe in economic growth, has now reintroduced a 48-hour workweek, a move seen as regressive by labor advocates. Domestically, opposition parties have vehemently opposed the six-day workweek. SYRIZA accused the Prime Minister of ignoring the real issues faced by workers and promoting policies that lead to long hours, poor conditions, and job insecurity. They criticized the government for the high unemployment rates among women and youth and for fostering a labor market dominated by flexible, low-paid jobs. PASOK echoed these sentiments, condemning the government for creating a precarious labor environment and dismantling labor rights, while also failing to provide adequate support for pensioners. The Communist Party of Greece (KKE) labeled the government's policies as anti-worker, accusing them of prioritizing employer interests over worker rights, leading to increased work hours, low wages, and rising workplace accidents. They emphasized the need for collective labor agreements, wage increases, reduced working hours, and improved working conditions. The New Left (Nea Aristera) also criticized the government, noting that despite claims of reducing unemployment, Greece still has one of the highest unemployment rates in Europe. They highlighted the stagnation of wages and the adverse impact of inflation, calling for the restoration of the 13th and 14th pensions and stronger enforcement of labor laws. Overall, the introduction of a six-day working week in Greece has been met with significant domestic and international criticism, highlighting deep divisions over the future direction of labor rights in the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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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2024-07-05
  • 부산지법, 이재명 전 대표 흉기 공격 사건에 징역 15년 선고
    부산지방법원 형사6부(재판장 김용균)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흉기 공격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60대 김아무개씨에게 징역 15년과 5년간의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김씨는 살인미수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범행 조력자 A씨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명백한 정치적 테러"라며 20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김씨의 계획된 범행,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중대한 상해 가능성, 살해 실패에 대한 자책만 있고 사죄나 반성이 없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재판부는 생명 침해 시도, 선거 자유 방해 및 사회적 합의 신뢰 파괴 등을 이유로 엄벌을 지지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이 전 대표를 악마화하고 공격한 행위를 엄중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들은 김씨의 오랜 적대감과 혐오감이 범행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사건 발생 후 약 6개월 만에 나왔으며, 그동안 진행된 공판기일에서 증인 심문과 양측의 주장이 검토되었다. 김씨는 지난 1월 부산 강서구에서 이 전 대표를 향해 흉기로 공격을 가했으며, 사건 당시 이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를 겨냥한 이번 공격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마크 리퍼트 전 미 대사를 대상으로 한 비슷한 정치적 테러 사건과 비교되었다. 이 사건들과 비교했을 때, 이번 사건의 형량은 더 무거웠으며, 재판부는 김씨의 사과가 진정성 있는 반성으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피고인은 법정에 이르러 뒤늦게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사과한다는 뜻을 표했으나, 범행 과정과 수사 기관에서 보여준 태도 및 동기를 봤을 때, 이 사죄의 진정성에 의문이 있다."라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이로써 김씨는 역사적인 정치적 테러 사건의 가해자로 기록되며, 법의 엄중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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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4-07-05
  • 국민의힘 전당대회 중심에 선 '읽씹' 논란, 한동훈 대 원희룡과 나경원의 갈등 격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김건희 전 코바나콘텐츠 대표의 문자메시지를 무시한 것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소위 '읽씹' 논란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주요 화제로 부상했다. 이 논란은 김 전 대표와 친윤계 핵심 그룹이 한 전 위원장을 공격하기 위해 문자 내용을 고의로 유출했다는 의혹과 함께, '김건희 전당대회 개입설'까지 불러일으켰다. 한 전 위원장은 서울역 인근 쪽방촌 방문 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읽씹 논란'에 대해 언급하며, 집권당의 비대위원장과 영부인이 사적인 방식으로 정무적인 논의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그는 총선 기간 대통령실과 공적 통로를 통해 소통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전 대표의 '명품백 의혹 사과'에 대해서도 국민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여러 차례 사과의 필요성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한 전 위원장은 CBS 라디오에서 공개된 김 전 대표의 문자 내용이 재구성되었다고 주장하며, 보도가 왜곡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왜 이 시점에 해당 이슈가 불거졌는지 의아하다고 언급하며, 이는 친윤계의 공세 일환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규완 CBS 논설실장은 김 전 대표(김건희)가 문자를 보낸 후 한 전 위원장이 응답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 여사가 모욕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표의 문자는 명품백 수수 의혹이 고조되던 시기에 발송되었으며, 이에 대한 사과 및 조치를 요구했다고 한다. 장예찬 전 최고위원은 김 논설실장의 방송 내용이 사실과 부합한다고 확인하며,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이 아프지만, 보수 재건을 위해 필요한 진단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천하람 의원은 이러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사람이 김 전 대표이거나 한 전 위원장뿐이라고 주장하며, 이는 김 전 대표의 전당대회 개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희룡 전 장관은 한 전 위원장의 해명을 '충격적'이라고 평하며, 영부인의 문자에 답하지 않은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원 전 장관은 이를 '절윤' 현상의 증거로 해석하며, 한 전 위원장이 적절하게 대응했다면 당의 어려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경원 의원은 한 전 위원장의 판단력이 미숙했다고 비판하며, 그의 경험 부족이 오판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나 의원은 한 전 위원장이 당원과 국민, 그리고 당 총선 후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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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2024-07-05

문화 검색결과

  • '검은 잉크로 쓴 분홍' 시집 출간한 강미정 시인
    저자 초대석 일상 속에서 만난 당신과 나의 이야기 『검은 잉크로 쓴 분홍』 출간한 강미정 시인 강미정 시인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경남 김해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맏이여서 동생들을 돌보며 부모님의 일을 도와야 했지요. 저녁밥을 먹고 나면 우리가족은 둘러앉아 시조 외우기 놀이를 하거나, 아버지의 하모니카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엄마가 들려주는 그리스신화 이야기에 빠지곤 했습니다. 가난했지만 화목했던 그때의 시조 외우기 놀이가 저를 시인으로 이끌었나 봅니다. 저는 1994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사설학원 국어강사 및 독서논술 강사, 시 읽고 시 쓰기 강사 등으로 오래도록 밥을 벌었습니다. 시집으로 『타오르는 생』, 『물 속 마을』, 『상처가 스민다는 것』,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와 올해 『검은 잉크로 쓴 분홍』을 출간했습니다. 틈이 생길 때마다 집 주위의 문화답사를 하고 있고, 매일 읽고 매일 쓰고 매일 걷기를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을 소개하면?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은 숨 돌릴 틈도 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만난 당신과 나의 이야기입니다. 일상은 가벼운 공기처럼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놀라울 만큼 큰 파도가 지나가고 비켜가곤 했습니다. 일상 속의 그 파도를 겪으며 살아내는 당신의 고되고 슬프고 아픈 일을 따뜻하게 때론 차갑게 시로 표현했습니다. 아들에게 우산을 받쳐주느라 몸이 다 젖은 아버지, 비 오는 날이라야 쉬는 엄마의 아픈 허리를 발로 주무르듯 밟아주는 아이의 조심스러운 마음, 하루의 노동일을 마친 사람이 올해 첫 돈이라며 두 손으로 받는 노임, 치매를 앓는 노모가 세상을 향해 종일 한다는 욕, 추어탕 집에서 뜨겁게 넘기는 아린 국물, 홍진 앓는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엄마모습. 도망가는 택시를 잡으러 나온 머리 하얀 어르신들의 웃음 등 세밀하게 관찰하고 안타깝게 바라보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시집을 내게 된 동기와 에피소드 코로나가 왔을 때 잠자던 동생이 일어나지 못한 사건이 있었고, 그 충격으로 부모님이 초기 치매를 앓으셨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으나 두어 달 후 돌아가셨지요. 뇌졸중으로 20년 넘게 한쪽 수족을 못 쓰시는 어머니를 간병하다가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나니, 5~6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서야 잠시 저 자신을 바라보고 되돌아보는 시간이 오더군요. 그러나 슬픔에 슬픔을 더했던 날을 지나온 탓에 모든 것을 손놓고 있었습니다. 곁에서, 시인은 시를 써야하고 시집을 내고 또 시를 쓰면서 끝까지 가는 존재이니 시집준비를 하자는 후배의 설득으로 시집을 낼 용기를 얻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200여 편의 시 중에서 가족과 이웃, 나와 당신에 대한 시를 고르고 결이 비슷한 것끼리 묶게 되었습니다. -시인의 시 창작론은? 시인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날 법하거나 일어날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우리 삶을 그리는 데 있다, 라고 배웠습니다. 한 편의 시를 읽을 때,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져야 한다고도 배웠지요.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고도 배웠지요. 그래서 시 쓰기는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시가 될 법한 어떤 상황을 만나면 그 상황의 사실을 그대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왜 저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그랬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계속 재현해 보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합니다. 슬픔이나 아픔, 사랑 기쁨 이런 관념어는 스스로 움직이게 동사화 하면서요. 그러면 어느 날 한 편의 시가 써지곤 했습니다. -시집을 읽으실 분들께 팁이 있다면? 이번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에 실린 시는 대부분 일인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 속에서 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시 속의 주인공이 ‘나’로 설정되어 있지요. 그래서 쉽게 읽힙니다. 이런 설정은 마치 나 자신이 직접 겪은 일처럼 느껴지게 하려는 장치입니다. 왜냐하면 이번 시집은 일상생활에 아주 가깝게 밀착된 일들을 썼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아버지를 직접 관찰한 시와 이웃이 겪어내는 일에도 관찰자인 ‘나’가 개입되어 있지요. 시를 읽을 때, 나도 이런 느낌을 받았던 적 있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나도 이런 슬픔, 고통, 아픔을 겪고 힘들었다는 경험들을 떠올리며 시를 읽어주신다면 시와 가까워지고 감동도 짙어질 것입니다. -애착이 가는 시 한 편 소개 결정하기 참 힘듭니다.(웃음) 왜냐면 한 편 한 편의 시는 마치 자식 같아서 다 마음을 울리고 또 그 시에 몰입해 있을 때 마음을 다 쏟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 중 한 편을 소개한다면, 시집의 맨 앞에 있는 「활짝,」을 고르겠습니다. 언젠가 아이가 ‘튼튼’이라는 글을 쌍티읕으로 썼더군요. 우리가족을 위해 일하는 아버지는 더 많이 튼튼해야 한다고요. 그런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그윽한 눈빛과 마음이 전해져서 아버지의 따뜻한 정이 그리워지는 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애착이 가는 시입니다. 바짓단이 다 젖은 아버지가 눈이 까만 아들을 옆구리에 끼고 지하철을 탔다 빗물 흐르는 우산을 발밑으로 내려놓고 휘청거리는 아들을 꼭 껴안는다 아버지를 보며 아들이 활짝, 웃는다 지하철은 쏴아아아아 빗소리를 내며 달린다 우산이 없는 사람들이 비를 생각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골똘해져 있을 때 아버지가 내려놓았던 우산이 활짝, 펴졌다 지하철 인파 속에서도 자동으로 비를 막아주고 있는 아버지의 우산 잔잔한 파도처럼 사람들이 웃고 아버지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우산을 접는다 튼튼한 아버지는 우산처럼 우리를 보호해주십니다, 썼던 어떤 날의 따뜻한 저녁 밥상 속으로 내 마음이 달려가서 활짝, 펴진다 비는 피하지 않고 뚫고 가는 것이라고 우산 속에서 서로 어깨를 겯고 아들 쪽으로 더 깊이 우산을 씌워주는 한쪽 어깨가 다 젖은 아버지의 활짝, 웃는 얼굴이 보인다 - 「활짝,」 전문, 강미정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 중에서 -앞으로의 계획 하하, 저는 시인입니다. 그래서 계속 관찰하고 고민하고 느끼며 시를 쓸 것입니다. 여유가 된다면 시집도 계속 묶어낼 것입니다. 시인은 정년퇴임이 없지만 정년퇴임 때까지요. 조금 욕심을 내본다면, 사진과 시를 접목시킨 포토포엠 시집, 디카시집, 제 삶에서 굴곡이 심했고 간절했던 일들을 심리적 철학이 담긴 에세이로 묶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 편씩 썼던 글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새 것에 대한 변화가 느린 제가 또 좌충우돌하며 매일 쓰고 매일 산책하면서 변화하는 환경 속에 있을 것입니다. 지루할 수도 있는 저의 긴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문화
    • 문학
    2024-07-02
  • AI 글쓰기의 미래
    실제로 AI를 활용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소설 창작 작업의 모든 과정을 수행할 수 있었다. 1. 메타 인지: 당신은 일상 속 숨겨진 아름다움과 깊은 인간 감성을 탐구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들의 성장 여정에 감동을 받는 섬세한 취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2. 리서치와 레퍼런스 찾기: 당신이 좋아할 만한 작품은 솔라리스 (스타니스와프 렘),해리 슬로터의 타임 패러독스 (오슨 스콧 카드)입니다. 3. 소재와 줄거리 만들기: 양자 암호화와 의식 네트워크: 솔라리스의 신비로운 바다는 인간 의식을 반영하고 실체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후략. 줄거리: 주인공은 QCN의 개발자 중 한 명으로, 최근 사망한 과학자의 의식을 네트워크에 업로드하는 실험을 진행합니다. 실험이 진행되면서, QCN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네트워크는 과학자의 의식을 단순히 저장하는 것을 넘어서, 그의 생각과 감정을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실체로 변환시킵니다. 이 현상은 솔라리스의 바다가 인간 의식을 실체화시키는 방식을 모방한 것으로, 이를 통해 솔라리스의 비밀과 인간 의식의 신비를 탐구하는 여정이 시작됩니다. 후략. 4. 시놉시스(플롯)와 기획서:"Quantum Echoes"는 미래 사회에서 양자 암호화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인간 의식을 디지털화하는 'Quantum Consciousness Network (QCN)'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SF 소설입니다. 후략. 소설 장면: 지유는 긴장한 손으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채 잠시 망설이다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시스템, 과학자 의식 업로드 프로토콜을 실행해 줘." 그의 명령에 따라, 작업 공간은 초록색 데이터 스트림으로 화려하게 물들었다. 시스템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경고: 예상치 못한 데이터 패턴이 감지되었습니다. 의식 재구성을 시도 중입니다..." 바로 그때, 지유는 사무실 한쪽에서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림자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넌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을 손댔어... 솔라리스의 수수께끼는 이런 식으로는 풀 수 없어." 지유는 놀라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환영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선명했다. " 형이 어떻게....." 지유의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떨렸다. 지유의 친형은 이년 전에 죽었다. 개선 방향 및 평론: 갈등과 긴장감 증대: 현재의 줄거리는 큰 틀에서 갈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더욱 몰입감 있고 긴장감 있게 만들기 위해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의 갈등을 더욱 세부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후략. 어떤 프롬프트(질문)로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질문 목록을 나열해보겠다. 1.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A,B,C,D야. 그 소설들은 전문 문화평론가의 시점에서 어떤 공통점이 있지? 2.위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할 만한 SF소설(드라마, 영화)을 추천해줘. 3.소설 A와 ‘블록체인 기술’을 연결해서 소설 소재, 제목, 줄거리, 시공간적 플롯을 만들어줘. 4. ‘네트워크는 과학자의 의식을 단순히 저장하는 것을 넘어서, 그의 생각과 감정을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실체로 변환시킵니다’, 라는 부분을 소설 장면으로 만들어줘. 5. 이 소설의 개선 방향을 알려줘. AI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한 분야의 과학자에게만 물어서 답이 나오지 않았던 질문들을 AI에게 통합적으로 물음으로써 리서치 과정이 대폭 간소화되었다. 평소에 과학자와 SF작가들의 만남을 주선했던 필자로서는 정말 기적같은 변화로 느껴진다. 집안일을 간소화한 기기들처럼, AI는 글쓰기 과정을 단순화하고, 창작자로 하여금 더 복잡한 사상과 미학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일하느라 노는 것을 잊어버린 인류. 여태까지 인간이 일을 하느라 못 누렸던 ‘게임 놀이와 예술’을 시작하고 진정한 호모 루덴스의 시대를 열 수 있는 시기가 된 것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글쓰기가 재미없고 어려운 이유 위의 예시처럼 소설을 완성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도를 하다가 멈출 수 있다.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만들어 본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쓴다는 것은 주인공이 되어보는 감각이다. 주인공 관점으로 스토리라는 하나의 세상을 해석하고 만드는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스토리의 결말은 주인공에게 달렸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 인류가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의사 결정을 하는 감각을 키워야 하는 때가 왔다. 그렇지 않으면 AI의 의사 결정에 따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뉴스 기사, 소설, 프로파간다, 모두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다. 웹2 시대의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도 강력했지만 웹3에서는 스토리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수사학, 스토리 연구는 이제 교양이 아니고 필수 과목이다. 미래 먹거리인 메타버스 내의 공간 디자인도 아바타 캐릭터도 OTO(Offline to Online) 산업도, 아이폰도 스페이스X도 모두 다양하고 매력적인 스토리에 기반을 둔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세상을 만들어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많은 SF 소설에서 경고하듯이, 만약 사람들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의사 결정하는 방법을 잊거나 포기한다면,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AI나 소수 집단이 인류를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적 상황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 문화
    • 문학
    2024-07-02

과학 검색결과

  • 다니오넬라 세레브럼 연구로 새로운 수중 청각 메커니즘 밝혀져
    최근 발표된 네이처 저널의 표지 기사에서는 다니오넬라 세레브럼, 약 12mm 크기의 물고기가 주목받았다. 이 물고기는 물속 소리의 방향을 알아차리는 능력의 새로운 연구 결과가 소개되었다. 베를린 샤리테 의대 아인슈타인 신경과학 연구센터의 벤자민 주드케비츠 교수가 이끄는 팀은 다니오넬라 세레브럼을 사용하여 물속에서 소리의 방향을 어떻게 감지하는지 연구했다. 연구팀은 물속에 스피커를 배치하고 소리를 재생한 후, 레이저 현미경을 통해 물고기의 반응을 관찰하고 색상으로 표현된 물 입자의 움직임을 촬영했다. 이 실험을 통해 연구팀은 다니오넬라 세레브럼이 음압과 물 입자의 움직임을 비교함으로써 소리의 방향을 파악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스피커에서 발생한 소리에 의해 움직인 물 입자들은 물고기 머리뼈안의 감각모를 자극하여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를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더욱 흥미로운 발견은 물고기의 부레가 소리의 방향을 더 정확히 감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부레는 물고기 몸속의 공기주머니로 내이와 연결되어 있다. 연구 결과, 음압이 부레를 진동시키며 이 진동이 내이의 감각모를 자극하여 물고기가 소리의 정확한 방향을 알 수 있도록 한다. 연구팀은 이 연구가 다니오넬라 세레브럼뿐 아니라 전 세계 담수어의 약 3분의 2가 유사한 청각 기관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이는 많은 물고기가 비슷한 방식으로 소리의 방향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앞으로 물속에서 소리가 날 때 어떤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이 연구는 수중 생물의 청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 과학
    2024-07-06
  • '메타버스 서울' 서비스 종료… 60억 원 예산 투입에도 이용자 저조
    지난해 1월 시작된 '메타버스 서울' 서비스가 올해 말 종료된다. 지금까지 약 6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체적인 플랫폼 구축의 장단점을 비교한 끝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메타버스 서울을 통해 민원 상담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거나 주민등록등본 등 각종 서류를 발급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콜센터 민원 상담이 하루 평균 1만 건에 달하는 것과 비교해, 메타버스 서울을 통한 민원 처리는 하루 평균 2건에 불과했다. 이는 메타버스 플랫폼의 활용도가 극히 저조했음을 보여준다. 홍보를 위해 만든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약 1천 명에 불과했고,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2천 명에 그쳤다. 이는 서울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저조한 수치였다. 당초 계획은 2026년까지 400억 원을 투입해 메타버스 서울을 확장하는 것이었으나, 낮은 이용자 수로 인해 계획이 무산되었다. 오세훈 시장은 다양한 활용 방안을 모색했지만, 정책 방향을 과감히 바꾸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실패를 인정하고 이 정책을 접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이달 내로 서비스 중단 공지를 게시할 예정이며, 오는 10월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종료할 계획이다.
    • 과학
    • 정보통신
    2024-07-03
  • 전주 중학교에서 발생한 딥페이크 음란물 사건, 경찰 조사 중
    전북 전주의 한 중학교에서 남학생들이 교사와 동급생의 얼굴을 나체 사진과 합성한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들 학생은 인공지능(AI)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음란물을 제작하고 유포했으며,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딥페이크는 AI 기술을 활용해 생성된 가짜 이미지나 오디오, 비디오를 말한다. 이 사건은 딥페이크 범죄가 점점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딥페이크를 악용한 가짜 동영상 및 뉴스 유포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를 근절할 명확한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가해자를 특정하고 혐의를 입증해 처벌하기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에서 보듯, 해외 서버를 이용한 딥페이크 음란물 유포 시 가해자 추적이 어렵고, 혐의 입증 역시 까다로운 상황이다. 심지어 유포 목적이 없이 개인 보관용이라고 주장할 경우 실질적인 처벌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생성형 AI의 발전은 딥페이크 범죄 외에도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최소한 개입만으로 창작물을 생성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면서, 저작권 침해와 같은 이슈가 발생하고 있다. 생성형 AI 기술은 2022년 11월 Open AI에 의해 개발된 챗GPT의 등장으로 급부상했다. 현재 주요국에서는 AI 규제 법령을 시행 중이다. 유럽의회는 3월에 AI 기술의 안전성과 기본권 준수를 보장하는 인공지능 법(AI Act)을 승인했다. 미국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안전성·보안성·신뢰성을 갖는 AI의 개발과 활용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AI 규제를 강화했다. 중국도 생성형 AI 서비스 관련 법률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생성형 AI 기술의 부작용이 증가함에 따라,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한계를 명확히 하고,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통해 AI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문제 해결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과학
    • 정보통신
    2024-07-01
  • 국내 연구진, 비만치료제 작용 원리 규명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최형진 교수 연구진이 비만치료제가 음식물을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포만감을 느끼게 되는 원리를 규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28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인간과 쥐의 시상하부 신경핵을 통해 음식을 먹기 전 포만감을 높이는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게재됐다. GLP-1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주는 호르몬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호르몬이 뇌의 어느 부위가 작용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지금까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최형진 교수 연구진은 쥐 실험을 통해 이 호르몬의 작용 부위를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실험 결과, GLP-1 수용체는 '등 쪽 안쪽 시상하부 신경핵'(DMH)에 분포되어 있었다. 연구진은 수용체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했을 때 쥐가 먹이활동을 즉각 멈추고, 수용체를 억제했을 때는 식사 시간이 늘어나는 현상을 확인했다. 이 수용체는 삭센다(Saxenda)와 위고비(Wegovy) 등 비만치료제를 투여했을 때 더욱 활발하게 반응했다. 또 식사 전 음식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수용체를 자극하면 음식을 실제로 먹지 않고도 배부름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형진 교수는 "이번 연구로 GLP-1 비만약이 음식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배부름을 증폭시킨다는 점을 밝혀냈다"라며 "이는 뇌의 배부름 중추와 인지과학에 대한 기초과학적 발견인 동시에 새로운 비만약 개발을 위한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GLP-1 호르몬이 비만 치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크게 넓혔다. GLP-1 수용체가 DMH에 집중되어 있다는 발견은 뇌의 특정 부위가 포만감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비만치료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비만치료제 삭센다와 위고비는 현재 시장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약물들은 GLP-1 수용체를 활성화하여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느끼게 하여 체중 감소를 도와준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치료제의 작용 원리를 더 명확히 규명함으로써 효과적인 비만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비만 치료뿐만 아니라 다른 대사질환의 치료에도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GLP-1 수용체의 활성화가 혈당 조절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뇨병 치료에도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 연구는 비만치료제의 부작용을 줄이는 데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용되는 일부 비만치료제는 메스꺼움이나 구토 등의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 그러나 GLP-1 수용체의 정확한 작용 메커니즘을 이해함으로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약물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최형진 교수 연구진의 이번 연구는 뇌과학과 인지과학의 융합 연구이다. 이번 성과는 비만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앞으로 이 연구를 바탕으로 더욱 발전된 비만 치료법이 개발되기를 기대해본다.
    • 과학
    • 의학
    2024-06-28
  • 카카오, AI 사업 강화를 위한 사내 해커톤 '2024, 24K' 개최
    카카오는 인공지능(AI) 기업으로의 변화를 꾀하며 AI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사내 해커톤 ‘2024 24K’를 27일부터 1박 2일 동안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해커톤은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카카오 AI 캠퍼스에서 열리며, 50개 팀 170여 명이 참가한다. 카카오는 AI를 중심으로 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구현하는 과정을 마련했다. ‘2024, 24K’는 카카오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개발자와 서비스 기획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특정 주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해커톤은 '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로, 창의적인 문제 해결 과정을 의미한다. 카카오의 사내 해커톤은 2013년 처음 시작되어 올해로 6회째를 맞이했다. '24K'는 '크루를 위한 24시간(24 hours for Krew)'의 줄임말로, 개발, 디자인, 기획 등 다양한 직군의 카카오 크루들이 개인 또는 팀으로 참여해 각자의 아이디어를 시제품(프로토타입)으로 구현하는 행사다. 이번 해커톤에는 예선 및 본선 심사를 거쳐 본상 수상팀을 선정한다. 이번 해커톤은 카카오 AI 캠퍼스에서 진행된다. 카카오 AI 캠퍼스는 'AI 시대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재들의 성장 공간'이라는 주제하에 조성된 공간으로, 워크숍이나 컨퍼런스 등 카카오와 계열사 크루들을 위한 성장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크루들은 업무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정규돈 카카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이번 24K는 특정 분야에 구애받지 않고 AI와 관련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실체화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라며 “AI 캠퍼스라는 의미 있는 공간에서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개발의 즐거움을 느끼고 크루들과 소통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카카오는 이번 해커톤을 통해 AI 관련 기술 개발과 혁신을 촉진하며, 크루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자 한다. AI는 카카오의 미래 전략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번 해커톤은 그 전략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커톤에 참가한 한 개발자는 "이번 해커톤은 평소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며 "다른 크루들과 함께 협력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AI 캠퍼스에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라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어 기쁘다"라고 전했다. 카카오는 AI 기술을 통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용자의 삶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AI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이번 해커톤은 그 노력의 일환이다. 카카오는 앞으로 지속적인 AI 기술을 발전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번 ‘2024, 24K’ 해커톤은 카카오가 AI 기업으로 전환을 가속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크루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공유해 이를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을 통해 카카오는 더욱 혁신적인 AI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 과학
    • 정보통신
    2024-06-27
  • 온디바이스AI 기반 스마트홈 서비스, 개인정보 보호와 혁신을 동시에
    월패드, 셋톱박스, AI 스피커 등 다양한 전자기기를 통해 집 안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외부로 전송하지 않고도 스마트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26일, 국산 AI 반도체를 활용한 '온디바이스 AI 지능형 홈 선도모델' 실증사업을 발표하며,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된 새로운 스마트홈 서비스 모델을 제시했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프로젝트를 K-온디바이스 AI 플래그십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발표된 'AI-반도체 이니셔티브'의 일환의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제공하는 클라우드 기반 AI 지능형 홈 서비스와 차별화된 접근 방식이다. 기존의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는 집 안에서 생성되는 개인정보가 외부 클라우드로 전송되며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있었던 반면, 온디바이스 AI는 데이터를 외부로 전송하지 않고 기기 자체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실증사업은 공모를 통해 '효돌 컨소시엄'이 수행한다. 효돌 컨소시엄은 △돌봄인형 서비스 제공업체 '효돌' △AI반도체 기업 '딥엑스' △디바이스 기업 '와츠매터' △안전콜 서비스 기업 '행복커넥트' 및 'SK텔레콤' △실증공간 제공업체 '주택관리공단' 및 '복지기관'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온디바이스AI 기반 지능형 홈 모델을 개발하고 실증할 예정이다. 온디바이스AI 지능형 홈 선도모델은 다양한 혁신적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우선, 효돌의 돌봄인형을 통해 거주자의 표정과 감정을 파악해 먼저 대화를 시도하는 '감성 대화 서비스', 복약 제안이나 음식 추천을 해주는 '대화 방식의 건강관리 서비스', 응급 상황을 인지하고 자동으로 보호자나 119로 연결하는 '응급대처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특히, 응급대처 서비스는 돌봄이 필요한 1인 가구에 특화된 서비스로 설계되었다. 또한, 거주자의 생활 방식을 분석해 조명 등 기기가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개인 맞춤형 생활편의 지능형 홈 서비스'도 개발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효돌 컨소시엄은 거주자의 표정, 움직임, 내부 조도 등 집 안 상황을 인식하는 AI 비전 모델을 개발하고, 지역 방언 등 거주자의 발음 특성을 반영한 홈-sLM(소형 언어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한, 국산 AI 반도체를 탑재한 지능형 홈 허브기기를 개발하여 온디바이스AI가 원활히 구동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아울러, 제조사와 무관하게 다양한 기기를 자유롭게 연결할 수 있도록 국제 연동 표준인 '매터(Matter)'도 적용할 예정이다. 이번 실증사업은 국산 AI 반도체를 지능형 홈 서비스에 최초로 적용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정창림 과기정통부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국장)은 "개인정보보호가 강화된 온디바이스AI 기반 지능형 홈 선도모델은 지속 성장 중인 지능형 홈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디바이스AI 지능형 홈 모델은 실제 주거 공간에서 내년까지 실증될 예정이며, 이를 통해 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스마트홈 서비스를 구현할 계획이다. 이로 인해 사용자들은 개인정보 유출 걱정 없이 AI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과기정통부의 이번 실증사업은 AI 기술과 개인정보 보호의 균형을 맞춘 혁신적인 시도다. 국산 AI 반도체를 활용한 온디바이스AI 기반 지능형 홈 서비스는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다양한 스마트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 과학
    • 정보통신
    2024-06-26
  • 네이버웹툰, 나스닥 상장 앞두고 내부 직원들의 불만 폭발
    네이버웹툰(웹툰엔터테인먼트)이 오는 6월 27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다. 그러나 상장을 앞두고 김준구 대표가 받는 현금 보너스와 임원진들의 높은 보상에 대해 내부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웹툰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4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IPO) 일정을 보고하며 주식 공모가격 희망 범위를 주당 18~21달러로 제시했다. 이번 IPO를 통해 보통주 1,500만 주를 발행하여 최대 3억1,500만 달러(약 4,300억 원)를 조달할 계획이다. 상장 후 기업가치는 최대 26억7,000만 달러(약 3조7,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김준구 대표는 네이버웹툰 본사이자 미국 법인인 웹툰엔터테인먼트로부터 현금 보너스 3,000만 달러(약 416억 원)를 지급받는다. 이 현금 보너스는 다음 달 지급될 예정이며 김 대표는 이외에도 급여 7억7,000만 원, 상여 126억 원, 스톡옵션 11.5만 주,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약 1만4,815주를 추가로 받게 된다. 김 대표는 네이버에서 웹툰 사업을 새롭게 시작한 인물로, 초창기부터 웹툰 사업을 이끌어 글로벌 진출을 주도했다. 그의 리더십 아래 네이버웹툰은 전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사업 모델을 구축하며 성장해왔다. 네이버웹툰의 나스닥 상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큰 기대와 함께 불만을 야기하고 있다. 상장 준비 과정에서 많은 직원이 초과 근무와 경영 효율화 조치로 인해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작년부터 회사는 '비상 경영'을 선언하며 인센티브를 줄이고 비용 절감을 강조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장 공시 내용을 통해 임원진들이 높은 급여와 보너스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직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직원들에게 부여된 스톡옵션의 행사가가 공모가격보다 높게 책정되어 있어 실제로 스톡옵션을 행사해도 최저 이익 또는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한 직원은 "보통 때도 초과 근무가 잦았지만 상장 준비를 하면서 더욱 극심해졌다. 회사는 돈이 없다고 직원들에게 비용 절감만 강조했는데 이번에 공시를 보니 임원진은 상여금에 현금 보너스, 스톡옵션 보상까지 다 챙기고, 직원들만 이득을 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다니 경영진들의 태도에 황당할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이버웹툰은 나스닥 상장 일주일 전쯤에야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첫 설명회를 연다고 밝혔다. 상장 절차와 관련된 정보가 직원들에게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점도 불만을 야기하고 있다. 한편, 네이버웹툰 관계자는 "공시된 내용 이외에 말씀드릴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번 상장은 웹툰엔터테인먼트가 작년부터 추진해온 목표였다. 웹툰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분기 흑자 전환을 했지만, 지난해에는 1억4,480만 달러(약 2,014억1,680만 원)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적자가 계속됐다. 이러한 적자 구조를 줄이기 위해 경영 효율화가 필요했으며 이는 직원들의 인센티브 축소와 초과 근무로 이어졌다. 네이버웹툰의 상장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더 큰 성장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단계다. 그러나 이번 상장을 둘러싼 내부 직원들의 불만은 회사 경영진과 직원들 간의 신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상장 후에도 이러한 불만이 해소되지 않으면 회사 내부의 긴장감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네이버웹툰은 상장 이후에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진과 직원들 간의 신뢰 회복과 함께 공정한 보상 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상장으로 인해 확보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글로벌 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직원들에게도 공정한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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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4
  • 유튜브, VPN 이용한 '온라인 망명' 단속 본격화
    유튜브가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저렴한 비용으로 '유튜브 프리미엄'을 결제하는 이른바 '온라인 망명' 행위를 본격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최근 유튜브 프리미엄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용하던 일부 사용자들이 멤버십이 취소됐다는 안내 메일을 받았다는 후기가 전해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일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유튜브가 VPN을 통해 우회 접속해 유튜브 프리미엄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을 단속하고 있다는 유튜브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유튜브 대변인은 "가장 정확한 플랜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사용자의 국가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가입 국가와 사용자가 유튜브에 액세스하는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회원들에게 현재 거주 국가의 결제 정보를 업데이트하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유튜브 사용자들은 거주 국가보다 프리미엄 이용료가 더 낮은 국가에서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VPN을 활용해 우회 접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국적의 사용자가 유튜브 프리미엄을 이용하려면 월 1만4900원을 내야 하지만, VPN을 통해 위치를 이집트나 필리핀, 인도,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등으로 바꾸면 2000원에서 6000원 정도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 다른 IT 매체인 안드로이드어소리티는 북미 최대 커뮤니티 '레딧'에서 유튜브로부터 멤버십 취소 메일을 받았다는 사용자들의 경험담이 공유되고 있다고 전했다. VPN을 이용해 프리미엄 서비스를 사용하던 한 사용자는 "귀하의 유튜브 프리미엄 멤버십이 취소되어 유튜브 프리미엄 멤버십이 종료됩니다"라는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레딧에는 멤버십이 취소됐다는 경험담이 적지 않게 올라와 있다. 유튜브 고객센터에 연락한 한 사용자는 가입한 국가와 다른 위치로 '이동'해 멤버십이 취소됐다는 안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튜브는 테크크런치에 멤버십 취소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테크크런치는 "가입 국가 정보를 허위로 기재한 것으로 확인된 계정에 대해 프리미엄 멤버십을 취소하기 시작했다"는 한 구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유튜브의 이러한 조치는 프리미엄 서비스의 공정한 이용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는 프리미엄 서비스의 정확한 가격과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자 국가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VPN을 이용해 다른 국가에서 저렴하게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이 늘어나면서, 유튜브는 이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게 된 것이다. 사용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일부 사용자는 유튜브의 단속을 이해하며 공정한 서비스 이용을 지지하고 있다. 반면, 다른 사용자들은 VPN을 이용한 저렴한 서비스 이용이 개인의 선택이며, 유튜브의 단속이 과도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특히, VPN 이용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국가에서는 이러한 논란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번 유튜브의 단속은 글로벌 서비스 제공 업체들이 직면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각 국가마다 상이한 경제 상황과 소비자 가격을 고려해 서비스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국경을 넘어서는 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지면서 이러한 가격 차이가 문제가 되고 있다. VPN을 이용해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사용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서비스 제공 업체 입장에서는 수익 모델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유튜브가 VPN을 이용한 우회 접속 단속을 본격화하면서 사용자들의 불만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글로벌 서비스 제공 업체로서 유튜브가 공정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용자들의 반발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향후 유튜브가 어떤 대응을 취할지, 그리고 사용자들이 이에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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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2
  • 삼성전자 갤럭시S25, 전작과 큰 차이 없는 카메라 사양 공개
    삼성전자의 차세대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25'의 카메라 사양이 공개되었다. 네덜란드 정보기술(IT) 매체 갤럭시클럽은 19일(현지시각) 소식통을 인용해 내년 초 출시될 갤럭시 S25의 카메라 사양 정보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갤럭시 S25 후면 카메라에는 5,000만 화소 메인 카메라가 탑재되며, 전면 카메라도 전작과 동일 1,200만 화소 카메라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작인 갤럭시 S24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는 사양이다. 갤럭시 S25 플러스 모델 역시 동일 5,000만 화소 메인 카메라와 1,200만 화소 전면 카메라를 장착할 예정이다. 초광각 카메라나 망원 카메라 사양은 아직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사양에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추가적인 카메라 성능 향상을 통해 소비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갤럭시클럽은 갤럭시 S25 기본 모델의 배터리 용량이 전작과 동일 4,000밀리암페어시(mAh)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IT매체 샘모바일은 다른 모델의 배터리 용량에 대한 정보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표준 모델이 전작과 같다면 갤럭시 S25 플러스와 갤럭시 S25 울트라 모델 역시 각각 4900mAh 배터리와 5000mAh 배터리를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갤럭시 S25의 카메라 사양이 전작과 큰 차이가 없다는 소식에 일부 소비자들은 실망감을 표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모델로 혁신적인 변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소식일 수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카메라 외에 다른 부분에서 혁신적인 기능을 추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플래그십 스마트폰에서 항상 최신 기술과 혁신적인 기능을 선보여왔다. 갤럭시 S25에서도 카메라 사양 외에 다른 부분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AI 기술을 활용한 카메라 기능 개선이나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능 도입을 통해 소비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갤럭시 S25의 카메라 사양이 전작과 큰 차이가 없다는 소식은 일부 소비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지만, 삼성전자가 다른 부분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통해 이를 만회할 가능성도 크다. 앞으로 갤럭시 S25가 어떤 추가 기능과 혁신적인 기술을 선보일지 주목된다.
    • 과학
    • 정보통신
    2024-06-21
  • 성 기능 회복 희망, 발기부전, 반신 마비 환자에 희망.
    하버드 의대의 데이비드 긴티 교수팀이 신경생물학 연구를 통해 크라우스 소체가 성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냈다. 이 감각기관이 성관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어졌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19일 발표됐다. 특히 발기부전이나 반신 마비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크라우스 소체는 약 150년 전에 처음 발견된 이후로 성관계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 있었다. 이번 연구는 크라우스 소체가 저주파 진동에 반응하여 활성화되며, 이를 통해 생식기를 자극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수컷과 암컷 쥐의 크라우스 소체를 다양한 기계적, 전기적 자극으로 활성화시켜 이를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이 연구에서 중요한 발견은 40~80헤르츠(Hz)의 저주파 진동이 크라우스 소체를 활성화시킨다는 점이었다. 이 주파수 범위는 이미 성인용품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크라우스 소체가 성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상업적으로 이미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의 실험에서는 음경과 음핵에 위치한 크라우스 소체가 발기와 질 수축을 유발하는 것을 관찰했다. 특히, 음핵의 크라우스 소체 밀도가 높아 진동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성기능 회복이나 강화에 크라우스 소체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유전적 조작을 통해 크라우스 소체가 없는 쥐는 정상적인 짝짓기를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 감각기관이 성행위에 필수적임을 증명했다. 연구팀은 이제 크라우스 소체가 뇌의 쾌락 중추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이 감각기관의 민감성이 유지되는지 추가 연구할 계획이다. 긴티 교수는 이번 연구가 성기능 장애를 겪는 많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법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음을 강조하며 크라우스 소체에 대한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성기능 회복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성건강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과학
    • 의학
    2024-06-20

칼럼 검색결과

  • 2년 전, 헝가리 총선, 빅토르 오르반 총리의 4연임 당선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2022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4연임을 확정지었다. 헝가리 총선에서 여당인 오르반 피데스당이 71%의 득표율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페테르 마르키자이(Péter Márki-Zay), 야당 연합 총리 후보는 패배를 인정했다. 오르반은 이번 승리로 4연임에 성공했다. 오르반은 1998~2000년 총리를 지내고 2010년 총선 승리 이래 연속 3연임에 성공해 12년 연속 집권하면서 EU의 최장수 총리가 되었다. 그는 집권 이래 이슬람과 난민, 성소수자 등에 반대했고 사법부를 장악하는 등 EU의 규정들을 위반했다. 결국 EU 지도부는 헝가리에 대한 예산 지원 삭감을 경고했고 오르반은 지난 2월 연설에서 EU가 헝가리에 관용을 베풀지 않으면 공동의 길을 계속 갈 수 없다며 EU 탈퇴를 시사했다. 특히 오르반은 푸틴 대통령과의 오랜 친분을 강조해 왔다. 오르반은 승리 연설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선거 운동 기간 동안 극복해야 했던 반대자 중이자 그를 압박했던 인물 중 한 명이라고 지칭하기도 있다. 이와 같은 오르반의 배경으로 인해 헝가리는 러시아에 대한 EU 제재에 새로운 구멍이 생길수 있다는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다. CNN에 따르면 오르반은 우리가 달에서도 볼 수 있는 커다란 승리를 거뒀고 이는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도 보일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승리 자축했다. 오르반은 거대한 규모의 적들과 싸워야 한다면서 헝가리 좌파와 EU 관료들, 국제 언론을 모두 적으로 꼽았다. 앞서 헝가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EU 차원의 러시아 제재에 대부분 참여했다. 하지만 헝가리는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지원하는 방안은 거부하면서 EU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헝가리 외무부는 지난달 30일 헝가리 좌파가 우크라이나 정부와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젤렌스키가 헝가리의 내정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면서 이는 헝가리 좌파 세력들이 젤렌스키와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았냐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그렇다면 헝가리 극우 세력의 상징 빅토르 오르반은 어떠한 인물일까? 빅토르 오르반은 1963년 5월 31일 세케슈페헤르바르에서 태어났으며, 부다페스트의 외트뵈시 로란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는 청소년기와 대학생 때는 공산당원으로 활동했지만 군에서 제대한 이후로는 헝가리 내 공산 체제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으며 이후 서방 세계를 동경하여 자유 노조 등에 대해 공부했다. 1988년 오르반은 공산주의 정권에 반대하는 단체인 청년민주동맹(Fiatal Demokraták Szövetsége, 줄여서 피데스 Fidesz)이 만들어질 때 창립 멤버가 되었다. 더불어 공산주의의 패망을 예측하고는 <세기의 종언(Szazadveg)>이란 잡지도 창간했다. 그 다음 해인 1989년 6월 16일 부다페스트에 있는 영웅 광장에서 열린 헝가리 혁명 당시 수상 너지 임레(Nagy Imre, 1896~1958)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자유선거와 소련군의 철수를 공개적으로 촉구하는 연설을 했다. 이와 연설로 인해 그는 헝가리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으며 서구권에서도 주목받는 인사가 되었다. 이후 피데스가 헝가리 민주 정당이 되면서 오르반은 피데스 당의 당수가 되었다. 피데스는 1990년 치러진 총선에서 국회의 386석 중 21석을 차지했다. 이 시기까지 오르반 빅토르는 중도 성향의 정치인으로 선전했지만 1994년 총선에서 20석에 그치는 부진을 보이자 당의 노선을 중도파 자유주의에서 좀 더 보수주의적인 노선으로 탈바꿈했으며 이로 인해 상당수의 중도파 당원들이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1998년 총선에서는 피데스가 돌풍을 일으키며 148석을 차지하면서 원내 제1당이 되는 데 성공했다. 오르반 빅토르는 만 35세의 나이로 총리직에 오르게 된다. 오르반 정부는 적극적으로 서구화를 추구하면서 내부 경제적으로 연 4%씩 상승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외부에서는 나토나 EU 가입 등에 성공하여 최고의 외교적 성과를 올렸지만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빈부격차가 확대되었기에 하층민의 불만이 증가했고 이로 인해 치안 또한 악화되면서 내적으로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국유 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정치 부패가 만연함으로 인해 국민들의 큰 실망을 안겼고 좌파 세력이 아직 강성한 헝가리 내에 우익 세력이 부상할 가능성이 낮아짐에 따라 다음 선거에서 중도좌파인 사회당-자유민주연합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당시 헝가리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강도높은 긴축을 지속했으나 2008년 상반기에 피데스당이 주도한 국민투표에서 대학의 부분적 유료화와 무상 의료 서비스의 부분적 유료화 조치를 철폐하는 국민투표에서 패배하면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직후에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IMF 구제금융을 받기도 했고, 중도 좌파 정권의 개혁이 계속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여론 조사에서 피데스의 지지율이 순식간에 상승하여 60%대를 넘나들게 되었다. 게다가 친서방 자유보수주의 성향이었던 오르반 빅토르의 정치 성향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을때가 사회당 2기 집권기였을때인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친서방 자유주의 노선에서 극우 성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오르반은 2009년 연설에서 자유주의든 공산주의든 간에 엘리트들의 사상이라고 비난하는 연설을 하면서 그와 피데스당의 정치노선에 큰 변화가 있었음을 입증했다. 2010년 총선에서 피데스당은 긴축 대신 경제 성장을 내세우는 공약을 통해 기존 사회민주당 지지층을 대거 흡수하며 52.7% 득표율로 압승을 거두었고 오르반이 다시 총리가 됨에 따라 이 때부터 그의 4연임이 성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이를 규탄하고 EU의 대러시아 제재를 적극 지지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를 타국에서 무기 지원 할 경우 헝가리 국경을 경유하는 부분에 대해 헝가리 영토와 국민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난민을 거부하기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었고 실제로 2016년 시리아 난민이 생겼을 때, 세르비아 국경에 긴 장벽을 쌓고 시리아 난민이 들어오면 적극 구타하는 등 인권 탄압을 했을 정도의 인물이었지만 이번에는 어려움에 빠진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조건 없이 받아주고 있다. 그러나 오르반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무기 지원과 대러 에너지 제재 동참 요구를 거절하면서 EU 간에 형성된 대러 제재가 균열이 생길 위기에 놓였다. 특히 헝가리가 가스의 85%, 원유의 60% 이상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 차원에서 대러 제재는 거의 국가 경제를 파탄시킬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대러 에너지 제재 동참 요구를 거절했던 것으로 보여 진다. EU 제재에서 헝가리가 빠져 나가게 되면서 향후 대러 제재의 귀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주목된다.
    • 칼럼
    • Nova Topos
    2024-07-07
  • 조지아 서부를 장악하고 있는 아자리야인들의 역사와 아자리야 자치공화국 - 下편
    사실상 조지아에게서 독립한 아자리야와 아바시제는 1992년 감사후르디아가 실각하고 대권을 이어받은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Eduard Shevardnadze)와 비교적 잘 지냈다. 셰바르드나제는 제1차 조지아 내전으로 얼룩진 국내에서 정식 대통령이 되는 1995년까지 약 3년 동안 서방과 러시아에서 중립 행보를 보였으며 내전은 러시아의 개입과 중재, 그리고 셰바르드나제 측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는 사실상 독립해버렸고 이는 2008년의 남오세티야 전쟁의 불씨를 낳아버렸다. 이같은 상황을 목도한 아슬란 아바시제는 공식적으로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독립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내전이 끝났어도 조지아는 독립해버린 3국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조지아에게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내전에서 셰바르드나제의 공식 군대로 활약한 마피아 군단이었다. 이들 마피아들 중 므헤드리오니(Mhedrioni)는 조지아인 뿐 아니라 러시아인, 터키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소수민족으로는 라즈인과 아자리야인의 상당수가 합류한 준 군사조직이었다. 재밌는 것은 이들 준 군사화된 깡패 무리들의 무기들이 어디서 흘러왔는지 모르지만 상당수가 미제 무기를 장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침 1991년에는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한 달여 동안 걸프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당시 미국의 무기고에 재고 떨이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조지아 내전을 연구하던 미헤일 아르바쉬빌리(Mikheil Arbashvili) 교수는 걸프전을 종결한 미군이 므헤드리오니(Mhedrioni)에 상당한 양의 무기를 제공하면서 내전을 부채질했고 초대 대통령인 감사후르디아에 대한 쿠데타를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내전 당시, 러시아제 무기로 무장한 압하지야, 남오세티아 군대를 약체화된 조지아군은 이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에 분쟁 지역에 상당수를 민병대와 준군사조직에 위임했는데 문제는 이를 지휘하는 자들이 모두 조지아 마피아와 연결된 부패한 인물들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므헤드리오니는 조지아 마피아의 두목이었던 자바 이오셀리아니(Jaba Ioseliani)가 설립했다. 여기에 많은 범죄자들이 다수 가입해 있었으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러시아인, 터키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소수민족으로는 라즈인과 아자리야인까지 다국적 깡패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약 1,000명의 정조직원과 10,000명의 준회원들이 있었으며 어디에서 입수되었는지 불분명한 미제 무기로 무장한 이들은 불법 휘발유 공급과 마약 거래, 강도, 보호비 갈취로 자금을 마련했다. 결국 이 깡패들로 구성된 준 군사조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감사후르디아를 자살당하게 만들고 셰바르드나제는 대통령이 된다. 자바 이오셀리아니의 므헤드리오니는 석유 산업 이권을 얻었지만 해당 지역이 포티를 비롯한 흑해 연안 지역이었던데다 아지리야 국경까지 넘어 세력 판도를 넓히기까지 하니 아바시제는 이들과 전쟁을 시도했다. 그러자 자바 이오셀리아니의 므헤드리오니 같은 마피아 조직들이 조지아 정치권에서 위세를 부렸다. 하지만 대통령인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까지 보이자 이들을 숙청하기로 결심하고 바투미로 날아가 아바시제를 만난다. 아바시제와 화해하면서 조지아 마피아 일당을 함께 토벌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자리야가 더 큰 자치권의 지위를 인정하고 아자리야에서 아바시제의 권력 유지를 허락했다. 그러나 아바시제가 조지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는 것은 거부했다. 그러자 아바시제는 트빌리시의 조지아 의회에 신당 창당을 건의하면서 셰바르드나제의 조지아 시민 연합(Georgia Citizens' Coalition)과 연정을 요청했고 셰바르드나제는 이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하여 조지아 민주주의 재건 연합(Georgia Coalition for Democracy Reconstruction) 당이 창당된다. 그리고 감사후르디아 때와 다르게 여당의 세가 약한 상태였기에 이들은 서로가 연정했고 결국 1995년 말, 조지아 의회 선거에서도 절대다수의 여당이 된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는 조지아 민주주의 재건 연합(Georgia Coalition for Democracy Reconstruction)와의 연정을 깨면서 아바시제와의 약속을 어겼고 2003년까지 약 8년 동안 독재정권을 이끌게 된다. 이어 셰바르드나제가 트빌리시 의회 청사에서 폭탄 테러를 당해 암살 위기를 겪게 되자 이를 마피아들의 테러로 몰아 이들을 숙청했고 때에 맞춰 아바시제는 아자리야 땅에서 마피아들을 축출해버렸다. 셰바르드나제에 대한 트빌리시 의회 청사에서의 폭탄 테러 암살 미수 사건은 정말로 마피아들이 그 같은 테러 행위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일부 조지아의 현대 역사가들은 셰바르드나제의 자작극을 의심하고 있다. 마피아들로부터 정치적 위협을 깨고 선제 타격하여 정적을 제거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셰바르드나제와의 관계 악화에도 아바시제가 창건한 조지아 민주주의 재건 연합(Georgia Coalition for Democracy Reconstruction)은 최대 30개 의석까지 확보하고 있었다. 이들은 트빌리시 중앙 당국에 대한 온건한 반대 세력이었지만 의석 수를 더 늘리면 언제든 아바시제를 조지아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할 수가 있다. 그러나 2003년 부정선거로 인해 장미 혁명(Revolution of Roses)이 발발했고 여기에 미헤일 사카슈빌리(Mikheil Saakashvili)가 등장하면서 아바시제와 조지아 민주주의 재건 연합(Georgia Coalition for Democracy Reconstruction)의 계획은 틀어지기 시작한다. 장미 혁명과 같은 색깔혁명이 발발하면서 2003년 11월 23년에, 아슬란 아바시제는 아자리야에 비상 태세를 발령했다. 이어 아바시제는 조지아 민주주의 재건 연합(Georgia Coalition for Democracy Reconstruction)의 추천으로 2004년 1월 4일 조지아 대통령 선거에 참여했다. 그러나 색깔혁명의 여파는 뒤집을 수 없었고 그는 미헤일 사카슈빌리에게 패배했다. 패배의 결과는 결국 사카슈빌리의 최후통첩으로 연결된다. 이는 모든 아자리야의 지도자에게 조지아 헌법에 따를 것과 군대의 해산을 명령한 것이다. 그러면서 아바시제를 마피아 및 셰바르드나제와 내통 및 각종 불법물 관련 밀매 혐의로 조지아 대법원에 기소했다. 그러자 아바시제는 조지아 군대가 침입을 준비한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아자리야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러면서 아자리야의 군대는 아자리야와 조지아의 각 지역들을 연결하는 다리들을 폭파하고 혹시나 모를 조지아 군의 진입을 차단했다. 이와 같은 아자리야 지역의 비상 사태는 같은 해, 5월 4일까지 이어지면서 타 조지아 지역에 사카슈빌리에 대한 반대 집회까지 독촉하는 등, 제2차 조지아 내전이 촉발될 위기에 몰린다. 그러나 이러한 계엄령은 오히려 아자리야 내에서 역풍을 맞았다. 바투미에서는 조지아와의 평화적 공존을 위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이는 아바시제의 권력 구도가 축소되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된다. 아자리야에서 전체적으로 수만 명이 아바시제의 사임을 요구하기 위해 바투미로 향하면서 아바시제의 권력은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아자리야 전 지방의 시위대들이 중심 바투비에 입성한 5월 6일, 아바시제의 권력은 붕괴되었다. 이를 기회로 조지아의 특수부대가 바투미와 아바시제의 공관으로 진입하여 친 아바시제 단체들을 무장 해제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푸틴 대통령의 전갈을 받은 러시아 대사 이고리 이바노프(Игорь Иванов)와 밤새도록 대화했고 이바노프는 아바시제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아바시제는 다음 날, 7일 아침 퇴진을 발표했다. 그리고 8일 새벽 아바시제는 모스크바로 망명하면서 제2차 조지아 내전의 위기는 겨우 무마되었다. 아바시제의 실각과 망명 이후, 바투미에서는 새로운 지방 선거가 발표된다. 자치공화국의 발족을 위해 20인의 가협정 의회가 구성되었으며 레반 바르샬로미제(Levan Barshalomize)가 가협정 의회의 의장으로 임명되었다. 아자리야 지역 의회들의 선거는 6월 20일에 열렸고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정당은 30석 중 28석을 획득하며 아자리야 지역 의회에서 압승을 거둔다. 나머지 2석은 사카슈빌리의 이전 협력자들인 공화당원들이 장악하면서 아바시제의 세력들은 완전히 축출되었다. 그리고 7월 20일, 아자리야 최고 의회는 레반 바르샬로미제를 자치 공화국 정부의 의장으로 임명하면서 아자리야 독립 공화국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아자리야 지역 의회와 조지아 중앙 정권, 아자리야인과 조지아인은 문화적, 종교적으로 달랐으며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2008년 남오세티아 전쟁 때는 아자리야인들이 러시아를 지지했다. 사카슈빌리가 실각할 때, 아자리야인들은 러시아 국가를 부르며 사카슈빌리의 퇴진을 축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지아 입장에서 바투미는 흑해와 같은 바다로 나갈 유일한 창구다. 바투미를 잃는다는 것은 조지아에게 있어 어머어마한 타격이다. 기본적으로 아자리야 자치공화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적극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반대로 조지아 정부와 국민들은 친서방, 친우크라이나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조지아의 여당인 "조지아의 꿈"이 친러가 되면서 아자리야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조지아 동부와 아자리야인들의 사이도 그다지 좋지 않아 제3차 조지아 내전의 불씨가 서서히 피어 오르고 있는 중이다. 이같은 국내 문제로 인해 조지아는 다시 위기 일발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 칼럼
    • Nova Topos
    2024-07-07
  • 2011년 그리스 정부의 유로존 탈퇴 및 디폴트 선언을 무기로 한 그리스 2차 구제 금융 요구 사건
    2011년 7월부터 그리스 정부와 유로그룹은 2차 구제금융 지원 논의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2011년 10월 유로그룹은 채무탕감과 1,300억 유로의 2차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EU 정상들은 유럽 은행들을 비롯한 민간 채권자들과 10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그리스 부채 탕감률을 50%로 올리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그리스가 갚아야 할 총 채무 3500억유로 중 민간부문 1000억유로가량이 줄어들게 됐다. 대신 민간 채권자들이 보유한 나머지 그리스 채권이 디폴트에 빠지지 않도록 EU는 300억유로의 보증을 제공한다. 또한 EU 정상들은 EFSF를 4400억유로에서 1조유로 수준으로 대폭 확대했다. 재정위기국이 채권을 발행할 때 EFSF가 발행금액의 20~30% 정도 보증을 서는 것과 EFSF 산하에 특수목적기구(SPV)를 설치해 IMF와 중국 등 국부펀드 자금을 끌어들이자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도 전화를 걸어 EFSF에 대한 투자를 요청하기도 했다. 위기에 대비해 역내 은행들이 자본을 내년 6월 말까지 1060억유로 정도 늘리는 은행 자본 확충방안도 나왔다. 은행들이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보고 여의치 않을 경우 해당국 정부가 지원해 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마저도 어려울 경우 유럽재정안정기금인 EFSF가 돕기로 했다. 이와 함께 유로존과 IMF는 그리스의 재정위기 타개를 위해 그리스에 1000억 유로 규모의 추가 지원자금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날 사르코지 대통령은 그리스 민간 부채 중 50%를 탕감하며 올해 160%로 추정되는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을 2020년까지 120%로 낮출 수 있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EU 정상들은 이탈리아가 의향서 제출을 통해 각종 개혁조치를 실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스스로 정한 시한과 목표를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합의에 따른 관련 규정 변경에는 최소 2~3개월이 소요된다. EFSF 확충 등 이번 합의 사항은 모든 유로존 국가 의회의 동의를 얻아야 한다. 2012년 3월까지 그리스 332억 유로, 이탈리아 1980억 유로, 스페인 840억 유로 등 국채 만기가 도래하게 된다. EFSF가 빨리 운용 가능한 기금 규모를 확충해야 하는 이유다. 결국에는 2011년 10월 EU가 부채의 50%를 탕감해주고 2차 금융 지원을 하기로 결정되었지만, 그리스 국민들은 EU의 수장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나치라 비난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이는 금융 지원에 있어 필연적으로 따라 붙게 되는 긴축 요구 때문이다. 당시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그리스 시내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공공의 골칫거리'라는 문구와 더불어 과거 히틀러 정권을 연상시키는 나치 SS 친위대원의 옷차림을 한 포스터가 등장했다. 메르켈 총리는 EU를 상징하는 별과 나치 상징 문양이 함께 그려진 완장도 차고 있다. 그리스 현지 신문 만평도 독일 관리들이 나치 복장을 하거나 긴축정책에 동의한 그리스 정부 관리들이 나치식 인사를 하는 모습으로 그렸다. 시민들은 정부의 임금과 연금 삭감, 증세 등 계속된 긴축정책에 반발하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화가 난 일부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고대 유적지를 방문한 독일 관광객에게 적대적으로 대할 정도다. 그리스 언론은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독일 정부의 간섭이 약 65년 전 히틀러 정권이 그리스에 악행을 저질렀던 경험을 연상시키며 독일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우여곡절 끝에 합의된 2차 그리스 구제금융 패키지에 대해 그리스 국민 과반수가 되려 반대 의사를 표했다. 패키지에 포함된 그리스 국채 상각(헤어컷) 프로그램이 자국에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리스인의 58%는 이 긴축안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대통령과 관료들은 반역자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 유럽의 지원에 대해서도 50.1%는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48.8%는 자주권 훼손을 우려하는 등 그리스 국민들 사이에서는 외부 지원에 대한 의견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다만 그리스가 유로존(유로 사용 17개국)에 남길 원한다고 답한 이는 72.5%에 달했다. 이에 따른 증세불복 시민운동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이 운동 일부 공무원까지 참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시민 운동의 시작은 그리스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열린 국경일 기념행사의 거리행진에서 드러났다. 매년 주요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이 행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0년 이탈리아군의 침공을 저지한 것을 기념해 열리는 이벤트다. 그러나 2011년의 행사는 시위대의 반발로 차질을 빚었다. 시위대는 낮부터 행진을 막고 카를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 파노스 베글리티스 국방장관 등을 향해 “반역자”라고 외쳤다. 10월 26일에도 베글리티스 장관과 일부 국회의원들은 이 지역 한 교회를 방문했다가 호된 욕설을 들어야만 했다. EU 정상회의가 10월 27일 내놓은 그리스 채권 손실률 상향 등 위기 해법에도 비판은 더 커졌다. 그리스의 지방 자치 단체들도 반발했다. 주민 수가 7만 명인 아테네 광역도의 네아 이오니아 구에서는 전기 요금 고지서에 함께 부과된 신설 재산세를 내지 말도록 촉구했다. 당시 이라클리스 고트시스 구청장은 신설된 세금이 불법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는 구민들이 세금 낼 돈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심각했다. 재정난으로 인한 국가부도 위기를 타개하려는 정부의 증세정책에 반발한 그리스 국민의 불복종 움직임이 산발적이지만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증세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면서 일부 지방 공무원들마저 증세 거부운동에 가담하고 나설 정도였다. 앞서 언급한 네아 이오니아구 의회도 웹사이트에 세금은 내지 않고 전기요금만 내는 방법을 공지하면서 증세 거부를 부추겼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네아 이오니아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부 변호사들과 노조, 사회운동가들도 정부의 신설 세금 징수와 수만 명의 공무원을 급료 일부만 지급하면서 정직시키는 계획을 좌절시키기 위해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부기관 건물들이 점거되는가 하면 파업 중인 노조원들의 복귀를 지시하는 긴급 통지문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고 국영기업들은 일시휴직 대상이 될 수 있는 공무원 명단 제출을 거부했다. 이와 같은 거부운동은 쓰레기 수거 작업원, 제빵사, 택시운전사, 치과의사, 항공관제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산발적인 파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확산되었다. 당시 그리스 국민들은 정부의 재정 지출 삭감과 이로인한 가계소득 감소, 16%를 넘어선 실업률로 가계의 지출 여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그리스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한 것은 특히 신설된 재산세였다. 2011년 9월 발표된 이 재산세는 올해 말까지 20억 유로를 징수할 것이 계획되어 있다. 그리스 정부는 이 세금을 쉽게 걷기 위해 전기 요금 고지서에 포함시켜 함께 부과했다. 세금을 안 내면 단전될 수 있다는 경고가 포함된 셈이다. 이와 같은 정부의 의도에 국영 전력회사 근로자들까지 분노하고 나섰다. 이들은 단전을 막겠다고 공언하고 단전된 경우에도 노인이나 실업자 등 취약계층에게는 다시 전기 공급을 재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고지서 인쇄를 막기 위해 관련부서를 점거에까지 나서기도 했다. 변호사들도 가세해 아테네 변호사협회는 이번주 이 법의 폐기를 당국에 요구했다. 2011년 11월에 들어서자마자 그리스 정부는 유로존 탈퇴 및 디폴트 선언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하겠다고 나섰다. 그리스가 EU 2차 구제금융안에 대한 국민투표에 유로존 탈퇴안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유로존 탈퇴 여부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강경한 의지로 풀이된다. 파판드레우 3새 총리는 11월 2일 EU의 구제금융에 대한 국민투표와 관련하여 그리스가 EU와 유로존 회원국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파판드레우 3세 총리는 각의에서 국민투표의 딜레마는 구제금융과 유로, 유럽에 대해 찬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며, 현 내각의 불신임 여부와 관련 없다라고 했다. 그리스가 갑자기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치킨 게임에 나서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주가와 유로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다시 불안에 빠지고 있었다. 유로존 국가들이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다시 한 번 국민투표 강행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그리스 총리 관저의 툴카스 대변인도 신임투표에서 다시 한 번 승리를 거둬 정부의 계획을 밀고 나갈 것이라며 정부는 국가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게서 뒤돌아서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4일 일 밤 의회에서 파판드레우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를 앞두고 있었다. 여당에서도 반발하는 1명이 탈당해 여당인 범 그리스 사회주의 운동 당의 의석은 과반에서 2석 많은 152석으로 떨어졌다. 제1 야당인 신민주주의 당의 안토니오 사마라스 당수는 조기총선을 요구하면서 총리가 자신을 위해 그리스의 미래와 유럽 내 그리스의 입지를 위험에 빠뜨리는 왜곡된 딜레마를 안겼다고 비난하는 등 야당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이와 같은 그리스의 도박에 대해 EU 지도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유로그룹 의장인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그리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가 국민투표를 통해 구제금융안을 거부할 경우 국가부도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어 이미 불안할 대로 불안해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그리스의 국민투표 결정은 재정위기를 해소하려는 유럽의 노력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헤르만 반 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호세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도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그리스가 유로존과 국제사회에 진 의무를 존중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반발이 거센 상황에서 프랑스와 독일, 그리스 정상들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앞서 긴급 회동했다. 이번 회담은 그리스의 국민투표 시행에 따른 금융시장 혼란 등에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IMF 총재, EU 관계자, 그리스 대표 등도 배석한다. 회의에서는 유로존 해법의 열쇠를 쥐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 정상이 그리스의 국민 투표안 철회를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EU 정상회의 결정을 수행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수적이라면서 그리스 부채를 줄이는 EU 합의안 실행을 촉구했다. 그러나 그리스 국민 대다수의 여론은 디폴트 선언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렇게 될 경우 유로존은 엄청난 위기에 휩싸일 공산이 커지고 그리스는 말 그대로 파르테논 신전 같은 돌덩어리를 제외고는 국내외 자산이 모두 압류된다. 다만 그리스 국내 자산은 그리스의 사법 당국이 허가해야 해외 채권자들이 처분할 수 있다. 당시의 유럽 증시는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운 상황에 있으며 미국이나 아시아 증시의 하락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같은 돌발 상황으로 인해 전 세계 주식이나 금융 쪽에 관련된 투자자나 종사자는 그리스에 대한 원망이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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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6
  • 홍차무역, 동인도회사와 보스턴 차 사건, 홍차의 수장이 도화선이 된 미국독립전쟁
    현재 홍차를 생산하며 판매하고 있는 동인도회사는 1978년 영국 문장원에서 문장 사용 허가를 받아서 운영하고 있는 회사로 회사의 설립시기를 1978년이 아니라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1600년으로 보고 그 연혁을 계승하고는 있다. 그러나 영업 분야가 홍차의 생산 및 판매에 한정되고 있는 만큼 사실상 다른 회사로 보는 것이 맞다. 이 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에는 보스턴 티 파티(Boston Tea Party)라는 홍차의 제품이 있다. 이 홍차 제품의 경우, 보스턴 차 사건에서 차용한 이름이다. 그래서 제품의 라벨에 당시 보스턴 차 사건을 묘사한 삽화를 삽입했다. 그럼 동인도회사에서도 권장하는 홍차 제품에 나타난 보스턴 티 파티(Boston Tea Party), 거기에서 유래한 보스턴 차 사건은 어떤 사건을 말하는 것일까? 1755년에 시작된 프랑스-인디언 전쟁은 1763년 영국이 강력한 무력을 앞세워 압도적인 승리로 종결되었다. 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영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었지만 그와 함께 막대한 빚더미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식민지인 입장에서는 프랑스나 아메리카 원주민 등 경쟁자들을 모두 제압하면서 본국에게 따로 의회와 자치를 요구할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되었으며 결국 식민지 아메리카에 의회가 설립되었다. 당시 영국 정부의 부채는 세수 총액의 절반이었던 1억 3,000만 파운드로 엄청났다. 이에 1764년부터 설탕세와 1765년에는 인지세를 내게 하면서 아메리카 식민지 인들이 대거 반발했다. 그리고 대규모의 폭력 사태를 일으켰고 결국 영국은 1766년 이러한 큰 세금부과 정책을 철회했다. 아메리카 13개 주(州) 식민지들은 이 때 자신들의 정치적인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 식민지 의회가 영국 의회에서 대표자로 입회하기를 희망했다. 또한 1770년 2월 22일에는 크리스토퍼 세이더라는 버지니아 주 출신의 소년이 세관 직원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같은 해, 3월 5일 보스턴에서 대규모 학살 사건이 발생하는 등 민심도 좋지 않은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한 반발을 강하게 억누르며 세금을 부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수가 부족하자 1773년 봄, 영국 의회에서는 세수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홍차법을 제정하여 이를 아메리카 13개 주 식민지에도 적용하게 된다. 당시 홍차는 중국에서 네덜란드에 밀수로 팔고 영국 및 영국 식민지들에 유통되어 네덜란드의 밀수업자들이 대단한 이득을 보는 구조였다. 영국은 자국으로 수입되는 홍차에 대해 관세를 부과한 반면 네덜란드 정부는 홍차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홍차가 같은 가격에 수입된다면 관세를 물지 않는 측이 저렴해지기 때문에 식민지 밀수업자들은 네덜란드에서 홍차를 사는 것을 선호했던 것이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유럽의 홍차 무역에서 본국의 세금 징수를 부담하는 도중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홍차 무역에 밀리게 되면서 그로 인해 적자가 누적되고 있었다. 자국 동인도 회사가 어려움을 겪게 되자 영국 정부가 제시한 홍차법은 중국과 동인도회사, 영국 및 영국 식민지로 유통망을 형성하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영국은 세수를 확보했고 영국시민들과 아메리카 식민지 13개 주민들은 완전히 거품이 빠진 정가에 홍차를 구매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로써 영국법을 통해 동인도 회사가 직접 아메리카 식민지에 홍차를 납품하게 되었고, 이러한 덕택에 아메리카 식민지인들은 기존 홍차 가격의 절반으로 홍차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로 인해 당시 아메리카 식민지 인들은 이 법안에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불만을 가진 이들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홍차 소비자들이 아니라 아메리카 식민지의 홍차를 네덜란드를 통해 밀수하던 상인들이었다. 당시 홍차 밀수꾼들은 밀수입을 통해 세금을 내지 않았고 이를 통한 부를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있었다. 그런데 홍차법이 통과가 되어 자신들의 수입이 끊어지게 되자 이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홍차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영국 정부에 불만을 품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지식인들과 결탁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영국 식민지들에는 각각의 총독들이 파견되었고 각 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들은 독자적인 정부와 의회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 아메리카 식민지들을 통솔할 영국 정부는 대서양 건너편 멀리 있었기 때문에 각각의 식민지들은 서로 다른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영국령 아메리카 13개 주의 경우, 영국의 다른 식민지들보다 자율성을 더욱 부여받았다. 그 이유는 청교도들이 중심이 된 메이플라워호의 출항 이후, 아메리카 대륙은 영국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에 의해 개척되었고 그들 중에서 후발주자로 들어온 이민자들 중, 귀족이나 의회 상, 하원 의원급 되는 상류층들도 대거 들어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입장에 있었기에 영국에서 정책을 제정하고 실행할 때 각 식민지 총독들과 협의 끝에 결정되었는데, 아메리카 13개 주 식민지만큼은 달랐다. 이들은 총독이 아닌 영국의회로 직접 건너가 대표단이 참가해서 의사결정을 했을 정도였고 의회에서의 결정문을 직접 가지고 13개 주에 돌아와 포고문을 발표했다. 게다가 13개 주의 영국 총독은 13개 주의 의회에서 투표로 선출했고 영국의회의 재가까지 받아 임명되는 다른 영국 식민지들과 엄청난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메리카 13개 주의 식민지에 설탕세부터 시작한 세수 확대 법안이 아메리카 대표단의 의견을 무시하고 모두 영국 의회 독단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독단적인 사건은 직접세를 부과한다는 것에 큰 불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 자체가 아메리카 13개 주 식민지에서 그들에 부여된 자치에 대해 영국의회에서 이를 무시한 행위로 간주했기 때문에 이들과 홍차 밀무역꾼들이 서로 결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때 등장한 인물이 훗날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6촌 형이었던 사뮤엘 애덤였다. 사뮤엘은 자유의 아들들(Sons of Liberty)이라는 집단을 이끌고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 이들은 1773년 12월 16일 저녁 7시. 미국 보스턴 항구에 등장하게 된다. 이 자유의 아들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던 모호크족 복장을 하고 있었고 홍차가 가득 실린 동인도 회사 소유의 무역선을 습격했다. 이들 자유의 아들 집단은 100여 명이 총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3척의 배에 탑승했고 이들은 선장과 선원을 협박해 화물칸 열쇠를 얻어냈다. 그리고 화물칸에 쌓인 342개에 달하는 상자들을 부수고 그 안에 있던 중국 홍차들을 모두 바다에 던져 버렸다. 이렇게 바다에 뿌려진 홍차의 총 가치는 9,000파운드로, 현재 원화 가치로 환산하면 16억원에 달하는 수준의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에 분노한 영국은 1774년 함대를 파견해 보스턴 항을 폐쇄하고 매사추세츠 자치정부를 해산시켰으며 자치통치에서 직접통치로 식민지배의 방향을 바꾸려는 생각을 갖게 되자 여기에 불만을 품은 아메리카 13개 주 식민지인들이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이게 된다.
    • 칼럼
    • Nova Topos
    2024-07-06
  • 조지아 서부를 장악하고 있는 아자리야인들의 역사와 아자리야 자치공화국 - 中편
    아르메니아 행정부는 1920년 7월 20일에 아자리야 지역을 조지아에게 양도했다. 그러나 당시 볼셰비키와 러시아의 요원들이 조지아에 들어와 주요 행정권을 장악했다. 이들은 일련의 사보타주와 테러 결사대를 조직하면서 오스만 제국과 관련 있는 인사들과 아르메니아 소속의 주로 소비에트에 대한 반감을 가진 자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민주주의 조지아 집행부는 소비에트 통치 하에 있었지만 아자리야인들과 자치주를 통제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아자리야 자치주에게 소비에트로 합류를 종용했다.조지아를 소비에트가 장악하고 있는 기간 동안에, 오스만 제국의 군대가 터키 동부 지역의 아르메나아 군을 밀어내면서 1921년 3월 11일 바투미에 출현했고 15일에는 볼셰비키 조지아 군을 이끌도 기오르기 마즈냐슈빌리(Giorgi Maznyashvili) 장군이 아자리야의 군대를 이끌고 오스만 군과 3일 동안 교전을 벌였다. 바투미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아지리야 군대는 오스만 군과 시가전을 벌이며 중심 시가지들을 완전히 장악했다. 결국 오스만 군은 흑해 해안대를 따라 사르프로 철수했다. 그리고 바투미에서는 소비에트의 직접적인 통치가 19일에 공표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19일에 소비에트-오스만 제국이 카르스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조지아 서부 지역은 일명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일명 그루지야 SSR)의 관할에 들어갔고 아자리야인이 장악한 바투미도 그루지아 SSR의 일부 지역으로 합병되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지도부에서는 아자리야와 기타 조지아 지역의 종교가 달라 아자리야 지역에 자치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때 아자리야에 자치권을 내주고 조지아에게서 독립하게 한 인물이 아이러니하게도 조지아가 고향인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당시에 민족 인민위원이었고 실제로 민족 문제 관련하여 일을 많이 했던 때였다. 스탈린은 조지아 내에서 아자리야인들에 대해 특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이에 상당수의 아자리야 자치정부의 인사들이 스탈린의 측근이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스탈린은 소수민족 출신의 공산주의자들을 자신의 권력 기반으로 포섭할 수 있었으며 이는 공산당의 조직 기강을 내세우기 위해서 신설된 전연방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 서기장에 선출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스탈린과 소비에트 정부는 1921년 7월 16일에 아자리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을 공표하면서 조지아와 드디어 완전히 분리시켰다. 그리고 기존의 조지아는 자카프카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변모한다. 이로 인해 아자리야는 현재까지도 친러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편 국운이 완전히 쇠진한 오스만 제국은 아자리야의 혼혈 인구에서 무슬림들의 이익을 위해 아자리야에게 자치권이 부여되는 조건으로 현 터키 영내 아자리야 지역을 볼셰비키에게 양도했다. . 그와 같은 영토 양도는 소련으로 하여금 모스크바에서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흑해 항구 도시인 바투미를 자카프카스에게 완전하게 통제권이 주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있었고, 오스만 제국에서 생활하는 조지아계 무슬림들에게 공산주의 성향을 북돋아 오스만 영내에서 볼셰비키의 지령을 받아 각종 사보타주와 첩보활동을 재개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 통치 하에,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 공산주의 무신론 사상에 대척된다 여겨 철저히 억제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1929년 4월, 아자리야와 카프카스 산악 무슬림 마을에 거주하는 라즈인들은 강제적인 집산주의화와 종교 박해에 대항하여 여러차례 봉기했다. 이에 소련의 부대들이 동원되어 반란 진압에 나섰고 반란은 곧바로 평정되었다. 그러자 수천명의 아자리야인들은 자국 공화국 밖으로 추방되거나 소련 영내로 강제 이주되어 산산히 흩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때 메흐메트 아바시제(Мехмет Абашидзе)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지만 스탈린의 사후, 카자흐스탄의 아자리야 공동체들의 지도자 가문으로 아바시제(Абашидзе) 가문이 선정되었다. 이후 흐루시초프 당시 해빙기를 맞이하면서 수많은 민족들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때, 아바시제(Абашидзе) 가문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향인 조지아 서부 지역으로 돌아온다. 당시 메흐메트 아바시제가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총살된 이후, 지도층이 거의 와해된 상황이었는데 메흐메트 아바시제의 아들인 아슬란 아바시제(Aslan Abashidze)가 아자리야 공동체를 이끌게 되었다. 그는 바투미 대학에서 역사와 철학 학위를, 트빌리시 주립 대학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면서 소비에트 체제에서 아자리야인들의 희망이 되어갔다. 이후 소련이 해체되면서 아자리야는 형식적으로 조지아에 속했으나 사실상 독립국이나 다름없었던 미승인국가가 되어 있었다. 이에 조지아에서 첫 번째 민주주의 의회가 생성되고 대통령 선거가 치뤄지며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Zviad Gamsakhurdia)가 조지아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감사후르디아는 당선되자마자 아자리야 공화국 지도자인 아슬란 아바시제(Aslan Abashidze)를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한다. 이 때 감사후르디아가 아바시제에게 바랬던 것은 지역 자치의 지위를 포기하여 조지아의 영향 하에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1991년 3월 15일에 감사후르디아는 아바시제를 아자리야 최고 의회 의장으로 임명했다. 이어 감사후르디아는 손수 바투미로 날아가 아바시제를 만나 아자리야 자치권의 폐지를 제안했다. 이에 아바시제는 아바시제는 항변하여 자치권 폐지를 거부했고 감사후르디아는 트빌리시로 돌아가 아자리야인을 특히 지역 무슬림이라 부르면서 이들에 대한 탄압과 강제 진압하기 위해 전군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중앙의 조지아 당국과의 긴장이 형성되며 조지아 내전으로 촉발될 가능성이 커졌다. 감사후르디아는 조지아 민족에게 있어 좋은 지도자였을지 몰라도 압하지야, 남오세티야와 아자리야, 라즈인들에게 있어 그는 흉폭한 폭군이었다. 압하지야, 남오세티야는 감사후르디아의 조치에 즉각 반발했고 당시 체첸과 전쟁에 여념이 없던 러시아를 이 분쟁에 끌어들였다. 특히 아자리야의 아슬란 아바시제는 직접 모스크바로 날아가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이 때 모스크바에서 옐친의 지원을 확약받고 러시아의 도움을 받게 되니 당시 카바르디노-발카르와 쿠반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 700여 명이 바투미에 입항하면서 아자리야의 민병대와 합류했다. 1991년 4월 22일, 아바시제 민병대들은 조지아의 공무원들과 친조지아 의회 의원들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하며 바투미 의회로 쇄도했다. 이들은 친조지아 세력들과 관료들을 아자리야 지역에서 추방했으며 감사후르디아의 조지아 군을 격파해 아자리야에서 몰아냈다. 이로써 아바시제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아자리야를 독립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지아는 당시 심각한 내부 분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수도인 트빌리시에서는 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민족 분리 운동으로 인해 소요 사태가 심각했다. 1991년 1월 5일 조지아의 국가 요인 경호대는 남오세티야의 수도 츠힌발리로 진입해서 도시를 포위하면서 중대한 위기 상황을 맞이한다. 그러자 트빌리시에서는 오세티야인과 압하지아인들의 분리 독립 시위가 발생했고 감사후르디아는 여기에 발포를 허가하자 이 시위는 폭동으로 변질되었다. 중요한 국가의 준군사 세력인 조지아 국가 요인 경비대는 친, 반 감사쿠르디아로 분열되었으며 이는 심각한 조지아의 내전(Georgian Civil War, 1991~1993)으로 촉발된다. 상황이 이쯤되니 감사후르디아는 아자리야의 사건들에 간섭할 수 없었다. 게다가 최고 소비에트 의장 대리이며 아자리야에서 조지아 정부의 최고위층 지지자인 보다르 임나제(Bodar Imnaze)가 살해됐다. 아바시제 측의 주장에 의하면, 임나제의 손에 총이 들려있었고 아바시제의 집무실에서 테러를 시도하다가 경호원의 총에 맞았다고 했다. 이를 트빌리시의 대중매체들은 임나제의 사망이 사유불명으로 간략하게 보도했을 뿐이다. 그러나 내부의 주장들에 의하면 임나제가 집무실에서 아바시제와 논쟁하던 중에 아바시제가 격분해 그를 사살했다고 한다. 결국 이는 아자리야가 조지아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독립했음 시사하게 되는 사건임이 틀림없었다. 아자리야는 바투미 항구를 끼고 조지아의 대외무역을 사실상 독점하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게다가 조지아 내전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조지아는 아자리야의 사실상 독립을 막을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아자리야는 표면상으로는 조지아에 속해있었지만 사실상 조지아의 지배를 전혀 받지않는 독립적인 위치에 있게 되었다. 아자리야 공화국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1997년 10월 24일에, 아자리야는 유럽 지역 의회(AER)의 완전환 회원이 되면서 정식 국가로 서서히 발돋움하기 시작한다. 아자리야 지도부는 조지아 중앙 당국의 예산 확충을 위해 세금 내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아바시제에게는 문화, 바투비 해항, 다른 전략적인 대상들에 전체적인 통제권을 갖고 있었고 게다가 그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었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바시제는 자신을 위한 무장 부대를 만들어 아자리야 국방부를 따로 설립했고 조지아 국방부 소속의 바투미 해군기지 25번째 여단의 모든 통제권을 장악했다. 이에 조지아 정부는 바투미 기지의 러시아 군대의 부대가 아바시제의 독재를 위한 세력 기반이라 주장했고 아바시제의 친러시아 행보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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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4
  • 조지아 서부를 장악하고 있는 아자리야인들의 역사와 아자리야 자치공화국 - 上편
    조지아 서부 지역과 가장 큰 도시인 바투미를 장악하고 있는 아자리야 자치공화국의 주민 중 대부분이 아자리야인이다. 조지아 서부 지역에 대해 고고학자들이 말하길 서부 지역에서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 하였다. 이 지역을 과거에 모스흐(Moskh)라 불렸는데 이 지역운 고대 조지아 부족이 출현함으로써 B.C 7~3세기에 아자리야의 땅은 고대 콜키스의 지방이 되었다. 그 지역의 일부는 B.C 4세기 후반에 이베리아 왕국에 속하는 나라를 형성했다. B.C 5, 4세기에는 그리스인에 의해 식민지화되어, 해안의 아자리야는 후일에 로마가 통치하게 된다. 바투미와 고니오는 그 당시에 주요 도시들이었고 요새들이었다. 이 두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은 오늘날 코불레티 마을 근처에 있는 피츠바리 마을의 부유했던 흔적을 드러냈다. 서기 2세기에, 바투미는 카프카스 남쪽을 방어하는 로마군의 중요한 군사 기지였다. 11세기 초에, 아자리야는 통일 조지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고 11세기 말에는 셀주크투르크 제귝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13세기에는 몽골에 의해 파괴되었다. 1547년에,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아자리야를 공격했고 바투미를 점령했다. 당시 아자리야인의 일부는 다른 조지아 지역들로 피신했다. 남아있던 사람들은 강제적으로 이슬람교로 개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까지, 대부분의 아자리야의 소작농들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상당히 안정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1853~1856년에 크림 전쟁과 1877~1878년에 러시아-오스만의 전쟁 기간동안에, 수천 명의 아자리야인들이 오스만 제국의 군대에 의해 징병되면서 러시아와 맞서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러시아에게 전쟁에서 패하면서 아자리야를 러시아 제국에 양도했다. 아자리야 지역은 러시아 통치 하에 들어가면서 정교 중심의 러시아인들은 이슬람교를 압박했고, 수천명의 무슬림인들이 피난처를 찾아서 카프카스 지역 각지에 흩어졌으며 남은 아자리야 무슬림들은 적법한 이주 절차를 통해 바투미 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으로 피신했다. 오스만 제국은 아자리야인들에게 자금을 조달하고 복수자들이라고 알려진 테러 조직을 이용해 러시아 장교와 공무원 뿐만아니라 제국 주둔에 동참했던 아자리야인들까지도 테러를 가해 죽이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자리야인들은 지배자들인 러시아에 충성했고 그럼으로 인해 그들은 다른 조지아들과 재통합 될 수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1878년 베를린 의회는 바투미 지역의 수도를 포르투 프랑코 또는 자유 무역항으로 공표했다. 포르투 프랑코는 1880년대 말, 무렵에 중요한 항구 및 공업 도시가 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 포르투 프랑코는 바투미로 이름이 바뀌고 바쿠의 석유 생산지와 최초의 송유관 중에 하나인 바쿠-바투미 송유관과 철도로 연결되었다. 이로써 바투미는 유럽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중에 한 곳이 되었다. 이는 1892년 6월 22일에 거대한 유조선 "마루크스"가 바투미를 떠나 태국의 방콕으로 갔고, 이 유조선이 수에즈 운하를 항해한 최초의 유조선이 되었다. 이 지역에서 카프카스와 카스피해를 이어주는 회랑은 러시아 통치 하에서 무수한 파업들과 유혈 탄압이 자행되었다. 이는 차르가 노동자들을 착취한다 생각했고 공산주의자들이 차르의 탄압을 피해 카프카스 일대로 숨어 들어오면서 아자리야 일대는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암약해 유전에 취업한 현지 노동자들을 선동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차르의 탄압을 받은 아자리야 노동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에 상당수의 무하지르(Muhazir)들은 오스만 군 소속 부대에 들어가면서 러시아와 싸우게 된다.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도중,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는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 행정부는 반항적이며 후일 통제가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은 무슬림들을 바투미 지역에서 내부 러시아로의 강제 이주 절차를 시작했고, 이에 조지아의 지성인들은 그러한 강제 이주에 대하 항의를 표시했다. 러시아 두마에서 조지아 지역을 담당하는 의원들은 아자리야인들이 이슬람교에도 불구하고 민족적으로는 조지아인들이다. 그러므로 러시아에 충의가 있는 무슬림들은 러시아 내부가 아니라 아자리야 지역에 그대로 잔존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조지아 소속 두마 의원들의 항변에 대한 결과로 인해 러시아의 게오르게 미하일로비치 대공은 무슬림에 대한 인구조사를 주재했고 그 아자리야인들은 러시아 정치 제도에 적의가 없다는 수많은 보고들로 결말을 지었다. 아자리야인들의 불충을 탄원한 코사크인들과 아르메니아인들은 크게 비난을 받았고 지방 무슬림들은 폭력적인 대결을 부추기는 그들을 고발했다. 러시아의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 대공은 아자리야 지도자들과 회담하자고 설득했고, 회담을 하는 도중 그들에게 충성심이 있다고 판결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이 1918년 1월에 끝나기 전까지는 아자리야인들의 반역을 의심하는 인구조사는 종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면서 러시아 군대가 철수함에 따라 1917년 12월 18일의 휴전에 이어졌고, 1918년 4월 14일에는 오스만 제국의 제37기 카프카스 부대가 바투미에 입성하면서 아지리야의 영토는 다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1919년 1월 12일에 영국에서 원정군이 오스만 제국의 병력들을 대신하여 바투미에 상륙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제국 의회의 입헌민주당 페트르 마스로프(Петро Масров)가 의장을 맡은 바툼 지역 의회에서는 1918년 12월 21일부터 1919년 4월 28일까지 아자리야에 대한 통치 권한이 일시적으로 주어지게 된다. 1918~1919년에 메흐메트 아바시제(Мехмет Абашидзе)가 회장으로 있는 이슬람 조지아인 해방 위원회(Исламский комитет освобождения Грузии)는 조지아 국경 내부에 있는 종교적 방침에 있어서 자치권이 성립 되었음을 반복적으로 증명했다. 이들 이슬람 조지아인 해방 위원회는 대부분이 아자리야 무슬림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여기에 라즈인들도 합류했다. 이슬람 조지아인 해방 위원회는 1919년 9월 13일 러시아 지방 자치단체의 기본형 의회로 알려진 매질리스(Mezilis)를 바투미에서 소집시키고 타 조지아 지역은 영국군이 주둔하면서 실질적 지배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하게 되고 아자리야 지역만은 조지아계 무슬림들이 지배할 수 있게 허가했다. 이와 같은 아바시제의 당파는 아자리야의 자치권만이 문제가 아닌, 완전한 독립에 대해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지아 민족과 친한 아자리야인들, 특히 조지아 정교회 소속의 아자리야인들이 먼저 자리잡고 있을지라도 이들은 조지아와의 통합을 옹호했다. 사실 오스만 제국과의 통합이 불투명한 이상, 그래도 러시아가 지지하는 조지아인들이 영국이나 아르메니아보다 더 낫다는 아바시제의 생각이었다. 그 이유는 아르메니아가 터키계 무슬림들을 학살하고 다녔기 때문에 이는 아자리야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이들 중 실제 터키계 아자리야인들은 세다이 밀레스(Sedai Miles)라는 단체를 설립해 범투르크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영국이나 아르메니아를 상대로 게릴라 전을 펼치기도 했다. 세다이 밀레스(Sedai Miles)는 터키어로 "사람들의 목소리(Insanların sesleri)" 라는 뜻이다. 이들의 게릴라 전과 더불어 오스만 군대와 아제르바이잔인들도 세다이 밀레스를 지원하자 수세에 몰린 영국군 1919년 8월 15일에, 카프카스 일대에서 철군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바투미의 분할된 본부는 바투미의 군사 지배권을 쿠키 콜리스(Kuky Colis)라는 자에게 넘겨주고 콘스탄티노플로 떠났다. 1920년 3월 4일에 총독이자 군사령관에 임명된 쿠키 콜리스는 바투미에서 아자리야 군대를 포함한 조지아 전 군대의 내부 동맹을 명령했다. 그러나 아자리야 내에서 반발이 거세자 1920년 7월 14일에 그 군대는 바투미에서 완전히 해체되었고 쿠키 콜리스는 바투미를 떠나 트빌리시로 이동했다. 이어 아르메니아 행정부는 7월 20일에 아자리야 지역을 조지아에게 양도하면서 이 지역에 대해 완전히 손을 땠다. 이어 러시아의 적백내전에 카프카스 지역이 휘말리게 되면서 볼셰비키 일원들이 조지아에 들어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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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4
  • 조지아 내 내제된 사회 갈등과 양극화
    최근 조지아 의회가 언론과 시민 사회 억압에 대한 국내, 국외의 우려와 반발에도 ‘외국 대리인 법안’을 최종적으로 통과시켰다. 반러 감정을 가진 시민들은 대리인 법안 통과에 반발해 대규모 시위를 열었고, 이에 미국 등 국제사회는 여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해외에서 전체 예산의 20% 이상 자금 지원을 받는 언론 매체나 비정부기구인 NGO 단체들은 외국의 영향을 받는 대행기관으로 등록해야 한다. 이에 등록하지 않은 단체나 개인은 벌금과 최대 5년 이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조지아라는 나라 자체가 다수의 NGO들이 결집해 세워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조지아의 언론 및 NGO 시민 사회 단체의 상당수는 미국과 유럽 등의 자금 지원을 받는 단체들이 많다. 이에 시민단체가 조지아 정부의 엄격한 규제에 노출되어 민주주의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여 강하게 반대해왔다. 특히 이와 같은 법안은 2012년에 제정되어 언론과 NGO, 반정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엄격하게 규제된 러시아의 외국 대리인 법과 비슷하다 여겨 이를 ‘러시아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와 러시아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럼에도 이 법 자체가 러시아와 비슷하다 하여 '러시아 법'이라 이름 짓고 이를 비난한 것이다. 특히 조지아의 야당 의원들은 조지아를 친러시아 국가로 만들려는 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지아는 그 동안 EU와 나토 가입을 추진해왔으나, 친서방 대 친러시아 노선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어 왔다. 여당인 "조지아의 꿈" 정당이 집권하기 이전까지 조지아는 친서방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미국과 나토, 그리고 EU의 영향력을 러시아 국경과 인접된 남부 카프카스 지역으로 확장시켰다. 이에 안보 위협을 느낀 러시아가 남부 카프카스 지역의 갈등 문제에 개입하면서 자신들의 세력권을 구축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소련이 해체된 이후, 카프카스 지역의 저항 세력들은 큰 문제가 되었었기 때문이다. 나토와 EU가 카프카스에 진출하면 90년대 체첸 전쟁과 같은 내전이 또 다시 촉발될 가능성이 높았고 그로 인해 러시아의 안보가 매우 위태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의 지정학적 전략은 조지아 북부지역인 남오세티아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및 돈바스 일대에 대한 통제가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 일단락되긴 했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 2017년 7월 18일 페트로 포로센코(Петр Порошенко)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조지아를 공식 방문함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 바 있다. 그러나 기오르기 크비리카슈빌리(Giorgi Kvirikashvili) 총리 이후, 이라클리 가리바슈빌리(Irakli Garibashvili)가 2021년에 정권을 이양 받은 이후, 갑작스럽게 친러성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때 가리바슈빌리를 지원하고 지지한 세력은 이미 조지아에서 상당수의 재력을 확보한 친러계열의 유태계와 친러 성향의 지지자들, 그리고 바투미를 기반으로한 아자리야계 조지아인들이었다. 이들은 친러 성향을 갖고 있으며 특히 아자리야인들은 바투미를 중심으로 자치공화국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세력이 만만치 않았다. 이 아자리야인들은 조지아계 무슬림들을 대표하는 민족으로 오스만 제국 지배 시기인 16세기부터 17세기 무렵 사이 대부분 이슬람교 하나피파로 개종한 자들이다. 20세기 초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유전이 개발되고 생산될 석유를 운반할 송유시설 및 철도가 바투미를 거쳐 건설되면서 아자리야 지역의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게다가 흑해 연안을 쥐고 있는 아자리야인들의 영향력은 무시 못할 수준인 것이 조지아의 유일한 항구이자 바다로의 출구가 아자리야 자치공화국의 수도인 바투미 때문이다. 그래서 조지아의 사회적 갈등은 친러, 반러의 갈등이 곧 동부와 서부라는 지역적 갈등이 내포되어 있다. 조지아 서부는 아자리야인들을 중심으로 압하지야까지 흑해 일대가 연결되어 있고 아자리야인과 압하지야인들은 상호 연대까지 하고 있다. 반면 조지아 동부 지역은 수도인 트빌리시를 중심으로 반러시아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사진에 나와 있는 온갖 욕설의 러시아 비난과 푸틴에 대한 비난 등의 그레피티가 쓰여 있는 것은 반러 성향의 시민들의 목소리, 그리고 이를 독려하는 친우크라이나 성향의 시민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난민들, 이어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인 아조프 연대와 연합한 조지아의 네오나치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들은 나치 독일의 제2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의 깃발과 유사한 아조프 연대의 깃발 표식을 그레피티로 새겨 놓고 대놓고 나치와 연대하고 있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놓고 서부 지역의 아자리야인과 친러 성향을 조지아인들을 상대로 테러를 저질렀지만 친러 성향의 조지아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총선에서 이라클리 가리바슈빌리(Irakli Garibashvili)를 당선시키면서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2월 25일 이라클리 가리바쉬빌리(Irakli Garibashvili) 조지아 총리는 조지아가 서방의 대(對)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가리비쉬빌리 총리는 2023년 5월 24일 카타르 경제 포럼(Qatar Economic Forum)에서 이와 같은 조지아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어 2023년 8월 23일 러시아 국가안보위원회 부의장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Дмитрий Медведев)는 조지아가 나토 가입을 추진한다면 러시아는 조지아 내 미승인국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South Ossetia)를 합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10월 5일에는 아슬란 브자니아(Аслан Бжания) 압하지야 대통령이 러시아와 압하지야의 방어 역량 증대를 목적으로 압하지야 영토 내에 해군 기지를 건설한다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 2023년 7월 5일 재임 당시 권력 남용 혐의로 조지아에 수감 중인 전 조지아 대통령이자 우크라이나 오데사(Odesa) 주지사인 미헤일 사카슈빌리(Mikheil Saakashvili)의 건강 상태가 악화된 것을 두고 인권 탄압이라 비판하면서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도 멀어지게 되었다. 결국 친러어와 반러의 단순한 대립구도가 지역 대립, 민족 대립으로까지 촉발되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다. 조지아 서부 지역에는 아자리야인 말고도 라즈(Laz)인이 살고 있다. 이들 또한 아자리야인과 같은 무슬림들이고 친러 성향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터키에 살고 있으면 조지아계 터키인이고 조지아에 살고 있으면 터키계 조지아인이라 볼 수 있다. 현 터키 대통령인 레제프 에르도안이 라즈인 혈통으로 조지아계 터키인이다. 실제로 에르도안은 인터뷰로 자신의 가문이 조상대에 조지아 바투미에서 터키 리제로 건너온 조지아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영향으로 인해 라즈인들은 터키 정부의 상당한 지원까지 받고 있다. 라즈인과 아자리야인으로 대표되는 조지아 서부인들은 리버럴적이 성격을 갖고 있는 조지아 동부 정교회인들과 문화적 차이도 크다. 바투미를 중심으로 한 아자리야 자치공화국도 무슬림과 정교회라는 종교적 차이 때문에 인정해준 것이다. 이처럼 조지아에는 민족계파만 해도 94개가 자리 잡고 있는 나라다. 대한민국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합친 크기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이 작은 나라에 90개가 넘는 민족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민족 간의 통합은 조지아의 또 다른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어쩌고 보면 무슬림과 정교회, 유태교까지 이어지는 종교적 대립도 한 몫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조지아를 굳이 군사적으로 공격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지아가 반러 성향의 인물이 총리로 당선되어 반러 세력이 세력의 주동이 된다면 바투미를 중심으로 아자리야 자치공화국을 정식 독립국가로 승인하면 된다. 러시아가 아자리야와 라즈인을 지원하고 조지아 동부의 반러 세력이 라즈인을 학대한다면 터키가 이 문제에 개입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러시아 하나 막는 것도 버거운데 터키마저 개입을 한다면 조지아는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처럼 조지아의 사회 갈등은 곧 친러 vs 반러, 동부 vs 서부의 지역갈등, 이슬람 vs 정교 & 유태의 종교갈등, 아자리야 & 라즈 vs 조지아의 민족갈등까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미국과 집단서방이 장미혁명처럼 색깔혁명을 조장한다면 우크라이나와는 전혀 다른 제2차 조지아 내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크다. 2023년 9월 18일 전(前) 조지아 내무부 차관으로 현재 우크라이나군 SBU 부국장인 기오르기 로르키파니제(Giorgi Lorkipanidze) 등이 조지아 내에서 반정부 시위를 조직, 현 정부를 전복하려는 계획이 탄로나면서 제2차 조지아 내전은 언제든 발생 가능한 상황에 있다. 그리고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여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도 연결되어 있기에, 조지아 내 사회갈등을 유심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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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va Topos
    2024-07-04
  • 포스트 우크라이나 전쟁 다음으로 카프카스와 카스피 해의 에너지 전쟁?
    포스트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카프카스와 카스피 해에서 에너지 전쟁이 격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일본과 중국도 끼어들었다. 일본은 지난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방문을 계기로 카프카스와 카스피 해 지역의 자원 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인도 역시 중앙아시아로 가는 송유관 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현재 인도는 중앙아시아를 통해 카슈미르를 통과하여 펀자브 암리차르로 들어오는 가스관에 의지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 대한민국도 석유공사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컨소시엄을 통해 추정 매장량 10억 배럴의 잠빌 광구 지분을 27%나 확보해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었는데 현재는 이 또한 지지부진하다. 카스피 해는 남한의 3.7배, 한반도의 1.7배에 이르는 거대한 석유 창고로 풍부한 원유를 품고 있는 곳이다. 세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유망광구를 거의 차지했지만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회가 많은 곳이고 BTC와 CTC 라인의 시작점이 열렸어도 인근에 말라가고 있는 아랄 해까지 에너지 전쟁에 있어 매우 가치가 높은 땅이다. 여기에 중국도 같이 빨대를 꼽고 있다. 중국은 21세기 실크로드를 부활시키기 위해 일대일로의 실크로드 재편 작업을 해왔다. 이와 같은 자원전쟁에 있어 중국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이는 자원전쟁에 있어 가장 중점적인 역할을 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국 일대일로의 육로 사업은 카스피 해 역시 마찬가지로 그 범주에 들어가 있다. 중국은 유전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으며 뭉칫돈을 들고 거대 유전을 송두리째 사들이는 블랙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중국 국영석유회사인 CNPC는 지난 2009년 카자흐스탄 최대 석유생산회사인 만기스타우무나이가즈(MMG) 지분 50%를 매입했다. 또 국영 석유회사인 KMG에 50억 달러를 제공하고 개발 사업권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CNPC는 카자흐스탄 내 총 36개 석유와 가스자산을 확보했으며 이 가운데 15개 자산은 개발에 돌입한 상태에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매입량을 점차 늘려가며 카스피 해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가 우리가 애써 개발한 잠빌 광구 지분 또한 중국에게 인수되어 넘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의 관심은 사할린스트림-2에서 추출한 원유와 가스에 관심이 있었던데다 운송비가 저렴하면서 안정적으로 수급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대러제재로 인한 비우호국가로 찍혀 사할린스트림-2의 가스와 석유값을 루블로 주고 사와야 하는 처지에 몰렸고 결국 관심은 다시 잠빌 광구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의 중국에게 밀리고 있는 형국이라 잠빌에서 채굴하는 것 또한 만만치 않다. 중국의 CNPC는 2005년에 페트로 카자흐스탄을 42억 달러에 인수하고 3개월 후 카자흐스탄 아타수와 중국의 두산쯔를 연결하는 길이 1,000㎞의 송유관을 완공했다. 카스피 해 인근 켄키약-카샤간-악다우 광구에서 생산된 원유를 내수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구축한 파이프 라인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은 지난 2006년 4월부터 카자흐스탄에서 생산된 원유를 이미 풍족하게 들여오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산 가스와 석유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가스와 석유는 많이 축적할수록 좋은 것이기에 러시아산을 계속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번에 중국은 러시아와 가스 & 석유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해 에너지 전쟁에 있어 최강국으로 떠오를 기세다. 중국의 이와 같은 풍요로움과 흥함은 우리에게 있어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게다가 중국은 우즈베키스탄 미르지요예프 현 정부와도 계약을 맺어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티베트 파이프 라인을 통해 중국으로 들여오는 에너지 자원의 안전성을 확보했으며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 반 테러 지역센터를 설치하여 적극 송유관들을 보호했다. 중국의 이와 같은 전방위 원유확보 공세가 커지자 카자흐스탄 정부가 뒤늦게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카스피 해 원유 개발에 느긋한 태도를 보이며 여유를 잃지 않던 카자흐스탄이 중국에 대한 원유개발과 M&A를 쉽게 허가해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M&A로 자국 내 외화가 들어오지만 실질적으로 카자흐스탄 정부에 큰 도움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등 주요 원유 개발 국가와 달리 중국은 M&A 이후 자국 원자재와 인력을 대거 끌어오면서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안 되고 있는 것도 한 몫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석유가스부는 중국과의 자원외교 협력이 다른 협력국가와 비교해 자재수급,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과 벌어진 틈새를 이용해 카자흐스탄에 진출하려는 국가들에게 있어 많은 기회 요소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럽 국가 중 카스피 해의 BTC 및 투르크스트림을 통해 자원을 거의 거저먹다시피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오히려 암묵적으로 카자흐스탄과 파이프 라인이 통과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다. 이는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각자 자국 땅을 거쳐가는 파이프 라인에 대한 임대비를 비롯한 많은 이득이 걸려있던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조지아와 알바니아는 오래 전부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BTC 라인을 통한 특혜를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에너지 수급이 러시아에서 수급받는 것보다 낫다고 하지만 프랑스를 주축으로 기독교 국가로써 아르메니아를 지지하는 유럽 국가들에게 고민이 되고있다. 또한 바다 건너 미국도 2000년대 초반에서 201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구소련 국가들의 문제들에서 관심을 거의 접고 있다. 게다가 이와 같은 문제들을 방관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분쟁들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2010년대 이후부터는 사실상 석유, 가스 수출이 국가 최고의 수익 산업이다 보니 셰일가스 수출선 확보를 위해서라도 유럽이 미국 가스를 사도록 공급을 조정하려고 유럽과 중동의 가스 이동선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중앙아시아나 카프카스, 카스피 해 일대에 대해서는 일단 관심을 접어둘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중동을 제외한 국가들이 에너지 수급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기에 다시 이곳에 미국이 관심을 급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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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4
  • 삼성전자가 우크라이나에서 판매되는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Z 제품명에서 'Z'를 삭제한 사건
    삼성전자가 우크라이나에서 판매되는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Z 제품명에서 'Z'를 삭제했다 한다. 앞서 반(反) 러시아 성향이 강한 발트3국에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해당 조치를 확대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우크라이나 홈페이지에서 판매되는 '갤럭시Z' 시리즈 제품명을 수정했다. '갤럭시Z폴드3'는 '갤럭시폴드3'로, '갤럭시Z플립3'는 '갤럭시플립3'로 변경됐다. 러시아 국방부는 일일 브리핑과 더불어 Z를 매개로 한 사진과 영상을 몇 개씩 선보이고 있다. 진격 명령을 내린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발트해 연안, 동유럽 일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히틀러 시대의 나치 문양인 '하켄크로이츠'와 유사하게 '공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50년 역사를 지닌 스위스의 '취리히 보험회사'가 그동안 사용해온 Z로고 사용을 포기했다. 파란색 바탕에 흰색 Z를 로고로 사용해온 스위스 취리히 보험은 SNS를 통해 Z로고를 사용할 경우 오해의 소지가 있어 당분간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3월 초 러시아 군사 장비에 Z와 V자를 쓴 이유를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설명했다. Z는 '승리를 위해'라는 의미로, 또 다른 문자 V는 '진실의 힘' (Сила в правде)과 '과업 완수'(Задача будет выполнена)를 뜻한다는 것이다. Z는 러시아어로 '승리를 위해', V는 영어로 '승리'(Victory)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Z문양은 금기시된 '나치' 문양과 유사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과 그 주변에서 예민하게 반응했다. 독일은 영화와 고증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나치즘을 선전하거나 광고하기 위해 나치 문양인 하켄크로이츠를 사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독일의 북부 니더작센 주와 남부 바이에른 주는 Z표시를 자동차나 건물에 사용할 경우 최고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발트해 에스토니아 정부도 Z표시 사용을 경범죄로 분류하고 있다. 체코도 Z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용할 때 법적 처벌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서는 프라비섹토르나 아조프 대대가 나치 문양을 하고 다니는 사진들이나 영상에는 조용히 있으면서 Z문양에만 유독 나치와 똑같이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욱일기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들고 나왔어도 비판 한 마디도 못하는 자들이 Z표시를 가지고 PTSD 발작을 하고 있다. 그럴꺼면 영어 알파벳에서 Z를 아예 빼버리던가. Z가 전범의 상징이고 러시아 군사작전의 상징이니 영미권 국가들도 Z들어가는 용어를 쓰지 않으면 된다. 라틴 문자에서 Z가 들어가는 단어가 적어도 수천만개? 수억개? 정도 될텐데 그게 트리거가 될 정도면 Z들어가는 문구 모두 바꾸는 글자혁명을 해야 할 판이다. 그리고 Z 문자가 들어가는 나라 또한 14개가 있는데 이들도 나라 이름 바꿔야 할 판이다. 특히 체코는 Z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용할 때 법적 처벌 방안을 검토한다 했으니 그럼 체코 공화국 영문 이름인 Czechia 이거의 Z를 없애던지 영문을 바꾸고 그런 검토를 해야 이치에 맞지 않을까? Z 표시가 들어가 있는 모든 브랜드와 옷도 바꾸고 도시 이름도 Z가 들어가 있으면 바꿔야할듯 하다. 나치만큼 제2차 세계대전의 대학살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현재도 진행 중인 전쟁을 두고 아주 별의 별 짓을 다하고 있다. 그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파괴한 전범국 미국 USA의 U도 못 쓰도록 바꿔버리자고 하면 거기에는 침묵하는 자들이다. 이제는 어이 없는 것도 모자라 유치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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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3
  • 6년 전, 2017년 4월 3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테러 사건의 데자뷰
    2017년 4월 3일 오후 2시 30분, 나는 당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네브스끼 인근 폰탄카 운하 쪽이었고 당시 그 근처 센노이 시장(Сенной Рынок)에서 드미트리와 부식거리를 사고 있었는데 지하철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14명이 사망하였다는 속보가 들려왔다. 당시 러시아 언론들에 의하면, 전철역 2곳에서 폭발이 일어나 최소 14명이 숨졌고, 64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당국은 해당 전철역을 폐쇄조치 하였으며, 폭발사고가 IS의 테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부 내 소식통은 테러범들이 테러에 최대한 적합한 시간대를 선택했다고 한다. 타스통신에 의하면 사고 당시 지하철 내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객차가 만원인 시간대는 아니었다고 했다.객차 안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폭발물 부근의 몇 명이 폭탄의 위력과 파편을 온몸으로 받게 됨으로써 희생자 수는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이라 했다. 당시 조사 결과, 지하철 테러의 폭발물이 철제, 유리 파편으로 가득 찬 소화기와 쇠구슬을 잔뜩 담은 사제 폭탄 가방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전방위로 날아든 파편 때문에 전철에 탑승한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고 전철 유리창이 깨지고 출입문도 찌그러졌다. 중앙아시아 출신의 20대 남성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폭발 현장에 대한 조사를 통해 ‘자폭 테러’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이날 폭발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한 가운데 일어났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언론에 알리지 않은 채 폭발 현장을 찾아 헌화하기도 했다. 당시 지하철 폭발 사건은 지난 2010년 모스크바 지하철 테러에 이어 7년 만에 발생한 것이다. 2010년 3월 29일 오전 출근 시간에 모스크바 시내 지하철역 2곳에서 시차를 두고 연쇄 폭발이 일어나 41명이 숨지고 80여 명이 다친 바 있다. 앞서 2004년에는 2월과 8월에 각각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람잔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테러를 포함한 모든 가설을 점검 중”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과 사진을 올린 후 “이 끔찍한 테러의 주모자와 배후를 밝혀내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러시아 정치인들은 신중한 태도를 취하면서 폭탄 테러의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는 정도로 반응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모두의 아픔”이라고 썼다. 게오르기 폴타프첸코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지사는 이번 사건을 “무시무시한 비극”이라 지칭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에게 경각심을 갖고 신중하게 대응할 것을 부탁했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전 구간이 폐쇄된 상황이기 때문에 시내는 최악의 교통대란을 겪었다. 시당국은 지상 대중교통을 모두 무료로 개방했고 택시 기사들도 퇴근길 시내 중심가에서 탑승한 승객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대란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집으로’라는 해시태그를 부착하고 카풀을 제공하는 자차 운전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인터넷에도 퇴근길 카풀이 가능한 시간과 행선지 정보를 제공하는 게시판이 생겨났다. 게시판을 방문한 누군가는 “어려울 때일수록 뭉쳐야 한다”고 썼었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는 3일 간의 공식 추도일을 선포했다. 시민들은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테러가 발생한 ‘Технологический институт (체흐놀로기쩨스끼 인스띠뚜뜨)’역에 줄을 이어 꽃을 가져다 놓았다. 모스크바에서는 크레믈린 벽 무명용사의 묘에 설치된 대조국전쟁 참전도시 기념비 중 ‘영웅도시 레닌그라드’ 기념비 앞에 헌화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 중 한 명은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조국 전쟁 중 872일 동안 독일군의 봉쇄를 견뎌낸 영웅도시 레닌그라드 기념비는 희생자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표시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축구클럽 ‘스타르타크’ 팬들도 평소에는 ‘앙숙’이자 라이벌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연대감을 표했었다. ‘오렌부르크’팀과의 경기에서 스파르타크 팬들은 관객석에서 ‘크나큰 아픔에 가슴이 찢어진다. 피테르(페테르부르크의 애칭), 애도를 표한다’고 쓰인 대형 현수막을 펼치기도 했을 정도였다. 당시 러시아 국민들은 테러에 맞서 하나가 되었다. IS의 테러가 오히려 러시아 국민들을 단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카페에서 다시 한 번 테러 공격이 발생했다. 200g 이상의 강력한 TNT가 터져 건물 유리가 모두 깨졌고 집기들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이 날 러시아 유명 군사 블로거인 블라드랜 타타르스키가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카페에서는 사망한 군사 블로거와 독자들의 만남이 진행되고 있었고, 한 여성이 조각상을 증정한 뒤 폭발이 발생해 조각상에 폭발물이 들어있었던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망자는 닉네임 '블라드랜 타타르스키'로 알려진 유명 군사 블로거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출신이며 실제 이름은 막심 포민이며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지하고 있는 블로거다. 그는 56만 명의 구독자를 가졌으며 러시아군의 인사나 작전 등에 대한 논평을 썼던 인물이다. 타타르스키와의 만남 행사를 주최한 곳은 러시아의 한 애국 단체로, 이들은 보안 절차가 있었는데도 폭발물이 반입됐다고 하였다. 부상자 25명 중 19명은 병원으로 이송됐고, 러시아 국가수사위원회는 타타르스키의 사망을 살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조사에 착수했으며 폭발 당시 카페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유력한 용의자는 서부 우크라이나 이바노 프랑키스크 출신의 여성으로 아주 작정하고 테러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6년 전, 오늘과 데자뷰다. 다만 테러의 주체가 IS에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로 바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가 몰리게 되니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난민으로 위장해 들어온 젤렌스키 정부 소속의 네오나치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정식으로 싸우는 전쟁도 아닌 테러라면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테러 지원국에서 한 단계 격상해 테러 국가로 규정하고 국가 자체를 소멸시켜 테러를 일으킨 자들을 박멸해야 한다. 러시아 국민들도 이 테러에 분개하고 있다. 전쟁에 서서히 염증이 드리워질 때쯤 다시 국민들이 단합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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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3

포토뉴스 검색결과

  • 러시아는 한 때 현재 미국 켈리포니아까지 정복한 적 있다
    러시아 출신의 슬라브 인의 최초의 알래스카 정착 기록은 1648년 세묘나 데쥐뇨바(Семёна Дежнёва)가 콜리마 강에서 출발하여 북극해를 가로질러 아나디리 강의 하구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로마노프 연대기(Хроника Романов)>에서 전해진다. 시베리아에서 건너온 아시아-아메리카 토착민들의 혼혈과 더불어 러시아-슬라브 인들의 후손들은 러시아가 알레스카를 팔기 전까지 러시아령 아메리카의 최초 시민이 되었다. 세묘나 데쥐뇨바(Семёна Дежнёва)의 탐험대 중 일부는 알래스카에 먼저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었으나, 그들이 알래스카에 정착했다는 기록은 현재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데쥐뇨바의 탐험은 러시아 중앙 정부로부터 시작되어 연결된 것이 아닌 시베리아의 끝 지역이 어디인지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고 시베리아가 다른 대륙과 연결되어 있는지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상륙만 했던 것 뿐이다. 그로 인하여 1725년에 표트르 1세가 탐험을 한번 더 부탁했으나 데쥐뇨바가 1721년에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결국은 무산되었다. 1733~1743의 제2차 캄차카 지역의 탐험 일부로 1741년 6월에 덴마크 탐험가인 비투스 베링(Vitus Berin)이 이끄는 페트르 탐험대와 러시아인 알렉세이 치리코프(Алексей Чириков)가 이끄는 파벨 탐험대가 캄차카 반도의 항구 뻬뜨로빠블로쁘스끄 깜쨔츠끼(Петропавловск-Камчатский)에서 원정을 시작했다. 두 탐험대는 후에 따로 분리되었지만 동쪽으로 항해를 계속하면서 6월 15일에 치리코프(Чириков) 일행이 알레스카 남단의 프린스오브웨일스(Prince of Wales Island) 섬 서부 해안의 땅을 발견하고 북아메리카 북서부 해안가에서 최초로 유럽인들을 정착시키게 된다. 6월 16일경에 베링과 페트르 탐험대는 알레스카 본토의 세인트 엘리아스(Saint Elias) 산을 발견하고 러시아로 돌아왔다. 그에 동시에 파벨 탐험대의 치리코프는 10월달에 새로운 땅인 알류산 열도 중 한 곳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러시아로 돌아왔다. 그러나 11월에 베링의 배는 러시아로 돌아오는 도중 베링 섬에 난파되었고 그곳에서 베링은 풍토병에 걸려 사망했다. 이어 출항한 페트르 탐험대는 돌풍을 만나 갈라지게 되면서 각 섬 지역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곳이 알류산 열도에 속한 군도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선원들은 엄청난 추위가 닥치는 알류산 군도에서 겨울을 버틴 후에 1742년 8월에 난파선의 조각으로 배를 만들어 러시아로 떠나게 된다. 그 이후 시베리아와 알레스카 사이의 협수로를 덴마크 탐험가인 비투스 베링(Vitus Berin)의 이름을 붙여 베링 해협이라 불리게 되었다. 베링의 선원들은 1742년에 캄차카 반도의 해안에 도달했고 탐험에 대한 이야기들을 저술로 남겼다. 이때 그들이 가져온 고급 해달 가죽은 러시아 인들이 아메리카 정착을 본격적으로 노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때 이후로 알류산 열도와 알레스카가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고, 19세기 초에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있던 북아메리카 서부 지역 인디언들 지역들을 뚫고 오늘날의 미국 오리건주(州)와 캘리포니아 주(州),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州)까지 진출하면서 식민지로 삼았다. 19세기 초반에 러시아령 아메리카는 남쪽으로 스페인령이던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당시 러시아-아메리카 회사의 총책임자였던 니콜라이 레자노프(Николай Резанов)는 알렉산드르 1세의 명으로 러시아령 아메리카 총독으로 파견되어 스페인 측과 협상을 하도록 했다. 레자노프는 스페인령 지역과의 국경 지대에 러시아 인들을 진출하는 것에 대해 러시아 정부가 직접적으로 후원하려는 방편으로 요새의 건립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본국인 이베리아 반도와 지리적으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세력도 한창 활발했던 16~17세기 같지 않았던 스페인은 역사적으로도 러시아와 인연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잘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의 이러한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켈리포니아 지역에 러시아 요새가 건립이 되는데 러시아 아메리카 총독인 니콜라이 레자노프는 요새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1807년에 사망했다. 그러나 그가 죽은지 5년이 지난 1812년에 비로소 요새가 건립되었고, 그 요새가 바로 로스 요새(Fort Ross)이다. 만약에 러시아가 오리건이나 켈리포니아, 브리티시 콜롬비아까지 모두 장악하고 유지했었다면 그거야 말로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세계 최대 제국이자 영토였을 것이다. 아마 미국도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비슷한 예로 몽골 제국이 있지만 당시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을 정복했고 우즈베키스탄의 3개의 칸국에게서 조공을 받아 정복 전 단계에 놓여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캐나다 서부와 미국 서부의 영토를 가졌다면 그만한 대제국은 전에도, 후에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는 러시아 본국에서 너무 멀었기 때문에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알레스카 지역으로 미국 상인들이 진출하면서 알레스카 지역에서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인 의존도가 심해지자, 결국 러시아는 러시아령 아메리카의 켈리포니아와 오리건, 브리티시 콜롬비아를 포기하고, 경제적 중심지인 알레스카 지역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로스 요새는 거의 버려지다시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에 러시아와 영국 간에 벌어진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이라고 불리는 대치전 때문에 러시아의 북아메리카 식민지 경영은 더욱 어렵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영국령이던 캐나다의 산하 회사인 허드슨 만 회사에 알레스카를 통과하여 항해할 수 있는 권리를 넘겨줌으로써 알류산 열도가 영국의 위협을 받게 되자 러시아는 1867년에 알레스카를 미국에 팔아치우게 된다. 1에이커 당 2달러의 가격으로 미국이 알레스카를 거저 먹은 것이다. 따라서 로스 요새를 비롯한 미국 서부 지역은 자연히 미국 영토로 넘어가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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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30
  • 영국 동인도회사의 설립과 역사
    1595년 네덜란드가 인도 항로로 진출하여 향료 무역을 본격적으로 개시하자, 여기에 자극받은 영국 런던의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1600년에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다. 이 회사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으로부터 특허를 얻어 동인도 지역 무역의 독점권을 얻었다. 처음에는 일항해(一航海)마다의 개별적 기업제(企業制)였는데, 점차 그 폐해가 나타나 1613년 합자(合資) 기업 제도를 채택함과 동시에 영속적인 조직이 되었다. 1656년의 올리버 크롬웰의 항해 조례 개정 이후 있은 뒤에 찰스 2세 시대에 근대식 주식회사로서 확립되었다. 이와 같은 동인도 회사의 활동 범위는 17세기에는 아프리카에서 일본에까지 미쳤는데, 주요 사업은 향료 무역이었다. 그러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격렬한 투쟁을 벌인 결과 이에 패배하여 17세기말까지는 인도로 후퇴하게 되었다. 영국은 봄베이로부터 캘커타에 이르는 서부 인도의 해안선을 지배하에 두었다. 물론 이와 관련된 내용은 영국의 작가 가일스 밀턴(Gails Milton)의 저서인 <향료전쟁>에 자세히 나타나고 있다. 영국 동인도 회사(British East India Company) 또는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 EIC)는 17세기 영국에서 동양 무역의 독점과 인도의 식민지 경영을 위해 설립된 회사로, 당대 영국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이었으며 영국이 장기적으로 인도를 지배, 중국에 진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일명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대영제국을 존재하게 한 회사라 볼 수 있다. 물론 경칭으로 위대한 동인도 회사(Honourable East India Company, HEIC)라 불리기도 했다. 가장 처음 설립된 동인도 사는 일명 동인도 제도에서 무역하는 정부와 런던 상인의 회사(Governor and Company of Merchants of London Trading into the East Indies)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 회사는 엘리자베스 1세가 1600년에 설립 허가를 내주었다. 이후 이에 대항하는 동인도 제도에서 무역하는 잉글랜드 상인의 연합 회사(United Company of Merchants of England Trading to the East Indies)가 1708년 설립되었다. 보통 전자를 런던 회사, 후자를 영국 회사라고 부르며 모두 영국 동인도회사라 불리고 있다. 그로부터 회사는 인도의 면직물 수입을 주력 사업으로 삼았고, 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원주민 생산자에게 경제 이 외 강제적인 행위를 가하였다. 회사는 단순한 기업에 그치지 않고, 내륙 지방에 대한 토지와 주민의 지배를 확대하였으며 1765년 토지세로 대표되는 벵골 지방의 조세 징수권을 무굴 제국 황제로부터 양도받으면서 벵골의 토지 소유자가 되었다. 그로 인해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의 정치 권력자 및 영토 지배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초창기 영국 동인도회사는 전쟁보다 무역 자체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1600년 설립된 이후 1세기 동안 이사회는 동인도회사의 사업은 전쟁이 아닌 무역임을 강조했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인도와의 무역에 주력했는데, 특히 인도에서 가장 세력이 약하고 유럽의 경쟁국들이 가장 적었던 벵골과 마드라스가 주요한 활동 지역이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 프랑스가 인근 지역에 요새를 구축하면서 그들은 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한창 전쟁을 벌이던 영국과 프랑스는 인도에서도 무력으로 충돌했다. 프랑스는 세포이로 알려진 인도 병사들을 정규군으로 수용하여 전투 능력을 증대하면서 영국보다 우위를 점했다. 1750년대 영국 동인도회사도 세포이를 수용했고 7년 전쟁이 벌어지기 전날 두 나라는 각각 10,000명에 달하는 무장한 병력들 중 대부분 인도인들을 인도 해안에 배치했다. 청나라에 관심을 가지던 영국은 본격적으로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 1759년 영국 동인도회사는 직원을 북경으로 보내 개항을 요구하였고 건륭제(乾隆帝, 재위 : 1735~1796)는 이를 허가하였으나 갑자기 이를 거절하고 대외 무역 규제를 대폭 강화하였다. 또한 영국인들이 주로 활동하고 있던 주산(舟山)과 하문(아모이)의 항을 폐항 하고 광주항만 개항을 허락하였다. 추가로 건륭제는 영국을 포함한 유럽 상인들은 반드시 공행(公行)과만 매매를 하도록 규정하고 그 시기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로 엄격하게 설정하였다. 1780년대부터 청나라와 영국 동인도회사는 본격적인 무역을 하게 된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광동 무역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여 중국으로부터 차, 도자기, 목면 등을 수입하고 영국의 모직물, 면직물 등을 수출했다. 그런데, 청나라 조정에서는 서양 물품을 취급하는 양행 상인들의 조직인 공행 관세를 자의적으로 부과하였고 외국 상인들의 무역을 제한했다. 또한 무역 기간이나 물품도 통제하여 유럽 상인들이 별다른 수입을 올리지 못하였다. 1680년대 찰스 2세가 회사에 대하여 징병 권, 사관임명권, 교전 권(交戰權) 등을 부여함으로써 권력이 보강되었다. 경쟁 상대인 신(新) 동인도회사를 합병하고, 로버트 클라이브(Robert Clive)가 1757년에 플라시 전투에서 프랑스 동인도회사에 승리하면서 18세기 중엽에는 인도에 대한 독자적인 지위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본국에서는 회사의 전제와 독점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 인도의 행정은 점차 본국 의회의 감독 하에 들어갔다. 1814년의 인도 무역의 독점 폐지, 차(茶) 무역의 독점 폐지, 인도 회사령(會社領)의 국왕에 이양 등으로 그 사명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1832년 2월 26일, 동인도회사는 광주(廣州)에 와 있던 영국인 간첩 휴 해밀튼 린제이(Hugh Hamilton Lindsay)에게 염탐을 시켰다. 그는 로드 애머스트(Lord Amherst) 호의 선주를 사칭하고, 카를 귀츨라프(Karl Gützlaff)와 함께 광동 이북에서의 무역 확장을 타진하기 위해서라는 구실로, 남오(南澳), 하문(廈門), 복주(福州), 영파(寧波), 상해(上海), 위해(威海) 등 항구를 돌아다니며 지형을 측량 및 제도하고, 정치, 경제, 군사 정보를 수집하여 영국의 외무대신 헨리 존 템플(Henry John Temple)에게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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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va Topos
    2024-06-17
  • 구석기(Paleolithic)와 신석기(Neolithic)의 범주
    구석기(Paleolithic)와 신석기(Neolithic)는 역사 시대도 아니고 또한 역사학의 범주도 아니다. 역사학의 범위는 엄연히 체계화된 문자로 기록이라는 것이 나타나고 여러 문명이라는 존재가 피어나던 시기부터 시작된다. 기록화 되긴 이전의 시대인 구석기(Paleolithic)와 신석기(Neolithic)는 인류사(Human history)의 범주로 들어간다. 물론 이것도 역사긴 하지만 성문화 되어진 역사가 아닌 존재만 가지고 있는, 체율체득(體律體得) 형태에 생존의 역사다. 흔히 고고학과 역사학을 혼동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고학과 역사학은 엄연히 종류가 다른 학문이고 이것을 햇갈려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녕 아마추어들이다. 고고학을 두고 역사학을 위한 과학적인 학문이라 착각하는 아마추어들도 있다. 고고학은 역사학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좀더 진보된 과학적인 발견을 분석하는 학문이고 고고학을 연구하는데 있어 많은 타 종류의 학문들을 다양하게 수용하고 대입할 수 있는 종합 집약적인 학문(Comprehensive Intensive Disciplines)이라 정의할 수 있다. 거기에는 역사학이 갖고 있는 문헌학(Philology) 비중이 높긴 하지만 어쨌든 고고학과 역사학은 별개의 학문이다. 우리가 흔히 문명(Civilization)이라고 하는 것은 석기 시대와 금속 도구 시대의 차이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문명(Civilization)의 사전적 정의는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문화와 사회를 말한다. 원시적인 인간의 생활, 삶의 형태들이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을 통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진화한 형태이다. 그래서 석기 시대에서 금속 도구를 사용하는 시대는 인류가 살아가는 삶의 질이 진보했다는 것에서 인류사에 큰 혁명적인 전환기를 맞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석기 시대의 인류는 생존을 위한 시기라 보면 된다. 그 자체가 원시적이었고 어쨌든 살아 남기 위한 생존 본능의 시대다. 특히 구석기 시대의 경우, 개별 집단 및 씨족 집단으로 연명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은 타 집단을 만나게 되면서 함께 융합된 집단으로 살아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인간은 원시 동물 개개별적으로 치면 매우 약한 존재로 대형 동물이나 포식자들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은, 원초적 본능에서 진화할 수 있는 뇌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발달한 것에는 신경과학적인 구조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의 뇌는 다른 동물들의 뇌에 비해 크고 신경세포의 숫자도 훨씬 더 많다. 영장류의 뇌에서는 뇌가 커져도 신경세포의 크기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으며 영장류의 뇌에서 신경세포의 숫자를 10배 늘리려면 뇌가 11배만 커지면 된다. 하지만 같은 질량의 사람의 뇌에는 860억개의 신경세포가 있는데 이는 호모 에렉투스의 뇌 신경 세포의 개수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최초의 도구를 사용했던 종인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두개골의 용량이 600cc에 불과한 종이지만 보통 현생인류의 탄생을 나는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의 출현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근거로 들 수 있는데 이는 거의 오랑우탄과 침펜지에 중간속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확연히 구분히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타웅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도구를 사용한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호모 루돌펜시스(Homo rudolfensis) 시기는 흔히 불이 발견되었다고 추정된 시기와 일치한 시기이고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뇌는 조금씩 진화해 갔다. 그러면 석기 시대라고 하는 인류사에 있어 도구적 진보(Instrumental progress)에 대해 어떤 논의들이 있을까? 이와 같은 도구적 진보에 대해 신경과학적인 부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발생학(Embryology)이다. 이를 두고 실제로 ‘발생학적 선택’ 이라고 하는데, 토마스 새들러(Thomas Sadler)의 저작 <사람발생학(Longmans Medical Embryolgy)>에 의하면 "뇌의 발생 과정에서 다른 동물의 뇌와 두드러지는 차이를 찾을 수 있는 것은 ‘크기(Size)’, ‘구성(Construction)’, ‘에너지 소비(Energy consumption)’, ‘혈류량(Blood flow rate)’, ‘좌우 비대칭(Left-Right asymmetry)’ 등이다." 하고 하였다. 인간의 뇌는 멜론 비슷한 크기를 갖고 있으며 체중의 2.5%에 달하는 무게를 갖고 있다. 총 1천억 개 신경 세포와 1천조 개 시냅스가 있어 뇌 자체를 두고 작은 우주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뇌는 인간 에너지 소비량의 20%를 소모하는 존재이며, 혈류량도 750 ml/min라는 엄청난 양을 갖고 있고 좌우 뇌가 비대칭적으로 기능하고 있어 다른 동물들의 뇌와 세부적으로 다른 구조를 띄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본능에서 벗어나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진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문명이라는 것도 탄생이 되는 것이고 개별적인 집단에서 좀 더 조직적인 집단으로 변모함으로써 대형 동물이나 포식자들의 천적으로 원시 생태계의 구조를 바꾸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시기에는 어떠한 예술적 가치의 창달이라든지, 문화적, 문명적인 발상 따위는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석기 시대 토기를 가지고 여러 의미 부여를 하는 일부 학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러한 해석론적 시각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에 있다. 예술적 가치, 문화, 문명적인 발상은 금속병용기 시기부터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때는 정주민족의 경우, 수렵과 채집에서 벗어나 농업에 종사하며 안정화 되어가는 시기이고 삶의 질이 점차 풍족해져 가는 시기이다. 그래서 나는 구, 신석기의 경우 구석기는 원시 상태의 단계고 신석기는 문명 사회로 가기 위한 준비 단계로 보고 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반박하며 반론을 재기하는 학자도 여럿 존재한다. 그러면 석기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프랑스 라스코나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라던지, 한국의 반구대 암각화와 같은 흔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절에 문자가 존재했는지의 여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인간의 사고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어떤 체계적인, 혹은 갑자기 떠오르는 발상 등을 통해 표현하게 되는데 여기에 구체적으로 체계화 되어진 문자가 석기 시대에 등장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면 동굴벽화나 암각화는 어떠한 진화된 사고에 의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자신이 표현하고픈 내용을 문자처럼 그릴수도 있고 자기가 속한 부족과 이미 약속되어진 언어 수단 및 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고도로 구체적이고 표현화된 예술작품의 생성은 석기 시대가 아닌 금속병용기 이후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문자도 없던 시절에 예술 작품을 생각한다는 굉장히 문명사적으로도 언발란스한 일이다. 더불어 사람의 부분적인 문맹화 시대도 아닌 인간 전체가 문맹인 시기, 생존 본능, 씨족 보호 본능이 우선이던 시기에 어떠한 문명적 발상, 문화적 발상을 과연 할 수 있었겠는가?
    • 칼럼
    • Nova Topos
    20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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