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04(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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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Paleolithic)와 신석기(Neolithic)는 역사 시대도 아니고 또한 역사학의 범주도 아니다. 역사학의 범위는 엄연히 체계화된 문자로 기록이라는 것이 나타나고 여러 문명이라는 존재가 피어나던 시기부터 시작된다. 기록화 되긴 이전의 시대인 구석기(Paleolithic)와 신석기(Neolithic)는 인류사(Human history)의 범주로 들어간다. 물론 이것도 역사긴 하지만 성문화 되어진 역사가 아닌 존재만 가지고 있는, 체율체득(體律體得) 형태에 생존의 역사다. 흔히 고고학과 역사학을 혼동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고학과 역사학은 엄연히 종류가 다른 학문이고 이것을 햇갈려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녕 아마추어들이다. 고고학을 두고 역사학을 위한 과학적인 학문이라 착각하는 아마추어들도 있다. 고고학은 역사학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좀더 진보된 과학적인 발견을 분석하는 학문이고 고고학을 연구하는데 있어 많은 타 종류의 학문들을 다양하게 수용하고 대입할 수 있는 종합 집약적인 학문(Comprehensive Intensive Disciplines)이라 정의할 수 있다. 거기에는 역사학이 갖고 있는 문헌학(Philology) 비중이 높긴 하지만 어쨌든 고고학과 역사학은 별개의 학문이다. 


화면 캡처 2024-06-05 040508.png
사진 : Maps of Europe and its cultures: Paleolithic to end of Neolithic, 출처 : reddit, r / Paleo European

 

우리가 흔히 문명(Civilization)이라고 하는 것은 석기 시대와 금속 도구 시대의 차이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문명(Civilization)의 사전적 정의는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문화와 사회를 말한다. 원시적인 인간의 생활, 삶의 형태들이 물질적, 기술적, 사회 구조적인 발전을 통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진화한 형태이다. 그래서 석기 시대에서 금속 도구를 사용하는 시대는 인류가 살아가는 삶의 질이 진보했다는 것에서 인류사에 큰 혁명적인 전환기를 맞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석기 시대의 인류는 생존을 위한 시기라 보면 된다. 그 자체가 원시적이었고 어쨌든 살아 남기 위한 생존 본능의 시대다. 특히 구석기 시대의 경우, 개별 집단 및 씨족 집단으로 연명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들은 타 집단을 만나게 되면서 함께 융합된 집단으로 살아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인간은 원시 동물 개개별적으로 치면 매우 약한 존재로 대형 동물이나 포식자들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은, 원초적 본능에서 진화할 수 있는 뇌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발달한 것에는 신경과학적인 구조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의 뇌는 다른 동물들의 뇌에 비해 크고 신경세포의 숫자도 훨씬 더 많다. 영장류의 뇌에서는 뇌가 커져도 신경세포의 크기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으며 영장류의 뇌에서 신경세포의 숫자를 10배 늘리려면 뇌가 11배만 커지면 된다. 하지만 같은 질량의 사람의 뇌에는 860억개의 신경세포가 있는데 이는 호모 에렉투스의 뇌 신경 세포의 개수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최초의 도구를 사용했던 종인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두개골의 용량이 600cc에 불과한 종이지만 보통 현생인류의 탄생을 나는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의 출현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근거로 들 수 있는데 이는 거의 오랑우탄과 침펜지에 중간속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확연히 구분히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타웅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도구를 사용한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호모 루돌펜시스(Homo rudolfensis) 시기는 흔히 불이 발견되었다고 추정된 시기와 일치한 시기이고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뇌는 조금씩 진화해 갔다. 그러면 석기 시대라고 하는 인류사에 있어 도구적 진보(Instrumental progress)에 대해 어떤 논의들이 있을까? 이와 같은 도구적 진보에 대해 신경과학적인 부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발생학(Embryology)이다. 이를 두고 실제로 ‘발생학적 선택’ 이라고 하는데, 토마스 새들러(Thomas Sadler)의 저작 <사람발생학(Longmans Medical Embryolgy)>에 의하면 "뇌의 발생 과정에서 다른 동물의 뇌와 두드러지는 차이를 찾을 수 있는 것은 ‘크기(Size)’, ‘구성(Construction)’, ‘에너지 소비(Energy consumption)’, ‘혈류량(Blood flow rate)’, ‘좌우 비대칭(Left-Right asymmetry)’ 등이다." 하고 하였다. 인간의 뇌는 멜론 비슷한 크기를 갖고 있으며 체중의 2.5%에 달하는 무게를 갖고 있다. 총 1천억 개 신경 세포와 1천조 개 시냅스가 있어 뇌 자체를 두고 작은 우주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뇌는 인간 에너지 소비량의 20%를 소모하는 존재이며, 혈류량도 750 ml/min라는 엄청난 양을 갖고 있고 좌우 뇌가 비대칭적으로 기능하고 있어 다른 동물들의 뇌와 세부적으로 다른 구조를 띄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본능에서 벗어나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고 진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문명이라는 것도 탄생이 되는 것이고 개별적인 집단에서 좀 더 조직적인 집단으로 변모함으로써 대형 동물이나 포식자들의 천적으로 원시 생태계의 구조를 바꾸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시기에는 어떠한 예술적 가치의 창달이라든지, 문화적, 문명적인 발상 따위는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석기 시대 토기를 가지고 여러 의미 부여를 하는 일부 학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러한 해석론적 시각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에 있다. 예술적 가치, 문화, 문명적인 발상은 금속병용기 시기부터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때는 정주민족의 경우, 수렵과 채집에서 벗어나 농업에 종사하며 안정화 되어가는 시기이고 삶의 질이 점차 풍족해져 가는 시기이다. 그래서 나는 구, 신석기의 경우 구석기는 원시 상태의 단계고 신석기는 문명 사회로 가기 위한 준비 단계로 보고 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반박하며 반론을 재기하는 학자도 여럿 존재한다. 그러면 석기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프랑스 라스코나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라던지, 한국의 반구대 암각화와 같은 흔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절에 문자가 존재했는지의 여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인간의 사고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어떤 체계적인, 혹은 갑자기 떠오르는 발상 등을 통해 표현하게 되는데 여기에 구체적으로 체계화 되어진 문자가 석기 시대에 등장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면 동굴벽화나 암각화는 어떠한 진화된 사고에 의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자신이 표현하고픈 내용을 문자처럼 그릴수도 있고 자기가 속한 부족과 이미 약속되어진 언어 수단 및 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고도로 구체적이고 표현화된 예술작품의 생성은 석기 시대가 아닌 금속병용기 이후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문자도 없던 시절에 예술 작품을 생각한다는 굉장히 문명사적으로도 언발란스한 일이다. 더불어 사람의 부분적인 문맹화 시대도 아닌 인간 전체가 문맹인 시기, 생존 본능, 씨족 보호 본능이 우선이던 시기에 어떠한 문명적 발상, 문화적 발상을 과연 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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