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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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근현대사의 세계열강으로 떠오르게 된 계기는 18세기가 시작될 때 시작된 표트르 대제(Pyotr I, 1672~1725)의 치세와 그리고 북방전쟁, 이후에도 계속된 러시아-투르크 전쟁이었으며 그 정점은 예카테리나 여제가 통치한 시기에 벌어진 제7차 러시아-투르크 전쟁이었다. 러시아가 예카테리나 여제의 시기에 그 전성기가 절정에 있던 18세기 중반부터 북방의 패자는 러시아였고 그보다 남쪽 흑해 연안은 여전히 크림 칸국과 오스만투르크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러시아 역사에서 이른바 ‘제국 시대’라 불리는 이 시대에, 러시아 예카테리나 여제는 다른 유럽 열강에 비하면 부족한 인구와 경제력을 보충하고자 근대적 행정 개혁과 군사 개혁에 매진했으며, 동으로는 드넓은 시베리아와 서로는 발트 해에 이르기까지 가장 넓은 영토를 거느린 제국의 위명을 떨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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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Allegory of Catherine's Victory over the Turks (1772), 출처 : Wikipedia, Russo-Turkish War (1768–1774), By Stefano Torelli

 

한편 크림 칸국에는 크림 칸(Qırım, 1758~1764, 1768~1769)이 치열한 내부의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셀림(Selim)과 아르슬란(Arslan), 마크섭(Maqsub)은 서로를 몰아내며 칸의 제위에 올랐고, 치열한 내부의 권력 정쟁을 주도해 칸의 제위 고작 1~2년 정도가 전부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러시아 출신 상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광산을 개발해 자신이 착복하여 크림 칸국의 급격한 쇠퇴를 불러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안정을 바란다는 것은 쉽지 않았고 이어 오스만투르크의 내정간섭이 강화되면서 조정은 친 오스만파와 반 오스만파의 대립으로도 이어지고 있었다. 1764년에 크림 칸을 축출하고 즉위한 셀림 3세(Selim III, 1764~1767, 1770~1771)는 자신의 권좌를 공고히 하기 위해 러시아에 사신을 보내게 된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셀림 3세의 사신을 맞이하여 그를 도울 것을 약속했고 급히 남방 크림 일대로 군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그와 맞수인 크림 칸은 친 오스만 세력이었고 아르슬란은 몽골-타타르 혈통으로 타타르 세력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마크섭은 조지아 이메리티 왕국과 혼인 동맹을 맺은 사이로 조지아 군까지 끌어들여 칸의 재위를 전복시키려 했다. 아르슬란은 몽골군을 주축으로 크림 반도에 남아 있는 오스만, 조지아, 러시아를 차례로 격퇴하여 크림에서 추방한 다음 조지아의 케르치 침공으로 인해 케르치에서의 전쟁에 참전했다. 

 

아르슬란은 이 케르치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조지아 군의 도움을 받은 마크섭이 칸의 재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에 오스만투르크는 크림 칸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쿠반 강 일대와 소치, 압하지야 일대의 지배권을 확고히 하고 조지아의 3왕국과 아르메니아까지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한편 크림 칸국과 3각 구도인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무스타파 3세(Mustafa III, 1757~1774)는 튤립 시대의 전성기를 이루었던 술탄으로 학예 진흥에 힘을 써서 볼테르(Voltaire, 1694~1778), 장 바티스트 달랑베르(Jean-Baptiste Le Rond d’Alembert, 1717~1783) 등을 비롯한 학자와 예술가들을 코스탄티니예 궁정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1763년에 배다른 동생인 압둘하미트 1세 (Abdul Hamid I,  1774~1789)에게 잠시 정치를 섭정했고, 무스타파 3세는 1760년에는 합스부르크와 전쟁에서 합스부르크를 대패시키고 오스트리아령이던 트란실바니아 남단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어 무스타파 3세는 내부 개혁을 단행하여 투르크 귀족들의 토지를 황실로 환수하여 대토지 소유자들의 겸병을 막고, 상공업을 진흥하며, 할렘볼른(Halemvoln)이라 하는 둔전제도를 도입해 수만 명 규모의 상비군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국제 정세의 18세기의 유럽-아시아에 걸친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의  국경은 현대의 우크라이나 영토에 조지아와 몰도바, 북방에는 스웨덴령 핀란드와 서쪽에는 리보니아 남부와 경계를 갖고 있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체코 보헤미아 공국과 합스부르크 헝가리령의 일부까지 포함했으며, 특히 흑해는 오스만투르크의 ‘호수’가 되면서 러시아와 자주 충돌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부터 예카테리나 여제까지의 군주들은 대부분 “군사 지휘관으로서의 군주”를 내세웠고, 개혁과 정복의 절대 군주로 군림하며 국위를 크게 떨쳤다. 그러나 제국을 운영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끊이지 않았고, 대외적으로 언제나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러시아는 주변 국가들은 물론 멀리 영국, 프랑스 등의 서유럽 국가들까지 러시아를 경계하고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본래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덴마크와 폴란드, 그리고 러시아는 암암리에 서유럽의 후원을 받으며 서로 동맹을 맺는 과정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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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차 러시아-투르크 전쟁(1768~1774)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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