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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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3국, 그 중에 라트비아는 매우 이성적인 국가였지만 러시아라는 거대 포비아는 라트비아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킬 정도로 그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라트비아는 독립 이후에 탈러 정책을 실시했다. 그리고 2005년에 EU와 나토에도 가입하면서 러시아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소련에 의해 러시아 SFSR에 합병되어 러시아 땅이 된 압레네 지역을 두고도 오랫동안 러시아와 영토분쟁을 벌였다. 

 

그리고 2012년 8월 28일 당시 라트비아의 국방장관이자 현 부총리 직위에 있는 아르티스 파브릭스(Artis Pabriks)는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 있는 소련 해방군 기념비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브릭스 장관은 도덕적인 관점에서 보면 소련 해방군 기념비는 철거되어야 하지만 이는 너무 많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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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라트비아 리가의 독립기념탑에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정부의 뜻에 따라 우크라이나 국기를 비추고 있다. 출처 :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By Gordon F. Sander Contributor

 

파브릭스 장관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인 5월 9일 기념비 주변에서 추모 행사가 열리는 것과 관련하여 행사 참가자들 대부분의 목적은 전몰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이미 20년 전에 사라진 지정학적 세력권인 옛 소련권에 라트비아를 묶어 두려는 것이라고 발언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즉, 나치 독일과 싸워 그들을 몰아내는데 희생을 당한 라트비아 군인들을 모욕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1941년 6월 나치 독일 군대는 동쪽으로 진격해 소련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소련 스탈린의 공포 정치에 떨고 있던 사람들에게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은 해방군 그 자체였다. 라트비아 주민들은 독일이 발트인들을 위해 함께 싸우며 끝내 독립국가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희망에 갖고 있었으며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군을 열렬히 환영했다. 


젊은이들은 공산주의 소련에 맞서기 위해 나차 독일군에 자원입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나치 독일 역시 엄청난 악행을 저질렀고 라트비아는 자의든, 타의든 어쨌든 어쨌든 그 악행의 동조자가 되어버렸다. 젊은이들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징용했으며 전쟁 물자를 강탈했고 이웃처럼 지내던 유대인들을 처형했고 라트비아 인들은 이를 적극 협조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은 끝내 패전국이 되었고 승전국으로서의 소련은 종전을 맞이하기 위해 발트 지역에 군대를 보내 나치 독일을 몰아냈다. 소련 초기 때 이주해 온 러시아인에게는 나치로부터 지역 주민들을 해방시킨 것이지만 라트비아 주민들에게는 스탈린의 공포 정치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나치 독일에 자원하여 친위대에 입대한 군인들과 가족들은 나치에게 동조했다는 명목으로 숙청되었으며 발트 지역의 나치 전범들은 소련의 1차 침략 때보다 두 배나 많은 사람들이 시베리아로 압송되었다. 전쟁 이후 국제 정세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소련, 영국의 정상이 모인 얄타 회담에서 우리에게는 민족 분단이라는 결정이 내려졌으며 발트인들에게는 세 국가 모두 소련의 공화국으로의 전락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국민들의 안위와는 하등 관계 없는 결정으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모두 또 다시 암울한 현대사를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소련의 압제에서 나치 독일이 해방시켜 줬기에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 입장에서는 매우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라트비아는 네오나치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네오나치', '파시스트', 그리고 이른바 '반데라주의자들(Бандеровцы)'라고 불리는 이들이 사실상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도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는 이에 대해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라트비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은 현재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라트비아 측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의 EU 가입도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우크라이나 난민들도 받아들이고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시설 폭격 및 파괴로 인해 동유럽 각지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라트비아 매체 <발틱 타임스> 등을 참조하면 라트비아에서는 자금 문제로 수도 리가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서 작년 7월 우크라이나 난민의 추가 유입을 막기로 했지만 올해 1월 1일부터 다시 난민 유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금 내가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있으면서 수많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은 대거 호스텔 같은 곳에 몰려 있다. 


국제법상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정책으로 각 숙박 업소들은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해 숙박료를 면제해주고 있다. 지금 내가 있는 호스텔도 4~5가구 이상의 난민 가족들이 숙박하고 있는데 어제에도 두 가구도 더 체크인을 요청했다. 호스텔도 사업하는 업체인데 이렇게 꾸준히 난민을 받다보면 수익은 적자를 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킹닷컴이 왜 선불제로 전환했는지 그 사정을 호스텔 주인으로부터 듣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우크라이나 난민들로 객실을 채우기 전에, 다른 고객들에게 미리 선불금을 받아 방을 내주면 체크인 무임승차하러 들어오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이미 방이 남아있지 않아 미안하다라며 핑계를 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호스텔들은 적자에 파산까지 하여 문 닫은 곳도 꽤 많다고 들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난민들 중 질이 좋은 자들도 숙박하다보니 도미토리 각 객실의 손님들에게도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니 "슬라바 우크라이나(Слава Україні!)" 라 외치며 라트비아 및 다른 국가의 국민들이 언제까지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지지해주고 인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물론 러시아가 싫은건 라트비아도 마찬가지지만 싫은건 싫은거고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는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방에 꽂혀 있는 우크라이나 국기와 "Слава Україні!의 명패를 보며 그들도 불쌍하지만 자신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 호스텔 사장들의 한숨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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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와 국민에 대한 거대한 포비아(Phobia)의 현장, 라트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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