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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웹툰 전시로 K-콘텐츠 확장, 필리핀부터 유럽까지 전략 진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동남아시아와 유럽을 대상으로 한국 만화·웹툰 전시를 개최하면서 K-콘텐츠의 글로벌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BTS와 블랙핑크 같은 K-팝 아티스트들이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영향력을 넓혀온 방식을 웹툰에 적용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웹툰 인구를 확장하고 국내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2022년 세계 시장에서 동남아시아 만화·웹툰 시장의 비중은 5%로 비교적 작지만, 한류에 대한 높은 관심 덕분에 이 지역에서의 수요 창출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평가된다. 또한, 유럽에서는 이미 확립된 일본 망가 소비층이 웹툰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는 필리핀에서 시작하여 베트남, 인도네시아, 벨기에, 이탈리아, 싱가포르 등으로 순차적으로 이어진다. 각 국에서의 전시는 현지에서 인기 있는 K-콘텐츠 성격을 반영하여 선호도가 높은 웹툰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필리핀에서는 특히 로맨틱 코미디와 드라마 장르가 인기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여, '김 비서가 왜 그럴까'와 '옷소매 붉은 끝동'을 중심으로 전시가 진행된다. '김 비서가 왜 그럴까'는 이미 현지에서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어 큰 성공을 거둔 바 있으며, OTT 플랫폼 Viu에서 3주 연속 정상에 오르는 등 흥행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전시장은 웹툰 속 부회장실과 비서실 등을 실제와 같이 재현하여 방문객들의 흥미를 끌 계획이다. '옷소매 붉은 끝동'의 경우, 작화를 맡은 조혜승 작가가 직접 현지에서 홍보 활동을 벌이며, 이야기 콘서트와 만화 그리기 연수회 등을 통해 웹툰에 관심을 촉발시킨다. 이 외에도 각 나라에서 재외 한국문화원을 통해 웹툰 공모, 이야기 콘서트, 사업 교류회, 웹툰 연수회 등 다양한 부대 행사가 마련될 예정이다. 이번 웹툰 전시는 한국 웹툰의 다양성과 매력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적으로 한국 문화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국내 웹툰 기업들의 해외 시장 진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전시를 통해 새로운 글로벌 팬층을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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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행사
    2024-06-20
  • 농축산업 돌풍 “칠보일라이트” 친환경 비료 혁신을 더하다
    환경친화적인 제품개발에 박차 비료, 토양개량제, 사료첨가제 분야에 혁신을 이루다 미래자원으로 손꼽히는 일라이트는 원적외선을 방출해 유해물질을 흡착하고 유기물 분해와 각종 유해균에 대한 항균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일라이트는 토양개량제로도 토양의 물리성과 화학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고 입증되었다. 이에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칠보일라이트는 환경 친화적인 제품 개발에 주력하며, 비료, 토양개량제, 사료첨가제 분야에서 농축산분야에 혁신의 돌풍을 몰고 오고 있다. 이 회사의 제품들은 농업과 축산업에서 높은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제공한다. (주)메타스포시티 = 사진제공 칠보일라이트의 비료 특성 칠보일라이트의 비료는 토양의 물리적, 화학적 특성을 개선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토양의 배수 및 통기성을 향상시켜 작물의 뿌리 발달을 촉진하고, 또한 비료에 포함된 일라이트는 중금속과 유해 가스를 흡착하고 분해하여 토양 오염을 줄이고, 벤젠, 톨루엔,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유해 물질을 흡착하여 환경을 보호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칠보일라이트의 비료는 사막 녹화 사업과 같은 대규모 환경 개선 프로젝트에서도 사용된다. 이 비료는 지속 가능한 농업 실천을 촉진하며, 토양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칠보일라이트의 토양개량제사용 생산성 높여 칠보일라이트의 토양개량제는 토양의 물리적 구조를 개선하여 농작물의 성장과 생산성을 올려준다. 주요 특징은 토양 구조개선과, 산성화 방지, 친환경적인 개량제를 자랑한다. 토양구조개선이 뛰어난 칠보일라이트 토양개량제는 토양의 입자 구조를 개선하여 물과 영양분의 흡수를 촉진한다. 또한 토양의 PH 균형을 유지하여 산성화를 방지하고, 작물의 건강한 성장을 촉진한다. 특히 화학 비료와 농약 사용으로 인해 악화된 토양을 복원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러한 제품은 농작물의 생육을 촉진하고 수확량을 증가시키며, 농업을 한단계 더 발전시킨다. 칠보일라이트의 사료첨가제는 천연항생제로 효과입증 칠보일라이트의 사료첨가제는 천연 항생제로서의 효과를 입증받아 동물 사료에 첨가되어 소화촉진과 중금속 흡착 및 독소제거, 항균성이 뛰어나다. 칠보일라이트는 사료첨가제는 소화 기능을 향상시키고, 동물의 영양 흡수를 도우며, 중금속 흡착 및 독소 제거에 입증되었고 동물의 건강까지 개선시킨다. 동물에게 사료는 항균성이 중요하다. 이러한 부분을 칠보일라이트는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여 동물의 면역 체계가 강화된다는 점을 실험결과 알아냈다. 칠보일라이트의 사료첨가제는 동물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항생제 사용을 줄여 친환경 농업및 축산을 가능케 한다. 칠보일라이트의 세계화로 성장기대 많은 국가에서 화학 비료와 사료첨가제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환경 오염 문제를 겪고 있다. 중국, 인도, 브라질, 인도네이사, 필리핀, 베트남 등은 화학 비료와 사료첨가제를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토양과 수질 오염, 생태계 파괴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친환경적인 방법을 도입하고, 천연 성분을 활용한 제품 사용이 중요하다. 칠보일라이트는 이러한 국제적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천연 성분을 기반으로 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칠보일라이트는 지속 가능한 자원 사용과 환경 보호를 목표로 다양한 친환경 제품을 개발하여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혁신적인 제품 개발을 통해 글로벌 친환경 선도 기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 뉴스
    • 사회
    2024-06-05

칼럼 검색결과

  • 러시아와 중국, 표리부동의 상호관계 속에 실익 추구
    러시아와 중국은 과연 상호 협력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가? 이에 관한 답변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 두 국가는 겉보기와 달리 현안별로, 상황에 따라 의외로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기도 하고, 때론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협력관계를 추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가깝게 된 것은 헤이룽(러시아명으로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타라바로프(중국명 인룽) 섬, 볼쇼이우수리스키(중국명 헤이샤즈) 섬, 밍위에 섬이라는 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푸위안 삼각주(혹은 이 삼각주 전체를 헤이샤즈 삼각주라고 부른다)를 둘러싼 국경분쟁이 서로 타결된 이후일 것이다. 1969년 3월 2일부터 9월 11일까지 일어난 양쪽 국경분쟁은 2005년 6월 2일에 비로소 완전히 타결되었다. 이때 타결된 내용은 타라바로프 섬을 중국으로 완전히 반환하고, 볼쇼이우수리스키 삼각주를 동·서로 양분하는 것이었다. 이때 중국에 반환된 삼각주의 면적은 총 약 327제곱 킬로미터 중 약 174제곱 킬로미터로 사실상 중국영토의 가장 동쪽 끝이 되는 셈이다. 이에 러시아와 중국은 약 4354 킬로미터에 이르는 국경선을 육상 국경선과 해상 경계선으로 획정했다. 그런데 이 지역은 강물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고, 3개의 섬이라고 하지만, 작은 섬들도 그 삼각주 주변에 많이 흩어져 있어서 엄밀하게 국경선을 획정하기가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여튼 이 타결로 인해 영토 문제로 인해 러시아와 중국은 영토분쟁에 관한 한 서로 별다른 문제가 없고, 현재 이 지역은 서로 왕래를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와 중국 양국은 영토 문제에 매우 민감한데, 러시아는 중국으로부터 할당받는 영토를 일부 돌려줌으로써, 이를 통해 대중국 관계를 개선할 수 있었다. 중국은 러시아보다 더 많은 영토를 반환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러시아는 일종의 경제적-외교적 관계에서 거래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 중국은 정치적 관계에 의한 국익에 방점을 두었을 것이다. 만일 중국이든 러시아든 전부 반환이냐 전부 보전이냐의 문제로만 협상이 진행되었더라면, 이 협상은 결코 타결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협상 기간이 길었던 것은 러시아와 중국 각각의 내부 사정과 국제질서의 급변이 동시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이 두 국가는 미국에 맞서는 국가이기는 하지만, 서로의 계산법은 현안별로 다르다. 미국에 맞선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중국은 서로 같은 지점에 서 있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표리부동(表裏不同)의 행보를 보인다. 서로 정상회담도 했지만, 가시적 성과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지역의 정치·문화 안전보장에 관한 국제협력 기구인 상하이협력기구(CSO)와 구소련연방에서 독립된 국가들의 연합체인 독립국가연합(CIS)을 통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천연가스와 석유 그리고 군사적 협력을 지속화하는 경향이 보인다. 또 러시아는 최근 이른바 아프리카의 사헬 지대(서쪽 세네갈에서부터 동쪽의 수단에 이르는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 국가들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중국은 이른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육상 실크로드인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추구하는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식 자유 경제 지대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경제침체와 미국의 대중국 제재 그리고 일대일로에 일부 참여국들이 빚더미로 몰리는 상황은 우려를 낳는다. 더욱이 중국은 최근 러시아의 천연가스관 공사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다. 중국의 터무니 없는 후려치기에 러시아가 난색을 표명하면서 이 공사가 현재 지연되는 것이다. 사실 러시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고 있어서 천연가스 수출로 막대한 전비를 충당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중국에 관해 유럽보다 할인가격으로 천연가스를 팔았는데, 이것은 러시아가 유럽과 중국의 가격 차별화를 통해 자원을 한편으로 무기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지속적인 미래 성장시장으로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다. 러시아의 원래 계획은 천연가스의 유럽 시장이 축소되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중국의 시장을 돌려서 안정된 수출공급망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에 공급하려고 했고, 이른바 ‘시베리아의 힘-2’는 몽골을 걸쳐 중국의 동북아 지역과 시베리아를 연결하는 ‘시베리아 힘-1’의 수송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중국의 터무니없는 가격 인하 요구로 진전이 없고, 몽골에서도 별로 진전된 바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내세운 그럴듯한 명분은 중국이 향후 그린에너지로 전환하게 되면, 천연가스의 의존도를 낮추어야 하는데, 굳이 현재 시점에서 천연가스의 공급을 수요보다 더 많이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러시아가 공급하겠다면 기존보다 훨씬 낮은 가격이라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러시아로는 그런 가격이면 그동안에 싼 가격으로 중국에 천연가스를 공급해 왔는데, 천연가스의 가격을 훨씬 더 낮추라고 하니, 그러면 러시아도 안 하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러시아는 그렇지 않아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중국의 소극적 태도가 불만이었다.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아무리 관계가 친밀해도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발생하면 오월동주(吳越同舟)와 같은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국제관계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러시아와 중국이 중앙아시아에서도 한쪽은 영향력 유지를, 다른 한쪽은 영향력 확대를 희망한다. 또 중국은 아프리카에 투자하면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아프리카 국가들의 참여들 독려하면서 국가 영향력을 키우려고 한다. 이때 중국은 경제적 투자를 통해 아프리카의 자원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러시아는 이른바 과거 서방의 식민지, 특히 옛 프랑스 식민국가를 중심으로 바그너그룹을 통해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것은 군사적-경제적 측면이 강한데, 과거에 서방의 식민지 각축장이었던 아프리카는 이제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아프리카는 서구 식민지에 해방되었고, 서방의 지원도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나아진 것이 별로 없으며, 오히려 정정(政情) 불안과 정변, 종족 분쟁과 영토분쟁으로 피로 얼룩져 있다. 아프리카 각국의 국민은 그동안 서구화가 일부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가난과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잦은 분쟁과 전쟁의 씨앗으로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 이 틈을 군벌들이 활개를 치고 들어가고, 러시아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러시아는 반서방 동맹 세력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서방의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그 핵심은 경제적 지원이고, 각종 치안 불안과 정권 안정을 위해 이제는 서방보다 오히려 러시아가 더 낮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아프리카 각국의 정치적-경제적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는 매우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최근 행보를 보면 중국과 다소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북한과 베트남과 적극적인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 문제로 다소 소원하고, 베트남과는 이른바 사사(파라셀)군도와 난사(스프레틀리)군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러시아는 이 두 국가에 관해 후원국 역할을 자처한 것처럼 보인다.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이른바 ‘대나무 외교’라는 외교술로 유연하면서도 균형 외교를 중시하면서 강대국들 사이에서 실익을 많이 챙겼다. 러시아는 베트남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아마도 유라시아연합과 동남아시아연합을 하나로 묶으면서 미국- 대만-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남중국해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러시아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것이다. 중국은 한편으로 베트남과의 남중국해 분쟁에서 러시아가 개입을 내심 우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영향력을 희석화시키는데 러시아와 베트남의 밀착 관계를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구도는 현재 중국의 경제 상황과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전쟁으로 인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에 러시아와 중국이 어떤 행보로 서로의 관계를 모색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 칼럼
    • Nova Topos
    2024-06-29
  • 오늘은 6.25, 한국전쟁 74주년을 기념하여
    터키-아르메니아 대학살 사건은 국제적으로 매우 복잡한 문제 - 下편은 내일로 미루고 중요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여태까지 누누히 주장해왔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게 되면 러시아는 북한을 지렛대 삼아 우리를 압박할 것이고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보낸다면 러시아 또한 북한에 살상무기를 보내 우리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여 여러 고민을 해봐야 한다. 지금은 74년전의 6.25 전쟁 때와 입장이 다르다. 군의 전술과 전략, 국가 간의 정책 및 국제 정세는 시기에 따라 바뀔 수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동맹국들과 미국 또한 기조 전략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국은 오바마 시기부터 주한미군을 축소해오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국제 정세와 정책, 대 동북아 전략이 바뀌고 있음 의미한다. 주한미군을 뺀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우리는 이를 빠르게 감지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어야 한다. 한국은 늘 안전불감증과 오랜 평화에 맛들여 전혀 긴장하지 않고 대책 또한 세우지 않고 있는데 지금부터 착실히 대책을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우리의 안보는 앞으로 보장할 수가 없다. 미국은 대 동북아 전략을 상황에 따라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이 영원히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이 끝난게 아니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 상태이고 사실상 전시나 다름없다. 휴전 협정을 조인한 지 71년째인 현재이고 그동안에 우리는 거의 긴장을 놓다시피 살고 있지만 사실 세계사에서 가장 기록적인 휴전 기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인들은 74년 전, 6.25 때와 지금이 국제 정세적으로 같을 것이라 착각을 하고 있다. 한국인들 대다수 사람들의 특징은 세계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일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처럼 무장이 허접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중동 국가들도 과거 6~70년대처럼 무장이 허접해 이스라엘이 상대해도 모두 이길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변했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상식이라 착각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은 여전히 선진국이고 미국은 세계 최강이며, 러시아와 중국은 가난하고 여전히 후진국이며 공산국가에 소달구지 끌고 다니는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착각과 안전불감, 그리고 변하지 않은 인식이 상식으로 굳어지는 현상은 매우 위 험한 적신호라 볼 수 있다. 74년 전 그 때는 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지 불과 5년 밖에 안됐던 때였다. 그때는 미국이 우리를 도와 줄 여력이 있었고 냉전 사상 첫 지상전이 6.25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74년 전과 지금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냉전 시대는 끝났고 미군도 예전 같지 않다. 미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고 한 때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제압했지만 결국 패퇴하여 도망나왔다. 이를 패배로 인정하지 않고 미국의 전략적 철수라고 하는데 전략적 철수가 아니라 패배해서 도망나온 것이다. 미군의 첨단무기를 카불 공항에 그대로 두고 떠난 것을 보면 그만큼 미군이 급했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것이다. 그 후로 미국이 지원하여 대리전을 수행하는 나라들은 상대들이 녹록치 않아 고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그러하고 이스라엘도 가자를 쉽게 점령하고 하마스를 전멸시킬 줄 알았지만 개전한지 9개월이 넘어가는데 꽤 고전하고 있다. 게다가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상대로 쉽지 않다는 보도들이 여기저기서 흘러 나온다. 이어 한 줌도 안 되는 예멘 후티군마저 이기지 못하고 있다. 이게 지금까지 냉철하게 판단한 미국의 현 주소다. 더불어 미국은 장기적인 지상전을 수행할 여력이 없고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만을 지원하고 있는 판국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미국은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주한미군도 이전에 비해 계속되는 축소로 인해 몇 없으며 이들조차도 침공해오는 적을 6.25 때처럼 목숨 걸고 상대할 수 있을지의 여부도 불투명하다. 이들은 여의치 않으면 부산에서 사이공의 프리퀀드 윈드 작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처럼, 그리고 중화민국이 중국 공산세력에 밀릴 때처럼 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그럴 확률이 굉장히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한국인들이 있지만 그들과 우리가 구체적으로 뭐가 다른가? 남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 민주정부도 미국의 동맹이었고 장개석의 국민당도 미국의 동맹이었다. 우리는 남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민정, 중화민국과 다르게 미국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인가? 우리는 스스로 지킬 능력이 없는 채로 미국에 의지하면 결국 미국에게 배신을 당하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남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민정, 중화민국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전의 역사들을 상기하여 앞으로 미국을 대비해 러시아를 보험용으로 생각해 잘 지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살 길이다. 러시아는 중국, 북한을 설득하거나 이들을 중재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믿음보다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외교적으로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과 동등한 입장에서 잘 지낼 수 있는 묘안을 내놓아야 할 때다. 러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러시아를 안보의 보험용으로 들여놨듯이 우리도 우리 안보를 보험용으로 러시아를 설정해놓고 중국과 북한을 견제하며 일본,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6:4 정도로만 맞춰 놓는게 현 시점에 있어 최상의 전략이다. 우리는 다른 때보다 매우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말 그대로 위기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우리가 이전과 같이 안전불감에 이전과 같겠지라는 방심을 하고 긴장의 끈을 놓는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그 때 되면 후회해봤자 늦는다. 아직까지는 골든타임이 남아 있지만 얼마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경각심을 모두가 가져야 한다.
    • 칼럼
    • Nova Topos
    2024-06-25
  • 터키-아르메니아 대학살 사건은 국제적으로 매우 복잡한 문제 - 上편
    오스만투르크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독일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더불어 장시간 동안 유럽에서 가장 큰 이슈였다. 특히 19세기 말,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기부터 터키 공화국이 탄생한 1923년까지 오스만투르크 제국 치하에 있던 아르메니아인 약 150만 명은 조직적인 학살을 당하거나 강제로 추방되었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약탈로 인해 굶어 죽거나 고문 및 납치 등의 방식으로 조직적인 인종청소를 당했다는 주장이 대학살 관련 문제의 핵심이라 볼 수 있겠다. 세계 각국의 아르메니아 관련 단체들은 우크라아나 홀로도모르 단체보다 더 숫자가 많고 매우 조직적이다. 이들은 국제사회를 움직여 제노사이드 인정과 더불어 터키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아르메니아인들을 약탈한 재산을 반환해달라는 내용의 국제사법재판소에 소송도 걸었고 그로 인한 보상 등을 요구하여 터키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최근에 우크라이나 홀로도모르 단체들과 연합하여 러시아도 주적으로 몰아가며 러시아 정부에도 터키에 걸고 있는 내용과 같은 내용으로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에 대해 공식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과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했던 홀로도모르는 내용 자체가 판이하게 다르기에 이는 러시아 입장에서 볼 때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반면 터키 정부는 아르메니아에 사과를 전혀 하지 않은게 아니다. 그동안 터키인과 자국 내 아르메니아인 간에 발생했던 유혈 충돌과 대규모 희생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거듭 사과했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자행되었던 계획적, 혹은 조직적으로 학살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아르메니아인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시민이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터키의 적국이었던 러시아에 동조하고 오스만 제국을 배신하여 독립하려던 반란으로 인한 불가피했던 조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근거로 아르메니아인들과의 충돌 과정에서 터키인 희생자도 40만 명에 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직접적인 연결이 아니라 이를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는 것으로 끌고 간다는 것에서 이는 순수한 의미의 사과와 보상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터키를 고립시키고 악화시키려는 타 국가들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EU 국가들이고 특히 프랑스의 반발이 매우 심했다. 그 이유 프랑스에 아르메니아계 집단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의 요구로 인해 프랑스 의회는 2012년 1월,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부정하는 행위에 대해 형사 처벌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학살을 부정하면 처벌하는 것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반면 아르메니아인들은 유럽에서 오랜 투쟁으로 인한 승리를 자축하고 이를 만끽했지만, 반면 터키와 프랑스 관계는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 법의 발효로 인해 프랑스에서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발언이나 표현을 할 경우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한 반발로 터키 전역에선 반(反) 프랑스 시위가 벌어졌으며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 등을 식민 통치하면서 수백 년 동안 아랍인들을 박해하고 학살을 저질렀던 프랑스의 위선과 이들의 역사적인 과오를 규탄했다. 2015년에는 터키-아르메니아 학살의 100주기가 되던 해였다. 당시 터키에게 매우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전 세계 곳곳에서 아르메니아에 대한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었고 이는 유럽 의회가 공식적으로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비난하는 결의안까지 채택했다. 그런데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우크라이나의 홀로도모르도 러시아의 학살로 규정하고 이를 비난하는 결의 안까지 통과시키려 한다. 그렇게 따지면 영국의 아일랜드 대기근, 인도 뱅골 대기근 등으로 인한 아사 또한 학살로 규정해야 하며 프랑스가 저지른 알제리 대학살, 베트남 대기근도 학살로 규정하여 비판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학살에는 EU 자체에서 언급이 금기어회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불어 EU의 위선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따라서 23개 국가가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국제 사회는 아르메니아 측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국제 사회라기보다는 정확히 말해 EU와 영국, 이스라엘이 들어간 23개국이다. 그리고 미국은 나토의 동맹국이자 중동에서 자국 이익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터키를 자극시키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를 국제 지정학, 전략적인 압박으로 이용하기 위해 법안 통과를 미루고 있다. 만약 터키가 미국의 말을 듣지 않거나 미국의 이익에 벗어나게 하는 행위를 한다면 이 법안을 미 하원에 주제로 내놓으면서 터키 정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비난하는 결의안은 터키에게 당근 및 채찍을 주면서 지랫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략적 무기인 셈이다. 그런데 그동안 아르메니아인들은 터키에 대해 격렬하게 투쟁을 해왔다. 당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유럽 주요 도시에 부임하고 있는 터키 외교관들은 축하 대신 위로 전화를 받았다 한다. 당시 터키 외교관들에게 유럽은 매우 위험한 근무지였다. 특히 아르메니아의 극우단체인 아살라(ASALA)는 유럽 각국에 암약하여 포진하면서 표적 테러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놓고 표적 테러를 저지르는데도 유럽 각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 유럽은 "러소포비아" 못지 않게 "투르크포비아"를 갖고 있다. 지금은 "러소포비아"에 묻혀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지만 당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 내에서 "투르크포비아"는 엄청났다. 게다가 7~80년대에 중동에서 잇달아 전쟁이 벌어지고 오일쇼크까지 터지면서 중동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그러한 반감은 엉뚱하게도 터키에도 옮겨 붙었다. 무슬림들이 많고 중동하고의 관계 또한 깊다는 것에서 나타난 일종의 기피현상인 것이다. 이 때 아르메니아 극우단체 아살라에게 희생된 터키 외교관만 해도 46명에 달했다. 그만큼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있어 터키는 학살 주범으로 마땅히 응징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면서 터키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 최종적인 목표였다. 그러나 이처럼 테러를 통해 아르메니아의 슬픈 과거사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오히려 악수를 갖고 왔다. 이들 극우주의자들은 테러리스트들로 국제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자 아르메니아 정부가 나서 외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 전략도 이전에 펼친 테러 문제 때문에 상당수의 국가들이 아르메니아를 기피했다. 그런데 아르메니아인 학살 문제에 대해 파악해보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 오스만투르크 제국 치하에서 아르메니아 정교도들은 밀레트(Millet)라는 투르크식 소수민족 공동체 내 총대주교가 관할권을 행사했고 이는 종교적 자유와 민족적 자치를 함께 누렸었다. 애초부터 무슬림이 아니라고 이들은 탄압 받지 않았던 것이다. 1876년 9월 주 이스탄불 영국 대사 엘리어트 경이 본국에 보낸 외교문서에 의하면 오스만투르크 제국 내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오히려 일반 터키인들보다 부유하며, 월등히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의 민족주의자들은 독립 국가 건설을 원했다. 오스만 제국과 무장 투쟁을 벌이면서 끊임없이 독립을 추구했다. 특히 1877~1878년 사이에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의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을 점령하자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자들은 러시아를 지원하면서 오스만 제국을 배신했다. 이러한 사건들을 계기로 아르메니아 독립 국가 건설을 노리는 민족주의 단체들이 등장했고, 훈체크라던지, 다시나크파 같은 극우 정당들도 결성되어 터키인들을 약탈하고 강간하며 학살하고 다녔다. 그러나 이들이 했던 참혹한 행위는 유럽 내 아르메니아계와 리버럴 세력들에 의해 철저히 묻혀졌다. 이들은 터키 내 에르주룸, 비트리스, 반, 엘라지으, 디야르바크르, 시바스 등 동부 지역 6개 주를 아르메니아 민족국가의 영토로 규정하고 독립을 위한 무장 투쟁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같은 지역을 영유하고 있던 쿠르드족이 아르메니아에 반발했다. 해당 지역들은 아르메니아보다 쿠르드족이 이미 먼저 와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지역들은 쿠르디스탄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최초의 무장 투쟁은 1890년 에르주룸에서 발생했다. 오스만 제국의 주요 시설과 시민들을 향해 테러를 저질렀고 이 같은 행위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면서 쿠르드족과도 대립형세를 띄게 되었으며 쿠르드족들은 그 사이에 민병대를 조직해 아르메니아와 맞서 싸웠다. 당시 이 6개 주의 인구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5% 정도였고 상당수가 쿠르드족이었기에 숫적에서 열세를 보였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자들과 달리 아르메니아인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오스만 정부가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풍족한 삶을 향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민족주의자들의 독립 투쟁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터키인들은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자들로 인해 러시아-오스만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했으며 결국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대한 불신은 크게 확산되면서 불행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주제 <터키-아르메니아 대학살 사건은 국제적으로 매우 복잡한 문제>는 上, 中, 下편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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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4
  •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베트남에서 회담을 주목하며
    북한을 떠나 20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푸틴 대통령은 곧바로 일정을 가졌다. 야쿠츠크-평양-하노이로 이어지는 일정은 다른 국가 정상이었다면 피곤할 수도 있는 일정이다. 미국 바이든 같으면 그런 일정을 소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서 푸틴이 암에 걸렸다. 혹은, 치매나 알츠하이머 등등 와병설이나 위독설이 제기되었지만 그런 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고도 암에 걸렸다. 혹은, 치매나 알츠하이머 등등 와병설이나 위독설 등은 전 세계 뉴스 찌라시들의 헛소리이자 희망 사항으로 밝혀졌다. 이번 베트남 방문 또한 북한 방문에 이어 또 다른 의미의 방문이라고 생각이 든다. 1. 지정학적 외교적인 부분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현재까지 좋은 관계다. 그러나 상호 간에 그리 미덥지 못한 관계인 것은 맞다. 최근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가는 천연가스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러시아는 2022년 손상된 노르드스트림1 송유관과 거의 같은 양인 연간 500억 입방미터(bcm)의 가스를 러시아 북부에서 몽골을 거쳐 중국으로 운반할 새로운 가스관을 건설하기 위해 협의해 왔다. 그런데 이 공사가 현재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주요 세부 사항에 대해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시베리아의-2 전력을 운영하게 될 가즈프롬은 2030년까지 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가격을 포함한 주요 쟁점들에 대한 합의는 아주 요원한 상태다. 중국과 러시아 측은 여전히 계산과 추정을 하고 있고 경제적 이익에 대해 합의가 신통치 않다. 후문에는 중국이 가스값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기에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이 후려친 가격으로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겉으로 큰 부분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이 좋은 협력관계로 보이지만 세부적인 면으로 볼 때, 작은 부분에서부터 이미 삐걱거리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부분들도 있기에 정치, 외교적으로 겉으로는 아주 친밀한 관계에 있지만 사실상 세부적으로 볼 때 서로 아직까지 완전히 믿지 못하는듯 싶다. 그렇다고 중국이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완전히 지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집단서방, 미국 등과 맞서기 위해 상호 간의 친밀감을 과시하며 견제하는 용도일 뿐이다. 이를 서로 간에 경제적으로 러시아가 먼저 들어가면 중국이 따라 들어오고 중국이 먼저 들어가면 러시아가 따라 들어오는 스텐스를 취하며 저마다 국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상 오월동주(吳越同舟) 관계라 볼 수 있겠는데 당사자들끼리 친밀감을 과시하면서 속으로 서로 견제하는 모션을 취하고 있음이 여기저기서 보여지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 입장에서는 언제 변할지 모르는 국제 관계의 속성상, 중국을 외교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 베트남이라는 일종의 보험을 들어놓기 위해 볼 수 있겠다. 게다가 둘 다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 동반자(договор о Всеобъемлющем стратегическом партнерстве)'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여차하면 중국을 지렛대로도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과 베트남은 서로 국민 감정도 좋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중국이 베트남의 적성 국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북한과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그동안 중국에 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였지만 때에 따라서 서로 견제하고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에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도 동시에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파트너로 맞아 들인 부분도 있다. 최근 베트남에는 화교 집단들의 세력이 커지며 당 중앙에까지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있어 응우옌 푸 쫑 서기장은 이들을 정치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부정부패 사건을 터뜨려 이를 계기로 숙청을 단행하고 있다. 최근 베트남 국가 주석인 보 반 트엉이 푸 쫑 서기장에게 숙청을 당했는데 이는 명목상 부정부패였으나 실질적으로 베트남 남부 지역 화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보 반 트엉은 호치민과 남부 지역 화교들이 경제적으로 성장세를 보이며 남부 지역의 주축으로 자리 잡아갈 때 화교에 대한 권익을 많이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친중적 성향을 갖게 된 배경이 있다. 따라서 푸 쫑은 이를 적극 견제에 나서 보 반 트엉을 실각시키고 외부적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여 친중파 각료들과 화교 집단, 이들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인 것도 있다. 그런 의미로 베트남은 러시아의 행동을 비난하는 UN의 결의안 투표에서 여러 번 기권을 택했다. 심지어는 러시아에 물자를 지원하기도 했다. 물론 베트남은 모두와 친구로 지내되 공식적인 동맹은 맺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베트남은 과거 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미국과도 협력하고 러시아와도 동시에 우방관계를 유지 중에 있다. 이는 모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특히 스프래틀리 군도 분쟁과 파라셀 군도(Paracel Islands) 영토 분쟁은 베트남 홀로 중국을 상대하기 보다는 러시아를 통해 대화의 창구 및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와 베트남은 지정학적, 혹은 외교적인 부분에서 상호 지렛대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하노이 방문함으로써 이를 공고히 하려는 이유가 크다. 그리고 러시아는 베트남을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약화시키려는 부분도 함께 가지고 있다. 생각보다 다양한 전술, 전략으로 북한과 베트남을 써먹을 수 있다는 것에서 푸틴 대통령 지정학적인 전략을 잘 구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 경제적인 부분 오늘날 베트남의 경제는 세계 시장에 통합되면서 변화하고 있다. 베트남의 대러 무역 규모는 중국, 아시아, 미국, 유럽에 비해 훨씬 더 적은 편이다. 이는 거리상의 문제도 있지만 90~2000년대에 러시아 경제가 파탄 상태에서 서서히 끌어 올라오는 시기였기에 양국 경제적인 부분에서 협력은 그만큼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베트남 또한 러시아의 원유와 가스를 받아 축적하는 것을 늘리고 남중국해 석유 탐사에서 러시아 석유 기업과의 파트너십에 합의했다. 더불어 사할린 에너지의 안드레이 오호트킨 이사가 밝히길 사할린-2에서 생산하는 LNG 수출 지역을 베트남을 거쳐 인도까지 늘린다고 했다. 게다가 응우옌 푸 쫑 서기장은 1981년 소련의 사회과학아카데미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례가 있기에 러시아와의 관계에 있어 손수 챙겨왔었고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빈 그룹 창업자 팜 냣 브엉(Phạm Nhật Vượng) 회장 역시 러시아 유학생 출신이다. 이러한 인연들로 인해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강화 및 확대는 푸틴 대통령의 하노이 방문으로 인해 대폭 이루어질 전망이다. 더불어 베트남 또한 전력 사정이 좋지 않다. 전력량 사용이 급증하고 있고 최대 300% 이상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베트남의 경우, 한국과 달리 납부기한을 초과하는 즉시 얄짤없이 전기가 끊긴다. 베트남의 시골에는 이유 없이 전기가 나가 1시간 가까이 들어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도시의 경우, 태풍을 비롯한 자연재해가 아니고는 발생하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호치민의 경우, 간간히 끊기는 경우가 발생한다. 아마도 그것은 발전 용량의 문제라기보다는 마을 내 전기를 수급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되지만 전반적으로 전기 수급이 원활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남부 지방에는 메콩델타 최대 발전사업으로 현재 베트남전력공사(EVN)와 싱가포르 회사가 협정을 맺어 발전단지를 만들고 있지만 이 또한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가 원전을 짓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원전 기업인 로사톰(Росатом)의 지원을 받아 베트남에 원자력 과학기술 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에 원전 기술 제공을 도울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원전에 대해 러시아의 도움을 받는다면 고질적인 베트남의 전력난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북극항로와의 연결점이다. 최근 러시아가 수에즈 운하의 대안으로 북극항로를 제시하면서 연해주 중심의 신항만 투자를 늘려가고 있으며 동방경제포럼 때 이러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다. 북극항로에 있어 동해와 동남아시아 사이를 연결해주는 대각선 정점에 부산이 위치해 있고 러시아는 이런 형식으로 동남아시아에 진출하고 싶어한다. 동남아시아와 러시아, 북극을 연결하는 신(新) 해상 실크로드가 되어 물류의 새로운 중심이자 그 종심적 역할을 베트남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을 통해 인도네시아까지 나아갈 수 있다. 동남아시아와 러시아, 북극을 연결하는 신(新) 해상 실크로드가 되어 물류의 새로운 중심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요충지로 러시아 입장에서는 베트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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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2
  • 러시아-북한 회담 '포괄적 전략 동반자'의 의미
    김정은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어제 있던 19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договор о Всеобъемлющем стратегическом партнерстве)'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는 매우 급격한 관계 격상으로 보이는데 이를 동맹으로 의미하면 안 되고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러시아와 한국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가 체결되어 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9월 러시아를 공식 방문하여 당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했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하여 올해 16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포괄적 전략 동반자"의 의미는 "상호 보존 원칙"에 의거한 것이다. 2000년 '선린 우호 관계'를 맺은 이후, 이 관계를 약간 격상한 것 뿐이다. 더불어 동맹의 전 단계로 만들면서 어느 누구도 동맹을 만들지 않고 선을 지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договор о Всеобъемлющем стратегическом партнерстве)' 관계는 북한만이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몽골, 베트남, 아르헨티나, 우즈베키스탄과 맺고 있기에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를 이들 나라 수준으로 끌어 올려준 것이다. 그리고 묘하게도 오늘 푸틴 대통령은 같은 포괄적 전략 동반 국가인 베트남으로 날아갔다. 이러한 협력 관계 명칭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외교 전문가들의 견해에 나는 동의한다. 모처럼만에 전문가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포괄적(Всесторонний)"이라는 수식어에 군사 뿐 아니라, 경제, 무역, 외교, 우주항공 등 전방위적인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어제 포스팅에 두만강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안보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분명히 여기에 "양자 간에 침공을 당했을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이 침공을 당했을 경우, 유사시에 러시아군이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즈베스띠야에 따르면 "В частности, соглашение подразумевает оказание взаимной помощи в случае агрессии против одного из участников, при этом оно носит оборонительный характер. (이 합의는 참가국 중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이 발생할 경우 상호 지원 제공을 의미하지만 방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라고 했다. 즉, 북한이나 러시아가 침공을 받는 경우에만 작동되는 협정이다. 따라서 북한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했을 때, 공식적으로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해도 아무런 저촉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반대로 북한의 안보가 위협을 받으면 러시아가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북한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상호 안보 형식으로 국방을 강화하고 수성하는 측면에서 안전을 보장 받았다는 것이 핵심인데 이는 김정은이 전략을 잘 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자꾸 소요사태를 일으키려는 미국, 그리고 대북방송과 삐라를 북으로 보내며 도발하는 한국으로부터 러시아라는 강력한 뒷배를 둠으로써 전략적으로 수성을 더욱 견고화시켰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함정이 숨어 있는데 북한이 선제 공격했을 때, 러시아가 돕는다는 조항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협정에 넣지 않은 것은 우리 대한민국과의 관계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일 러시아는 대한민국과의 관계가 복원될 때, 양국 간의 파트너쉽으로 인해 남북통일에도 전략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만약 대한민국이 여전히 러시아에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며 북한을 지렛대로 삼아 움직일 수도 있다고 봐야 한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한반도 문제에 조금 더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진 셈이 된 것이고 큰 구도로 보자면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이 러시아에 의해 상호 대치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그 전에까지만 해도 간접적으로 러시아에게 경고도 하고 압박을 주면서 제재도 했지만 19일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이 체결되면서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 더 깊이 관여하게 된 셈이 되었다. 미국은 주한미군도 축소되어 있으며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원조를 보내느라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지원할 수 있는 부분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해 미국 대선으로 볼 때 트럼프가 당선이 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주한미군이 철수했을 때 우리도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이전에 나는 대한민국이 핵과 같은 비대칭 전력을 갖는다면 서방의 제재도 받을 수 있고 사드 배치에 환장했던 중국이 대한민국에 대해 어떤 제재를 가할 지 알 수 없기에 반대를 하는 입장이었다. 러시아와 북한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이 맺어지고 안보상 상호 보완적 요소가 강화되자 우리도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해야 한다. 핵과 같은 비대칭 전력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모스크바로 날아가 이 부분에 대한 협상을 하고 러시아로 하여금 중국을 설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가 중국을 설득하기에는 어려운 일이고 이는 러시아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다. 대한민국의 외교와 안보는 러시아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는 셈이다. 러, 북, 중이 가까워진 이상, 우리도 러시아와 중국을 전략적으로 잘 이용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러시아는 우리에게 먼 나라가 아니고 동북아시아 문제에 있어 가까이 해야 할 나라가 됐다. 이제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올해 11월에 벌어진 미국 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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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0
  • 부남 왕국과 고대 동남아시아 문화
    부남 왕국의 출현 이전에도 이곳에서는 고도의 문화가 존재했던 것이 확실하며, 그것은 다량의 정교한 출토 유물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호치민 시 서쪽 껀저(Can Gio)라고 하는 곳에서 발견된 옥 귀걸이와 금귀걸이, 팔찌 등은 B.C 6세기로부터 B.C 1세기 정도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모양새가 매우 세련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곳은 참족의 영토로 부남과의 연계성이 나타나고 있음이 확실히 밝혀지고 있다. 그리하여 설화에서 언급되는 소마가 지배하던 곳은 단순히 원시적 단계의 미개 지역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부남은 이후기 5세기 초를 전후하여 카운딘야 혈통 계열로 내려오던 왕권을 장군 판시만(Phan Shih Man)이 쿠데타로 차지한 후 왕위 계승 문제로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그 영토들이 비약적으로 팽창하여 지배 영역은 동쪽으로 현 베트남 남부의 거의 모든 지역, 서쪽으로 현재의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반도, 미얀마에까지 확대되었다. 이는 대륙부 동남아시아 해안 지역 대부분을 그 지배 영역하에 둔 것이다. 그러나 부남이 동남아시아 남쪽 해안 지역을 모두 장악했다고 하여 로마나 아니면 진나라 시대(秦代) 이래 중원 왕조와 같이 넓은 영토의 대제국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지배의 영역은 부남 왕에게 복종하는 종속국들로 연결되는 범위였을 뿐이지 중앙에서 관리가 파견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족들과 토착 지도자들의 지배권은 그대로 인정되는 형태였고 이들은 부남의 중앙 정부에 조공을 바치고 있는 정도였다. 단지『南齊書』에서 언급한 것 같이 복종하지 않는 국가들은 공격하여 그 백성들을 노예로 삼았다고 하는데 이러한 사료적인 부분을 분석해 볼 때 부남의 권력 중심과 주변부의 지배, 복종 관계를 참조할 수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삼국 시대에 해당되는 시기라 부남은 삼국 가운데 가장 남부에 위치했던 오(吳)와 국교를 맺고 있었다. 이러한 삼국의 항쟁 기간에 교역을 통한 부(富)의 증대 및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오나라도 부남과의 교류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양국의 인적 물적 교류는 활발했다. 오나라에서 파견된 주응(朱應)과 강태(康泰)는 부남을 거쳐 말레이반도의 몇 개 국가들까지 방문하고 돌아오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주응(朱應)은『扶南異物志』, 강태(康泰)는『扶南土俗』과『吳時外國傳』같은 기행문을 책으로 남겼다. 아쉽게도 현재 이 책들은 전하지 않고 있으나 그들의 관찰은 중국의 사료 곳곳에 여러 형태로 남아 있다. 초기 부남에 대한 중국 사서『南齊書』와『梁書』등의 기록이 비교적 상세하고 정확하게 그들에 대한 풍습과 문물을 서술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응(朱應)과 강태(康泰)의 기록을 참조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부남에서는 재화를 유통하는 수단으로 금과 은이 사용되었다. 남자는 빈부에 따라 비단 천이나 무명천으로 치마처럼 옆으로 감싸 몸을 가리고, 여성은 머리로부터 입는 단벌의 의상을 착용했다고 중국 사서들은 전하고 있다. 각종 금은 그릇을 즐겨 사용했다는 것으로 보아 매우 풍족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고, 왕은 수 개 층으로 이루어진 궁에 살며, 백성들은 주상 가옥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도 전해지고 있다. 현재도 동남아시아 사회에서 인기 있는 닭싸움이 성했고 돼지싸움도 중요한 유희였다고 한다. 왕은 행차할 때 치장한 코끼리를 타고 왕비를 비롯한 부녀자들도 능히 코끼리를 탈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우물을 파지 않고 한 연못물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하며 여러 가지 장례 풍습도 소개되고 있다. 주로 화장을 했으나 강물에 시체를 버리든가 들판에 두어 새가 처리하게 하는 조장 풍속도 있었고 그냥 땅에 매장하는 방식도 있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중국 사료에 기재되어 있는 부남의 형벌 제도라 할 수 있는데『南齊書-蠻東南夷列傳』에는 그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나라에는 감옥이 없다. 만약 송사가 생기면, 달걀만한 금가락지를 끓는 물에 넣어 그것을 꺼내게 하든가 쇳덩어리를 붉게 달구어 손 위에 올려놓고 일곱 보를 가게 하면, 죄 있는 자는 손이 타고 죄 없는 자는 상하지 아니한다. 또, 물속에 들어가게 하면 옳은 자는 가라앉지 아니하고 옳지 않은 자는 즉시 가라앉는다.” 위 사료에서 언급한 것처럼 감옥이 없는 것은 인력이 중요한 자원이었기 때문에 되도록 사형을 적게 판결하고 노역으로 충분히 이용하기 위해 즉각적인 대응 처벌을 하는 것으로 끝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러한 즉결처분은 노예 제도가 적절한 처벌로 사용되기도 했을 것이다. 송사가 일어난 경우에 해결 방식은 매우 황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당시 동남아시아의 사회 현상으로 볼 때 법 제도와 같은 확실한 중앙 집권에 의지하지 않고 신권(神權)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확실한 판단이 힘들기 마련인 경우, 종교적 신성성과 응보 관념이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이러한 판결 방식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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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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