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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지법, 이재명 전 대표 흉기 공격 사건에 징역 15년 선고
    부산지방법원 형사6부(재판장 김용균)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흉기 공격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60대 김아무개씨에게 징역 15년과 5년간의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김씨는 살인미수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범행 조력자 A씨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명백한 정치적 테러"라며 20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김씨의 계획된 범행,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중대한 상해 가능성, 살해 실패에 대한 자책만 있고 사죄나 반성이 없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재판부는 생명 침해 시도, 선거 자유 방해 및 사회적 합의 신뢰 파괴 등을 이유로 엄벌을 지지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이 전 대표를 악마화하고 공격한 행위를 엄중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들은 김씨의 오랜 적대감과 혐오감이 범행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사건 발생 후 약 6개월 만에 나왔으며, 그동안 진행된 공판기일에서 증인 심문과 양측의 주장이 검토되었다. 김씨는 지난 1월 부산 강서구에서 이 전 대표를 향해 흉기로 공격을 가했으며, 사건 당시 이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를 겨냥한 이번 공격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마크 리퍼트 전 미 대사를 대상으로 한 비슷한 정치적 테러 사건과 비교되었다. 이 사건들과 비교했을 때, 이번 사건의 형량은 더 무거웠으며, 재판부는 김씨의 사과가 진정성 있는 반성으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피고인은 법정에 이르러 뒤늦게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사과한다는 뜻을 표했으나, 범행 과정과 수사 기관에서 보여준 태도 및 동기를 봤을 때, 이 사죄의 진정성에 의문이 있다."라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이로써 김씨는 역사적인 정치적 테러 사건의 가해자로 기록되며, 법의 엄중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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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국민의힘 전당대회 중심에 선 '읽씹' 논란, 한동훈 대 원희룡과 나경원의 갈등 격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김건희 전 코바나콘텐츠 대표의 문자메시지를 무시한 것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소위 '읽씹' 논란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주요 화제로 부상했다. 이 논란은 김 전 대표와 친윤계 핵심 그룹이 한 전 위원장을 공격하기 위해 문자 내용을 고의로 유출했다는 의혹과 함께, '김건희 전당대회 개입설'까지 불러일으켰다. 한 전 위원장은 서울역 인근 쪽방촌 방문 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읽씹 논란'에 대해 언급하며, 집권당의 비대위원장과 영부인이 사적인 방식으로 정무적인 논의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그는 총선 기간 대통령실과 공적 통로를 통해 소통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전 대표의 '명품백 의혹 사과'에 대해서도 국민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여러 차례 사과의 필요성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한 전 위원장은 CBS 라디오에서 공개된 김 전 대표의 문자 내용이 재구성되었다고 주장하며, 보도가 왜곡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왜 이 시점에 해당 이슈가 불거졌는지 의아하다고 언급하며, 이는 친윤계의 공세 일환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규완 CBS 논설실장은 김 전 대표(김건희)가 문자를 보낸 후 한 전 위원장이 응답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 여사가 모욕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김 전 대표의 문자는 명품백 수수 의혹이 고조되던 시기에 발송되었으며, 이에 대한 사과 및 조치를 요구했다고 한다. 장예찬 전 최고위원은 김 논설실장의 방송 내용이 사실과 부합한다고 확인하며,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이 아프지만, 보수 재건을 위해 필요한 진단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천하람 의원은 이러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사람이 김 전 대표이거나 한 전 위원장뿐이라고 주장하며, 이는 김 전 대표의 전당대회 개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희룡 전 장관은 한 전 위원장의 해명을 '충격적'이라고 평하며, 영부인의 문자에 답하지 않은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원 전 장관은 이를 '절윤' 현상의 증거로 해석하며, 한 전 위원장이 적절하게 대응했다면 당의 어려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경원 의원은 한 전 위원장의 판단력이 미숙했다고 비판하며, 그의 경험 부족이 오판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나 의원은 한 전 위원장이 당원과 국민, 그리고 당 총선 후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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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더불어민주당, 특검법 수용 촉구 및 방통위원장 후보에 대한 비판 제기
    더불어민주당은 어제(5일) 통과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 국민의 분노를 예고하며 법안 수용을 촉구했다. 박찬대 당 대표 직무대행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의 결정이 국민의 뜻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거부권을 남발하며 국민과 대립할 것인지에 달려있다고 언급했다. 박 직무대행은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예로 들며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박 직무대행은 젊은 해병의 죽음을 둘러싼 은폐 및 조작 의혹 해결이 정파적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문제가 공정과 상식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와 관련 있다며 대통령에게 올바른 선택을 촉구했다. 더불어, 어제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지명된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박 직무대행은 이 후보자를 이명박 정권 시절 MBC를 통제하려 했던 김재철 전 사장과 비교하며 강한 언어로 비난했다. 그는 이 후보자가 공영방송의 흑역사를 만든 인물로, 이러한 인물에게 방통위원장을 맡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박 직무대행은 또한 공영방송을 극우 유튜브처럼 만들려는 시도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진숙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강하게 요구했다. 그는 대통령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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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5
  • 박찬대 원내대표, 필리버스터 비판 및 채상병 특검법 강조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오전 더물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를 "채상병 특검법을 막기 위한 궤변"이라고 명명하며 용산 방탄을 위한 조치로 해석했다. 박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의 행동이 특검법 통과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혹평했다. 채상병 특검법은 억울하게 사망한 해병대원 채상병의 사건을 다루며,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목적으로 한다. 이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으며, 박 원내대표는 이 법의 통과를 강력히 지지했다. 박 원내대표는 또한 채상병 순직 1주기를 언급하며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진상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수사 방해와 은폐, 조작 의혹의 질문을 제기하며 관련자들의 책임을 추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법 절차에 따라 특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특검법이 통과되면 관련 사항은 윤 대통령에게 넘어갈 예정이다. 박 원내대표는 특검법 수용 여부가 윤 정부의 국정 기조 변화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임을 언급했다. 그는 또한 윤 대통령 탄핵 국민청원이 100만 명을 넘었다고 언급하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 국민의 신뢰 손상과 정부의 몰락 가능성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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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4
  • 국회 대정부질문 파행, 민주당 '채해병 특검법' 본회의 상정 추진
    제22대 국회의 첫 대정부질문이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막말 논란으로 파행을 빚었다. 더불어민주당은 3일 '채해병 특검법'을 본회의에 반드시 상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은 이날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을 마친 뒤 채해병 특검법을 본회의에 올릴 계획이다. 민주당은 4일까지 채해병 특검법을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가능성을 고려해 이날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전날 본회의에 채해병 특검법을 상정하려 했으나, 김병주 의원이 질의 도중 '정신 나간 국민의힘'이라는 발언을 사용하면서 본회의가 파행으로 치달아 무산됐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채해병 특검법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채해병 1주기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특검법을 관철하겠다고 한 국민과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빌미만 있으면 파행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민주당은 크게 관여하지 않고 국회법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날 단독으로라도 채해병 특검법 상정과 표결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여당은 필리버스터를 예고했지만, 야당이 24시간 뒤 강제로 토론을 종료하는 경우 이를 막을 수단이 없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본회의 파행이 지속되더라도 중요한 표결을 미루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채해병 특검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대통령은 15일 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4일 채해병 특검법이 본회의를 통과하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민주당의 목표대로 채해병 1주기인 7월 19일 직전에 국회 재표결이 가능하다. 민주당은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재표결 시 여당의 이탈표를 기대하고 있다. 채해병 특검법 통과를 위해서는 여당의 최소 8표 이상의 이탈표가 필요하다. 현재 여당에서 안철수 의원, 김재섭 의원, 조경태 의원이 채해병 특검법에 찬성 입장을 밝힌 상태다. 민주당의 채해병 특검법 상정 추진은 국민의힘과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여당은 필리버스터로 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민주당은 법적 절차를 통해 이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번 대정부질문 파행과 채해병 특검법 상정 문제는 향후 국회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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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3
  • 민주당, 바이든 대체론 대두… 해리스와 미셸 오바마 주목
    미국 대선 첫 TV 토론 이후 민주당 내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교체론이 제기되고 있다. CNN과 여론조사기관 SSRS가 실시한 조사 결과, 바이든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양자 대결에서 43% 대 49%로 뒤졌다. 반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와의 가상 대결에서 45% 대 47%로 박빙을 보였다. 해리스는 특히 여성과 무당층에서 강세를 나타냈다. 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결할 경우 여성 응답자의 44%만이 바이든을 지지했지만, 해리스 부통령에게는 절반인 50%가 지지를 보냈다. 무당층에서도 바이든은 34%의 지지를 얻은 반면, 해리스는 43%의 지지를 받았다. 이는 해리스 부통령이 일부 유권자층에서 바이든보다 더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상 대결에서는 43% 대 48%로,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과의 대결에서는 43% 대 47%로 나타났다. 민주당의 또 다른 유력 후보인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와의 대결에서는 42% 대 47%로 집계됐다. 한편, 로이터와 입소스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각 40%의 지지율로 동률을 기록했다.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의 가상 대결에서는 해리스가 42%, 트럼프가 43%로 오차 범위 내에서 1%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일각에서 꾸준히 민주당의 대안 후보로 거론되는 미셸 오바마 여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가상 대결에서 50% 대 39%로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다. 오바마 여사는 백악관을 떠난 이후에도 저서 집필 등을 통해 대중과 꾸준히 소통하며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정치에는 참여할 뜻이 없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가 드러난 첫 토론 이후, 바이든 측은 여론 조사 결과에 주목하며 위기론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질 바이든 여사를 비롯해 아들 헌터 바이든 등 가족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완주를 강하게 설득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CNN을 포함한 여러 여론 조사 결과는 바이든 대통령의 '토론 후폭풍'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CNN 조사에서 민주당 및 민주당 지지자의 56%는 바이든 대통령 이외의 후보를 내세울 경우 대선 승리 가능성이 더 높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내세우는 것이 승리 확률이 높다는 답변은 43%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 1월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내세우는 것이 경쟁력이 높다는 답변이 53%였던 것과 대비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36%로 CNN 자체 조사 기준 최저치를 기록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강력하게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도 4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는 34%에 불과했으며, 비호감을 품은 비율은 58%에 달했다. 로이터 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자의 32%는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59%는 바이든 대통령이 공직을 수행하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답변했다. 이와 같은 조사 결과는 민주당 내부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교체론이 더욱 힘을 얻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이러한 위기론을 잠재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론의 흐름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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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3
  • 이준석 의원, “국민의힘 당 대표는 김건희 여사만이 적임자” 주장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2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당을 주도적으로 통제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BBS 라디오 '함인경의 아침저널'에 출연한 이 의원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수직적 당정관계를 해소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여당 대표가 안정적으로 당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김건희 여사가 당 대표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은 이준석을 몰아내고, 김기현 대표도 본인이 세우고 몰아냈으며,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세우고 몰아내려고 했다. 굉장히 별난 분"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 의원은 "당 대표 후보로 김 여사가 오지 않는 한 대통령이 가만히 안 둘 것"이라며 "여당 대표가 김 여사가 되지 않는 한 대통령이 가만히 안 둘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그는 "굳이 화합형 지도자를 찾자면 윤상현 의원"이라며 "윤 의원은 윤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할 때 끝까지 사람들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애썼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을 '서울대 법대 반장선거'로 표현했다. 그는 "어떻게 한 당에 대통령, 비대위원장, 전직 비대위원장, 전당대회 후보, 전직 대표 전부 다 서울대 법대 출신이냐"라며 "이렇게 되면 유전적으로 이상이 생기고, 대한민국 정치 전반에서도 문제가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의원은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모여 있으니 결국에는 배신자 논란과 충성 논란만 생긴다"라고 했다. 그는 "과거에 윤 대통령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관계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며 "당이 바뀌려면 지금 위기 상황에서 비전이 나와야 하는데, 하나도 안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동훈 후보를 향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 의원은 "한 100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의도 사투리' 쓰지 않고 국민의 언어로 얘기하겠다더니, 지구당 부활을 전당대회 대표 공약으로 냈다는 것 자체가 여의도 사투리에 찌들어버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통령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는데, 대통령 하고 싶은 것 하나밖에 없는 한 검사 출신 정치인 때문에 지금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됐다"라고 날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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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2
  • 정청래 최고위원, 정부 비판 강조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강한 비판을 제기했다. 윤 대통령 탄핵 청원이 78만 명을 넘어선 것을 언급하며, 국민을 억압하고 야당을 탄압하는 정권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 전망으로 일관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라며 현 정부의 정치, 경제 상황을 비판했다. 그는 가수 정수라의 노래 '아! 대한민국'을 개사해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가사를 낭독하며,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강조했다. 그는 "하늘에 오물풍선 떠 있고, 바다엔 핵오염수 흐르고, 저마다 누려야할 권리가 오늘도 억압받는 곳"이라 말했다. 또 "국민은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대통령는 총선 민심을 짓박고, 인권과 민주주의는 끝없이 추락하는 곳"이라 전했다. 정 최고위원의 발언은 특히 현재 정부의 정책과 행태가 국민의 권리를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총선 민심을 무시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추락시키는 등의 행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정 최고위원은 또한 경제 상황에 대해 IMF 시절보다 더 어려워졌다고 평가하며, 정부의 정책 실패를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이 민심을 무시하고 거부권을 남발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이러한 행태가 국민의 분노를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탄핵 청원의 참여자가 곧 100만 명을 넘어설 기세라고 언급하면서, 이는 국민의 강한 불만과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에서 언급된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하며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대통령이 유도 조작 가능성을 언급한 것에 대해 충격을 표현했다. 정 최고위원은 "국민과 정권의 한판 싸움에서 반드시 국민이 이길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또한, 서영교 최고위원도 탄핵 청원의 급속한 증가를 언급하며, 국민의 분노와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서 최고위원은 대통령에게 반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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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미래 고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대선 첫 TV 토론회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며 대선 사퇴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가족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모임은 가족사진 촬영을 위해 예정된 일정이지만 중요 결정이 가족과 함께 상의했던 평소와 같이 정치적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7번의 유세를 마친 후 캠프 데이비드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영부인 질 바이든과 자녀, 손주들이 합류할 예정이다. 이번 별장 모임은 봄에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족과의 중요한 결정을 논의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바이든은 항상 중요한 결정은 가족과 함께 한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토론회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목소리가 쉬고 말을 더듬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그의 고령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었다. 그러면서 그의 대선 경쟁력을 의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 언론과 정치권에서 민주당 후보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민주당 대의원의 99%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그의 자진사퇴만이 후보에서 내려올 수 있다. 하지만 TV 토론 이후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NYT는 사설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경선 하차를 촉구했다. 또 미국 CBS 방송과 유고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72%의 미 유권자가 그의 대선 출마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그렇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가족은 계속해서 경선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특히 아들 헌터 바이든은 사퇴 압력에 저항하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헌터 바이든은 최근 총기 불법 소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아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며 지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가족 모임에서의 결정은 그의 정치적 거취는 물론 미국 정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거취 결정에 대한 세계적 이목이 집중된 이유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미국 내외의 정치적 균형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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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국민의힘 전당대회 '배신의 정치' 논란
    국민의힘 7월 23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한동훈 후보를 둘러싼 '배신의 정치' 논란이 국민의 힘 내부를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한 후보의 '채 상병 특검' 수용을 배신으로 보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배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겨냥해 사용했던 '배신의 정치' 용어와 맥을 같이한다. 당시의 보수 분열을 연상시키는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어대한(어짜피 대표는 한동훈)의 상황에서 특히 원희룡, 나경원, 윤상현 등 주요 후보들의 발언을 통해 그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당원의 공포심을 통해 각 후보는 한 후보에 대한 비판을 높이고 있다. 과거를 소환하고 ‘배신자’라는 낙인을 통해 각자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희룡 후보는 기자회견을 통해 한 후보를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했다. 원 후보는 한 후보의 행동을 "인간관계의 배신, 당원들의 배신, 그리고 당정 관계의 충돌로 이어지는 행위"로 규정하며, 이는 "2017년 당시 당과 대통령의 충돌이 초래한 자멸의 경험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발언은 한 후보의 행동이 당의 분열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나경원 후보 캠프 또한 한 후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캠프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당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내쳤던 장면을 잊지 못하고 있다"라며 "보수의 갈라짐과 분열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채 해병 특검의 칼끝은 명백히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라며 한 후보의 특검 수용을 사익을 위한 정치적 선택으로 비난했다. 윤상현 후보는 '절윤(絶尹)' 즉, 윤 대통령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배신의 정치'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이러한 전략이 과거에도 실패했으며, 당과 국민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윤석열 정부의 '배신자' 표현은 '집권 3년 차'의 비슷한 시점에 등장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위상이 많은 차이가 난다. 박 전 대통령은 지지율이 당시 50%였고, 현재 윤 대통령은 25%대의 지지율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배신의 정치’라는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후보가 오히려 ‘반윤’기조의 ‘합리적 보수’ 이미지로 차기 권력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의 각 발언은 한동훈 후보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대부분이다. 보수 진영 내부의 분열을 걱정하며 한동훈은 당 대표에 적격하지 않다는 논리이다. 앞으로 23일 전당대회를 통해 국민의힘은 새로운 리더를 선출한다. 이 과정에서 당내 다양한 의견과 비판이 향후 어떻게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 뉴스
    • 정치
    2024-07-01

과학 검색결과

  • 전주 중학교에서 발생한 딥페이크 음란물 사건, 경찰 조사 중
    전북 전주의 한 중학교에서 남학생들이 교사와 동급생의 얼굴을 나체 사진과 합성한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들 학생은 인공지능(AI)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음란물을 제작하고 유포했으며,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딥페이크는 AI 기술을 활용해 생성된 가짜 이미지나 오디오, 비디오를 말한다. 이 사건은 딥페이크 범죄가 점점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딥페이크를 악용한 가짜 동영상 및 뉴스 유포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를 근절할 명확한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가해자를 특정하고 혐의를 입증해 처벌하기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대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에서 보듯, 해외 서버를 이용한 딥페이크 음란물 유포 시 가해자 추적이 어렵고, 혐의 입증 역시 까다로운 상황이다. 심지어 유포 목적이 없이 개인 보관용이라고 주장할 경우 실질적인 처벌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생성형 AI의 발전은 딥페이크 범죄 외에도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최소한 개입만으로 창작물을 생성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면서, 저작권 침해와 같은 이슈가 발생하고 있다. 생성형 AI 기술은 2022년 11월 Open AI에 의해 개발된 챗GPT의 등장으로 급부상했다. 현재 주요국에서는 AI 규제 법령을 시행 중이다. 유럽의회는 3월에 AI 기술의 안전성과 기본권 준수를 보장하는 인공지능 법(AI Act)을 승인했다. 미국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안전성·보안성·신뢰성을 갖는 AI의 개발과 활용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AI 규제를 강화했다. 중국도 생성형 AI 서비스 관련 법률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생성형 AI 기술의 부작용이 증가함에 따라,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한계를 명확히 하고,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통해 AI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문제 해결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과학
    • 정보통신
    2024-07-01

칼럼 검색결과

  • 조지아 서부를 장악하고 있는 아자리야인들의 역사와 아자리야 자치공화국 - 中편
    아르메니아 행정부는 1920년 7월 20일에 아자리야 지역을 조지아에게 양도했다. 그러나 당시 볼셰비키와 러시아의 요원들이 조지아에 들어와 주요 행정권을 장악했다. 이들은 일련의 사보타주와 테러 결사대를 조직하면서 오스만 제국과 관련 있는 인사들과 아르메니아 소속의 주로 소비에트에 대한 반감을 가진 자들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민주주의 조지아 집행부는 소비에트 통치 하에 있었지만 아자리야인들과 자치주를 통제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아자리야 자치주에게 소비에트로 합류를 종용했다.조지아를 소비에트가 장악하고 있는 기간 동안에, 오스만 제국의 군대가 터키 동부 지역의 아르메나아 군을 밀어내면서 1921년 3월 11일 바투미에 출현했고 15일에는 볼셰비키 조지아 군을 이끌도 기오르기 마즈냐슈빌리(Giorgi Maznyashvili) 장군이 아자리야의 군대를 이끌고 오스만 군과 3일 동안 교전을 벌였다. 바투미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아지리야 군대는 오스만 군과 시가전을 벌이며 중심 시가지들을 완전히 장악했다. 결국 오스만 군은 흑해 해안대를 따라 사르프로 철수했다. 그리고 바투미에서는 소비에트의 직접적인 통치가 19일에 공표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19일에 소비에트-오스만 제국이 카르스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조지아 서부 지역은 일명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일명 그루지야 SSR)의 관할에 들어갔고 아자리야인이 장악한 바투미도 그루지아 SSR의 일부 지역으로 합병되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지도부에서는 아자리야와 기타 조지아 지역의 종교가 달라 아자리야 지역에 자치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때 아자리야에 자치권을 내주고 조지아에게서 독립하게 한 인물이 아이러니하게도 조지아가 고향인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은 당시에 민족 인민위원이었고 실제로 민족 문제 관련하여 일을 많이 했던 때였다. 스탈린은 조지아 내에서 아자리야인들에 대해 특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이에 상당수의 아자리야 자치정부의 인사들이 스탈린의 측근이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스탈린은 소수민족 출신의 공산주의자들을 자신의 권력 기반으로 포섭할 수 있었으며 이는 공산당의 조직 기강을 내세우기 위해서 신설된 전연방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 서기장에 선출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스탈린과 소비에트 정부는 1921년 7월 16일에 아자리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을 공표하면서 조지아와 드디어 완전히 분리시켰다. 그리고 기존의 조지아는 자카프카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변모한다. 이로 인해 아자리야는 현재까지도 친러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한편 국운이 완전히 쇠진한 오스만 제국은 아자리야의 혼혈 인구에서 무슬림들의 이익을 위해 아자리야에게 자치권이 부여되는 조건으로 현 터키 영내 아자리야 지역을 볼셰비키에게 양도했다. . 그와 같은 영토 양도는 소련으로 하여금 모스크바에서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흑해 항구 도시인 바투미를 자카프카스에게 완전하게 통제권이 주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있었고, 오스만 제국에서 생활하는 조지아계 무슬림들에게 공산주의 성향을 북돋아 오스만 영내에서 볼셰비키의 지령을 받아 각종 사보타주와 첩보활동을 재개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 통치 하에,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도 공산주의 무신론 사상에 대척된다 여겨 철저히 억제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1929년 4월, 아자리야와 카프카스 산악 무슬림 마을에 거주하는 라즈인들은 강제적인 집산주의화와 종교 박해에 대항하여 여러차례 봉기했다. 이에 소련의 부대들이 동원되어 반란 진압에 나섰고 반란은 곧바로 평정되었다. 그러자 수천명의 아자리야인들은 자국 공화국 밖으로 추방되거나 소련 영내로 강제 이주되어 산산히 흩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때 메흐메트 아바시제(Мехмет Абашидзе)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지만 스탈린의 사후, 카자흐스탄의 아자리야 공동체들의 지도자 가문으로 아바시제(Абашидзе) 가문이 선정되었다. 이후 흐루시초프 당시 해빙기를 맞이하면서 수많은 민족들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때, 아바시제(Абашидзе) 가문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향인 조지아 서부 지역으로 돌아온다. 당시 메흐메트 아바시제가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총살된 이후, 지도층이 거의 와해된 상황이었는데 메흐메트 아바시제의 아들인 아슬란 아바시제(Aslan Abashidze)가 아자리야 공동체를 이끌게 되었다. 그는 바투미 대학에서 역사와 철학 학위를, 트빌리시 주립 대학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면서 소비에트 체제에서 아자리야인들의 희망이 되어갔다. 이후 소련이 해체되면서 아자리야는 형식적으로 조지아에 속했으나 사실상 독립국이나 다름없었던 미승인국가가 되어 있었다. 이에 조지아에서 첫 번째 민주주의 의회가 생성되고 대통령 선거가 치뤄지며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Zviad Gamsakhurdia)가 조지아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감사후르디아는 당선되자마자 아자리야 공화국 지도자인 아슬란 아바시제(Aslan Abashidze)를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한다. 이 때 감사후르디아가 아바시제에게 바랬던 것은 지역 자치의 지위를 포기하여 조지아의 영향 하에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1991년 3월 15일에 감사후르디아는 아바시제를 아자리야 최고 의회 의장으로 임명했다. 이어 감사후르디아는 손수 바투미로 날아가 아바시제를 만나 아자리야 자치권의 폐지를 제안했다. 이에 아바시제는 아바시제는 항변하여 자치권 폐지를 거부했고 감사후르디아는 트빌리시로 돌아가 아자리야인을 특히 지역 무슬림이라 부르면서 이들에 대한 탄압과 강제 진압하기 위해 전군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중앙의 조지아 당국과의 긴장이 형성되며 조지아 내전으로 촉발될 가능성이 커졌다. 감사후르디아는 조지아 민족에게 있어 좋은 지도자였을지 몰라도 압하지야, 남오세티야와 아자리야, 라즈인들에게 있어 그는 흉폭한 폭군이었다. 압하지야, 남오세티야는 감사후르디아의 조치에 즉각 반발했고 당시 체첸과 전쟁에 여념이 없던 러시아를 이 분쟁에 끌어들였다. 특히 아자리야의 아슬란 아바시제는 직접 모스크바로 날아가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이 때 모스크바에서 옐친의 지원을 확약받고 러시아의 도움을 받게 되니 당시 카바르디노-발카르와 쿠반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 700여 명이 바투미에 입항하면서 아자리야의 민병대와 합류했다. 1991년 4월 22일, 아바시제 민병대들은 조지아의 공무원들과 친조지아 의회 의원들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하며 바투미 의회로 쇄도했다. 이들은 친조지아 세력들과 관료들을 아자리야 지역에서 추방했으며 감사후르디아의 조지아 군을 격파해 아자리야에서 몰아냈다. 이로써 아바시제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아자리야를 독립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지아는 당시 심각한 내부 분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수도인 트빌리시에서는 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민족 분리 운동으로 인해 소요 사태가 심각했다. 1991년 1월 5일 조지아의 국가 요인 경호대는 남오세티야의 수도 츠힌발리로 진입해서 도시를 포위하면서 중대한 위기 상황을 맞이한다. 그러자 트빌리시에서는 오세티야인과 압하지아인들의 분리 독립 시위가 발생했고 감사후르디아는 여기에 발포를 허가하자 이 시위는 폭동으로 변질되었다. 중요한 국가의 준군사 세력인 조지아 국가 요인 경비대는 친, 반 감사쿠르디아로 분열되었으며 이는 심각한 조지아의 내전(Georgian Civil War, 1991~1993)으로 촉발된다. 상황이 이쯤되니 감사후르디아는 아자리야의 사건들에 간섭할 수 없었다. 게다가 최고 소비에트 의장 대리이며 아자리야에서 조지아 정부의 최고위층 지지자인 보다르 임나제(Bodar Imnaze)가 살해됐다. 아바시제 측의 주장에 의하면, 임나제의 손에 총이 들려있었고 아바시제의 집무실에서 테러를 시도하다가 경호원의 총에 맞았다고 했다. 이를 트빌리시의 대중매체들은 임나제의 사망이 사유불명으로 간략하게 보도했을 뿐이다. 그러나 내부의 주장들에 의하면 임나제가 집무실에서 아바시제와 논쟁하던 중에 아바시제가 격분해 그를 사살했다고 한다. 결국 이는 아자리야가 조지아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고 독립했음 시사하게 되는 사건임이 틀림없었다. 아자리야는 바투미 항구를 끼고 조지아의 대외무역을 사실상 독점하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게다가 조지아 내전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조지아는 아자리야의 사실상 독립을 막을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아자리야는 표면상으로는 조지아에 속해있었지만 사실상 조지아의 지배를 전혀 받지않는 독립적인 위치에 있게 되었다. 아자리야 공화국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1997년 10월 24일에, 아자리야는 유럽 지역 의회(AER)의 완전환 회원이 되면서 정식 국가로 서서히 발돋움하기 시작한다. 아자리야 지도부는 조지아 중앙 당국의 예산 확충을 위해 세금 내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아바시제에게는 문화, 바투비 해항, 다른 전략적인 대상들에 전체적인 통제권을 갖고 있었고 게다가 그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었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아바시제는 자신을 위한 무장 부대를 만들어 아자리야 국방부를 따로 설립했고 조지아 국방부 소속의 바투미 해군기지 25번째 여단의 모든 통제권을 장악했다. 이에 조지아 정부는 바투미 기지의 러시아 군대의 부대가 아바시제의 독재를 위한 세력 기반이라 주장했고 아바시제의 친러시아 행보를 비판했다.
    • 칼럼
    • Nova Topos
    2024-07-04
  • 조지아 내 내제된 사회 갈등과 양극화
    최근 조지아 의회가 언론과 시민 사회 억압에 대한 국내, 국외의 우려와 반발에도 ‘외국 대리인 법안’을 최종적으로 통과시켰다. 반러 감정을 가진 시민들은 대리인 법안 통과에 반발해 대규모 시위를 열었고, 이에 미국 등 국제사회는 여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해외에서 전체 예산의 20% 이상 자금 지원을 받는 언론 매체나 비정부기구인 NGO 단체들은 외국의 영향을 받는 대행기관으로 등록해야 한다. 이에 등록하지 않은 단체나 개인은 벌금과 최대 5년 이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조지아라는 나라 자체가 다수의 NGO들이 결집해 세워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조지아의 언론 및 NGO 시민 사회 단체의 상당수는 미국과 유럽 등의 자금 지원을 받는 단체들이 많다. 이에 시민단체가 조지아 정부의 엄격한 규제에 노출되어 민주주의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여 강하게 반대해왔다. 특히 이와 같은 법안은 2012년에 제정되어 언론과 NGO, 반정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엄격하게 규제된 러시아의 외국 대리인 법과 비슷하다 여겨 이를 ‘러시아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와 러시아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럼에도 이 법 자체가 러시아와 비슷하다 하여 '러시아 법'이라 이름 짓고 이를 비난한 것이다. 특히 조지아의 야당 의원들은 조지아를 친러시아 국가로 만들려는 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지아는 그 동안 EU와 나토 가입을 추진해왔으나, 친서방 대 친러시아 노선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어 왔다. 여당인 "조지아의 꿈" 정당이 집권하기 이전까지 조지아는 친서방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미국과 나토, 그리고 EU의 영향력을 러시아 국경과 인접된 남부 카프카스 지역으로 확장시켰다. 이에 안보 위협을 느낀 러시아가 남부 카프카스 지역의 갈등 문제에 개입하면서 자신들의 세력권을 구축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소련이 해체된 이후, 카프카스 지역의 저항 세력들은 큰 문제가 되었었기 때문이다. 나토와 EU가 카프카스에 진출하면 90년대 체첸 전쟁과 같은 내전이 또 다시 촉발될 가능성이 높았고 그로 인해 러시아의 안보가 매우 위태로울 수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의 지정학적 전략은 조지아 북부지역인 남오세티아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및 돈바스 일대에 대한 통제가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 일단락되긴 했다.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 2017년 7월 18일 페트로 포로센코(Петр Порошенко)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조지아를 공식 방문함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 바 있다. 그러나 기오르기 크비리카슈빌리(Giorgi Kvirikashvili) 총리 이후, 이라클리 가리바슈빌리(Irakli Garibashvili)가 2021년에 정권을 이양 받은 이후, 갑작스럽게 친러성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 때 가리바슈빌리를 지원하고 지지한 세력은 이미 조지아에서 상당수의 재력을 확보한 친러계열의 유태계와 친러 성향의 지지자들, 그리고 바투미를 기반으로한 아자리야계 조지아인들이었다. 이들은 친러 성향을 갖고 있으며 특히 아자리야인들은 바투미를 중심으로 자치공화국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세력이 만만치 않았다. 이 아자리야인들은 조지아계 무슬림들을 대표하는 민족으로 오스만 제국 지배 시기인 16세기부터 17세기 무렵 사이 대부분 이슬람교 하나피파로 개종한 자들이다. 20세기 초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유전이 개발되고 생산될 석유를 운반할 송유시설 및 철도가 바투미를 거쳐 건설되면서 아자리야 지역의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게다가 흑해 연안을 쥐고 있는 아자리야인들의 영향력은 무시 못할 수준인 것이 조지아의 유일한 항구이자 바다로의 출구가 아자리야 자치공화국의 수도인 바투미 때문이다. 그래서 조지아의 사회적 갈등은 친러, 반러의 갈등이 곧 동부와 서부라는 지역적 갈등이 내포되어 있다. 조지아 서부는 아자리야인들을 중심으로 압하지야까지 흑해 일대가 연결되어 있고 아자리야인과 압하지야인들은 상호 연대까지 하고 있다. 반면 조지아 동부 지역은 수도인 트빌리시를 중심으로 반러시아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사진에 나와 있는 온갖 욕설의 러시아 비난과 푸틴에 대한 비난 등의 그레피티가 쓰여 있는 것은 반러 성향의 시민들의 목소리, 그리고 이를 독려하는 친우크라이나 성향의 시민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난민들, 이어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인 아조프 연대와 연합한 조지아의 네오나치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 이들은 나치 독일의 제2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의 깃발과 유사한 아조프 연대의 깃발 표식을 그레피티로 새겨 놓고 대놓고 나치와 연대하고 있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놓고 서부 지역의 아자리야인과 친러 성향을 조지아인들을 상대로 테러를 저질렀지만 친러 성향의 조지아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총선에서 이라클리 가리바슈빌리(Irakli Garibashvili)를 당선시키면서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2월 25일 이라클리 가리바쉬빌리(Irakli Garibashvili) 조지아 총리는 조지아가 서방의 대(對)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가리비쉬빌리 총리는 2023년 5월 24일 카타르 경제 포럼(Qatar Economic Forum)에서 이와 같은 조지아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어 2023년 8월 23일 러시아 국가안보위원회 부의장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Дмитрий Медведев)는 조지아가 나토 가입을 추진한다면 러시아는 조지아 내 미승인국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South Ossetia)를 합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10월 5일에는 아슬란 브자니아(Аслан Бжания) 압하지야 대통령이 러시아와 압하지야의 방어 역량 증대를 목적으로 압하지야 영토 내에 해군 기지를 건설한다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 2023년 7월 5일 재임 당시 권력 남용 혐의로 조지아에 수감 중인 전 조지아 대통령이자 우크라이나 오데사(Odesa) 주지사인 미헤일 사카슈빌리(Mikheil Saakashvili)의 건강 상태가 악화된 것을 두고 인권 탄압이라 비판하면서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도 멀어지게 되었다. 결국 친러어와 반러의 단순한 대립구도가 지역 대립, 민족 대립으로까지 촉발되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이다. 조지아 서부 지역에는 아자리야인 말고도 라즈(Laz)인이 살고 있다. 이들 또한 아자리야인과 같은 무슬림들이고 친러 성향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터키에 살고 있으면 조지아계 터키인이고 조지아에 살고 있으면 터키계 조지아인이라 볼 수 있다. 현 터키 대통령인 레제프 에르도안이 라즈인 혈통으로 조지아계 터키인이다. 실제로 에르도안은 인터뷰로 자신의 가문이 조상대에 조지아 바투미에서 터키 리제로 건너온 조지아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영향으로 인해 라즈인들은 터키 정부의 상당한 지원까지 받고 있다. 라즈인과 아자리야인으로 대표되는 조지아 서부인들은 리버럴적이 성격을 갖고 있는 조지아 동부 정교회인들과 문화적 차이도 크다. 바투미를 중심으로 한 아자리야 자치공화국도 무슬림과 정교회라는 종교적 차이 때문에 인정해준 것이다. 이처럼 조지아에는 민족계파만 해도 94개가 자리 잡고 있는 나라다. 대한민국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합친 크기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이 작은 나라에 90개가 넘는 민족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민족 간의 통합은 조지아의 또 다른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어쩌고 보면 무슬림과 정교회, 유태교까지 이어지는 종교적 대립도 한 몫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조지아를 굳이 군사적으로 공격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지아가 반러 성향의 인물이 총리로 당선되어 반러 세력이 세력의 주동이 된다면 바투미를 중심으로 아자리야 자치공화국을 정식 독립국가로 승인하면 된다. 러시아가 아자리야와 라즈인을 지원하고 조지아 동부의 반러 세력이 라즈인을 학대한다면 터키가 이 문제에 개입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러시아 하나 막는 것도 버거운데 터키마저 개입을 한다면 조지아는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처럼 조지아의 사회 갈등은 곧 친러 vs 반러, 동부 vs 서부의 지역갈등, 이슬람 vs 정교 & 유태의 종교갈등, 아자리야 & 라즈 vs 조지아의 민족갈등까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미국과 집단서방이 장미혁명처럼 색깔혁명을 조장한다면 우크라이나와는 전혀 다른 제2차 조지아 내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크다. 2023년 9월 18일 전(前) 조지아 내무부 차관으로 현재 우크라이나군 SBU 부국장인 기오르기 로르키파니제(Giorgi Lorkipanidze) 등이 조지아 내에서 반정부 시위를 조직, 현 정부를 전복하려는 계획이 탄로나면서 제2차 조지아 내전은 언제든 발생 가능한 상황에 있다. 그리고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여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도 연결되어 있기에, 조지아 내 사회갈등을 유심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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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va Topos
    2024-07-04
  • 삼성전자가 우크라이나에서 판매되는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Z 제품명에서 'Z'를 삭제한 사건
    삼성전자가 우크라이나에서 판매되는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Z 제품명에서 'Z'를 삭제했다 한다. 앞서 반(反) 러시아 성향이 강한 발트3국에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해당 조치를 확대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우크라이나 홈페이지에서 판매되는 '갤럭시Z' 시리즈 제품명을 수정했다. '갤럭시Z폴드3'는 '갤럭시폴드3'로, '갤럭시Z플립3'는 '갤럭시플립3'로 변경됐다. 러시아 국방부는 일일 브리핑과 더불어 Z를 매개로 한 사진과 영상을 몇 개씩 선보이고 있다. 진격 명령을 내린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발트해 연안, 동유럽 일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히틀러 시대의 나치 문양인 '하켄크로이츠'와 유사하게 '공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50년 역사를 지닌 스위스의 '취리히 보험회사'가 그동안 사용해온 Z로고 사용을 포기했다. 파란색 바탕에 흰색 Z를 로고로 사용해온 스위스 취리히 보험은 SNS를 통해 Z로고를 사용할 경우 오해의 소지가 있어 당분간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3월 초 러시아 군사 장비에 Z와 V자를 쓴 이유를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설명했다. Z는 '승리를 위해'라는 의미로, 또 다른 문자 V는 '진실의 힘' (Сила в правде)과 '과업 완수'(Задача будет выполнена)를 뜻한다는 것이다. Z는 러시아어로 '승리를 위해', V는 영어로 '승리'(Victory)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Z문양은 금기시된 '나치' 문양과 유사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과 그 주변에서 예민하게 반응했다. 독일은 영화와 고증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나치즘을 선전하거나 광고하기 위해 나치 문양인 하켄크로이츠를 사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독일의 북부 니더작센 주와 남부 바이에른 주는 Z표시를 자동차나 건물에 사용할 경우 최고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발트해 에스토니아 정부도 Z표시 사용을 경범죄로 분류하고 있다. 체코도 Z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용할 때 법적 처벌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에서는 프라비섹토르나 아조프 대대가 나치 문양을 하고 다니는 사진들이나 영상에는 조용히 있으면서 Z문양에만 유독 나치와 똑같이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욱일기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들고 나왔어도 비판 한 마디도 못하는 자들이 Z표시를 가지고 PTSD 발작을 하고 있다. 그럴꺼면 영어 알파벳에서 Z를 아예 빼버리던가. Z가 전범의 상징이고 러시아 군사작전의 상징이니 영미권 국가들도 Z들어가는 용어를 쓰지 않으면 된다. 라틴 문자에서 Z가 들어가는 단어가 적어도 수천만개? 수억개? 정도 될텐데 그게 트리거가 될 정도면 Z들어가는 문구 모두 바꾸는 글자혁명을 해야 할 판이다. 그리고 Z 문자가 들어가는 나라 또한 14개가 있는데 이들도 나라 이름 바꿔야 할 판이다. 특히 체코는 Z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용할 때 법적 처벌 방안을 검토한다 했으니 그럼 체코 공화국 영문 이름인 Czechia 이거의 Z를 없애던지 영문을 바꾸고 그런 검토를 해야 이치에 맞지 않을까? Z 표시가 들어가 있는 모든 브랜드와 옷도 바꾸고 도시 이름도 Z가 들어가 있으면 바꿔야할듯 하다. 나치만큼 제2차 세계대전의 대학살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현재도 진행 중인 전쟁을 두고 아주 별의 별 짓을 다하고 있다. 그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파괴한 전범국 미국 USA의 U도 못 쓰도록 바꿔버리자고 하면 거기에는 침묵하는 자들이다. 이제는 어이 없는 것도 모자라 유치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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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3
  • 6년 전, 2017년 4월 3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테러 사건의 데자뷰
    2017년 4월 3일 오후 2시 30분, 나는 당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네브스끼 인근 폰탄카 운하 쪽이었고 당시 그 근처 센노이 시장(Сенной Рынок)에서 드미트리와 부식거리를 사고 있었는데 지하철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14명이 사망하였다는 속보가 들려왔다. 당시 러시아 언론들에 의하면, 전철역 2곳에서 폭발이 일어나 최소 14명이 숨졌고, 64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당국은 해당 전철역을 폐쇄조치 하였으며, 폭발사고가 IS의 테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부 내 소식통은 테러범들이 테러에 최대한 적합한 시간대를 선택했다고 한다. 타스통신에 의하면 사고 당시 지하철 내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객차가 만원인 시간대는 아니었다고 했다.객차 안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폭발물 부근의 몇 명이 폭탄의 위력과 파편을 온몸으로 받게 됨으로써 희생자 수는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이라 했다. 당시 조사 결과, 지하철 테러의 폭발물이 철제, 유리 파편으로 가득 찬 소화기와 쇠구슬을 잔뜩 담은 사제 폭탄 가방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전방위로 날아든 파편 때문에 전철에 탑승한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고 전철 유리창이 깨지고 출입문도 찌그러졌다. 중앙아시아 출신의 20대 남성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폭발 현장에 대한 조사를 통해 ‘자폭 테러’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이날 폭발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한 가운데 일어났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언론에 알리지 않은 채 폭발 현장을 찾아 헌화하기도 했다. 당시 지하철 폭발 사건은 지난 2010년 모스크바 지하철 테러에 이어 7년 만에 발생한 것이다. 2010년 3월 29일 오전 출근 시간에 모스크바 시내 지하철역 2곳에서 시차를 두고 연쇄 폭발이 일어나 41명이 숨지고 80여 명이 다친 바 있다. 앞서 2004년에는 2월과 8월에 각각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람잔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테러를 포함한 모든 가설을 점검 중”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과 사진을 올린 후 “이 끔찍한 테러의 주모자와 배후를 밝혀내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러시아 정치인들은 신중한 태도를 취하면서 폭탄 테러의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는 정도로 반응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모두의 아픔”이라고 썼다. 게오르기 폴타프첸코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지사는 이번 사건을 “무시무시한 비극”이라 지칭하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에게 경각심을 갖고 신중하게 대응할 것을 부탁했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전 구간이 폐쇄된 상황이기 때문에 시내는 최악의 교통대란을 겪었다. 시당국은 지상 대중교통을 모두 무료로 개방했고 택시 기사들도 퇴근길 시내 중심가에서 탑승한 승객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대란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집으로’라는 해시태그를 부착하고 카풀을 제공하는 자차 운전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인터넷에도 퇴근길 카풀이 가능한 시간과 행선지 정보를 제공하는 게시판이 생겨났다. 게시판을 방문한 누군가는 “어려울 때일수록 뭉쳐야 한다”고 썼었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는 3일 간의 공식 추도일을 선포했다. 시민들은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테러가 발생한 ‘Технологический институт (체흐놀로기쩨스끼 인스띠뚜뜨)’역에 줄을 이어 꽃을 가져다 놓았다. 모스크바에서는 크레믈린 벽 무명용사의 묘에 설치된 대조국전쟁 참전도시 기념비 중 ‘영웅도시 레닌그라드’ 기념비 앞에 헌화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 중 한 명은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조국 전쟁 중 872일 동안 독일군의 봉쇄를 견뎌낸 영웅도시 레닌그라드 기념비는 희생자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표시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축구클럽 ‘스타르타크’ 팬들도 평소에는 ‘앙숙’이자 라이벌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연대감을 표했었다. ‘오렌부르크’팀과의 경기에서 스파르타크 팬들은 관객석에서 ‘크나큰 아픔에 가슴이 찢어진다. 피테르(페테르부르크의 애칭), 애도를 표한다’고 쓰인 대형 현수막을 펼치기도 했을 정도였다. 당시 러시아 국민들은 테러에 맞서 하나가 되었다. IS의 테러가 오히려 러시아 국민들을 단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카페에서 다시 한 번 테러 공격이 발생했다. 200g 이상의 강력한 TNT가 터져 건물 유리가 모두 깨졌고 집기들은 처참하게 부서졌다. 이 날 러시아 유명 군사 블로거인 블라드랜 타타르스키가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카페에서는 사망한 군사 블로거와 독자들의 만남이 진행되고 있었고, 한 여성이 조각상을 증정한 뒤 폭발이 발생해 조각상에 폭발물이 들어있었던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망자는 닉네임 '블라드랜 타타르스키'로 알려진 유명 군사 블로거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출신이며 실제 이름은 막심 포민이며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지하고 있는 블로거다. 그는 56만 명의 구독자를 가졌으며 러시아군의 인사나 작전 등에 대한 논평을 썼던 인물이다. 타타르스키와의 만남 행사를 주최한 곳은 러시아의 한 애국 단체로, 이들은 보안 절차가 있었는데도 폭발물이 반입됐다고 하였다. 부상자 25명 중 19명은 병원으로 이송됐고, 러시아 국가수사위원회는 타타르스키의 사망을 살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조사에 착수했으며 폭발 당시 카페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유력한 용의자는 서부 우크라이나 이바노 프랑키스크 출신의 여성으로 아주 작정하고 테러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6년 전, 오늘과 데자뷰다. 다만 테러의 주체가 IS에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로 바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가 몰리게 되니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난민으로 위장해 들어온 젤렌스키 정부 소속의 네오나치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정식으로 싸우는 전쟁도 아닌 테러라면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테러 지원국에서 한 단계 격상해 테러 국가로 규정하고 국가 자체를 소멸시켜 테러를 일으킨 자들을 박멸해야 한다. 러시아 국민들도 이 테러에 분개하고 있다. 전쟁에 서서히 염증이 드리워질 때쯤 다시 국민들이 단합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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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3
  • 소말리아 내전과 영화 "모가디슈", 테러 단체 알 샤바브(al-Shabaab)의 역사
    영화 "모가디슈"가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모가디슈" 성공 스토리들이 들리면서 소말리아 내전에 관한 관심이 재조명되고 있다. 더불어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종료가 되었고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에 전 세계에 주목하고 있음에 따라 그와 닮은 꼴인 소말리아 내전은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라 이곳 내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오늘은 영화 "모가디슈"의 배경인 소말리아 내전에 대해 언급해보고자 한다. 작년 초, 소말리아 내전과 동아프리카 지역에 이슬람교의 포교 현황, 그리고 그 유래와 중동과의 중세 시대 관계사 등을 연구하면서 이슬람 제국의 일부이자 대표적인 해상 향신료 루트의 일원으로 자리잡았던 곳이기 때문에 나의 관심이 매우 높았던 지역이다. 소말리아는 수십 년째 발생하고 있는 내전의 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내전 진압의 대표적인 실패한 국가이자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어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의 대표적인 사례로 불리고 있기도 하다. 소말리아 내전이 장기화된 이유는 1991년 내전이 시작된 이래 무장 군벌들이 국가권력을 둘러싸고 투쟁을 지속적으로 벌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말리아 분쟁의 시초는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Mohamed Siad Barre) 정권의 부족들 간의 차별을 부추긴 정치로 인한 반발이었다.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1919~1995, محمد سياد بري)는 1969년부터 1991년까지 집권한 소말리아 민주 공화국의 군부 독재자이자, 대통령이었다. 소말리아가 독립한 1960년, 소말리아는 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의 모델로 서방 세계에서 극구 칭찬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족벌주의와 가문 간 증가된 충성, 그리고 충돌은 사회적 문제였다.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 대통령의 사회주의 군사 정권은 자신의 출생 부족에게만 권력을 집중시켰고, 다른 부족들은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결국 1991년 1월, 불만을 가진 소말리아 내 타 정치세력들은 소말리아 연합회의(The United Somali Congress ; USC)를 결성하여 바레 대통령을 축출하고 소말리아 군대를 해체하게 된다. 바레 정권은 민간 정부를 근절하다 결국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씨족만을 중시하는 씨족주의와 가문내의 증가된 충성으로 인하여 다른 씨족끼리 충돌하는 사회적 문제가 존재했다. 이러한 문제를 민간정부는 근절하는데 실패했으며, 결국 정부는 씨족주의 문제에 스스로 항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쿠데타 직후 USC 내부에서 양대 군벌 간의 대결구도들이 형성되었다. 정권 쟁탈을 위한 부족 간의 대립은 심각하게 격화되었고, 소말리아는 내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혼란으로 인해 1991년 5월 소말릴란드 공화국은 옛 영국령 소말릴란드 지역을 중심으로 소말리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1960년 6월 26일 영국령 소말릴란드는 5일 후인 7월 1일에 독립하는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와 연합할 계획으로 영국으로부터 잠깐 독립했고,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가 독립하면서 소말리아로 합쳐졌다. 하지만 하르게이사를 비롯한 전 영국령 소말릴란드 지역은 모가디슈를 비롯한 소말리아 남부에 비해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소외되어 둘 사이 갈등이 빚어졌다. 1992년 유엔평화유지군(United Nations Operation in Somalia, UNOSOM)이 파견되어 희망 회복작전(Hope recovery operation)을 펼쳤지만, 이러한 작전을 주도했던 미군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1994년 미국과 유엔평화유지군은 결과적으로 임무 실패(Mission failed)인 상태로 철수하게 된다. 2004년 1월 유엔의 지지 아래에서 주요 분파의 지도자들이 과도연방정부(Transitional Federal Government, TFG) 구성과 선거 개최에 합의하면서 전망은 밝아지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이슬람 민병대인 이슬람 법정연합(Islamic Courts Union, ICU)이 등장하면서 다시 대립구도가 형성되었다. 이에 2006년 7월 에티오피아는 국경 안보를 명목으로 소말리아 문제에 개입하였다. 소말리아 과도정부 수상인 알리 무함마드 게디(Ali Mohamed Gedi)는 2007년 1월 2일 “소말리아 내에서 이슬람 법정연합(UIC)의 세력을 쫓아냈으며, 앞으로 소규모의 전투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제압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말리아 과도정부와 함께 이 전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에티오피아 군이 소말리아 전역을 점령함으로써 2주간의 짧은 일방적 공격은 끝이 났다. 소말리아 및 에티오피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국가인 지부티에 대규모의 미군기지가 있고 이 미군기지의 주요한 임무 중에 하나는 에티오피아 군대를 대상으로 군사작전훈련, 전문군사교육, 군사훈련 관리, 반(反) 테러작전, 군 의료 지원 훈련들이다. 이로 인하여 에티오피아 정부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게 되었고, 미국의 군사지원 하에 있던 에티오피아 정부는 미국에 의한 전 세계적 반(反) 테러전쟁을 충실히 따르는 아프리카 내에서의 미국 군사전략 정부였다. 하지만 ICU는 여러 단체로 흩어져 과도 연방정부에 대한 게릴라식 투쟁을 계속하였고, 이후 폭력적 극단주의 세력인 알 샤바브(al-Shabaab)가 결성되어 그곳에 합류하였다. 이들은 청년전사운동( حركة الشباب المجاهدين‎)이라 불리며 소말리아의 테러 무장단체로 성장했다. 이들을 보통 알 샤바브(الشباب‎)로 알려져 있다. 소말리아는 1991년 당시 대통령 시아드 바레 축출 이후, 20여 년간 내전을 치러왔다. 이 과정에서 이슬람 세계의 질서 회복을 가치로 두고 이슬람법정연합(ICU)이 출범하였다. 알 샤바브는 이 단체에 뿌리를 둔다. 알 샤바브는 2010년 7월 11일 우간다 캄팔라에서 벌어진 자살 폭탄 연쇄 테러의 배후로 알려져 있다. 이에 2007년부터 현재까지 소말리아의 안정과 평화 회복을 위해 2만여 명의 아프리카 연합 평화 유지군(African Union Mission to Somalia, AMISOM)이 평화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내전을 치루었기 때문에 소말리아 연방 정부는 국토 전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해갔고, 치안 회복을 위해 자치권을 요구하는 5개의 주(州) 정부와도 마찰을 일으키는 등, 긴장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5년에 들어서는 소말리아의 무정부 상태를 이용하여 폭력적인 극단주의 세력인 IS 소말리아지부(ISS), 알 샤바브 등이 소말리아에 침투해 내전을 조장함으로써 소말리아 내전 종식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특히 알 샤바브는 소말리아 과도정부, 유엔평화유지군, 유엔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념적으로는 극단적인 이슬람 경전 해석을 따라간다. 따라서 음악 금지, 국가 형벌에 신체 절단 형과 투석형의 포함을 요구하고 있다. 소말리아 중남부에 세력을 두고 있는 알 샤바브는 모가디슈에서 정부군과 매일 전투를 벌였다. 알 카에다는 알 샤바브를 지원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자행된 1998년 케냐,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테러는 알 샤바브의 배후이자 알 카에다 최고위층인 파줄 압둘라 모하메드의 역할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 카에다와 연계를 통해 이라크,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백 명이 이 알 샤바브에 들어가 있다. 전투 시에는 동원 가능한 전력이 3000~7000명 정도였다. 폭력적 극단주의 세력은 그들 간 영향력 경쟁을 할 뿐만 아니라 소말리아 땅 위에 이슬람국가 건설을 목표로 연방 정부 고위급 인사와 민간인에 대한 테러를 지속하고 있다. 한편 오랜 내전 속에서 어업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바다를 지키기 위해 자력으로 무장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발적인 해안 경비대로 출발했지만, 소말리아 해안을 장악한 군벌들이 어민들의 해적 활동을 지원하고 사업화하면서 초국가적인 위협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태로 인해 한국의 청해부대는 2009년 3월 13일부터 아덴만에 파견되어 해적을 격퇴하고 한국 선박의 안전 호송 및 안전 항해를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소말리아 내부에서 내전을 벌이는 종족과 평화유지군에게 공동의 적으로 인식된 이슬람 무장세력 알 샤바브(Al-Shabaab)는 2006년~2009년에 두 번째 내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등장한 무장단체로 이슬람 법정연합(Union of Islamic Courts, UIC)의 하부 청년조직에서부터 시작한 단체였다. 알 샤바브는 2006년에 분파를 선언한 이후부터 청년(Youth)이라는 뜻의 조직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UIC와 분파한 이유가 추구하는 이슬람의 교리적 이념은 서로 상이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UIC와 알 샤바브는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의 목표가 같았지만 UIC는 비교적인 온건적인인 입장이었고 알 샤바브는 급진적이고 이슬람의 근본주의적 교리를 따르면서 IS나 탈레반과 같이 폭력적인 성향을 갖추고 있었다. 결국 UIC와 분리를 선언한 알 샤바브는 예멘과 가까운 지역인 “아프리카의 뿔”과 가까운 곳에 정착하여 반(反) 정부 활동을 펼쳤다. 2009년 소말리아 과도연방정부(Transitional Federal Government, TFG)의 지도자가 UIC의 온건 세력 출신의 지도부에서 선출되자 알 샤바브는 세속적인 지도자를 선출했다고 이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알 샤바브는 TFG를 적으로 간주하고 TFG 정부를 멸망시키기 위해 수도인 모가디슈를 습격함으로써 전면적인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2009년 2월에는 또 다른 이슬람 반란 세력인 히즈불 이슬람(Hizbul Islam)도 새로운 연립정부와 AMISOM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게 되면서 같은 해 6월, 소말리아 과도정부인 TFG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른다. 2010년 알 샤바브가 아프리카 연합군의 동원을 주도한 것에 대한 복수전으로 2010년 7월,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를 공격하면서 알 샤바브와의 전투 범위는 주변국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연합은 알 샤바브에 대해 선제공격을 허가할 것에 합의하고, 더 많은 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이 때 증원된 AMISOM의 군대는 8,000명에 달했고, 이에 대항하여 2010년 8월 알 샤바브는 모가디슈에서 또 다시 정부와 AMISOM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로 인해 알 샤바브와 정부군 및 AMISOM의 분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북부지역인 푼틀랜드 주(州), 중부 갈무두그 주(州), 그리고 키스마요(Kismayo)가 있는 남부 지역에서도 지속적인 교전이 발생했다. 알 샤바브의 공격으로 인해 AMISOM 병력의 피해가 지속되자, 2011년 이래 AMISOM은 소말리아 정부군과 함께 알 샤바브를 집중 공략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결과로 인해 2011년 1만 4천 명에 이르던 알 샤바브 조직원들은 2012년 무렵에는 지속적인 소탕전으로 인해 대거 희생되어 7~9천 명으로 줄어들었다. 한편 수세에 몰린 알 샤바브는 2012년 2월 범세계적인 테러 활동에 대해 충성을 맹세하면서 알카에다(Al-Qaeda)와 동맹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2012년 9월 AMISOM과 소말리아 정부군이 알 샤바브의 중요한 거점인 키스마요(Kismayo)를 탈환하는 것에 성공했으며 2014년 9월 미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인해 알 샤바브 지도자 아흐메드 고단(Ahmed A. Godane)이 전사했다. 알 샤바브는 극심한 지도부의 내분을 겪으며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알 사뱌브는 여전히 소말리아 국토의 30% 가량을 통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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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01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주재의 우리 기업과 주재원 이야기
    바이든 대통령이 서방의 우방국들과 함께 고강도의 러시아 무역 제재를 승인한 터라, 러시아에 진출한 기업들이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국내 대기업이 러시아에 설립한 해외법인은 53개로 파악됐다. 러시아에 설립된 해외 계열사 중에서 현대자동차 그룹이 18곳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삼성과 롯데가 각 9곳이었다. SK와 CJ, 두산, KT&G 등은 각각 2개 법인을 러시아에 세워둔 것으로 조사되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우리 기업 13개에 주재원 43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러시아에 존재하는 법인 기업 53개라면 우크라이나는 13개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크라이나에 세워진 법인보다 41곳 많은 숫자다. 단순 계열사 진출 현황 숫자만 놓고 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보다 4배 이상 많았다. 그만큼 국내 대기업들이 우크라이나 보다 러시아 시장을 더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룹별로 살펴보면 현대자동차 그룹이 18곳 (34%)으로 최다였다. 러시아에 배치한 해외 계열사 3곳 중 1곳꼴로 현대자동차 그룹이 압도적이었다. 현대자동차가 러시아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놓고 있었는지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 해외 법인의 경우 향후 미국과 동맹국, 유럽 등이 러시아를 대상으로 고강도 금융 및 경제제재 등이 본격 진행되면 공장가동 중단 등 직접적 경제 타격을 볼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 전쟁이 장기전으로 접어들 경우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수급이 불안정해져 국내 기업들도 산업분야 곳곳에서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할 것은 불문가지다. 사세가 이와 같은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가 4월 11일 오후 5시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화상 연설을 진행하는 방안을 우크라이나 측에 제안했다 한다. 우리가 우크라이나로부터 제안을 받은게 아니라 제안을 했다는 것이 팩트다. 기업, 유학생, 각 코트라 주재원들, 교민들, 일반 비즈니스맨들과 각 학계의 연구자들, 그리고 15만 명 가까이 되는 고려인들까지 한러 수교 30년 동안 공들여 쌓아왔던 러시아와의 관계는 일본처럼 파탄나기 직전까지 몰고 가고 있다. 야뽄스끼 모레 (일본해)와 다케시마라고 표기까지 해놓은 친일국가에 북한 ICBM 미사일 엔진 기술까지 전수하여 우리의 안보까지 위협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수장에게 화상 연설을 시키겠다니, 진짜 미쳤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비우호국가로 찍혀 러시아의 강력 제재를 받으며 우리 기업과 교민들이 러시아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거나 러시아로부터 제대로 된 차단을 당할 수 있는 명분을 주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교민 수가 400명이 안되지만 러시아에는 3,500명의 교민들이 산다. 숫자에서 우선 비교가 안 되고 기사 말미에 12,000명 가까이 되는 고려인 동포 중 1000여 명이 고향을 떠나 주변국으로 피신 중이라 써놨는데 러시아는 15만 명이 산다. 숫자에서 상대가 안 되는데 이렇게까지 러시아를 자극하는 이유는 뭐냐? 우리의 한, 미, 일 공조가 영원할꺼라고 생각하는 감성적인 사고는 버리는게 좋다. 국제적인 이득에 따라서 언제든지 합종연횡(合從連衡)이 가능한게 국제 관계의 진리다. 그 관계는 한, 미, 일도 다르지 않다. 외통위는 이런 문제보다 동북아시아 문제나 좀 신경써야 한다. 감정적으로 안타까워 하는거와 실전에서의 국제 관계 문제는 전혀 다른 얘기다. 아직 조율 중이라니까 하는 얘긴데 우크라이나는 9,000km나 떨어져 있고 러시아는 동해 바다 건너 비행기로 2시간 거리다. 이번에는 좀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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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7
  • 터키 이스탄불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5번째 대면 협상에서 나온 결과
    2023년 3월 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5번째 대면 협상이 열렸다. 여기에서 '평화 협정(Peace treaty)'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평화협정의 주요 내용도 이스탄불에서의 협상이 끝난 뒤 별도로 가진 양국 대표의 기자 회견을 통해 전해졌다. 양측의 회견 내용을 보면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협상은 하루 만에 끝났다. 본래 1박 2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하루 만에 종결되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보여 진다. 물론 최종적으로 합의까지 이르기에는 몇 차례의 큰 고비를 넘겨야 한다. 이스탄불 회담을 중재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6가지 협상 쟁점 중 4가지 부분에 있어 합의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합의가 될 수 있는 4가지 조건은 첫 번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철회하는 것, 두 번째,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세 번째,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적 안보 보장, 네 번째, 우크라이나 내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조건이다. 물론 타결되지 않고 있는 나머지 두 가지는 돈바스의 독립과 더불어 2014년 러시아에 합병된 크림반도의 러시아 영유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작전을 개시하면서 핵심적인 목표로 내세웠던 우크라이나 민병대의 비무장화와 나치의 세력인 아조프 대대 및 프라비섹토르 세력의 발본색원하는 문제는 돈바스를 보호하는 조건에 있어 협상 내용에서 빠져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나치 세력을 발본색원하는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나치의 깃발을 앞세워 선동하는 세력들을 거의 제압했다 여겼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더불어 당시 남부 항구도시이자 최대 격전지인 마리우폴의 도심 돈바스 군의 통제 하에 들어왔고 아조프 대대의 근거지였던 마리우폴이 완전히 함락되었다. CNN 방송도 마리우폴이 사실상 러시아군에게 함락되었다고 보도했으며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지역 대부분이 러시아군에게 점령되었다며 마리우폴 함락을 사실상 인정했다. 터키 언론인 휘리옛과 TRT에 의하면 이스탄불 협상이 이전 4차 만남에서 러시아 협상단이 우크라이나 협상단에게 문서로 정리해 넘긴 제안서에 대한 답변 문서를 검토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러시아 협상단은 협상에서 구두로 정의하는 것보다는 문서화하여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가장 진정성이 있는 내용이라며 러시아의 제안을 문서로 전달했었다. 이에 대해 러시아 협상단 단장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크레믈린 보좌관은 협상 종료 후, 회견에서 우크라이나의 중립적이고 비동맹적인 지위와 비핵국가 지위의 추구를 확인하는 제안을 문서로 받았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와 같은 상세한 내용에 의하면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의 생산과 배치를 거부하는 것과 우크라이나 내부의 외국 군사기지와 더불어 외국의 군대 배치 금지 조항이 포함되었고,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보증해주는 EU 국가 및 나토 국가들의 동의 없이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것은 허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의 이번 제안으로 볼 때 우크라이나가 국제법적으로 안전을 보장하는 것과 더불어 영구적 중립국을 선포하는 방안을 상정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나 비교적 최근의 민스크 협정보다 더 강화된 다국적으로 조약을 비준하여 확실한 안보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다비드 아라카미아 우크라이나 여당인 인민의 종 대표가 말하기를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는 조약은 그 동안 보증했던 국가들이 서명하고 비준하는 국제 조약의 형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하였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포함해 터키, 독일, 캐나다, 이탈리아, 폴란드, 이스라엘 등, 참여 가능한 국가들을 안전 보장의 보증 국가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일부 국가들로부터는 이미 참여를 허락을 받았다고까지 했다. 우크라이나가 침략을 당할 경우, 보증 국가들은 3일 간의 협의 후 우크라이나에 무기 및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고, 우크라이나 영공을 폐쇄해야 한다는 내용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보증하는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미 약속했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가 필요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까지의 합의한 부분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었다. TRT는 협상 중 휴식 시간에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과의 인터뷰에서 논의의 핵심 쟁점은 우크라이나의 안보 보장에 관한 국제 조약이라 역설하며 이와 같은 국제적인 조약 및 확실하게 안보를 보장 받는 것이 서로 간의 적대 행위를 종식시킬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차후에 다시 있을 6번째 만남의 쟁점은 모든 인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휴전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구체적으로 세부 사항을 검토하고 푸틴과 젤렌스키가 정상 회담을 가지며 승인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국가가 사회와 소통하는 것으로 방침을 최근에 바꾸었고 평화협정에 대한 국민투표와 최고 의회 라다에서의 승인 및 안보 보증 국가 의회의 비준 등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러시아군이 개전 전날의 위치로 완전히 철수하는 것이 보장되어야 안보 협정의 국제적 조약 서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대한 근접했지만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협상이 싸인되지 않으면 군사작전 종료는 없다는 입장이다. 알렉산드르 포민 러시아 국방차관은 상호 간의 신뢰를 높이고 향후에 협상할 수 있는 필요 충분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키예프와 체르니코프에 대해 더 이상의 군사 활동을 줄이기로 했다. 이 말은 북쪽의 전선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으로 우크라이나군에 열세에 놓였다는 말과 다름없다. 따라서 북쪽 전선은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더불어 오늘 러시아 영내에 있는 벨고로드 군수창고 폭발하여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여겨졌다. 리아 노보스티(РИА Новости) 국영 통신사는 러시아 긴급 구조대 대표 말을 인용해 "벨고로드 인근에서 발생한 군수창고 폭발은 인재"라고 보도했지만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추정된다는 타스 통신 등의 보도로 미루어 볼 때 이미 북쪽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열세는 기정사실화 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러시아의 협상단은 군사활동의 축소가 휴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면서 아직은 끝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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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3
  •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베트남에서 회담을 주목하며
    북한을 떠나 20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푸틴 대통령은 곧바로 일정을 가졌다. 야쿠츠크-평양-하노이로 이어지는 일정은 다른 국가 정상이었다면 피곤할 수도 있는 일정이다. 미국 바이든 같으면 그런 일정을 소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서 푸틴이 암에 걸렸다. 혹은, 치매나 알츠하이머 등등 와병설이나 위독설이 제기되었지만 그런 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아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고도 암에 걸렸다. 혹은, 치매나 알츠하이머 등등 와병설이나 위독설 등은 전 세계 뉴스 찌라시들의 헛소리이자 희망 사항으로 밝혀졌다. 이번 베트남 방문 또한 북한 방문에 이어 또 다른 의미의 방문이라고 생각이 든다. 1. 지정학적 외교적인 부분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현재까지 좋은 관계다. 그러나 상호 간에 그리 미덥지 못한 관계인 것은 맞다. 최근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가는 천연가스 공급이 지연되고 있다. 러시아는 2022년 손상된 노르드스트림1 송유관과 거의 같은 양인 연간 500억 입방미터(bcm)의 가스를 러시아 북부에서 몽골을 거쳐 중국으로 운반할 새로운 가스관을 건설하기 위해 협의해 왔다. 그런데 이 공사가 현재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주요 세부 사항에 대해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시베리아의-2 전력을 운영하게 될 가즈프롬은 2030년까지 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가격을 포함한 주요 쟁점들에 대한 합의는 아주 요원한 상태다. 중국과 러시아 측은 여전히 계산과 추정을 하고 있고 경제적 이익에 대해 합의가 신통치 않다. 후문에는 중국이 가스값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기에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이 후려친 가격으로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겉으로 큰 부분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이 좋은 협력관계로 보이지만 세부적인 면으로 볼 때, 작은 부분에서부터 이미 삐걱거리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부분들도 있기에 정치, 외교적으로 겉으로는 아주 친밀한 관계에 있지만 사실상 세부적으로 볼 때 서로 아직까지 완전히 믿지 못하는듯 싶다. 그렇다고 중국이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완전히 지원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집단서방, 미국 등과 맞서기 위해 상호 간의 친밀감을 과시하며 견제하는 용도일 뿐이다. 이를 서로 간에 경제적으로 러시아가 먼저 들어가면 중국이 따라 들어오고 중국이 먼저 들어가면 러시아가 따라 들어오는 스텐스를 취하며 저마다 국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상 오월동주(吳越同舟) 관계라 볼 수 있겠는데 당사자들끼리 친밀감을 과시하면서 속으로 서로 견제하는 모션을 취하고 있음이 여기저기서 보여지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 입장에서는 언제 변할지 모르는 국제 관계의 속성상, 중국을 외교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 베트남이라는 일종의 보험을 들어놓기 위해 볼 수 있겠다. 게다가 둘 다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 동반자(договор о Всеобъемлющем стратегическом партнерстве)'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여차하면 중국을 지렛대로도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과 베트남은 서로 국민 감정도 좋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중국이 베트남의 적성 국가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북한과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그동안 중국에 경제적으로 많이 의존하였지만 때에 따라서 서로 견제하고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에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도 동시에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파트너로 맞아 들인 부분도 있다. 최근 베트남에는 화교 집단들의 세력이 커지며 당 중앙에까지 진출하려는 움직임도 있어 응우옌 푸 쫑 서기장은 이들을 정치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부정부패 사건을 터뜨려 이를 계기로 숙청을 단행하고 있다. 최근 베트남 국가 주석인 보 반 트엉이 푸 쫑 서기장에게 숙청을 당했는데 이는 명목상 부정부패였으나 실질적으로 베트남 남부 지역 화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보 반 트엉은 호치민과 남부 지역 화교들이 경제적으로 성장세를 보이며 남부 지역의 주축으로 자리 잡아갈 때 화교에 대한 권익을 많이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친중적 성향을 갖게 된 배경이 있다. 따라서 푸 쫑은 이를 적극 견제에 나서 보 반 트엉을 실각시키고 외부적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여 친중파 각료들과 화교 집단, 이들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인 것도 있다. 그런 의미로 베트남은 러시아의 행동을 비난하는 UN의 결의안 투표에서 여러 번 기권을 택했다. 심지어는 러시아에 물자를 지원하기도 했다. 물론 베트남은 모두와 친구로 지내되 공식적인 동맹은 맺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베트남은 과거 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미국과도 협력하고 러시아와도 동시에 우방관계를 유지 중에 있다. 이는 모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특히 스프래틀리 군도 분쟁과 파라셀 군도(Paracel Islands) 영토 분쟁은 베트남 홀로 중국을 상대하기 보다는 러시아를 통해 대화의 창구 및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러시아와 베트남은 지정학적, 혹은 외교적인 부분에서 상호 지렛대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하노이 방문함으로써 이를 공고히 하려는 이유가 크다. 그리고 러시아는 베트남을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약화시키려는 부분도 함께 가지고 있다. 생각보다 다양한 전술, 전략으로 북한과 베트남을 써먹을 수 있다는 것에서 푸틴 대통령 지정학적인 전략을 잘 구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2. 경제적인 부분 오늘날 베트남의 경제는 세계 시장에 통합되면서 변화하고 있다. 베트남의 대러 무역 규모는 중국, 아시아, 미국, 유럽에 비해 훨씬 더 적은 편이다. 이는 거리상의 문제도 있지만 90~2000년대에 러시아 경제가 파탄 상태에서 서서히 끌어 올라오는 시기였기에 양국 경제적인 부분에서 협력은 그만큼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베트남 또한 러시아의 원유와 가스를 받아 축적하는 것을 늘리고 남중국해 석유 탐사에서 러시아 석유 기업과의 파트너십에 합의했다. 더불어 사할린 에너지의 안드레이 오호트킨 이사가 밝히길 사할린-2에서 생산하는 LNG 수출 지역을 베트남을 거쳐 인도까지 늘린다고 했다. 게다가 응우옌 푸 쫑 서기장은 1981년 소련의 사회과학아카데미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례가 있기에 러시아와의 관계에 있어 손수 챙겨왔었고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빈 그룹 창업자 팜 냣 브엉(Phạm Nhật Vượng) 회장 역시 러시아 유학생 출신이다. 이러한 인연들로 인해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강화 및 확대는 푸틴 대통령의 하노이 방문으로 인해 대폭 이루어질 전망이다. 더불어 베트남 또한 전력 사정이 좋지 않다. 전력량 사용이 급증하고 있고 최대 300% 이상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베트남의 경우, 한국과 달리 납부기한을 초과하는 즉시 얄짤없이 전기가 끊긴다. 베트남의 시골에는 이유 없이 전기가 나가 1시간 가까이 들어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도시의 경우, 태풍을 비롯한 자연재해가 아니고는 발생하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호치민의 경우, 간간히 끊기는 경우가 발생한다. 아마도 그것은 발전 용량의 문제라기보다는 마을 내 전기를 수급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되지만 전반적으로 전기 수급이 원활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남부 지방에는 메콩델타 최대 발전사업으로 현재 베트남전력공사(EVN)와 싱가포르 회사가 협정을 맺어 발전단지를 만들고 있지만 이 또한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가 원전을 짓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원전 기업인 로사톰(Росатом)의 지원을 받아 베트남에 원자력 과학기술 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에 원전 기술 제공을 도울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원전에 대해 러시아의 도움을 받는다면 고질적인 베트남의 전력난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북극항로와의 연결점이다. 최근 러시아가 수에즈 운하의 대안으로 북극항로를 제시하면서 연해주 중심의 신항만 투자를 늘려가고 있으며 동방경제포럼 때 이러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다. 북극항로에 있어 동해와 동남아시아 사이를 연결해주는 대각선 정점에 부산이 위치해 있고 러시아는 이런 형식으로 동남아시아에 진출하고 싶어한다. 동남아시아와 러시아, 북극을 연결하는 신(新) 해상 실크로드가 되어 물류의 새로운 중심이자 그 종심적 역할을 베트남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을 통해 인도네시아까지 나아갈 수 있다. 동남아시아와 러시아, 북극을 연결하는 신(新) 해상 실크로드가 되어 물류의 새로운 중심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요충지로 러시아 입장에서는 베트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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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2
  • 2022년 카라칼팍스탄 시위의 배경과 현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고민
    카라칼팍스탄은 우즈베키스탄 서부 지역에 위치한 자치공화국으로 주로 카라칼팍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언어는 우즈베크어보다 카자흐어에 더 가깝지만, 장시간 동안 우즈베키스탄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볼 때 우즈베크인과 더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와 같은 지리적인 크기에 비해, 카라칼팍인은 우즈베키스탄 인구의 2.2% 정도이며 약 75만 2천 명밖에 되지 않는 인구다. 역사적으로 카라칼팍스탄의 영토는 여러 제국에 소속됨을 반복하다가, 17세기 히바 칸국에 소속된 유목 민족과의 연합으로 현재와 비슷한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카라칼팍인들은 카자흐인과 문화적인 교류를 했으며 언어도 카자흐어와 비슷한 킵차크 투르크어계에 속하며 오구즈 투르크계 언어를 가진 우즈베크인과 다른 언어를 형성하였지만 같은 투르크계 언어로써 볼 때 큰 차이는 없다. 소련의 수립을 거치며, 스탈린 집권 시대의 중앙아시아에서는,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과 소련 초기에 파악한 인구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국가주의 지도층이 참여한 지역 공산주의 기구의 주도로 공화국 간 경계를 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이에 여러 지역에서 다중 언어 사용이 가능한 인구가 많고 스스로를 여러 국가의 소속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환경에서 새로운 경계가 형성되자, 언어와 인종으로 나누었던 경계는 도시와 농촌을 정치적으로 구분하는 것으로 받아 들여졌다. 1925년 카라칼팍 자치주가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 소속으로 설립되었고, 이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소속으로 이관되었다. 1932년에는 카라칼팍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설립되었으며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완전히 병합되었으나 자치권은 그대로 보장되었기 때문에 그 갈등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에 있다. 1990년 12월 뻬레스뜨로이까 도중 카라칼팍 최고 평의회에서 밝히기를, 소련으로부터 한 '국가 자주 선언'을 통해, 주민 투표를 거쳐 독립할 수 있음을 선언하게 된다. 이후 실패한 8월 쿠데타 직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도 독립을 선포하였으며, 이 당시 카라칼팍스탄은 소련 중앙정부에서 '국가'로 인식하고 있었다. 1991년 11월 최고 평의회의 결정에 따라 평의회 의장인 다울레트바이 샴셰토프(Даулетбай Шамшетов)가 카라칼팍스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1992년 6월, 그는 우즈베키스탄의 영수인 카리모프가 강제 권고하여 사퇴할 때까지 대통령으로써 직무를 수행했다. 소련의 붕괴 이후인 1992년 1월 카라칼팍스탄 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1992년 우즈베키스탄에 헌법이 도입됨과 더불어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자치공화국으로 복속되었다. 1993년에는 20년 간 지속되는 카라칼팍스탄의 우즈베키스탄 합병 조약을 논의하며, 주민투표를 통해 우즈베키스탄에서 독립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게 된다. 당시 조약에는 국민 투표로 우즈베키스탄을 탈퇴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었고 이는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헌법 17장 74조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헌법 제71조에는 카라칼팍스탄 공화국은 독자적인 헌법을 가지며 카라칼팍스탄 공화국의 헌법은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헌법과 배치될 수 없다고도 명시되어 있다. 이쯤되면 독립하는게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합병조약의 시효가 만료됐음에도 카라칼팍스탄의 자주권 증대 및 독립 요구 등은 우즈베키스탄 당국의 동화 전략과 이주 정책 등으로 인해 유무형적인 탄압으로 묵살되고 있다. 약속된 20년 째 되던 2013년에 이 조약이 만료되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독한 탄압으로 인해 우즈베키스탄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독립의 기운이 말라가며 조약이 만료된지 10년이 다 되어가던 2022년 6월 말, 우즈베키스탄의 대통령 미르지요예프는 우즈베키스탄 헌법에 대해 170가지 수정안을 제시해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하였다. 당시 수정안 중 대표적인 논란 사항은 대통령의 임기를 5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고, 임기 횟수 제한을 없애는 것이 주 내용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카라칼팍스탄의 자치권을 상당수 소멸시키고 주민투표를 통해 우즈베키스탄에서 독립할 수 있는 권리를 삭제해버린 것이다. 이에 7월 1일, 카라칼팍스탄의 수도 누쿠스에서 헌법 개정 안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한다. 이는 카라칼팍스탄의 변호사이자 기자인 다울렛무라트 타지무라토프(Даулетмурат Тажимуратов)가 누쿠스에서 사람들을 만나기 전 체포된 것이 시위가 촉발된 원인이었다. 시위 다음 날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카라칼팍스탄의 자치권과 관련된 헌법 개정안을 취하하는 것에 동의하면서 시위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카라칼팍스탄 정부는 시위대가 정부 건물에 무단으로 진입하려 시도했다고 주장하였으며 인터넷 접속이 완전히 차단되었고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의해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7월 4일에는 정치인 풀라트 아후노프(Пулат Ахнов)는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비상사태 선언과 통금령 개시를 통해 상황이 안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으나, 이 시위가 우즈베크인과 카라칼팍인 간의 민족 분쟁으로 격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틀 전, 주말에 미르지요예프는 카라칼팍스탄을 두 차례 방문하여 카라칼팍스탄의 친 정부파 인물들을 만나 헌법 개정 안에 대한 대중의 반대를 미리 파악하여 전달하지 않은 것을 책망했다. 그리고 7월 4일 열린 카라칼팍스탄 대리인과의 회담 이후, 미르지요예프는 시위대 지도층이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지방 정부 건물을 탈취하려고 시도했다면서, 사람 수가 많은 것을 이점으로 삼아, 사법부 소속 인물들을 공격해 심한 폭행으로 상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당시 미르지요예프의 언급에 따르면, EU 정상회의 대표 샤를 미셸과 시위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를 위한 회담을 열었으며, 여기서도 폭력 사태의 책임을 범죄 조직에게 돌렸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시위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민간인과 경찰 모두에게서 사상자가 나온 점을 인정하였으며, 폭동을 일으킨 자들이 파괴적인 행동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풀라트 아후노프는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최소 5명이 사망했다고 사망자수를 고의적으로 축소하기도 했다. 카라칼팍스탄 보건부 장관 술탄베그 지야예프(Султанбег Зияев)는 누쿠스의 병원이 경찰과의 충돌로 부상을 입은 시위대로 넘쳐났으며, 수천 명이 병원에 실려갔다고 밝히기도 했다. 7월 4일 우즈베키스탄 대검찰청은 누쿠스에서 18명이 쥭고 243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하였으나, 반대 측은 이 수치가 실제로는 더 높다고 밝혔다. 이후 7월 18일 검찰청은 병원에서 3명이 더 사망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우즈베키스탄 방위군 대변인 다브론 주마나자로프(Даврон Зуманазаров)는 7월 1일부터 2일까지 516명이 구금되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누쿠스(Nukus)를 방문하여 카라칼팍스탄 대표단에 사과했으며, 개헌 과정이 잠정적으로 중단되자 시위는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이후부터 우즈베키스탄의 통제력이 갑자기 강화되었다. 그 전까지 외국인 체류자들에 대해 완화된 거주등록이 갑자기 3일 안에 반드시 거주등록을 해야 하는 것으로 강화되었고 거주등록증을 여권과 함께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유심 카드에 대해서도 IMEI를 강화해 반드시 휴대폰 기기 등록을 해야 하며 IMEI를 등록하지 않고는 아무리 심카드를 끼워도 통화와 인터넷 이용이 불가능하도록 설정했다. 그리고 2016년 이전 전임 대통령인 이슬람 카리모프 때처럼 타슈켄트 시내에 경찰들이 대폭 늘어났다. 물론 카리모프 때처럼 100m에 경찰 한 명씩 여권과 소지품 검사를 하는 등의 검문을 강화하지는 않았지만 이 또한 시위와 선동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부분이라 볼 수 있다. 특히 7월 9일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통령 선거가 조기에 치뤄지기 때문에 보안을 강화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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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1
  • PKK와 다른 성향의 쿠르드인, 반(Van) 쿠르드계 사람들
    나는 반 100주년 기념 대학에서 쿠르드족에 대한 연구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현 터키와 쿠르디스탄의 관계, 그리고 쿠르디스탄 내의 분파들과 사람들을 고찰해보았다. 흔히 터키 동부와 동남부 지역의 대부분에 거주하고 있는 쿠르드인들은 모두 같은 종족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우선 이들 모두 같은 쿠르드족인 것은 맞다. 그래서 반은 맞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보면 다르다. 터키 동남부는 가지안테프-샨리우르파-마르딘-바트만-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의 쿠르드족은 비교적 억센 편에 속하며 터키 정부에 저항적이다. 그리고 매번 분리 독립을 추진하고 있어 터키 정부와 터키 국민들의 골머리를 앓게 하고 있다. 그러나 반 호수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반 지역, 그리고 반 동북부 이디르 지역이나 카르스, 그리고 일부 이란 접경 지역 쿠르드인들은 터키 정부에 협조적이고 동남부 북쿠르디스탄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독립보다는 터키인과 함께 살기를 원하며 기질은 매우 순박하고 선(善)하다. 필자가 반(Van)에 거의 일주일을 머물고 있는데 확실히 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쿠르드족과는 성향이 다르다. 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 한 쿠르드족은 PKK의 모태 부족이기 때문에 터키 정부와 시리아, 이라크 정부에는 매우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2016년 쿠르드족 부족 대표자들은 반(Van)에 모였다. 이들은 PKK를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그러나 디야르바크르를 중심으로 하는 쿠르드 부족 대표들은 이에 반발했다. 이들은 현재 감옥에 있는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의 석방을 요구하며 터키 정부에 저항하려 했고 반(Van)에서 발표된 성명을 비난하여 터키와 같은 청소해야 할 자들이라 비난했다. PKK는 이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테러리스트들을 이용해 2016년 8월, 반(Van)의 이키 니산(İki Nisan) 지역 경찰서에 차량 폭탄 테러를 일으켜 3명의 사망자와 71명의 부상자를 나오게 했다. 그런데 이 때 사망자와 부상자 대부분이 같은 쿠르드인들이었다. 문제는 당시에 사망자 중 2명이 쿠르디스탄 자유의 매(Teyrêbazên Azadiya Kurdistan, TAK)라고 부르는 과격 분자 요원이었다는 것이다. TAK은 원래 PKK 소속이었지만 2010년 당시, 터키 정부의 PKK의 휴전 협상에 반발하여 탈퇴하고 만든 터키 정부에 대한 저항 조직이었고 조직원들 대부분이 마르딘과 햑카리 출신이었다. 결국 PKK의 반(Van) 테러는 건들지 말아야 할 엄청난 조직을 건든 셈이 되었다. TAK는 PKK를 기습 공격하면서 저항 조직 간에 내전이 발발했다. 햑카리에서 벌어진 이 내전은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터키는 햑카리의 안정을 위해 군을 투입해 이 둘을 제압했지만 둘의 사이는 현재까지도 진전을 보이지 않은 채 서로 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반(Van)의 쿠르드계 또한 이 두 조직 모두 지지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쿠르드족 사회의 대중적 지지와 쿠르드 민족주의에 대한 대표성이 누구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여러모로 비판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예나 지금이나 PKK와 터키 정부는 오랜 시간 동안 공개적으로 내전 수준의 대치 상태에 있었다. 실질적으로 쿠르드 공동체 지도자들은 당연히 터키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봐야할 수 밖에 없다. 반면 현재의 쿠르드계 인민민주당(Halkların Demokratik Partisi)과 거의 매 선거마다 강제 해산 되면서 이합집산이 반복되었던, PKK, 그러면서 좌파 쿠르드 민족주의라는 이념을 공유하고 터키 당국에서 항상 인민민주당의 2중대로 여겨졌던 인민노동당(HEP), 민주사회당(DTP)과 같은 쿠르드계 좌파 정당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전국적으로 5% 이상의 득표율을 유지해 적어도 터키 내 쿠르디스탄 지역인 동남부와 동부 지역에서는 다른 정당들과 다르게 우세를 유지해왔다. 이를 고려해 볼 때, PKK가 터키 내 쿠르드 공동체 모두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하는 것도 잘못된 이미지이다. 그러나 대중적인 차원의 지지가 전혀 없다거나 미약하다는 것 또한 잘못된 인식이다. 특히 PKK가 활동하는 지역들은 쿠르드인들의 빈곤율과 실업률이 가장 높은 지역들이고 터키 정부는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게다가 환장할 일인 것은 미국이나 집단서방이 국제 인권을 터키에 강요하는 바람에 시리아 난민들이 쿠르디스탄 지역까지 들어와 있으며 그 숫자는 날로 늘어간다는 것이다. 이에 PKK나 TAK 또한 조직원들을 늘리기 위해 시리아 난민들을 채용하여 훈련시키고 있다. 이들의 용도는 바로 자살 폭탄 테러에 이용되거나 터키 군경 최일선 선봉으로 내세워 총알받이 시키고 있다. 이들을 총알받이, 혹은 자살폭탄테러에 이용하는 것은 간단하다. 시리아 난민 가족의 처우와 이들을 조직이 보살펴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거액의 금액을 아낌 없이 나눠준다. 물론 이 거액의 금액들 또한 미국이나 집단서방이 PKK가 자신들의 말을 안 듣는 터키 정부의 소요 사태를 만들기 위해 지원하는 지원금으로 추정된다. PKK와 집단서방과의 관계는 검색만해도 우후죽순으로 나오니 그다지 놀라운 얘기도 아니다. 그리고 현재 터키도 내부의 실업률과 빈곤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미국이 갖은 제재로 하고 있어 리라화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동남부 지역 쿠르드인들에게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터키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다. 그러나 상당수의 청년층은 PKK를 포함한 쿠르드 무장단체를 경멸하여 반(Van)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 동남부 쿠르드계 청년들에게 터키 정부는 확실한 대우와 더불어 일자리도 알선해 주는 등 갖은 편의를 주고 있다. 이 같은 터키 정부의 노력은 PKK 조직의 세력을 약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PKK 조직원들이 빠르게 대원들을 수혈하지 않으면 조직 자체가 와해될 수 있다. 쿠르드 청년들의 지원이 줄어드니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리아 난민들을 고용해 테러리스트로 키울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따라서 터키는 최근 반(Van) 지역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우선 낙후된 도시를 현대화하는 방식이다. 현재 반(Van) 시가지는 완전히 현대화 됐다. 가지안테프나 샨리우르파, 디야르바크르에 비하면 대형 쇼핑몰들이 운집했다. 그리고 각종 현대화된 시설들이 들어서니 낙후한 동남부 지역의 쿠르드계 청년층들이 대거 반(Van)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반의 쿠르드계는 PKK를 매우 경멸하고 있다. 반 쿠르드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PKK는 태생부터가 비합법적 반군 단체로 인식하고 있으며 평화로운 동부 지역을 피로 물들게 만든 원흉 단체로 보고 있다. 이들은 PKK 지도자로써 감옥에 있는 압둘라 외잘란을 왜 사형에 처하지 않고 있는지 불만이라고 했다. 반 쿠르드계 사람들은 PKK의 존재 자체가 자신들의 평화로운 삶에 피해를 주는 자들이라고 소리를 높인다. 이러한 쿠르드족이 있기에 모든 쿠르드인들이 터키의 적이며 테러리스트라고 평가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는 에르도안 현 터키 대통령도 "터키의 적은 PKK 쿠르드족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도 일반 쿠르드족과 PKK를 구분해서 보는 것도 필요하다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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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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