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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와 중국, 표리부동의 상호관계 속에 실익 추구
    러시아와 중국은 과연 상호 협력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가? 이에 관한 답변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이 두 국가는 겉보기와 달리 현안별로, 상황에 따라 의외로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기도 하고, 때론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협력관계를 추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가깝게 된 것은 헤이룽(러시아명으로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타라바로프(중국명 인룽) 섬, 볼쇼이우수리스키(중국명 헤이샤즈) 섬, 밍위에 섬이라는 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푸위안 삼각주(혹은 이 삼각주 전체를 헤이샤즈 삼각주라고 부른다)를 둘러싼 국경분쟁이 서로 타결된 이후일 것이다. 1969년 3월 2일부터 9월 11일까지 일어난 양쪽 국경분쟁은 2005년 6월 2일에 비로소 완전히 타결되었다. 이때 타결된 내용은 타라바로프 섬을 중국으로 완전히 반환하고, 볼쇼이우수리스키 삼각주를 동·서로 양분하는 것이었다. 이때 중국에 반환된 삼각주의 면적은 총 약 327제곱 킬로미터 중 약 174제곱 킬로미터로 사실상 중국영토의 가장 동쪽 끝이 되는 셈이다. 이에 러시아와 중국은 약 4354 킬로미터에 이르는 국경선을 육상 국경선과 해상 경계선으로 획정했다. 그런데 이 지역은 강물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고, 3개의 섬이라고 하지만, 작은 섬들도 그 삼각주 주변에 많이 흩어져 있어서 엄밀하게 국경선을 획정하기가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여튼 이 타결로 인해 영토 문제로 인해 러시아와 중국은 영토분쟁에 관한 한 서로 별다른 문제가 없고, 현재 이 지역은 서로 왕래를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와 중국 양국은 영토 문제에 매우 민감한데, 러시아는 중국으로부터 할당받는 영토를 일부 돌려줌으로써, 이를 통해 대중국 관계를 개선할 수 있었다. 중국은 러시아보다 더 많은 영토를 반환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러시아는 일종의 경제적-외교적 관계에서 거래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 중국은 정치적 관계에 의한 국익에 방점을 두었을 것이다. 만일 중국이든 러시아든 전부 반환이냐 전부 보전이냐의 문제로만 협상이 진행되었더라면, 이 협상은 결코 타결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협상 기간이 길었던 것은 러시아와 중국 각각의 내부 사정과 국제질서의 급변이 동시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이 두 국가는 미국에 맞서는 국가이기는 하지만, 서로의 계산법은 현안별로 다르다. 미국에 맞선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중국은 서로 같은 지점에 서 있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표리부동(表裏不同)의 행보를 보인다. 서로 정상회담도 했지만, 가시적 성과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러시아는 유라시아 지역의 정치·문화 안전보장에 관한 국제협력 기구인 상하이협력기구(CSO)와 구소련연방에서 독립된 국가들의 연합체인 독립국가연합(CIS)을 통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천연가스와 석유 그리고 군사적 협력을 지속화하는 경향이 보인다. 또 러시아는 최근 이른바 아프리카의 사헬 지대(서쪽 세네갈에서부터 동쪽의 수단에 이르는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 국가들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중국은 이른바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면서 육상 실크로드인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추구하는 것은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식 자유 경제 지대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경제침체와 미국의 대중국 제재 그리고 일대일로에 일부 참여국들이 빚더미로 몰리는 상황은 우려를 낳는다. 더욱이 중국은 최근 러시아의 천연가스관 공사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다. 중국의 터무니 없는 후려치기에 러시아가 난색을 표명하면서 이 공사가 현재 지연되는 것이다. 사실 러시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고 있어서 천연가스 수출로 막대한 전비를 충당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중국에 관해 유럽보다 할인가격으로 천연가스를 팔았는데, 이것은 러시아가 유럽과 중국의 가격 차별화를 통해 자원을 한편으로 무기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지속적인 미래 성장시장으로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다. 러시아의 원래 계획은 천연가스의 유럽 시장이 축소되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중국의 시장을 돌려서 안정된 수출공급망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에 공급하려고 했고, 이른바 ‘시베리아의 힘-2’는 몽골을 걸쳐 중국의 동북아 지역과 시베리아를 연결하는 ‘시베리아 힘-1’의 수송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중국의 터무니없는 가격 인하 요구로 진전이 없고, 몽골에서도 별로 진전된 바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내세운 그럴듯한 명분은 중국이 향후 그린에너지로 전환하게 되면, 천연가스의 의존도를 낮추어야 하는데, 굳이 현재 시점에서 천연가스의 공급을 수요보다 더 많이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굳이 러시아가 공급하겠다면 기존보다 훨씬 낮은 가격이라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러시아로는 그런 가격이면 그동안에 싼 가격으로 중국에 천연가스를 공급해 왔는데, 천연가스의 가격을 훨씬 더 낮추라고 하니, 그러면 러시아도 안 하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러시아는 그렇지 않아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중국의 소극적 태도가 불만이었다.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아무리 관계가 친밀해도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발생하면 오월동주(吳越同舟)와 같은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국제관계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러시아와 중국이 중앙아시아에서도 한쪽은 영향력 유지를, 다른 한쪽은 영향력 확대를 희망한다. 또 중국은 아프리카에 투자하면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아프리카 국가들의 참여들 독려하면서 국가 영향력을 키우려고 한다. 이때 중국은 경제적 투자를 통해 아프리카의 자원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러시아는 이른바 과거 서방의 식민지, 특히 옛 프랑스 식민국가를 중심으로 바그너그룹을 통해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것은 군사적-경제적 측면이 강한데, 과거에 서방의 식민지 각축장이었던 아프리카는 이제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아프리카는 서구 식민지에 해방되었고, 서방의 지원도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나아진 것이 별로 없으며, 오히려 정정(政情) 불안과 정변, 종족 분쟁과 영토분쟁으로 피로 얼룩져 있다. 아프리카 각국의 국민은 그동안 서구화가 일부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가난과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잦은 분쟁과 전쟁의 씨앗으로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다. 이 틈을 군벌들이 활개를 치고 들어가고, 러시아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러시아는 반서방 동맹 세력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서방의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그 핵심은 경제적 지원이고, 각종 치안 불안과 정권 안정을 위해 이제는 서방보다 오히려 러시아가 더 낮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아프리카 각국의 정치적-경제적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는 매우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최근 행보를 보면 중국과 다소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북한과 베트남과 적극적인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 문제로 다소 소원하고, 베트남과는 이른바 사사(파라셀)군도와 난사(스프레틀리)군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러시아는 이 두 국가에 관해 후원국 역할을 자처한 것처럼 보인다.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이른바 ‘대나무 외교’라는 외교술로 유연하면서도 균형 외교를 중시하면서 강대국들 사이에서 실익을 많이 챙겼다. 러시아는 베트남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아마도 유라시아연합과 동남아시아연합을 하나로 묶으면서 미국- 대만-필리핀으로 이어지는 남중국해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러시아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것이다. 중국은 한편으로 베트남과의 남중국해 분쟁에서 러시아가 개입을 내심 우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대중국 정책의 영향력을 희석화시키는데 러시아와 베트남의 밀착 관계를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구도는 현재 중국의 경제 상황과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전쟁으로 인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에 러시아와 중국이 어떤 행보로 서로의 관계를 모색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 칼럼
    • Nova Topos
    2024-06-29
  • 푸틴이 방북, 두만강 개발에 대한 이야기에도 초점을 맞춰야
    18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북한을 국빈 방문하기로 한 푸틴 대통령이 19일 새벽 북한에 도착했다. 오전 2시가 넘은 시각 푸틴 대통령이 북한 수도 평양에 도착했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 일정은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이 격화하는 가운데 러북 밀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곳에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2년 전부터 푸틴 대통령이 동방으로 눈을 돌리겠다고 발표한 이후, 앞으로 러, 북, 중 3자 간 회담도 이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방문 일정의 기간이 1박 2일에 불과하기에 많은 얘기보다는 양국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협정(договор о всеобъемлющем стратегическом партнерстве) 에 주목될 예정이다. 유리 우샤코프(Юрий Ушаков) 보좌관이 언급하기를 안보 문제를 포함한 각 부문 협력을 망라하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협정을 체결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협정은 기존의 러북 간에 체결된 문서들, 즉 1961년 소련과 북한의 소-북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에 관한 조약', 2000년 '우호·선린·협조 조약', 2000년과 2001년 러북 선언 등을 대체할 것이라 했다. 또한 당연히 국제법의 모든 기본 원칙을 따르고 어떠한 도발적 성격도 없으며 어느 국가를 직접 겨냥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언론들이 말한 것처럼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 전략적인 부분을 주고 북한은 러시아에게 대 우크라이나 전쟁에 군사 무기를 공급하는 등의 상호 군사 협력을 하려는게 아니다. 그리고 북한과 "군사동맹" 체결하려 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뉴스랍시고 보도하는 기자들이 있었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두 정상은 또 경제와 안보, 에너지, 우주항공, 교통, 국제 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증진 방안을 논의하게 되는데 경제, 에너지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생각된다. 데니스 만투로프 제1 부총리와 알렉산드르 노박 에너지 부문 부총리를 비롯해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미하일 무라시코 보건장관, 유리 보리소프 로스코스모스(연방우주공사) 사장, 올렉 벨로제로프 철도공사 사장 등이 푸틴 대통령을 수행하기에 단독 비공식 정상회담에서는 수행원 중 특정 인원들이 포함되며,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들이 논의될 예정이기 때문에 꽤 많은 시간이 할애될 것이라 했다. 그리고 러시아 입장에서 군사적인 부분보다 가장 중요한 현안은 두만강 문제다. 과거 1960년대 소련은 중국, 북한과 더불어 두만강 일대의 개발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의 영토분쟁이 발발하고 북한과 중국 간의 협의도 강화되면서 이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그 다음에 나타난 것이 두만강개발계획(TRADP : Tumen River Area Development Programme)의 일원이자 유엔개발계획의 지원으로 출범한 광역두만개발계획(Greater Tumen Initiative, GTI)이다. 당시 이 프로젝트의 참여 국가는 대한민국, 북한, 중국, 몽골, 러시아였지만 2009년 북한이 이 프로젝트에서 탈퇴해 현재 대한민국, 중국, 몽골, 러시아만 회원국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15년 만에 북한이 이 프로젝트 합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본래 이 프로젝트는 대한민국 부산에서 울산과 속초를 이어주는 동해안 일대, 북한의 나진, 선봉시 등 두만강 유역, 중국의 동북 3성과 내몽골 몽골 동부지역 그리고 러시아 연해주 일부를 아우르는 매우 광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동북아시아 최대 개발 계획이며 다자간 대형 프로젝트로 키우려고 했었다. 한반도 동부 회랑으로 알려진 환동해 지역이 이 계획에서 중심점을 차지하고 있으며,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엄청난 경제적인 이익이 잠재되어 있었다. 이는 가입 회원국들 간 서로 이익이 어느 정도 충돌하지 않으면서 주도권이 어느 정도 분산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 관련 총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대한민국에게 이것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러시아와 몽골이 매우 소극적이고 북한이 탈퇴했기 때문에 그 의미가 퇴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러시아-중국 간의 정상회담에서 두만강 프로젝트 논의가 나오면서 이 일대 개발 이야기가 공론화 되었다. 러시아는 그동안 중국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 중국 선박 항해에 부정적이었으나 서방 제재를 받는 러시아와 북한이 접근하는 등 3국간 역학관계가 바뀌어 이제는 두만강이 중요해지게 됐다. 우선 러시아-중국이 합의했지만 문제는 북한의 동의와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 이 문제가 성사되면 중국 입장에서는 동북 3성 일대의 물류 허브가 생성되는 것이고 비약적 경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연변이나 만주 일대, 하얼빈의 조선족들이 더 이상 한국을 찾지 않을 것이다. 자국 내 경제가 성장하는데 대한민국에 일하러 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지역이 잘 되면 대한민국에 있던 조선족도 한국 생활 정리하고 중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조선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우리 입장에서는 어쩌고 보면 희소식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낙후된 하산 일대를 군사 지역에서 민간 지역으로 개방하고 하산 지역에 대한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 동안 버려진 깡촌에 불과한 하산이 중국 심천과 같은 경제 물류 허브로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하산의 잠재적 가능성은 높았었지만 군사 지역으로 묶여 있었던데다 북한, 중국 등과의 관계가 냉랭해져 사실상 활용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러시아-북한 간의 정상회담으로 이 지역의 길이 열린다면 하산 지역은 육로 지역으로 판별해 볼 때 3국 간 육상 최대 요충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게다가 러시아는 나진, 선봉 지역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알렉산드르 노박 에너지 부총리와 올렉 벨로제로프 철도공사 사장이 이번 방북에 동행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나진, 선봉에 대한 러시아의 투자, 그리고 중국의 지원 등이 이루어진다면 환동해의 새로운 물류 허브로 탄생할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나진, 선봉보다 속초와 부산을 염두해 두고 환동해물류 허브로 만들고자 노력했지만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인해 생각보다 느리게 진척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나진, 선봉이 열리면 속초는 가능성이 희미해지고 이를 목적으로 만들었던 양양 국제공항은 막대한 적자를 내며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집중하고 있는 북극 항로의 문제도 여기에 있는데 나진, 선봉이 열리며 굳이 물류 선박이 부산에 기항하지 않아도 된다. 나선 지역에 기항하고 동남해안으로 그냥 통과만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부산도 사실상 손해를 보게 된다. 그만큼 환동해 경제적인 부분으로 볼 때 우리 대한민국에도 매우 중요한 얘기인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한테도 아직 골든타임은 남아 있다. 가장 시급한 부분은 우리 대한민국과 블라디보스톡 간의 항공 운행이 재개 되어야 한다. 모스크바는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블라디보스톡만큼은 이전처럼 항공 운행이 재기되어야 연해주 지역 문제에 다시 관여할 수 있다. 그러면서 환동해 지역 전체에 대한 러시아의 투자를 끌어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광역두만개발계획(Greater Tumen Initiative, GTI)의 회원국이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제 환동해 지역은 러시아와 중국의 대 동방 정책으로 인하여 동북아시아 지정학적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 숟가락 담그지 못하면 우리는 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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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va Topos
    2024-06-20
  • 심상치 않은 이라크 쿠르드계인 페쉬메르가 집단의 최근 움직임
    현재 이라크 북동부와 이란 북서부, 터키 남동부에 걸쳐 있는 치즈레(Cizre), 카필(Kapılı), 쉬르낙(Şırnak) 지역에 경계령이 떨어지고 있다. 내가 최근에 이 지역들을 방문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가 이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페쉬메르가 집단이 PKK와 접선 및 연동의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를 받고 나서부터다. 페쉬메르가와 PKK는 같은 쿠르드 무장단체다. 그런데 PKK는 사회주의성 이념의 목적을 지니고 있는데 반해, 페쉬메르가는 오로지 이념이 아닌 순수한 무장투쟁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 때는 IS의 격멸을 위해 함께 했었지만 그 이념적 차이 때문에 서로 결별했다. 터키 남동부에 걸쳐 있는 치즈레(Cizre), 카필(Kapılı)에서 두 단체의 접선이 이루어졌고 터키와 이라크 정부를 상대로 연합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 한다. 아마 터키와 이라크의 국경 도시인 치즈레(Cizre), 카필(Kapılı)은 매우 위험해질 공산이 클듯 싶다. 치즈레(Cizre), 카필(Kapılı)와 터키와 이라크의 국경이면서도 남쿠르디스탄,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국경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쿠르드인 인구는 약 1,500만 정도로 추산된다. 이 지역의 면적은 면적은 46,861㎢, 한국으로 보면 경상도와 강원도를 합친 크기다.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중심지는 아르빌(Erbil)로 과거 한국군이 이라크 파병 당시에 주둔했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원래 이 지역은 쿠르드인들이 정착한 지역으로 터키와 이라크가 국경을 두고 갈라지기 전에 모두 쿠르디스탄으로 칭해지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영국군이 들어오면서 오늘날 터키와 이라크가 양분되는 관할 구역이 재편된다. 영국은 이라크를 식민지로 삼으며 당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이라크 쿠르디스탄을 떼어내 이라크 영토에 합병해버렸다. 오늘날 터키와 이라크의 국경은 영국이 강제로 만들어버린 인공적 국경이었기 때문에 터키 정부는 현재까지도 이라크 쿠르디스탄을 자국 영토로 인식하여 이라크 정부에 반환을 요구해 터키-이라크 간의 해결되지 않은 영토분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라크 쿠르디스탄에는 쿠르드족만 있는 곳이 아니라 터키인도 약 30% 이상이 살고 있는 곳이다. 영국이 오스만투르크에게서 이라크와 터키를 강제로 분할해 버렸으니 생긴 현상이다. 이들은 PKK나 페쉬메르가가 나타나기 전까지 터키에 귀속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라크 쿠르드족들과 터키계 이라크인들은 영국이 후원하고 있었던 당시 이라크 왕국과 사담 후세인 정부에 수없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면서 1960년에 제1차 이라크-쿠르드 전쟁이 발생하자 터키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외면하기 시작하면서 이라크 쿠르디스탄과 북쿠르디스탄은 터키 정부에 대해 실망감을 느끼고 쿠르드 민족주의를 결성, 터키와 이라크로부터의 독립을 염원하게 된다. 1970년에는 시리아 바트당 정부와 쿠르드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알레포 협정이 이루어져 쿠르드족 자치권이 이루어지게 합의했으나 1974년 제2차 이라크-쿠르드 전쟁으로 이라크 정부에 크게 탄압을 받게 된다. 이후 이라크 정부는 쿠르드 지역에 대해 강한 아랍화를 실시하면서 쿠르드 민족주의를 강하게 억누르고자 했다. 그러자 이에 대한 반발로 인해 수십년 동안 또 다른 분쟁이 이어졌고 이 분쟁에 페쉬메르가 세력이 주도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내전이 격발되었다. 이들은 PKK 조직과 연계하여 이라크 북부와 터키 동남부를 중심으로 테러와 게릴라 전을 감행했다. 특히 터키-이라크 국경 지대인 치즈레(Cizre) 인근 알 추디(Al-Cudi) 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본래 공산주의 성격의 PKK와는 달리 페쉬메르가는 여기에 이슬람 근본주의까지 입혀 알 추디 산을 무슬림의 성산(聖山)으로 만들고 성역화했다. 알 추디(Al-Cudi) 산은 아라랏 산과 더불어 무슬림들에 의해 노아의 방주가 한 차례 정착한 산으로 여겨져왔는데 이 산에 대한 무슬림들의 성역화는 페쉬메르가 세력이 이 산을 장악하면서부터 이루어져 왔다. 이 산을 중심으로 이란-이라크 전쟁 와중에 1983년 또 다시 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더불어 이 일대에서 상당량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여기에 눈독을 들인 영국이 페쉬메르가를 지원하면서 이들의 무력은 급격히 강화되었다. 비록 1983년 봉기는 교착상태에서 끝났지만 이를 기억하고 있던 사담 후세인은 1988년 쿠르디스탄 토벌에 나섰다. 이 때 활약한 자가 이라크 대외정보국장이며 후일 "쿠르드족의 도살자"로 알려진 알리 하산 알 마지드(Ali Hassan Al-Majid, 1941~2010)다. 그는 화학 공격의 대가로 알려졌기에 그의 별칭이 케미컬 알리(Chemical Ali)다. 그는 할라브자에 화학공격을 가해 4,000명 이상의 쿠르드족을 학살했다. 그의 주도로 이라크군은1983년~1988년 시기에 안팔 작전을 개시해 50,000~180,000명 이상의 쿠르드족을 학살했다. 그리고 1991년 걸프전쟁이 발발하자 이들은 미군의 지원을 받았고 사담 후세인에 대한 봉기를 일으킨다. 한 달 간의 분쟁으로 수만 명이 사망하고 180만 명이 난민이 되어 각지를 떠돌았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군은 쿠르드 지역 남부의 봉기를 상당수 진압했으나 이라크 쿠르디스탄 대부분 지역에서 쿠르드족의 저항이 거세게 나타났으며, 걸프 전쟁에서 패배했기에 이들을 제압할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후세인은 쿠르드족과 합의하여 쿠르드 자치구를 세우는데 합의했다. 2003년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자 완전한 독립을 노리고 미국 편으로 참전했다. 그러나 쿠르디스탄이 완전 독립하는 것을 반대하는 터키와 이란의 반발로 인해 미국은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승인하지 않았다. 결국 쿠르디스탄 자치 정부는 반발했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대신 2005년 이라크 신(新) 헌법이 제정되자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더 많은 자치권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2014년에는 IS와 맞서 싸웠고, 2017년에는 쿠르드 지역 독립투표를 강행했으나 이라크의 강력한 경고로 작은 충돌이 일어났으며 결국 독립은 철회되었다. 그러나 현재에도 다시 독립투표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터키가 PKK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이라크도 여기에 협력하여 이라크 쿠르디스탄에 대한 합동 공격까지 논의가 오고가게 되자 급해진 페쉬메르가는 PKK와 공조를 요청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라크 영내에서 터키와 이라크군의 합동 공격이 서서히 임박해짐에 따라 PKK와 페쉬메르가의 접선 및 연동, 치즈레(Cizre), 카필(Kapılı)에서의 회합은 터키와 이라크에 대해 대규모 저항이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칼럼
    • Nova Topos
    2024-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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