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03(수)
  • 로그인
  • 회원가입
  • 지면보기
  • 전체기사보기
 

노아의 장손이자 야벳의 장남인 고멜이 시메리안(Simerian)이라는 이름과 큰 영향력을 성경 및 토라와 역사에 남겼다. 야벳의 후예들이 노아의 축복을 받아 이는 아르메니아와 조지아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노아의 증손이자 고멜의 장남인 아스그나스(Ashkenaz)는 카프카스 지역으로 진출한 가문의 조상이 된다. 성경 및 토라와 카프카스 고대 역사에 등장하는 아스그나스의 흔적들은 많지 않으나 아직도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하고 있으며 신화적인 부분에 있어서 무궁무진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의 조상으로 알려진 아스그나스(Ashkenaz)는 터키 땅 전역과 카프카스 일대를 지배했으며 야벳 계통 후예들의 대표자들처럼 인식되었다. 아스그나스의 후예들은 노아의 둘째 아들인 함(Ham), 함의 막내인 가나안(Cannan), 가나안의 둘째 아들인 헷(The Hittites) 종족의 세력들이 후일 큰 제국을 건국한 히타이트 제국과 견줄 정도로 강성해졌다. 그들은 히타이트 제국 이후에 등장한 아시리아 제국과 신바빌로니아 제국 등과도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경쟁하게 된다. 


449384511_8002735976452066_3048361685914486660_n.jpg
사진 : 조지아 트빌리시 아스그나스 유태인 공동체 & 시나고그,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물론 이들 제국들이 워낙 강대하고 파죽지세로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아스그나스의 후예들이 일시적으로 위축되었으며 그들의 영토는 축소된다. 그러나 아스그나스의 후예들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했던 제국들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로 각인되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다가 고대 근동을 호령하던 강대국들의 틈새를 헤집고 들어가 대제국을 건설키도 하였다. 후일 로마 제국의 확장과 신생 페르시아 제국의 대립 속에서 지금의 카프카스 지역과 아르메니아 하이랜드라 불리는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경계가 정해지면서 끝없는 고중세 시대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부상했다. 

 

중세 시대 중반부인 서기 1200년을 전후하여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통치했던 바그라티드 왕조가 상당 기간 동안 카프카스를 통과하는 실크로드를 장악했고 카프카스 일대의 중계 무역으로 인한 부와 명예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아스그나스의 후예들은 매우 용맹했으며 유럽 러시아와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로 연결되는 지역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그 명성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의 지정학적 영토가 이전보다 위축되었기 때문에 아스그나스라는 이름이 잊혀지는 듯했다. 이 당시 아스그나스라는 이름보다 아르메니아나 조지아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더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열국들의 뇌리에서 자취를 감춘 듯 보였던 아스그나스(Ashkenaz)가 어느새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명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지역에 정교회가 자리 잡았고, 산악 유태인들이 자리 잡으면서 야벳의 자손들을 언급했던 것처럼 이들이 유럽의 각 지역들에 흔적을 남겼던 기록들이 적지 않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들 정교 기독교인들과 유태인들에 의해 유럽의 주요 지역들을 망라한 유럽 자체를 가르키는 명칭으로 ‘아스그나스’가 재등장한 것이다.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아스그나스(Ashkenaz)는 유럽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이 되었던 이유는 노아가 야벳에게 베풀었던 성경 창세기에 나타난 예언적인 축복을 이루어가는 상황에서 점차적으로 동유럽과 러시아를 거쳐서 유럽의 곳곳으로 지경을 넓혀 갔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는 고중세 당대의 역사가들도 아스그나스의 확장에 대해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중세 시기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고 유럽에서 성지를 탈환하려고 몰려드는 십자군들을 가르켜 아스그나스(Ashkenaz)라고 불렀던 기록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두고 어느 정도아스그나스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이는 유태교의 역사와 관련 지을 수 있는데 중세 시대의 중반 이후로 아스그나스 유대인(Ashkenazi Jews)들이 유럽 전체를 대표하는 유태교 추종자들로 알려졌다. 

 

예나 지금이나 유태인은 대개 아스그나스 유태인일 정도로 이들은 전체 유태교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아스그나스 유태인 그룹과 더불어 가장 많은 계파를 이루고 있는 세파라드 유태인(Sepharadic Jews)들은 전체 유태인의 20% 전후를 차지하는데, 이들 세파라드는 스페인을 지칭하는 단어로써 스페인 지역에서 유래한 유태인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성경이나 토라에서도 스페인이 세라파드로 불렸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스페인에서도 세라파드 내지는 아스그나스(Ashkenaz)로 나라 이름을 지칭했다는 것이다. 


1939년경 유럽에는 약 1,200만 명 정도의 아스그나스 유태인(Ashkenazi Jews)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한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아스그나스 유태인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는 유태인이라 지칭하면 모두 아스그나스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 아스그나스라는 명칭을 유태인들이 대명사처럼 사용하는 것으로 볼 때, 고대 시기 이스라엘의 북왕조를 구성했던 10개 지파들이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들 중 상당수가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의 아스그나스로 유입되었다. 

 

남왕조 유태 왕국의 2개 지파에 속한 유태인들 중 다수도 아스그나스로 속하여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로 이동해 토착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황과 여건에 따라 유럽의 각 지역으로 분파, 이동했다고 본다. 아스그나스의 본 고장인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에 남아 있던 유태인들 중에 12 사도들의 선교로 인해 기독교인으로 개종된 경우가 많았을 것이고, 아스그나스 유태인들의 숫자만큼이나 아스그나스 기독교인(Ashkenazi Christians)들도 적지 않은 숫자로 존재했을 것이다. 


비록 많은 수의 아스그나스 유태인이나 세파라드 유태인들이 유럽 곳곳에 계속 남아 있지만, 아스그나스의 본토인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에 남은 유태인들을 포함하여 그들의 후예들이 주축이 되었고 각각 세계 최초 및 역사상 두 번째로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유럽의 다른 이름인 아스그나스(Ashkenaz)도 대륙 전체가 기독교를 수용하였고 16세기 종교 개혁을 통해 그들의 후예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그 지경을 넓혔다고 본다. 

 

조지아나 아르메니아로부터 시작된 아스그나스 유태인 중심의 선민사상은 아스그나스로 불리는 유럽 등에서 백인 우월주의, 혹은 백인 보수 우성향, 백인 리버럴(The White Liberals), 그리고 근본주의적인 백인 기독교인들의 성경적, 사상적 근거로 악용되고 왜곡되어 왔다. 따라서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의 유태인들은 바빌론 유수에서 이스라엘이 로마에 정복된 이후까지 가장 먼저 해외에 진출해 뿌리 박은 자들이고 이들로 인해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가게 된 근원적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과 아쉬케나지 유태인은 조합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악마적인 유태인 조합으로 재탄생했다. 만약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소멸되면 유태인들이 자리 잡을 곳은 조지아, 아르메니아로 보인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조지아, 아르메니아의 유태인 아스그나스(Ashkenaz)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